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08. 25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악한 왕 열왕기상 22:41-53
서론.
아합이 왕의 권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할 것이 없으니 건축으로 풀었고, 상아궁까지 건축했으나 치적은 여섯장의 여정에 비해 딱 한 줄로 끝난다. 우리는 치적도 없는데 자랑할 그 한 줄도 없지 않을까? 환경에 겸손 할 뿐이라는 것이 다시금 새겨진다. 내가 아합이라면? 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사실은 속으로 아합이 부러운 자들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부부가 똑같기에 이세벨은 누가 내 남편을 힘들게 하느냐고 다 죽여주겠다고 나선다. 물론 아합을 이해 한다고 아합에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저 불쌍한 대상.
세상은 당최 모르는 일이고 하나님의 시선으로만 불쌍하다. 오늘은 열왕기상을 맺으며 남의 왕 여호사밧을 주로 다루며, (열왕기상은 반성문으로서 죄많은 아합은 6장) 그러나 여호사밧은 10절로 끝난다. 역대기는 하나님 나라 족보를 다뤘기에 17장부터 4장이나 나온다. 그래서, 반성문인 열왕기를 보며 북이스라엘에 아합의 아들 8대 왕 아하시아는 다룰 것 까지는 없고, 여호와 앞에서 선한 리더쉽과 악한 리더쉽을 본다.
-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여호사밧.
a.믿음의 부모가 중요하다.
41-42/ 여호와가 심판 하신다라는 뜻의 재판관처럼 여호사밧은 공적과 과오가 정확히 기록됨. 3대 형군 가운데 한 사람. 역대하는 바로 전 구절에 29절에서,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셨다고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사방의 나라를 두렵게 하셔서 그렇다고 한다. 하나님의 능력.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는 것을 한 시도 잊지말라는 것 = 잊지 않았다는 것. 어떻게 잊지 않았을까? 남유다가 새 왕에 즉위 시, 가족 관계가 소개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폭력으로 계승하는 북 이스라엘은 공식처럼 어머니 이름이 안나온다. 그래서, 믿음은 가족이. 특히 부모가, 어머니가 특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얘기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똑같이 왕의 자녀로 왕이 되었지만, 왜 여호사밧의 믿음이 좋은지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에 비추면, 외가 쪽이 중요해 보인다. 외아버지 실리는 창 던지는 자라는 뜻이다. 이로보아 여호사밧 외 할아버지는 무인 가문 출신처럼 보인다. 그의 딸 앗수바의 뜻은 파멸 버려짐이다. 이름으로 빌어보아, 딸이 버려진 것 같이 파멸당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
수요 본문 고린도후서 1:8-9/ 이번주 강사님은 이 본문으로 정신 질환을 다루시며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혹시, 앗수바가 살 소망까지 끊어져서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았을까 보면서, 믿음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려고 한다. 이 바로 절망을 맛본 어머니의 기도로 여호사밧을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아합의 이세벨은 집안을 멸망으로 이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 성경에 이름이 나오는 여호사밧의 될 수 있다는 것. 앗수바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살 소망이 없어져서 자신에 대해 절망했기에 죽은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한 것. 그래서 여호와 앞에 서게 된 것. 구속사적으로 해석을 잘한 명가문이 되었다. 아주 산 소망까지 끊어져 보인 앗수바가 3대 현군의 엄마가 되었다.
적용/ 여호와 앞에 서기 위해 나는 어떤 부모인가? 스카이 캐슬 부모 이세벨입니까? 버려진 것 파멸 당한 것 같은 아수바 같습니까?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여러분도 앗수바가 되어 여호사밧을 만들 수 있다.
b.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
43/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것 = 정직히 행하는 것. 정직히는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정관사가 붙어, 하나님이 지시하신 구체적인 규례를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갔다는 뜻. 성경이 말하는 바 정직하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 곁에 항상 머물러 구체적으로 따라가니,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면 인생은 정직을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러므로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 내가 속한 예배 공동체 앞에서, 예수 믿는 식구들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분쟁 없는 공동체가 꼭 좋은 공동체는 아니다.
