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9. 22 주일예배>
일시 2019. 9. 22 3부 예배
찬양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주 사랑이 내게 들어와 #예수 나의 첫사랑 되시네 #주님 내 안에 #성령이 오셨네
성령의 공동체
본문 사도행전 2장 42-47절
설교 김양재 목사님
공동체하면 우리는 설레고 할 말이 많죠. 제 방송도 김양재 목사의 공동체 고백이잖아요. 제가 예전에 결혼 생활 때 힘든 것은 공동체가 없어서... 이혼, 자살을 생각했었죠. 건강한 교회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난다는 말은 정말 진리 중에 진리입니다. 오늘은 이 세상의 대안인 성령의 공동체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오직 경건 생활에 힘쓴 공동체입니다. (42)
성령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서 세례 받고 죄 사함 받아 성령의 선물을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성령이 회개를 하니깐 내가 안식일 안 지켜서 벌 받았어. 이런 회개가 아니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깐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이사야처럼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회개를 하게 되었어요.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모이니깐 성령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 성령의 공동체가 교회의 원형이 되는 것이죠. 초대 교회의 탄생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시고 좋았더라처럼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이 재창조의 공동체는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해요. 누가는 그들이 말씀의 공동체에 접붙여진 이후에도 어떻게 공동체에서 양육을 받으며 자라갔는지 설명합니다.
42절이에요.
(42 그들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네 가지로 보겠는데,
1)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기도만 힘쓴 것이 아니라 힘쓰다에 헬라어 동사는 스스로 무엇에 헌신하다의 뜻에 지속적이고 집착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미완료 시제라고 할 수 있죠. 계속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힘쓰다가 원문에는 맨 앞에서 쓰여서 가르침, 성도의 교제, 성찬, 기도에 전념했다는 것이 힘쓰다에 다 걸려서 모두 연결이 됩니다. 기도만 힘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알지만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구속사로 꿰는 것은 성령의 선물이었습니다. 회개가 아픈 것입니다. 가슴이 아픈 것. 그러니깐 죽을 것 같아요. 그런 아픔이 오니깐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살고 싶은 거에요. 죽을 것 같으니깐. 그 살고 싶은 것이 말씀인 것이에요. 가르침을 받고 싶은 거에요. 그런데 먼저 구속사의 말씀을 받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에게 이 사람들도 똑같이 예루살렘 성전에 나갔지만 이 말을 찔렸으니깐 그 열 두 제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자발적으로 들었습니다. 이제 보통 생각하면 사도들도 똑같이 성령을 받았으니깐 내가 배울 필요가 뭐가 있나. 이럴 수 있지만은 그들은 공부로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한 일이라고는 예수님을 못 박았잖아요. 이제 성령의 설교로 가르침을 받는 것은 출발이 다릅니다.
제가 생각해보니깐 교회에서 반주하고 학교, 교회 모두 춘계·추계 부흥회가 있고 전 학교에서 클라스 채플도 있고 성경 시험도 있고 말씀 받는 구조 속에 있었어요. 성경 시험도 백점을 받았으니깐 암송한 것들도 있었던 것이에요. 이런 것들이 몸에 익혀져 있어가지고 제가 성령을 받지 못해도 어려서 교회가고 큐티하고 말씀보고 암송하는 것들은 너무 필요한 것들이었어요. 생각해보니깐 제가 또 종교부장한 기억도 있더라구요. 만세전부터 택자가 맞습니다. 생각도 안나는 종교부장이 기억이 났습니다. 제 요지는 아이들은 주님도 모르는데 교회오고 큐티하면 뭐해요? 자리만 차지해서 핸드폰만 하고 있는데 하시는이런 분이 있다면 몸이 기억하는 말씀으로 가르침 받는 구조에 있는 것은 최고의 구조에요.그렇기에 저도 믿음이 미약했지만은 죽고 싶어도 교회를 떠난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저처럼 성경 시험 보는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니깐 큐티할 때 한 구절씩 암송 좀 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안 되도 아이들은 기억력이 좋거든요. 잘 외울거에요. 여러분들이 나도 못 외는 걸 왜 애들보고 외우라고. 그렇지만 아이들은 온몸으로 받아들이니깐 한 구절씩 외우라고 하면 아이들이 말을 잘 듣잖아요? 안 듣는데.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무슨 암송까지.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인 우리 아이들에게 성경 암송을 하라는 말 안하고 싶지만은 한 번 해보셔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가르침만 받다가 성도 여러분들이 복음을 잘 전하도록 가르칠 사명이 주어졌는데. 그러니깐 담임목사만 주인공이 아니라 평신도도 많이 가르쳐야 되는 교회가 되었어요. 그러다보니깐 도리어 평신도들이 유명하게 되어서 곳곳에 나가서 전해야 할 일들이 있고. 성경 공동체 맞는 것 같습니다. 목장과 일대일 띵크 양육을 통해서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둘 중 하나는 다 하고 있기 때문에 한결같이 누구든지 가르치고 배우고 말씀을 사모하는 공동체 맞는 거 같애요.
