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5 주일예배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악한 왕'(왕상22:41-53) - 김양재 목사님
아합이 왕의 권세를 갖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사사건건 하지 말라는 것이 많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곳곳에 건축했지만 그의 치적은 죄악의 6장에 비해 딱 한 절에 지나갔다. 우리 다 죄인인데 아합을 너무 경멸하는 사람들도 세속적으로 아합의 부귀가 부러운 똑같은 사람들이다. 아합을 이해한다고 아합에게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아합은 미워할 대상 아니고 불쌍한 대상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열왕기상 맺으며 남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 다룬다. 열왕기는 반성문으로 쓴 글이다. 죄 많은 왕 아합은 여섯 장 다뤘는데 선한 왕 여호사밧은 열 절만 나온다. 북이스라엘 왕 아하시야는 8대 왕인데 다룬다고 할 것도 없다.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과 악한 왕은 어떻게 다른지 보자.
1.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여호사밧
1) 믿음의 부모가 중요합니다.
(41-42절) 여호와가 심판 하신다라는 뜻의 재판관처럼 여호사밧은 공적과 과오가 정확하게 기록되었다. 히스기야, 요시야와 더불어 여호사밧이 3대 현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어찌하여 현군일까? 역대하에도 똑같은 병행본문 나온다.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역대하 20:29-30)
이런 평강을 누리게 된 것은 여호사밧의 정치·군사적 실력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사방 나라들을 두렵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라는 것 한시도 잊으면 안 되고, 그도 잊지 않았다. 남유다 왕이 새로이 등극할 땐 마치 공식처럼 어머니가 등장한다. 반면 하나님의 약속과 상관없이 모반과 폭력살인을 통해 왕위 계승되는 북이스라엘의 왕위계승은 어머니의 언급이 전혀 없다. 믿음은 가족이, 특히 부모가, 특히 어머니가 중요하다는 것 보여준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똑같이 왕의 자녀로 있다가 왕이 되었다. 환경이 같지만, 왜 여호사밧은 믿음이 좋을까? 키포인트가 실히의 딸 아수바라는 것이다. 외가 쪽이 중요한 역할 했다. 그의 아버지 실히는 창던지는 자라는 뜻이다. 무인가문 출신으로 추측된다. 그에 비해 그의 딸 아수바는 버려진, 파멸의 뜻이다. 이름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나라 사랑 때문에 딸이 버려진 것 같은, 파멸당한 것 같은 일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수바가 이런 살 소망까지 없어져서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았을까. 믿음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아합과 다른 점이 바로 절망을 맛본 어머니의 기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세벨 같은 스카이캐슬 엄마가 집안을 멸망으로 이끈다. 길고 짧은 건 가봐야 한다. 아수바처럼 버려진 것 같으나 여호와 앞에 이르게 되어 성경에 이름 남길 수 있었다.
(적용) 여호와 앞에서 난 어떤 부모인가, 어떤 자녀인가? 스카이캐슬의 이세벨인가, 버려지고 파멸당한 것 같은 여호와 앞에 서게 된 아수바인가?
세상은 다 이세벨 부러워하지만 이 땅이 짧기에 버려지고 파멸당해도 아수바로 여호와를 사모해야 한다.
2)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43절)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것과 정직을 행하는 것이 같다. 정직히는 구체적 대상을 지시하는 정관사 붙어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구체적 규례를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인생길 똑바로 걸어가는 것 뜻한다. 성경이 말하는바 정직한 삶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곁에 항상 머물러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 따라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면 인생은, 또 이 세상은 정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신결혼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지시 받기 위해서라면, 천국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 여호와 앞에서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속한 예배 공동체 앞에서, 예수 믿는 식구들 앞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를 생각해보라. 분쟁 없는 공동체라고 좋은 공동체 아니다.
같은 예수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 자체가 정직히 행할 수 있는 비결이다. 혼자서 나는 정직해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늘 의로움이 되어서 남을 찌른다. 결국 정직하다는 것은 내가 정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정직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정직을 알기 위해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정직함으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했다고 한다. 아사의 조부 르호보암과 부친 아비얌은 산당 세우고 남색하는 자들 허용했다. 믿음의 남유다의 왕들도 아합 못지않은 악 행하고 있다. 왕들의 퀄리티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다른 게 아니다. 다윗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나님이 호호 불어가시는 남유다가 된 것이다. 여호와 보시기에가 참 중요하다. 아사는 우상숭배자인 모친의 위를 폐했다. 아사의 길은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으며 이 개혁의 길을 갔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이 크게 용맹한 군사 백만 뒀다.(역대하17:9-10) 왕권 대리하여 일하는 용사가 백만이나 되도록 여호사밧이 종교개혁 얼마나 간절하고 철저하게 했는지 나온다.
