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녹취
* 설교 제목: 성령의 형제
* 설교 본문: 사도행전 9장 10-19절
* 설교자: 김양재 담임목사님
온라인 예배 8주차입니다. 코로나에 대해 느끼는 바가 각자 있을 텐데, 각자 믿음의 결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오의 빛을 통해 회심한 바울을 누가 환영해주겠습니까. 이 세상에 환영해줄 자가 없어 마음 붙일 곳이 없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예수 믿는 형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형제 하나만 있어도 천군만마 같은 힘을 얻습니다. 신천지가 이런 역할을 너무 잘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의 형제는 아닌 듯합니다.
1. 삶의 자리가 사역지임을 알려줍니다.
그 때에는 사흘동안 사울이 보지도 먹지도 못하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은혜는 깊으시다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인물은 아닌 것 같고 오순절에서 은혜받고 온 사람들이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인 연륜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할 때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특권입니다. 아담에게도 창조물의 이름을 짓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사랑을 받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 처음에 들어와서 다 거쳐야 하는 훈련은 성경공부, 큐티 훈련보다도 관계 훈련입니다. 아래자리에서 충성해보지 못한 사람은 윗자리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화장실 청소, 주차 봉사 등을 해보면 압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다른 성도들과 어울리며 성도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다메섹은 아나니아의 삶의 자리이자 사역지였던 겁니다. 아나니아는 자기 자리를 지켰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가 힘드니까 이혼하고 선교가겠다, 직장 때려치우고 신학해서 목회하겠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성도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나요? 묵묵히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일 수 있는 겁니다. 대 사도 바울을 형제의 사랑으로 공동체로 인도한 일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거기서 여러분의 사도 바울이 탄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여러분 목장에서 인도한 한 목원이 바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바울보다 상급이 작지 않을 겁니다.
제가 어찌 이렇게 설교할 수 있나 날마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은사를 쓰십니다. 나머지는 연약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한 가지 은사가 있기 때문에 강단에서만 봐야 합니다. 밖에서 보면 이런 제가 어찌 목사를 할 수 있나 싶을 겁니다. 제 곁에 오시면 시험 듭니다. 여러분 보기에 딱 무시 받기 좋을 행동들을 합니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무시합니다. 남자들은 모른다는 소리를 잘 안 하는데, 저는 입만 열면 모른다고 물어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어느 자매가 이혼하겠다고 그래서 와보라고 했습니다. 오자마자 어떤 자매가 간증했냐면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자매가 간증했습니다. 혼인신고도 안 하고 이혼해서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답니다. 결혼 안 했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인지 아닌지 아리송했답니다. 자기도 모르게 술과 폭력에 물들게 되었다고 눈물로 간증했습니다. 자기는 이혼했다고 자기 자리 지키고 절대 이혼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혼하겠다고 마음 먹고 온 자매가 그 간증을 소음으로만 들으니 간증자는 잘못 살아서 그렇고 자기는 그렇게 안 살 거니 이혼해도 된다고 그럽니다. 이혼을 앞두고 있으면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자기도 잘못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봉사해야 하니까 이혼해야 한다고 집에 가서 이사까지 나갔답니다. 남의 간증을 듣고 우와, 내 얘기구나. 나도 잘못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기적입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이혼 안 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택자여서 그렇습니다. 아내의 자리가 사역지인데 마음대로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신천지는 가정을 마구 버리고 떠나잖아요. 우리도 겉으로는 참다가 결국은 떠날 수 있습니다.
- 여러분은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고 기뻐하십니까? 생각하십니까 아니고 기뻐하십니까? 기뻐하는 만큼 상이 클 것입니다.
2. 서로 기도로 교통합니다.
직가는 거리 이름인데, 곧은 길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어떤 한 사람 찾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울의 이름을 밝히시며 출신지가 다소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다소는 소아시아 남동쪽에 있는 길리기아에 있는 시입니다. 경제, 지리, 문화적으로 1세기에 아주 영향력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사울이 다 갖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메섹은 5만이면 다소 시의 주민은 5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아나니아도 악명 높은 사울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살기가 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겸손히 기도하는 중에 있다고 하나님이 알려주십니다. 기도하는 중이라는 것은 일시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이 아니라 우리 큐티 기도회처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식음을 전폐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아나니아만 환상을 본 것이 아니고 같은 시각에 사울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신비주의 이런 게 아니고 정신이 깨있는 상태에서 가라고 명령하고 서로에게 환상을 보이신 것입니다. 환상 중에라는 말이 다른 사본에 있습니다.
