2020.7.5. '성령의 화평', 김양재 담임목사님 (사도행전 10:36-38)
성령의 깨달음으로 와야 할 것이 화평이다. 화평케 할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데, 군사훈련 거치고 외모보지 않는 경지에 와야 화평이라는 것에 낯설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화평의 복음은 기쁨소식이니, 오늘 여러분에게도 성령의 화평이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란다.
1. 만유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36절
만유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화평의 복음을 전사힌다고 한다. 만유의 주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베드로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 선민인 유대인에게 전한 말씀을 이방인인 너희에게도 전하겠다고 한다. 만유의 주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물 수 있는 온 세상의 주 이시다.
롬 11:36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복음이 고넬료를 통해 이방인에게, 전세계로 간다. 근데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화평이다. 근데 세상은 화평을 갈등이나 다툼 전쟁없는 상태로 이해한다.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인 2차 세계대전 직후 인류는 그 어느때부터 평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유엔을 설치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인류 역사는 평안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평화는 환경에서 주어지는 것 아니고 전쟁은 인간의 죄 때문에 오는 것이다. 100% 인간의 죄 때문에 이세상은 본질적으로 화평에 있을 수 없다.
성경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400회 정도 나온다. 평화와 화평은 동의어이다. 이는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쓰는데, 성경에서는 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적대감이 없어진 상태를 묘사한다. 평강, 화평, 평화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레위기에서 번제 속죄죄를 다 다룬 후에 화목제가 나오는데, 이것은 회개하고 죄를 사해주셔야 화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회개 없이는 죄 사함 없고 죄 사함 없이는 화목과 화평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일시적이고 거짓된 화평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기에 하나님 자신이 먼저 시작하신다. 그 선물은 예수그리스도의 화평을 통해 자신이 죽어주심으로 삼위 하나님이 도우셔서 인간과 하나님이 화평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다 하셨다. 그러므로 100% 인간의 죄는 그럴듯한 환경으로 감춘다고 화평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주실 것이 없다고 했다. 즉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하기에 자력으로 화평을 누릴 수가 없다. 근데 환경으로 화평을 누려보려고 열심히 악을 행하며 바라던 환경을 만들었는데, 그 환경이 되니 모두가 음란으로 향해 치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못 살때는 동성애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남한은 하나님이 죄라고 하는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합법화 해야한다고 발의했다. 환경이 훨씬 좋아진 남한이 죄를 더 짓는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 숭배는 한사람으로 우상숭배하게 만들었는데, 남한은 풍요로워지니 자발적으로 우상숭배한다. 누가 더 죄가 많은가? 그래서 우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그들에게 화평이라는단어는 어떤 단어일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훨씬 화평할 것 같지만, 저는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명은 북한에 있다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고통을 많이 겪고 훨씬 깊은 하늘을 맛보고 있다 생각한다. 기가 막힌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킨 그들 때문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들끼리는 불신결혼을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남한은 불신결혼을 예사로 한다. 로마시절 카타콤 지하감옥에서 313년 믿음을 지켰듯이 북한 지하교회 지체들도 믿음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녹음
우리보다 훨씬 간절히 기도하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평안은 우리는 알수도 없는 주님이 주신 평안으로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그들의 영혼을 적신다. 그 평안은 깊이 묻힌 보배이기에 그 보배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하는 것이다. 70년 저렇게 왔는데 순교자의 후손이 살아있다 한다. 그들끼리 카타콤의 믿음처럼 내려오는 것이다.
왜 평화인가? 현재의 고난은 장차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데 그 영광을 누리고 있기에 육이 무너져도 무너지는 것 만큼 영이 세워지고, 영이 세워지는 실체는 화평이기 때문이다. 영이 세워지는 것이 화평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에 그 지하 교회에서 평안을 누리기에 어떤 핍박에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죽어가도 없어지지 않고 몇십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것은 기적이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없으면 내 자신의 화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웃과의 화평도 없다. 큰 교회 성가대 자녀 지위가 화평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북한에서 맛보는 평안은 세상에서 감당못하는 평안이다. 고통이 클수록 화평의 양이 크다. 그러므로 모든 화평의 근원은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다. 누가 더 축복인가? 누구를 더 불쌍하다 여겨야 할지 생각해보라.
