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당해야 하리라
날짜 : 2019.07.14
본문 : 열왕기상 20:22 ~ 43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지 않으면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대로 내가 행한 대로, 말한 대로 당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왜 그대로 당할 일이 많을까요?
1.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2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께서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
선지자는 왕에게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명령형 동사로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 고 강력하게 전했습니다. 성도는 사단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하던지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성도를 때에 따라 보호하시고 도우십니다. 일당백에 훈련을 쌓기 위해서는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할 내 자리인 학교, 가정, 회사, 군대 등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알고 힘을 기르기 위해 기초체력부터 다져야 하고 어디가 부족한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호시탐탐 치고 들어오는 대적을 살피는 훈련이 됩니다.
그런데 일생의 전쟁은 끝없이 반복됩니다. 전쟁의 방법을 묻기만 하면 주님이 일일이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하나님 나라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모든 것에 은혜가 아니면 설 수가 없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의 총지휘관은 하나님입니다. 참된 예배 드리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영육간에 실력을 쌓는 비결이고, 지켜주시는 비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험하고 주변에 대적의 공격이 극심하더라도 우리 인생의 총지휘관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이제 치열하게 훈련을 해야 몸이 기억을
합니다.
적용)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 중에 어디 계십니까?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합니까?
그러기 위한 여러분의 예배는 치열하게 훈련이 되어 몸이 기억을 합니까?
2. 사단은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23절부터 27절까지는 왜 전쟁에 졌나 패인을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23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
24 또 왕은 이 일을 행하실지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 곳에서 떠나게 하고 그들 대신에 총독들을 두시고
25 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보충하고 말은 말대로, 병거는 병거대로 보충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26해가 바뀌니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소집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27이스라엘 자손도 소집되어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그들 앞에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아람 왕과 심복들은 패인을 분석하고 2차 침략의 전략을 짜는 내용이 나옵니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 단정을 하였습니다. 안 믿는 그들은 미신적이고 기복적이기 때문에 산의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4절에 아람 왕의 심복들이 모양새에 불과했던 32개 왕들에게서 지휘권울 빼앗아 전쟁에 익숙한 장군들에게 넘겨줘야 되고 잃어버린 군대와 병거들을 보충하고 병거와 말에서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는 아람군의 특성상 산의 신을 피해서 평야에서 싸우면 우리는 이제 이긴다고 보고했더니 이런 모든 분석들은 참으로 인간적인 판단에 근거할 때 대단한 전략 아닙니까? 벤하닷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2차 침공을 수행하였습니다. 여기에 비해 이스라엘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았다고 나와있습니다.(27) 아람이 이 모든 전략을 가지고 이 땅에 가득한 사람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은 믿는 우리도 해야 할 일이고 배워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한가지 없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 없는 자의 말 하나님을 제한하는 말의 전략을 가지고 행했습니다. 내가 이기고자 하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첫 단추부터 헛된 노력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들의 확신은 산의 신이 아닌 무소 부지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1차 전투에서 승리를 예언하고 전략을 알려주었던 바로 그 선지자가 아람이 다 이겼다고 생각한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하고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계획과 말과 숨소리까지 다 들으십니다. 그래서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이 직면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다시 능력을 보이심으로 북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보이시는 것은 내가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그런데 사람들은 능력을 보이면 세상으로 갑니다. 능력을 보이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회개는 은혜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합을 지켜주십니다. 드디어 이 전략을 가지고 전쟁이 시작됩니다.
29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7일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끝까지 기다리고 참게 하십니다. 그러고 하루 만에 승리하게 하시는 아벡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람이 완벽한 전략을 짰으나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오직 하나님 역사 때문이라는 것은 또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하셨다 의 연속입니다.
30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벤하닷이 성벽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십만명이 죽은 와중에도 또 살아남았습니다. 무조건 사로잡아야 할 사단의 괴수가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전투할 때 한 사람 살리는 것, 한 사람 죽이는 것, 한 사람 아담이 범죄해서 우리 모두 범죄에 들었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하여 우리가 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적용) 지금 당하는 사건에서 여러분의 전략은 하나님의 지혜입니까? 인간적인 책략입니까?
3.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머리에 테두리를 쓰고 동정을 유발하며 살려달라고 왕에게 갔습니다. 여기에서 딱 살려줬습니다.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 입니다. 자비 , 언약의 대한 신실함 그런데 여기 속이는 것이 분명한 것이 과거 북이스라엘의 동맹인 언약을 파괴했던 아람이 자비,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목숨을 구걸하면서 아합을 헤세드 왕이라고 하며 속이고 있습니다. 이 말에 아합은 어리석어 속아 넘어가 그에게 언약적인 헤세드 자비를 베풉니다. 아합의 헤세드는 북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자비 헤세드를 짓밟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 헤세드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서 벤하닷 사단을 완전히 마땅히 죽여야 했습니다. 인간적이니까 어떻게 죽여 이러는 것입니다. 욕심 많은 아합은 사단에게 틈만 나면 넘어갑니다. 한마디에 속아 넘어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을 모르니 인간을 몰라 사람 분별이 안됩니다. 아합은 죄인됨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아합이 형제라고 하니 벤하닷도 그 말을 철회하지 못하게 확증하려고 저도 왕의 형제라고 급히 이것을 확증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틈으로 봅니다. 헤세드 한마디로 틈을 보였기에 징조로 여겼기에 파고드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사단은 파고듭니다. 항상 문제는 내가 틈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긍휼로 불신 세상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성도의 도리이고 미덕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잘못된 긍휼을 나쁜 긍휼이며 범죄요 긍휼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에게, 외인에게는 회개를 촉구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도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죄인을 향한 긍휼이고 자비임을 알아야 합니다.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무역에 대한 협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32개국 연합의 총 두목이 이렇게 나오니 어리석은 아합이 속기가 쉬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인데, 겸손해야 자기 자신을 압니다. 겸손한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릇된 긍휼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나옵니다. 이기기만 하면 자기 생각이 나옵니다. 그래서 잘 사는게 축복이 아닙니다. 힘들 때는 공동체에 나오다가 조금 되면 공동체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긴 것 같으니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여 교만하게 조약을 맺고 놓아줍니다. 아합은 하나님 나라의 전쟁 규칙에 따라 마땅히 죽여야 할 사단의 왕 벤하닷과 언약을 맺고 살려 보내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정면으로 깨뜨렸음을 보여줍니다. 막대한 경제적 이권과 관련이 되어 주의 언약을 세상 재물과 바꿨습니다. 13절, 22절 28절에 선지자가 아합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주신 것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인데 아합이 벤하닷과 약조한 것은 어리석은 아합이 결국 하나님을 만으로 여기고 묻지 않고 행했기 때문에 이것은 선한 마음이 아니라 허영에서 나온 자기 욕심으로 놓아준 악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해 못한다고 지키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아합이 벤하닷에게 속아서 그는 내 형제라고 하며 언약의 헤세드를 남발하며 조약을 맺은 것은 마치 차별금지법에 사인을 한 것과 같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구별하십니까?
