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일 '성령의 성장' (사도행전 9:31 ), 김양재 담임목사님
온라인 11번째
1. 루저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루저란 버려진 것 같은, 완전히 잊혀진 것이다. 이런 루저와 같은 경험이 필요하다.
본문은 그리하여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은 앞의 본문을 다 받고 있다.
앞의 본문에서는 예수 믿는 사울을 집요하게 죽이려 하니 다소로 형제들이 사울을 보냈다. 사울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죽이고자 하니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도 박해가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근데 오히려 평안히 서간다는 말이 뜬금없이 오는 것 같다. 그러나 가 아니라 그리하여 라는 것은 성령의 문법이다.
자고로 핍박 받아 병들었다는 것은 성경에 없다. 이전에는 예루살렘교회가 박해받아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이 전해졌다.
행 1:8
주님은 이 말씀을 신실히 이루신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울, 베드로, 빌립도 주인이 아니다.
성령 받은 사도들이 옥에 갇혔다 풀려난 일이 있다. (행 6:7-8)
박해가 일어나면 하나님은 가장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박해가 일어나도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허다한 수의 무리가 이 도에 복종한다고 하는 것이다. 근데 하나님은 이 이후에도 스데반의 당당한 구속사의 설교 때문에 돌에 맞아죽고, 그것 때문에 교회를 잔멸하니 많아졌던 교인들이 위축되어 적어졌다. 어쩔 수 없이 흩어짐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간다고 한다. 그래서 성령의 문법은 그리하여가 맞다. 사울이 다소에 있어도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는 성장했다는 것이다.
사울을 보면 회심 후에 고단한 여정을 살고 있다.
사울은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다. 사울이 똑똑하니 성경 전체를 꿰는 설교 하고 죽은 스데반을 보며 나도 스데반처럼 설교 전하고 죽겠다고 했다. 본 것이 그것밖에 없다. 담대하게 전하니 다 죽이려고 했다. 베드로가 전할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사울은 미리 죄를 너무 다 졌기에 오직 주의 사명밖에 없었다.
그 사울은 회심 후에 즉시 교제권이 바뀌었다. 회심하니 동료인 유대인과는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없었다.
기도제목
25년 절친인 한 사람이 이혼해서 우리들 교회 왔다고 한다. 믿고 나서도 세상친구와 친하시면 성장할 수 없다. 전도를 위해 만날 수 있겠지만, 사람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상처 받는 것이다.세상친구와 친하면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성장하려면 친구를 정확히 선택해야 한다. 믿는데도 아직도 세상친구가 너무 좋고 교회사람은 부담되면 회심 안된 것이다.
유대인 청년이 자기가 죽이려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외치니 그가 너무나 변했기에 같은 유대인인 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아라비아에서 3년 후에 와도 여전히 살해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다. 3년정도 피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형제들이 다소에 보내었다.
결정적일 때 사울을 다소에 보낸 사람은 제자들이었다. 주의 일을 할 때 마음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결정적으로 내가 낳은 사람이다. 주의 일에 외롭지 않으려면 복음으로 낳아야 한다. 나 때문에 변화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위치에 있어도 영적 자녀가 없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울을 어디로 보내도 다 죽이려고 하니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고향에 보냈다. 거기는 시민권이 있어야 했다. 근데 잠깐이 아니다. 갈2:1에 보면 14년 후에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한다.여러 견해가 있지만 대략 13년을 다소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회심하고나서 복음을 전하는데 살해의 위협을 느껴 아라비아 갔다가 다소로 갔고, 거기서 믿는 것 드러내지 말고 죽은 자 잊혀진 자 처럼 살라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왔다.
사울은 그 전에 아라비아에서도 3년동안 복음 전하니 고관이 다메섹까지 와서 죽이려고 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사울이 너무 특별했다. 너무 똑똑하고 설득력도 대단했다. 가만히 있어도 입만 열면 드러나는 사람인 것이다. 그것을 버려진 사람처럼 가만히 모두가 잊어버려야 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훈련이다. 사울은 잠시 그렇게 사라진다. 그 잠시가 13년이다. 사실 그 전 아라비아까지 하면 16년인 것이다.
