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4 주일예배
Intro) 땅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자기의 벤하닷의 실체를 모른다. 쇼핑, 남자 만나는 것 밑에 우울의 벤하닷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진짜 별 인생이 없다. 이혼하는 이유는 내가 죄인 됨을 몰라서이다. 정말 신결혼 해야 한다. 결혼하면 다 자기 탓이지 누구 탓할 게 없다.
'그대로 당해야 하리라' (왕상20:22-43) - 김양재목사님
우리 인생이 힘들어 보여도 성경은 삶의 결론이라고 한다. 아합이 남의 일을 판단 요청받으면서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해야 한다'면서 큰소리쳤지만 바로 그것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 될 줄 몰랐다.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지 않으면 사로잡히게 되어 있다. 내가 말한 대로, 행한 대로 당해야 할 일이 많다. 왜 그럴까?
1.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2) 벤하닷과 1차 전쟁에서 대승 거둔 것은 진짜 실력 있어서 이긴 싸움 아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데 명령형 동사로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으라, 살피라 강력하게 전했다. 성도는 사단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하든지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주님은 자기 힘으로 어쩔 힘이 없는 성도를 도우신다. 그러나 항상 그런 방법으로 도우시는 것 아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갈 곳도 모르고 힘도 기르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모른다. 결국엔 하는 일 족족 망하는 수밖에 없다.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 할 내 자리인 학교, 가정, 회사, 군대 등이 있다. 이 세상을 알고 힘을 기르기 위해 기초체력부터 다져야 한다. 힘드니까 어디가 부족한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호시탐탐 치고 들어오는 대적을 살피는 훈련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끝없는 전쟁이다. 전쟁의 방법을 묻기만 하면 주님이 일일이 알려주신다. 결국 아람과 북이스라엘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총지휘관은 아합 왕이 아닌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참된 예배드리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영육 간의 실력 쌓는 비결이다. 먹고 마시지 말라는 게 아니다. 목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인생은 죄인이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가장 큰 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험하고 주변 공격이 극심해도 우리 인생 총지휘관 되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을 치열하게 훈련해야 몸이 기억한다.
(적용)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 중에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가? 그러기 위한 여러분의 예배는 치열하게 훈련이 되어서 몸이 기억하는가? 수요일에 저절로 몸이 버스 타러 나오는가? 직장에서 몸이 기억해서 몇 번 버스 딱 타고 오는가?
내 안에 항상 100% 옳지 않은 내가 있다. 화친했던 사람이 돌변해서 나에게 뭔가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 일수도 있기에 공동체에 묻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가 오늘 사건에서 오늘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게 굉장히 세련된 것이다.
2. 사단은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23-27) 아람 왕과 심복들이 전쟁의 패인 분석하고 2차 침략의 전략 짜는 내용이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 단정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언약 맺었고, 산당에서 제사 드리고, 산에서 바알선지자들 죽였기에 안 믿는 그들은 기복적이기에 산의 신으로 생각했다. 아람 군이 산의 신을 피해서 평야에서 싸우면 이긴다고 보고했다. 이 분석은 인간적인 판단에 근거할 때 대단해 보인다. 아람이 이 땅의 전략 가지고 사람도 동원 잘한다. 이들이 전쟁에 이렇게 임하는 것은 믿는 우리도 배워야 하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한 가지 없는 게 있다. 하나님이 없이 전략을 가지고 임했다. 내가 이기고자 하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첫 단추부터 헛된 노력의 연속일 뿐이다. 이런 이들의 확신은 산들의 신이 아닌,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28) 아람이 다 이겼다고 생각할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하고 약속을 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계획과 말과 숨소리까지 다 들으신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이 직면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또다시 능력 보여주심으로 북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능력을 보이시는 것은 항상 내가 회개하기 위해서이다. 근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능력 보이시면 다 떠난다. 회개하라고 은혜 베푸신다. 오직 이스라엘, 하나님나라 위해서 아합을 지켜주신다. 드디어 이 전략 가지고 전쟁 시작된다.
(29)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7일 동안 기다리게 하신다. 숨 막히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끝까지 기다리게 하시고 참게 하시고 하루 만에 승리하게 하시는, 여리고 전쟁과 비슷하게 아벡 성벽이 무너졌다.
(30) 벤하닷이 성벽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10만 명 죽은 와중에도 또 살아남았다. 무조건 사로잡아야 할 사단의 괴수가 얼마나 끈질긴가를 보여준다. 전투할 때 한 사람 죽이는 것, 한 사람 살리는 것, 한 사람 아담이 범죄 해서 죄가 들어왔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해서 우리가 의의 자녀가 되었다. 항상 한 사람이 중요하다.
(적용) 지금 당하는 사건에서 여러분의 전략은 하나님의 지혜인가, 인간적인 책략인가?