적용) 여러분의 화평의 개념은 가정 회사 나라에서 전쟁 없이 사는 것인가, 그곳에서 죽어지는 것인가? 우리의 복의 개념이 거듭나야 한다.
2. 갈릴리의 나사렛 예수로 시작합니다.
37-38절
예수께서 그 화평의 복음을 갈릴리에서 전하기 시작하신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시작하신다.
갈릴리는 왕상 9장 설교에서 나왔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 마치고 모든 자재, 기술부터 모든 것을 도와준 히람에게 땅을 주었다. 근데 그것이 너무 무가치했다. 히람은 음식물이 필요해서 땅을 달라고 한 것인데 산악지역을 주었다. 솔로몬도 생색내면서 필요 없는 땅을 주고 서로가 무가치하고 가불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렇게 가불땅은 서로에게 무가치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소유인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땅이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것이 구원이고 약속인데 그것이 땅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왕상 바로 앞에서 7중 기도를 했다. 죄를 짓거든 하나님께서 들어달라고 했다. 근데 본인이 바로 죄의 당사자가 되어 히람에게는 무가치한 선물을 주고, 땅을 사고 파지말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며 장자권을 판 에서처럼 땅을 주었다.
솔로몬이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원했다면 성전 짓고 예배 드리기 전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로 해야 했다. 히람과의 관계를 올바로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버리고 싶은 무가치한 자녀와 부모를 명분있게 버린것과 같다. 자기도 못먹는 것을 남에게 주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히람이 거절을 했다. 솔로몬은 이런 마음으로 성전을 지었기에 타락과 우상숭배로 이어졌고 이후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전도서를 쓰고 갔다. 서로가 보기에 무가치한 가불땅에 바로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예루살렘 아닌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화평의 근거는 이렇듯 낮은 곳에 가는 것이다. 나의 모든 가불땅의 고난은 무가치해보이지만 내가 보석처럼 끼고 있으면 약속의 땅이 되는 실제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마 4:15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빛이 비췄다고 한다. 이방의 갈릴리가 사망의 땅이라고 한다. 그늘에 앉은 자들이라고 한다. 근데 여기서 사역을 주님께서 시작하셨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먼저 복음을 받아들이니, 주님의 오셔서 시작하니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갈릴리는 버리고 싶은 가불땅이, 돌덩이가 금덩이가 된 줄 믿는다. 진짜 무가치하다 여겨지는 사람이 우리들 교회에서도 빛나는 면류관 쓰는 것을 많이 본다.
근데 더 기가막힌 것은 무가치한 가불땅을 히람을 돌려 보내고 화를 낸 것이 아니라 금을 더 보냈다는 것이다. 18만명의 몸값에 해당하는 재물을 보냈다. 솔로몬은 너무 부끄럽다. 그래서 히람이 재물도 실력도 친화력도 있다. 히람이 솔로몬의 모든 것의 답이 되어주는 친구이다. 성격도 돈도 성전 짓는 실력도 낫다. 근데 나쁜 땅을 보내줬더니 땅과 함께 돈도 보내줬다. 이런 히람이 더 화평케 하는 자 같지 않은가? 그래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막을 뻔 했다. 그는 히람과만 놀았다. 이스라엘과 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의 땅 가불을 볼 눈이 히람에게도 없고 솔로몬에게도 없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로 자격 없는 솔로몬을 하나님이 은혜로 지켜주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가불땅을 무가치하다고 도로 돌려보내셔서 빼앗기지 않게 하신다. 이것이 택자이고 조상의 기도가 중요하다 생각하낟.
