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말씀 :사도행전 7:1~8
- 제목 :성령의 떠남
- 말씀 요약
어떤 목자님이 올해 표어인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가 참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세상적으로 바꾸면 어떤 환난이 와도 성령 충만하면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다 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난이 예상되므로 잘 견디라는 말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나눔을 하셨는데 설교 내용을 잘 이해하셨으니 수준이 높다고 보여진다. 인생이 100% 죄인이기에 갓난 아이와 아이가 있고, 청년과 아비의 때를 살려면 이 세상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떠나야 하는 것들이 있기에, 그것이 고난이 맞다. 마음에 안 들어도 이것이 복음이고 진리이다. 오늘은 때마다 성령의 얼굴로 떠나야 하는 성령의 떠남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성령이 떠나게 하신다면...
1.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1절)
이것이 사실이냐에서 이것이 무엇입니까?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스데반이 율법을 폐하려고 한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네라고 해도 안 되고, 아니오라고 해도 안 된다. 네 라고 하면 듣기도 전에 다 잡아갈 것이고, 아니오라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한다. 때에 따라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구원 때문에 머리가 팍팍 돌아가야 된다. 지혜의 영이 임한 스데반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1절~ 50절을 구속사적으로 구약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51절을 통해 경고 하나하려고 50절까지 그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성경으로 전했다. 항상 내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성경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을 제대로 꾄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딱 한마디 하면 된다.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는 너무 위대한 설교이다. 전 세계에서 기독교를 높힌 설교이고, 가장 명설교에 속한다. 이 위대한 설교는 다른게 아니라 예수님을 길로 놓고 구속사로 요점 정리를 잘 한 설교이다. 1,300 페이지가 넘는 기나긴 구약을 10절의 요약을 했는데, 정말 구속사의 핵심이다.
목사님은 맨날 똑같은 소리를 한다는 성도가 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어떤 본문도 똑같은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 예수님 이야기가 안들리니 내 환경이 부해지거나 힘들어지거나로 변하면 다들 매너리즘에 빠지고 원망이 되니 꼭 설교 탓을 한다. 성경이 예수그리스도 이야기지 다른 이야기가 있겠는가? 큐티는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는 것이다.
스데반은 형제의식을 가지고 천사의 얼굴로 자신을 죽일려는 사람에게 부형들이여로 호칭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설명해야겠는데,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누군가 교회와 담임목사님 비난을 하면 이런식으로 겸손하게 칭하고 이런 태도로 하시나요? 요즘 비난이 늘었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 같은 갈대아 우르,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에게 그것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이미 보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있는 하나님이 아니고 또, 이스라엘 그들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선민 주의에 쐐기를 박았다. 이 사람들이 아브라함도 민족주의 심볼로 존경을 하고 있겠지만, 그 아브라함 자체도 하나님이 아브라함 되게 하신 것이지,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에 어디에도 계실 수 있는 하나님이고, 믿음의 몇 대 손, 혈통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누구에게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일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세상에 취해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학벌과 권력과 모든 것이 취해있는 누구에게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구원을 받던 안받던 모든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되고, 전도해야 한다.
적용 - 상상할 수 없는 곳에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곳은 어디입니까? 상상할 수 없는.. 사람도 아니야 라는 그곳, 거기는 내가 갈 수가 없어, 대단한 스펙을 가졌는데 어떻게 전도해? 하는 그곳에도 영광의 하나님은 보이실 수 있습니다.
