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7. 14 주일예배>
일시 19. 7. 14. 3부 예배
찬양 크신 내 주님 ┃ 전능하신 하나님 ┃ 새 힘 얻으리 ┃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 더 원합니다 ┃ 시선
그대로 당해야 하리라
말씀 열왕기상 20:22-43
설교 김양재 목사님
우리 인생이 힘들어 보여도 성경은 우리 삶의 결론이라고 합니다. 아합이 40절 남의 일을 판단, 요청 받으면서 어떻게 할까요?하니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해야. 한다면서 큰소리 쳤지만 바로 그게 자기에게 하는 말이 될 줄 몰랐습니다. 어떤 유명 앵커가 미투와 여성인권의 소리를 드높이던 분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몰래 여성 다리를 찍다가 현행범으로 잡혔습니다. 본인이 남을 심판하다가 몰카는 스스로 결정해서 찍었기에 그대로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요, 우리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지 않으면, 서로 잡히게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내가 행한 대로 당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왜 그대로 당해야 할 일이 많을까요?
첫째로,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2)
(22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께서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
벤하닷과의 1차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진짜 실력이 있어 이긴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는 왕에게 자기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명령형 동사로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고 강력하게 전했습니다. 성도는 사단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하든지 막아낼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성도를 때에 따라 보호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방법으로 성도를 도우시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을 망치려면 돈을 많이 주고 시간을 많이 주라고 합니다. 처음엔 그게 좋아 보이나 여기가 좋사오니만 하면서 이제 갈 곳도 모르고 힘도 기르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모르는데,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하는 일 족족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당백의 훈련을 쌓기 위해서 가야 할 곳은 있지 않지만 내 자리를 지켜야 할 학교가 있고 회사가 있고 군대 등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알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 기초체력부터 다져야 하고 그래도 힘드니깐 어디가 부족한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호시탐탐 치고 들어오는 대적을 살피는 훈련이 됩니다.
그런데 일생의 전쟁은 끝없이 반복됩니다. 내가 입시전쟁 한번 이겨서 스카이 대학 갔다고 방심했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그런데 전쟁의 방법을 묻기만 하면 주님이 일일이 알려주십니다. 1차 전쟁 때도 아합의 실 날 만한 믿음을 보시고 구체적으로 청년들을 먼저 보내고 선봉은 아합왕이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선봉을 서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아합을 긍휼이 여기셔서 대승을 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제가 전하는 예수님 때문에 제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아껴보아 멸하시지 않은 것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나라 때문에 아합을 멸하지 않은 것이 정말 많더라구요. 그러니 여러분도 하나님 나라 때문에 예수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사명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니면 설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아람과 북이스라엘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총 지휘관은 아합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계속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영육 간에 실력을 쌓는 최고의 비결이고 지켜주시는 비결인지 모릅니다. 주님을 모르면 왜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살아? 큐티는 뭐야, 수요예배는 뭐야. 한번 사는 인생 먹고 마시고 즐기다 가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후에 죄의 싹이 너무나 크게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먹고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무엇인가입니다.
참으로 인생이 죄인이라서 겉으로 보기에 모범생이고 열심히 살았어도 죄 많은 것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셨는데 죄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가장 큰 죄이기에 죄의 기록부는 다 거기서 거기 다 똑같습니다. 다만, 죄에 대한 체감 온도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을 믿음의 분량이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험하고 대적의 공격이 극심하더라도 우리 인생의 총지휘관 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치열하게 훈련을 해야 몸이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천 명을 남겨주었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엘리야 외에도 이런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치열하게 훈련하신 무명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목사님, 선교사님, 사장님, 회사원 등 지금도 진짜 천국의 실력자들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 한 명만 유명하잖아요?
[적용해보세요]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 중에 어디 계십니까?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합니까? 그러기 위한 여러분의 예배는 치열하게 훈련이 되어 몸이 막 기억합니까? 수요일 날 저절로 버스를 타러 나옵니까? 직장에서도 몸이 기억해서 몇 번 버스를 타고 오십니까? 몸이 기억해야 합니다.