주님은 이런 가불땅인 갈릴리에서 시작하셨다. 그것이 천년이다. 우리는 천년 뒤를 내다보고 기도하면 응답될 줄 믿는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뭘 끊지도 못하고 하지도 못한다. 근데 지나고 보면 끊게 하시고 가게 하시고 그런다. 우리가 100% 죄인이라 그렇다. 근데 그곳에 주님이 오신 것이다. 그러니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되게 하셨다.이것이 성령의 화평을 이루는 예수님의 방법이다. 진정한 화평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히람같은 자에게도 속지 말라. 모든 것에 답이 되는 히람도 예수 안믿으면 마귀의 자녀이다.
북한에서는 기가막힌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켰는데 우리는 평안한데도 믿음을 못지킨다. 인권의 법 보다 하나님의 법이 최상에 있는데 하나님의 법을 무가치하다고 버리자고 하는 것이다. 그럼 후에는 인구절벽이 되어 나라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히람처럼 누군가는 이 법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법을 무가치하다고 버리라고 한다.
그럼에도 70년 지하교회에서 신음하는 북한 성도들을 위해 믿음 없어도 히람 같은 지도자를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씨 좋은 고레스 같은 지도자도 주셨다. 그 사람이 주님을 안믿는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쓰셨다.
적용) 내가 적용해야 하는 흑암과 사망의 땅 갈릴리는 결혼 자녀 직장 공동체 중 어디인가?
목장에서도 가장 낮은 사람부터, 가장 힘든 사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기름부어주실 것이다.
예루살렘 출신 목자님의 목장나눔
적용) 무가치한 가불이 갈릴리가 되어 주님께 쓰임 받게 될 것을 믿습니까? 제 설교가 감정에 호소하나 말씀에 호소하나? 마음에 찔림이 있는가?
3.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칩니다.
38절
예수님의 모든 능력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착한 일을 행하시고는 공생애동안 행하신 모든 선한 일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어서 나오는 마귀에게 눌린자를 고치는 것이 나오는 것은 착한 일에 영육간의 질병고치는 것을 포함한다 볼 수 있다. 신약에서는 마귀에 눌렸다는 단어가 두번 나타나는데, 이것과 야고보서 2:6 부자의 압제에 대해 표현할 때 같은 단어를 썼다. 즉 마귀에게 눌리는데, 마귀와 돈은 같은 단어인 것 같다. 마귀가 돈을 좋아하고 마귀에 눌리고 부자가 압제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들을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치유는 병자에게 육체적 치유와 사단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수 많은 부모 자식 이혼 재혼 모든 사연은 모두 돈과 음란이 엮여져 있는 것을 본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가책이 전혀 없는 타고난 싸이코패스라고 한다. 그러면 그분이 싸이코패스면 타고나서 죄가 없나? 그분은 감옥에 갔다. 근데 동성애는 타고나서 합법화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것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지 않는 땅은 없다. 싸이코패스는 해를 끼치니 죄고 동성애는 해를 안끼쳐서 죄가 아닌가? 하나님이 죄라고 하는 동성애가 인정되는 것은 나라가 없어지는 죄이다. 거짓에 속으면 안된다. 근데 최고 지성인들이 차별금지법 통과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이 모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고쳐주시기를 바란다. 그들의 평안은 가짜라 성령의 평화가 아니다. 마귀에게 눌린자 중 문자적으로 가장 힘든 사람들이 거짓의 사람들인 것이다.