2.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3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맨 처음 주신 명령은 가나안으로 가려면 첫째로 고향과 친척과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버지 집도 같이 떠나라고 한다. 떠남이 없이는 약속의 땅으로 못 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 믿으려면 고난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갈대아 우르 문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제가 대형 박물관 그 많은 곳 가운데서 우르를 보았다. 정말 대단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떠나기 진짜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적용하면 알코올 중독자 부모에게서도 못 떠나고, 완전주의자 부모에게서도 못 떠나는 것이 우리이다. 돈이 많아도 의지하느라 못 떠나고, 없어도 무시하느라 못 떠나고, 미워하느라 다 못 떠난다. 부모가 자녀를 들들 볶지 않으면 불안하다. 엄마가 들들 볶아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내가 지금 뭔가 사회적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면 결국 엄마가 옳은 것 아니었나? 엄마를 미워하며 그대로 닮는다. 이렇게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이 있는데, 부모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우리들 교회 성도로 미국에 아이비리그에서 공부한 집사 한 분이 묻기를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최고가 되어야 한다, 잘해야 한다를 귀에 못에 박히도록 들어서 몸이 기억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 교회를 너무 좋아하고 우리들 교회 성도이다. 같이 믿지만 부모와 소통이 잘 안되면서도 자기도 부모처럼 최고가 되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우리들 교회에 왔어도 변하지 않아 힘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아이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이 구속사적인 가치관을 넣어주고 싶어서 거기서 공부했지만 우리들 교회 오고 싶어서 아이들 때문에 오고 싶어서 귀국하고 싶다고 한다. 어찌 생각하시나요?
또, 타라 웨스트 오버의 배움의 발견이라는 책에서 몰몬교 근본주의자로 종말론을 믿었던 아버지는 공교육은 아이들을 하나님에게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정부의 음모라면서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병원에 가거나 양약을 먹는 것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정절을 파는 일이라고 여겼고,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부엌이고, 가학적 성향이 있는 둘째 오빠는 동생을 상습 폭행을 하였고, 화장을 한다고 창녀라고 불렀다. 고아가 아닌데도 이 소년은 생일이 언제인지 모른다. 부모는 일곱 자녀 중 아들의 넷의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고, 아이들 나이 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이것이 미국 아이다호주 산골 이야기이다.
여기서 나고 자란 타라는 만 16살까지 학교 문 턱에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을 도왔는데 이렇게 살다 보니 세상 전체가 틀렸고 아버지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의 교육이 중요한 것이고, 학교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그 나라가 사회주의나 민주주의냐로 굉장히 아이들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아버지가 옳다고 생각하다가 아버지야 말로 이 세상의 이방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가 기른 자신과 헤어지는 초점에 맞추게 되었다.
이 소녀가 16살부터 탈출한 것이 아니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독학하기 시작했다. 독학을 해서 그 가운데 일하면서도 브리검 영 대학을 들어갔다. 결국은 하버드 방문 연구원을 거쳐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가 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마침내 사랑이라는 이유 아래 그를 속박했던 부모와 관계를 끊는 것이다. 타라는 부모를 끊은 것이 교육의 힘이라고 해서 마지막 결론이 유감이지만, 문자적으로 이렇게 학대하는 아버지는 떠나야 하는 것이 맞다, 문자적으로 떠났다는 것은 결론이지만 우리는 구원 때문에 떠날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은 이런 아버지를 무조건 나쁘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아버지 덕분에 타라가 박사가 되고 책도 쓰고 영향을 끼치는 여성학자가 되었다. 그래서 제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잘 믿는 부모와 같이 동역자가 되어서 걸어가는 것 외에는 우리가 부모를 떠나야 하는지 모른다. 부모가 천국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잘못된 효도때문에 부모도 죽고 나도 죽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온 집안에서 밤낮 혼자서 효도하면서 불란을 일으키는 자녀도 있다. 효도의 개념이 엄마에게 떡 하나 더 갖다 주고 하는게 아니라 언제나 가정에는 질서가 있고, 위 아래가 있는데 그 질서를 잘 일으켜 가는데서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이 그것이 효도이다. 둘째가 첫째보다 잘 산다고 돈 많이 갖다 주면서 가정에 불란을 가져다 주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모든 가족들이 잘 사는 것 아니겠어요? 부모가 되서 누가 갖다주면 차별하고, 이러면 그것이 효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향과 부모와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깊은 이야기이다.