그런데 초대교회가 이런 순수성을 유지한 비결이 좀 있는데요. 가르침의 내용이 성령의 역사로 똑같았기 때문인데요. 사도의 가르침에서 사도에는 복수고 가르침에는 단수에요. 원어로 보면. 베드로의 설교로 인해서 예수를 믿게 된 수천 명의 신도들에게 사도가 복수니깐 열 두 사도들이 다 가르쳤다는 얘기고 가르침은 (베드로 설교 들었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원, 복음만 가르쳤다는 얘기죠. 그들은 똑같은 율법을 가지고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정죄했잖아요.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한 게 예수님이 왜 세리와 먹고 마시는가. 너희들은 거짓 마귀에게서 났다고 하니깐 이제 똑같은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 잡아 죽이는 데에만 썼습니다.
회개가 안 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성경 공부를 했어도 자기가 죄와 의의와 심판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늘 자기는 옳고 남은 틀렸어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늘 자기는 옳고 남은 틀렸어요. 성경 공부를 매 수십 년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과 높아지심. 하나님의 구속사에요. 그리고 계속계속해서 회개를 해야 되고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근거가 되고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계속 전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가 울려 퍼지는 곳에 참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문제로 생각하면 그곳에 구원의 문제가 있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배우고 가르치면 다른 인생의 문제는 해결이 되는 거에요. 사람의 본분이에요. 진리를 가르치고 배운 것이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시간과 공간과 사람과 사건과 역사와 생사를 배웁니다. 그런 것이 오고가니깐요. 그런데 진정한 배움이란 그런 문제에서 예수님의 시각으로 듣는 작업과 깨닫는 작업을 하는 거에요. 그런 모든 오고가는 인생사 속에서. 잘 듣고 깨달으면 그 적용은 결과를 기뻐하면서 세상의 시각에서 U턴 하는 것이죠. 이게 가장 좋은 가르침과 배움이에요. 어떤 일이 와도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고 듣는 게 최고의 가르침이고 최고의 배움인데요. 성숙할수록 어디를 가거나 만나거나 배울 수 있는 거에요. 우리는 늘 하늘에서 놀아야만 잘 배우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올바른 말씀을 배우고 듣는 것이 중심이 되다 보면은 사실 너무 바빠요.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을 할 시간이 없어요. 학교라서 할 수 없었지만은 주일, 수요일, 목장에서 가르침 받고 큐티로 개인 예배로 가르침 받고 또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우리들 교회는 특세도 부흥회도 성경공부도 따로 할 시간이 없었음에도 초신자도 다 같이 큐티를 하며 오게되니깐 가르침 받는 구조 속에서 사실 잘 정착을 하는 것 같아요. 가르침이 십자가이면 이건 굉장히 그 교회가 굉장히 힘든 교회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생명의 문은 좁은 길이고 사망의 문은 넓은 길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이 십자가의 가르침이 계속 이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결국 우리 사건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어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가르침을 잘 받고 있습니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경건한 생활
2) 성도의 교제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 이후에 나오는 성도의 교제는 아주 성경 전체에서 강조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의 교제에는 정신적인 교제 뿐 만아니라 물질적인 교제이기도 한데요. 교제에 해당하는 코이노니아라는 헬라어는 여러분들도 많이 알고 있는 단어인데요. 실제적으로 성경에서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 보면 사귀다의 의미로 번역되고 로마서 15장 26절에는 헌금의 의미로 사용 되었어요. 그니깐 정신적 육적인 교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정신적인 교제, 영적인 교제, 육적인 교제, 물질적인 교제가 서로 되었어요.
우리들 교회 목장은 교제의 장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곳인데요. 가르침을 활발하게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곳이잖아요. 사람은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본능이 있어요. 자리가 마련되면 그것만도 좋은데 말이죠. 자기의 십자가 가르침이 확실하지 않으면 쪼금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나누는 것인데 굉장히 균형을 잘 잡아주기 때문에 이번 우리 현수막에 치우침 없는 걸음으로 Balanced Life가 쎠져 있습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균형을 잡기가 진짜 어려워요.
경건한 생활
3) 떡을 뗐습니다.
성찬이죠. 성찬(聖餐)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신 몸이고 보혈입니다. 우리들 교회는 휘문의 툭수한 상황으로 일 년에 한번 성찬식을 하지만은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애찬(愛餐)으로 성찬을 했어요. 공동체 형제 가운데 가난하여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지체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떡을 떼면 성경에는 성찬을 나타내는 그런 용어에요. 매주 목장에서 나누는 식사교제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애찬 성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을 억지로 했다면 진즉, 없어졌을 거라 생각을 해요.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경건한 생활
4)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여기도 원문에 보면 기도들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어요. 이 기도에는 개인기도, 공동기도가 다 포함되어 있는데, 기도하다라는 이 동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감정이나 직감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하는 것을 알려줘요. 그니깐 기도제목 나누는 것은 삶을 오픈 하는 것을 의미해요. 우리들 교회 오는 강사님들이 기도제목만 봐도 맨날 놀라세요. 이혼을 막아주세요. 구치소에 간 것이 구원이 되도록. 아이가 학폭위에.. 어떻게 이런 얘기를 기도제목에 내놓을 수가 있냐고. 기도제목만 봐도 은혜를 받으시더라구요. 그러니깐 우리가 기도제목을 가르침에 따라 교제하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보혈의 공동체가 되면 이 기도제목 나눈 것이 너무 쉬어지는 것이에요. 오픈이 쉬어지는 것이에요. 이렇게 말씀에 따라 기도를 해야 된다는 거에요. 말씀 없이 기도를 했다가는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죠. 그래야지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굴복시키는 게 되는, 그런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이죠.
