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
사도행전 7:29-37 성령의 소명
1.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29절)
동족의 말이 비수로 꽂힌 모세가 도주했다고 스데반이 말합니다. 이는 믿는 동족의 말 한마디가 더 치명적이라고 공회원들에게 암시하는 스데반의 정확한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든 믿음이 가장 좋은 사람이 가장 잘못한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바로와 히브리태생을 저주하고 이를 불쌍히 여기겠지만 모세에게 살인자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신의 한 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이렇게 높은 기준이 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가장 거룩한 가치관이기 때문에 믿음이 좋을수록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습니다. 다혈질의 모세가 온유의 대명사로 불러 지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미디안에서 제사장 딸과 혼인하고 목동의 일을 시작하며 밑바닥 인생 나그네가 되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습니다. 환경이 겸손해지니 왕자였던 것 억울했던 것 모두 잊어버립니다. 어떻게 별 인생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살인자인 모세이기에 죄인의 심령이 저절로 되었을 것입니다.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는 예수를 만나도 너무도 죄가 대단해서 그냥 죄인의 심정으로 평생 살아졌을 것입니다. 요셉은 허벅지를 아무리 꼬집어도 죄인의 심정으로 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도 살인자로 죄인이기에 무슨 할 말이 있었겠어요. 인간의 위로가 어떤 위로가 되지 않던 그때 내 죄를 사하여 주실 분은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양치기로 나그네 인생을 알 때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의 원인이 바로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나그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절하게 자기부인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살인자로 미디안족의 딸과 혼인하여 이스라엘 지도자가 되기에는 내놓을 것 없는 초라한 인생이 되었지만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그네 인생길을 아는 성령의 소명이고 축복입니다.
Q. 여러분은 불신자와 신자의 말 중에 어떤 말이 더 상처가 됩니까?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하고 광야 같은 오늘을 영원히 살 것 처럼 잘 살아가고 있습니까?
2. 40년이 차는 거룩을 경험해야 합니다. (30-33절)
히브리민족이 번성했다가 핍박받는 시간과 모세 광야 생활 40년이 맞아 떨어져 갑니다. 40년간 왕자로 살았기 때문에 40년 양치기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항상 그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환경이나 사람으로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모세가 날마다 보던 가시나무를 통해 꺼지지 않는 불로 오셨습니다. 이는 80세 모세에게 가시나무같이 생명이 사라진 것 같지만 꺼지지 않는 불처럼 40년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셨다가 이제 찾아오신 것을 말합니다. 모세가 40년의 훈련이 끝나고 달라진 것은 기적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기적의 주인공으로 내가 보았어!가 아니라 무엇 때문인지 알아보려고 주님께 다가갔고 거기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폴린 클랜스 심리학자_성공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3가지: 사람들은 내 성공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내 성공은 운 때문이다, 내가 이룬 성공은 대단하지 않다)
네 조상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약속은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주시겠다는 소명을 너에게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세상 종 노릇하는 사람들을 애통하면서 안타깝게 여기고 구원으로 이끄는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소명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곧 거룩한 곳인데 선택하신 종을 부르시기 위해서 이방 땅에 임하셔서 그곳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어디든지 거룩한 땅입니다. 이를 통해 스데반은 유대인의 선민주의를 계속해서 반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내가 성전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미치지 못할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번성과 학대가 다 같이 거룩한 것으로 깨닫는 것은 구원자를 주셔야 가능하며, 구원받게 되면 한 사람의 원통함이 들어오게 되고 이것이 성령의 번성이라면 바로 그 마음이 거룩한 마음이고 성령의 소명입니다. 모세는 피해의식과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에 노예 같은 삶을 40년 살아야 했습니다. 거룩의 훈련인 밑바닥 인생을 오래 경험해야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삶을 잘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배운 인내로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을 참아내어 이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의 두려움과 밑바닥 인생을 익히지 않았다면 출애굽 광야 40년간 그들을 인도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Q. 여러분은 가시나무 같은 곳에서 지금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고 있습니까? 바라만 보고 있습니까?
3.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34-37절)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받은 이유는 다시 애굽으로 보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오늘을 잘 살아야 합니다. 각자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소명을 주시려고 베풀어주신 신의 한 수입니다. 모세가 양치기 하면서 완전히 깨졌고 왕궁에서 배운 것들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지만 깨어짐이 필요했습니다. 금 그릇으로는 못 섬깁니다. 그렇게 깨어지고 깨어진 모세를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속량하는 자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예수님이 대신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주시고 죽어지셔서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이 계속하여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인정하는 모세가 40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면서 이끌었음을 말하면서 모세를 능가하는 각종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예수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보냄 받은 구속자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세의 인생에서 이스라엘 출애굽 과정과 직접 관련된 마지막 40년은 철저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모세가 힘이 다 빠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오직 구속하신 주님만 계시는 기간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주는 인도자이며 중보자이고 자기 민족을 자유로 인도한 소명자였습니다.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심에 순종하는 것이 성령의 소명입니다. 내 환경은 신의 한 수입니다.
Q. 여러분은 성령의 소명으로 지금 어느 세상으로 보냄을 받고 있습니까? 직장, 가정, 자녀, 건강, 물질 등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은우
이상한 상황이 올 때마다 놀라지 말고 성령의 번성과 학대가 온것인줄 알고 말씀으로 기도하도록
나를 보내 준 환경에는 언제나 끝이 있음을 미리 알고 말씀에 인도함 받도록
원통한 나와 가족과 목장을 통해 소명이 이어질 줄 알고 말씀으로 중보하도록
정죄판단이 심하게 올라 올 때마다 나의 입과 마음을 제어하여 축복의 기도 할 수 있도록
영육 보호함 받고 돕는 손길 허락하시도록
예선
내일 병원 가는데 상태 잘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 잘 챙기고 직장에서 눌리지 않고 잘 말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시는 일 잘 보고 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하여 해야 할 말 잘 분별해서 할 수 있도록
가족들 구원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신 곳에서 자리를 잘 지키도록
현경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하고 거룩의 훈련에 순종하며 주님께 기도하며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제자리를 지키며 갈 수 있도록
관계와 물질의 경계를 지키지 못해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 라는 고백으로 회개하여 주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