내가 영광의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내가 잘 먹고 잘 살때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안들린다. 잘 먹고 잘 살때, 이런 이야기가 들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훈련되는데 있어서 안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질서라는 것을 주셨다. 질서를 주신 것은 그것 아니면 훈련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질서에 순종을 해야되는 것이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여자가 그 질서에 순종해야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미물만도 못한 인간에게 공생애 시작하신 일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고 마지막 질서인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래서 질서로밖에 우리가 훈련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분은 사람 같지 않아서 나는 무시해하는 형제, 부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타라의 아버지가 사람 같지 않다. 그런데 딸로 있을 때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서 길을 여셨다고 생각한다.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영,육의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땅에서 친구, 짱구하는 것은 고향, 친척, 부모이다. 교회를 다녀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역 감정에서 천국 갈 때까지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고향과 친척과 부모를 떠나라고 한다. 이게 인생의 전부이다. 우리나라는 봐도 그렇다. 기독교가 이렇게 들어왔는데도 지역 감정 누가 떠나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이 좋아서 정치도 하고 뭐도 하고 다한다.
적용 - 떠나지 못하는 고향, 친척은 무엇인가요? 너무 좋아하는 식구, 너무 무시하는 식구 중에 무엇입니까?
3. 아비가 죽음에 떠납니다. (4절)
처음에 아브라함은 부모를 못 떠나서 가나안 땅에 아버지랑 같이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같이 떠나줬다. 그게 너무 고맙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아들, 즉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이 있었는데 일찍 죽었다. 그런데 같은 이름인 하란에 도착을 한 것이다. 거하다 보니 아버지가 너무 좋아한다. 떠나자는 말을 못하겠다. 전부 다 고향, 친척 버리고 떠나준 것만으로 감사한데, 지금 이렇게 아버지가 동생까지 죽어서 슬퍼하다가 좋아하시는데 어떻게 목적지까지 더 가자고 할까? 그래서 망설이다가 그만 거기서 떠나지 못하고 아버지가 죽어버렸다. 그래서 아버지 이름이 데라 = 연기한다이다. 결국 이 아버지는 못 떠난 것이 동생 생각해서가 아니라 월신을 섬기고 있는 우상 장사, 우상 숭배자이다. 결국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진로를 방해하고 연기한 아버지이다.
그러니까 맨 처음부터 떠났어야 하는데 이 우상 장수 아버지와 갈려고 하니 늦었다. 부모를 객관적으로 봐야된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다. 나하고 같이 떠나줬는데 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계속 있으니 하나님이 데라를 죽이지 않으면 아브라함이 떠날 수가 없다. 내가 떠나지 못하니까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내가 빨리 떠나면 아버지도 안 죽었을텐데, 내가 떠나지 못해 죽이는 데라가 누구입니까? 구속사로 안 보면 너무 이상한 설교로 들린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맨 처음부터 잘 떠난것인가? 믿음으로 갈데아 우르를 떠나서 갔다고 들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연기, 연기하다가 명령은 받았는데, 택한 사람은 늘 믿음때문에 갈등한다. 아브라함이 주님 만난 것이 언제냐? 이 때냐? 기근 당한 때냐? 사라가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냐? 아니면 이삭을 바칠때냐? 이스마엘이 떠났을때냐? 아브라함이 주님을 만난 것은 언제일까요? 여러 번 만남이 있는 것이다. 떠나면서 만남이 있는 것이다.
택한 사람의 특징은 뒤에서 무엇이 잡아당기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갈등 충만이다. 떠나야 하는데, 잘 믿어야 하는데, 그래서 사건이 오면 미리 들은 말씀이 있어서 딱 깨닫는 것이다. 아 내가 떠나지 못해서 아버지가 죽었구나아버지가 죽으면 딱 깨닫는다. 친척도 버리고 가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갔다.그래서 내가 인생이 고달프다. 롯때문에 죽을뻔했다. 일평생 떠남이 계속 되는 것이다. 25년 동안 떠남이 계속 되다가 가장 아까운 아들 이삭과의 떠남이 이루어진다. 결국 내가 아끼는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내려놓는것이 자식이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아비가 죽음에 떠났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것은 사도행전 7장에만 나온다. 그래서 우리가큐티가 중요하고, 신구약 성경을 꾀면서 봐야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옮기셨느니라' 했다. 내가 떠난 것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 구속사는 내가 하는 것이 없다. 사건을 주셔서 하나님이 바짝 들어 옮기셨다. 