# 지난 주 나눔이에요. 공장 옆 부지를 다른 사람이 샀는데 그 땅을 조금 침범함으로 측량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계속 써온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쓰라고 했던 사람이 갑자기 내용 증명으로 경계침범으로 터무니없는 배상을 요구해왔다고 합니다.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액수의 3배를 주겠다고 해도 원하는 액수가 아니면 무조건 철거하라고 할 것 같다고.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처방하시겠습니까? 그런 나쁜 주인이 있어? 못 됐네.. 세상은 뭐라고 얘기하겠어요?
그러나 말씀이 능력 있습니다. 목자님이 이렇게 처방하셨습니다. 아합에게 벤하닷이 갑자기 나타나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가겠다고 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요구가 들어왔는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내 안에 항상 100% 옳지 않은 내가 있는데 화친했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한 일일 수도 있으니깐 공동체에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 자꾸 묻고 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지난주 장로가 되어 듣지도 않고 허락하지도 말아야 할 것을 같이 묵상하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주 설교 말씀과 이 사건은 딱 맞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이런 말을 나누는 것이 평범해 보이는 것 같지만 치열하게 몸이 기억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더니 이 처방을 보고 다른 목원들이 처방이 너무 훌륭하다고 옆에서 인상깊다고. 여러분도 인상 깊습니까? 오늘 사건에서 오늘 설교 말씀에서 그냥 설교 대지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것을 잘 못 합니다. 주인 욕하는 것밖에 하는 것이 없습니다. 맨날 그놈 나쁜 놈. 너는 나쁘고 나는 옳고. 그러니깐 우리가 굉장히 세련됐습니다. 욕을 하지 않는 비결을 가르쳐 드립니다.
두 번째는, 사단은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게 때문입니다. (23-30)
23-7절까지는 왜 졌는가 패인(敗因)을 분석하는 이야기입니다.
(23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 24 또 왕은 이 일을 행하실지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 곳에서 떠나게 하고 그들 대신에 총독들을 두시고 25 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보충하고 말은 말대로, 병거는 병거대로 보충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26 해가 바뀌니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소집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27 이스라엘 자손도 소집되어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그들 앞에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아람왕과 심복들은 그 패인을 분석하고 2차 침략의 계획의 짜는 내용이 나옵니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 단정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신의 산에서 언약을 맺었고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고 가장 최근에서는 850명의 바알 선지자를 죽였기 때문에 안 믿는 그들은 미신적이고 당연히 기복적이기 때문에 산의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일본 인구가 1억 2천인데 신이 1억 2천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고양이 신도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 신의 이름을 가져다가 붙였다고 합니다.
24절에 아람왕의 심복들이 모양새 비슷한 32개 왕들에게서 지휘권을 빼앗아 실제적으로 전쟁에 익숙한 장군들에게 넘겨줘야 하고 잃어버린 군대와 병거들을 보충하고 병거와 말에서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는 아람군의 특성상 산의 신을 피해서 평야에서 싸우면 우리는 이긴다고 보고했더니 이런 분석들은 참으로 인간적인 판단에 근거할 때 대단한 전략 아닙니까? 벤하닷은 이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 2차 침공을 수행했습니다. 여기에 비해 이스라엘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두 무리의 염소 떼와 같았다고 나옵니다. 아람이 이 모든 전략을 가지고 그 땅에 가득한 사람으로 동원을 잘했습니다. 전쟁에 임하는 것은 믿는 우리도 해야 할 일이고 배워야 할 일입니다. 이 땅에서 괜히 일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의 말, 하나님을 제한하는 말에 전략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 없는 고위 관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기고자 하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첫 단추부터 헛된 노력에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들의 확신은 산의 신이 아닌 무소‧부지하시며 전능‧전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8절입니다.
(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1차 전투에서 승리를 예언하고 전략을 알려주었던 그 선지자가 그때에 아람이 다 이겼다고 생각한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큰 군대를 너의 손에 붙이리니의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과 계획과 숨소리까지 다 들으십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이 직면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또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심으로 북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게 도우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이시는 것은 내가 늘 회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위해서. 그러나 사람들은 능력을 보이면 다 세상으로 갑니다. 능력을 보이면 하는 일이 하나님을 떠나는 겁니다. 이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합이 뭐가 예쁘다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겁니까? 회개하라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인데. 회개는 은혜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얘기는 옳고 그름으로 해석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공로로? 아합의 공로가 뭐가 있습니까? 공로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합을 지켜주십니다. 드디어 이 전략을 가지고 전쟁이 시작됩니다.