# 이런 기도제목도 또 올라왔더라구요.
목사님, 저는 마음 속에 미움이 너무나 많아요. 마음 속에 미움이 너무나 많아 힘들어서 예수님 안 믿고는 못 견뎌요. 예수님 십자가에 못을 좀 빼드리고 싶은데 돌아서면 나를 향한 사랑을 도로 까먹어요. 지능의 문제가 아닐까 의심이 될 때도 있어요. 수업 시간에 듣고도 모르면 선생님께서 안 듣고 뭐했냐고 말하잖아요. 듣고도 일분 안에 까먹는 것도 사실 가능하대요. 저 하나님 사랑 잘 기억할 수 있도록 기도 좀 해주시고요. 아직 하나님께서 때가 아니라고 대답하시면 성격이 급한 성도니깐 때를 좀 당겨달라고 기도해주시길 바래요.
이런 기도제목도 올라왔네요.
이처럼 말씀 안에서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다 나누는 것이죠. 교제와 성찬과 기도를 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경건 생활이었고 삼천 명이 더해졌는데 조금도 혼란 없이 말씀과 지도력이 확고히 서있으니깐 질서정연하게 사도들의 가르침 받아서 교제하고 떡 떼고 기도하기를 힘썼어요. 사실 지나고 나서 보니깐 우리들 교회가 평안한 것은 이 순서대로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적용해보세요] 사도의 가르침, 성도의 교제, 떡을 떼며 기도 중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안되고 무엇이 잘 됩니까?
이렇게 경건 생활을 지속적으로 힘쓰면
두 번째로 기사와 표적의 공동체가 됩니다. (43-45)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여기서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다음 절 44절에 나오는 믿는 사람과 대조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여금 기사와 표적들을 보면서 갖게 되는 영적인 두려움. 와~ 대단하다. 사람에게 정죄감과 두려움을 주신 참된 성령의 공동체는 영적 두려움이 전파가 되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하여 신령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죠. 신령한 사건이 뭡니까? 온갖 종류의 문제가 일어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온갖 종류의 해결이 일어나서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문제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게 문제다. 이 말이 맞잖아요. 문제가 있어야지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는 거잖아요. 얼마나 문제가 축복이에요. 그럴 때마다 영적 진리인 말씀의 표적이 나타나잖아요. 뭐가 잘 됐다보다 진짜 기사는 내 현재의 이유를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감사하니깐, 놀라가지고 기사가 되가지고 말씀 딱 붙들어 그것이 표적이 되는 거잖아요.
한 집사님이 자기의 목원을 나한테 소개를 했어요.
목사님, 귀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너무 사모하는 목원 아무개 집사님이 조선족이신데, 아픈 남편으로 인해 자녀가 있는 중국으로 다시 들어가시기로 적용을 하셨어요. 이분의 남편이 뇌경색을 앓은 지 15년 되고 거동만 겨우 했는데 최근에 왼쪽으로 완전히 마비가 와버렸다는 거에요. 그래서 누워있는 남편 대소변 받아내고 간호하려고 들어갔는데 이분이 대소변처리하면서 너무 마음이 힘들고 전도할 힘도 없었는데 목사님 설교 들으며 끝까지 기쁨으로 잘 감당해야 하는데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했는데 잘 죽겠습니다. (라고 음성 메시지를 보내오셨다는 것이에요.) 우는 자와 아픈 자를 보듬어 주는 성령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런 적용이 가장 기사와 표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건데 현재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적용하는 사람이 가장 최고에요.
기사와 표적 중에서도 오늘 본문에서 가장 큰 표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44-45절이에요.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그러니깐 기사와 표적이 나오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 서로 통용하는 유무상통(有無相通)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이 가르침, 교제, 떡, 기도 후에 나오는 적용이라고 보여지는 것이죠. 믿는 사람이 다함께 있으니 그랬는데, 3000명이 어떻게 다함께 있겠어요. 그러나 삼천 명이 어떻게 다 모일 수 있었겠습니까. 돈도 없고 모일 곳도 없고. 그런데 이게 가치관이 같으니깐 다같이 있어 표현이 가능한 거에요. 내 남편, 내 아내가 가치관이 같지 않으면 평생을 같이 살아도 함께가 안돼요. (가치관이 같으면) 3천 명도 함께 모여가 돼요. 성령이 임함으로 가족이 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깐 사랑과 믿음과 소망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죠. 이렇게 가치관, 말발굽이 치는 이런 아픔이 있으면요, 나눠 쓰는 것이 아깝지가 않아요. 목장 하는 게 바로 그거죠. 말발굽 고통이 있으니깐 끊어지지 않고 목장 공동체를 하는 것이 바로 기사와 표적인 거에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이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을 보면 850명의 바알 아세라를 섬겼는데 그 끝에 돈이 있다고 그랬어요. 바알선지자를 죽이라 한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죠. 그러므로 자기를 살리고 자기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에 돈이란 가공할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가 되었다는 말씀 앞에 회개하고 자기의 재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이때 없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 세상에 돈이 미치지 않는 곳은 가정과 교회뿐인데 그 가정과 교회에도 세상이 들어왔어요.