그러니 내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구속사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태복음의 구속사를 읽었는데, 스데반의 구속사이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믿음이 좋아서 떠난 것이 아니라 나하고 똑같은 인생인데, 이런 환경이 오니 떠났다는 것이다. 스데반이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을 때 갔다고내가 명령한 땅으로 가라 했을 때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순종의 인물이다 줄창 들었다. 그러면 우리는 아 우리는 왜 순종 못할까? 하면서도 그냥 문을 나서는 순간 위대한 아브라함이나 떠나고 나는 나인거지 한다. 우리 성품으로 떠나는 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너무 위대하다고 하니 우리는 순종이 안된다. 그것은 위대한 율법으로 보는 성경이 있고, 우리는 성경을 평범한 사람이 적용할 수 있게 구속사적으로 봐야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성경은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불교 경전, 유교 경전을 보면 너무 위대한 이야기만 있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잘못이 그대로 다 나와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 하고, 딸과 아버지가 간음한 것이 다 나와 있어서 성경처럼 위대한 책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속사이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의 이야기가 써져있다. 성경을 보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죄인들의 구속사가 써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하라, 해라, 왜 못하냐, 하지 말라, 말라,말라 하다가 말라기로 끝난다. 그래서 은혜받을 사람이 없다. 구약도 구속사로 읽어야 되는데 구속사로 읽을 사람이 구약 창세기부터 아브라함, 이삭, 너무나 희소성 있는 모델로 시작이 되서 점점 커지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리 만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 하나 우상처럼 정해놓고 박수치고 나는 함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을 막 높여준다. 우리들 교회는 왠만해서 높이는 이야기를 절대로 안한다. 사람이 다 별 인생이 없다. 성철 스님 절하는 것 우리는 그런 것 절대 못한다. 그런 것은 위대한 사람의 역할로 놓고, 그 다음에는 나는 내 마음대로 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헌금 갖다 바치고, 저 분은 위대하다고 하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은 위대하니 나는 못간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길로 놓고 도전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우리가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헬라파 지도자들도 똑같은 성경을 보면서 출애굽을 다 겪은 이 어마어마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이면서도 아브라함과 모세를 우상처럼 놓고 있다. 그것을 스데반 집사, 평신도 집사가 설교하는 것이다.
적용 아비가 죽음에 떠난 곳, 옮겨진 곳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 대단한 사건에서 우리들 교회에서 옮겨졌는데, 무엇 때문에 옮겨지셨습니까?
4. 떠나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5절)
떠나라 해서 떠났는데.. 옮겨졌는데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없다. 자식도 없이 떠났는데, 약속만 믿고 걸어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속았잖아, 예수 믿었더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잖아' 하는 일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러분, 구속사 세속사, 기복, 팔복은 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6절) 이 약속은 유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인데, 이 약속이 온전히 믿어지기 위해서는 나그네 된 인생을 살아서 종 노릇도 해보고, 또 아브라함이 떠났던 것 처럼 자손들도 종살이하다가 떠나야지 약속의 자손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 15장을 인용해서 이야기한다. 후손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내보내야지 후손이 약속의 땅으로 오는 것이지, 후손이 내 마음대로 400년 되기 전에, 399년째에 나오면 훈련이 안 되고,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격이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한다.
7절까지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서 고향, 친척 떠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 와서 약속의 자손도 너와 마찬가지로 또 애굽으로 떠나서, 즉 옮겨져서 종살이한 다음에 그들이 괴롭게 한 후에 그 애굽을 심판한 후에, 400년 후에 나와야 네 후손도 약속의 땅이 오는 것이지, 네 자손이라고 가만히 있어도 약속의 자손이 되는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이야기하나? 아브라함이 아들!아들! 아들 달라고 부르짖고 떠나왔다. 우리 다 그렇게 해서 교회 온다. 돈 없다고, 아들 고쳐달라고, 약속의 자손을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져야 한다. 영적자식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스마엘을 줬는데 영적 자손이 아니었다. 아들을 7명을 줬는데 아브라함에게 영적 자식이 없다. 25년만에 영적 자손 하나 겨우 얻었다.
