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5. 성령의 전도 사도행전 5:33-42
서론.
주님의 명령과 사명으로 성령의 전도를 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설교를 시작해서, 여러 단계 후 핍박과 전도를 하게 하신다. 사도행전의 전도는 전도학교와 같은 그런 루트가 아니라 전쟁과 같은 전도다.
1. 분노를 감당해야 합니다.
33/ 대제사장 성전 맡은 자, 이스라엘의 국회라고 보면 된다. 그들이 크게 노하여, 가슴이 터질것 같은 분노를 했다한다. 유대의 대단한 지도자에게 예수를 전했는데, 이렇기 적대감을 표한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셔서 인간의 구주가 되게 하셨다. 우리가 증인이다. 체험적 간증을 통해 믿고 회개하라했다. 너무 설득력있는 복음이다.
그들은 아무리 받아들이려도 살인자임을 인정해야 하기에, 죄를 보면 기득권을 내려놔야 하니, 그들은 그렇게 못 한다. 대제사장 사두개인 당파 = 예배전문가들이, 베드로 설교마다 3000명씩 빠져나가니 죽을지경이었다. 왜 그런지 봤다면, 회복이 일어날텐데 가슴이 터지는 채로 계속 간다. 이들이 죄가 안 보이니 못할 짓이 없다. 그들에겐 사형집행권이 없었음에도 사도들을 죽일려든다. 그들은 기득권이 위협받는다 하니, 못할 짓이 없다 - 들키지않으면.
그들이 회개하고 나오면 기쁘지만, 죽이려고하는 지도자들을 감당했어야 하는 사도들. 예수님도 그 길을 먼저 당하셨기에, 제자들도 이게 있어야 할 일이구나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목사님도 살아있을 때, 죽어지는 모습, 당하는 모습을 보여야 이렇게 가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도 든다. 바로 성령의 전도다. 믿는 이 끼리의 싸움. 예배전문가와의 싸움 = 밖보다 안의 싸움이 더 무섭다는 것을 본다. 우리 모두 실수 할 수 있다. 성령의 주재인 예수를 믿으라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저주하고 미워한다면, 성령의 저주는 하지 못한다.
적용/ 여러분은 복음에 분노합니까, 회개합니까? 설교듣고 아직도 분기탱천하여 안들립니까? 끝에 돈이 있습니다.
2. 지성과 선함도 필요 합니다.
34-35/ ⍬은 시시때때로 100% 옳으신 방법으로 도우신다. ⍬은 신실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상급이란 이름의 뜻을 지닌 가말리에는 사도들을 돕는 영들이다.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아이콘이었다. 바울이 바울되게 큰 역할이 되었다. 율법의 거룩함이 죽었다고 애도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조심하라 그런다. 백성들에게 경외받는 사도들을 그대로 인정했다. 가말리엘이 쉬운일이아니라 양심대로 했다. 우리는 꼬인대로 볼 수 밖에 없다. 자기가 꼬였으면 그 시선으로 간다. 우리가 열심으로 선행을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말리엘은 지성의 아이콘으로, 원수처럼 여겨지는 사두개인들에게 인정받았기에 - 좌파 우파를 모두 설득할 수 있는 사람 - ⍬은 이런 사람도 준비하셨다. 사두개파는 부활을 인정하지 않지만 바리새파는 부활을 인정한다 이렇게 섞일 수 없는데 인정을 받았다.
적용/ 큐티 뿐만 아니라 신문도 책도 읽어보시면 어떠신가요?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 하십니까? 뜻밖의 도움을 받은 적 있습니까?
3. 역사의식도 필요합니다.
가말리엘은 드다와 유다를 통해 역사적 증언을 통해, 설득한다. 신문도 교육도 받는다. 그들을 통해 볼 배울점은
A. 드다를 통해 스사로 높아지고자 해서는 안된다는 것.
36/ 자기를 스스로 높이고 스스로 구세주라고 하며, 요단 강물을 자기가 가를 수 있다고 미혹했었다. 그러나 거짓으로 드러났고, 추종자들이 단물에 뿔뿔히 흩어졌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신성모독자로 몰아붙인 것도, 예수님도 스스로 메시아라 주장했기때문인데 - 드다와 예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드다는 자기가 주권자고, 예수님은 종의 자세였다. 성령의 전도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자신에게 먼저 적용을 해야하는 것이 성령의 전도라는 것.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높인것은 백성들에게 칭송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리라도 그 그릇이 훼손되면 훼손되는 결과다.
