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9. 성령의 기적 사도행전 3:1-10
서론.
성령의 공동체는 여러 기사 기적 표적이 일어난다. 우리들 교회에서도 가족들이 살아난다. 목장의 존재이유다. 육신의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내 마음이 변하는 것. 말씀공부를 시키는대로 살아나는 것. 변하는 후에 주일 수요예배 목장예배로 말씀으로 차고 살아나는 것이 기적이다. 성경의 공부로 그치지않고 이제 살아나는 것까지 나아가야한다.
- 성령의 기적은 여전한 방식의 기도.
1/ 온 백성에 칭송 받을 때 베드로가 기도한다. 칭송 받는 때에 기도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때 기도하는 베드로. 기도로 연결된다. 예수님, 그때는 그렇게 피곤해 졸더니 지금은 깨어나 기도한다. 성령의 충만이 일어나니 기도도 하고 싶어진다. 사도행전에는 기도가 32번 나오는데, 그러므로 기도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식이 아닌 진실한 기도를 하니 기적이 계속 일어난다.
3장도 설교, 기도, 그 후에 부흥까지. 제자들은 도구가 된다. 주요 세 제자 중 둘인 베드로와 요한은 부름받기 전에도 동업자였다. 어부였던 그 둘. 성전에 올라갈 새 는 한번만이 아닌 복수, 미완료 과거의 의미다. ampbull부정과거는 단일의 뜻이다.
유대교 예배와 자신의 예배, 두 예배가 있다. 삼 천명을 가르치려니 얼마나 바빴겠나, 그런 때에도 늘 자기 기도 시간을 지키는 적용은 성령의 선물로 가능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같이 믿는다 하면서도 유대교와 기독교는 지금까지 나뉜다. 또 천주교와 개신교로 갈라지고 개신교 교파는 더 많은 갈래로 나뉜다. 그러나 성령은 그런 문제를 풀어가게 하신다.
남편이 하루 아침에 간 그날에도 여전하게 큐티를 하게 하시니 그 자체가 기적이 되게 하셨다.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되었음에도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기적을 주셨다.
적용/ 여러분의 기도시간은 어떻습니까? 내킬때? 지키머? 구체적으로 기도의 내용을 적어봅시다.
2-3/ 일생 걸어본 적 없는 앉은뱅이가 45-6세 된 그였다. 도저히 펴질 수 없고 굳었다는 것. 사람들이 매고오고 성전 문에 두는 것과 구걸하는 일이 미 완료과거로 표현했다.
한 마디로 구걸이 직업인 그. 미문은 아름다운 문으로, 독립운동 당시 유대를 탄압하던 시리아 적장을 처형하는 일이 있었다. 헤롯이 성전을 다시 지으며 환심을 위해 예쁘게 지었고, 그때부터 미문이 되었다. 성소를 둘러싸는 이방인의 뜰을 잇는 문으로서, 거룩한 성전에서도 여성은 지성소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게 했다.
하여튼 역사적 명소의 입구였으니 가장 유동인구가 많았고 구걸에는 목이 좋은 곳이었다. 영적으로 생각해보자.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구걸이라니. 그 앉은뱅이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 걷지 못하는 그는 미문을 등지고 영적세상을 등지고 세상만 구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등뒤로하고 끊임없이 사람에게 구하는 태도다. 구걸을 평생한 그. 성전을 육신의 것을 구하는 곳으로만 아니 일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몇 푼 구걸하고 만족하고 사는 것이다.
걷지 못하는 것으로 나는 못해 하며 묶여있는 그다. 상처로 똘똘 뭉친 - 자타가 공인하는 그였다. 상처받기에도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알자. 교회는 몸만 오니까 영적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화려한 교회에 기생하며 사탄의 지배 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 상처가 한데 묶여 마비가 된 상태다. 날마다 교회오는 것 같지만 세상을 향해 있으니, 세상을 향하는 것 자체가 구걸이다. 내 처지만 있고, 내 생각만 있으니, 맡겨둔 것 처럼 다 달라고 하는 것이 구걸이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나랑 무슨 상관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최고의 앉은뱅이다.
ampbull 최씨 호칭하나에 분이 나버린 목자님 나눔.
