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9. 29 주일예배>
일시 2019. 9. 29 3부 예배
찬양 #부르신 곳에서 #우리 주 안에서 노래하며 #Sing sing sing #우리 함께 기도해 #꽃들도
성령의 기적
본문 사도행전 3절 1-10절
설교 김양재 목사님
성령 충만하여 방언이 터지니깐 성령의 설교가 이어지고 유대인들이 반응해서 성령의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깐 오늘 기적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공동체에서는 방언의 역사도 일어나야 되고 신유(神癒)의 역사도 일어나야하고 또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들 교회가 말씀만 보고 있어도 암도 회복되고 가정도 회복되고 살아나는 역사, 살리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목장에서 하는 일은 교제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려야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나니깐 말씀대로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내 마음이 변하는 겁니다. 몸과 마음이 변하는 기적을 주면서 말씀 공부를 시켜가는 것이 성령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병만 고치면 뭐하겠습니까? 잠시 후에 죽을 인생이잖아요. 변화된 후에 주일 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 오면서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 가장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수요 오전예배에 본당을 꽉 채우는 것이 쉽지 않는 일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데에 그치지지 않고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기적의 역사는 늘 일어납니다. 오늘은 문자 그대로 못 걷는 자가 걷게 되었어요. 성령의 기적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의 기적은
첫째로 여전한 방식의 기도입니다. (1-3)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을 때 베드로가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이렇게 칭찬 받을 때,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실 때가 위기고 이때가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성령의 공동체에는 기도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도 피곤해서 졸더니 기도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제 구시는 오후 세시입니다. 유대인의 관습으로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데 오전 여섯시 저녁 여섯시 기도는 해도 오후 세시 기도까지 성전에 올라 기도하기에는 힘든 시간입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깐 충만해져서 설렘이 가득하니 기도도 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도라는 말이 서른 두 번이 나오는 데 기도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너무 진실한 기도를 하니깐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삶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주요 세 제자 중에 두 사람이었습니다. 부름 받기 전에도 직업이 같은 동업자였습니다. 성전에 올라갈새.는 한 번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올라갔다는 헬라어에서 미완료 과거라고 해요. 미완료 과거는 계속 되었다는 뜻이고 부정과거는 단일적이라는 뜻인데 이게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초대교회인들은 유대교 예배와 자신들의 예배를 두 번을 드렸을 것 같습니다. 두 교회를 섬기는 것이죠. 토요일도 가고 주일도 가고. 삼천 명의 성도를 가르치려면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의 관습을 쫓아서 이 기도시간을 늘 지켰다는 것이 적용이기도 했을 것인데 힘들어도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즐거움과 설렘에 성령의 선물을 주시니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날도 여전하게 기도시간에 올라가다가 기적을 일으키게 하신 것입니다. 저도 남편이 하루아침에 간 그날,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기도하게 하시니 그 자체가 기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담대하게 하루아침에 과부가 된 저의 문제를 담대하게 풀어가게 하셨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기도시간은 어떠세요? 무시로 하나요? 정해놓고 하나요? 또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오늘 하루도 내 목소리 톤이 내 감정에 좌우되지 않도록 그렇게 구체적인 기도 좀 해보십니까?