29절입니다.
(29 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고 했지만 7일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숨막히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끝까지 기다리게 하시고 참게 하시고 하루 만에 승리하게 하시는. 그 여리고의 전쟁과 비슷하게 아벡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보면 아람 군대는 최선을 다해서 전략대로 신중하게 행동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멕아더 장군처럼. 그렇지만 그것은 조류와 밀물과 썰물과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셨지, 멕아더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이 전쟁에서 이렇게 아람이 완벽한 전략을 짰는데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오직 하나님 역사 때문이라는 것을 또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연속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셨다.
30절에
(30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 이 벤하닷이 성벽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십 만명이 죽어가는 가운데도 또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사로잡아야 할 사단의 괴수가 얼마나 끈질긴가를 보여줍니다. 전투할 때 한 사람 죽이는 것, 한 사람 살리는 것. 한 사람 아람이 범죄하여 우리에게 범죄가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가 순종하여 우리가 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이 벤하닷은 아합의 상대가 되지 않는 괴수입니다. 그러니깐 살아나자마자 이스라엘을 잡을 방책이 연구가 됩니다.
[적용해보세요] 지금 당하는 사건에서 여러분의 전략은 하나님의 지혜입니까? 인간적인 책략입니까? 하나님의 지혜로 생각하겠어요? 인간적인 지혜로 꾀를 내겠습니까?
세 번째는,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1-34)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돌아버립니다. 뭐가 생각납니까? 기브온 생각나지 않습니까? 머리에 테두리를 쓰고 동정을 유발하며 살려달라고 갔습니다. 여기에서 살려줬습니다. 인자는 히브리어로 유명한 헤세드입니다. 자비, 언약에 대한 신실함. 그런데 여기 속이는 것이 분명한 것이 과거에 이스라엘 동맹을 파괴했던 아람이 무슨 언약의 신실함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 사람들은 헤세드를 입에 올릴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목숨을 구걸하면서 아합을 헤세드 왕이라하며 왕을 인자하다고 속이고 있습니다. 이 말에 아합은 속아 넘어가 그에게 언약적인 헤세드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헤세드는 북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헤세드자비를 짓밟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 헤세드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서 벤하닷 사단을 마땅히 죽여야 했습니다. 인간적이니 어떻게 죽여? 욕심 많은 아합은 치밀한 사단에게 틈만 나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헤세드 한 마디에 언약을 아는 것 같아 넘어갔습니다. 한마디에 속아 넘어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도 어디 선보러 나가는데 큐티인 쓴다고 하면 내가 신교제 대상을 만났어라면서 속아 넘어가고 싶죠? 저도 말씀 묵상하니깐 큐티인 쓴다고 하면 그 한마디에 넘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속여 먹기 너무 쉽습니다. 시장가서도 집사님이 큐티한다면 집사님 진짜 같애. 그렇게 얘기할 거 잖아요?
전적으로 하나님 때문에 이길 싸움인데 이겨야만 하는 싸움인데 하나님이 벤하닷을 아합의 손에 붙였는데 욕심으로 이 기회를 놓쳐버리는 아합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인간을 몰라 사람 분별이 안됩니다. 아합은 죄인됨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죄인인데 인자하신 헤세드라고 당신은 인정이 많다고 하니 금세 우쭐해져서 벤하닷을 나의 형제요~라고 합니다. 아합이 형제라고 하니 벤하닷도 그말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언릉 받아 확증하려고 저도 왕의 형제라고 합니다. 급히 이것을 확증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도 빨리 철회하지 못하도록 문서로 받아두라고 합니다.
사탄은 이것을 틈으로 봅니다. 헤세드 한 마디로 틈을 보였기 때문에 징조로 여겼기 때문에 파고듭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사단은 파고듭니다. 항상 문제는 내가 틈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잘 못된 긍휼을 불신 세상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합의 가치관이 거기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성도의 도리고 미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잘못된 긍휼은 나쁜 것입니다. 이것은 범죄요, 나쁜 긍휼입니다. 그러니깐 세상 사람, 외인에게는 회개를 촉구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도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죄인을 향한 긍휼이고, 자비임을 알아야 합니다.
