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5:12-16
성령의 표적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다. 그런데 이 두려움을 통해 교회가 정화되니 도리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두려움을 주시더니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이번에는 표적을 보여주신다. 어떻게 표적이 나타나는가?
1.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나타났다.
12절: 아나니아 삽비라는 죽었지만 사도들을 통한 성령의 두려움이 진리임을 확증해 주시기 위해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을 베풀어 주신다. 이것은 사도들을 통한 성령충만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탄충만이 충돌할 때 어찌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다.
4장에서 사도들은 잡혔다가 성령의 기적으로 풀려났다. 그 때 성도들이 위협함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자신들의 손을 통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지금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기사가 일어났는가?
성령의 역사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들을 통한 것이 아니라 어부출신 제자들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성령의 강한 역사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니 그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당장 가두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풀어주시고 다시 성령의 권능의 설교를 하게 해주셨다.
주님이 생전에 제자로 만든 사람은 1000명이 채 안됐다. 그런데 과연 그 약속대로 사도들은 수만 명의 결신자를 얻는 역사를 일으켰다. 이러한 복음이 퍼져 나가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주셨다. 성령의 표적은 사도들의 부지런한 손, 깨끗한 손, 등을 통해 미완료과거 시제로 계속해서 역사를 일으켰다.
사도들의 손은 회개의 손이었다. 쇠 말발굽이 나를 찔러서 어찌할꼬 하는 회개의 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데 상처에 벗어나서 회복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상처 쫓는 기도만 하는 것은 진정한 성령의 손이 아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한 표적은 성령이 효과적으로 나를 비춰주니 내 죄를 심각하게 직면하고 이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쁨과 안식이 없게 되었다. 성령님은 항상 예수님께 인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빼면 성령의 사역을 할 수 없다.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표적이 지시하는 바인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으로 나를 계속 비춰준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악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내 죄를 보는 것이 표적이다. 그러면 주안에서 따뜻하고 부지런하고 회개의 리더십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사도들을 통하여 성도들은 대제사장과 전혀 다른 리더십을 맛보게 되었다.
적용: 우리의 회개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가 있는가? 우리의 손은 깨끗한가? 따뜻한가? 부지런한가?
2. 믿는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모여야 한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사실을 볼 수 있다. 한 마음 되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가장 어렵다. 있는 자, 없는 자가 하나가 된 다는 것이 기적이다. 내가 양육을 받아야 하는데 양육자로 섬기고 있다. 여기서 어려움이 동반자들이 너무너무 훌륭한 분들이라 서다.
표적과 기사는 늘 한 마음 한 뜻의 공동체로 나타난다. 사도들이 잡혀갔을 때, '베드로 사도가 어부인데 뭘 알겠어...' 이러면서 마음이 나뉘었다면 초대교회는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는 상처받은 사람이 정말 많다. 그래서 거칠다. 그런데 대단한 분들은 또 교양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가 돼서 간다.
믿는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최고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때는 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일사분란 하게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한 뜻을 품었다.
성령의 코이노니아 사역: 성부, 성자, 성령 속성인 사랑과 은혜가 코이노니아를 보여주신 것이다. 마음을 합해서 하나로 모이는 공동체가 너무 중요하다. 삶이기 때문에 이론으로 가르칠 수 없다. 믿음위의 한마음 한뜻이 중요하다. 이타적인 목적, 즉 구원을 위해서 두려워할 일이 많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고자 할 때 표적과 기사를 많이 주셨다. 표적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이적이다.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한마음 한뜻이 풍성하면 교회가 부흥한다. 성도, 가정, 교회가 살아난다.
적용: 한 마음이 안 되는 곳은 어디인가? 가정인가? 목장? 회사인가?
3. 상종하는 자가 없게도 하신다. (행5: 13~14절)
상종한다: 아교풀로 붙인다는 것이다. 강력해서 떨어질 수가 없다. 아교풀로 붙인 것 같이 상종하게 된다.
그런데 상종하지 않은 그 나머지가 있다.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를 모두 보았기에 인정은 하지만 가까이는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교회 다니면서 볼 것 다 보지만 성령이 임하지 않으니 엄청난 간증을 들어도 표적의 목적인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으니까 주께로 나아가기도 어려운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과 상종하고 있지 않으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본인이 주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예수를 믿으니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내 탓을 하니 부드러운 마음이고 그리고 나를 죽인 원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내가 실천하게 된다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되면서). 내 속의 더러운게 잘 보인다. 찔려서 어찌할고 한다. 이러한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주께 나오게 된다. 그래서 믿는 자가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적대적인 얘기라기보다 뒤에서는 칭송 했다고 하였다. 불신자들에게 조차 칭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라가고 싶지만 대제사장이 너무 적대적이다. 대제사장이 최고인데, 저 어부가 아무리 해도 저게 오래갈까? 라는 적대적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임했던 형벌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한다. 감히 상종은 못하겠지만 뒤에서 칭송을 했다.
한마음이 되었으면 믿고 주께로 나오는 것이 같은 방향인데, 이 사람들은 같은 방향이 안 되니 상종이 안 된다. 아무리 표적과 간증이 있어도 이 사람들에게는 아교풀 같은 지체가 없다.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이 안 들리니까 인간적으로 끼리끼리만 찾는다. 결국 믿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사도들의 집단에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결국 주께로 나아가기가 싫고 이 세상이 좋다. 그런데 너무 이적을 베풀고 있기 때문에 사도들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적용: 우리는 상종하는 아교풀 같은 지체가 있는가? 없는가? 나를 뒤에서 칭송하는 것 같은가? 뒷담화 하는 것 같은가?
4.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게 하신다. (행 5:14)
상종하는 자가 더 많기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남녀의 큰 무리가 있다. 믿는 무리가 계속하여 더하여 지고 있다. 그러니 생명의 열매가 있으면 전염이 되게 되어있다. 놀라운 표적과 기사다. 십자가, 예수님만을 부르짖고 고난이 축복이라고 했다. 표적을 항상 보내주셔서 사람들이 주께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다. 어둠속에 복음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빛을 비춰주니 어떻게 충돌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사람하나 구원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영적 소경이 무섭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 훨씬 큰 죄악이다. 그런데 우리는 육적인 병만 낫길 원한다. 신유의 은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종류, 수준 별로 성령의 나라로 입문 했지만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다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선교 훈련이다. 목장이 6개월씩 한번 바뀌는 것이 최고로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적용: 우리의 복음의 지경이 넓어지는가? 그대로 있는가? 좁아지고 있는가?
<기도제목>
이소정
1. 진로의 인도하심
2.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신정화
1. 목과 허리 디스크 잘 회복하고 편안하게 잠 잘 수 있도록
2. 목장에 잘 묻고 갈 수 있도록
박재인
1. 12월 과제 보고서 잘 마치도록
2. 내 욕심 버리고 오직 성령의 눈으로 분별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