#이단과 공산주의
여기에서 이 구절을 가지고 유무상통한다니깐 이단이 나오고 공산주의가 나왔죠. 이단이나 공산주의자들이나 다들 강제적으로 공유를 하는 거잖아요. 공산주의의 경우에 초대 교회와는 다르게 자발성이 없는데 무조건 공유하고 국유화하는 것들 이것이 목표이죠. 가난한 자들을 향한 자발적인 사랑과 공동체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한 것이 아니잖아요.결국 이단들도 실패했고 또 실패할 거에요.
6.25동란 직후에 이단들이 활기를 쳤어요. 우리 엄마의 아는 이모 S이모는 굉장히 배우고 돈도 있었는데 모든 것을 팔아서 그당시 신앙촌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이런 초대교회를 본받는다고 팔아서 들어가는 것. 우리는 그곳에서 만든 신앙촌 물건들을 사서 썼어요. 얼마나 품질이 좋은지 몰라요. 아이러니합니다. 우리는 분별이 안돼요. 이단이 만든 물건도 좋으면 갖다가 써야 되나 안 써야 되나. 공산주의는 부한 계층을 악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빼앗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자는 거에요. 잠시는 좋잖아요? 간부들은 그런데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역사는 끊임없이 공산주의 몰락을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돈이라는 게 나를 통과해서 누군가에게 가야하는데 이런 유무상통하는 모습은 흔한 경우가 아니라서 성경에서만 나와요. 우리가 6.25 동란 때 다 팔고 들어갔듯이 전쟁 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깐 쉬어요. 그래서 이렇게 힘들 때 이단이 판을 칩니다. 그리고 전쟁이 있다고 하면 유무상통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이 기승을 부릴 땐 항상 유무상통이 쉬어요. 초대교회 때에도 시한부종말론이 득세를 했는데요, 로마의 핍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죠? 쉽습니까?
초대교회에 유무상통 모델이 현대 모든 교회에서 적용해야 될 모델로 문자적으로 제도화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은 물질을 내려놓고 유무상통하는 모델이 성령의 공동체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후에 이들이 지하 감옥에서 이때를 생각하며 희망을 가졌을 것이에요. 하루 아침에 3천 명의 공동체가 갑자기 모였는데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천하에서 수포라 흩어진 나그네가 다 모였어요. 갑자가 어떻게 자고 먹고 하겠습니까? 집이 몇 채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음식은 또 어떻게 공급을 해야지 되겠습니까? 그러니깐 우리 인간의 힘으로 이럴 때가 힘들 때인데 이것이 상상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지난 번 여호사밧이 사면초가에 몰렸는데 주여~해가지고 구함을 받은 것처럼 지금도 그런 거 같애요. 그런데도 가능했잖아요.
모두가 같이 모여서 다 내 것이라는 자가 없어서 그랬지만은 지상 공동체는 완전하지 않아서 이렇게 뜨거웠던 초대교회도 잠시 후면 계시록 7교회만 봐도 서머나, 빌라데피아 교회만 칭찬을 받고 작은 교회, 가난한 교회만 칭찬을 받고 나머지 5교회는 마지막 라오디야교회 토하여 내치리라. 우리가 잠시 후에 이렇게 되는 거에요. 우리가 이 땅에 쪼끔만 편해지면 전부다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이것이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종말론은 잘 모르지만, 이때도 임박한 종말이었지만 예수님이 안 오셨잖아요? 지금도 그래요. 그러나 가장 확실한 건 개인의 종말론이죠. 나는 죽어요. 이것은 확실하잖아요. 이 종말론을 확실히 믿는 자는 주 안에서 믿는 사람들은 유무상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개인의 종말론!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성도 체휼은 어느 정도 입니까? 몇 프로쯤 될까요?