아나니아의 적극적인 형제 사랑으로 사울을 인도해가시고 계십니다. 형제의 조건은 서로 기도로 교통해서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인 이상 다른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 형제자매의 기도 제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기도제목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래를 가수라고 언제나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기도가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겁니다. 기도의 제목이 혹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당한 일이 많으면 다른 사람의 기도제목에 몰입이 됩니다. 요즘 코로나를 위한 큐티 기도회를 하잖아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삼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들교회 뭐든 처음하는 것이 많습니다. 기도제목이 응답되는 것도 올리십니다. 딸이 혼자 미국에서 나이도 어린데 16차 항암을 하는 중에 엄마가 입국이 안 되서 미국을 못 가는 분이 계십니다. 여전히 신천지 교육생과 사귀는 아들에 대한 기도제목을 올리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 판국에도 신천지는 여전히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단 식구들 가진 분들이 기도제목을 쫙 올립니다. 여호와의 증인, 구원파, 신천지, 다락방, 하나님의교회 등등등 너무나 안타깝게 기도제목을 올리신 분도 계십니다. 기도제목을 회개하는 기도제목으로 올리세요. 그 사건 때문에 내가 무엇을 회개하는지 말하면 빨리 응답하실 것 같습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피해보상금이 2천만원에서 6백만원으로 감해지는 응답도 받으셨답니다. 응답이 없는 것도 응답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응답하십니다.
- 누군가의 기도제목이 나를 향한 명령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3.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해줍니다.
강조하는 것 들었나요? 다시 보게 하는 것입니다. 형제는 어두움 가운데 있다가 눈이 떠진 그에게 다시 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양육을 잘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사울은 사흘 간의 어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회심했다고 복음을 나가 전해보세요. 아마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영안이 가리워서 진정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있어야 죄악의 비늘이 벗겨져 영의 눈이 떠질 것입니다.
먼저 된 그리스도인들이 나중된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기르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얼마나 노심초사 아기를 돌보듯이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돌봐야 합니다. 아기의 공로는 하나도 없죠. 목원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한 번 잘못하면 다 엎어집니다. 그런 양육을 오랫동안 우리가 해야 합니다. 초신자들이 금세 교회의 일원이 되지는 못합니다. 정확하게 자기가 믿어야 할 것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복음만 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도 안내해야 합니다. 성령의 형제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아기는 혼자 못 자랍니다. 도와야해요.
결국 가정의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너무 힘들어서 이혼을 했는데, 딸에게 양육자가 엄마 한 사람인 것이 안 좋다고 말해줍니다. 돈 못 벌고 폭력 남편이어도 아이에게 그런 아빠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회개했다는 분이 있습니다. 엄마가 목사까지 되었어도 성령의 형제의 해석을 받기 전까지는 해석을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처가 다 있습니다. 다들 몸이 기억하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형제 공동체는 위력이 있습니다. 건강해지면 솔직한 나눔들을 합니다. 이런 나눔들을 못하는 게 정말 힘든 겁니다. 암만 말해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가정, 회사, 인간 관계 중에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곳은 어디입니까?
4. 사명 찾기 위해서 편견이 없게 해줍니다.