B. 유다를 통해 무력을 대항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는 점.
37/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어떻게 로마에 세금을 내갰나 하며 반란이 일었는데, 무차별적으로 무력이 대항해왔다. amprarr 모두 흩어졌다. 그럴듯한 명분에 의해 폭력을 쓴다면 망하게 되어있다. 설사 일시적 승리를 거둔다해도 또다른 복음을 갖고 오는 결과가 된다.
국가적 운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여호와의 증인이 복음을 앞세워 방위를 다하지 않는 것은 다른복음일 뿐이다. 지혜롭게, 설득을 하는 유다. 역사도 우리가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진짜만 남을 것이고 가짜면 흩어질 것이다. 라는 뜻.
적용/ 복음을 설득하기 위해, 스스로를 높이나요 낮추나요? 부모면 부모지 권세가 되지는 않습니다(반대로 요즘엔 자녀가 그렇습니다..) 폭력을 당할 때 폭력으로 나가나요? 기도하며 참습니까?
4.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38-9/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마라.
가말리엘은 맞는 말만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그 때문이라고 한다. 거짓메시아는 시간이 지나면 다 흩어졌다는 것. 사람의 소행 = 무너질 것.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가 된다! 사도들에게 비록 동조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관과 세계관은 갖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이 가말리엘을 통해서 상관하지말고, 버려두라! 한다. 우리도 예수때문에 핍박받다가 때가되면 버려둘 때가 온다. (누군가의 명령을 통해서라도)
사탄이 배우자 부모 자녀의 모습으로 올 때 그들이, 나를 위해 버려둘 때가 온다. 가라지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되니 두라! 하는 말씀을 나를 죽이려는 반대편의 가말리엘이 한다는 말은 결국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는 길이다. 40절에서, 그들이 그래서 옳게 여겼다.
예수 이름을 말하기를 금하고 놓으니 amprarr 이미 해버려져서, 가말리엘의 말을 듣는 것. 우리나라도 참 필요해 보인다.
그들은 사도들을 무죄방면하지 않고 채찍질을 통해 방면했다. 가죽을 벗기다 라는 어원처럼, 율법에서 줄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에기 주는 인간적 분노는 여전하여 변한 것이 없다. 이것이 가말리엘의 한계다. 그들이 가말리엘의 연설을 들었지, 성령의 설교를 듣지 않았다 - 그들의 유익때문에 설득된거지, 변한 게 아니다. 즉 우리는 가말리엘같은 사람을 분별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최고의 죄를 가졌는데, 이 사람은 왜 예수 믿지않을까?
세상에서도, 예수 안믿어도 백번 나은 가말리엘을 높게 친다. 착해도, 나이스해도, 고결해서, 이성적 클라이막스인 그가 안 믿는 다고 애통하고 눈물 흘리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를 위해 무엇을 분별해야할까? 사도들의 표적을 보고 기적을 봤지만, 사도들이 행한 기사왜 표적은 믿지 않는다. 사두개인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서 그 지식이 예수께로 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성령의 전도다. 성령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다. 가말리엘은 죄에 대한 인식 - 심각한 인식이 없다. 가말리엘이 하나님 자리에 가 있는 천사 같은 자다. 따라갈 자가 없다. 나는 구원받을 만한 게 하나도 없구나 해야하는데, 나는 구원받아야 할 조건을 다 갖고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목장가고 큐티하고 예배드려도, 결국 깊이가 생기지 않고 잘되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amprarr 결국 옳고그름에 청착한다. 또 그러다가 고난이 오면 주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내 옆의 가말리엘 같은 존재가 있다면 좋겠다 생각하겠지만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내 자신을 알게 된다. 우리는 답이 있다. 사도들은 고난이 올 때 고난때문에 힘들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 진 예수님이 생각난다. 주님이 같이 짐 져주심을 알기에 다시 주님께 나아간다. 가말리엘은 고난을 설명한다, 허나 이길 수 있는 것이 없다.