(적용) 여러분은 공동체에서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습니까? 공동체를 무시하며 혼자 정직합니까?
3) 폐하지 못하는 산당이 있습니다
(43절) 솔로몬 시대에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 드렸다. 하나님은 성전 지은 후에는 성전에서만 예배드리라고 했다. 근데 일천번제 드려본 이스라엘은 부귀영화가 극에 달했던 걸 잊지 못한다. 산당예배를 포기 못한다. 그래서 고질적인 종교적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아사나 아사랴, 요담과 같이 정직히 행한 남유다의 다른 왕들도 산당 폐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잘 믿어도, 다윗보다 솔로몬이 좋은 것이다. 백성들에게 침투해있는 인본적이고 기복적인 다양성을 추구한다. 못 먹고 못 살 땐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가 먹고 살만하면 다양성 이것밖에 없다. 동성애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것 다 좋은 것이다. 끊임없이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방풍속 따르는 것인데 여호사밧이 개혁을 철저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아사의 길로 개혁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았다고 했다. 근데 산당은 폐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서 돌이키지 않았다와 폐하지 않았다가 원어는 같은 동사다. 여호사밧이 여호와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의 온상인 산당을 폐하지 않았음이 같은 비중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산당 폐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개혁하려면 개혁하는 만큼 폐하지 못하는 것도 또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개혁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나님 믿고 이 모든 것에서 돌이키려고 하는데, 악어의 사슬 폐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내가 하나님 만나서 돌이키려고 하는 것도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큐티하고 설교 듣고 말씀으로 날 개혁하고자 하는데 회사에 딱 가면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그걸 보고, 그냥 내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절감하는 것이다. 이게 여호와 앞에서 선한 것이다.
구속사라는 것은 날마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그 입장에 서보는 것이다. 택자는 적용을 못해도 터덜터덜 교회에 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느 날 적용할 날이 온다.
(적용) 내가 나를 개혁하고 돌이키고자 하지만 나를 폐하지 못하는 그만큼의 산당은 무엇인가? 관행이라고 포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4) 치명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44절) 주님은 '내가 화평을 주러 왔는 줄 생각하지 말라 검을 주러 왔노라'하셨다. 화평이 항상 좋은 게 아니다. 남북은 일평생 전쟁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아합과 여호사밧으로 인해 잠시 전쟁이 끝나고 평화적 관계가 수립되니까, 이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정치를 너무 잘했다. 여호사밧이 종교개혁하며 백만 대군 길러놓으니까 부귀영화 극에 달하니까 환경에 예외가 없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역대하18:1)
아합과 여호사밧이 군사, 경제적 이유로 결혼동맹 맺었다. 아람과의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결과 가져왔다. 전적인 은혜로 여호사밧은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아합은 죽었는데- 자신은 남쪽 방언 써서 살아났다. 역대하 19장에서부터 보면 여호사밧이 겨우 살아났는데 시침 떼고 예루살렘으로 평안히 돌아왔다. 그랬더니 선견자 예후가 나와서 왕이 악한 자를 돕는 게 가하나이까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했는데, 아세라 목상 없애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았기에 선한 일로 보겠다고 하셨다. 아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여호사밧이 혼인동맹 맺은 것이다. 여호사밧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 결혼으로 인해 남유다에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비롯한 모든 불법이 흘러들어왔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모든 불법 가져올 수 있다. 아달랴 때문에 불법 흘러들어왔고 아합의 딸 아달랴는 유다 집안에 아들과 손자까지 남자는 다 죽여 버리고 자신이 여왕 되었다. 남유다의 다윗 왕조 자체가 끊어져서 예수님도 못 올 뻔한 큰 위기 초래했다. 이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일평생 남북전쟁 있었던 그 때가 훨씬 나았다. 누구와 평화하는가는 아주 중요하다. 결국 여호사밧은 아합보다 더한 만고의 죄인인 것이다. 아합은 나봇 하나 죽였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며느리 하나 잘못 봐서 아들 손주 싸그리 죽였다. 잠재적 살인했다. 그것도 예수님의 혈통으로만. 여호사밧 같은 죄인이 있겠는가.