요 8:44
거짓과 거짓말은 마귀의 가장 중요한 사역중 하나이고 거짓의 조종자는 마귀이고 악한 영이라는 것이다. 악의 본질은 자신의 죄와 불완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대신 그 잘못만큼 다른사람들을 공격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자신의 안량한 자아에 상처를 받으면 견디지 못할 뿐 아니라 완전한 파멸이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자아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차서 갖은 애를 쓴다. 그래서 거짓의 사람들은 증오를 덮고 있는 미소, 분노를 탈을 쓴 부드러운 매너, 불끈 쥔 주먹을 감싸고 있는 비단장갑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악성을 꼭 끄집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의 위장은 판독불가하다. 왜냐하면 이 거짓을 조종하는 마귀가 거짓말쟁이이고 거짓의 아비이기에, 위장술의 도사이기에 자기도 모른다. 당연하다 여긴다. 문제는 이 위장을 다루기가 가장 어렵고 치료하는데 가장 오래걸린다는 것이다. 그들의 미묘한 교활성을 판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이런 미묘하고 교활한 거짓은 평범하고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침착하고 조리이고 중요한 자리에서도 돈을 벌고,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공동체 안에서도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다. 그들의 거짓말은 어찌보면 대단한 것이 아니고 법에 저촉될 만한 것이 아니지만 바로 그들의 거짓이 사단의 왕국을 세우는데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요즘 심리학자들은 거짓의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로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악을 의식하지만 그의식을 피하고자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그 점이야 말로 질병의 한부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인정을 요구한다고 한다. 이렇게 마귀에게 눌린자는 겉이 아무리 교양있고 침착하고 합리적이어도 성령의 화평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이다. 솔직하게 나누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교양있어도 성령의 화평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질병이 굉장히 큰 질병인데, 오늘 주님께서 고쳐주신다고 했으니 고쳐주실 줄 믿는다. 이 거짓의 것을 고쳐주실 줄 믿고 예수그리스도의 화평 외에는 화평을 누릴 길이 없다는 것을 아시길 바란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화평이 아니라 성령의 화평 하늘의 화평을 누리고 영원천년을 누려야 한다. 북한동포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고난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평화를 우리가 누려야 할 줄 안다.
적용) 마귀에게 눌려 거짓을 행했던 것을 인정하는가? 여러분이 입만 열면 행했던 거짓은 무엇인가?
우리가 자신을 직면하기에 우리들교회 성도들이 괜찮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생각하기에 그렇다.
동성애자 이야기
말씀맺음
성령의 화평은 만유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그리고 천한 갈릴리의 나사렛 예수로 시작합니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칩니다. 우리는 거짓 아비마귀에게서 나온 거짓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힘들고 어려워지면 성령의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거짓의 사람을 찾아서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찾아간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니 재혼을 하려해도 성령을 받아야 하고 이혼을 하려 해도 성령을 받아야 하고 결혼하려해도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날마다 마귀에게 눌린자를 쫓아다니다가 거짓 아비마귀에게 속한 자를 쫒아다니다가 더 큰 수렁에 빠진다.
[기도제목]
* 이지현
1. 나의 안정과 안락함을 위한 화평이 아니라 내가 한가지라도 죽어지는 성령의 화평의 가치관이 생기도록
2. 거짓 화평을 위한 거짓된 감정과 언어가 진실하게 바뀌도록
3. 바라고 기도하지 못하는 내 연약함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고 친밀히 대화하도록
4. 이끄심에 합당한 체력과 지혜를 부어주시도록
* 백서윤
1. 말씀 보고 기도 할수 있도록
2. 생각이 많은데 생각이 잘 정리 될 수 있도록
3. 물질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4. 가족 구원
*안무옥
1. 엄마 수술(17일), 아빠 조직검사(22일) 시종을 주님께서 주관해주시기를, 무사히 잘 끝날 수 있도록 돌봐주시기를
2. 엄마 아빠 지정 보호자로 혼자 7월 감당할 게 많을 것 같은데 필요한 체력과 정신력 채워 주시기를
3. 진로 고민과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낙심 등이 밀려오곤 하는데 기도로 물으며 잘 찾아나갈 수 있기를
*김교희
1. 가불땅 같다 여겼던 팀, 가족, 지금 환경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보물같이 여기고 가도록
2. 영육 건강, 허리가 계속 아픈데 잘 낫도록
3.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4. 엄마 구원과 동생 구원위해 잘 순종하도록
5.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