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0. 6 주일예배>
일시 2019. 10. 6. 3부예배
찬양 #예수 예수 #나의 슬픔을 #우리 주 안에서 노래하며 #내 모습 이대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만왕의 왕 내 주께서(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성령의 권능
본문 사도행전 3 :11-26
설교 김양재 목사님
성령의 기적 후에 성령의 권능이 임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한 기적으로 말미암아 오천명이 돌아오게 됩니다. 기적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도구입니다. 기적은 한 사람이 경험했는데 수많은 사람이 기적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기적보다 예수님이 중요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무식하고 비천한 베드로가 성령 받고 이 권능의 설교를 했다면 성령 받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성령의 권능을 받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의 권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오직 예수를 주목합니다. (11-13)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성령의 기적으로 40년 앉은뱅이가 걸으니깐 날마다 보던 사람들이 놀라겠습니까. 이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놀라서 40년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이 너무 놀라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다녔습니다. 베드로는 그 기적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하는 일은 오직 기적을 바라는 것입니다. 기적에 열광을 합니다. 지혜까지 좋아해서 지혜의 왕인 솔로몬의 행각에 저절로 모였습니다. 성령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이유는 오직 예수님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응답은 예수님을 전하라고입니다.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성령의 기적은 성령의 권능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직 그 이유, 이하 이상도 아닙니다. 여러분 인생의 모든 목적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12절.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아 하면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자임을 강조합니다. 앉은뱅이도 이스라엘 사람이이니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왜 우리가 한 것처럼 우리보고 놀라느냐. 개인은 권능도 없고 경건하지도 않아. 알다시피 나는 예수님을 3번이나 저주했고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물고기 잡으러 갔다고. 나에게 경건은 가당치도 않고 게다가 내게 권능이 있겠냐고.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설교를 한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이자 종교자인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주목을 자기들에게 향하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기도도 구제도 금식도 항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하고 의복도 꾸몄습니다. 성도들의 눈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들에게 주목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과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베드로를 감추게 하고 하나님만 높이도록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아무리 기적을 일으키고 크고 귀한 일을 했더라도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자기들에게 향하게 이끌었다면 오늘날 2천명의 복음전파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영광 받고자 하고 자기가 주목받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1계명 나외 다른 신을 둘지 말지니라.의 계명을 어긴 사람이기 때문에. 일계명을 어기면 다른 9가지 십계명을 어기게 되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데 어떻게 부모를 공경하겠습니까. 이미 자기에게 주목시키고자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전도했다고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주목받지 않는다해도 그
것은 불가능합니다. 의가 하늘을 찌르고 결국은 생색이 나서 민낯이 드러나게 돼있습니다. 시간문제입니다.
이때 베드로처럼 주목받지 않으려면 누구를 주목해야 하는지 성경으로 정립이 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목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베드로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성령의 권능입니다.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겠어요. 13절,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대를 이어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구약에서 종으로 표현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고난의 종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난의 종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고난의 종으로 오신 것이 미리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고되어 있었는데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셨나요?
빌립보서 2장 6-11절까지 보면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낮추셔서 이것이 하나님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이고. 잘 살고 잘 죽고 다시 살아가지고 높이셨다고 했는데 이 땅에서 십자가지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목장 보고서 나눔 60대 목사님이신데 지방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하셨다가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임통보를 받으셨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갈 때가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올라와 우리들 교회에 등록하고 목장 처방에 따라 힘든 일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쓰레기 청소. 사임통보 사건이 구속사 사건으로 인정이 되니 사모님과 두 딸과 함께 기도하며 온 가족이 잘 적용하고 있다고. 목사님이 청소한다는 것, 나이도 많으신데 하나님과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 같지 않습니까. 우리들 교회 청소적용은 유명한 것 같습니다.