2절입니다.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 요한이 성전에 들어감을 보고 구걸하거늘)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되니.라는 말은 매우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일생 동안 걸어본 적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4장 22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나이가 40여세가 되었음으로 40년 간 굳어진 그의 뼈가 펴질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메고 오니깐 운반당하는 인생이고 사람들이 메고 오고 성전 문에 두는 것과 구걸하는 일, 메고 오고 성전 문에 두고 구걸하는 일이 미완료 과거
를 반복 사용해서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행해지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구걸이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미문(美門)은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인데요, 역사적인 명소에 아주 큰 문으로 화려하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에 통행이 많아서 한마디로 구걸하기에 몫이 아주 좋았어요. 큰 교회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 영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 앞에서 단지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앉아서 애쓰는 앉은뱅이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걷지 못하는 이 사람은 그 아름다운 성전에 앉아서 구걸을 하려면 성전은 뒤로 하고 앉아야 되지 않겠어요? 뒤로 하고 앉아야 되는 거죠. 세상을 향하여 시선을 다 뺏기고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구걸하기 위해서 앉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교회를 오는 것 같지만 한마디로 하나님은 등 뒤로 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선을 빙자해서 굉장히 외식하기를 좋아하는데 알맞은 장소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도움받기도 좋은 장소입니다. 외식하기 좋아하는 유대인들은 돈 통에 돈을 떨어트리면서 쨍그랑! 그 소리를, 자기가 동냥한 것을 다 알기를 원해서 쨍그랑! 앉은뱅이는 하나씩 동냥하고 가서 다시 돈 통을 비워놓고 다시 쨍그랑! 쨍그랑! 이런 것들이 서로 맞아 떨어져가지고 구걸을 평생 한 것입니다. 성전을 육신의 것으로 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몇 푼 집어주고 그것 때문에 일어나게 하고 일어나는 것들을 모두 포기한 사람들인 거에요. 그래도 손은 쓸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 밖에 안 해요. 돈 걷는 것. 걷지 못하는 것 때문에 손은 쓸 수 있어도 나는 못해하면서 끈으로 자기를 다 묶어 놨어요. 곳곳에서 도움이 오면 좋아하고 도움이 없으면 상처받고 못 걷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고 자타가 공인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상처받기에도 환경이 갖춰있어요. 교회는 몸만 오니깐 영적으로 교회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화려한 교회에 기생하면서 사탄에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오늘 날마다로 표현이 되어서 그런 구걸이 습관화 되어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마비된 상태인 거에요.
우리들 가운데 날마다 이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날마다 교회 오는 것 같은데 세상을 향해 있으니깐 장사를 하러 오는지 교제를 하러 오는지 구걸을 하러 오는지 자신만 압니다. 세상에 요구하는 것도 구걸이고, 세상을 끊지 못하는 것도 구걸이에요. 술 한 잔, 담배 한 대. 여자 하나. 모든 중독도 세상에 대해서 구걸하는 것입니다. 부부니깐. 부모니깐. 자식이니깐.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줘야 되지 않아? 하면서 맡겨놓은 것처럼 달라고 하는 모든 것이 구걸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하면 더 심각한 영적 앉은뱅이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나하고 상관도 없어요.
# 목자님이 이거 저거 하다가 청소를 하고 계세요. 그런데 청소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 이번 주에 뭐가 화가 났냐면 인정을 받고 있는데 뭐라고 부르냐면 최씨~! 했다는 거에요. 저한테 쓰레기를 관리사무소 뒤에 버렸냐고, 그 말까지는 좋았는데 최씨! 나는 최국장, 최단장, 최과장이었는데 그 조금 하나 높은 선임께서 최씨라고 하니깐 화가 나서 금새 속으로 병신같은 XXX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것을 목장에서 나눴더니 그 사람이 최씨라고 부를지라도 목자님 박선생님이라고 부르세요~라고 이렇게 다들 처방을 해주었어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주일 날 설교를 하시는데 죽어지내라고 처방까지 주시니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장식구들이 목자님이 최씨 맞아요~ 다 또 처방을 해줬다는 거에요. 이런 얘기를 아내가 해주겠어요? 아버지가 해주겠어요? 형제가 해주겠어요? 목장이 정말 너무 최고에요. 세상을 완전히 끊어내기가 힘들지만 목장이 있어서 이런 처방을 받는 것이 성령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이제 노인 백세 시대를 가면서 이런 일들을 다 겪을 일들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내 자신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는 가는데 교회를 뒤로하고 날마다 세상에 구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누가 태워다 주지 않으면 교회도 못 오고 와준다고 의시대진 않습니까?
성령의 기적
두 번째는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입니다. (4-5)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이런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가 보았어요. 그리고 주목했어요. 성전 미문 앞자리에 앉아서 오랫동안 구걸하며 사람들에게 무관심을 접한 앉은뱅이가 그냥 이런 베드로와 요한이 보여준 깊은 애정과 관심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을 거에요. 우리가 불신자에게 다가가 갈 때 복음에 대한 열정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관심이 먼저 아닐까? 싶어요. 앉은뱅이의 노예근성은 육적으로 무엇을 얻을까 만을 바라봅니다. 사람은 쳐다보지 않고 돈 통만 쳐다보고 있으니깐 구걸하고 있으깐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고 합니다. 교회 왔는데 사람 하나 안 쳐다봅니다. 돈통만 쳐다 봅니다. 여러분은 교회 와서 설교를 듣습니까? 핸드폰으로 시세를 살펴보고 있습니까? 똑같네요. 돈통만 쳐다보고 있네요. 예를 들면 교회 와서 주일 성수를 하면서 아이는 학교 붙을까? 돈이 벌릴까? 사업이 잘 될까? 그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 변화가 있어야 하잖아요.
