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1-12>
전쟁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남편만 돌아온다면 이번 사업만 해결해 준다면 주님 하라는 대로 무엇이든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면 주님이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아합의 마지막에서도여전히 계속 이겨야 하고 과시하려고 한다. 아합처럼 전쟁이 없는 모습의특징은 무엇인가?
1. 또 다른 세상 전쟁을 꾸민다.
전쟁이 3년 동안 없이 지냈다면, 좋은 일이 아니라 쥐약이다. 나봇의 사건 이후 아합의 겸비함을 보시고, 자녀에게 묻겠다고 했지만 이 뜻은 자녀도 아합처럼 회개하면 유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인 아합은 자녀를 위해 3년 동안 옷을 찢고 회개하는 겸비함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합은 수준이 낮아서 내가 재앙을 받는다는게 안 된다.
적용: 내 죄를 나에게 묻는 것이 좋은가? 자녀 시대에 묻는 것이 좋은가?
아합에게 평안한 3년이라는 시간을 주어지니 자신의 죄와 모든 위기를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아합처럼 우리도 이기면 내 실력, 지면 남 탓, 하나님 탓을 한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다. 결국 아합에 대한 여러 차례의 심판의 예언이 드디어 사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적용: 우리는 지금 전쟁의 시대인가? 전쟁이 잠깐 없는 시대인가? 언제 유익했는가?
남, 북이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나 악한 아합이지만 정치, 경제, 군사력이 너무 막강하였다. 벤하닷은 32개국을 연합한 아람인데, 그 벤하닷과 전투에서 두 번이나 물리쳤으니 아합은 이순신 장군 같은 존재였다.
아합의 시대는 사람이 왕노릇 하는 인권의 시작이다 (포스트모던). 예수 믿는 사람을 끌어 내리고 초토화 시키고 있는 아합과 이세벨이다. 믿음을 끌어 내리고 있다. 아무리 바알을 섬기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고, 나봇을 죽였어도 세 차례의 전쟁을 이겼기에 교만하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아들 주면서 혼인 동맹을 맺고, 또 이기겠지 싶어서 여호사밧이 북으로 내려갔다 (내려갔다고 표현. 영적으로 내려갔다는 의미). 악의 영향력은 놀랍다. 결국 아합은 악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도 아무리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도 훗날의 평가가 중요하다.
적용: 누구의 영향으로 어디로 내려가고 있는가?
신하들 보고 길르앗 라못은 능히 탈환할 능력이 있는데 왜 잠잠하냐고 교만하게 탈환해야 한다고 한다. 아합과 벤하닷이 다를게 없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하면서 아람과 연합했지만 이제는 전쟁을 통해 빼앗긴 길르앗라못을 찾아오고자 한다. 그래서 벤하닷의 목숨 대신에 땅을 받기로 했다. 벤하닷이 약속을 지키니 이제는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명분있는 계획이었지만, 벤하닷은 약조를 하고 왜 안돌려 줬을 까?
7천명이 10만 명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가 생각을 해보니 여호와 때문임을 알게되었고, 여호와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아합은 자신이 잘나서 이겼다고 생각한다. 사단은 3년 동안 아합을 편하게 해서 여호와를 떠나게 하였다. 누구한테는 전쟁이 없는 것이 쥐약이다.
이스라엘은 빼앗긴 땅도 많았지만 길르앗라못은 산악 지역 이스라엘에 무역의 중심지였기에 아람으로부터 반드시 빼앗아야 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스스로 전투에 참여하고자 결단을 하였다. 당시 두 왕사이의 연대 의식은 강했지만 결국 영원한 원수처럼 지낸다. 남북은 어떤 약속을 해도 도로 돌아간다. 그러니 아람과도 '형제여' 하면서 '내 것이 당신 것이요' 하며 외쳤지만 모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적용: 우리가 편안히 내 것이라고 탈환하고 싶은 길르앗라못 전쟁은 무슨 전쟁인가?
2. 전쟁이 없으면 물을만한 선지자 미가야를 미워한다.
전쟁에 대해 묻고자 할 때, 자격도 없는 400명의 선지자들은 잘 될 거라고 했다. 명목상으로 분명히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이 맞지만 아합이 나봇 죽이는 모습을 봤다. 'YES'부대만 있다. 결국 아합의 대적은 하나님의 사람 (예: 엘리야) 이다. 엘리야 때와 마찬가지로 미가야를 위해 400명을 준비했다. (한 사람을 대적하기 위해)
미가야가 여호와께 묻는 다는 것을 아합은 안다. 하지만 아합이 자기중심적이니 하나님 말씀인가 아닌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한테 좋은가만 중요하다. 성경에서 '내가 미가야를 미워 한다'의 표현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오한다는 동사이다. 하지만 흉한 말을 듣는게 아합이 죽음의 길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다. 여호와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는데 끝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합을 보고 있는데, 아합은 돌아보지 않는다.
적용: 우리는 어떤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가? 우리는 부를 만한 선지자로 머리로 좋아하는가? 가슴으로 좋아하는가?
3. 길한 말만 듣기를 바란다.
시드기야가 철 뿔로 아랍왕을 죽이면 된다고 실무교육까지 하면서 실감나게 예언을 한다. 그런데 이 예언은 모세가 요셉지파를 축복한 내용이고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를 비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시드기야가 자기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기를 위해 모이고, 사역하고, 성경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기획안을 만들기에 보기에는 멋있는 철뿔이지만 열매가 없다.
적용: 우리는 남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고 내가 하는 일에 길한 말만을 듣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제목>
1. 신정화
- 가족구원
- 하나님의 위로를 마음으로 받는 한 주가 되길.
- 시간과 공간을 정해서 기도를 할 수 있길.
2. 이소정
- 이직의 인도하심
- 부모님의 영육 간의 건강
3. 박재인
-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의 축복을 주시길
- 하나님의 지혜로 프로젝트와 과제들 잘 진행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