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9
사도행전 9:19-31 성령의 위로
1.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십니다. (19절)
정오의 빛 보다 더 큰 빛으로 사울을 강타하니 성령의 회심으로 원수 같이 여겼던 제자들과 하나가 됩니다. 이사야 31장 2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신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구원 때문입니다. 바울의 성령 회심으로 적대시했던 제자들과 함께 하고 자기 편이 였던 유대인들과는 원수가 됩니다. 세상은 이를 분별하지 못하니 좁은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라도 우리는 예수 씨를 택해야 합니다. 세상은 인본주의로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Q. 여러분은 소수라도 택해야 하는 예수 씨 제자의 의미를 압니까?
2.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십니다. (19-20, 22절)
사울은 목숨 걸고 회당으로 나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담대히 전합니다.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배척하고 잔멸하려 했던 사울의 극변한 태도에 유대인들은 크게 놀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서신에서 165번 썼습니다. 이는 세상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만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원론입니다. 구원 때문에 안타까워해야 길이 보입니다.
Q.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입니까? 목수의 아들입니까? 겉으로 경건합니까? 속으로 경건합니까? 허세, 후카시는 몇 퍼센트 입니까?
3.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성령이 위로 하십니다. (21-22절)
사울은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동행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멸하는 자가 시기마다 나타납니다. 사울은 자신이 주의 이름을 부르던 자를 멸하던 자였기 때문에 받는 오해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자기 죄를 모르기에 억울한 것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22절 사울은 감정적이 아닌 객관적 논리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명합니다. 자기확신이 많고 성공을 위하여 못 할 짓 없었던 바울이 자기 간증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유대인들을 당혹(굴복)시킵니다. 우리가 말씀속에서 연단으로 분별 되어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Q. 여러분은 예수이름을 얼마나 부르십니까? 복음을 간증과 말씀으로 설득력 있게 전합니까? 감정적(신비주의적)로 전합니까?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면 꽃 길이 아닌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4. 죽음의 고난에서 성령의 위로가 임합니다. (23-25절)
여러 날은 바울이 다메섹을 떠나 아라비아로 가서 지낸 3여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 요세 같은 지역으로 로마의 감시에서 벗어난 작지만 강한 권력을 가진 나바티안 왕국) 아라비아에서의 사역을 전하지 않은 것은 10장에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 전도를 높여 주기 위한 것으로 이는 바울이 사도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먼저 올리는 것이며 성령 회심한 사람에게서 기다리는 것이 고난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사울을 죽이려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성문을 지키자 아라비아에 다녀온 후에 생긴 제자들이 사울을 성벽 위 들창문을 통해 큰 쓰레기 광주리에 담아 달아 내립니다. 천하의 사울이 광주리 타고 도망 간 것이 아니라 25절 제자들이 달아 내렸다고 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돕는 사람들의 강요로 복음 전해야 하는 사울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것입니다.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사명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해주실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죽음의 고난에서 성령의 위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받았다면 누구를 위로하십니까? 누구에게 위로 받으십니까? 성령의 위로를 받고 좋아합니까? 세상의 위로를 받고 좋아합니까?
5. 중재자를 보내주셔서 성령의 위로를 하십니다. (26-31절)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공동체에 속하고자 하지만 유대인들부터 기독교인까지 대 사울을 믿지 않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말씀 따라 믿는 사람의 고통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27절 위로의 아들 바나바가 사울을 중재합니다. 하나님은 회심한 직후에는 아나니야를 그리고 예루살렘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착하고 믿음 충만한 바나바를 예비해 주십니다. 그렇게 사도들에게 소개받아 베드로와 야고보가 맞아주며 베드로가 사울을 15일 동안 대접합니다. 바나바의 애정 깊은 중재로 인해 사울의 오해가 풀리고 공동체의 일원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새로운 도시에 입성할 때마다 유대인회당을 먼저 찾는 것이 유대인들의 격분을 사게 되어 논쟁을 펼쳐 이겼지만 결국 사울에게 반역자라는 프레임을 씌어 죽이려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죽음을 무릅 쓴 사울의 전도활동을 보고 신뢰하여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형제들은 사울에게 처한 위기와 입장을 정확히 알고 성 밖 다소로 보냅니다. 사울이 공동체에 함께 하고 싶었겠지만 다소 고향으로 내려간 것은 사도행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택이 됩니다. 선택하게 하신 것입니다. 31절 그리하여는 흩어진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밖에 없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박해로 인해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세워짐을 말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간다고 합니다. 바울 시대에 로마 카리큘라 황제의 황제 우상 작업 때문에 지성소에 황제 초상화를 갖다 놓는 우상을 하니 유대 종교자들이 기독교인들 죽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것에 매달리다 보니 박해를 잠시 멈추게 되었기에 든든하게 평안하게 교회가 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나님은 100% 옳으십니다.
Q. 여러분의 바나바는 누구입니까? 바나바가 되어준 적이 있습니까? 위로가 필요한 기도제목을 보면서 성령의 위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은우
쓰레기 광주리에 잘 타고 나의 자리로 내려오고 사명 잘 감당하도록
사람 말과 행동이 휘둘리지 않고 회사에서 내 모습만 보도록
운동하도록
나오라 할 때까지 내 사역지 회사에 잘 붙어 있도록
예선
손에 상처가 잘 없어지지 않는데 잘 가라 앉고 면역력이 회복되도록
큐티 기도회 잘 하도록
가족 구원
시간 잘 보내기(현재의 주제를 알고 적용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기)
보련
긍정적인 마음 가질 수 있도록
삶에 변화가 생길 수 있도록
현경
하나님이 지키신 인생인 것 알 수 있도록 말씀으로 표적 보여 주시도록
인스턴트 식품을 너무 많이 먹었는데 내 몸과 마음이 성전인 것 알고 영육관리 잘 하고 건강한 것을 먹도록(운동 꾸준히 하도록)
목장 보고서 잘 쓰도록
다음 목장때는 그 한사람이 목장으로 돌아오도록
질서 순종할 수 있도록(부모의 자리가 아니라 딸의 자리로 잘 돌아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