#동성애는 죄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동성애자들을 위한 최고의 사랑임을 아시겠습니까? 누가 비난을 무릅쓰고 동생애가 죄라고 하겠습니까? 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에서 얼마나 수많은 죄로 망했습니까? 그런 죄인 집단들이 있겠지만, 오직 동성애자들만 합세해서 난동을 부립니다. 그들이 똑똑합니다. 수요예배때 염안섭원장님 강의를 들어보니 들어난 것만 60만명이고 육체관계하지 않는 자들은 그 수에 들지 않기 때문에 훨씬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동성애로 비롯된 에이즈 환자 약값은 한달에 600만원이라고 합니다. 에이즈 간병인은 특별해서 20만원이 지급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다친사람에게는 그런 혜택이 하나도 없는데 다는 아니더라도 문란한 성생활로 에이즈 치료비용은 모두 나라가 무상으로 지급하여 세금으로 8조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약도 좋아져 에이즈 걸려도 30년을 더 사는 사람이 있기에 점점 세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해도 인권유린이라고 얼굴을 보면서 알려주지 않고 전화로만 알려준다고 합니다. 어디가 차별입니까? 아무도 그 사람이 에이즈 걸렸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전염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 없는 아내들이
이 옮겨와서 아기를 가졌는데 병원에서 에이즈 걸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죄가 아닙니다.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7만 번의 임상 경험이 있는 에이즈 전문의사 염안섭 원장님의 레인보우 리턴즈를 구독하시고 강의를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론으로 알다가 실체를 알게 되어 너무나 놀라게 될 것입니다. 똑똑한 그들이 귀족집단이라는 것이 맞습니다. 날로 큐어축제에 사람을 참여시키고 자꾸 보다 보니 혐오감이 점점 없어지는 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혐오감이 있다가 자꾸 무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력화되고 있습니다. 염안섭 원장님은 식구들을 다 도피시켰다고 합니다.
유황불로 심판받은 소돔과 고모라에 구체적인 집단은 동성애자 하나뿐인 것을 생각하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지옥을 경험하면 가지말라고 외치지 않겠습니까? 지옥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이 대수라고 합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항암 하나만 해봐도 죽을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지옥이 있겠구나를 알았다고 했는데. 항암 하면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또 많습니다. 물론 택자여야 되지만. 그런데 우리들 교회는 동성애자들이 와서 주님을 만나고 고백을 하고 판교와 휘문에서 목자를 하면서 승리하신 분도 여럿 있습니다. 청년부에서 동성애를 오픈한 자매와 결혼한 현직 사역자도 있습니다. 죄인줄 알면서도 매듭이 지어지지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지체도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이 죄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죄를 오픈하지만 동성애가 가장 끊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입니다. 지금 같이 죄인줄 알면서 안타까워 하며 가는 것이 정상인데 이게 세력화 되는 것이 창세기 소돔처럼. 아브라함이 소돔에 왔는데 롯이 감추려고 하였는데 원근에서 노소를 막론하고 다모여서 내놓으라고. 그를 상관하리라. 이것이 얼마나 이익집단이 되어서 행패를 부리는 것처럼 전혀 상상도 못할 이 동성애를 수면에 드러내서 마음대로 행하도록 합법화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그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멸망이 온다고 할 때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는데 우리도 아무리 망한다고 들어도 농담으로 여깁니다. 이 문제가 큰 문제이기에 저도 중심에 불붙는 것 같아 부르짖습니다. 통과가 바로 코 앞에 나가왔기에 저라도 아합과 벤하닷의 싸움과 같이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하지만 외쳐야 되겠습니다. 우리들교회 동성애 지체들은 저 아무도 안 미워합니다. 제가 정말 사랑으로 이 말을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오픈해서 목자도 되고 사모도 되고 엄마도 되어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하면서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고 우리와 같이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다 평범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34절.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벤하닷 1세가 자기를 위하여 사마리아 거리를 만든 것처럼 아합도 다메섹 거리를 만들어주겠다고. 무역협정 애기를 합니다. 32개국 연합에 총두목이 이렇게 나오니깐 어리석은 아합이 얼마나 속기 쉬웠겠습니까? 자기 주제를 아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인데 겸손해야 자기 자신을 아는데 이게 겸손한 것이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된 긍휼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지는 것 같으면 묻다가 이기만하면 자기 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한테 잘 사는 것이 꼭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힘들때에는 공동체에 나오다가 쪼끔되면 안 나옵니다. 