세 번째,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입니다. (46)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 벌써 돌 지난 손녀 딸이 아멘 합니다. 몸으로 가르치세요. 하여튼 음식 먹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사와 표적의 공동체가 되면 모이기를 힘쓰게 되는데 모이기를 힘쓰는 것(교제)과 떡을 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42절에 나왔는데 여기에서 반복하는 게 아무리 가르침을 받아도 모여야 하고 떡을 떼야 되는 거에요. 여기에서 반복을 합니다. 이게 성전에 주일 날 모이는 것 너무 중요하지만 집에서 모이는 것도 기쁨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큰 모임, 작은 모임이 저절로 잘 모여져서 초대 교회의 원형을 보여주는데 기뻐할 것이 없는데도 예배가 기쁘니깐 애찬을 나누는 것이 즐거운 거에요. 그동안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녔잖아요.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 모이는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요. 기쁘지 않았으니 한 짓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었죠. 그런데 처음으로 달려가고 싶은 예배 공동체가 생겼어요. 설레서 너무 가고 싶은 곳이 되었어요. 내가 사모하는 공동체가 탄생을 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의 모든 예배가 설렘이 있고 매주일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 띵크 양육, 찬양 때마다 다 설렘이 있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깐 성령의 선물을 경험하면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서 이 땅에서 보고 싶은 게 없어졌어요. 모든 것에 비교 대상이 없어졌어요. 왜냐하면은 최고의 왕을 봤어요. 이 세상에 어떤 왕도 비교가 안 되는 거에요. 그것을 본 것이 성령의 선물인데요. 이 세상을 탈출 한 거에요. 다른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탈출했다고 안전한가. 그렇지 않죠. 그래도 한번은 탈출 했어요. 그러면 한 번 탈출하면 부족해도 뒤로 돌아가진 않아요. 이것이 성령의 선물이에요. 베드로가 성령의 선물을 받기 전에는 날마다 실수하고 물고기 잡으러 가고 세 번 부인하고 이랬잖아요. 복음서에서는. 그런데 사도행전에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깐 회개하고 그 물 세례, 성령의 세례 다 받으면은요, 사도행전에는 베드로가 뒤로 돌아가지 않잖아요. 한 번 탈출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그때부터 걸어가는 게 너무 부족해요. 그래도 완전치 못해서 베드로도 바울에게 야단 맞거든요. 그러니깐 완전해서가 아니고 오뚜기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거에요.
그런데 부족해도 돌아가지 않는 비결이 뭐냐면 한결같이 예배가 설레고 사모함이 넘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목장을 하는 것. 설레서 하는 것. 그러니깐 회개가 참된 회개가 되니깐 내 몸이 기억하는 죄들이 많으니깐 회개할 것들이 끝까지 있지만은 그러니깐 예배가 설렘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들 맨날 입으로만 회개하고 예배에 설렘이 없으면 아직도 회개가 안 된 것이죠. 아직도 죄를 모르기 때문에요. 참된 회개를 안 하니깐 예배가 설렘이 없는 거에요. 예배가 설렘이 되면 말씀으로 교제하니깐 동창회, 지연, 학연을 사모하지 않게 돼요. 가기는 가야 되지만.
# 저야 말로 교회를 다녀도 일류를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은 그때는 설렘이 없었어요. 경쟁만 있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이 이십 몇 년이잖아요. 그러고 나서 50여년을 더 가깝게 살고 있지만 계속 설레면서 올 수 있는 공동체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니깐 이것이 바로 성령의 선물이고 공동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쬐끔 일류를 경험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가 쓸 수 있는 게 뇌의 5%라고 하잖아요. 탈출하면 95%를 쓸 수 있다구요. 그러니깐 아이들에게 말씀, 예배를 몸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망하기 전에는 세상 모임도 끊기 힘듭니다. 망하기 전에는 이거 다 못 끊어요. 그래서 초대교회 핍박은 참으로 선물입니다. 핍박이 있었기에 이런 성령 공동체가 가능했어요. 지상교회는 힘든데 이런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거에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설렘으로 예배에 오십니까? 습관적으로 오십니까? 아이 뭐~ 설레기까지.. 이런 분들이 많으시겠죠.
성령의 공동체
네 번째는 날마다 구원을 더 해가는 공동체입니다. (47)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모이기를 힘쓰면서 언제나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궂은 일도 화나는 일도 우리가 가르침을 잘 받고 성령의 교제를 하게 되면 그 적용을 잘 하잖아요? 너무 슬픈데 남편 간호하러 갔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칭송을 받겠어요? 갔으니깐 적용을 했잖아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게 된 다는 거에요. 내적인 충만은 외적인 충만도 가져오는데 내가 하나님을 찬미함으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는 거에요. 이런 말씀의 공동체에 접붙여가진 자와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하늘과 땅 차이인거에요. 말씀의 가르침만 받고 교제와 성찬과 기도가 없으면 표적과 기사가 안 나타나고 그리고 이제 이런 유무상통이 일어날 수 없어요. 그런데 가르침만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혼자서 가르침만 받으면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신앙 길에서 퇴보해요.
그런데 공동체에 접붙여지면 부흥처럼 120명에 3천 명이 더 왔잖아요. 자랄 거에요. 생각, 마음 습관, 언어.. 이런 인격들이 계속해서 탈출했으니깐 그때부터는 자라가기 시작하는 거죠. 십자가 가르침을 잘 받고 영육 간의 교제를 잘 하고 유무상통하면 저절로 등경 위에 불이 되어가지고 비춰주는 삶이 되니깐 안 믿는 사람들이 빛을 따라서 오게 되고 진짜 별 프로그램을 안 해도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거에요. 이 초대교회가 바로 이래요. 칭송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적용을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선물로 하게 되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도 성령의 감동을 받는 거에요.
그렇다고 개역 개정에 칭찬 받았다고, 내가 예수만 믿으면 가르침 받아 교제 잘 하면 모든 사람에게 칭찬만 받는 게 아니고 이 3천 명의 사람이 믿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가 주제가 아니고. 반드시요, 잠시 후에 베드로는 핍박을 받잖아요. 결국 베드로는 순교를 했어요. 모세 시대에도 예수님 죽이라고 2살 아래 다 죽이는 시대에 살았아요. 다른 애들은 죽었는데 살아난 모세만 축복인가요? 3천 명에 5천명을 더해도 스데반도 순교를 했어요. 성령의 역사는요, 전하는 자 듣는 자 전하는 자에게 까지 골고루 역사합니다. 그러니깐 3천 명을 더하게 하시는 것도 성령의 선물이고 순교도 핍박도 다 성령의 선물인줄 믿습니다.