초등학생 아들이 중재자가 되어 쫓아 다니며 그런 식으로 살면 안되지~ 하면서 둘 다 목자지 않느냐며 교회 공동체에서 듣다보니 그렇게 부모님들한테 얘기했다는 것. 같은 예수 공동체안에서 사는 것 자체가 정직히 행하는 모습이다. 싸워도 이렇게 싸워야 한다. 혼자서 정직하다는 것은 위험하다. 의가 되어 남을 찌른다. 결국 정직은 내 스스로 정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정직이 깨달아 진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동체가 없이 정직하다는 것은 이 세상은 알아듣지 못한다. amprArr 목장에 가라.
이런 정직함으로 아사의 모든 정직의 길대로 돌이키지 않았다고 한다. 아사왕의 조부 르호보암과 부친 아비얌은 부친 아버지는 산당을 세우고 남색하는 자를 허용했다. 묻지 않은 죄. 북 이스라엘 왕의 퀄리티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는 가가 기준이다. 아사는 특별히 우상숭배자인 모친의 위를 폐했다. 아사의 길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개혁의 길을 갔다고 쓰였다.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하고, 율법책으로 유다에서 가르치며 백성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사방의 나라가 겁을 먹게 하신 하나님. 여호사밧이 얼마나 종교개혁을 철저하게 간절하게 했는지 모른다. 아무도 공격을 못했는데 이제 실력이 쌓여 공격도 받는다. 어머니 역량으로 아합과는 다른 부자도 있는 것을 본다. 부자도 이렇게 경건히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적용/ 여러분은 공동체에서 집에서,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습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무시하며 혼자 정직합니까?
그러나 여호사밧은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는데, 성경은 부정적인 평가도 했다.
c. 폐하지 못하는 산당도 있다.
43/ 산당에서 일 천번제를 성전 짓기 전에 예배하지 않았나? 성전을 지은 후엔 성전에서만 예배하라 했다. 그런데 이 일천 번제 이후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보게 되니, 이 산당을 포기를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므로 고질 적인 우상이 되었다. 아사를 비롯해 아사랴, 요담까지 대단히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들도 산당을 못 폐했다. 아무리 믿어도 우리는 다윗<솔로몬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라는 이름만 써도 돈이 들어올 것같다. 4대째 모태신앙이어도, 우리 아들이 솔로몬 같게 해달라고. 유다보다는 요셉을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것. 폐할 것이 없다. 인본적이고 기복적인 그들의 산당. 우리의 산당. 조금만 먹고 살만하면 다양성 추구하느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된다. 예외가 없어서 우리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상이 노도와 같이 들어온다. 눈에 들어오는 산당을 제거하는 것은 본질적인 종교개혁이 아니다. 끊임없이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이고, 솔로몬 처럼 요셉처럼 돈과 여자가 너무 부러운 것. 이방 풍속을 따르는 것인데, 여호사밧은 종교개혁을 하다가 산당은 폐하지 못하여, 개혁을 철저하다고 할 수 없었다. 개혁하는 길을 돌이키지 않았다 했지만, 산당을 폐하지 않았다고도 하니, 돌이키지 않았다 = 폐하지 않았다. 같은 동사. 즉, 여호와를 떠나지는 않았지만 우상숭배의 온상인 산당을 폐하지 않았음은 같은 비중이다. 여호와를 떠나지 않고, 개혁의 길을 돌이키지 않을려 애를 써도, 그만큼 산당을 폐하기가 어렵다는 것.
기복은 왜이리 좋을까? 본 성. 이라서. 노력없이도 저절로 산당을 들이는 우리의 본성이다. 개혁은 그러므로 너무너무 어렵다.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그대로 쓰면,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개독중의 대형교회 목사의 신상을 털어야 한다. 지금 모 후보를 털듯 털면 먼지하나 안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먼지를 털어야 겠다는게 그들의 전략이다. 먼지가 날까봐 너무 두렵다.
