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9. 1. 성령의 설교 사도행전 2:22-36
서론.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령행전이라고 하지 않고 사도 행전이라고 명명했다. 2장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방언이 임했다. 암을 말씀 드릴 때 사도행전 2장 성령 충만 제목으로 베드로가 설교할 때였다.
사도행전 1장에, 예루살렘을 떠나지말고 약속 하신 곳을 기다리라 하셨다. 자살한 유다 자리에 맛디야를 채워넣는 일을 했다.
지금까지 막힌 언어가 뚫리는 언어가 되어 막힌 관계가 뚫리는 체험이 일어났다.
그 동안 계시록과 열왕기를 전했고 이제 사도행전을 하려고 한다. 열왕기하 는 너무 왕이 악하여 망했다. 그렇게밖에 못해서 - 나라얘기를 계속 하게 되니까. 우리는 성령좀 받고 피하자는 계기가 되었다.
영육의 지경이 넓어지기위해 성령의 인도를 받자.
성령이 임하니 무식한 베드로가 본격적으로 성령에대해 설교한다. 성령이 임해야 들리는 본문. 부디 사도행전 동안 성령이 임하길.
- 잘 들리게 하는 성령의 설교.
얼마나 잘 들리면 3천명이 돌아올까.
22/ 공식적 처음 예배였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양육받은 대로 구속사로 해석하는 베드로.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셨는지 들으라하는 베드로. 성령의 설교 = 오직 예수님에 대한 설교.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다.
22, 29절에서 이스라엘아, 형제들아 들으라 한다. 성경에는 박식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에 무지하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들릴까? 목장예배처럼 잘 들리는 훈련을 통해 잘 듣는다. 잘 안 듣고 공격하면 분이 나는 우리. 훈련이 필요했다. 결국 내 죄를 보고, 잘 듣다보니 잘 들리게 된다. 계시록 마지막처럼 성령의 힘입은 교회가 들으라 = 계시록도 성령으로 좀 들으라는 것.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서 자라셨으나, 하나님은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이끌게 하셨다고 한다. 이 세 표현은 예수님의 사역에만 쓰인다. 즉,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이며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성령으로 증언하는 베드로. 그러므로, 3위 일체의 사역이라 생각이 된다. 권능의 본질은 하나님의 능력. 기사의 효력은 놀라움을 계속 만드는 것. 표적은 보이는 것 보다 영적 진리에 있다.
성령 충만 설교할 때 암이 찾아온 것은 잘 듣고 성령에 따라 제 말과 힘으로 예수님의 성취만을 목적으로 다루어주셨다고 해석이 된다. 그 당시 감정이 올라와 많이 눈물이 나는 목사님. 성령의 설교만 하면 (13절) 조롱을 받는다. 조롱을 받아도 성령의 설교를 하자.
적용/ 여러분은 성령의 설교를 잘 듣습니까? 성령으로 내가 잘 듣고 있는가?
- 성령의 예배가 잘 들리면, 잘 살게 한다
22/ 들으라 한 다음에, 너희 아는 바와 같이 라고 했는데
성령의 설교는 상대방이 아는 것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게 필요하다. 내 속을 높히는 게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접촉점을 찾아서 적절히 풀어가는 설교가 성령의 설교.
더할 것도 뺄 것 도 없는 그의 첫마디가 나사렛예수다. 그는 목수일 뿐인데, 예수님에.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아. = 삼위일체. 고난의 본질 =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의 사역에만 쓰였던 이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도 역사하게 되었다. 동일하게.
심판처럼 온 암사건은 현재를 알게하신 하나님의 권능이다. 암이 드러난 후 보니 상이며 또 스스로의 교양과 인내에 대해 안것.
영적 진리인 표적을 보여주신 말씀. 해가 어두어 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그때. 누구에게는 영화로운 날을 이루기 전에 못보고 진노만 보게 되는 우리. 그런때에 21절에 구원의 권세가 된다.
그래서 목사님도 구원의 권세가 되게 해달라고 암으로부터 나았다. 하나님의 능력은 외적으로 형통한게 드러나야한다.