자기 죄가 안 보이는 사람은 이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4. 그대로 당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별 방법을 다 쓰는 엄마처럼 하나님은 행위 예언으로 아합을 촉구합니다.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친구가 치라고 하니 치지 않아서 사자에 물려 죽었대요. 세상적으로 말하면 누가 더 좋은 친구입니까? 넌 날 때려 했을 때 내가 어떻게 때려하는 친구가 좋은친구입니까? 상하도록 피가 나도록 치는 친구가 좋은 친구에요? 말씀은 인간이 반드시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이해가 안되어도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이 말씀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못 듣는 것은 세상과 죄악과의 타협때문에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인본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장 힘 있는 통로는 선지자가 자신을 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치라는 것은 자신의 고난 입니다. 고난이 말씀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아합이 사단의 괴수를 사로 잡아야 하는데 그릇된 긍휼로 자발적으로 놓아줬기 때문에 네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 이상한 예언까지 하며 대신 목숨 내놓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나를 치라 하면서 죽어야 할 벤하닷을 치지 않고 살려 주었으니 네가 대신 죽어라 하는 것은 행위 예언으로 보여 줍니다.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아합의 말이 맞습니다. 공정한 것입니다. 사단의 주된 업무는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오래도록 회개하여야 하나 영혼을 돌보지 않는 행동은 영벌이기에 그 사람을 지키라 하였는데 이리저리 일을 봤습니다. 네가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아합이 옳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도 모르게 이 판결이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고 형벌을 자기 스스로에게 선고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나의 재능이나 재물을 쓰도록 알맞은 기회를 주시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회를 다 버리고 구원과 상관 없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에 당하는 고통이기에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이 옵니다. 이것이 다 고통으로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리저리 일 볼 동안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없어졌다고 하였는데 인생이 짧기에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급히 자기의 눈을 벗으나 벤하닷의 처리를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아합에 대한 심판도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급히 내가 결정했지만 계약서에 사인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아합도 자기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은 이 같은 행위를 통해 잠깐은 이익을 봤을지 모르나 벤하닷 대신 자기가 심판의 자리로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은 사망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근심하고 답답했다는 것은 원어로 근심은 기분이 나쁘고 노하고 답답은 화나고 격분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지경이 왔음에도 아합은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선지자의 무서운 형벌의 경고를 듣고도 근심하고 답답했습니다.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여야 하는데 사형 선고를 받고도 근심하고 답답해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보다 사마리아 궁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사마리아 궁에는 이세벨이 있습니다. 이세벨을 찾아 떠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면 안 될 곳을 우리도 가는 곳은 없을까요?
육적 해결사가 내 옆에 있으면 하나님께 가기가 어렵습니다. 해결사 자녀, 부모, 부하가 있으면 영적 해결을 딱 막는 것입니다. 모두가 해결을 해주니 Think할 일이 없습니다. 홀로서기 해야하는데 가진 부모들은 그것이 어렵습니다. 아합은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해석이 안됩니다. 거룩한 회개는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적용) 지금 당하는 것이 스스로 결정한 나의 결론이라는 것이 인정이 됩니까?
아니면 아직도 근심하고 답답합니까? 그래서 누구를 찾아가고자 합니까?
황다솜 목장 보고서
o 금주 기도제목
A
1. 큐티 매일 손으로 쓰며 깊게 할 수 있도록
2. 진로에 대해 계속 기도하며 인도받을 수 있도록
B
1. 교사 동아리 달팽이 그만 두는 것 지혜롭게 잘 말할 수 있도록
2. 오빠의 문제가 잘 해결되고, 이 사건을 통해 오빠가 자기의 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기를
C
1. 이번 한 주 큐티 빼먹지 않고 할 수 있도록
2. 가족 관계의 문제가 잘 회복될 수 있도록
3. 남자친구 교회에 등록하여 목장 참여 할 수 있도록
D
1. 큐티 매일 하면서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2. 친한 언니 교회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3. 신교제
E
1. 가족의 우울증과 건강이 치료될 수 있도록
2. 아빠와 오빠가 분리될 수 있도록
3. 큐티 한 주에 세번이라도 할 수 있도록
4. 운동 꾸준히 할 수 있도록
5.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