(45절) 여호사밧의 치적에 대해서는 하나님나라의 족보에 올라갔다는 평가 내렸다. 그리고 열왕기는 끝났다. 여호사밧은 신앙부흥, 종교개혁 했고, 백만 대군, 전국에 재판제도와 조직 만들었다는 공이 있다. 그런데 특별히 이 절에 그가 부린 권세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 나온다. 여기서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 의미한다. 여호사밧이 그만큼 하나님의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음을 알려준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왕으로 하여금 여호와께 멀어지게 만들고, 백성들을 탄압하는 부정적 측면 다분히 지닌다. 미가야 선지자 무시하고 아합과 동맹하여 아람과 전쟁하다가 목숨 잃을 뻔 했다. 그리고 나서 경고 받고 회개하고 2차 개혁에 들어가서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절대권력으로 모압과 암몬 정벌했다. 똑같은 전쟁인데 전쟁의 주인은 여호와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도자는 이타적 독재자이다. 하나님나라의 대리통치자로서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하니까 하나님은 절대권력 주실 수밖에 없는데, 절대권력은 하나님 의지하지 않으면 절대부패 할 수밖에 없다. 너무 걱정할 것이 없는 게, 하나님은 하나님나라 위해서 다 심판하신다.
(적용) 일시적 평화를 위해서 저지르는 치명적 실수는 무엇인가? 결혼인가, 동업인가, 안 가야할 모임인가?
5) 마지막 징계로 유턴하는 사람입니다.
(46-49절) 45절에서 끝나면 선한 왕이 성군이 못되었을 것이다. 뒤에 붙여진 세 구절로 말미암아 성군으로 자리매김했다. 남색하는 자 쫓아내는 것이 그때나 이때나 제일 어려운 것이다. 여호사밧의 인생이 끝난 것 같아야지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남색하다는 말 카데쉬는 거룩하다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남창이라고도 한다. 우상숭배자들의 입장에서는 거룩한 제사를 주관했기에 거룩하다고 했는데 음란한 성행위가 우상숭배자들에게는 거룩한 종교의식이었다. 동성애 퀴어축제에서 검은 사제옷 입고 행진한다. 아사같이 대단한 사람도 그때까지 못 쫓아내고 남아있었다. 여호사밧도 힘든 일인데 결국 했다.
(47-49절) 에돔은 이삭의 두 아들 중 하나인 에서의 별명이었다. 아무리 아브라함의 후손이라해도 약속의 자손과 상관없다. 그곳에서 여호사밧은 솔로몬의 영광을 되찾으려 배를 지었다. 금을 구하려 했다. 그 배가 에돔의 영토인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했다. 가지 않아야 할 곳에 가서 파선했다. 약속의 장소가 아니다. 그 배를 누구와 함께 만들었는가?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함께 만들었다. 아합이 죽었는데 계속 교제하고 있다. 예후로부터 아합과의 교제를 질책 받았다(역대하 19:2). 그래서 2차 개혁했다. 또 엘리에셀이 북쪽의 심히 악을 행하는 아합과 교제하기에 파선시킨다고 경고했다(역대하 20: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이 파선하기 전에 돌이키기 어렵다. 한 번 맺은 관계 끝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이고, 아합의 딸은 여호사밧의 며느리이기에 사촌, 손자들 다 피가 섞였다. 여호사밧이 개혁하면서도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의 은혜 없이는 한시도 살수가 없다. 성군도 이렇게 안되는 게 없다. 하나님은 여호사밧 너무 사랑하셔서 주신 방법이 두 나라가 만든 배를 파선시키는 것이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다. 망하고 나서 여호사밧은 그 말씀이 생각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손해 안보면 깨닫지 못한다. 결국 여호사밧은 마지막에 돌이켰다. 남색하는 자들 쫓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 포기하고 악한 아하시야와의 교제를 중단했다. 바로 이점이 마지막에 선한 왕으로 남게 된 최고의 비결이다. 여호사밧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기록이 49절('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이다. 그래서 인생은 마지막이 중요하다. 돌이켰다는 것이 여호사밧의 결론이다. 그래서 조상 다윗성에 장사되었다. 여호사밧이 실수했어도 마지막에 선한 왕으로 불리는 것은 돌이키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회개만 하면 천국백성이다. 이 세상에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여호사밧의 죄보다 큰 죄는 없다. 의도했든 안했든 그의 죄는 하나님나라를 끊어지게 할 뻔했다. 돌이켰다는 것은 남색 끊는 것, 아하시야를 끊는 것, 그와 같이 가지 않기로 했다는 것은 말만 아니고 유턴해야 하는 것이다. 완전히 180도 유턴해야 한다.
(적용) 이제는 허락하지 않아야할 교제와 사건은 무엇인가? 그로인해 하나님이 애써 막아주신 일은 무엇인가?