# 최씨 목자님 적용. 한 직급 높은 경비대신 주일을 지키기 위해 청소 적용을 하셨습니다. 구지해야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목자 역할도 해야 돼서 했는데 저에게 천직인 것 같다고. 청소할 일 있다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고. 5개월 했는데 천 만원 버셨다고. 우리는 이 천 만원이 중요합니다. 굉장히 목자도 하니깐 돈도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안 보고 하나님만 주목하니깐 예수님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적용을 하니깐 너무 감사합니다. 적용이 정말 빛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적용해보세요] 사람을 주목합니까? 예수님을 주목합니까? 즉, 기적을 좋아합니까? 기적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주목합니까?
성령의 권능 그,
두 번째는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3-16)
이것도 성령의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13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이제 베드로는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종의 형체인 예수그리스도를 너희가 이방인 빌라도 총독에게 잡아 넘겨주었다. 빌라도가 그리스도를 무죄한 자로 판정했는데 너희들이 아니다, 그는 죄가 있다고 했다. 빌라도는 그들의 세력다툼인 것을 알았습니다. 살려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나름 꾀를 써서 한 사람 놓아주는 전례가 있는데 이 두 사람 중 죽일 한 사람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비교가 안 되는 살인자 바라바와 살인자와 비교도 안 되는 예수님을 두고 고르라고, 한 사람을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당연히 예수님을 고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누가 봐도 비교 안 되는 살인자 바라바를 연호하면서 생명의 주인 예수님을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이 인간론이라고 했잖아요. 자기 이익에 합하면 살인자도 내편인 것입니다. 자기 이익에 반하면 예수님도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바, 바라바. 소리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말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살인자들에게 우리도 죄인이지만 안 믿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줘야 되니깐 정말 좁은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축복 얘기하면 너무 많이 모이고 고난 얘기하면 반으로 줄었다가 죄얘기하면 아무도 안 온다고 합니다. 죄 얘기는 하기도 듣기도 어려운 얘기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복음이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려면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죄 얘기를 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그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말하려면 내가 못 박은 죄 얘기를 이야기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그렇게 예수님을 죽이라고 할 때도 증인이고 다시 살리셨으니 여기에도 증인이라고. 죽일 때도 증인이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본 일에도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16절에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 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고친 권능은 앉은뱅이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믿었기 때문이지 어떻게 내 능력일 수 있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하나님이 앉은뱅이를 주목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기적을 베풀게 하신 것이지 베드로는 전혀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는 안 고쳤다고 계속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어서 완전하게 낫고 성하게 되었다면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면 예수의 이름은 이미 예루살렘 성전을 뛰어넘는 성전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도 우리 모든 증인은 개인 사건의 증인이 되어서 (개인마다 개인 구원이 있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을 사회구원으로 연결시켜서 이 세상에 이것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왕 같은 제사장이고, 소외된 백성이기 때문에 전하는 자의 발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 구원이 사회구원이 되도록 어떤 영역에서도 예수님은 전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앉은뱅이가 40년 만에 일어났는데 이 때 베드로가 자신에게 주목했다면 한 몫 챙길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순번대로 안수표 주고 베드로는 기도하고 요한은 복채 챙기고. 오직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치유를 해야되는데 치유 자체가 목적이 되니깐 요즘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베드로와 초대교회는 철저히 성경대로 자기 권능이 아니었다고 예수님이 죽어주셨기 때문에 나같은 무식한 자도 성령이 인도하셔서 앉은뱅이가 일어난 거라고 지금 외치고 외치는 것입니다. 나를 주목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고침을 받은 사람(앉은뱅이)은 어떻게 합니까?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앉은뱅이는 고침 받고 예배를 잘 드려야겠지요. 13절 초두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많이 나옵니다. 산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살았을 때도 예배의 대상인데 죽지 않았으니깐 영원토록 예배의 대상이 되시겠죠.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모두가.
16절, 그 이름을 믿음으로 산자의 하나님, 예수님 모두 살아계십니다.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전하려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이기고 이기려다 보면 놀라가고 쾌락을 즐기려고 합니다. 주일날 각자 옳은 소견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입시 때문에, 사업 때문에, 돈 많으니깐 골프 치러가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안 옵니다. 개인의 종말은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릅니다. 이 번 주일에 김옥수 집사님이 자전거 타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갔습니다. 내일 일을 모릅니다.