(13절) 예를 들어서 강도, 파렴치범인 이 사람에게 가라고 하시냐고 불만을 표시하면 그 사람에게 가라고 그이는 내 사역을 담당하고 고난 받을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신약 전체에서 성도라는 단어는 60번이나 쓰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고 그들을 결박하는 권한을 받은 자라고 아나니아가 말합니다. 사울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에게 그의 악행이 널리 퍼져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면 오늘날의 사도 바울은 없었겠죠. 지난주 4절에서 6절은 하나님이 사울을 찾아가시는 장면입니다. 몇 마디 안 나옵니다. 10절에서 16절까지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와 대화하는 장면은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를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죄인보다 의인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 같은 사람은 죄가 없으니까 더 여러 번 설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편견을 가지고 물어본 것이 아니고 팩트를 가지고 물어봅니다. 늘 이렇게 묻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게 아니라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형제를 통해 답하십니다. 형제가 언제나 올바른 길로 가르쳐준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은 같기 때문에 형제들의 답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에게 우선 가라고 하신 하나님은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밝히십니다. 사도 바울이 많은 왕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서도 생명 바칠 각오로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오니까 동족에게 말씀 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죠. 무서운 사람들 가운데 배신자로 찍혀서도 고향 사람들의 구원을 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강퍅하고 나약해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실 수 있습니다.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는 데 가장 악한 사울을 모델로 세우십니다. 바울은 영의 눈이 떠져 사명을 발견하고 난 뒤에는 그의 모든 것이 사명을 위해 쓰일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 왕,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회심을 하면 누구에게나 사명을 주십니다. 한 가지는 꼭 주십니다.
(16절) 사울은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 앞으로 큰 핍박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의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핍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겪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큐티가 핵심입니다. 말씀이 가라는 곳에 가고 말씀이 멈추라고 할 때 멈추는 것이 큐티 아닐까요. 큐티하면서 수없는 적용질문을 드리죠. 수도 없는 적용질문 중에 하나만 적용해도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서 형제라는 호칭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으로 초청하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형제가 적용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게 됩니다.
(18절)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시력이 회복되자마자 세례를 받았습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단호히 결단하는 사울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사명을 위해 세례를 받은 겁니다. (19절)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기 육체도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건강해서 1,2,3차 전도 여행을 다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밥도 먹어주고 도와주고 이런 것이 얼마나 성령의 큰 공동체인지 모릅니다. 성령의 회심이 있는 사람은 성령의 공동체에서 음식을 절제하는 사람입니다.
- 성령의 형제가 못 되는 편견은 무엇인가요? 남녀차별, 지역감정 외의 편견은 무엇이 있습니까? 성령의 회심이 있으면 이 모든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2. 나눔
* 목자
-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고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다. 아나니아는 대단한 사역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바울은 이런 아나니아에게 섬김받게 하시고 형제의 사랑을 받게 하셨다. 그 누가 다메섹을 삶의 사역지라고 여길 수 있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삶의 자리는 장녀의 자리이다. 믿지 않는 가족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아프고 애통하다. 동시에 가족 모두 하나님을 믿는 다른 지체들의 가정을 보면 그저 부럽고 흐뭇하다. 난 육적인 눈으로 본 가족과 집은 기뻐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본 가정이라는 사역지, 장녀의 자리는 기뻐하지 않는다. 이런 내게 아나니아와 같은 목장 식구들이 매주 가족고난을 함께 나눠주니 잠시라도 내 먼 눈에서 해방됨을 느끼고, 그들과 함께 걸어나갈 수 있는 힘과 소망을 얻는다. 아나니아같은 목장 식구들의 나눔과 섬김이 없었다면 난 내 삶의 자리를 슬퍼하고 비난하기만 했을 것 같다. -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가정, 회사, 인간관계 중)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형제인 아나니아를 통해 흑암에서 해방되었다. 육적, 영적으로 새롭게 눈으르 뜨게 되었다. 하나님을 몰랐던 27년은 영안이 가리워져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중 대표였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삶에 대한 회의감과 자살시도뿐이였다. 주님은 이런 내게 남자친구를 성령의 형제로 보내셔서 우리들교회로 인도해주셨고 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born agian 되었다. 상처와 사연으로 물들어있던 가정이 영의 눈으로 새롭게 보이니 상처에서 분리, 사연에서 객관화되었고 지금은 상처많은 우리 가족들을 주님 때문에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아야만 사랑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내면을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되니 낮은 자존감과 쓴뿌리, 사연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관계에서도 철벽을 치며 흠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 덕분에 완전하지 않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성령의 형제들이 있는 우리들공동체에 왔을 뿐인데 가정, 회사, 관계 등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영의 눈으로 보이고 회복되었다. 아직 덜 뜬 영의 눈이 많지만 성령의 형제들과 함께 붙어만 있으면 말씀으로 빛을 비춰주시고, 성령의 형제들로 인해 눈이 떠지게 될 줄 믿는다. 내 더러움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나를 우리들교회 공동체로 인도해준 성령의 형제 남자친구, 나를 길러주고 양육해준 성령의 형제 지체들께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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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목자: 언니 나눔을 보면 진짜 너무 너무 제 이야기가 같아서 공감이 200% 돼요...ㅠㅠ 특히 철벽 지면서 흠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던 과거가 너무너무 똑같아요... 언니 나눔에서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신 아나니아의 역할을 해준 지체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것 같아서, 나도 과연 그만한 감사와 사랑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당ㅠㅠ 반성반성...
