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3
사도행전 7:44-50 성령의 성전
1. 하나님의 양식대로 지어야 합니다. (44절)
장막을 지을 때 증거장막의 양식대로 만들게 합니다. 증거란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돌비입니다. 돌비는 돌판을 뜻하며 십계명에 기록된 돌 판은 증거 판으로 이것을 괘 속에 넣어 증거 괘라고 합니다. 이 증거 괘가 지성소에 안치되었기에 스데반은 증거의 장막이라고 부릅니다.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증거한 말씀이기에 성령의 선지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양식)입니다. 십계명은 20장 한 장에 기록되는데 성막은 25장-40장으로 여러 장에 걸쳐 나옵니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막은 주님의 식양대로 지어야 이 땅에서 잘 지을 수 있습니다. 성경과 성전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거룩은 구별되다는 뜻으로 우리의 큐티가 곧 성막 짓는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성막 안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 재물이 대신 죽어가는 아비규환과 통곡소리와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그래서 성막 식양의 주제나 레위기 주제가 피 흘림입니다. 신앙생활에 대충이 없고 십자가도 대충 질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로 내가 십자가 지는 것만큼 부활이 있습니다. 식양은 한 마디로 십자가를 잘 지라는 규례입니다. 성막 짓는 전체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기를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같이 우리 인생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고 주제인 것입니다. 본문 44절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는 미완료 과거동사로 내내 증거장막이 이스라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상숭배를 합니다. 대제사장과 유대인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예루살렘 성전을 최고라 하다가 하나님을 너무도 열심히 이상하게 기억하고 받지 않는 제사와 희생을 드린 결론으로 예수님을 죽입니다. 성전을 부적으로 전략 시킨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보이는 성전에서 만나 주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려는 우리를 향한 눈물겨운 사랑을 주십니다. 공동체를 통해 목장 나눔을 통해 회개하여 죄를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반응해야 합니다.
Q. 여러분은 큐티를 기뻐서 하십니까? 아직도 이해 못해서 목장이 지루합니까? 교회가 기뻐서 오십니까? 교회를 부적하나 붙이자고 오십니까?
2. 하나님이 지어 주셔야 합니다. (45-47절)
다윗이 하나님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 처소를 준비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야곱의 집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하지만 사실 우리 인생이 야곱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죄인이고 악한지를 아는 스데반의 시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짓겠다고 하는 마음만 받으시고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성전 건축 같은 역사를 일으킨다고 하지만 우주의 무소부재 하신 분이 사람이 지은 집에 거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너무도 잘 지은 개미집에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이 기도제목은 다윗이 전쟁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받을 수 없는 기도제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에 기뻐하시며 다윗의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사무엘하 7장27절에 다윗은 자신이 개미의 주제라는 것을 구속사적으로 깨달았기에 주님의 복 없이는 살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주제를 알고 죄인이라는 고백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물론 예배당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드릴 처소와 성도끼리 교제하는 처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개미 같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눈물 흘리시고 하나님을 무시할 때는 슬퍼서 눈물 흘리십니다. 하나님은 인류 최대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주시는 축복의 종결자인 영원한 다윗언약을 주셨습니다. 세상 것으로 응답하지 않는 최고의 기도응답을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잘난 척이 아니라 기도했습니다. 이 땅의 성전은 불안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견고하다고 합니다. 이는 성전이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이며 영적 후손은 이것을 아는 자입니다. 화려해서 이곳을 보소서가 아니라 짐승들의 울부짖음과 통곡소리나는 피 흘리는 회개가 있다면 보소서 인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우리의 거룩을 위해 죄인과 만나실 수 있는 곳입니다.
Q.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지어 주십니까? 내가 보기에 너무 좋은 기도 제목인데 응답 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48-50절)
하나님의 증거장막은 바로 성도들의 몸입니다. 성도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증거의 장막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교회에도 임재 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에도 사실은 성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교회는 곧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움직이는 사는 성전이며 걸어 다니는 성전입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자신의 언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그 뜻을 증거하는 사명을 지닌 거룩한 곳임을 알아야합니다. 진리가 거룩해도 담아내는 그릇이 완고하면 진리가 훼방 받습니다. 스데반은 이사야 열왕기상 8장27장이 아닌 이사야 26장1-2절말씀을 인용하여 섬김 받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돌보시고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이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몸이고 성전이라면 이런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걸어 다니는 성전은 회개하고 통회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전입니다. 우리도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 간증을 해주었는데 간증 주요 골자는 나는 형편없는데 하나님이 해주셨다입니다. 우리는 손으로 지은 것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자기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한 몸이기 때문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갈등속에서 같이 동행하시면서 말씀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르기에 영이신 하나님의 구조를 가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손으로 지은 보이는 것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성전에 대해서 손으로 지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초심을 잊지 않으면 하나님은 싸울 것 없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셔서 다윗에게 준 언약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Q. 여러분이 손으로 지은 것을 사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몸이 성전인 것을 믿습니까?
[기도제목]
은우
보내 주신 회사와 가정이 피 흘리며 제사 지내야 하는 성전인 것 알고 은혜의 기도를 쌓고 붙여준 지체들 위해 자세하게 중보하도록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와 나라의 회개 못한 죄 때문에 온 것임을 알고 매일 큐티로 하루하루 살아내도록
나의 몸이 성전인 것을 알고 큐티생활과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해외출장이 있는데 보내주신 그곳에서 나의 지경과 경계 잘 지키도록
정산해야 하는 것들과 서류들이 넘쳐나는데 회피하지 말고 차근차근 정리할 수 있도록
예선
부모님의 말과 행동에서 나의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을 묵상하지 말고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도록
갇힌 것 같은 상황이 지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건강 잘 챙기도록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분별해서 할 수 있도록
전염병으로 회개해야 할 것은 그들이라는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나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도록
보련
몸 건강하기
큐티생활 잘 드리도록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일하도록
현경
주제를 몰라 내 생각 내 힘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큐티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큐티생활 잘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성전이 세워지게 해주세요
교만하고 나태함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닫고 말씀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내도록
아버지의 얼굴과 목소리에 미친듯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정죄 판단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중심 잡고 갈 수 있도록
아버지에게 온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 되게 해주시고 어머니가 성품이 아니라 구속사로 해석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