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6 주일예배
Intro) 별 인생 없다는 것을 아는 게 대장부이다.
우리의 종착역은 천국이어야 한다.
'아버지 품으로' (열왕기상19:9-10) - 김양재 목사님
우리들교회 16주년 감사예배이다. 창립예배 때마다 제(김양재 목사님) 간증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이 얘기하라고 교회를 하게 하셨기 때문에, 가정중수를 위해서, 한 사람을 위해서 다 아는 얘기지만 또 한다. 일어날 힘없는 한 분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9-10)
엘리야가 바알 물리치고 이세벨의 협박으로 도망가 굴에 숨었다. 굴에 들어간 엘리야는 계속 나만 남았다고 한다. 목사님도 일생이 두려움의 인생이고, 늘 승리했나 싶으면 참담한 일 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어찌하여 여기 있냐고 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특심이 있지만 오직 나만 남았다고, 모두 나를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하나님이 어루만져 주셔서 굴에 있다가도 말씀이 임했다. 나를 위한 두려움에서 교회를 위한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목사님이 정신줄 놓고 싶을 때 많았지만 죽지 않았고 이혼도 안 했다. 4대째 모태신앙이었지만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경륜(Hidden Will of God) 깨닫게 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 낮아지게 하셔서 목사님을 용광로 속에서 연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니 성령 하나님이 어찌나 효과적으로 도우셨는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안식하며 여러분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 간절히 원해서 간증을 나눈다. 목사님이 얼마나 시기마다 열심이 특심이었는지, 그때마다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물어보신 이 주제이다.
목사님의 간증.(1인칭 나는 김양재 목사님)
1. 어릴 때
인생에 가장 먼저 찾아 온 고난은 아들을 못 낳는 어머니의 고난이었다. 작은어머니는 예수 안 믿는데 아들 제조기였다. 믿는 사람인데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았다. 하나님이 골리시는 것 같았다. 피난 온 아버지는 토건업으로 돈 벌어서 아들 낳으려고 기복적으로 섬겼다. 교인들과 목사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겨서 점지해서 받아낸 이름이 김양재이다.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들어가서 낳으려고 들어갔는데, 파란 비단이불 아들 것으로 준비했는데 내가 나왔다. 그 당시 신앙이 다 기복신앙이었다. 다 잘 되려고 예수 믿었다. 돈이 많아서 돈으로 교회 섬기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딸만 낳은 어머니는 인생이 해석이 안 되고 충격 받았다. 몇 십 년 후에 쓰임 받을 딸을 믿음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해석이 안 되었다. 그렇게 헤매시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장충동이 가장 부자 동네였는데, 어머니 이상하게 사셨다. 새벽부터 변소 청소하시고 남의 집 빨래 해주러 다녔다. 자녀들 하나도 안 돌보시고, 딸의 공부에 하나도 관심 없었다. 입시지옥 시절 유치원에도 안 보냈다. 학교도 일 년 일찍 보내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렇게도 안 했다. 늙어서 초등학교 들어가서 출석번호 1번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성적이 미, 양이었다. 어머니는 준비물 챙겨준 적도 없고 변소 청소에 미쳤다. 나는 아무도 안 돌봐준다는 굳센 믿음이 생겨서 9살에 정신연령 30살이 되었다. 어머니는 당시 가장 일류학교 나온 재원인데다가 테니스 선수였다. 재래식 화장실인데 아침마다 몸빼바지 입고 청소하시고 새벽마다 기도하고 오셨다. 모든 걸 접으셨다. 공부 잘해서 시집 잘 가라는 말 들어본 적도 없다. 헌금도 무명으로 하고 이름도 빛도 없이 다니다보니 교회에서 어머니를 무시했다. 교회에서 얼마나 외모로 사람 무시하는지 봤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까지 잘 살았다. 엄마가 챙피했다. 이런 가정에서 정신연령 30살 되어서 시험 봐서 이화여중 들어갔다. 엄마는 '공부 잘하면 뭐하겠네, 사도 바울처럼 고난만 많아 야' 하셨다. 입학식에도 안 오셨다. 아버지는 성품으로, 어머니는 믿음으로 보여주셨다. 학교가 다 쓸데없다는 얘기를 하셨다. 내가 막내딸이었다. 아들에 대해 완전히 포기하셨다.
(적용) 여러분의 어릴 때는 어땠나? 여러분의 자녀교육은 어떤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성품인가, 믿음인가?
