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20.05.17
본문 : 사도행전 9:36-43
제목 : 성령의 선행과 구제
온라인 13주차. 참으로 위기 가운데 있으나 사도행전 본문대로 오는게 우리 이야기다. 흩어져도 성전의 의미를 알게 하셨고, 우리는 걸어다니는 성전이기 때문에 죽어지는 순교해야하고, 흩어져도 큰 기쁨, 능력,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 가장 중요한 권세는 회심이다. 그래야 형제가 되고 그래야 위로를 하니 성장이되고 수가 더 많아진다고 하셨다. 성장은 내적인 정돈 영육간의 정돈으로 이루어지는데 내적인 정돈은 이타적인 성령의 선행과 구제로 이어진다고 한다.
1.제자여야 합니다.
36절) 다비다는 헬라파 유대인이다. 성경에 토씨하나가 중요한데 다비다 이름에 번역까지 했다는 것은 대단한 성령님의 인정이다. 이름의 뜻은 암사슴, 영양을 뜻하는데 영양은 빨리 달리고 품위가 있어서 은혜로움 혹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같이 선행과 구제에 헌신적이었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성이었다. 문자적으로도 우리들 교회로써 많지는 않아도 도운 것을 살펴보면 코로나가 터지자마자 대구지역에 성금을 전달했다. 헌금광고도 별로 하지 않았다. 일반헌금을 가지고 했다. 극동방송을 통해서 취약계층에게 큐티인을 후원했다. 우리들 교회 각 초원에 코로나로 인해서 실직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성도님들 200명을 도왔고, 300개의 생필품을 후원했다. 경기서울지역 소외계층에 후원을 했고 코로나로 인해 수고한 서울과 경기지역 기관 31곳을 지원했고, 해외동포로 힘든 분들을 후원했다. 우리가 선행과 구제를 했다고 볼수있다.
다비다앞에 여제자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제자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생명의 말씀으로 나는 죽고 남을 살리는 일이다. 다비다는 과부. 그런데 과부인 그녀에게 제자라는 칭호가 주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 믿음이 있다면 차별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길은 가시밭길인데 진정으로 그 길을 가는 자는 차별하지 않는다.
## 여러분은 제자입니까? 관람객입니까?
2.자기 죄에 절망하는 사람이 선행과 구제를 합니다.
36-39절) 다비다가 구제와 선행이 심히 많은 바로 그때에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오늘 본문은 다비다와 도르가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베드로가 오니까 모든 과부가 도르가의 선행을 기리며 속옷과 겉옷을 내보이면서 울었다고 한다. 이 과부들의 모습은 다비다가 이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말해준다. 다비다는 실로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 애도하게 할 만큼 선한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죽음이란 이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 시금석이라고 할수있다.
## 여러분은 죽은 후 어떤 평가를 받을지 생각해봤습니까? 여러분을 생각하며 애통할까요? 잘 죽었다고 기뻐할까요?
베드로가 살려주려고 하는것이 도로가의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아서 살려주셨다고 되어있다. 행위구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성경을 읽으면서 경계해야 한다. 사람이 영광받는 것을 늘 긴장하며 조심해야한다. 그런데 다비다는 어떻게 이렇게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는지 그걸 생각해봐야 한다.
다비다에게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다고 표현한 것은 정도 이상으로 흘러넘쳤다는 것이다. 애를 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흘러 넘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흘러넘칠수 있을까? 내힘으로는 안된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왕으로부터 일만달란트의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큰 은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백데나리온 작은 빚을 진 동료의 목을 조르면서 그 동료를 옥에 가두었다. 그 사실이 임금에게 알려지고 그 탕감받은 빚을 다 빼앗기고 평생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마태복음 18장 32-33절) 이 악한 종도 기도하고 빌었다고 한다. 얼마든지 악을 쓰면서 기도할수 있다는 것을 볼수있다. 어찌나 그 기도가 간절한지 하나님도 응답해주는 기도였다. 하나님이 잠시 응답해주는 것 처럼 일만달란트의 학교가 붙고 직장도 붙을수 있다. 죄사함을 모르고 빚을 탕감해주시는 만달란트의 기도응답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죄사함이 없기 때문에 돈없는 백 데나리온 빚진자를 한없이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잘되면 얼마나 건방을 떠는지 모른다. 내가 교만하게 될 환경이라면 돈도 집도 직장도 주지 말라고 기도해야한다. 구하지 말아야 할것을 구하게 되면 육적, 정신적, 영적 고통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갖지말아야할 명예와 돈과 가정을 가져서 끝도 없이 고난을 받는 집이 많다.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게 있다. 하나님이 용서 하지 않는 것은 정말 큰 죄이기 때문이다. 그 죄가 우리 속에 있으면 죽음으로 끌고가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 죄가 내게 있을 때 상대를 시기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 인생을 흔든다.
자기가 탕감받은 생각은 안하고 백데나리온에만 집착을 한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하는데 일만달란트 탕감받는 감사함이 없기때문이다. 불쌍히 여김이 마땅한데 용서가 안되는 집안 식구가 있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성도는 기본적으로 만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들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가 보증이 된 사람인데 잠시 후에 거기 갈 사람인데 이 땅에서 없어져버리는 걸 용서하지 못하고 분해 하는 사람들이다.
