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형제
사도행전 9:10-19
2020.4.12
정오의 빛을 통해 성령의 회심을 한 바울을 여러분들 누가 환영해주겠습니까? 유대인에게는 배신자요, 기독교인에게는 박해자이기 때문에 회심을 했지만 이 세상에 환영해줄 자가 없습니다. 이럴 때 같은 마음으로 알아주는 예수 믿는 형제가 필요합니다. 그런 형제 한 사람만 있어도 천군만마같은 힘이 생깁니다. 우리는 당장 내 마음이 편하고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최고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형제를 묵상해 봅니다.
1. 삶의 자리가 사역지임을 알려줍니다.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 때에는 언젠가요 사울이 사흘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 못하며 기도할 때 입니다. 아나니아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하는 의미입니다. 누가는 이 본문의 아나니아를 제자 즉 그리스도인으로 소개를 하지만 그는 핍박을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온 인물을 아닌 것 같습니다. 오순절 때 은혜 받고 온 사람들이 다메섹에 가서 복음을 전해줘서 그곳에서 복음으로 받아들여 기독교인이 되었던 그래서 연륜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이야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이렇게 명하지 않으시고 제자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특권입니다. 사도 바울이지만 이렇게 이름 한번 나오고 들어간 아나니아에게 섬김을 받게 하시고, 형제의 사랑을 받게 하십니다. 사람에게 배우고 질서에 훈련 받게 하시는 것이 리더십 교육입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들어와서 다 마쳐야 하는 훈련은 성경 공부도 큐티 훈련도 훈려이지만 관계 훈련이 목적입니다. 아랫자리에서 충성하지 않은 사람은 윗자리에 가서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다른 성도들과 어울리며 성도들의 삶을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메섹은 아나니아의 삶의 자리이며 사역지 였습니다. 아나니아는 세계 선교 나가서 대단한 사람이 되어 바울을 안수를 준 것이 아니고 그냥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우리는 이제 삶의 자리가 힘들어서 자꾸 이혼하고 선교 가겠다고 합니다. 직장 때려치고 신학해서 목회한다고 합니다. 바울처럼 맡겨진 선교지가 먼나라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삶의 자리이고 사역지 일 수 있습니다. 그런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의 자리 일 수 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장의 사람을 목원을 하나 데리고 오고 누구를 데려오고 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거기서 여러분의 사도 바울이 탄생하지 않는 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목장에서 한 사람 인도한 그 사람이 사도바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바울보다 상급이 작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고 기뻐하십니까?
2. 서로 기도로 교통합니다.
|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유다의 집에서다소사람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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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가는 거리 이름인데 곧은 길을 의미합니다. 주는 아나니아에게 어떤 한 사람을 찾아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는 현재 직가에 유다의 집에 머무르고 있고 사울의 이름을 밝히면서 그 출신지가 다소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소는 소아시아의 남동쪽에 위치하는 길리기아의 수도로 약 50만의 인구가 거주했고, 경제적, 지리적, 문화적 여러가지 점으로 1세기에 매우 영향력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이 그 모든걸 갖춘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크게 박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아나니아 도 그를 이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던 과거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겸손히 그가 기도하는 중에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중이라는 것은 이제 일시적이고 그냥 형식적인 모습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지금 식음을 전폐하면서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진행형 단어입니다. 또 하나 아나니아만 주님이 주신 환상을 본것이 아니라 사울도 역시 같은 시기에 아나니아와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서로 환상 가운데 보았습니다. 이것은 정신이 어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가라고 명령 하시고, 서로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적극적 순종의 신앙을 가진 아나니아의 형제 사랑을 통해서 지금 극적으로 회심한 사울이 교화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지도록 지금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형제의 조건은 서로 기도로 교통하여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인 이상 다른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절대로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의 기도제목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제목이 혹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를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적용) 누군가의 기도 제목이 나를 향한 명령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3.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해줍니다.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나라,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18절에도 다시 보게 된지라
형제는 어둠 가운 데 있다가 눈이 떠진 그에게 다시 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영의 눈을 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영적인 소경이라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한번 회심을 했다고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전하는 복음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안이 가리워져서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다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성령의 회심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해야만 그들의 마음이 녹아지고 눈을 덮고 있는 죄악의 비늘이 다 벗겨져 영의 눈이 떠집니다. 먼저 된 자들이 나중된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고 의무입니다. 초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로 작정해도 금새 교회 일원으로 여기지 못합니다. 또 정확하게 자기들이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어떻게 성장해야 할 지를 도와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형제의 돌봄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힘들어져도 가정의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성령의 형제가 해석을 해주기 전에는 성령의 눈으로 다시 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적용)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가정/회사/인간관계 중에서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4. 사명을 찾기 위해서 편견이 없게 해줍니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성도란 표현이 처음 쓰였습니다. 사도행전에 4번 쓰였고, 바울서신에 39번 쓰여서 신약전체에서 60번 정도 쓰이고 있는데, 성도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무리들 이잖아요.