2. 학생의 때
그 이후 집이 쫄딱 망했다. 당시 유배지나 다름없는 우이동으로 이사 갔다. 언니들은 다 대학 나와서 대학가려 했다. 셋째 언니 마지막 이화여대 등록금을 전화 팔아서 내는 걸 봤다. 집에 돈 되는 게 없었다. 대학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국립대학 서울대학교 가서 장학금 받는 길밖에 없었다. 피아노 시험 뿐 아니라 화성학, 전 과목 교과 시험 봤다. 모두 족집게 과외 하는 판국에 고등학교 때 장학금과 용돈 벌어야 해서 꼬마 피아노 가르치는 아르바이트했다. 엄마가 나를 안 돌봐서 학교 옆에 독서실 얻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가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정말 대단히 열심이 특심이었다. 재수도 안 하고 서울대학교 피아노학과에 붙었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집이 또 쫄딱 망했다. 경제생활 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서 집에 생활비까지 내놔야 했다. 당시 피아노과에 집에 전화 없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싼 대학 등록금이래도 땅 파야 돈이 안 나왔다. 할 수 없이 장학금 받아야 됐다.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공부 잘해서 장학금도 받아야 하니까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살아야 했다.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았다.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생활비 내라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믿음이 좋은 엄마는 '있음 먹고 없음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야' 이게 엄마한테 나온 소리다. 뭘 하란 소리를 하나도 안 했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마음 생긴다. 그래서 4년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녔다. 이런 딸이 사실 어딨겠는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 들어갔다. 얼마나 학교에 남고 싶었겠는가. 알바 하면서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피아노 칠 시간이 없었다. 학교에서 휴강, 공강 시간만 되면 빈 연습실 들어가서 실기 연습했다. 그러니 데이트를 했겠는가 못 했겠는가. 시간이 없어서 데이트를 못했다. 하나님이 다 막으셨다. 기계처럼 살았다. 대학 졸업할 때 서울예고에서 전임으로 오라고 했다. 유학도 안 갔다 왔는데. 피아노한 사람으로서는 영광이다. 바쁜데도 교회를 나갔다. 난 어쩔 수 없는 집탕이다. 사람들은 다 믿음이 좋은 줄 알지만 반주해서 돈 벌려고, 어렸을 때부터 나갔으니까 교회 갔다. 그렇게 시간도 없는데 오후에는 CCC도 나갔다. 영적 리더가 그때 CCC였다. 은혜는 하나도 못 받으면서 갔다. 순모임은 안 가고 목사님 설교만 들었다. 왜 갔는지 모르겠다.
(적용) 여러분의 더 밑의 학창시절은 어땠는가? 자녀들은 어떻게 키우겠는가? 일류를 키우기 원하는가, 은사대로 키우기 원하는가?
3. 결혼의 때
어렸을 때도 굴에 갇혀 있었다. 입시의 굴, 돈 버는 굴. 뭣 땜에 사는지 몰랐다. 그래도 미팅은 한두 번 한 적 있지만, 졸업 무렵 정식으로 부모님과 첫 선 보았다. 결혼이 없었으면 당연히 예고 전임 가서 유학 갔다 와서 교수 됐을 것이다. 그게 좋을까, 지금 목사가 좋을까? 역시 난 결혼을 잘했다. 결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라. 너무 유명한 기업인 장로님, 권사님 댁 의사 아들이었기에 굉장히 저울질 하다가 결혼으로 택했다. 모두 교회 반주 10년 하더니 축복받고 시집 잘 간다 했다. 지금까지 가난했어도 다들 흠모하는 학교도 가고 그랬는데. 이제부터 이상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남편 잘 만나서 무학자가 회장님 사모님 되셨다. 살림밖에 몰랐다. 이 분은 새벽마다 4시 반부터 청소하셨다. 청소하려고 이 땅에 태어난 분이다. 헝겊 총채로 플라스틱으로 하면 안 떨어진다고 무거운 헝겊으로 떨었다. 내가 힘이 없다고 뭐라고 하셨다. 아씨걸레, 젖은 걸레, 마른 걸레, 기름 걸레, 윤내는 걸레.. 걸레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게 또 방바닥 걸레, 창문 걸레가 따로 있었다. 지붕 청소, 댓돌 청소, 철 대문 청소 반짝반짝 윤을 냈다. 그렇게 8시까지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고 2시에 오후 청소 들어갔다. 이 모든 청소를 하는데 눈만 뜨면 야단을 치셨다. 걸레를 꽉 짜지 못한다고, 힘을 못 준다고 얼마나 야단을 치든지.. 피아노 치면서 얼마나 돈 내고 팔에 힘 뺀 건데,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서는 팔에 힘 들어가는 걸레질 안 시켰는데, 날마다 따라다니며 잔소리하셨다. 여자는 책을 봐도 안 되고, 음악을 들어도 안 되고, 신문을 봐도 안 되고, 피아노를 쳐도 안 되고, 전화질을 해도 안 되고, TV를 봐도 안 되고, 일 년에 외출은 친정아버지 생신 딱 하루만 허락됐다. 여자와 명태는 사흘에 한 번씩 밟아야 된다는 유교 사고방식 가지셨다. 