그들은 초대교회 사자 밥이 되어 가면서 313년 동안 초대 교회 영광을 생각했을 거에요. 성경은 그런 모델을 주시는 것이에요. 예수믿으면서 항상 칭찬만 받는다고 생각하시지 마세요. 예를 들어서 박집사를 보니깐 정말 나는 예수를 믿고 싶었어요. 밖에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해요. 등경의 빛이 비추니깐. 그런데 같이 박집사, 이집사, 김집사가 놀다가 박집사만 적용을 잘하고 적용을 잘하니깐 간증대에 세워지면은 흥! 지가 뭐라고 저기 위에 올라가서 간증해? 이러면서 조롱하고 이간질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깐 똑같은 박집사인데 한 사람한테는 칭찬을 받고 한 사람한테는 조롱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어요. 인간이 지옥불 위에서 올라 온 교만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깐 우리는 여기서 보면은 칭찬과 핍박을 골고루 받아야지 하나만 받는 것은 진짜가 아니에요. 그것은 성품이에요. 속지마세요.
예배는 생명이에요. 생명 걸고 믿는 사람을 안 믿는 사람은 너무너무 싫어해요. 등경 위에 세운 빛이 되어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깐 구원 받게 하신 것을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에요 . 그러니깐 제가 보기에 교회는 안 믿는 사람이 편하게 다니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깐 안 믿는 사람이 편하게 듣는 설교 한 두 번은 할 수 있겠지만 날마다 그런 설교를 하다보면 변함이 없잖아요. 예수님의 십자가 가르침이 중요한 것처럼 가르침 받았을 때 여러분들이 아무런 적용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삶이 변하지도 않아요. 여러 가지 충돌이 일어나야 되고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이 이 설교 들으면 싫고 띵크를 많이 해봐야 이제 되니깐 싫은 거잖아요. 그런데 왜냐하면 가난하고 애통하고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한 자가 복이 있고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가 복이 있다. 듣기 싫잖아요? 누가 이런 말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깐 찾는 이가 없는 이 길을 우리는 가야 되겠고. 교회는 생명 걸고 이 길을 걸어가도록 선포를 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초대교회는 베드로의 성령 설교 이후에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르침으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더했잖아요.
지나고 보니깐 초대교회처럼 건물도 없고 주일에 모이고 주중에는 집에서 모이고 주일 성전에서도 집에서도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만 모이니깐 늘 눈물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많아서 저절로 성령의 공동체가 된 것 같아요. 목장에서 떡을 떼는 것도 끊어지지 않고 목장도 7-80% 이상 모이고 유무상통까지는 안 가는데 목장음식을 아깝다고 하지는 않는 것 거 같은 걸 유무상통한 것으로 봐주기로 하지만은 그렇게 좋아했던 저희가 밥하기 싫어서 목장이 안된다는 소리도 들리고. 우리들 교회는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사실은 설교의 대상을 초신자로 놓는가 하는데 저는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초신자는 날마다 와도 못알아 들어요. 그러니깐 초신자들을 위해서만 한다면 결국엔 몇 십년이 지나도 결국엔 초신자 수준이 될 것인데 그 십자가의 가르침이 학력이 없어서 못 듣는 게 아니더라구요.
십자가의 듣기 싫은 가르침을 하다보니깐 다른 거 안 해도 구원 받는 사람을 더 하고 확실하게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주셨고. 그렇게 해서 교회는 교회다워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 교회도 벌써 커져가지고 목장이 싫어지는 사람이 생기고 예배가 설렘이 되지도 않고 겨울이고 여름이고 놀아야 되고. 쉬어야 되고. 이런 분들이 자꾸자꾸 생기고. 목장에 밥하는 것도 아깝고. 이런 분들이 생기는데 이 수준으로 가게 되다 보니깐... 이럴수록 강력한 가르침이 선포되어서. 지금도 이런 얘기를 듣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싫어요. 찔려가지고 말발굽이 내 마음 속을 치고 있는 거에요. 듣기가 싫습니다. 잘한다잘한다 목자님 최고다최고다 해야겠는데...
교회는 그래서 힘들어야 돼요. 여러분들이 남들이 못할 적용을 하니깐 목장에서도 등경 위에 빛나고 집에서도 등경 위에 빛나고. 직장에서도 등경 위에 빛나니깐 그 빛을 따라서 빛을 내기 위해서 날마다 더하게 하시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올라가게 되는 것이에요. 적용하고 간증 하나 하면 올라가는 거에요. 아까도 고아원에 살았다는 말을 누가 합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하니깐 등경 위에 올라가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굉장히 힘들게 하기로 작정을 했어요. 이래야 성경의 공동체는 위력이 있고 설렘이 있고 좁은 길이고. 지나고 나서 보면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는 여러분들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되길 바래요.