그러니까 아들!아들! 하다가 이타적으로 변해야 한다.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별없이, 돈,돈,돈 하다가 돈이 결국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는, 사명을 위해 쓰여진.. 결국 영적으로 소망이 바뀌어져야 하는데.. 잘난 아들 이스마엘에서 너무 눈만 껌벅껌벅 뜨고 있는, 겉으로 볼품없지만 이삭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에서는 이삭만 만나니까, 영적 자손만 만나게 되니, 천국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만 만나니까 그러나 자식들을 생각하면 나는 이렇게 고생해서 예수 믿었지만 너만은 고생하지 말고 예수 믿길 바란다는 것이 기도 제목 1번이다. 나는 고생했지만, 너는 고생하지 않고 학교 다니기를 바라고, 타라 아버지가 그렇게 못되게 했어도 아이는 하버드와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었다. 좋은 아버지, 나쁜 아버지가 없다. 그것이 구속사이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경험할수록 25년동안 계속 떠남을 경험하니, 육적 성전이 무너지지 않으면 영적 성전이 절대로 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아이들도 나보다는 적어도 400년 고생을 해보아야 한다. 종 노릇을 해봐야지, 성경에 그대로 써 있다.
스데반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창세기를 인용해서 하는데, 왜 유대 대제사장들과 헬라파 지도자들은 이렇게 구속사적으로 못 읽을까요? 한마디로 괴롭힘을 당해봐야지만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이것을 약속의 말씀으로 주셨다. 그러니까 고난이 뭔지 모르지만 이것을 약속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면 이럴꺼예요. 나는 그런 약속 못 받았는데요?! 교회를 다니면서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진짜 약속을 못 받는다. 약속이 뭔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 이것을 구속사적으로 뜻을 알고 읽었으면 여러분은 약속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내 자식이 고난을 당해야 약속의 자손이 된다는 말이 축복의 말씀으로 들리면 세상이 감당을 못하는 믿음으로 변한다. 세상이 감당 못하는 믿음과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한 학생이 있었다. 자기가 헌신하겠습니다 한 마디 했더니 너무나 하나님께서 잘 이끌어가신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기도를 할 때 우는지, 학교도 떨어지지 않고 붙었는데, 그렇게 울고 헌신하겠다고.. 옛날에 어떤 분이 예언 기도를 해주는데, 자기는 요셉의 축복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기가 요셉같다. 별로 고난도 안 당했는데,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니까.. 그런데 말씀을 보니 자기 고난이 합쳐져야 유다를 통한 예수님의 계보에 영적 축복을 얻으니까 '주님! 그러면 저에게 고난을 주시옵소서' 기도하면서 올렸다.
그러니까 어렸을때부터 큐티를 하면 이런 기도를 마음대로 한다. 이것이 뭔지도 모르고 이렇게 기도한다. 그것이 뭔지도 모르지만 거기 있는 아이들이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감동을 받아도 하나도 적용이 안된다.눈물만 흘리고.. 아이들은 감동이 없지만 몸에 익어 이렇게 기도한다. 어렸을 때부터 구속사적인 가치관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정말 되는 것만 있는 것 같더니 때가 되니 결국 고난이 쓰나미처럼 왔는데 이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말씀의 이루어지므로 들려야 되고, 해 아래 별 인생이 없으니 내려놔야 할 육신의 정욕.. 이게 다 떠나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때마다 말씀으로 설명하니 고난도 다 말씀의 이루어짐이라 한다. 여러분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 이 땅에서 잘된 것만이 축복이다 하면 안된다. 발 붙힐 만큼도 유업을 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은 하나도 안 주면서, 계속 약속은 믿으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후손도 고난을 당해야 한다니 여러분들은 어디 살겠습니까? 성경의 이야기이니 누구도 예외가 없다. 왜냐하면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도다 이기에, 누군가가 이 역할을 해야되는데, 구속사적으로 가치관을 가지고 스데반이 이 설교를 하고 딱 죽었다. 아니면 하나님이 스데반을 영원토록 장수하야 하는데, 스데반이 이 설교하고 죽었기 때문에 이것이 이땅에서 누리는 그것이 아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누군가는 보여주기 때문에 이것이 구속사적인 가치관을 가지면 이 땅에서 모든것을 성령의 얼굴을 할 수 있다.
적용 - 세상이 여러분을 감당을 못합니까? 여러분이 세상을 감당 못합니까?