* 부목자
1. 여러분은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고 기뻐하십니까?
이번 주는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는 사실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온라인 개학으로 학교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나눔에서 나눴듯이 초등학교 1, 2학년은 EBS TV만 있어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고 그리고 교육부가 학교를 통해 모든 가정으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학습 꾸러미를 제작해서 우편 발송하겠다고 기사가 나가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4월 9일 수요일에는 관련 공문이 내려오기로 되어있었습니다.
4월 8일 타지역 선생님이 커뮤니티에 올려주신 공문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교육부에서 내려주겠다는 꾸러미는 존재하지 않으며, EBS TV 관련 자료는 EBS 공지사항에 4월 10일에 탑재될 테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4월 9일 교육부에서 약속했던 공문은 오지 않았고, 저를 포함한 전국 1, 2학년 선생님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4월 10일 아침,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문이 아니라 업무 메일로 받은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관련 자료를 목요일 밤부터 제작중이며, 주말까지 열심히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였습니다. 4월 10일에는 EBS TV 관련 자료조차 오지 않는다는 비공식적인 소문이 돌았고 결국 자료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지금 필요한 것은 EBS 강의 내용 컨텐츠&EBS 강의 이외 학습 자료들) 온라인 개학이 열흘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출결 방법부터 안내문 하나하나까지 전부 다 학교의 실정에 맞추어 결정, 자료 제작 및 수정하고 배포 전 과정을 분초를 다투어 실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4월 10일 금요일에는 확진자가 줄어드니 4월 말부터 온라인 개학과 등교 개학을 병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까지 접했기에 모든 상황을 열어두고 수십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나니아는 다메섹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복음을 듣고 연륜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자리가 사역지임을 몸소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대혼란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신 데에 이유가 있고 이 와중에 제가 또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휴직자가 위너야, 대학원 준비를 작년에 해서 휴직했으면 어땠을까, 교과 전담이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사촌동생 전담인데 엄청 부럽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내일부터는 지난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풍 같은 한 주를 보내게 될 텐데, 너무 분개하지 않고 주어진 일들을 잘 소화해내기를 소망합니다.
2. 누군가의 기도제목이 나를 향한 명령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몇 년간의 큐티책을 보관하다 보니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가 한 권씩 스캔해서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스캔을 하면서 몇 년 전 내 기도제목과 지체들의 기도제목 등을 꼼꼼하게 써두었던 기록들을 발견했습니다. 한때는 함께 기도해주는 지체가 되고 싶다는 진심을 담아 열심히 적고 시간을 정해두고 성실하게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마주치는 현실이 너무 버겁다는 핑계로 기도제목을 듣고도 잘 기억하지도 기도하지도 못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난주 큐티 적용(일주일에 두 번 30분 큐티 기도회 참석하기)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내 삶이 우선이라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자신이 회개가 됩니다.
● 적용하기
1. 참담한 현실마저도 하나님이 허락하심을 인정하고 불평의 입을 다물며 주어진 만큼 업무를 잘 소화하기, 자기 열심으로 가급적 야근하지 말고 업무 시간 내에 일 끝내기
2. 일주일에 2번 30분 큐티 기도회 참석하기
-> 코멘트
* 목자:울 지혜..나눔을 꼼꼼히 읽어주고 공감해주니 언니는 그저 목장에서 모든 위로를 받는다..오프라인 목장이 너무 그립지만, 가끔은 카톡방에서 절제된 언어로 나눔을 하고 들으니까 더 깊이 묵상되는 느낌이 들어..그동안의 목장에서 내 모습이 반성되기도해ㅠㅠ 진심으로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지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