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20.05.03
본문 : 사도행전 9:31
제목 : 성령의 성장
온라인 11번째 예배. 같은 본문으로 2번 설교했는데 아직도 못한 것이 있어서 특별히 31절에 수가 더 많아진다고 했던 구절이 드물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수가 더 많아지라고 성장하시라고 31절만 설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육간의 성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1.루저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버림받은 것처럼 죽은자차럼 잊혀진 것처럼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로 시작한다. 앞에 얘기는 예수믿는 사울을 집요하게 죽이고자 하니까 형제들이 다소로 보냈다. 그러면 사울을 예수믿는 것 때문에 죽이고자 하니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박해가 와야하는데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다는 내용이 뜬금없이 나왔다. 그러나 가 문법적으로 맞아보이는데 그리하여 라고 나왔다. 자고로 핍박받아 믿음이 병들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모든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울도 베드로도 빌립도 주인공이 아니다. 성령받은 사도들도 옥에 갇혔다가 풀린적이 있는데 그때도 6장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제사장들도 복종했다고 한다.
그렇게 박해가 일어나면 하나님은 가장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7장에 스데반이 당당한 구속사의 설교때문에 돌에 맞아 죽고 교회를 잔멸하니까 3-4천명이었던 교인들이 2천명정도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흩어졌던 사람들이 도리어 곳곳에가서 복음을 전해 교회들이 세워졌고, 오늘 31절에는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든든하게 수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성령의 문법은 그리하여 가 맞다. 사울이 다소에 있어도 갈릴리와 사마리아교회는 성장했다는 것이다. 사울을 보면 회심한 후에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사울은 너무 죄를 미리 많이 지었기 때문에 오직 주의 사명밖에 없었다. 회심하고 즉시 교제권이 바뀌었다. 회심이 확실하니까 유대인들과는 영적인 교류를 할수없었다.
나눔) 25년간의 절친이 있는데 우정이 깨져서 우리들 교회에 와서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믿고 나서도 세상친구와 친하면 성령의 성장을 할수 없다. 교제권이 완전히 바뀔수 밖에 없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성장하려면 친구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한다. 믿는데도 세상친구가 너무 좋고 교회사람들은 부담이되면 회심이 되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죽이려던 예수가 도리어 그리스도라고 외치니 그가 너무 변했기 때문에 같은 유대인이었던 사울을 죽이고자하는 것이다. 사울은 3년정도 피해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때 형제들이 보내준 곳이 30절의 다소이다. 사울의 고향이다. 결정적일때 살려주는 사람은 사울의 제자들이다. 주의 일을 할때 결정적으로 살려주는 사람은 내가 낳은사람이다. 주의 일에 외롭지 않으려면 나때문에 변한 사람이 있어야한다. 내가 낳은 영적자녀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그 당시에 다소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주는 정치 경제 문화의 도시였다. 다소출신이라고 하면 다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다. 사울을 어디로 보내도 다 죽이려고 하니까 가장 안전하다고 할 곳이 고향이고 그쪽은 미국시민권자처럼 증이 있어야 했던 것같다. 잠깐이 아니고 14년.너무나 드라마틱하게 회심해서 복음을 전파할때마다 계속 살해의 위험을 느끼는 가운데 드디어 아라비아 3년 다녀왔다가 예루살렘에 2주 있었다가 다시 다소로 보내진다. 너는 믿는 것 좀 드러내지말고 잊혀진자처럼, 죽어진자처럼, 그렇게 살으라는 메세지가 하나님께서 왔다.
왜그럴까 생각해보니 사울이 특별해도 너무 특별하다. 주님을 만났으니 설득력이 대단하다. 가만히 있어도 입만 열면 드러나는 것이다. 사울은 그렇게 잠시 사라진다. 잠시가 13년이다. 그 전에 아라비아까지 하면 16년이다. 그래도 똑똑하게 복음을 전할수 있었지만 다들 사울을 기피했다. 갈라디아서1장에 보면 아라비아에서 와서 사도들을 만나서 사귀고자 했지만 베드로와 야곱만 만나줬다고 한다.
사울은 초대교회 수가 더 많아진 성장이나 부흥과 상관없이 버려진 사람으로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잊혀진 채로 있었다. 가말리엘의 제자가 똑똑한 사울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당시 교회의 수가 많아졌지만 바울의 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사울은 대제사장 신임을 한몸에 받고 기독교인 다 잡아죽이는 공문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회심을 했다. 회심을 하고 보니 세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구속하신 주만 있고 세상과 나는 간곳이 없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울이 여기저기서 박해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 유대인중에 유대인이고 다소시출신, 가말리엘의 제자가 회심을 했는데 13년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보내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서 쓰임받을지 전혀 모른채로 하나님과 독대를 하면서 외로운 시기를 사울로서는 앞으로의 성령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시간으로 보냈다고 한다.