이긴 것 같으니 자기 마음대로 조약을 맺고 놓아준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여기사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선지자들을 보내사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고 말씀그대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합은 하나님 나라 전쟁 규칙에 따라 마땅히 죽여야 할 사단의 왕 벤하닷과 오히려 언약을 맺고 그를 살려보내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정면으로 깨트렸음을 보인 것입니다. 이것은 막대한 경제적인 이권과 관련되어 주의 언약을 세상 제물과 바꿨습니다. 이런 세상은 동성애를 죄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을 경험한 우리는 지옥 가지 말로 천국 가자고 물 건너 생명줄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13절, 22절 28절에 선지자가 아합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주신 것은 모두가 다아는 것인데 아합이 벤하닷과 약조한 것은 어리석은 아합이 결국 하나님을 만으로 여기고 묻지않고 행했기 때문에 이것은 선한 마음이 아니라 허영에서 나온 자기 욕심으로 놓아준 악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해못한다고 지키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아합은 벤하닷에 대한 자신의 계획 상과 외교적 이해득실과 관계없이 아람의 군대를 자신의 손에 붙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마땅히 죽였어야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아합의 모습은 실날 같지만 하나님께 묻기도 하고 융통성을 발휘한 것처럼 보입니다. 패배한 적에게 자비를 베푸는 관대한 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구속사로 안 깨달아지면 아합과 같은 지도자가 우리를 얼마나 힘빠지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아합이 벤하닷에게 속아서 그는 내 형제라고 하며 언약의 헤세드를 남발하면서 이 조약을 맺은 것은 마치 차별 금지법에 싸인을 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당신이 정치를 잘 하지만 유대 학살에만 싸인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에스더가 한 것처럼 저도 차별법,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정부에 청합니다. 이게 유대인 학살법입니다. 기독교의 학살법 맞습니다. 에스더처럼 아하수에로를 감동시킬수만 있다면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는데 누가 이 정부를 감동시킬 한 사람 일까요? 그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저와 우리들 교회 때문에 감동이 될까요? 이럴 때 감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아합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으니깐 우리는 우리 삶의 결론이겠지만. 우리들 교회는 동성애 대한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말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됩니다. 동성애가 안 끊어져도 모두 안 나가고 있습니다. 목장도 가고. 똑같은 죄인으로 지체가 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지체들을 사랑합니다. 다 오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천국가자구요. 정말 지극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구별하십니까? 자기 죄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네 번째는, 그대로 당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35-43)
별 방법을 다 쓰는 엄마처럼 하나님은 아합이 하도 말을 안드니 행위 예언으로 아합을 촉구합니다.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이런 웃기는 얘기가 어딨습니까? 친구가 치라고 하니 치지 않아서 사자에 물려 죽었대요. 세상적으로 누가 좋은 친구입니까? 너는 나를 때려!하면 내가 어떻게 너를 때려.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까? 상하도록 피가 나도록 때리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까?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본적이면 이해가 안됩니다. 말씀은 인간이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가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이해 안돼도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이 말씀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못 듣는 것은 세상과 죄악 간의 타협 때문에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인본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가장 힘 있는 통로는, 선지자가 자기를 치라고 합니다. 자신을 치라는 것은 자신의 고난입니다. 이 고난이 가장 말씀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선지자는 아합이 사다느이 괴수를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릇된 긍휼로 자발적으로 놓아져야 하기 때문에 네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경고하기 위해서 이상한 예언까지 해가면서 지금 목숨 내놓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도 제가 이런 현실 때문에 입어야 할 상처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나를 치라면서 쳐야할 벤하닷을 살려줬으니 너를 치라고 행위 예언으로 보여주십니다. 이해가 됩니까? 또 이어집니다.
36-40절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아합왕의 말이 공정한 것입니다. 그대로 당하시길 바랍니다.
