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4:23-31
<성령의 기도>
1. 동료가 있게 하신다.
위협하는 그 말을 고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동류: 성령의 공동체이다.
믿음의 동류는 복음을 전하는데서 절대적인 존재이다. 예수 믿고 가장 필요한 것이 지체이다. 성령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지체의 기도가 절대적이다.
적용: 함께 기도할 동류가 있는가? 기도제목이 부끄럽다고 부탁도 안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위기 가운데서 동류의 위로를 받는가? 동류가 아예 없는가?
2.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한다.
분노하다 의 원어에는 소란하다의 의미도 있다. 소란하기 그지없는 이 세상의 소리이다. 세상의 경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맞춰져 있다. 눈만 뜨면 모두 헛된 현실이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헛된 일을 경영하게 해달라고 요란하게 기도한다. 세상과 교회는 다르다. 우리가 떼 부리는 기도를 하면 들어주시긴 한다. 하지만 기도는 요란하게 소리 지른다고 들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계획이 있으시다.
기도에서 하나님과 얼마나 친한가가 관건이다. 즉, 말씀대로 기도해야 한다. 본문을 읽고, 나에게 주는 음성을 깨닫고 적용하며 기도해야한다. 믿음의 연단, 말씀을 보고 가면 기쁘다. 성령을 받아야 기도가 들린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한다.
적용: 위기와 핍박 속에서 말씀대로 기도하는가? 헛된 것을 경영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가? 정욕적인 기도를 하는가? 우리는 핍박을 당하는 역할을 하는가, 핍박을 하는 역할을 하는가?
3. 담대한 복음 증거를 위하여 기도한다.
'위협함을 굽어보시고...'에서 고난 받은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한다. 왜 고난을 감해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가?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나도 가는 것이 너무나 황송한 일이다. 말씀을 보면 내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고난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가지 쳐지지 않는 내 욕심이 너무 많다. 자신의 죄를 보는 것이 죽은 사람 살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 우리가 예수님에 의해 살아났듯이 내가 죽어져야 살릴 수 있다. 올바른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날마다 거룩하고 깨끗해야 하는 것처럼 죄를 고백하며 낫기를 기도하는 것이 의인이다.
위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굽어보시고 라고 표현한다. 즉,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죄를 고하며 자신의 병이 낫길 바라며 간증해야 한다. 끊임없이 기도 속에 구해야 할 것은 위협속의 담대함이다.
적용: 요즘 나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위협 속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하는가? 위협을 없애달라고 하는가?
4.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진다.
내가 고난을 통해 내 현재 이유를 아는 것이 기도이다. 영적 진리인 말씀을 보여주신다. 예수 이름으로 나타난 표적과 기사 성경에서 고난은 계속되나 복음은 날로 전파된다. 믿음은 너무나 대단하다. 억울하게 보이는 것이 많지만 구별된 표적으로 바꿔주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름을 들으면 얼마나 뛰쳐나가고 싶을 까? 죄를 들추어내서이다. 뛰쳐나갈까봐 변질된 예수를 요즘도 전한다.
결국, 나의 환경이 남의 죄를 구원하고 날마다 죽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기도가 성령의 기도이다.
적용: 우리는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변질된 기도를 하는가?
<기도제목>
신정화
- 굳은 목이 부드러워 지도록 (영, 육 모두)
- 가족구원
- 추수감사절 전도축제 때 가족들이 교회에 올 수 있도록
이소정
- 진로의 인도하심
-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박재인
- 여러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 분별 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