[적용해보세요] 공동체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분이신데요. 만약 목장이 정체되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와 공동체 성장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돈이 아까와서 목장하기 싫다는 것은 아직도 회개가 안 되었기 때문이고 나의 종말이 아직도 안 믿어지고 영원히 살 것 같다고 생각하니깐. 그러니깐 붙어만 있으면 축복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거에요. 지금 몰라도 후에는 알리라. 몸이 기억하도록 나와 앉아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공동체 고백이에요.
성경보다 노래 가사를 외우고 찬양보다 유행가를 더 잘 부르며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사기와 부도를 맞고 빚쟁이가 되어 다시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더 어려워지고 고난은 더 심해졌어요. 그래도 동창도 사회 친구도 다 끊을 수 있었습니다. (진리잖아요. 망했으니깐 끊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여러분 인간의 힘으로 끊을 거 같아요? 못 끊어요. 그러니깐 이 초대교회 핍박이 참 축복이죠.) 어느날 말씀 시편 10편이 생각이 나가지고 내가 돈 벌기 위해 예배를 소흘히 했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이기적인 삶이 깨달아져서 각종 봉사를 했다는 거에요. 양육을 받으면서 내가 죄를 모르고 심판을 가볍게 여긴 것을 알게 되었고 부목자가 되어서 아들을 데려오려고 5년이나 설득했지만 나보다 더 고집이 센 아들은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 아버지 마음대로 나까지 마음대로 하려고 하시냐.하며 요지부동이고. 저에게 난 아버지를 생물학적 아버지 밖에는 여기지 않아요. 이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고 화도 안 나고 자존심이 떨어진 그 말 앞에 이때다 싶어서 네 말이 맞다. 난 더 이상 이하도 아닌 생물학적 존재다.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아비니깐 오늘 너에게 나의 유언을 하겠다. 살면서 생각나겠지 하면서 김양재 목사님께서 하시는 큐티를 너희도 평생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 유언이다. 하면서 가족 앞에서 울면서 기도하며 유언을 했대요. 큐티를 평생하라고.
이후에 아들이 우리들 교회에 등록하고 7년이 되는 올해 3월 아들 결혼식에서 죄를 물으시는 하나님. 간증으로 많은 하객들 앞에서 나는 아버지를 생물학적 아버지밖에 여기지 않습니다라는 아들의 기념적인 말과 나의 죄패를 나누었고 죄인인 나는 이 말을 들어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아들이 철저히 무시해준 말을 들어도 죄인으로 심판 받는 것으로 기쁘게 여기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길을 걷는 복된 길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아들이 무시를 해줬기 때문에 성령의 공동체 속에 속할 수 있었던 거 잖아요. 그러니깐 지금 우리는 어떻게 결혼식에서 이런 간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등경 위에 빛이 되는 인생 아니겠습니까? 아버지가 올바른 아버지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요새 몇 명이나 되겠어요? 내가 못한다. 얘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게 약재료가 되어서 다들 깨우치게 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성령의 공동체에 속한,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는 구원을 더하게 하는 간증이 아닐까 싶어요.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공동체는 경건생활에 힘쓰는 공동체에요. 사도의 가르침과 성도들의 교제, 성찬, 기도에 힘쓰는 공동체입니다. 기사와 표적을 따르는 공동체에요. 이제 모이기를 공동체입니다. 날마다 구원을 더하는 공동체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우릴 사용하소서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하물며 죽음 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성령 안에 예배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기도제목
그러므로 십자가 가르침이 더 선포되고 받아지게 기도해주시고요. 애찬 공동체가 되어서 목장예배때 마다 보혈을 기념하는 성찬공동체가 되도록. 각종 예배가 설렘이 되도록. 주일/수요/목장예배. 물질이 나의 종착지가 아니라 통로가 되는 기사와 표적이 되도록. 또 저절로 비춰지는 등경의 빛이 되어서 칭송과 핍박을 잘 받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더하는 공동체, 우리 집, 목장, 교회 모든 직장과 사업체 그곳에 빛이 될 수 있도록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성령의 선물로 성령의 공동체를 주셨다는 것을 말씀으로 확증해 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십자가 가르침을 전하기도 받기도 참 너무 힘들지만은 십자가에 달려 있는 일들이 많아서 잘나서가 아니라 주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전하게 하셨고 이런 것들이 교제로 이어지며 보혈을 기념하는 성찬이 되며 말씀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경건 생활에 힘쓰게 하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 쓰는 사도행전이 되어서 이렇게 기가 막힌 선물을 주셨지만은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은 우리들 교회도 지상교회가 완전하지 못해서 계시록에 일곱 개의 교회의 각각 모델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토하여 내치리라는 교회 모습도 있는 것을 고백합니다. 다 완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발굽으로 내리치는 아픔으로 어찌할꼬? 하면서 살았고 운동력 있는 이런 말씀으로 살아나야겠는데 우리가 이렇게 종말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하며 성령의 공동체에서 참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 그렇지만 성경 말씀이 생명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이라고 사망으로 가는 길은 넓은 길이라고 하오니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서 날마다 어쩔 수없이 몸이 기억하는 예배를 드리며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믿음이 내려갈 수 있도록 그런 십자가의 가르침을 우리가 전하고 받고 듣고 전하는 그런 구조 속에 있길 원합니다. 그렇게 성령의 공동체를 맛보고 자녀들 세대에 내려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적어도 우리가 토하여 내치는 공동체가 되지 않도록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9. 22 목장예배>
안녕하세요
한수진 목장입니다ㅇ
일시 2019. 9. 22. 4- 6:30
장소 3층 테라스
참석 한수진, 이지민, 우지현, 조예진, 이은영
나눔 오늘은 오랜만에 모두 모여 목장예배를 드렸답니다.