내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구별된 모습입니다. 주일 성수, 모든 각종 예배 중요하고 생활예배도 큰 전도입니다. 내가 큐티하고 예배드리는 모습 자체가 좁은 길입니다. 회사에서 나는 늘 예배드리러 교회에 간다. 얘기하고 몸에 익어야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야 하니깐 나는 가야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야 되고 큐티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구별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내가 주목 받지 않으려면 성경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권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지옥불에서 올라온 자존적 교만이 있기 때문에 모든지 자기가 했다고 생색을 내고 안 알아주면 속상합니다. 이 앉은뱅이를 고치고 내가 안 했어.하는 것은 성령의 권능 아니고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은 것을 인정하면 예배 자체가 설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아는 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죄를 어려서부터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몸에 익게 해줘야 하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예수 믿었으면 예배드리는 것을 사회에서는 상상이 안 되니깐 그 모습 자체가 좁은 길입니다.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택자는 그 좁은 길이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왔을 때 예배가 사모가 됩니다. 아닐 때는 사모가 안 됩니다. 그런데 나는 가야 되니깐 굉장히 구별된 모습입니다.
# 저는 모범생으로 살아 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아무리 열심으로 예배가몸에 익어도 이 죄를 보게 하셔야 하니깐. 내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다를 알게 하셔야 하니깐 혹독하게 용광로에 들어가게 하셨는데요, 나의 모범생적 태도 자체가 존재론적 가해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 있는 탕자가 돌탕보다 무섭다고 했는데 집에 있는 탕자는 자기 의와 교만으로 꽉 차 있는데 드러나는 죄가 없으니깐 저절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깐 힘들게 까지는 몰라도 내가 열심히 성품으로 하니깐 예배에 설렘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질리게 하고 저절로 잘난 척하는 것을 저만 몰랐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지 않으면 집탕이 무서운 것 맞습니다. 그래도 내 힘으로 올라갔다가 툭 떨어지고 툭 떨어지는 자라를 결국 성령님이 넘겨주셨잖아요? 제가 사기그릇을 넘어갔습니다.
이 무한한 우주공간에서 사기그릇 넘어가니깐 우주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 있을 곳을 보고 가기 때문에 저 멀리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데 넘어져도 넘어져도 영광된 목표가 보이니깐 저멀리 있을 땐 내 죄를 몰랐는데 가까이 갈수록 그 빛이 환하게 비치니깐 내 죄가 보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택자는 사기그릇을 넘어 가기 전에는 빛을 못 봅니다. 그런데 넘어가면 우주공간, 광야 생황에서 그 빛이 어슴푸레 보이다가 넘어지고 넘어지고 목표에 다가갈수록 빛이 환해서 내 죄가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팔삭둥이같 고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한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주님의 온전함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읊조립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살려 달라고. 설교준비하면서 저 좀 도와주세요. 도와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셨습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지금도 주님이 살아 역사하고 계시다는 증인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주님께 기도드렸더니 주님께서 해주셨다. 이 간증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 받고 유대인과 딱 통하지 않습니다. 같이 교회와도 내가 성령 받으면 같은 식구라도 같은 성령이 아니면 안 통합니다. 앉은뱅이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식구들과 안 통합니다. 살아나도 안 믿습니다. 오죽하면 바울이 골육의 구원을 위해 예수그리스도에게 저주를 받아 끊어지더라도 골육의 구원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같이 교회를 다녀도 안 통합니다. 유대인은 너무 잘나서 지금도 안 돌아오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다고 했는데 천국가고 싶다는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다. 동족의 위엄이 컸고 가족에게 인정을 못 받았는지 그 사명이 컸기 때문에. 정말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일생 그의 사역을 성령의 권능으로 감당했다고 믿습니다. 고난이 셉니까? 여러분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성령의 권능으로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이 인정이 되십니까? 유대인들이 성령의 권능이 임하지 않아서 같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
세 번째는, 회개하면 복을 주십니다. (17-26)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할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지금까지 베드로가 통렬하게 죄를 질책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복을 준다고 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를 부지 중에 지은 죄는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키면 완전히 나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그리스도께 담당시켰기 때문에 죄가 없어진 것입니다. 너희가 모르고 한 일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자들에게 예언하게 하셨기 때문에 너희가 안 죽였어도 예수님은 돌아가실 수밖에 없으셨다고. 베드로는 위로합니다. 이사야 53장 시편22편..예레미야 11장, 스가랴 13장 등. 베드로가 고난 당한 그리스도 사건을 구속사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비롯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이 일이 하나님 역사에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임을 깨달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복음에 가장 중심 내용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성령의 설교가 안 들리면 모든 것에 분별이 안됩니다. 베드로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무식한 베드로가 아닙니다. 베드로에겐 성령의 권능이 매사에 임하지만 유대인들은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분별도 안 되고 권능이 임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권능은 말씀이 들리는 축복이 있을 때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찔러 쪼갭니다.