적용/ 내 자신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게 무엇입니까? 날마다 세상에 구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누가 태워다 주지 않으면 못 오고, 또 와준다며 생색내지는 않습니까?
성령의 기적은
- 급한일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보고 주목했다. 베드로와 요한의 애정에 신뢰하여 (놀랐다) - 우리가 불신자에게 관심이 먼저인 것 처럼. 그러나 이 앉은뱅이는 놀랐으나, 육적인 것만 쳐다본다 사람을 보지 않고 돈통만 쳐다보는 것이다. 설교는 안들리니 휴대폰으로 주식, 카톡, 등 돈통만 보는 것이다. 교회를 와도 우리는 안본다.
주일성수하면서 우리 걱정을 하는 게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성전 미문에 앉았다가 교회 다닌다고 하기에 주기도문 외울까 말까한 사람이 정말 많다. 아무리 십자가 설교에도 들리지가 않기에 그렇다. 무엇을 얻을까? 그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말씀이 안들리고 누구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걸 입고.. 이타적인 생각보다는 초미의 관심사가 오로지 정해져있다.
성전을 등지고 앉았건, 졸았건, 하면서도 있다보니 그래도 베드로를 만났다. 회개하지 않았어도 베드로를 만나는 사건이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 싫으면 성전에만 있으라고 하다가 정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오게만 하고 죽을때까지 섬겨야한다.
40년을 데려다만 주면서 주님을 만나진 못했지만, 죽을때까지 섬기기.
적용/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신입니까, 타인입니까?
오늘 또다른 시각으로 보자. 베드로를 보면 기도하고 돕는 것 중에 우선순위를 보자. 믿는다고 기도한다고 이 세상을 모두 도울 수는 없다. 때마다 다르다. 구원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이 언제나 다르다. 제사때문에 쓰러진 사마리아인을 도와주지 못했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행위로만 적용을 보면 안된다. 내가 섬길 수 있는게 무엇인지 생각하면 급한 것 중요한 것 중 뭐가 더 필요한지 나온다. 강박있는 사람들은 구원때문에 해야하는 게 따로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없고 해야하는 것만 있다.
영원구원때문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유일한 일을 생각하면 성령님이 알게 하신다.
적용/ 기도하겠습니까 구원하는 자를 돕겠습니까? 급한 일? 중요한 일?
시간과 공간의 할례를 받게 해주신다.
- 성령의 기적은 내게 있는 나사렛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6-7/ 베드로는 앉은 뱅이에게 적선 배풀기보다 그 다리를 놓고 예수님 이름으로 걸으라 했다. 무슨 기도 해야할 지 베드로는 알려주었다. 은금 없이도 끊임없이 줄것만 있음을 보인다. 한 절에 많은 메세지가 숨어있다.
졸면서도 오다보니 어느날 성령이 임해 꽂히는 말씀이다. 죽을 것 같던 사람이 살아난다. 유대인의 성전에 사치스러운 미문처럼 껍데기만 남은 것을 의미하는 미문. 대조되게 금과 은을 준게 아니라 예수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하는 베드로. 그때까지 목수의아들 예수님이름이 아주 천했기에 무시를 대다수가 해왔다. 그러나 부활 이후로 높어지는 이름이되었고, 같은 원리로 베드로도 무식했던 어부에서 이제 사도가 된 것이다.
'나사렛 예수님 이름으로 너는 지금부터 일어나고 계속해서 걸으라' 지속적으로 걸우라. 오른손으로 일으키며 이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발과 발목에 힘을 얻도록 도와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 성전에 두기만 하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몇 푼 더 주어 며칠 더 연명할 수 있게하면서도 이제는 자립할 서 있도록 해주신다. 복음은 이런 힘을 가진다. 나도 부모도 자녀도 각자 돈 몇푼으로 며칠 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해받아도 다 때가 있고 기다려야한다. 그리스도 이름을 주는 것만이 그를 40년만에 일어나 살게 하는 것이고 구원받는다.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이름을 주심으로, 그를 위해 40년 기다리신 하나님이 그를 드디어 약재료가 되게 하셨다.
