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령의 형제
본문 : 사도행전 9장 10-19절
김양재 목사님
온라인 8주차, 코로나로 느끼는 각자의 상태가 있을텐데 그건 믿음의 결론.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배신자, 기독교인에게는 핍박하는 박해자/ 회심을 했지만 이세상에 환영해줄 자가 없다. 같은 마음으로 알아주는 예수믿는 형제가 필요하다.
그런 형제 하나만 있어도 천군만마를 얻은것이다. 신천지가 이런일을 너무 잘해서 분별이 잘 안된다. 당장 내 마음이 편하고 지금 당장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면 다 뺏기는 것이다.
성령의 형제는,
1.삶의 자리가 사역지 임을 알려줍니다.
10절 : 그때는 사울이 4흘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기도할때. 아나니아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게 아니라 제자를 통해서 하시는 것.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게 특권이다. 대사도바울이지만 이렇게 이름한번 나오고 들어간 아나니아에게 섬김을 받게 하시고 형제의 사랑을 받게 하신다. 사람에게 배우고 질서에 훈련받게 하시는 것이 리더십 사명 교육이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 다 거쳐야하는 것은 관계훈련이 목적이다. 아랫자리에서 충성해보지 못하면 윗자리에 가서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주차봉사를 열심히 하다보면 훈련도 될것 이다.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통해서 바울의 눈을 뜨게하셨다. 아나니아는 세계 선교 나가서 바울에게 안수를 준 것이 아니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자리가 어려워서 이혼하고 직장 때려친다고 한다. 바울처럼 선교지가 먼 나라일수도 있다. 그건 바울 삶의 자리이고 사역지일 수 있다. 근데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재 삶의 자리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사역지다. 한 영혼을 살리라고 주신 환경이니 그 영혼을 위해 살아야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자리이다. 묵묵히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다. 아나니아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랬던 것이 최고의 신앙이다. 사도바울은 누구세요? 했는데 아나니아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대답했다. 대사도바울을 형제의 사랑으로 공동체에 이끌어낸일이 어떻게 작은 일인가. 바울보다 상급이 작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어느자매가 이혼을 하겠다고해서 한번만 우리교회에 오라고 했다. 그날 목장에서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자매가 간증을 하게되었다. 혼인신고도 안했기때문에 아무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했지만 혼인신고는 안했으니 이혼한 사실을 숨기며 거짓인생을 살게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술과 폭력에 물들어 살게되었다고 눈물로 간증을 했다. 그렇게 절대로 이혼하지말라는 간증을 했더니 이혼을 결심했던 자매가 그걸 듣고 사운드로만 들리니까 간증한 분은 애초에 잘못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않았고 이혼하고도 그렇게 살지 않을거다. 나는 이혼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회에서 맡은 직분이 많기 때문에 그걸 막는 남편과 이혼하는게 맞다고 대답했다. 자기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남의 간증을 듣고 이건 내 얘기구나. 내 죄구나 하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아내의 자리가 사역지인데 자기마음대로 사역지를 버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믿는 우리도 참는 흉내만 내다가 다 떠난다. 그건 성령의 형제가 없거나 형제의 소리를 못들어서 그렇다.
## 여러분은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고 기뻐하십니까? 상이 클것인데, 기뻐하는 만큼 클것
2.서로 기도로 교통합니다.
11-12절 : 직가는 거리 이름. 직선의 곧은 길.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어떤 한 사람을 찾아갈 것을 명령하셨다. 그는 지금 유다집에 머물러있고 사울이라 밝히며 다소 출신이라고 한다. 다소는 소아시아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길리기아의 수도, 50만의 인구, 경제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영향력이는 지역이었다. 굉장한 도시 출신,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으로 유명했기때문에 아나니아도 그를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위협과 살기등등했던 예전 모습과는 다르게 겸손하게 기도하는 중이라는 걸 듣게 되었다. 기도하는 중이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말한다. 또한 아나니아만 주님이 주신 환상을 본것이 아니라 사울 역시 같은 시기에 동일하게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본것이다. 환상중에라는 단어가 바티칸 사본에 있다.
주님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적극적인 순종의 신앙을 가진 아나니아의 형제사랑으로 극적으로 회심한 바울이 받아지도록 인도하고 계신것이다. 형제 공동체로 들어와야하기 때문이다.
형제의 조건은 서로 기도로 교통해서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다.다른 성도의 기도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된다. 적극적으로 기도응답이 되어야 하기때문에 언제나 주변 형제, 자매의 기도제목에 집중하고 관심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그 기도제목이 하나님이 나를 향한 기도제목은 아닌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요즘 코로나를 위한 큐티기도회를 하고있습니다.
기도제목을 올리고 거기 댓글을 달리면 고맙게만 생각했는데 이틀만에 응답이 되는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나만을 위해 기도하는게 아니라 남을 위한 기도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이 혼자 미국에서 16차 항암 중인데 출입국이 안되어 딸 혼자 항암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신천지 교육생과 사귀는 아들이 있다고 합니다. 여자가 이쁘기만 하면 신천지고 뭐고 따라갑니다.