40년을 다녀도 미문에 앉았다가 가면서 나는 교회 다닌다고 하기 때문에 3-40년 다녀도 주도기도문도 외울까 말까 합니다. 날마다 무엇을 얻을까? 이것이 관심이기 때문이에요. 십자가 설교를 해도 들리지를 않으니깐 날마다 십자가 설교 안 들리는 사람. 앉으나 서나 무엇을 얻을까 그것만 생각해요. 교회를 와도 아이를 가졌다고 유치부만 왔다가 설교를 안 듣는 부모도 많아요. 데려다 주어도 운동장에서 기다리는 남편도 또 많습니다. 그러면 오래 되도 안 변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또 와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잘 되길 바라면서 진짜 중요한 설교, 본인은 안 듣습니다. 미문 앞에 앉아서 성전을 오가는 사람만 계속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입었나. 저 여자는 왜 저걸 입었지? 그러면 당연히 이타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얻을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관심이 없으면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에 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전을 등지고 앉았던 졸았던 오다보니 누구를 만났죠? 베드로를 만났잖아요. 그것도 40년 만에 만났잖아요. 자기가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 모습 그대로 베드로가 와서 만나줬어요. 우리도 식구들을 오라고만 하면 됩니다. 정 싫으면 들어오는 성전 입구에만 앉아 있으라고 운동장 교인도 좋으니 오다가 정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교회는 묘한 성령의 기운이 있기 때문에 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식구도 오게만 하게하고 그리고 40년을 섬기는 지체가 있잖아요. 데려다 놓고. 메어 오고. 죽을 때까지 섬겨야 해요. 오기만 하게하고 40년 섬겨야 해요. 앉은뱅이 나이가 40이니깐.
[적용해보세요]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신입니까? 타인입니까? 오늘 베드로를 보면 또 다른 관점으로 기도하고 돕는 것 중에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까요? 내가 기도하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도와주고 갈 순 없습니다. 어떤 날은 기도해야 하고 어떤 날은 도와줘야 합니다. 그니깐 구원을 위해서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생각이 납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은 구원에 관한 일이라고 하죠. 믿음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중요한 일은 기도입니까? 지금 구걸하는 자를 돕는 것입니까? 유대인들이 강박관념을 가지고 기도 시간을 지켰는데 그게 왜 강박관념이라고 하냐면 뒤에 보면 기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 시간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고.... 강박이 아니고 구원 때문에 기도도 해야 되니깐 영혼 구원을 위해서 선택을 해야겠는데 시간과 공간 중에서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인가. 우리도 내가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섬길 부분이 생각나고 섬기기로 작정을 하면 이런 것들이 쉽습니다.
[적용해보시면] 여러분은 기도하겠습니까? 구걸하는 자를 돕겠습니까? 이것은 구원의 시각으로 급한 일을 하겠습니까? 중요한 일을 하겠습니까?
성령의 기적은
세 번째,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6-7)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7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적선을 베풀 생각은 하지 않고 그의 불구인 몸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합니다. 그에게 그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베드로 자신이 아무것도 없지만 은금이 없어도 끝없이 줄 것만 있는 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구절 가지고 내게 있는 예수님의 이름만 있으면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그 예수그리스도 이름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졸면서도 오다 보니깐 성령이 임해서 어느 날 말씀이 꽂힙니다.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부도나고 자살하고 싶고 죽을 것 같던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유대교는 은과 금이라는 표현처럼 사치스러운 미문처럼 껍데기만 남아서 동력을 다 상실해서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암시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베드로가 그 사람들이 은금을 안주니깐 나는 은금을 주겠다가 아니죠. 은과 금을 주겠다는 게 아니에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여기에 나사렛 지명을 붙인 이유가 뭘까요? 나사렛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천시되었습니다. 나사렛이 출신이었잖아요. 목수 아들이고. 처녀의 몸에서 잉태한.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그곳이 영광된 이름이 되었기 때문에 나사렛을 씀으로 예수님의 간증부터 베드로도 천한 어부출신 갈릴리 출신이었지만 베드로 자신의 간증까지 아우를 수 있는 말이 나사렛입니다. 어떤 장애인도 천한 사람도 나사렛 예수님을 높이시는 하나님께서 죽음 가운데서도 살린다는 뜻이니깐. 직역하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고 지금부터 계속해서 걸으라! 이얘기입니다. 할렐루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내가 어떤 비천한 환경에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예수님도 그랬다가 승천했습니다. 걸으라 말만 하지 않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이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발과 발목에 힘이 있도록 같이 있어주고 복음으로 힘을 얻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날마다 성소, 성전 앞에 갔다가 두는 것. 우리가 잔소리해서 어찌 고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몇 푼의 돈을 주며 며칠을 더 연명할 수 있게 하는 대신에 그의 다리를 완전히 치유하시고 걷게 함으로 스스로 경제적 행위를 통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영육 간에 자립을 허락하셨습니다.