적은 것이라도 개혁은 너무 너무 어렵다. 우리의 산당을 폐하는 것을 특별한 왕들이나 하지 못하지 않는가. 오랜 관행이 너무 많이 있을 것. 회사별로 직급별로 하청업체에서 받는 게 관행이라면 나혼자 안받는게 어렵고, 나도 아랫사람에게 받는게 또 되야하는 구조라면, 나 혼자 안받는다고 되는게 아니다. 이런 사슬은 너무 어렵다는것. 구속사가 바로 이것. 말씀으로 나를 개혁하고자 하지만 내가 폐하지 못하는게 너무 많은 것. 그러므로 날마다 회사를 가도 내가 선한게 하나도 없는걸 절감하는 것. 이게 여호와 앞에서 선한 것.
내가 할 수 있다 ampne 하나도 할 수 없다. = 여호와 앞에서 선한 것.
회사만 가면 어디서부터 개혁해야 할 지 감이 안잡히는 우리.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폐하는 게 너무 어렵다. 그래서 교회만 오면 눈물이 난다. 너무 하나님 뜻대로 못 살아서. 이게 어떻게 말로 개혁이 되겠는가. 개혁이 바로 이런 것. 그렇게 정직히 행해도 절대 폐하지 못하는 것이다.
적용/ 내가 나를 개혁하고자 해도, 나를 폐하지 못하는 그 만큼의 산당은 무엇이세요? 관행이라고 포기하는 것은 무엇이세요?
d. 산당을 폐하지 못해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44/ 남 북은 그 동안 르호보암, 여로보암과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 일 평생 일생 전쟁이 계속 되었다. 그런데 여호사밧 - 아합 사이에 일시적 평화적 관계가 되었으니 정치를 얼마나 잘했는가? 노벨상을 양쪽에 줄 일이다. 그떄 여호사밧이 개혁하며 율법 백 만대군을 길러내니 이때 남 북이 부귀영화가 극에 달한 시기였다. 그때 여호사밧도 그 환경에 가니 예외가 없다. 바로 이후에 역대하 18: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관계로 인척이 되었다. 이 정략결혼으로 인해, 아람과의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전적인 은혜로 여호사밧은 길르앗 나못 전투에서 살았다. 남쪽 방언으로 소리를 질러,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러므로 역대하 19:1, 여호사밧은 남으로 온전히 돌아왔다고 한다. 예후가 악한자를 돕는것과 여호와가 미워하는 자를 돕는게 가당키나 합니까 하며 진노가 임할거라고. 그래도 왕은 마음을 그때 기울여 악하고 선한 일을 보겠다고 했다.
아람보다 더 무서운 게 혼인 동맹을 맺은 것. 가장 치명적인 실수다. 이 결혼으로 남 유다의 북이스라엘의 악행이 모두 흘러들어왔다. 한 사람때문에 예배가 드릴 수도 못 드릴 수도 있다. 여자 아달랴 한 사람이 시집가서 유다가 영적으로 오염된다. 더 나아가, 아달랴는 유다의 아들과 손자까지 남자가 다 죽여버리고 자신이 여왕이 되어 남유다 다윗왕조가 끊어질 뻔한 - 예수님이 못 올뻔한 짓을 여호사밧이 했다. 여호사밧보다 더 큰 죄는 이 세상에 없다. 누구와 편하는 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 그래서 백성이 산당에서 분향하는 것도, 여호사밧을 보면 폐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속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결국, 여호사밧은 아합보다 훨씬 더 만고의 죄인이라는 것.
옳고그름으로 보면 절대 모를 일.
45/ 여호사밧 치적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 족보에 올라갔다는 평가가 되었기에, 열왕기엔 반성문 쓰는 곳이라 언급이 안된다. 여호사밧은 신앙 붐, 말씀 붐, 전국 재판 제도와 조직을 정비한 성군이다. 특히 그가 부린 권세 (45절)로 전쟁 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권세를 얘기할 때도 쓰이는 단어. 그러므로 여호사밧은 강력한 권세를 행했다고 하는 것.