신천지는 이 판국에도 포교활동을 하고있다. 여러가지 카페활동으로, 우리들 교회 교인이라고 하면서 거기 이혼 말리는 교회다. 굉장히 죄 의식을 준다며 상담을 소개시켜주겠다며 포교활동을 하고있다. 신천지는 이 판국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포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요즘 이단 식구들 가진 분들이 기도제목을 쫙 올린다. 여호와의 증인, 구원파, 신천지, JMS, 다락방, 평강제일교회, 하나님의 교회 등..
**회개하는 기도제목을 올리자.
회개가 안되면 저 사람만 응답되는거야 나는 이 기도제목 올려도 응답이 없더라고. 하는데 그게 응답이다. 믿음의 분량대로 응답한다.
##누군가의 기도제목이 나를 향한 명령이라고 생각한적이 있습니까?
3.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해줍니다.
(다시 보게하는 것)
12절 : 형제는 어둠가운데 있다가 눈이 떠진 그에게 다시보게 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아나니의 안수를 통해서 사울을 4흘동안의 흑암에서 해방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세상사람들은 절대로 영의 눈을 뜰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영적 소경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진정으로 봐야할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다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낳는것보다 기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기르는 것은 산고의 고통과 같지는 않아도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울까봐 아플까봐 배고까봐 아기보듯이 잠시도 한눈 팔지말고 봐야한다.
나중된 자, 초신자들 양육하는 것도 수고와 인내가 없으면 안된다. 그동안 아무리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그동안의 것들이 모두 헛수고이다. 양육은 너무 힘든 것이다.
그래서 초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길 작정해도 금세 교회에 일원으로 여기지 못한다. 자기들이 믿어야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성장하는지도 도와야한다. 그래서 성령의 형제에 도움이 이렇게 중요하다.
아무리 코로나로 경제가 힘들어져도 다 믿음이 있으면 승리한다. 이게 돈이 없어서 망하는게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다. 지금이 전쟁시대이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건 너무 감사한 것이다. 지금 전쟁중인데 이렇게 설교가 나가고 기도회가 나가는 것은 정말 감사한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분량대로이다. 온라인예배드린다고 손가락질 할것이 못된다.
폭력적인 남편이 너무 힘들어서 이혼을 했는데 딸에게 양육자가 엄마 한 사람 뿐이라는 이유로 분리불안이 왔다는 것이다. 돈 못벌고 폭력하는 남편이어도 아빠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회개의 기도제목을 올려주셨다. 이런 상처가 다 있는 것이다. 성령의 형제가 해석해주기 전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다.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가정, 회사, 인간관계중에서 무엇을 다시 보게 되었나요?
4.사명 찾기 위해서 편견이 없게 해줍니다.
13-15절 : 사울이 이 길 가는게 잘먹고 잘살자고 가는게 아니다. 내가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할지 알려줄 것라고 하신다.
주의 성도라는 표현이 이렇게 처음 쓰이게 되었다. 사도행전에 4번, 바울서신에 39번. 신약 전체에서 60번쓰이고 있는데 성도는 말그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무리들이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구별된 자들이다. 이런 주의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고 그들을 결박할 고난을 받은자라고 했다. 아나니아가 사울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것은 당시 바울이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악행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핍박자 사울에게 가는 것을 아나니아가 어떻게 이해를 했겠어요. 아나니아에게도 편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바울이 성도가 될수있겠습니까? 이렇게 계속 고집을 부렸다면 오늘날의 바울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있는 모습 그대로 편견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말씀에 순종한다.
지난주 4-6절은 주님이 바울을 만나는 것이 나왔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 이러면서 몇마디 없었다.
그런데 오늘 10-16절까지 아나니아와 이야기하는 것은 바울의 대화보다 길게 나와있다. 아나니아를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죄인보다 의인을 설득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죄인들은 햇빛이 한번 비치면 거기서 눈이 멀고 하나님! 하고 바로 나오는데 아나니아같은 사람은 죄가 없기때문에 여러말로 설득을 해야한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편견을 가지고 묻는 것이 아니라 정말 팩트를 가지고 물었다. 그래서 늘 묻는 것이 믿음이 없는게 아니라 형제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면 형제를 통해서 답하신다.
이렇듯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명령하신 주님은 동시에 사울에 대한 뜻과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셨다. 그는 온세상을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다. 나의 도구.