19절.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 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완전히 기동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대한 얘기가 복음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고 생각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 성령의 권능 설교 핵심은 회개에 있습니다. 제가 날마다 여러분들에게 설교하는 목적은 여러분들의 회개에 있습니다.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에 있습니다. 이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에 대한 설교는 믿는 자가 5천이나 돌아오는 명설교입니다. 복음의 핵심진리를 기쁜 소식 Good News로 전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만 하면 받는 복 4가지를 말씀드립니다. 회개하면,
1) 죄 사함의 복을 받습니다. (19)
자기 죄 보고 회개만 하면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심지어 하나님께서 보낸 메시아를 죽였을 지라도 일단 회개하면 모든 죄는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못 박았는데 주님은 대속의 제물로 내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죄 사함을 받습니다.
이렇게 죄 사함을 받으면,
2) 새롭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19)
이것은 원기회복이라는 뜻이 있고 개역한글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100% 인생은 내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케 하지 못 했기 때문에 죄 짐을 지고~서 권하거든 너 예수께 나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회개만 하면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성령의 권능은 내 죄가 없어지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전인격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혀 새로운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겁니다.
갈리디아서 5장 22절에,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듣도 보지 못한 새 성품이 자리잡아야 되겠는데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권능이 임하니깐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되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용서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는 날에 날은 카이로스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특별하게 주어진 때, 기회를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이 땅에 하루하루의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을 얻는 기회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을 기회를 누구보다도 먼저 얻었지만 예수그리스도 교회를 배척함으로 그 기회를 잃었습니다.
우리의 삶, 인생이라는 것은 구원 얻는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에 세월은 구원을 얻는 데만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시간세월은 오직 구원 얻는 데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적용을 좀 해보세요] 여러분의 삶을 구원 얻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알고 세월을 아낍니까? 아니면 아직도 닭털 같이 많은 날인데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세월을 허비합니까? 실컷 놀다가 나중에 켁하고 죽을 때 믿을게... 그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구원을 모르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모르는 시간은 후회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깐 내가 설렘도 없는데 교회는 왜 와. 설렘이 없어도 교회는 가서 앉아 있어야 합니다. 내가 교회 간다는 것 자체가 전도입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나는 교회 간다. 이것 자체가 구별되었습니다. 그 자체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 자체로 여러분은 천국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배부르고 등 따시면 교회 가기 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를 갑니다. 내가 힘들 때만 가고 힘들지 않을 때 안 가고 그런 것이 없습니다. 고난이 좀 만 없어지면 교회가기 싫습니다. 놀러가고 싫습니다. 들로 산으로 가고 싶습니다. 교회 온 다는 것이 아주 힘든 길입니다.