# 교제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목자언니께서 우리 수준에 맞게 말씀을 요약해주셨고 그에 화답하듯 한 주 근황과 한 사람 한 사람 삶을 오픈하고 나눔 해주었습니다. 진로 고민에 함께 안타까워하며 고민해주고 기쁜 소식을 나누어주어 함께 축하해주고 그동안 얘기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문제들을 나눠주어 서로가 찔림 받고 체휼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Q. 예배에 설렘이 있나?
A1. 일년 전 만에도 예배에 감격이 사라져 공동체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붙어만 있더니 회개 사건과 말씀으로 회복시켜주시는 경험을 하게 되어 매일 매일 설렘으로 교회에 오는 것 같다. 가족구원, 취업,교제 되는 일 하나 없지만... 오늘도 유아예배/주일예배 설렘으로 왔다. 그랬더니 오늘 말씀과 공동체의 고백(간증과 적용)으로 평안과 위로를 받았다. 특히 유아예배에서 우리반 아이의 적용이 와닿았다. 자신이 참고 견디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나눔 질문에 아이가 부모님이 다투는 거라고 대답해주었다. 나또한 믿지 않는 부모님의 다툼을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4살 된 아이가 말씀듣고 나눠 준 것이 감사하고 체휼이 되었다.(그럼 목장예배는?) 매주 모두 모이는 게 힘들지만 먼 길 와주고 나눠주어 오늘도 나와줄 것을 기대하며 왔다. 오늘 특히오랜만에 모두 모여 좋았다. 한 두 명 오지 못할 때 안타깝고 힘없이 나눔하고 그랬는데 오늘 모두 모여 함께하니 좋다. 오늘 힘 있게 나눔 한 것 같다. 목장 식구들이 매주 모두 참석했으면 좋겠다.오늘 따라 다들 내 나눔에 경청해준 거 같아 감사^^
A2. 늘 예배 가야한다. 가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다. 생각하며 교회에 온다. 예배를 사수하려고 한다. 오늘 사도의 가르침에서 회개해야 할 사람이 나 같다. 채용설명회를 다녀왔는데 경쟁하는 친구들이 오늘 점심이 뭐냐며, 이 회사 은퇴 후 진로는 어떻게 되냐고 어리숙한 질문해서 무시가 되었다. 그들에게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목사님께서 회개한 자는 못난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다고 하셨는데 찔림이 있었다. 또 세상 사람들이 놀라는 적용으로 세상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셨는데 오빠가 믿지 못하는 것이 나 때문인 것 같다.(오빠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A3. 예배에 습관적으로 오는 것 같다. 예배보단 목장에설렘이 있어더 오게 되는데... 교회와서 와서 주일예배 가운데 설렘과 은혜를많이 느낀다. 그중 우리들 교회 찬양이 내 스타일이다. 양육 받고 찬양팀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기특)
# 떡을 떼며

오늘의 간식요정, 예진이^^ 언니들을 위해가로수길 맛집에서 사왔다는 과자 ^^ 감동
# 기도제목을 나누었습니다.
지민이 진로와교제 문제를위하여.
은영이 진로와 취업에 있어서 요동치는 마음이 있는데 한 주도 교육 잘 받고 잘 버틸 수 있도록
예진이 오빠가 교회에 오도록, 엄마 건강을 위하여, 언니의 마음 회복을 위하여
지현이 어머니 병원 옮기는 것, 치료 방향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길. 지현이의 짐 덜어주시도록.
수진언니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기도 생활에 힘쓰라고 하셨는데 가족/목원을 위해 기도하는 한 주가 되도록.

(칭송합니다. 매주 목자언니는우리들 기도제목을오는 주 큐티 본문에 한 명 한 명의 기도 제목을 적습니다. 하루 하루 우리를 위해 기도해줍니다.목장 위해 기도에 힘쓰는 언니 최고!! 사랑합니다.)
#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성령의 목장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성령님 매주 함께 하셔서 설렘으로 우리 목장매주 모두 모여 참석할 수 있게 예배 발걸음 지켜주시고 말씀이 들리게 해주시길간절히 기도합니다.그리고우리 예진이 지현이 일대일 양육 받을 수 있게 환경과 시간 허락해주시고매주 셀렘으로양육해주시고인도해주시길간절히 기도합니다.
: 굿뉴스♡ 예진이와 지현이가 일대일 양육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 감사합니다.3부 예배 전만 해도 태풍과 비바람으로 한 두시간 대중교통이용하여 예배 오는 목장 식구들 예배오기 힘들었다했는데...

- 목장 마치고 목장 식구들과교회를 나서는데!!! 하늘ㅠㅠ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