사울은 똑똑하게 복음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들 사울을 기피했다. 갈1에 보면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와서 사도들을 사귀고자 했다. 근데 베드로 야고보만 만나주었다고 한다. 갈라디아서에 섭섭함이 묻어있다. 그랬을 것 같다. 자기들은 어부인데 사울은 너무 대단했다. 출신도 대단하고 논리도 대단해서 헬라파 유대인과도 변론해서 이긴다. 베드로는 명함을 못 내미니 잘 안만나준 것 같다. 이런 사울은 초대교회 수가 더 많아진 성장 부흥과는 상관 없이 버려진 사람으로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잊혀진 채로 있었다. 다소에서는 가말리엘의 제사장 가문의 똑똑한 사울이 어떻게 저렇게 되었나 싶었을 것이다.
교회가 수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바울은 수가 많아진 것에 대해 공을 세운 것이 하나도 없다. 바울은 잊혀진 사람처럼 있었다. 이전에 촉망 받고 대제사장의 신임을 받았던 사울이 공문 받고 그리스도인을 죽이러 가는 중에 회심했다. 사울이 회심하고 보니 세상이 달라졌다. 근데 세상은 하나도 안 달라졌다. 그러니 사울이 여기저기서 박해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유대인 중 유대인, 다소 출신 가말리엘의 제자가 회심했는데 13년간 알려지지 않은 채로 보내게하셨다는 것이다 . 어디서 쓰임 받을 지 알 수 없는 채 하나님 독대하여 외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울은 앞으로 성령의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말씀도 잘 알고 열정도 있는 사울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죽이려는 동족이 이해가 되었을까? 그리고 기독교로 개종하려는데 의심받으니 얼마나 곤고했을까? 회심하고 살아가는 17년의 인생이 외로웠다. 믿는 사람을 워낙 잔인하게 잔멸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기 위해서는 13년간의 실패자의 인생이 필요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루저의 인생, 실패자의 인생이 필요했다.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가 다 틀렸다고 하면 인정해야 한다.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내가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며 자기 열심을 앞세워 눈쌀을 찌푸리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근데 그렇게 버려진 것 같이 있었지만 역사가 토인비는 바울을 싣고 간 배가 위대한 배가 되었다고 했다. 사울이 기다린 것이 아니라 사울을 끝까지 기다리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거의 16년 간의 자기와의 시간이 있었기에 신약의 1/3이 넘는 주옥 같은 서신서가 써진 것이다. 그것만 남겨놓았다고 해도 사울이 다소로 간 것은 실수가 아니다. 아라비아에서도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목사님 간증
걸레질 하며 잊혀진 것 같은 시집살이는 제 수준에서 성령의 성장을 하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적용) 버려진 것 같이 다소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나눔)
지금 부모님 가게에서 건강 허락치 않아 걸레질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지금 엄마와 지내는 시간, 회사에서 따로 두각을 못 나타내는 시간, 사고 당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 돈이 없는 상황, 마음이 곤고한 상황..
2. (성령의 성장은) 평안한 것입니다.
31절
평안과 성장은 분리될 수 없다. 고난이 해석이 되어야 해결이 되어 평안을 경험하여 성장이 된다. 물론 고난자체로 성장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평안한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 분쟁 있으면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다 쓰기에 전도할 힘이 없다.
박해하던 사울이 회개한다. 사울의 입술은 위협과 살기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문은 그리하여라고 연결하게 된다. 한 사람의 변화가 평화를 이루는 씨가 된다.
사울이 박해받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교회가 평안하다고 하니 연결이 잘 안된다.
이것이 영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십자가 없는 평안과 행복은 다 일시적이다. 평안은 십자가 은혜로만 가능하다. 우리의 평화도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로만 가능하다.
이 때 로마 칼리굴라 황제가 자기 형상을 지성소에 넣고 자기를 우상숭배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울을 죽이려던 유대인들이 그 대상을 바꿨다. 갈릴리 교회 사마리아교회에서 핍박하던 것이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육적으로도 좀 평안해졌다. 그러면 좀 안식하면 되는데 이제 이것이 다 끝났다고 하며 교회 쉬겠다고 여행 가겠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다.