회개를 하지 못하도록 돈이 자꾸 벌리고 직장이 자꾸 승진이 되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 회개하지 못하고도 돈이 자꾸 벌리고 승진이 되는 일이 있습니까?
다비다는 일만달란트 빚진 것처럼 자기 죄가 닭털같이 많다는 것을 안다. 이런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갚아도 갚아도 갚을 길이 없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 죄가 일만달란트처럼 많다면 절망해야 할 일이다. 근데 그걸 탕감해주셨다는 것이다. 다비다는 바로 이 일만달란트 빚진 마음으로 선행과 구제를 하니 흘러넘침으로 심히 많다고 하는 것이다. 빚진 마음으로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내 죄때문에 눈물이 나고 선행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선행이 되고 생색이 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선한게 없다. 다비다가 이미 과부. 늘 과부와 고아를 가장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환경이 겸손하니 겸손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기 죄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쉽다.
정신병이라는 것은 감사한게 많은데 감사할줄 모르는 것이다. 고난도 없이 높은자리에서 승승장구하면 죄인들은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줘야 한다.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는데 그 다음 구절 37절에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일만달란트 탕감받고 우리는 살다가 어느때라도 주님이 오시면 따라가야 한다. 실컷 구제하다가 상으로 병과 죽음을 주실수도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선행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갈수도 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할일은 다른사람 살리는 일이다. 이게 자녀교육에 가장 유익한 것이다. 자녀가 성공한 것은 자녀가 천국가는 것, 구원의 확신이 최고의 성공이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선행은 용서를 최고로 친다. 용서하라고 하신다. 자기죄에 대해서 절망적으로 보는 사람은 못할게 없다.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고도 한다. 용서는 사랑할줄 모르는이에게 베푸는 사랑이라고 한다.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은 못할 용서가 없고 못할 선행이 없고 못할 구제가 없다.
빚은 꼭 갚아야 한다.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갚아야한다. 절박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일만달란트 빚진자와 다름이 없다.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은 결초보은해야 한다. 종노릇을 제대로 안하면 감시자가 있다. 절제를 못하니 우리는 감시와 구속은 기쁜 구속이다. 그래서 대가족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랑 같이 사는 것을 감사해야한다. 구속하는 제어장치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 감시해주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른다. 인간은 노예근성이 있기 때문에 홀로 신앙생활 잘할 것 같아도 못한다.
## 자기 죄에 대해서 절망하는 만큼 행한 그런 선행과 구제는 무엇입니까? 선행은 구원의 일이다.
일만달란트 빚진자처럼 참고 인내하면서 기쁘게 가는일이다. 생색을 낼수가 없는 것이다.
3.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37-39절) 우상숭배자였던 아합과 이세벨이 죽었을 때 백성들은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이 땅에서 잠시 누리고 잘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후에 영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개들이 와서 시체를 유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40-42절) 다비다가 병들고 과부여도 천국을 누리면서 갔다는 것과 이미 영생에 속한자라는 것을 이 땅의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어도 천국 백성이란 것이다. 그래서 선행과 구제를 할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쁨으로 감사하게 이 땅을 떠났지만 이 땅 사람들이 천국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죽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다비다를 바로 씻겨서 장례를 하지 않고 다락에 눕혔다. 지체하지말고 베드로를 오라고 했다. 그녀가 믿음의 여인이라는 것을 아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에 다락방에 베드로도 데리고 올라갔다. 베드로가 침상에 올려놓은 다비다의 밑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니 다비다가 일어나 앉았다. 이걸 기적이라고 할수있지만 이 일은 베드로가 한게 아니라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을 누가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 12절)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을 보고 우리는 주목할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전하는 통로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제와 선행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하는게 아니다. 중풍병자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지만 베드로가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주님의 공생의 사역을 보는 듯 하다. 주님을 자기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 주님과 같은 능력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그대로 지키셨다.
## 병들어도 아파도 힘들어도 망해도 여러분에게는 영생의 확신이 있습니까? 근데 왜 그렇게 분하고 섭섭하고 아픈게 많을까요.
성령의 선행과 구제는 제자여야 한다. 자기 죄에 절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만달란트 빚진 나를 탕감해주셨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가 늘 사람 살리는 노래와 찬양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과 양육이다.
<오단이목장 기도제목>
단이
-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 사건을 내 생각과 내 힘으로 해결하려하지 않고 말씀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 조카가 발달지연 상태인데 하루 속히 치유해주시길
수연
- 아빠와의 시간을 잘 보낼수 있길
- 내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볼수있길
- 일만달란트 빚진자임을 알수있길
미경
-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 할 수 있도록
- 큐티 할 수 있도록
유빈
- 나에게 주신 사건을 감사하며 말씀으로 풀어갈수있길
- 눈 상처가 흉없이 잘 치료될수있도록
찬미
- 오전에 큐티할 수 있도록
- 일주일 2번 이상 밖에 나가서 산책하기
- 내가 할 수 있는 일 발견할 수 있도록
지인
- 아침에 큐티할 수 있도록
- 무언가 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 기도 자주 할 수 있도록
하영
-큐티와 기도 하도록
-공동체와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도록
규리
-이번주 시험 잘 볼 수 있게
-큐티 하기로 한 만큼 하고 말씀 더 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