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9:19~31
제목 : 성령의 위로
1.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신다.
인간의 힘으로 성령의 회심은 안된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구원때문이다. 말씀으로 해석해야 해결이 된다. 잘 먹고 잘 살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회심하면 적대시 했던 제자들과 회복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멀어진다.
적용 : 소수라도 택해야 하는 예수씨(제자)의 의미를 아는가?
2.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신다.
담대히 목숨걸고 전했다. 유대인들이 있는 회당에 갔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신성모독인 표현이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에 이런 사울의 태도가 회심 이후에 바뀌어서
동료들이 놀라고 당혹해했다.
사울이 믿는 하나님은 허수아비였고 잘되기 위해 자기를 믿는 사람이 사울이었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데 사울은 하늘의 언어를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원론이기에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란 말을 165번 사용했다. 구원때문에 안타까워야 길이 보이는데 사울은 법이 많았다.
적용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복수의 아들인가?
나는 겉으로 경건한가? 속으로 경건한가? 허세, 후까시는 몇 프로인가?
3.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성령이 위로하신다.
제자는 정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뜻인데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멸하려고 온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사울의 회심은 천지가 개벽할 만한 회심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 나약하다고 생각하고 멸하려하는 사람이 있다.
행동을 망령되이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면 세상은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생각하며 구별을 못한다.
사울은 강제적으로 전한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논리로 전했다.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울이 자기 간증을 통해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니 다들 당혹해했다.
말씀속에서 연단으로 분별 되어야지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
사울은 내가 전한 복음이 진짜라는 위로가 필요했다.
적용 : 예수님의 이름을 얼마나 부르는가?
복음과 간증을 설득력있게 전하는가? 감정적으로 전하는가?
4. 죽음의 고난이 오지만 성령의 위로가 임한다.
복음 전하는 사명과 고난 당하는 사명이 있다.
여러날은 충분한 시간을 의미한다. 며칠과 대조된다.
(갈라디아서 1:17) 아라비아는 지금은 요르단. 로마의 권력에서 벗어난 요새같은 지역이었다.
유대인을 피하려고 갔다. 하지만 그곳의 유대인들과 목적이 맞아서 사울을 죽이려고 한다.
에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한 빌립, 사울도 사도를 먼저 내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다.
성령의 회심을 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고난이다.
정오의 빛을 만나도 훈련이 필요하다.
세상과 하나님은 원수이기에 내가 확실히 회심하면 세상에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긴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죽이려고 지킨다. 이 때 도와주는 사람은 사울의 제자들이었다.
때마침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제자들이 사울을 성벽 위 창문을 통해서 광주리에 담아 달아내렸다.
(9: 25) 제자들이 달아내렸다 라고 하는 표현은 사울이 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돕는 사람들인 제자들이 강요해서 살았다. 사명자는 사명이 끝나야 데려가신다. 지키고 보호하신다.
적용 : 죽음의 고난에서 성령의 위로를 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누구를 위로하나? 위로 받나? 나는 성령의 위로를 받고 좋아하나? 돈, 남편등 세상의 위로를 받고 좋아하는가?
5. 중재자를 보내주셔서 위로한다.
제자들을 사귀고자 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기독교인들도 믿지 않았다.
사울같이 대단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이런일들도 지나간다. 바나바같은 최고의 중재자를 준비하신다. 도와줄 사람을 준비하신다.
바나바가 사울을 예루살렘 공동체에 들어가게 하려고 중재한다.
그래서 사울이 사도들에게 소개되고 대접받게 하신다.
바나바와 제자들의 애정 깊은 중재로 공동체의 도움을 받는다.
죽음을 무릅쓴 전도활동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신뢰를 얻는 지경까지 왔다.
성도들에게서 형제들로 호칭이 바뀌었다. 바울도 형제들의 도움과 조언이 필요하다.
바울이 형제들과 있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다소로 내려간 것은 큰 기회였다. 그리하여 흩어진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밖에 없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박해로 인해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교회가 세워진다.
그리고 특별히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간다고 한다. 박해가 심하면 교회가 평안해진다.
적용 : 나에게 바나바는 누구인가? 나는 바나바가 되어 준 적이 있는가?
죽음의 고난에서 중재자이신 성령의 위로가 함께하셔서 복음의 증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