나에게 오는 박해와 부흥과 성장은 모두 하나님의 시간이다. 어떤 시간이라도 하나님의 시간이기에 안식도 박해의 시간을 잘 지내며 순종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이상하다가 항상 주제이다.
평안은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가능하다. 내가 힘들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평안이 없다. 힘들어도 십자가에 달려있으니 평안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록 평안이 온다.
사울이 무섭다고 교회에 나오려는 그를 교회가 두려워했다. 이것은 이 땅의 두려움이다. 근데 바나바라는 위로자가 사울을 소개시켜주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바나바 때문에 교회가 평안해졌다. 든든히 서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안이 있고 없고는 참 중요하다. 어떤 차이일까?
돈 스펙 많고 아이들이 잘나가면 평안한가?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갖추어서 평안한가? 우리 집 분위기는 어두운가 밝은가? 매일 깔깔거리며 웃는가, 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인가?
우리교회 집사님들의 가정은 왜 평안할까? 모두가 돈 스펙 없고 중독도 안끊어졌는 왜 웃음이 넘칠까?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집사님들의 답은 우리는 죄인이기에 무슨 말을 해도 맞다고 죄인이라고 맞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옥을 안 살고 평안한 것이다. 근데 다 돈 많고 똑똑하고 스펙있고 다 선한 사람만 모이면 자기 죄를 못보니, 자기 죄를 못 보면 한마디만 잘못 들어도 잠을 못잔다. 죄인의 집단은 서로 자기 잘못이라 하니 평안이 있고,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서로 죄가 없다고 하니 평안이 깨진다.
남편이 바람피워도 영육간의 자기 죄를 보니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니 남편이 수고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니 감사하고 육적으로 깨어있게 된다고, 자기 죄를 보니 온 집안의 평안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고 병원은 환자가 와야 정상이다. 근데 환자보고 의사가 왜 이렇게 아프냐고, 당신 같은 환자는 볼 수 없다고 당신 같은 환자 처음 본다고 위중하다고 너무 더럽다고 하면 그 병원이 제정신인가?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날마다 선한 사람을 찾고 있으니 이 교회는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사람만 있냐고, 교양 없다고 하면 그런 분에게 평안이 있겠는가?
사울처럼 살기 등등했던 지난날의 체험이 사울을 교만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스데반 죽인것은 진짜 신의 한 수이다.
기도제목 나눔 - 시댁식구와의 갈등
이분이 평안할 수 없지만 결국 자기 죄를 보니 평안하다. 행함만 생각하면 지옥을 살 것이다. 평안은 주님 주신 평안이지 이세상의 평안과는 다르다.
저도 남편과의 박해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 이야기만 했다. 도무지 박해가 끝날 것 같지 않다가 사울이 회심을 하니 박해가 끝난 것 처럼, 남편이 가니 과부가 되었지만 내 편의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가 생겨서 그 수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한쪽으로는 고난이지만 교회가 생겼다. 그리하여 제 옆에 교회가 생겼다.
그래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교회가 평안이 서 갔다. 평안하니 든든히 서 갔다. 그때는 핍박의 시대였다. 근데 칼리굴라 황제의 우상숭배 때문에 잠시 폭풍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주님의 평안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신다. 사건을 계속 주셔서 균형 잡힌 평안을 주게 하신다.
초4 아이의 기도제목 - 엄마아빠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초4 아이가 기도제목 올린다는 것 자체가 이 아이가 평안치 못하지만 이것을 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성장하는 비결이고 이 아이가 성장하는 비결이다. 이 아이가 어떻게 자기가 불안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적용) 여러분의 평안은 무엇 때문인가? 십자가의 평안인가 육체의 평안인가? 가장 많이 추구하는 육체의 평안은 무엇인가?
나눔) 늙은 것 같은 마음, 시험준비, 가족과의 관계, 교통사고, 내가 하려는 마음, 관계를 내가 컨트롤 하려는 마음
3.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31절
평안해야 든든히 서간다. 든든히 서간다는 것은 집을 강하게 세운다는 것이다. 교회가 집을 잘 세우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말씀을 안다. 성경박사 율법박사가 되어 전통 위에 세우니 사람 죽이는 율법이 될 수 있다. 나를 살리는 회개처럼 나를 살리는 말씀이 되려면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그것이 말씀의 기초가 된다.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성경은 나를 죽이는 율법책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의 모든 결정의 기준이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늘 큐티하며 인도받고 목장에서 인도받고 오다보니 여러분들의 삶이 성장되었다. 근데 여러분들이 인생에서 실수할 때 보면 안 묻고 큐티도 자의적으로 하고 욕심을 낸다. 목장 초원에서 반대하면 이 교회가 이상하다고 한다. 누가 이상한가? 결혼할 때 사업할 때 그렇게 이상한 결정을 한다.