적용/ 여러분은 이런 가말리엘 같은 사람을 보고 어떻게 분별합니까?
감옥에 있는데, 그때 전도를 하지 않으면(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또 다른 감옥이 온다. 오직 인생이 그의 이름을 얘기하는 것 뿐이다.
마태복음 5:10-12/ 박해당하는 데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한다. 남편 가기전에 이 부분 큐티하다가 성경을 찢는 사부님을 보고, 이 사건으로 어떻게 이런 수준높은 일이 생겼는가 기이하게 여겼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것은 이렇게 맞는 말이다. 우리를 적용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는 것 때문에 모함과 고발을 받아봤는가? 그때는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오드리햅번이 일류겠지만 (안 팎이 아름답지만), 얼마나 잘해줬으면 그가 결혼했겠나. 멜파라는 결혼 두번이나 했던 사람인데. 도티라는 정신과 의사도또 오드리햅번에게 매달렸다. 이혼을 했어도 좋다고 했고 계속 매달렸기에, 오드리햅번은 늙어서 도티와 결혼했지만 또 이혼했다. 결혼하여 이 땅에 모든 걸 희생했지만, 세상 사랑대로 (이기적으로) 흘러갔다. 너무 예수 이름의 비밀과는 다르다.
예수 신랑이 내 안에 있기에 풍성함이 비밀이다. 그래서 이혼 아무도 안 했음이 비밀이다. 세계 제 일의 미녀를 놓고도 이런 남편이 두 사람이 이런다. 오드리 햅번은 가정을 너무 가정을 지킬려 했으나, 이렇게 두 번이나 실패를 하곤 한다.
너무 억울해도 변명도, 해명도 안하고 생색이 아니라 모두 그 이름을 위하여 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당해도 오늘 내가 적용하고 당하기에 기뻐한다. 상대방이 비난하고 욕했다. 아내가 아무리 이혼하자 해도, 놀렸어도 참았으니까 오늘 남편이 간증하는 날이 온 것.
41/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목적 = 전도. 예수 이름으로 사명을 살아가는 사도들이 있다. 목숨까지 내려놓길 기뻐하는 사람들이 사명의 사도들이고 그 줄기를 따라 목사님께도 전해져왔다. 30몇 년 전 목숨을 내놓겠다는 그 말만인 고백을 통해서도 이렇게 만개하게 하셨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하는 그 고백이 교양없어보인다 하면 신앙이 메마른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하는 그 고백이 확실하다. 사두개파와 같은 사람이 질리게도 하지만. 곤고함과 함께 말씀을 주신다. 열심히 뜨겁게 사도들은 사명을 행했다.
그들의 악보다 한 가지 열심히 사명 감당하면 그 뿐이다. 오늘 한 가지 더 사명을 행하면 된다. 목사도 직업으로만 하면 편한 곳만 탐한다. 한편, 평신도도 성령받으면 사명을 감당한다.
성령에 의해 가르치고 전도하는 게 전 자동으로 되는 것이 맞다. 어지까지는 주의 일이고 어디까진 나의 일이다. 나도 내 생활을 가져야 겠다 이런 말이 사실 성립 안된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웃어도 울어도 주님을 위하여,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오직 주님의 시간이다.
적용/ 그 이름의 비밀을 아십니까? 내 인생을 위하여가 목적입니까?
안식
- 다음 목장 잘 갈 수 있도록, 좋은 사람 붙여주시도록
- 회사 적응 잘 할 수 있도록
- 양육 잘 마칠 수 있도록
박영준
- 새로운 목장에서 잘 정착 할 수 있도록
- 큐티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구준호
- 목원들을 위해 기도 할 수 있도록
-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김주형
-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길태수
- 다음 목장식구들 잘 만날 수 있도록
- 안전한 여행 다녀 올 수 있도록 가족들과의 시간 잘 지켜주시도록
- 생활 예배,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조동민
- 목장생활 잘 이어갈 수 있도록
- 기도에대해서, 습관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