이미 해석을 마치고 왔으니 증거들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진노다 하며 괴로워 하지 않았던 목사님. 여전한 방식으로 살아가니 진짜 진노와 표적을 문자적으로 주신 하나님. 자연임신이라는 표적을 주신 하나님.
이러나 저러나 나을것이기에 검사를 거절했던 목사님. 계속 기도할 일들이 생겼다.
적용/ 여러분의 삶을 통해 모두가 아는 하나님의 권능과 기사와 표적은? 예수님만 전하면 능력이 보여지는 일이 있습니까?내 삶의 현재 이유를 잘 해석하는게 권능. 그 말씀대로 되어가는게 표적이다. 이게 바로 구속사적 해석이다 성령의 설교가 잘 들리게 하는 것은...
- 잘 죽게 합니다.
23/ 예수님처럼 권능과 기사로 잘 산다고 하나님 능력을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근본이신 에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알기에 그것에 복전에 을고 있을쌔 ,> 갈 수 없는 길 할 서 없는일 같아도 택자는 그때그때 순종하여 간다. 근데 그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
아합은 나봇도 죽이고 엘리야도 죽인다. 그렇듯이 예수님을 죽였다. 우리도 혼자 정직하고싶고 공동체로 정직하긴 셇드
목사님 말은 좋으나 목사님 설교가 싫은 사람들. 그러나 참 선지자인 하나님
죽은자도 살리는 예수님이 세상을 위해서는 십자사를 지신 하나님. 똑똑하고 이쁘다고 능력으로 자기보다 못 미친다고 무시하는 여자, 바람핀다고 이혼하면 바보다. 예수님을 등지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면 바보다.
무능한 부모 완악한 남편 권위적 상사에게 잘 죽기란 어렵지만,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권능 기사를 버린자.=
예수님의 삶은 그것때문에 죽어지는 사람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절대 못 죽는다. 그러므로 말씀이 날마다 필요하다. 그래도 이땅에서 가장 중요한 걸혀야 한다.
투병의 시간동안 잘 죽어져야 했던 목사님. 독한 주사를 세개한 한꺼번에 맞았더니 /실제적으로 잘 죽어지기가 어려웠다.
암도 항암의 차이가 크다. 이 모든 것은 그전에 알던 것과 또 달랐다, 그런데 암은 필요가 있어서 목사님을 다루었는데 그때에 항암보다 더 높은 산이 바로 내 자신이다.
내가 너무 사랑이 없고 힘든 분들에 대한 공감도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또 살아내지 못하고 겉도는 게 너무 얄팍하게 느껴졌다. 겉으론 온유해보여도 구원때문에 참는건지 무서운건지 명예때문인지 할말을 못하는 부분이 - 화내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 것. 그런게 다 아니라고 깨닫게 되었다. 고통이 오니까 나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영적으로는 내 자신을 직면하기 힘들고 육적으로도 힘드니 또다른 하늘이 열려 만나주신 하나님. 사랑없으면 울리는 꽹가리가 되니 생각지 못한 회개와 깨달음을 주셨음.
내 자신을 직면하니 또 다시 가증한 것들이 많이 있더라. 그래사 죽어지는 고통을 또 다시 허락하신 하나님이 느껴졌다. 이런 일은 마귀는 못한다.
다윗이 압살롬을 기도할 때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것 밖에 없다. 너무 아프니 그런 기도밖에 안나왔다. 그때 아프기만 하면 말씀도 없고, 힘만 들었을 텐데 항암보다 높은 내 자신이 있어서 항암은 보다 쉬웠다. 죽어지는게 무엇인지 계속 보게했다. 말로는 권능과 표적이라고 계속 하지만, 고통안에서 계속 힘들구나. 다른 사람에게 너무 쉽게 얘기했구나. 나는 울리는 꽹가리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내 나라가 망할 때 예레미야 애가를 보면 기가막힌다. 화살을 삼으시며 화살통에 내 허리를 맞추셨다고 하는 부분. 아우슈비츠 학살때 이 시를 읽으며 자신들의 고난을 생각한 포로들. 그 고난 속에서도 자기를 보기는커녕 아직도 예수를 안 믿는 그들. 왜냐하면 그들은 고 때만 지나면 여전히 잘 살고 노벨상을 타대는 사람들이었다. 성령의 설교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내가 잘 살고 잘 죽는 이유는 오직 예수지만 그들은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오천년 역사에서, 이름없는 선교사들 때문에. 그들이 피흘려서 예수님이 믿어졌고 잘살게 되었다.