말씀으로 서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 교회 핵심가치이기에 더 말할 것도 없다. 기본기가 되어있으면 나 혼자 큐티 하고 결정해야 할 때 물어보는 것이다. 알아서 물어보는 것 아니라 물어보는 것 자체가 역사하시는 것이다. 물어봤더니 아는 사람 하나도 없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기가 있으면 무슨 일을 만나도 만사형통하리라가 맞는 것 같다. 코로나, 부부간의 갈등, 회사의 갈등이 있어도 다같이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으로 기도하고 적용하면 든든히 서갈 수 밖에 없다. 해석이 잘되야 평안해서 든든히 서갈 수 있다. 말씀에 기초를 두면 기도와 교제와 전도도 저절로 온다. 여기서도 십자가 가르침은 마찬가지다. 항상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가는 길이 든든히 서가는 것이다.
기도제목 ampndash 고등학교 딸이 장학금 받아 다 쓴 사건
우리가 평안해서 모두가 잘되어서 든든히 서가는 것이 아니다. 일이 터지면 말씀안에서 자기 죄를 보기에 평안히 오고 든든히 서갈 수 있는 것이다.
적용) 내가 든든히 서가는 이유는 말씀 때문인가 돈 때문인가? 여러분은 목장에서 말씀의 처방을 사모하며 묻는가 다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묻는가? 불신교제 등 묻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다 감춰놓는다. 공동체에서 다 틀렸다고 하는데, 공동체를 틀렸다고 한다. 공동체를 틀렸다고 하는가 공동체에서 틀렸다고 하는가?
4. 주를 경외함입니다.
31절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를 경외함이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여호와의 이름이 너무 거룩해서 이름을 부를 때 꾹 삼켰다. 우리도 너무 존경하면 덜덜 떨며 쳐다보지도 못하고 이름을 못 부른다. 그만큼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분이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이고 우리가 그 거룩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데 두려운 만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이 그 다음 뜻이다. 무서운 아버지 두려워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영광의 광채가 대단해서 모세가 수건을 썼다고 한다.
유대 갈릴리 사마리에에 뿌려진 씨가 내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를 경외했기 때문이다. 주님을 두려워하기에 성령의 위로는 성령이 후원하신다는 뜻이다. 성부 하나님의 감춰진 경륜은 성자 하나님이 자궁의 점 하나로 낮아지심부터 시작하고, 성령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이 성령의 후원이고 위로이다. 아버지가 무섭게 하면 어머니가 위로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죄인이라 어려서부터 무서운 사람이 없으면 다들 망둥이로 자라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는 잠언 1:7 은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 되신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난할 때는 부모 어려운 줄 저절로 알았다. 근데 지금은 핵가족이 되어 자녀우상시대를 살다 보니 집집마다 자녀가 왕노릇 한다. 자식이 넘 이뻐서 훈육할 수가 없다. 그러니 커갈수록 더욱 더 가르칠 수 없다. 우상이 되면 손을 못 댄다. 집집마다 자녀가 왕노릇 한다. 앞으로 수없이 문제가 야기될 예정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매 맞으면 삐뚤어지기도 하지만 무서운 사람이 있는 걸 알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잠언에 자녀를 때리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인권위원회에서 체벌은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 어려서부터 무서운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 인권의 시대가 얼마나 무서운 시대인 줄 알아야 한다.