복음은 이러한 위력을 가집니다. 우리도 자립신앙과 자립심을 갖기 위해 일어나 걷기 위해서 일어나 걷게 하기위해서 오해 받아야 되고 기다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든 치료도 마찬가지에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주는 것이 사십년 앉은뱅이었던 그를 살리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40년 앉은뱅이로 살아야 39년도 아니고 40년을 살아야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만큼 대단한 고통에서 만난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이 사람에게만 주어진 약재료 때문에 40년 기다려야 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이루어질 고난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40년이 잠깐인 것입니다. 자녀의 자립신앙을 위해 우리가 기다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돈도 끊어야 할 일이 있고. 냉정하게 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의 40년은 하나님이 얼마나 냉정해 보이는 시간입니까? 그러나 39년 10달도 안돼요. 40년 기다려야 되는 거에요. 정말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에요. 영육 간에 안 믿어지는 육적인 앉은뱅이는 도리어40년 만에 주님을 만났잖아요? 영적인 앉은뱅이는 50년, 60년, 70년이 되어도 못 만나는 사람이 많잖아요. 우리도 다 괜찮은데 영육의 발과 발목 때문에 온 몸과 영혼이 병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서 치료를 하면 좋겠는데 손잡아주고 복음으로 힘을 얻도록 도와줘야겠는데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이렇게 힘이 없어요.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시겠습니까? 은과 금의 힘으로 걸으시겠습니까? 오늘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오신 분이 있다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의 기적
네 번째는 찬송의 기적입니다.(8-10)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기가 막힌 것은 이 사람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거에요. 다리가 낫게 해줘서가 감사한 게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거에요. 성령의 기적 중에 하나님 찬송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가장 큰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 전염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에 부정하다고 여겨져서 성전 미문 앞까지는 갈 수 있었지만 성전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자신의 육신과 인격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에 이르는 전인격적인 모든 치유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 전인적인 치유를 계획하시고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쉽지만은 성령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그래야 감사가 나오는 거에요. 앉은뱅이였던 것도 내가 사십년 앉은뱅이어서 하나님을 만났지 하니깐 앉은뱅이었던 것이 너무 감사한 거에요. 그래서 낫게 해준 것이 감사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믿고 보니깐 성전 미문에 데려다 준 사람에게 너무 감사한 거에요. 그전에는 나를 왜 데려가냐고. 진정한 찬송이에요. 하나님을 찬송해야지 내가 믿게 된 감사해서 알콜 중독 아버지, 바람 핀 아버지, 폭력이 다 감사한 거에요. 그 아버지 때문에 그 엄마 때문에 믿었다고. 그런 사건이 감사지. 찬송을 안 하니깐 나를 왜 안 봤냐. 왜 바람을 폈냐며. 내가 그 상처 랄랄라.
