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참석인원
: 이호진(93), 김승택(95), 이동영(95), 정권일(96), 김태건(00)
Ⅱ. 말씀요약
「일어나 따르니라」(누가복음 5:27 - 39 / 신승윤 목사님)
나는 이제 예수를 믿는 사람인데,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를 보는 것이 힘듭니다.
지금 그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끝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입니다.
변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 말발굽으로 가슴을 치는 심정으로 우리가 어찌할꼬.가 되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가 됩니다.
변하지 않는 나보다 더 큰 죄는 변하지 않는 나를 놓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십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훗날 성령을 받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사도로 불리며 세워질 사람입니다.
남들은 뭐라고 해도, 그가 어떤 위치에 있어도, 어떤 죄를 지어도 그가 바로 예수님 스타일이시기 때문에 부르셨고 함께하셨습니다.
어떠한 사람을 예수님이 부르시는가? 예수님 스타일은 누구인가?
1. 나의 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오늘 부르심 받는 제자는 레위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가 하는 일은 세리였습니다.
레위는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데 자신이 죄인이라는 마음이 자리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내가 죄를 알고 고민하며 또한 적용하는 것은 내가 잘나고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저 사람보다 바르다는 이유로, 몇 가지 옳은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정죄하며 판단하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8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사람들 보기에 이제 레위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나 ,주님 보시기에 레위는 이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사람입니다.
레위가 세리의 자리에 있었다면 절대로 쓸 수도 없었고, 남기지도 못할 마태복음의 저가로 세우십니다.
지금까지 당연히 누려왔던 것에 대해 고민하고, 나의 죄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예수님 스타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가 아니라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에 집중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십니다. 그리고 결국은 레위를 제자로, 제자로 사도로 바꾸셨듯이 점차 끊어내게 하십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것은 레위의 적용입니다. 모든 사람의 적용이 같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내 죄 때문에 진심으로 고민하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되어서 작은 거 하나라도 적용하고 주를 따르려는 그 모습을 우리 주님이 기억하십니다.
레위가 죄의식이 있었기에,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소문을 주목했듯이 내 죄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말씀이 들리는 첫 걸음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지금 세리 레위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인이기 때문에 죄에 대해 고민해야할 필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죄를 깨달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가 의로워서 상대를 정죄하는 사람은비방 말고는 할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 의로움에서 정죄가 나오고 억울함이 나오고 비방이 나옵니다.
그래서 천국 잔치가 열리는현장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어도 함께 기뻐하며 동참하질 못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최고이며 상대는 그르고 나는 옳다 생각하면 그곳에서 회개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며 고민하는 것이 불러주심을 받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어떠한 환경이나 사건이나 유혹이 와도 내 죄 때문에 속상해하며 고민하는 것이 변하지 않으면 됩니다.
내가 요즘 비방이 늘어가는 것은 내 죄 때문에 고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Q. 지금 앉아있는 곳에서 고민해야할 나의 죄는 무엇입니까?
2. 선택과 집중을 하는 사람입니다.
'너 금식 안하면 안 된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레위의 초대로 수많은 죄인이 구원을 받는 정말 중요한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금식과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을 받아주고 함께하셨습니다.
Q.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며 집중하고 살아갑니까?
3.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금식으로 대표되는 외식과 형식을 중요시 하는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은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새 옷과 낡은 옷의 비유입니다.
둘째는 새 부대에 관한 비유입니다.
새 옷으로 입고, 새 부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지경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을 사랑하고, 품을 수 없었던 사람을 용납하는 것이 새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하고 싶은 것이 내 힘과 의지로는 정말 어렵습니다.
나는 어제보다 좀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사랑 없는 내가 이제는 누군가를 품고 아끼며 살고 싶은데, 마음만 먹고 끝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 자신이든 상대이든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내가 부대라면 나는 그 포도주를 담아내야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부대에서 부대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낡은 것이 새 것으로 변하기는 하되, 나의 역할, 나의 자리는 그대로 지켜가며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담아내야하는 내 역할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비관하며 상대를 정죄하는 내 가치관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나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여전한 편견과 미움이 있다면 나의 낡은 부대를 새로운 부대로 옮겨 담아야 한다는 것이지 포도주를 담는 그 부대 그 자체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음으로는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야합니다.
지금 보이는 것이 없어도, 상대가 변하지 않아도 내가 말씀으로 변하고 있다면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향한 나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말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내가 변해가는 새로움을 은혜를 허락해주십니다.
도박의 가장 큰 문제는 도박 외의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행위를 멈추는 동안 그때는 입은 손해와 시간으로 인해 극심한 후회와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끼다가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면 헛된 상상으로 물질과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리고 점점 그 시간들이 늘어갈수록 자신의 의지와 희망 따위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며, 결국 삶의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계속 거기 붙잡아두고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독이나 집착, 그리고 분노가 있습니다. 죄와 낙심 그 가운데에 머무는 지금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속이는 것이 있습니다.
중독과 미움의 결론의 하나입니다. 계속 거기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가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정말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담아내야할 새 부대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중독과 미움에서 일어나 이제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새 부대가 되기 위한 유일한 비결은 바로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Q. 내가 새 부대가 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아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붙잡기 위해 지금부터 어떤 노력을 해보시겠습니까?
Ⅲ. 목장 기도제목 및 적용
이호진(93) : 주4회 QT 올리기, 자기 전에 기도하기
김승택(95) : 7시 전에 집에서 나오는 적용 지키기
이동영(95) : 여행준비 잘 할 수 있도록, QT 주 1회 읽어보기
정권일(96) : 주3회 QT 올리기, 한 주간 시간관리 잘 할 수 있도록
김태건(00) : 주 2회 QT하기, 재수학원에서 잘 버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