택자는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훈련이 있다. 허락하지 않아야 할 교제가 있는데 하나님이 막아주시느라 파선시킨다.
2. 여호와 앞에서 악한 왕 아하시야
(51-53절) 아하시야의 죄는, 아버지의 길과 어머니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대로 행한 것이다. 바알숭배하고 여호와를 노하게 하는 아버지의 온갖 길로 행한 것이다. 여호사밧은 치적도 실수도 실패도 많지만 선한 왕이라고 칭함 받는데, 아하시야는 조상의 말도 잘 듣고 아버지 어머니 말 잘 듣는 조상신 섬기는 착한 어린이이다. 사건도 하나도 없다. 아하시야가 자발적으로 바알에게 엎드려 절함으로 바알을 주인이나 왕처럼 떠받들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돈 신을 섬겼다. 고의적으로,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샀다.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기에 결국 비참한 죽음 맞이했다. 그도 공동체 있다. 근데 예수공동체가 아닌 바알공동체이다. 조상은 금송아지 섬기는 여로보암, 아버지는 아합, 어머니는 이세벨, 누이는 아달랴, 초호화 로얄패밀리이지만 정직을 가르쳐줄 예수공동체가 아니다. 교회를 나간다고 모두 예수공동체는 아니다. 교회 내에서도 끼리끼리 놀면서 바알공동체가 있다. 3-4대의 저주가 이런 것이다. 이 세상의 로얄패밀리일수록 고질적 우상숭배가 끊어질 수 없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살다가 지옥에 갔다. 이게 아하시야다. 여로보암의 길은 금송아지 숭배였다.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났다. 아담과 하와도 죄는 하와가 꾐에 빠져 죄 지었어도 책임 아담에게 물으셨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에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더 나쁘기에, 믿음의 사람이 더 나쁘기에, 성도는 누구의 말 듣고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 삶의 마지막 날 여호와 앞에서 평가 달라진다. 북이스라엘은 계속 모반과 살인의 왕조인데 아하시야가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아합이 한 번 겸비한 적이 있다. 겸비해서 다음세대에 너의 죄를 묻겠다고 했다. 정말 하나님은 아합의 겸비했다는 그 한마디에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아합왕이 견고하기에 세워주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어 아하시야가 왕이 됐다. 하지만 2년 만에 비참하게 죽게 하신다. 아하시야의 결론은 엄마 아빠 할아버지의 말 잘 듣다가 지옥 갔어요 이것이다. 성경 차례대로 읽어 가면 가치관이 달라진다. 순서대로 읽어 가면 성경이 우릴 설득시킨다. 성경을 여기저기 읽으면 절대 내 가치관이 안 바뀐다. 결국 그게 또 산당이 될 수 있다. 여호와 앞에서 악한 사람은 말할 깜이 안 되어서 이렇게 짧은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없이 잘사는 것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육으로 심으면 육으로 거두고 영으로 심으면 영으로 거두게 되어 있다. 말씀 적용하고 가는 것, 목장에 묻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축복하시는지 모른다. 내가 모르니까 공동체에 묻는 것이다.
주님의 시선으로 날 봐야 한다. 선한 왕 여호사밧이든 악한 왕 아하시야든 모두 예수님이 필요하다. 그 누구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하다. 선하고 악하고는 여호와 앞에 서있는가가 관건이다.
<기도제목>
김유리
1. 매일 큐티하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 노력하기
2. 친구가 없다고 생각되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옆에 계신 부모님 생각하며 감사하기
3. 소리 내는 기도가 여전히 잘 안되는데 주님을 향한 신뢰를 회복하도록
정지현
1. 업무에 많이 지쳐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다시 업무를 정직히 행할 은혜와 마음, 능력 주시기를
2. 신교제 인도해주시기를
3. 부모님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박소영
1. 아웃리치 은혜 감사하며 일상으로 복귀 잘하도록
2. 여호와 앞에서 폐하지 못한 산당 깨닫고 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3. 가족을 구원의 관점으로만 볼 수 있도록 : 비교, 자기연민,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4. 신교제 인도해주시기를
류가영
1. 남과 비교하는 마음 올라와서 폭식으로 스트레스 풀었는데, 스트레스 올라올 때 폭식의 산당을 폐할 수 있도록
2. 부모님께서 부부목장 사모하시며 정직의 기쁨을 누리실 수 있도록
3. 감기 회복
4. 현재의 업무를 감사함으로 잘 해석하고 스트레스 덜 받기를
윤소영
1. 쓰는 큐티 잘하면서 말씀대로 살수 있도록
2. 질서에 순종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