16년동안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 사울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13년동안 실패자같은 인생이 필요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실패자의 인생이 필요했다. 그렇게 잘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게 아니다. 아무도 인정을 안하면 그걸 인정해야한다. 항상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내가 주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데 누가 말리는거야 하면서 자기 열심을 내면 안된다. 16년을 사울이 기다린게 아니라 사울을 끝까지 기다리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또 사울이 16년간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기 때문에 주옥같은 서신서가 격조있게 써진 것이다. 사울이 다소로 간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 잊혀진 것처럼, 버려진 것처럼 다소의 시간을 보낸적이 있습니까?
2.평안한 것입니다.
평안과 성장은 분리될수 없다. 고난중에서 해석이 되어야 해결이 되어 평안을 경험하며 성장이 된다. 고난 자체가 부흥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분쟁이 있으면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다 쓰기 때문에 전도할 힘이 없다. 박해하던 사울이 회개하게 됨으로 사울의 입술은 위협과 살기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변화가 평안을 이루는 씨가 된다. 십자가 없는 평안과 행복은 다 일시적인 것이다. 이땅의 평안도 우리가정도 내 마음의 평화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가능하다.
이때 갑자기 왜 육적인 평안이 찾아왔냐면 로마에 칼리굴라 황제가 자기의 초상을 예루살렘 지성소에 넣고 자기를 우상숭배하라고 하니 유대인들이 번지수를 바꿨다. 지성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없어진다고 하니 갈릴리 교회, 사마리아 교회의 핍박이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잠시 숨고르기 하면서 안식하면 되는데 다들 이 긴병의 간병이 끝났구나. 여행이나 갔다오지. 아이가 붙었으니 목자도 내려놔야지. 하는 것은 흘려 떠내려가는 성도들이 그러는 것이다. 나에게 오는 박해와 부흥, 성장은 모두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순종해야한다.
예수 믿으면서도 평안이 없는 것은 헛것이다. 인간의 한계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수록 가까워 지는 것이다. 내가 힘들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 평안이 없다. 힘들어도 십자가에 달려있으니까 평안이 오는 것이다.
사울이 무섭다고 교회에 나오려는 그를 교회가 두려워했다. 이것은 이땅의 두려움이다. 그때에 바나바가 사울을 소개시켜줬고 그런 바나바때문에 교회가 평안해졌다. 든든히 서 갔다는 것이다.
> 그러니 평안이 있고 없고는 어떤 차이일까요?
> 돈이 많고 스펙이 좋고 아이들도 잘나가고 그러면 그 집이 평안할까요? 모든걸 갖추고 있으면 평안합니까? 여러분의 집의 분위기는?
우리들 교회 집사님들은 그런 스펙이 없고 돈도 없고 중독도 다 안끊어지고 그런데 우리들 교회집사님들은 웃음이 넘친다. 우리 집사님들은 왜 그렇게 웃음이 넘쳐요?
우리 집사님들의 답은 우리는 죄인이잖아요. 죄인이 무슨말을 하겠어요. 무슨말을 해도 맞아요 제가 죄인이에요. 제가 잘못했네요. 죄인들의 집단은 항상 다들 자기 죄라고 하니 평안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아내가 나때문이라고 회개를 한다. 영육간의 자기죄를 보니까 그렇다. 내가 영육으로 깨어있지 못하니까 남편이 수고한다. 영적으로 나를 깨우는 수고를 하니 감사하고 육적으로도 살림도 잘못하니 밖으로 돌게했다면서 자기죄를 보니까 온집안의 평안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병원은 아픈 환자들이 와야하는게 정상이다. 아픈 사람들이 올수록 그 병원은 평판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들을 보고 의사가 당신 왜이렇게 심하게 아프냐고 내가 당신같이 아픈 환자는 볼수없다. 당신 더럽다고 나가라고 하면 그 병원이 제정신입니까?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그렇게 선한 사람을 찾으니 '이 교회는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사람이 모여있는 거야' 라고 말한다. 그런 분들에게 평안이 있을까?
*환경을 보는게 아니라 내 죄를 보는 것.