절대권력은 오히려 왕이 여호와로 멀어지게 하고 백성을 탄압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다분히 지닌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리하는 여기 왕에게도 절대 권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특히 전쟁을 부각한 이유는, 미가야를 무시하고 아합과 동맹하여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을 뻔한것. 회개 후에 절대권력으로 오직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모압과 암몬을 정벌했다. 이 절대권력으로 최고의 리더쉽으로도 죽을뻔한 결과로도 쓰인다. 이타적인 독재자가 가장 좋은 리더다. 두바이의 왕이 10년안에 세계 빌딩을 뚝딱뚝딱 지은 것이고 그게 치적이 되었다. 똑같은 전쟁 같지만 하나님 나라의 절대권력을 주실 때는 백성을 위해 쓰라고 주신다. 그런데 조금 잘못 되면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자기가 죽을 뻔하게 된다. 오직 어떤 전쟁도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아합도 이기다보니 자기가 주인이 되어 죽었다.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다는게 정말 어렵다.
적용/ 일시적 평화를 위해 치명적으로 실수 한 것은? 혼인? 동업? 안 가야 할 모임입니까?
e. 마지막 징계로 유턴 하는 사람.
최종적 병과가 끝났다. 여호사밧의 사적은 역대기에 기록되었다고 했지만, 여기에는 추신이 달렸다. 46절/ 선왕으로 자리매김한 이유 - 아사 시대에 남아있는 남색하는 자를 쫓아냄. 이게 또 영광이 달할 때 남색하는 자를 절대 못 건들이는데 인생 끝자락에 마지막에 개혁해낸 여호사밧. 남색이라는 카뎃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이 뜻은 거룩. 남색은 우상숭배하는 자 입장에서는 거룩한 제사를 주관하기 떄문. 음란한 성행위 = 우상숭배자에겐 거룩한 종교예식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동생이 퀴어축제에서 검은 사제 옷으로 행진하는 사진에서, 아직은 남색하는 자를 못 쫓아냈는데, 이 일을 결국 해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은 성군. 진짜 개혁하기 힘든 동성애를 개혁해냈다. 지금 이 일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47-50 그때에는 에돔에 왕이 없고 서쪽에 왕이 있다고 한다.
여호사밧은 49절에서 아합 아들 아하시야가 내 종이 당신의 종과 같이 함께 배를 타라 하는데 허락하지 않았다. 50절에서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에돔이 야곱의 형 에서의 별명이었다. 아브람 후손이지만 약속의 자녀와는 상관없는 그 곳. 여호사밧은 솔로몬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 산당예배 히로인의 영광 - 배를 만들어 무역했다. 금을 구하려 했는데, 그 배를 이제 에돔의 영토 에시온 게벨에서 파선을 했다. 에돔도 약속의 자녀가 아닌데 우리가 그렇게 실수를 한다. 이 배를 누구와 함께 만들었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아. 아합이 죽어도 계속 교제를 하고 있는 여호사밧. 역대하 19:2 아합과의 교제도 엄청 질책을 받았는데, 마지막 역대하 20:37에는 엘리에셀이 예언을 또 했다. 경고했다. 북쪽에 심히 악을 행하는 아하시아와 교제하므로 너의 배를 파선되게 하리라 예언들었던 여호사밧.
사람은 망하기전까지 돌이키지 않는다. 한 번 맺은 관계를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아하시아가 아합의 아들이고 아합의 딸은 여호사밧의 며느리기에, 손자들도 피가 섞였을 터. 그가 개혁을 하면서도 어떻게 이 관계를 끊겠나.
이것을 보니 여호사밧이 끊을 수 없는게 이해가 되고 슬프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시도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이 여호사밧을 너무 사랑하셔서 엄청난 손해에도 그 배를 파선시키는 하나님. 그런데 이 때, 경고를 들은 여호사밧은 경고가 다시 생각난 것. 아하시아가 다시 배를 만들어 가자할때 이제는 허락하지 않은 - 부를 다시 축적할 길을 끊은 - 여호사밧. 바로 이 점이 마지막에 선한 왕으로 남게 된 최고의 이유다.
인생은 여호사밧의 마지막 기록이 이 49절이다. 허락하지 아니 하였더라.