그렇게 잘 살게 된것을 예수님 때문인것 모르는것이 안타깝다.
잘 살게 된게 얼마나 되었다고 예수님을 배척하는지..
기득권의 절대 반대가 예수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잘 주거야 하나.
적용/ 내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알고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성령의 설교를 잘 듣고 잘 살고 잘 죽으면,
-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부활의 주님/ 24절/ 고통은 죽이기 위한 사냥꾼의 덫. 이 땅의 가장 큰 덫은 사망이다. 가만히 있어도 넓은 길로 가다가 죽는다. 그 덫에 풀어 살리실 분은 오직 예수다. 그리스도는 승리의 선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 다윗의 부활로 연결 시킨다.
25/ 시편 16:16 인용이다. 다윗은 10때 사울의 명령에 따라 여호와 이름으로 골리앗을 이겼고, 15광야를 거치고 도피생활하며 미친사람처럼 생활하여 겨우 살아났고, 간음도 하고 살인도 했다. 이후에도 사랑하는 아들이 반역하여 울며 피신까지 했다. 그야말로 이길수도 질수도 없는 자리에서 항상 하나님을 항상 보았다고 한 다윗. 이같은 고백이 하나님이 상급이다. 믿음이 되기까지 가장 사랑하는 압살롬이 가장 수고했다고 보여진다.
적용/ 죽일수도 죽을수도 없는 식구들이 있습니까?
어려서부터 힘든 인생을 살았는데, 이미 이긴 싸움을, 평원님이 있어야 할 고랑으로 생각을 한 게 기적이다. 부모고난이 있고 형제고난 자녀고난이 있지만 특별히 형제고난, 조현병 동생을 20년 간 돌본 평원님. 주께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된 평원님. 고랑이 길게 패였을 정도다. 언젠가 이런 깨달음을 위해 좋은 공동체에 붙어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한다.
항상 큐티와 간증을 보다보면 고랑이 길게 패이는 날이 올 것. 베드로도 세번이나 부인했으나 세번 사랑고백을 하게하시고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 복음전하다 감옥에 갖히고 네로왕때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 주님. 하면 살아날 수 있다.
다 잘나서 집사님이라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살아난다.
이관희 집사님 왈, 죽음으로부터 자유하니 다 자유로워야 할텐데, 병원에 가기만 하면아버지보다 더 살아야 한다. 등등 실질적 두려움을 토해냈다곤 한다. 우리는 성령충만 = 갈등충만이다.
25절에 내가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으며.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27절에 거룩한자는 누구인가?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는 베드로. 30절에 그는 선지자라, 이미 맹세하사 - 한 사람을 앉게하시리라 하며 부활을 말하되, 이 예수를 얘기한다.
다윗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이 시편은 1000년 전에 미리 보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미리 말한 셈.
시편에도 이미 예수님의 부활이 예언되어 있었다. 죽음과 부활로 성취된 승리. 베드로가 목격한 부활의 주님은 다윗이 미리본 부활의 주님과 같았다. 미리 깨달은 성경으로 전하는 것은 얼마나 성령의 설교인지 모른다.
다윗이 알았고 베드로가 알았고, 내가 알아 내 속의 예수가 부활하여 하나님이 승리하셨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게된다. 그 능력을 그때까지는 몰랐던 베드로. 오순절 부흥으로 베드로에게 그 능력을 알게되었다. 해 아래 새 곳은 없기에 미리 성취를 보아야 한다.
성령의 설교는 예수님 십자가를 보지않고는 말할 수 없다. 능력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기복적인 성경 강해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시 살아나 증인이되어, 구원자가 되신 예수님을 외쳐야 한다. 성령이 임하면 저절로 외쳐야 한다. 베드로같이 무식한 사람을 쓴것은 학벌로 외침이 가능한게 아니기 때문. 복음을 전하려해도, 그 사람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으면 둘 사이 끝이 오지 않는다. 쉬지않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 주님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안 변해도 진리의 성령으로 화목하게 된다. 화목은 하나님의 때로만 가능하다.