그리고 이제 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구별된 주의 성도들이라고 강조를 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주의 성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주의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고 그들을 결박한 고난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당시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였고 악행이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핍박자 사울에게 가라고 명하는 것을 아나니아는 이해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에게도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의견을 고집했다면 오늘날 사도바울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있는 모습 그대로 편견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사울이..그래서 이제 말씀에 순종하여서 이제 그 얘기를 합니다. 오늘 10-16절 까지 주님이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와 대화하는 장면은 바울의 장면보다 길게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 아나니아를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인보다 의인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편견을 가지고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팩트를 가지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형제를 통해 답하십니다. 그래서 목장에서 물어보고 형제를 통해 답합니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위한 답이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계속을 생각을 합니다. 공동체에서 성령의 형제는 계속 띵크를 합니다.
이렇듯 아나니아를 향해 가라고 명하신 것은 그와 동시에 사울을 향한 당신의 뜻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가장 악한 사울을 이렇게 모델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다시 보게됨으로 영의 눈이 떠져서 사명을 발견하고 나서 그의 모든 것이 사명으로 쓰여질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배경 스펙 지식 살기 등등까지 주님의 그릇이되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일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성령의 회심을 했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사명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회심이 되지 않았기에 사명을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16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 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사울은 이제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주님과 교회를
그 자신이 주님과 교회를 위해 많은 핍박과 고난을 겪을 것인데, 정오에 빛으로 찾아오셨는데, 그런데 예수의 이름으로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은 이제 자기가 자발적으로 고난을 겪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자발적으로 겪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다 싫습니다. 정오의 빛을 경험한 사람은 말씀을 보며 그래도 순종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나는 싫은데 말씀이 하라고 하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나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고난을 택하는 적용이 그것입니다. 수없는 적용 질문 중에 일주일에 한개만 적용하여도 이것은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하고 야동을 끊고 쇼핑을 끊으며 하는 것이 자발적으로 고난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당시 교회 안에서 형제라는 호칭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교제 속으로 초청함을 의미하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가 다 형제 인 것입니다.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의 시력에 회복되자 맞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체하지 아니하고 내가 이제 단호시 결단하는 사울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 세례의 정의를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되며 그의 부활과 연합된 의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세례받은 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과거의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고 그가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기 육체도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형제는 영육간의 강건을 위해 서로 돌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의 회심이 있는 사람은 성령의 공동체에서 음식을 조절하고 절제하고 먹을 것, 안 먹을 것을 이렇게 절제하는 사람이 진짜 회심 있는 사람이고 형제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용) 성령의 형제가 못되는 편견은 무엇이 있나요?
남녀 차별, 지역감정 그 외에도 있는 편견은 무엇입니까?
◎ 적용 & 기도 제목
이종은
1. 이번 주 목장을 위해 기도하는 한 주가 될 수 있도록
2. 허한 마음과 외로움을 인간관계에서 채우려 하지 않고, 말씀으로 채울 수 있기를
3. 저의 편견과 뿌리 깊은 세상 가치관이 말씀을 통해 부셔질 수 있기를
한혜민
1. 몸이 기억하는 상처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2. 글을 읽고 싶은데, 글이 잘 읽히지 않습니다.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3. 시험이 끝났지만 방종하지 말고, 준비하고 해야 할일들을 잘 계획해서 하도록. 혼자 있어서 외로울 때가 많은데 관계적, 정서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는 한주가 되도록.
4. 직접적 만남과, 중보기도를 통해 성령의 형제 역할을 감당하는 한 주가 되기를.
진 경
1. 이번 주 5일 동안 회사 일을 하기 전에 회사를 위해 짧게나마 기도하기
2. 목원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이번 주는 매일 중보기도 하기
3. 사람은 변하지 않아하는 불신이 있는데, 주님이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부숴주셔서하나님의 눈으로 나와 남을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