아까 45절 전까지는 이 땅으로 평화하였더라로 끝날뻔 했는데, 평화한 것을 이제는 끊은 여호사밧. 인생은 마지막이 중요하다. 여호사밧은 돌이킴이 결론이고 다윗성에 장사 되었다. 생각할 수록 사부님의 마지막이 축복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렇게 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돌이키기가 정말 어렵고, 사과한번이 그렇게 어렵다. 잘못했으면 돌이켜야 하는데, 돌이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죽은자를 살리는 것 만큼 어렵다. = 위대한 일이다. 누구는 평생에 잘못했다는 말을 열 번을 안했다고 한다. 택자만 돌이 킬 수 있다. 여호사밧은 택자이고, 선왕으로 결론지었다. 여호사밧이 나라를 말아 먹는 실수에도 선한왕이 되는 것은 바로 마지막이라도 돌이키고 회개 했기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범죄를 저질르곤 해도 회개만 하면 천국 백성이 된다. 아무리 죄가 큰다한들, 여호사밧보다 더 큰 죄는 없다. 의도했던 아니던. 그의 죄는 하나님 나라를 끊어지게 할 그런 죄였다. 실제적으로 아달랴가 와서 자기 아들들을 다 죽였다. 손자들을 다 죽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죄인이라고 남색을 끊고 우상을 섬기는 친척이라도 끊었다. 아하시아를 끊어야 한다. 쾌락과 제물이 어른거릴텐데 끊어내야 한다. 그 어마어마한 배가 파선되는게 큰 손해 였을텐데.
적용/ 이제는 허락하지 않아야 할 교제, 사건은? 그로 인해, 하나님이 애써 막아주신 일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13년 동안 문 밖 출입을 못한 사람이다. 여러분들의 간증을 듣고 또 하면, 직장과 학교라도 나왔으면 1000% 이혼하고 망가졌을 것 같다. 여자들이 가는 길이 다 뻔하다. 어떻게 문 밖 출입을 못했을까. 이건 하나님의 세팅이었다. 나도 성도님들 환경에서는 똑같이 당했을 것 같다. 내가 아합이라도 그랬을 것 같다. 내가 여호사밧이라도 그랬을 것 같다. 생각해봐도 애써 막아주신 것 같다. 강력한 것이 아니었으면 목사님은 나갔을 것.
5개로 왜 선한 왕인지 해봤다 이제는 악한 왕.
- 여호와 앞에서 악한 왕 아하시아.
51-53/ 아하시야가 아버지의 길, 어머니의 길, 여로보암의 길로 악을 행했다 = 바알 숭배. 하나님 노하시게 했다. 이게 아하시아의 전체 코멘트다. 여호사밧은 치적도 실수도 실패도 많았지만 회개도 있기에 선한 왕이라 칭함 받는데, 조상 말도 잘 듣고 어머니 말 잘 듣고 조상 신 너무 잘 섬기는 착한 아이인 아하시아는 대조적이다. 바알의 맨 끝엔 돈이라고 했다 (바알 = 소유하다라는 뜻) 여호와의 진노를 산 다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도 공동체가 있지만, 거긴 바알 공동체다. 싸워도 예수 공동체여야 정직한 인도를 해줄텐데,
조상은 금송아지 여로보암, 아버지는 아합, 어머니는 이세벨이고 누이는 아달랴. 최고의 로열 패밀리지만 정직을 가르쳐 줄 공동체는 아니다. 천국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공동체가 예수 공동체인데, 교회를 나간다고 예수 공동체는 아니라는 것. 3세대의 저주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아달랴의 3~4대의 계보 이름들이 마태복음에 빠진다. 로열패밀리 일 수록 고질적인 우상숭배에서 멀어지기는 너무 어렵다. 즉, '엄마 아버지 말 잘 듣다가 내가 지옥에 갔다' 여로보암의 길은 돈 신 이 세상 모든 것으로, 하나님보다 높게 두는 것이다. 모두 이세벨이 충동질 하지만 책임은 아합에게 묻는다. 남녀의 역할 때문에. 속인자보다 속은 자가 더 나쁘다. 아담과 하와 때도 남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가장으로서 믿음의 책임을 져야하는지 모른다. 결정은 또 역할대로 남편이 진다. 이처럼 성도는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가느냐에 따라 여호와 앞에서 평가가 달라진다.