## 여러분의 평안은 무엇때문입니까? 십자가의 평안입니까? 육체의 평안입니까?
## 가장 많이 추구하는 육체의 평안은? 야동, 주식, 여자, 미모
3.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평안해야 든든히 서간다. 든든히 서간다는 것은 집을 단단하게 짓는 것이다. 교회가 집을 잘 짓는것은 반석 위에 말씀의 기초위에 세우는 것이다.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목사를 닮아서 여러분의 모든 결정의 기준이 말씀이 되어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말씀이 기준이 되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실수를 볼때보면 목장에서 안묻고 큐티도 자의적으로 하고 욕심대로 했을 때이다. 결혼할때 사업할때 학교갈때 그렇게 이상한 결정을 한다. 물어봤다는 것 그게 하나님이 점수를 주시는 것이다. 말씀으로 서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에 더 말할것도 없다. 기본기는 말씀보고 큐티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기가 되어있으면 무슨일을 만나도 만사형통하리라.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하고 기도하니 든든히 서 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씀에 기초를 두면 기도와 교제, 전도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누군가가 십자가를 길러 놔야한다. 목장 하나에서도 목자가 아니면 그냥 목원이라도 십자가의 길로 놓는 희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항상 좁은문 좁은길 나의 십자가 지고 가는길이 든든히 서가는 길이다.
## 내가 든든히 서가는 이유는 말씀때문입니까? 돈때문입니까?
## 목장에서 말씀의 처방을 사모하면 묻나요? 다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묻나요?
## 불신결혼이나 교제 등 묻고싶지 않은 것이 있나요?
4.주를 경외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를 경외함이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주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너무 존경하면 덜덜 떨면서 쳐다도 못보고 이름도 못부른다. 그만큼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두려운만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이 그다음 이차적인 뜻이다. 무서운 아버지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르다.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뿌려진 씨가 내적 외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주를 경외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아버지가 무섭게 하면 어머니가 위로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죄인이라 어려서부터 무서운 사람이 없으면 망둥이로 자라게 된다. 인간은 백프로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땅에서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은 자녀우상시대를 살다보니 집집마다 자녀가 왕노릇을 한다. 자식이 너무 이쁘고 귀해서 훈육을 할수가 없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할수가 없다. 우상이 되면 손을 못댄다. 잠언에 자녀를 초달하라는 때리라는 말이 있는데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근데 이게 요즘 인권운동에서 인권 운운하면서 체벌은 절대 안된다고 말한다. 어려서 무서운사람이 없는게 가장 무서운 것이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겉으로 보이는게 다가 아닌데 사람에게 잘하다가 배신을 당해서 지옥을 산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피차 복종하게 된다고 한다. (에베소서 5장21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그 자리가 자기의 사역지임을 알게된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피차 복종을 모른다. 본인이 하나님 자리에 있기때문에 말씀에 대한 복종이 뭔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두렵기만 한 것은 기복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건 자기의 유익을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4장 20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신다. 그런 평안이 없었다면 사울이 어떻게 13년간 다소에서 있었을까. 알지못하는 하나님의 세상을 알게되는 것이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 온다.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순종해야할 일도 많아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면 성령의 위로 라는 말은 성령의 격려가 말씀으로 오기때문에 내가 힘들때마다 중보자가 되어주신다. 건강한 두려움, 권면, 격려가 끊임없이 있으면서 성장은 부수적으로 주시는 열매가 된다는 것이다.
## 주를 경외해서 피차 복종해야할 사람은?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상사
성령받지 않으면 모든것은 시작도 되지 않는다. 앉으나 서나 성령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성령님이 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것이다. 교회가 성장하려고 해도 성령의 성장이 임재해 있어야한다. 교회는 주님이 값주고 사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는 진리의 성령님이 인도를 하는 것이다. 돈이 인도하고 스펙이 인도하는게 아니다. 나의 성장이 아니고 성령의 성장이 되어야 영원할 것이다.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
<오단이목장 기도제목>
아픈 서진이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서진이네 가정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길
단이
- 든든히 서가게하시는 이때를 게으름에 쓰지않고 준비의 때를 보낼 수 있도록
- 가족구원
- 목소리건강회복
미경
- 가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잘 분리 할 수 있도록
-내힘 잘 내려 놓을 수 있도록
-큐티 할 수 있도록
수연
- 팀원들과 함께 휴가를 받았는데 다들 아프지 않고 몸과 마음 건강 회복해서 만나길
-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올라올때 말씀 먼저 찾을수있길 (회사, 인간관계, 돈)
- 본가에 내려가는 적용하기
유빈
- 루저라는거 인정하기
- 생활 속에서 말씀찾기
하영
-큐티하고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기
-질서에 순종하도록
찬미
- 고민하지 말고 실행해볼 수 있도록
- 오전에 큐티하고 기도하기
-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날 수 있도록
지인
- 큐티 꾸준히 할 수있도록
- 생활속에서 기도하면서 갈 수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