사단의 주된 업무는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오래도록 회개하여야 하나 영혼을 돌보지 않는 것은 영벌이기에 그 사람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리저리 일을 봤습니다. 그러니 네가 파멸되는 것이다, 네가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아합이 옳은 말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 판결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고 형벌을 자기에게 선고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나의 이웃의 구원을 위해 나의 재능이나 제물을 쓰도록 알맞은 은혜를 주시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회를 다 버리고 구원과 상관없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서부터 보면,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 )
19가지 죄악들이 읊어지는데요, 결국 모든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에 당하는 고통이기에 자기가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자기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데 자기를 사랑하면 즐거움이 올 것 같은데 고통이 오고 그런 마음 돈을 사랑하고 자랑이 나오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고통이래요. 모든 스펙을 쌓아났는데 자랑이 고통이래요. 교만하잖아요? 고통이래요. 그래서 비방한대요. 감사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이게 다 고통으로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리저리 일 볼 때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없어졌다고 했는데 인생이 짧기에 구원을 위해 세월을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41절에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아합이 그대로 당해야 하리라 하니깐 급히 눈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가 선지자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자기에게 늘 말해주던 선지자. 33절에 아합이 벤하닷 보고 나의 형제라고 했더니 벤하닷도 나의 형제라며 조약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도 급히 자기의 눈을 벗으나 벤하닷의 처리를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아합의 심판도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급히 내가 결정했지만 계약서에 사인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아합도 이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42절에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은 이와같은 행위를 통해 잠깐 유익을 봤을지 모르지만 벤하닷 때문에 자기가 심판의 자리로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43절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이 지경이 왔는데 근심하고 답답하였다고 합니다. 아합이 회개가 안 된 것입니다. 근심하고 답답하였다는 것은 원어로 근심은 기분이 나쁘고 노하고 답답은 화난 격분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었던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고 이렇게 근심하고 답답하였습니다.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사망선고를 받고도 근심하고 답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보다는 사마리아궁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내일 당장 죽는데 사마리아 궁으로 돌아갈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마리아 궁에는 누가 있죠? 이세벨이 있죠. 그곳에 이세벨이 있으니 내가 가면 도와줄 거야 하면서 이세벨 찾아 떠난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면 안 될 곳을 우리도 가는 것은 없을까요? 예를 들어 남편과 싸웠다면 시댁으로 피난 가는 것이 옳은 것이고 아내와 싸웠다면 장모님댁으로 가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가 좋아하는 친정으로 가면 이세벨에게 가는 것입니다. 항상 이세벨은 해결사였기 때문에 이 일도 다 해결해줄 거야 하면서 왕궁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과연 21장부터 이세벨은 해결사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다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육적 해결사가 내게 있으면 하나님께 가기 어렵습니다. 해결사 부모, 자녀, 부하가 있으면 영적 해결을 막습니다. 모두가 해결해주는데 내가 띵크 해야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홀로서기 해야 할 텐데 가진 부모들은 그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간증한 고집사님은 아버지가 안 돌봐줬기 때문에 이혼을 막은 것입니다. 부자 아버지가 절대 안 돌봐주니깐 만원도 안주니깐 아이가 초등학교 가게 되었는데. 아합은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해석이 안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슬프고 거룩한 회개는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 남편의 회개는 정말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용해보세요] 지금 당하는 것이 스스로 결정한 나의 결론이라는 것이 인정됩니까? 아니면 아직도 근심하고 답답합니까? 누구를 찾아갑니까?