이 원문은요, 성전으로 들어가면서가 주동사이고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찬송하니는 부사에요. 우리는 걷고 뛰는 것이 기적 같지만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주동사라 이거에요. 성전으로 들어가면 거기에서 걷고 뛰고 찬송하니가 나오는 거에요. 부부가 서로 합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에 부부가 함께 들어가서 예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멘)
성경을 보면 어디나 똑같은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은금을 공급하는 자가 아닙니다. 구제가 중요하지만 구제는 사회복지센터도 하는 거에요. 교회는 개혁, 의료, 구제, 선교 등의 동아리가 아닌 거에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복음 자체가 선포되고 교제, 성찬, 기도가 있고 다 같이 죽어지는 것이 있는 참 된 월십이 이게 예배 인 거에요. 이 예배 생명 공동체로 금과 은 나 없어도 나사렛 예수가 있는 곳이 생명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데 그냥 우리가 구제만 하고 그러면 내 의가 하늘을 찌를 거 아니에요? 참으라고 하면 그게 참아지겠습니까? 예배가 회복되어야 부부가 같이 사는 게 문제가 아니고 예배가 회복되는 게 가장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게 목적이라구요. 하나님 찬송하지 않으면 이러고, 저러고. 예수 믿어도 이거는 틀렸잖아.합니다. 저는 그렇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었기 때문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일어나서 걸었으니깐 구걸을 못하잖아요? 직업이 없어졌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청난 훈련이 남아있는 거에요. 살아온 날 만큼 훈련이 있는 거에요. 40년 훈련을 해야 하는 거에요. 나이도 많은데 글씨도 배우야 하고. 그래서 생각하다가 힘들어서 다시 구걸이나 할래. 이렇게 되는 거에요. 남북 전쟁 때 노예들이 자유를 줬더니 글도 모르니 다시 노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살던 데로 살래. 합니다. 이렇게 많지도 않는 수입 때문에 주님을 못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8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습니다. 여덟 살 때부터 6.25 동란 이후 쳤으니깐 우리가 그때까지는 부자였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래요. 우리 시댁에서는 가난한 집 딸이 말야 아까운 줄 모르고 선풍기 마음대로 킨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때 잘 살았어요~ 입학식 졸업식에는 안 왔지만 학교 가는 길에 피아노 학원이 있어 그렇게 보내달라고 졸랐어요. 그렇게 친 피아노를 제가 신학을 하니깐 50살까지 저는 총신대학에서 피아노를 20년 가르쳤기 때문에 앉은뱅이처럼 40년은 더 넘게 친 날마다 친 피아노를 내려놓고 목회는 처음 시작했잖아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치열한 입시를 거쳐서 거기까지 왔는데 완전히 무에서 다시 시작한 것이죠.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거든요. 앉은뱅이 40년 보니깐 이 사람이 새롭게 시작하더라고. 예수 믿으면 이렇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 우리가 소집사님처럼 목자도 되고 아들들도 잘 교육을 시킬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성전에 못 들어가고 무엇 때문에 일어나라고 해도 싫다고 합니까? 베드로는요,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음에도 그것을 다 오픈하고 맛디야를 뽑아 내니깐 이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 은과 금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으로 쓰임을 받아도 그만이고 안 받아도 그만이고. 이렇게 하나님만 찬송하고 가면 이런 앉은뱅이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줄 믿습니다. 누가 잘 나서 교회 옵니까? 다 못나서 오는 것이고 힘들고 어려워서 옵니다. 여러분이 앉은뱅이라면 일어나길 바라고 여러분이 베드로라면 앉은뱅이를 살려내시길 바랍니다.
우리들 교회는 정신과를 자유롭게 가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의사들도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의사에게 가서 왜 신앙상담까지 해요? 목장에서 하시면 돼지. 그런데 의사들도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우리 목자들이 살려내고 있는 거에요. 목장에서. 저는 우리들 교회 목자들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박수로 정말. 대단한 목장이에요. 약을 먹고 목장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기도하고 나눔하고 구원의 일을 처방 받으면 병이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령의 기적이 일어나면 남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이 잘 살아가는 거에요.
#공동체 고백
예배가 너무 설레는 집에 성령의 기적인 간증 하나 들려드리겠어요. 이 분들은 확실히 목장을 사모하고 너무 설렘으로 나오십니다. 이 대학을 졸업한 딸이 6년 동안 방을 한 번도 안 나왔다는 거에요. 한 집에서 살며 얼굴도 못 보고 밥 한끼 못 먹어서 목장에서 연말까지 딸이 방 밖으로 나오는 게 기도 제목이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 주일예배를 드리고 생각지 못하게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갔는데 딸이 화장실 갔다가 딱 마주친 거에요. 그래서 엄마가 우리 제발 대화좀 하자고 물고 늘어졌는데 딸이 그만 반팔 차림으로 핸드폰도 두고 집을 뛰쳐나갔다는 거에요. 날씨도 추워졌는데 돈도 한 푼도 없으니깐 아빠 마음이 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목장이 중요하죠. 목장에서 나누고 말씀의 지혜가 생겨서 가출 신고를 하고 경찰하고 CCTV로 아이가 다녔던 동선을 뒤지면서 살펴보았지만은 결국 못 찾고 돌아오는 길에 상가 끝에서 딸이 보인 거에요.