예전에는 같이 살아야 하니 어쩔 수없이 싫어도 다 봐야 했다. 지금은 친척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나지도 않다. 고난도 어려서 당해야 금 주고도 못사는 것이 되는데, 나이가 들어 고난이 오면 힘이 든다. 그러니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하나이다. 외모로 사람을 봐서 그렇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나에게 잘해주면 마음 주고 하다보니 배신당해서 우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피차 복종하게 되는 것이 에베소서 말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존경해야 부부 회사간에서 피차 복종하게 되는데, 상대방과 상관없이 자기 환경이 사역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근데 똑똑한 사람은 계속 니가 뭔데 하는 것이다. 피차 복종을 모른다. 그리고 본인이 하나님자리에 있기에 말씀에 대한 복종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렵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살려고 하는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근데 하나님이 두렵기만 한 것은 기복신앙이라고 할 수도 있다.이것은 자기 유익을 구하기에 두려워서 교회가고 그러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사랑하기에 그러는 것이다.
요일 4:18
근데 이것과는 다르다. 그 두려움은 이기적인 두려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제자들이 사울을 두려워했다. 유대인은 너무나 미운 나머지 죽이려고 했다. 사람을 두려워하니 형벌이 따르는 것이다.
요일 4:20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에 이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신다. 그런 평안이 없었다면 사울이 어떻게 13년간 다소에 있을 수 있었겠는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 온다. 이걸 알지 못한다.
근데 두려워하고 미워하면 지옥 형벌아닌가.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면, 순종해야하면 두려워 할일도 많다. 그래서 성령의 위로로 진행한다고 한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면 성령의 위로, 성령의 후원가운데 성령의 권면과 성령의 격려가 말씀으로 오기에 내가 힘들때마다 위로해주신다. 중보자가 되어주신다. 그래서 건강한 두려움과 권면과 격려 가운데 성장은 부수적으로 주시는 열매처럼 왔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는데 내 옆에서 복음으로 제자를 낳게 되고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하니 내가 열매를 자꾸 보게 되어 집에서 피차 복종하는 것이 쉬워진다. 열매를 보게 되니 나를 신뢰해 주는 것 같으니 그렇다.
적용) 주를 경외해서 피차 복종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남편 아내 자녀 부모 회사상사 등등
나눔) 가족 관계에서 어른들과의 질서, 부모님께 복종, 회사 상사, 엄마와 관계 회복 해야하는 이 상황, 지금 피하는 상황을 인식하는 과정..
성령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이 시작 될 수 없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성령의 성장이 임재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주님이 값 주고 사신 공동체이기에 성령의 인도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다. 그러면 분란이 오고 든든히 서지 못하고 평안이 없고 주님을 경외하지 않으니 성령의 위로와 진행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부흥이 되겠는가?
가슴 아픈 기도제목 나눔 ampndash 서진이네
말씀맺음
성령의 성장은 잊혀진 것 처럼 버려진 것 처럼 죽은 자 처럼 루저의 경험을 해야 한다. 외로움은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평안함이 있다. 말씀에 근거하여 강하게 집을 잘 지어야 한다. 주를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러면 성령이 후원하셔서 위로로 진행케 해 주시는 줄 믿는다..
[기도제목]
*이지현
- 익숙해진 환경이 아니라 말씀으로 해석하며 가는 평안을 부어주시길
- 듣기 싫은 소리로 가족들 모임 회피하지 않고 함께 모이는 사모함이 생기도록
- 갑작스런 외삼촌 소천으로 힘들 가족에게 말씀의 해석과 평안을 주시길
- 영육간에 부흥하고 성장함을 주실 것을 사모하고 기대하며 기도하도록.
*백서윤
- 근심 걱정이 많은 성격인데 이게 얼마나 나 본인을 괴롭히고 힘들게 만드는지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껴지길
- 말씀 보고 내 죄 보기
- 가족 구원
*안무옥
- 오랜만에 재택을 마치고 출근을 하게 되는데 자리를 지키는 역할 및 질서 순종에 성령의 위로와 지혜 주시기를
- 자격증 시험공부에 필요한 시간/에너지 안배 지혜롭게 할 수 있기를
- 생활예배 우선순위 잘 지키기를
*김교희
- 관계가 깨질까봐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께 잘 내어놓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최선을 인정하고 신뢰하도록
- 엄마를 인정하고 부모의 질서에 순종할 수 있도록
- 동생의 구원, 갈급한 마음이 생겨 복음이 들리도록
- 교통사고로 인한 통증 잘 낫도록
-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말씀으로 해석받는 삶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