72살 목자였던 성도님. 엊그제 편지가 왔다. 우리들 등록 후 14년이 되어가는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90살 노모를 보살펴야하기에 남편과 합가를 했다. 오랜만에 본 배우자는 죽어가는 노숙자가 되어있었다. 그 죽이고 싶던 마음이 없어지고 화해하게됨. 남편의 옷을 빨고 상을 차리고 어느때도 느껴보지 못한 때를 지내며 감사제사를 지내는 중이라는 소식.
말씀이 들리기에 성령의 설교로 잘 살고, 섬기고, 잘 죽으셨다가 이제 다시 살아나신 성도님. 이혼을 해도 재혼하지 않고 있다면 어느날 다시 합친다. 호적을 지켜낸 성도님. 적용을 하시면서 남편이 의처증이었는데, 지금 다시 살아난 환경이 되었다.
적용/ 어떠한 좌절과 절망가운데서도 내앞의 주님을 보며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까? 상급은 주님입니까 세상입니까?
- 성령의 설교는 높아지게 합니다.
33/ 부활하신 주님을 하나님이 구세자로. 통치자로 올리셨다고 한다. 이 구절이 성령강림의 핵심이다. 높여짐은 아버지께 받은 성령을 이제 나누는 것.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이 아닌데, 가만히 있으면 나누어줄 수 있게 된다.
35-36/ 다윗의 무덤은 여전히 있고 썩은 육신은 여전한데, 주는 누구인가? 하나님, 예수님이 첫 주, 두번째 주다. 여전히 내 원수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우편에 앉게 하신것처럼 나도 앉게해주세요. 하는 기도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얘기를 천 년전에도 똑같이 한 것이다. 인생 후반부에 썼던 이 시편 본문처럼, 내가 죽어지고 십자가를 겪지않으면 나의 예수님은 메시야가 될수없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저절로 하나님은 나를 높이신다.
계시록 21장/ 각종 보석으로 쌓인 아름다운 성전을 묘사한다. 무너지고 거룩하고자 할때 하나님은 아름답게 나를 높이신다. 나같이 천한 사람을/여자가 교회를 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보여주기 위해서 라는 것. 영육간에 역사하신다.
무식했던 베드로는 시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가장 중요한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을 말씀에 근거한 설교를 지금 하고 있다. 이 본문을 보고서 누가 무식하다 하겠나?
성경으로 꾀고 상담하고 기도하는 증인들이 우리 많아지는 교회. 내 말과 삶에 군더더기가 없어지매,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질것이다.
결론.
성령의 설교는 잘 들리게 한다. 막힌 곳도 뚫는 말씀이다. 3천 명 외에는 또 안들릴 수도있지만 잘 들리면 잘 살게 한다.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말씀으로 해석하고 표적을 보여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증거하면서 잘 죽어야 한다. 십자가에 죽어야한다. 잘난체하고 나는 되는 것 밖에 없는 게 아니라 죽어지는 것이다. 곳곳에서 리더쉽을 갖게한다. 높아지게 한다. 권세가 임하게 한다. 밑바닥을 보고 절망할 때 부활한다. 성령 설교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다.
[기도제목]
김주형
- 아르바이트 적응을 위해서
- 여자친구 교회와 공동체 정착할 수 있도록
- 동생의 도박 중독문제가 끊어질 수 있도록.
안식
- 일년 학업 시작인데, 붙어있을 수 있도록
- 가족 구원이 애통해 지도록
- 기도가 많이 메말랐는데 기도 할 힘 주시도록
구준호
- 일하는 때에 덜 지칠 수 있도록 체력 주시도록
길태수
- 자소서 쓰는때에 진솔한 글 써내려 갈 수 있도록
- 기도로 시작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 회사에서 순종 할 수 있도록
조동민
- 가족에 관심이 없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 무기력증이 나아질 수 있도록
김효진
- 한 주 잘 살아 내기
- 머리속이 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