한편, 어떻게 아합 아들 아하시아가 왕을 계승하지? 북이스라엘은 모반이 계속되어 왕조가 갈아치워지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합이 한 번 겸비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 그때 니 죄를 다음 시대로 유보하겠다고 했다. 하나님은 조금이라도 회개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신다. 아합이 잘나서가 아니라 잠깐 겸비했기 때문. 이스라엘을 위해서 겸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위해 약속하신 바를 이루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아하시아가 왕이 되었지만 딱 2년. 조상말 엄마말 잘 듣다가 지옥갔다. 이렇게 한 줄씩 읽어가면 가치관이 달라진다. 성경을 한 줄 씩 읽으면 하나님의 설득이 숨겨져있다. 해석이 굉장히 많이 된다. 북이스라엘은 말씀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세벨처럼 부자집 딸을 그렇게 좋아하고 하나님 믿는것을 허투루 여긴다. 그래서, 여호와 앞에서 악한 아하시아 집같은, 집안 이야기를 나누겠다.
공동체 나눔/
회사 창업주가 집안이 풍비박산 난 소식을 들음. 암으로 작년에 작고. 그분의 삼촌이 목사라 예배도 드렸다. 몇달 후 더이상 교회 안나가겠다고 한 것은 목사 삼촌이 날마다 헌금을 요구해서. 결국 이분은 조강지처를 버리고 회사 여 직원과 재혼했다. 회사 상장이후에, 그 직원들에게 주기로 한 주식까지 다 챙겨서 상장할 때에 240억에 회사를 팔고 갔다. 그 돈으로 과연 자식들이 잘 살까 궁금했고, 결국 그분의 딸은 재산을 보고 미국으로 시집갔지만, 집안이 풍비박산 나니 이혼을 했다. 또 아들은 아버지 재산을 지킬려 미국 애인과 헤어지고 돌아왔는데, 재혼녀인 여직원은 회사 명의를 이 아들에게 돌려주는 대신 대출을 벌려 돈은 다 챙기고 회사는 빚더미로 몰리게 되었다. 홀 시어머니도 집 사드린다고 결국은 그 여자가 자기 명의로 그 돈까지 다 빼서 사라졌기에, 아들은 빚더미에 어머니는 거리에 내 쫓기게 되었다. 이제 이 분이 나눔하기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라고 생각 하면서도, 아프실 때 찾아가지 못한 본은 복음을 못 전해 안타깝기 보다는 쌤통이다라고 아내와 나눴다고 함. 그 분의 재산 240억이 더 궁금했다고.
그에 초원님은 240억도 이리저리 가볍게 날아갔을 것 같다고 처방함. 창업주의 길이 아하시아와 같지 않는가?
우리가 정말 믿음도 없는데, 아비마귀에서 난 부모의 말을 잘 듣다 예수 없이 지옥에 가는 평탄한 아하시아가 되지는 않을까. 여호사밧같은 자가 되어야 좋겠다. 악한 리더도 선한 리더도 부모 책임이다..
[2019 .08. 24 기도제목]
구준호
1. 부모님과 트러블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김주형
1. 알바 신청한거 주님 뜻대로 잘 인도함받기
2. 여자친구 이번주에 만나서 만날지 안만날지 결정하는데 주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3. 부모님 건강 기도
4. 동생 불법도박 끊어지고 목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길태수
1. 이번주도 회사에서 순종할 수 있도록
2. 지소서와 포트폴리오 만들어야하는데 지치지 않고 준비할 수 있도록
3. 진로 취업에 있어서 두려움이 너무 큰데 항 상 기도로서 취업에 임할 수 있도록
안식
- 새 학기 시간표 잘 정리 될 수 있도록.
- 내 안의 산당이 폐하여 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내 고백이 되도록.
- 좋은 시간을 쌓는 가운데에서도 가족들 객관화하여 볼 기회가 되어 감사합니다. 이제 그를 토대로 기도하고 섬길 수 있도록.
- 묻지 않는 죄를 경계하고 어떤 공동체에 속해있는지 묵상할 수 있도록.
- 나만을 주장 하는 것 보다, 듣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도록. 겸손한 환경만 있었고 범한 죄와 드러난 죄 가운데서 제가 100% 죄인임이 인정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