3.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1-32) 벤하닷이 살려달라고 동정을 유발한다. 인자는 히브리어 헤세드이다. 자비, 언약에 대한 신실함 의미한다. 벤하닷은 과거 동맹 파기했는데 이런 단어 쓰는 게 어불성설이다. 목숨 구걸하며 아합을 헤세드한 왕이라고 하면서 속인다. 이 말에 아합은 어리석어서 속아 넘어가서 자비를 베푼다. 그러나 아합의 이런 헤세드는 북이스라엘로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헤세드를 짓밟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헤세드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과의 언약 신실하게 지켜서 사단 벤하닷을 죽여야 했다. 욕심 많은 아합은 치밀한 사단에게 틈만 나면 넘어간다. 헤세드 한 마디에 기독교적인 용어를 쓰네 하면서 넘어갔다. 한 마디에 속아 넘어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전적으로 하나님 때문에 이길 싸움인데, 이겨야 하는 싸움인데, 하나님이 벤하닷을 아합의 손에 붙였는데 욕심으로 이 기회를 놓치는 아합이다. 하나님을 모르니 인간을 몰라서 사람 분별이 안 된다. 아합은 죄인 됨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볼 수 없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죄인인데 인자하신 헤세드라고, 당신은 인정이 많다고 하니 금세 우쭐해서 벤하닷을 형제라고 한다. 벤하닷도 그 말을 급히 확증했다. 사단은 이것을 틈으로 본 것이다. 헤세드 한 마디로 틈을 보였기에, 징조로 여겼기에 파고든다. 사단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파고든다. 항상 문제는 내가 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잘못된 긍휼로 불신세상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긍휼과 자비는 성도의 도리이자 미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잘못된 긍휼은 나쁜 긍휼이다. 이것은 범죄요 긍휼이 아니다. 세상 사람에게, 외인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죄인을 향한 긍휼이고 자비임을 알아야 한다.
동성애는 죄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동성애자들을 향한 최고의 사랑이다. 창세기 소돔과 고모라에서 죄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 지금 드러난 것만 60만 명이고 육체관계 하지 않은 동성애자는 그 수에 들지 않아서 훨씬 많은 동성애자들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동성애로 비롯되는 에이즈 약값은 한 달에 600만원이고, 간병인은 20만원 지급된다. 나라 위해 싸우다가 다친 사람에게는 그런 혜택 없는데,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 에이즈 치료비용은 모두 나라가 무상으로 지급해서 세금으로 8조가 들어간다. 약도 좋아져서 에이즈 걸려도 30년도 더 사는 사람이 있어서 점점 세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간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해도 인권유린이라고 전화로만 알려준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가 차별인가. 공의와 그릇된 긍휼 분별하지 못한다. 염안섭 원장님의 레인보우 리턴즈 구독하고 강의를 꼭 들어보기 바란다. 퀴어축제 자꾸 보면 혐오감이 무뎌진다. 그러면서 세력화된다. 유황불로 심판받은 소돔과 고모라의 구체적인 죄인 집단은 동성애자 그룹 하나뿐이다. 수많은 죄 오픈하지만 동성애가 가장 끊기 힘들다. 그래서 안타깝다. 죄 인줄 알면서 안타까워하면서 가는 것이 정상이다.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아무리 망한다는 말을 들어도 농담으로 여기고 있다. 통과가 코앞으로 왔기에 아합과 벤하닷의 싸움같이 승산 없다고 해도 외쳐야 한다.
(34) 이전에 벤하닷 1세가 사마리아가 자기 위한 거리 만든 것처럼 아합 거리를 만들어주겠다고 무역협정을 얘기한다. 32개국 연합의 총 두목이 이렇게 말하니 어리석은 아합이 얼마나 속기 쉬웠겠나.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제일 어렵다. 겸손해야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그릇된 긍휼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나온다. 조금이라도 지는 것 같으면 하나님께 묻다 이기기만 하면 안 묻는다. 아합은 하나님나라의 전쟁규칙에 따라 마땅히 죽여야 할 사단의 왕 벤하닷과 언약을 맺고 살려 보내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정면으로 깨뜨렸다. 막대한 경제적 이권 - 얼마 가지도 않는데 - 그것 때문에 주의 언약을 세상 재물과 바꿨다. 아합이 벤하닷과 약조한 것은 어리석은 아합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허영에서 나온 자기 욕심으로 놓아준 악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건 아니다. 또 이해 못한다고 지키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이해득실과 관계없이 아람의 군대를 자기 손에 붙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땅히 죽였어야 했다. 구속사로 안 깨달아지면 아합 같은 지도자가 얼마나 우리를 힘 빠지게 하는지 모른다. 아합이 언약의 헤세드 남발하며 조약 맺은 것은 마치 차별금지법에 사인한 것과 같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오직 유대인 학살법에만 사인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처럼, 지금 오직 차별금지법과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정부에 청한다. 이게 기독교인학살법이다. 에스더처럼 아하수에로를 감동 시킬 수만 있다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는데 누가 이 정부를 감동시킬 한 사람일까. 정말 감동했으면 좋겠다.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아합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으니, 그것도 우리의 삶의 결론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들교회는 동성애자 차별 없어서 아무도 안 나가고 있다. 목장도 가고 다 똑같은 지체가 된다. 다 오시기 바란다.