#치열한 나눔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목욕탕 세미나에 오신 목사님 중에 한 쪽 눈은 실명하시고 암투병하시고 오신 분이 계십니다. 큐티 목회를 접목하여 죄보고 큐티를 하면서 병들이 낫고 형편이 나아진 게 아니라 공황장애 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적용을 너무 잘 하십니다. 6년 전 바지를 백화점에서 샀는데 두 벌이 왔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나서 한 벌 값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돌려드리려고 했는데 점원이 이 전 교회 청년이었대요. 너무 망설여졌지만 가서 이 얘기를 하고 값을 놓고 왔는데 이런 적용을 교회에서 하니깐 죄보라는 얘기 그만하라고 하면서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큐티 목회를 하시냐고 하니깐. 자기가 이렇게 죄보고 준비한 큐티 설교는 준비하기가 너무 오래 걸리지만 이전에 설교한 것은 기억이 안나는데 자기가 큐티설교하면서 이 설교 내용은 다 기억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기억나는 것, 이것이 정말 치열한 훈련이라 생각됩니다. 사모도 첫 날, 목욕탕세미나 듣고 가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다른 게 아니라 복음 그자체고 십자가 도라는 것이 깨달아져서 이제 남편과 같이 서로 설득하면서 왔다고 합니다. 이런 교회가 전국에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또 목욕탕 세미나에 오신 목사님은 자기 딸이 결혼하고 나서 힘들었는데 우리들교회 부목사님 설교를 들려주셨대요. 목사님들도 이렇게 사시는데 네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며 사돈에게 무릎꿇고 한 시간을 빌고 들어드리고 사위에게 회개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들 치열한 훈련을 하시며 몸에 익히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그대로 당하라고 하면 아멘할 것 같습니다. 내 삶의 결론이니깐. 이분이 큐티 책을 100권을 사십니다. 이 찌질하고 리얼한 60명의 간증이 있기 때문에 아직 큐티는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장년 큐티인, 청소년 큐티인, 어린이 큐티인 간증문에 집중을 하며 두 달 분을 다 읽는 분이 있대요. 어려우니깐 그 간증문만 읽어도 큐티가 된대요. 장년, 청소년 간증 너무 아깝고 어린이 간증도 너무 아까워서 다 사서 다 읽는다고. 이게 큐티 훈련이 된다고. 여러분 이렇게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사건이 오면 그대로 근심하고 답답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하면 어떤 일이 와도 아합의 말은 진리입니다. 그대로 당하시면 되는 겁니다. 아멘!
말씀을 맺어요. 그대로 당하는 것은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아서입니다. 사단은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당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도 맞습니다. 그대로 당하는 것은 은혜 아니면 설수가 없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말씀 후 찬양 은혜 아니면
어둠 속 헤매이던 내 영혼 갈길 몰라 방황할때에
주의 십자가 영광의 그 빛이 나를 향해 비추어 주셨네
주홍 빛보다 더 붉은 내 죄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어
완전한 사랑 주님의 은혜로 새생명 주께 얻었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놀라운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나의 노력과 의지가 아닌 오직 주님의 그 뜻 안에서
의로운 자라 내게 말씀하셨네 완전하신 그 은혜로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완전한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기도제목
목회자 세미나 목사님, 설교에 나왔던 목자님도 그렇고 우리가 말씀으로 훈련이 되지 않으면 그대로 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예배가 치열하게 훈련이 되어서 몸에 기억하도록. 큐티와 수요예배, 목장예배, 주일예배 저절로 몸이 기억해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돼야 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큐티를 하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것은 이미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사건에서 여러분의 전략이 하나님의 지혜가 되게 해달라고. 인간적인 책략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가 좀 되게 해달라고.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정말 창세기부터 동성애는 무섭게 써있는데 잘 난 사위가 농담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금세 유황불이 하늘에서 쏟아졌습니다. 그러니깐 아무리 조용히 있으려고 해도 어떻게 조용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될 것 같은데 이 지금 우리가 이 당하는 모든 것도 삶의 결론인 것을 인정하게 해달라고. 대한민국의 결론임을 인정하게 해달라고. 그러나 유예기간을 주셔야 하고 차별 금지법, 낙태법은 통과되면 유대인 학살과 같아서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통과되지 않게 해달라고 우리 자녀 다음 세대를 위해서 통과되지 않게 해달라고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아합 한 사람을 회개키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이 슬프신지 모릅니다. 