이분들이 옛날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딸을 보았다면 닦달같이 달려가 붙들텐데 저렇게 하면 또 도망 갈 수 있겠구나 하며 조심조심 미행했어요. 어느 아파트 빈 공간에서 종이박스를 덮고 추위를 피하면서 머물렀던 것 같아요. 추우니깐. 조용히 경찰을 불러 부탁드리고 그 다음에 벤치에다가 불러다 놓고서 아빠가 이제 먼저 무릎을 꿇고 30년 동안을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는 거에요. 성장하면서 너무 억압을 했고 사죄하고 그리고 아내도 자기 죄를 고백하고 딸에게 사과를 했어요. 집에 데리고 가면 또 마찬가지니깐 경찰관에게 응급실로 병원 좀 데려다 달라고 해서 치료를 받게 했는데 이틀을 굶었으니깐 건강검진도 하고 정신과적인 치료도 받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의사가 글쎄 이 딸과 대화를 해보니 오직 엄마, 아빠에 대한 분노만 있고 너무 정상이라는 거에요.
그래도 치료를 받게 하고 싶어서 목장에 계속 알리고 목자님과 어떻게 할까를 계속 나눴더니 이런 상황에서 목자님의 아내이신 권찰이 지금 정신과에 가면 폐쇄병동에 가는데 그러면 딸이 엄마 아빠에 대한 분노가 더 안 좋아질 수가 있다고 그래서 딸에게 세 가지 제안을 했는데 첫 째, 저녁에 한 번씩만 저녁을 같이 먹자. 둘 째, 우리와 대화를 하자고 했더니 싫다고 해서 카톡으로 하자. 세 번째는 일주일에 한 번 정신과 치료를 같이 받아보자고 했는데 딸이 세 가지 제안을 다 오케이를 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 주 내내 저녁 6시가 되면 저녁을 먹고 그러면 카톡으로 낮에는 밥을 먹었니? 일상적인 대화를 카톡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백화점에 가서는 핸드폰 하나를 바꿔주고. 완전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 6년 만에 딸과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는 이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아십니까? 성령의 기적은 대단한 성공이 아니에요. 오늘 본문도 40년 동안 못 걸었던 자녀가 부모가 지체가 지금 일상의 복을 누리게 된 거에요. 그 목자님과 권찰님의 가르침에 순종해서 적용을 너무 잘 했잖아요. 난리를 치고 요란을 치지 말고 무슨 일이 일어나면 왜 내 기도제목은 올렸냐. 이런 얘기는 하지마시고. 그러니깐 병이 안 낫는 거에요. 그냥 목장에서 처방하나 하는 것을 성령께서 도와주고 계시는 거에요.
공동체가 같이 모여서 기도를 하니깐 다 약재료를 내어놓으니깐 그래서 이 순종해서 6년 만에 딸이 나왔다는 것이 이거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초원님은 그 전화를 받고 청년부 목사님과 연락을 주고받았고요. 이 아이가 청년부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목장을 나가게 되면 이런 기적이 또 없잖아요? 다음 주일에 데리고 나오려고 여러분들 기도 좀 해주시라고. 이제는 완전히 그 아이가 속을 썩히는 바람에 너무 이 가정이 예배가 회복되었어요. 앉은뱅이가 40년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구원을 하고 있잖아요. 육적인 앉은뱅이는 이렇게 기적을 맛보는데 영적 앉은뱅이는 기적을 보이기가 어렵잖아요.