3) 재림 예수를 보내시는 복입니다. (20-21)
본문이 히스토리가 없으니 지루할 수 있으나 우리는 원리도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재림할 것을 전하였는데 우주만물에 온갖 피조물이 있어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믿는 자는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즉 내 종말을 믿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당신의 자녀로 하나도 빠지지 않고 부르시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초림 예수께서 오셨는데 이제 재림 예수만 바라보고 가면 되는데 나에게 재림 예수를 보내시겠다는 뜻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오시고 자녀로 다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4) 회개하는 자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22-26)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모세가 나오고 24절에는 사무엘, 25절에는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이제 모세, 사무엘, 아브라함이 예언한 선지자가 예수님이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하나씩 설명해야 하지만 다 설교했기 때문에 빨리 지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이 세우신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자 마지막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예전에는 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마지막 때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나 같은 선지자, 모세는 출애굽 때 구원자로 최고의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들으라, 듣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진리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이고 들으면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다. 네 자손이 나가서 천하 만민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단수가 되어서 너희 씨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언했지만 그리스도는 직접 그 십자가 대속 사역을 성취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한 것은 그들의 악함(26절)을 버리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먼저 믿은 자의 악함이 대단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문에 친척인 것은 기가 막힌 것입니다. 사도들도 유대인이고 예루살렘 성전도 유대인이고 성령강림도 유대인에서부터 출발하고 구원 받을 기회를 가장 많이 줬는데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까지 흘러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는 것.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베드로가 성경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죽는 데에 내어줬기 때문에 유다는 자살을 하고 베드로는 저주를 했었기 때문에 너무 비참함을 겪은 것만큼 낮아져서 예수님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고 성령을 받으니 사랑의 농도가 하늘만큼 땅만큼 커졌습니다. 이제 이렇게 비참하게 겪은 것 때문에 예수님을 더욱 전하게 되는 도구가 되는데 목장에서도 개인이 아닌 주님이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는 간 데 없고 오직 구속한 주만 보여야 되는데 그래야만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 공동체여야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속하신 주는 없고 나만 자랑, 내 고난에 치이면 은혜가 없습니다. 내가 너무나 나는 없고. 구속하신 주만 보일 때 그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자랑질도 고난도 나를 주목하면 듣는 사람도 전하는 사람도 은혜가 하나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회개하여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죄 사함, 새롭게 되는, 재림예수님을 보내시는 복, 복의 근원 중에 무엇입니까?
# 이 모든 것에 해당되는 간증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억울하고 황망한 죽음이었는데 이 백인 여경이 남자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남의 집에 잘못 내렸습니다. 집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 먹으며 TV를 보고 있던 총망 받던 흑인 회계사 고탐을 강도야! 하며 총으로 쏴서 죽였습니다. 실수이지만 그 전화에서 인종차별 메시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검찰이 28년을 구형하고 배심원단은 99년 형이 가능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관은 10년을 선고했는데 시민들이 적다고 야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증인석에 앉아있던 고탐의 동생 브렌튼이 18살 흑인 청년인데 눈물을 머금고 나와서 저는 당신을 주 안에서 사랑한다고 당신이 죽고 썩어져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감옥에 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 빌어주고 싶다고. 그것이 제 형이 바라는 것이라고. 남은 삶은 그리스도에게 헌신해주길 바란다고. 브렌튼은 떨리는 목소리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를 한 번 안아줄 수 있을까요? 그래서 판사가 허락했습니다. 울고 있던 여경과 브렌튼은 서로 안고 한참동안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정의와 평화는 죽었다는 구호가 울려퍼지던 법정이 조용해지고 그냥 다들 울고 시민들도 울고 판사도 눈물 흘리고. 바로 이 청년이 회개해서 복을 받으니 여경이 민족차별에서 돌아왔는지는 상관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 새 성품을 가지고 복의 근원이 되어서 내가 가는 곳마다 복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역시 미국이 예수를 믿어 다릅니다. 