자녀의 자립신앙을 위해 기다리기도, 냉정하게 보이기도 하는 때가 지나가야 한다. 그래도 말씀을 들으면 아~ 기다려야지 하며 현실파악이 된다. 그러므로 도리어 영적 앉은뱅이가 정말 무섭다.
어떻게하든지 데려와만 오면, 이해타산으로 줄것없어도 어느날 예수님 이름으로 일어나고 이제부터 계속 걸을 날이 온다. 발과 발목에 힘을 얻으니 스프링처럼 걷게되었다. 영육의 발과 발목에 힘이 없어 온 몸에 병이 들수도 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누구나 힘이 없고 자립이 안된다. 그러나 워낙 가진 게 많고 성품이 좋은 한 친구는, 영적 눈물을 흘리며 영접까지 했어도 자립할 수 있는 영적 상태가 아니다. 물론 목장은 안나간다, 그래도 빠지지 않는 것을 통해 슬슬 말씀이 이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목장을 가야한다.
적용/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걷고 싶습니까, 은금으로 기적을 얻고 싶습니까?
- 성령의 기적은 찬송의 기적입니다.
8-10/ 이 앉은뱅이 사람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송했다 한다. 내가 낫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먼저 찬송한다. 성령의 기적 중 가장 큰 상급이 하나님 찬양인데, 그대로 했다. 전인격적인 치유를 다 계획하시고 마침내 이루신 사건이다. 하나님의 세팅이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상관없이 일어난 일만 을 얘기하면, 그 이후 진도는 없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게 쉽지만 성령의 기적어야 한다. 하나님을 찬송해야만 기적이 나온다. 하나님 자체가 기뻐야겠는데, 앉은뱅이라서 슬펐다가 아니라, 앉은뱅이라서 예수님이름으로 만났다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찬송이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부부가 합치는 것 보다 둘이 같이 예배로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린 세상에 은금을 얻는것만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복음이 있고, 참된 worship만이 성령이다. 설레야 성령이다.
6: 25 동란 이후 피아노를 쳤는데, 가난하지만은 않았다. 학교가는 길에 피아노 학원이 있어서 졸라서 다녔고, 50될때까지 쳤다. 피아노를 가르쳤기에 신학을 하면서도 하다가 그만두었다. 앉은뱅이처럼 40년 동안 치던 피아노를 내려놓고 목회를 시작하려니 너무 혹독했다. 혹독하는 훈련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기에, 너무 컸다. 그런 혹독한 시련이 날마다 있어도 지금 다른 세계를 보고서 찬양을 하게 되었다. 이해타산을 쳐다 보면 얼마든지 남는 장사가 아닌데.
적용/ 무엇때문에 성전에 들어가고, 또 일어나서 가라는 것을 싫다고 합니까? 여러분에게 은 금이 없어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 쓰임을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고 하는 마음으로 있습니까?
앉은뱅이가 스프링처럼 일어나 찬양하는 그에겐 너무 새롭게 다가오신다. 누가 잘나서 교회오는가? 힘들고 원통하고 어려워서 교회온다. 당신이 앉은뱅이라면 찬미하고, 베드로라면 찬미할 수 있게끔 예수님 이름을 주어라!
우리교회는 정신과 가는 게 자연스러운 교회다. 의사들은 대부분 인본적 시각을 가진 분들과 신앙상담을 하려니 힘들다. 그 힘든 분들은 의사도 어려워하는데 목자들이 살려낸다. 병이 고쳐져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날 수 있는 복음/공동체가 하자.
약으로 도움 받을 수도 있겠으나 말씀보다 확실한 처방은 없다.
2019. 9. 29. 기도제목
박영준
안식
- 한 주 컨디션 잘 챙길 수 있도록
- 기도에 힘을 쓸 수 있도록
김주형
- 동생 상담까지 잘 지켜주시도록
- 동생을 위해 한 번은 섬겨볼 수 있도록
길태수
- 결과보다는 주어진 하루 하루 살아낼 수 있도록 (공부, 이력서)
- 이직에 대한 두려움을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기도로 하나님께 고민을 들고 갈 수 있도록
박성찬
- 기도를 할 수 있도록
- 하나님과의 오해를 놓고서 해석해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