바울은 이후에 많은 왕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했다. 구체적으로 유대왕 아그리바와 로마황제 가이사 유대총독 벨릭스,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서도 생명을 바칠 각오로 복음을 전했다. 그 일로 바울을 택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조건과 자격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일꾼 삼으신다면 이땅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발될수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지난주 코로나 기도회때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기도제목이 올라왔다. 그 다음날 그 아픈 남편을 보고 너무나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게 기도응답으로 드러난것으로 본다고 하셨다. 기도응답이라면 성령의 형제 가운데서 일어나면 얼마든지 주의 일꾼이 될것으로 믿는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때는 너무 모자라고 나약하고 부도덕해보여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귀한 자신의 일꾼으로 보시고 택하여 세우실수있다. 그래서 주의 일을하는데 가장 악한 사울을 쓰셨다. 편견을 버려야한다. 아내가 그것을 보고도 나는 당신이 살아있어줘서 고맙다. 어떤 중독이여도 다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형제, 부부도 성령의 형제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다시 보게 됨으로 영의 눈이 떠져서 사명을 발견하고 나서는 그의 모든 것이 사명을 위해 쓰여질 수 있었다. 그의 배경과 지식과 그의 살기등등까지도 주님의 그릇이 되어서 이방인들과 왕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성령의 회심을 했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사명을 주신다. 반드시 한가지 이상의 사명을 주신다. 그런데 나는 성령의 회심을 했는데 할줄아는 게 없다는 것을 말이안된다. 그건 회심을 안한 것이다.
16-17절 :
사울은 이제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많은 핍박과 고난을 얻을 것이었는데. 정오의 빛을 찾아오셨잖아요.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동안 핍박을 하는 자였다면 이제는 핍박을 받아야하는 자. 그것을 하나님이 핍박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고난을 겪을 것이라는 이야기. 하나님은 억지로 그러지 않으신다. 우리는 고난이 너무 싫다. 우린 다 싫어한다 그런데 정오의 빛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그날의 말씀으로 싫다고 하면서도 순종할것이다. 그것이 바로 큐티다. 나는 싫지만 말씀이 하라고 하면 하는 것.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것 그것이 큐티적용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만 나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고난을 택하게 되는 적용.
큐티하면서 수없이 많은 적용질문을 하는데 일주일에 단 한가지만 적용을 해도 자발적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가 그것때문에 주일성수를 하고 싫지만 십일조를 하며 쇼핑 끊고, 야동끊고하는 것들이 내가 자발적으로 고난을 택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끊는것이다. 그렇다고 금욕적으로 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시 교회안에서 형제라는 호칭은 그리스도인의 교제속으로 초청하는 놀라운 축복의 일이다. 오늘 아나니아가 형제 사울아 라고 불러준다. 형제가 적용하는 것을 보고 내가 기적을 베풀어내니 내가 따라하게 된다.
18-19절 :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 시력이 회복되자마자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 그는 당연히 구약의 할례를 받았을텐데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체하지 않고 단호히 결단하는 사울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이 세례의 정의를 세례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되며 그의 부활과 연합된 의식이다. 따라서 세례받은 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과거에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고 그가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 사명을 위해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는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다고 한다. 사울이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이후 비로서 음식을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기 육체도 돌볼줄 알아야한다. 바울이 너무도 강건하기에 1,2,3차 전도 여행을 담당할 수 있던 것이다.
성령의 형제는 서로 영육간의 강건을 위해서 돌봄이 있어야한다. 같이 밥도 먹고, 도와주고, 그것이 성령의 큰 공동체이다. 성령의 회심이 있는 자들은 성령의 공동체에 들어와서 음식을 조절하고 절제하고 먹을 것과 안먹을 것을 절제하는 사람이 회심이 있는 사람이고 형제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몸이 주의 성전이라는 말이다.
##성령의 형제가 못되는 편견은 무엇인가요? 남녀차별, 지역감정, 그외에도 있는 편견은?
성령의 형제는
삶의 자리가 사역지 임을 알려줍니다.
서로 기도로 교통합니다.
영의 눈으로 다시보게 보게 해줍니다.
사명 찾기 위해서 편견이 없게 해줍니다.
<기도제목>
단이
- 우리 가족이 사역지임을 기뻐할 수 있도록
- 조카가 언어, 인지발달 지연인데 하루 속히 치유가 될 수 있도록
- 목소리 건강회복할 수 있도록
미경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회피하지 않고 잘 해석해서 내 감정을 잘 볼 수 있도록
-사건이 오면 원망이 아니라 물어보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수연
-사랑이 없어 그동안 주변사람들 구원에 관심이 없었음을 회개합니다
애정과 관심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맡은 사역지를 잘 지킬수있도록
-정직전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길수 있도록
하영
-나의 사역지인 가정과 학업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큐티하고 말씀 붙잡고 갈 수 있도록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기
유빈
-공동체를 통해 말씀해석하고 끝까지 붙어있기
지인
-매일 큐티말씀보며 살아낼 수 있도록
-내가 있는 곳이 사역지임을 알고 가족, 친구들 구원기도 할 수 있도록
찬미
-매일 오전에 큐티 할 수 있도록
-일하는 것에 감사하고 주어진 것 잘 할 수 있도록(아침에 일어나기, 과제, 일하기)
-사명찾을 수 있도록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연락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