(적용) 여러분은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구별하는가?
자기 죄 안 보이는 사람은 구별 못한다.
4. 그대로 당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35-37) '넌 날 때려' 그랬을 때 '내가 널 어떻게 때려' 이런 친구가 좋은 친구인가, 피가 나도록 때리는 친구가 좋은 친구인가? 인본적이면 이해가 안 된다. 말씀은 반드시 인간이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해 안 되어도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이 말씀의 명령이다. 우리가 못 듣는 것은 세상과 죄악과의 타협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장 힘 있는 통로는 자신을 치라는 자신의 고난이다. 자신의 고난이 가장 말씀을 전하는 통로가 된다. 선지자는 아합이 사단의 괴수를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릇된 긍휼로 자발적으로 놓아줬기 때문에 네 목숨 내놓아야 한다고 경고하려고 이상한 예언 한다. 대신 목숨 내놓고 상처 입었다. 나를 치라면서 죽여야 할 벤하닷을 살려줬으니 네가 대신 죽으라고 행위예언으로 보여주신다.
(38-40) 선지자가 변장하고 비유로 물었다. 아합이 '네가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해라'고 했다. 아합의 말이 맞다. 사단의 주된 업무는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 하나도 오래도록 회개해야 하나, 영혼을 돌보지 않는 행동 하나는 영벌이다. 지키지 못해서 파멸당하는 것 그대로 당해야 한다. 문제는 자기도 모르게 형벌을 자기에게 선고한 셈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나와 이웃의 구원을 위해 나의 재능이나 재물을 쓰도록 알맞은 기회 주시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회 버리고 구원과 상관없는 일 스스로 결정하기에 고통당할 수밖에 없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 19가지 죄악이 쫙 읊어진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에 당하는 고통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자기사랑 때문에 고통이 온다. 자기를 사랑하면 기쁨이 올 것 같은데 고통이 온다. 그 다음에 돈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자랑이 온다. 돈을 사랑하는 게 고통이다. 모든 스펙 쌓아놨는데 자랑이 고통이다. 교만해서 고통이다. 그래서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이게 다 고통으로 이어져 간다. 결국 이리저리 일 볼 동안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인생이 짧기에 구원 때문에 세월을 아껴야 한다.
(41) 아합이 '스스로 당하여야 하리라'하니까 급히 자기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선지자인줄 알아보았다. 급히 자기의 눈을 벗으나 벤하닷에 대한 처리를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아합에 대한 심판도 돌이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번 계약서에 사인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아합도 자기가 죽어야 되는 것이다.
(42) 아합은 이 같은 행위 통해 잠깐은 이익 봤을지 모르지만 벤하닷 대신 자기가 심판의 자리로 갔다. 결국 사망선고 받은 것이다. 사형선고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3) 근심하고 답답했다고 한다. 이 지경이 왔는데도 아합이 회개가 안 된다. 원어로 근심하고는 기분이 나쁜, 답답했다는 화난, 격분한이다. 분노조절장애다.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도 근심하고 답답했다.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는 사마리아 궁으로 돌아가려 했다. 당장 죽는데 궁으로 돌아갈 시간이 어디 있는가. 사마리아 궁에는 이세벨이 있다. 거기 가면 이세벨이 도와줄 줄 알고 떠났다. 우리도 문제해결 위해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가는 곳 없을까? 항상 이세벨은 해결사였기 때문에 왕궁으로 간 것이다. 육적 해결사가 옆에 있으면 하나님 곁으로 가기가 어렵다. 모두 해결해주는데 내가 think할 일이 뭐가 있는가. 아합은 마지막 사형선고 받았는데도 회개가 안 된다. 똑같이 슬퍼도 거룩한 회개는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적용) 지금 당하는 것이 스스로 결정한 나의 결론이라는 것이 인정되는가? 아니면 아직도 근심하고 답답한가? 그래서 누구를 찾아가고자 하는가?
말씀이 기억나는 것이 치열한 훈련이다. QT가 다른 것이 아니고 복음 그 자체이고 십자가의 도이다.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이 오면 그대로 당하고 근심하고 답답해한다. 훈련이 되면 어떤 일이 와도 그대로 당하면 된다.
어떤 것도 맞습니다 하고 그대로 당하는 것은 은혜 아니면 설 수 없다.
< 기도제목 >
공통 : 신교제와 신결혼
윤소영
1. 준공 서류 준비 잘 하도록
2. QT, 수요예배 치열한 훈련이 몸에 밸 수 있도록
3. 배 아픈 거 병원 가서 치료받도록
김유리
1. 한 주간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2. 아웃리치 모임 나가도록
박소영
1. 분별하는 지혜와 사랑을 주시기를
2. QT와 수요예배 치열한 훈련을 몸에 익히도록
3. 가족구원
정지현
1. 거절감의 벤하닷을 사로잡고 QT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치열한 훈련이 몸에 배도록
2. 10월에 가족여행 가는데 분별 잘하고, 부모님을 대할 때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