엘리야를 보내고 참으로 전쟁을 주고 또 전쟁을 주고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도 우리의 아합은 불신 결혼한 이세벨만 쫓아다니고 이세벨이 해결사 되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이런 아합이 내 옆에 있습니다. 부모, 형제로 자녀로.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불신 결혼을 하고 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당해라에 아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삶의 결론입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내 옆의 아합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 될 것이 나를 쳐다보고 내가 악인의 형통이 내 죄로 인함이라고 예레미야 5장에 있는 것처럼 내가 본을 보이지 못해서 나 때문에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어서 아버지 우리 모든 식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거꾸러트림을 당하고 무슨 행위를 해도 아합이 회개하지 않습니다. 주여 어떡하면 좋습니까. 우리 속에 회개되지 않은 아합이 있기에 내 옆에 아합이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아합을 너무 사랑하시는데 주님 끝까지 참고 하나님의 일곱 수를 기다리며 아합의 성벽이 무너지듯 아합도 회개될 줄 믿습니다. 주님 아버지 하나님 이 시대의 구체적으로 차별 금지법과 낙태법이 통과되는 것이 아니라 에스더의 유대인 학살법 그날이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가 뜻을 모아 기도하여서 우리 다음 세대를 자녀들을 위하여서 통과되지 않기를 바라고 아하수에로 왕을 감동 시킨 한 사람 에스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한 사람이 이 법을 막을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에서 모두 당하도록 결정할 때 이 한 사람을 주실 줄 믿습니다. 도와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고. 정말 잘못된 긍휼이 아니라 긍휼함으로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동성애자를 사랑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천국에서 만나는 지체들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7. 14.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31)
일시 2019. 7. 14 4-6시
장소 4층 연수홀
참석 한수진, 우지현, 조수빈, 이은영
나눔 3부 예배 후 몸이 이끄는 대로 4층 연수홀에 모여 목장 나눔을 하였습니다.
Q1.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 중에 어디 계십니까?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 합니까? 그러기 위한 여러분의 예배는 치열하게 훈련이 되어 몸이 막 기억합니까? 수요일 날 저절로 버스를 타러 나옵니까? 직장에서도 몸이 기억해서 몇 번 버스를 타고 오십니까? 몸이 기억해야 합니다. -> 치열한 훈련을 위해 생활 속 적용하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1 : 지난 주 수요예배를 오랜 만에 나와 마지막에 목장을 위해 기도했다. 평소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회개가 되었다. 기도는 물론 수요예배 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A2 : 예배. 취업되기 전에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했다. 취업이 되면 섬김은 물론 주일예배도 잘 나오겠다고. 취업이 되고 나니 적응하는 동안 힘들어서 예배가 무너질 뻔했다. 오늘 말씀이 잘 들렸다. 내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Q2. 지금 당하는 사건에서 여러분의 전략은 하나님의 지혜입니까? 인간적인 책략입니까? 하나님의 지혜로 생각하겠어요? 인간적인 지혜로 꾀를 내겠습니까?
A 1,2,3,4 : 현재 직면하고 있는 취업 준비와 직장 생활, 이성과의 문제들을 꺼내놓고 나누어 보았습니다.
Q3. 근심하고 답답할 때 누구를 찾아갑니까?
A1 : 교회 친구
A2 : 자기 자신. 누구도 신뢰하지 않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1년을 공동체에 오픈하지 못했다. 부모님께도..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하나님을 알기 전과 후가 참 달라진 것 같다. 하나님과 공동체를 찾게 된다.
A3 : 남자 친구, 지금은 하나님을 알게 되어 현재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다.
금주 기도제목
이은영
1. 아버지께서 많이 회복되셔서 긍휼함이 사라졌는데 다시 구원의 애통한 기도 할 수 있도록.
2. 취업과 진로에 대해서 해이해졌는데 다시 취준 일상회복 할 수 있도록.
우지현
1.어머니 27일 MRI 검사 결과를 위해
2.아침에 책 그만 읽고 우선 순위 잘 정해 해야 할 일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조수빈
1. 큐티 할 수 있도록
2. 직장생활 가운데 술의 유혹 잘 끊어 낼 수 있도록
한수진
1. 큐티 할 수 있도록
2. 7/22 남자친구 부모님 뵙는데 근심하지 않고 지혜롭게 잘 하고 올 수 있도록.
을 올려드립니다. 이번 주 우리 목장릴레이 큐티나눔하기로 했는데 ^^
큐티의 꽃은 적용 

(적용:부서 복귀)
먼저 본을 보이신 목자님^^사랑해 ㅇ 축복해 ♡감사해 ampclubs
한수진목장 일동
우리 모두 큐티로 한 주 치열한 훈련시간 가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