일반 법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구나. 전세계가 증인이 되어서 보았습니다. 18살 청년입니다. 나이가 상관 없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정확히 해석한 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예수를 주목합니다.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복을 주십니다. 죄사함의 복과 새롭게 하시는 복과 재림하시는 예수를 보내시는 복, 복의 근원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말씀 후 찬양 예수 예수 예수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오직 예수 이름에 능력있네 예수이름에 치유있네
오직 예수 이름에 능력있네 예수이름에 권세있네
오직 예수 이름에 회복있네 예수이름에 자유있네
예수이름에 구원있네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주님을 사랑합니다
기도제목
나의 모든 사건에서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목하게 해달라고. 고난이나 자랑이나 나를 주목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만 주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을 인정하게 해달라고. 내 삶을 구원을 얻을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오늘 죄 사함의 복, 새롭게 되는 복, 재림 예수를 보내시는 복, 복의 근원이 되게 해달라고. 오늘 나를 위하여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성령의 기적을 많이 맛보았습니다. 성령의 권능도 많이 맛보았습니다. 주님 이제 사기그릇을 넘어가서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가는데 날마다 넘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앞에 보이는데 점점점 추함이 보여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내가 왜 이것 밖에 안되는가 생각할 터인데 오늘 우리가 십자가 못 박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영화롭게 하셨지만 너희가 그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계속 얘기하지만 베드로를 통하여 너희들이 알고 그랬냐고 위로를 해주십니다. 오늘 정말 우리가 모르고 우리가 그동안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을 알고 받아들이고 회개하여서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되어서 참으로 그 모든 재림 예수를 보내시는 복과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기적이 성령의 권능으로 임하여서 아버지 하나님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나를 주목하지 않고 주님을 주목해야 하는데 주님 이정도로 사람이 모였어도 모든 사람이 저를 주목할까 두렵고. 주목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도 저도 속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가 한 게 없는데 정말 하나님이 했는데 조금이라도 내가 취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주여 불쌍하게 여겨주소서. 성령의 권능으로 내가 고치지 아니했다고 내가 경건하지도 않다고 나에게는 능력이 하나도 없다고 날마다 외치고 오직 나는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아버지 우리의 예배가 중단되지 않도록. 우리 예배가 끊어지지 않게 인도하여 주옵시고. 모든 사람에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임으로 구별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그 십자가의 길을 사소한 것부터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19. 10. 6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
일시 19. 10. 6. 4- 6
장소 3층 테라스
참석 한수진,우지현,이은영
나눔성령의 권능으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은 것이 인정되는지에 대해서 나누어보았습니다.나눔 끝에 목자님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황에서 감사함으로 나아가셨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우리 죄 때문임을 인정하고현재 처한원망과 좌절되는 상황가운데서도 자기 죄를보자고, 자기 죄 보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권면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목장을 마쳤습니다.
기도제목만 올리는데... 보고서가 너무 늦었네요.ㅠㅠ.
한주도 목자님께서 요일별 목장 식구 기도제목을 올려주셔서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월요일 기도제목 : 이은영
1. 교육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수업을 나가게 되는데 붙여주신아이들 잘 섬길 수 있도록.
2. 아빠가 다시 안좋아지셔서 화요일에 벙원을 가야 하는게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지만 그런 마음 내려놓고 아버지 병원 잘 동행할 수 있도록
화요일 기도제목 : 한수진
1. 비교의 마음과 잘 싸울 수 있도록
2. 내가 주목받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목받으실 수 있도록. 기도하기
수요일 기도제목 : 조예진
1. 턱관절이 너무 아파서 씹는것 조차 힘이드는데 심해지지 않고 잘 나을 수 있도록. 치료 잘 받도록
목요일 기도제목 : 우지현
1. 모든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 주목받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2. 잔잔바리 믿음이라도 이어갈 수 있게 큐티 매일 할 수 있도록 (오늘 꼭 하쎄용!!!)
3. 엄마 치료 방향 함께해주시기를
금요일 기도제목 : 이지민
1. 저는 진로고민 잘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오늘은 내일 주일에모두 모여 풍성하게 나누고 기도하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기대하며 기도하고 잠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