5. 영적 자녀 낳는 것이 떠남의 결론입니다. (8절)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통한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할례의 언약을 주셨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를 의로 여기시고, 하박국 2장 4절에서도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에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율법보다 믿음을 먼저 주셨다. 성경을 믿어서 믿음이 생기는게 아니라 믿음이 먼저 주셨고 그리고 나서 율법이 생겼다.
순서가 한량없는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다.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시지만 그리고 나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는데도, 여자를 얻어들이고 하갈을 얻어들이고, 그두라를 얻어들이고.. 이 인간이 믿음의 조상인데 이럴 수 있나? 우리가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이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위대하다고 하니 성경을 읽고 싶은 생각이 없다. 부적처럼만 생각하고 싶지,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삭낳고 야곱낳고 열두조상 낳으니까 나는 형편없으니 내가 믿기만 하면 나로 더불어 영적 자손을 낳게 하시더라 한다. 내가 지금 힘들고 어렵고 별의별 생각을 다해도 맨 처음에 어렵더니 아브라함에게도 영적 자녀 이삭을 25년만에 주셨다. 이 처음 예수 믿으니 여덟 아들을 계속 믿으니 계속 세상에서 떠나서 별볼일없는 이삭을 25년만에 주셨는데 별볼일없으니까 걔가 영적자녀라고 한다. 그런데 잘난 아들, 이스마엘이라고 한다.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어져야한다. 예수 열심히 믿고 내가 큐티 열심히 했는데 애들이 잘 안되면 '내가 큐티를 열심히 했는데 왜이래요?'한다.
이런 큐티를 하다보니 안되는 것을 많이 겪게 하신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인것을 보여지게 하시는 것을 진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이시고 우리는 너무나 잠깐이기에..누군가가 이 역할을 해야한다.. 아브라함은 25년만에 줬는데, 저도 13년만에 우리 남편을 주셨다. 겨우 이삭을 낳았는데 이삭이 할례를 받았으니, 우리 남편도 할례를 받고.. 한 사람이 할례를 받으니까, 남편이 장로 아들이고 이런 것은 소용이 없다. 할례를 받고 그 다음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열 두 아들을 낳고, 열 두 아들이 70명을, 70명이 60만을 낳고, 60만이 200만이 되어서 오늘날 전 세계에 믿는 백성이 되었다. 최초가 너무 힘들지만 최초에 아들 하나 낳으려고 떠남이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속을 믿고 가야하고, 이 고난의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든는 훈련이 되고, 그런 다음에 보니 내가 너무나 계집 종이고, 형편없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영적 자손을 마구마구 낳는다. 한 사람을 낳는 사람은 만 명을 낳을 수 있다. 한 사람을 못 낳는 사람은 두 사람을 못 낳는다. 한 사람을 낳는게 여러 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삭하고 낳고 가서 이렇게 된 것처럼, 저는 제가 영적 자식을 낳고 있는데 얼마나 송구스럽습니까?
내가 얼마나 계집종에 불구해서 걸레질이나 하다가 목사가 되었는데..어떻게 전도할 수 있게 하시는지 상상이 안된다. 그냥 저는 하루가 금 같은 날이다. 가기만 하면 예수믿고 집회를 가기만 하면 예수 믿고, 성경을 읽게 하신다. 그러니까 하루하루가 기가 막혀서 있을 가 없다. 힘들지가 않는다. .생명을 살려내니까.. 아침부터 3부 설교하고 목자 모임 들어가고 저녁에 운영 위원회까지 10~11시까지한다. 힘이 들지 않는다. 믿어지세요? 이게 영적인 일을 하니까 생명을 살리니까.. 일이 되고 돈하고 연결되면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루하루가 기가 막히니까 제가 힘들다는 소리가 진짜 안한다. 우리 부목사님께 물어보세요. 부목사님이 맨날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사명이 있다. 사명이 무섭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이 힘들다 하면 한 사람도 못낳아서 그런다. 생명을 낳아본지 없어서 모든지 힘들다고 한다.