이 가정은 너무너무 예배를 사모하잖아요. 뭐가 축복인지 몰라요. 예배를 사모하게 되면 딸도 고쳐주는 거에요. 6년을 안 나온 딸이 세 개를 오케이를 했잖아요. 우리 집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어가 아니라 그동안 잘 나와서 섬기니깐 목장 기쁘게 나와 섬기니깐 여러분들은 예배에 설렘이 없다고 했는데 이런 가정에 설렘이 없겠어요? 허벅지를 쥐어 짜도 고난이 없으니깐 그냥 습관으로 가죠.. 뭐. 목사님 말씀도 요즘 설렘이 없어. 설렘이 없어요? 다 없다고 했어요. 내가 없다고 한 목장보고서만 읽었나? 찔림을 받아야 하니깐. 제가 막 회개가 되고. 예배가 그렇다고 하지? 우리들 목자님들 파이팅입니다. 금과 은 없어도 같이 얘기만 했다는 것도 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성령의 기적을 대단한, 일상적으로 밥 먹고 같이 얘기하고 이런 것이 얼마나 일상의 기적인 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집이 많잖아요. 막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에 안 드리면 큰 일 날 것 같고.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모였어요. 여러분 그런 일상의 기적을 위해서 다들 기도하시길 바래요.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기적은 여전한 방식의 기도에요.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입니다.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에요. 그리고 성령의 기적은 찬송의 기적입니다. 우리 금과 은 나 없어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1. 은과 금 나 없어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갈 새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 구걸을 하였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2.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오 구원의 그 이름
예수 나 외쳐부르네 예수 그리스도
기도제목
기도시간과 기도내용이 좀 일관성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성전을 등지고 세상에 구걸하지 않도록 내 모습, 남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게 해달라고. 구원의 시각으로 중요한 일을 분별하게 해주시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해달라고. 나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달라고.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공동체 고백에 나온 자매를 위해서 우리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얼마나 기적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환상적인 기적을 맛보지만은 오늘 성령의 기적에 대해서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두 곳의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시간을 지킨 것을 보면서 여전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이 힘든 것을 고백합니다. 남의 모습은 인정이 되는 것 같은데 내 모습이 인정이 안 되는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 교회를 아름다운 교회 와서 교회를 등지고 앉아서 세상을 향하여 구걸하며 나의 상처를 마음껏 뿜어대면서 기다리지 못해서 한 푼 주어지고 일어나지도 못하게 하고 일어날 생각도 없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의로 돕고 도움을 받고자 할 때 40년의 장애가 길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너무 냉정해 보이고 응답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시간을 통해서 인내를 가르치시는데 기다리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주님 참으로 오늘 베드로가 요한이 앉은뱅이를 주목한 것처럼 우리도 나자신을 주목하고 다른 사람을 주목하여서 은과 금 내게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선포할 수 있는 확신을 주길 원합니다. 영적, 육적 예수님을 만나기도 어렵고 육적으로 상처에 찌들어서 일어날 수 없다고 내 고난을 너희가 아냐고. 외치는 모든 이런 분을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아버지 걸을찌어다. 걸을찌어다.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오늘 그 자매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앉은뱅이가 40년 만에 일어난 것처럼 일어나서 서서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매가 되어서 온 집안에 간증거리와 기적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요즘 나라를 위해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진영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논리로 아버지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모든 아버지 육적인 장애에서 다 일어나 제대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시고 살려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나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나라 살려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령의 기적을 내려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9. 29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
일시 2019. 9. 29 4-6시
장소 7층탄설홀옆 한적한나눔실
참석 정정환목사님, 한수진, 이지민, 조예진, 이은영
나눔 한 주 근황과 영적 육적 앉은뱅이와 같은 모습을 목사님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나누어보았습니다.
기도제목
우지현
1. 취업을 준비하면서 우상에(세상에서 높아지고 싶은 마음) 자꾸 하나님을 끼워맞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에 따라갈 수 있기를.
2. 엄마 치료 방향을 잘 인도해주시기를. 인간적인 마음으로 너무 미리 걱정하지 않도록..
이은영
1. 한 주도 직장안에서 남은 교육 잘 받고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도록.
2. 기도생활 되돌아 보고 목자언니 본받아 믿지 않는 가족과 주변사람, 그리구 울 목장 위해 기도하는 한 주 보내도록.
한수진
1.비교의 감정으로 자꾸 무너지는 마음을 말씀으로 잘 다스릴수 있도록
2. 목장식구들을 위해, 또 내가 일으켜야할 앉은뱅이 같은 주변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할 수 있도록
#함께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우리 목장 예배회복과나아가 관계 회복을 위하여 기도해주세요. 현재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친구에게 주님께서 먼저 찾아가주시고 우리가함께중보함으로예배에 나올수 있도록 다시 예배가회복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