8절까지가 아브라함의 구속사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성경 전체의 맥락이 다들어온 것이다. 여기다 살을 붙힌 것이 신구약 66권이다. 성경 어디를 봐도 이렇게 쓰여졌다. 메소포타미아 에서 우리를 불러내고,계속 순서를 가서 들어보세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예외가 없다. 창세기의 구속사는 16절까지인데, 내가 구속사의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성령님께서 때마다 잘 떠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 - 여러분은 잘난 아들, 육적 이스마엘을 아직도 너무 사모합니까? 눈만 껌뻑거리는 영적 아들 이삭을 사모합니까? 잘난 영적 이삭을 사모해요 이러겠지만, 그런 것은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값을 치루게 하신다.
[목장 나눔]
- 시간 : 2020.01.12 예배 후 ~ 19:05분
- 장소 : 4F
- 인원 : 정은선 목자님, 서지연 부목자님, 이영지, 서리다, 김지아, 안주현
- 나눔 : 정은선 목자님의 말씀 요약 후, 아래의 적용 질문을 토대로 각자 떠나지 못하는 곳과 떠나야 하는 곳 등을 나누었습니다. 현재 회사 부서 이동, 시민권 획득을 위한 출국 등, 분별하고 인도하심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진 지체들이 많아 이번 주 주일 설교를 여러 번 들어보라는 목자님의 처방이 있어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누었던적용 질문>
▶상상할 수 없는 곳에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곳은 어디입니까?
▶아비가 죽음에 떠난 곳, 옮겨진 곳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 대단한 사건에서 우리들 교회에서 옮겨졌는데, 무엇 때문에 옮겨지셨습니까?
▶세상이 여러분을 감당을 못합니까? 여러분이 세상을 감당 못합니까?
▶여러분은 잘난 아들, 육적 이스마엘을 아직도 너무 사모합니까? 눈만 껌뻑거리는 영적 아들 이삭을 사모합니까?
[목장 기도 제목]
<정은선 목자님>
1. 수련회 조장으로 섬기기 위해 영육 간에 할 적용들 잘하길 (일찍 자고,매일 운동하는 적용)
2.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열등감에서 잘 떠나는 실질적인 적용들 할 수 있길
3. 가족들 모두 생활 예배 잘 드리길
4. 우리 목장이 성령의 조직이 되길
<서지연 부목자님>
1. 자매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남궁이진>
1.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고 체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말씀 묵상 매일하고 기도 생활하게 해주시길, 세상에 있는 반짝이고 좋은 것들에 중독되지 않게 되기를
<이영지>
1. 밤에 일찍 자고 (10시) 잠 깨지 않고 잘 잘 수 있기를
2. 저녁 6시 이후로 금식 및 다이어트
3. 예배에 졸지 않고 집중할 수 있기를
4.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개를 돌보는 데 지혜가 생기기를
5. 너무 어수룩해서 세상에서 혼나고 살지 않기를
6. 코가 그만 아프기를 (비염)
7. 반려견 알탄이 얼굴 상처가 올 겨울 안에 치료 되기를
8. 마음이 우울하고 낙담되는 것이 그치기를
<서리다>
1. 지금의 상황이 내 구원과 거룩울 위해 이뤄가시는 100% 있어야 할 사건으로 인정하며 성경을 읽고 영혼 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하도록
2. 목장의 처방 잘 따르고 설교 여러 번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김지아>
1. 목요일에 출국하여 3일 뒤 캐나다에서 오는 일정을 같이 사는 이모, 이모부께 말씀 드릴 때 선하게 대화 이끌어 주시길. (결정한 사항으로 이야기 나눌 때에 고집불통, 미성숙한 사고로 비춰지지 않게)
2. 영적 후사의 사명 때문에 성령의 떠남 적용을 해야한다는데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 내가 떠나야 할 것은 무엇인지 분별하기
3. 직장 내 후임, 새 직원 빨리 구해지길
<안주현>
1. 성령의 얼굴로 이번 주 AXE 프로젝트 내 마지막 근무 잘 마무리하고 성령의 떠남을 감사함으로 적용 할 수 있도록
2. 새로운 SF2 팀에서도 세상이 감당 못하는 믿음으로 영적 자녀 잘 낳고 팔복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3. 아파트 매매 여부 하나님 뜻 묻고 진행할 수 있도록
4. 속기 공부 시작하는데 사명으로 여기고 소홀히 하지 않도록
5. 이전 팀장님을 전도하고자 하는데 잘 오시고 말씀 들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