아무 때나 내 방문을 열어제끼실 때 누워 있어도 안 되고 잠을 자도 안 되고 책을 봐도 안 되었다. '여자가 어디서 잠을 자, 여자가 어디서 책을 봐' 태어날 때부터 여자로 태어나 엄마의 슬픔이 되었는데, 시집가서 눈만 뜨면 여자 소리를 들었다. 무학자 시어머니가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했는데, 엄마가 잔소리 안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았다. 시댁에서 선풍기 켜면 가난한 집 딸이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선풍기 켠다고, 입만 열면 '가난한 집 딸이' 하며 인격 모독했다. 그때 시댁에 냉장고, 에어컨, 좍 다 해놓고 아무것도 안 썼다. 걸레질도 깨끗하게 빨아야 하지만, 비누질은 비누 아껴야 해서 이틀에 한 번 했다. 방망이로 빨았다. 아끼는 게 몸에 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끼는 훈련 했다. 부잣집에 시집갔는데.. 아버지가 사업 망해서 그렇지 14대 부자로 내려온 집인데, 그냥 그렇게 입만 열면 '가난한 집 딸'이 입에 붙었다. 돈을 볼 수가 없었다. 비단치마 속 넝마같이 살았다. 썩어질 몸뚱이 아끼지 말라고 고무장갑도 못 끼게 했다. 99가지 잘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집오는 첫날부터 눈만 뜨면 야단맞았다. 나름대로 노력했다. 분무기로 걸레에 물 뿌려서 시어머니가 원하는 습도로 맞췄다. 노크라는 것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들어오면 그냥 걸레질만 하고 있으면 너무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새벽기도 갔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엄마 돌아가셨는데 걸레 못 닦는다고 배운 게 없다며 '너희 엄마 데려오라'고 하셨다. 돌아가셨는데.. 세 명의 무학자와 한 명의 고학력자가 한다는 대화가 멸치 똥을 땄냐 안 땄냐, 걸레질을 했냐 안했냐 였다. 뭐 안했으면 다 새댁이가 안 한 거였다. 빨래를 다시 하라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렸을 땐 큰언니가 무서웠는데 시집가면 시어머니가 무섭고 남편이 무서웠다. 다들 날 죽이려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짓이지 이런 생각이 안 들겠는가. 걸레질에 순종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한 학창시절 보냈다. 서울대에서 여학생회장도 했고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날 데려가려고 남편이 얼마나 꼬셨겠는가. 이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이 깨달아졌겠는가. 월남치마 입고 매일 빨래하고 손에 주부습진까지 생겼는데.. 문제는 자유가 없었다. 새댁은 문밖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걸레질밖에는 할 게 없었다. 육체노동만 해야 했어서 뜨개질을 했다. 킹사이즈 침대보를 두 개나 떴다. 시집살이를 너무 대단하게 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팔자 없는 걸레질, 뜨개질만 하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시아버지는 유명교회 수석장로 재정장로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한테 한복을 입으라고 했다. 앞서가는 피아노과 사람인데, 한복입고 나가니까 겉모습은 화려했다. 근데 교회에 지체가 없었다.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너무 축복받은 것 같았지만. 4대째 모태신앙이고 여학교 가서 성경 100점 맞고 교회 반주하고 춘계추계 부흥회 있고 주일예배, 어른예배 있고, 집-교회-학교밖에 없었다. 근데 교회 가서 앉기만 하면 졸기만 했다. 누구 보이기 위해 교회 가니까 가는 게 고역이었다. 갈 때마다 흰 고무신 닦아야 하고 한복을 꽉 조여 입으니까 산소가 부족해서 졸았다. 이렇게 삶이 계속되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는데 회개할 거리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효녀지, 착한 딸이지, 공부 잘하고 믿음 좋고 상냥하고 이런 것밖에 생각 안 났다. 난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다들 날 죽이려 하냐고.. 그 당시 여자로서 미모도 있었다. 드러내지 않지만 교만한 마음 있었다. 내가 이런데 걸레질을 하고 어찌하여 내가 여기 있는가 이 생각이 안 들었겠는가. 적금 들어서 내가 다 혼수도 준비했다. 인간승리였다. 열심이 특심이어서 모든 것에 특심이었다. 누구한테 신세지는 것 절대 안 했다. 근데 가서 걸레질, 뜨개질했다. 세월 흐를수록 원치 않는 나의 감정에 직면했다. 착한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것 직면했다. 내가 너무 착해서 약이 듣지 않았다. 뭔 약이냐, 구약과 신약! 회개가 안 되었다. 가난한 것과 시집가서 부잣집에서 겪는 인간과계의 어려움은 가난과 비교도 안 되었다. 가난할 때는 자살을 생각해본 적 없다. 걸레질하면서 시댁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몰랐다. 말은 안하지만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원치 않는 것에 '네네네' 하니까 악어비늘 속 기생하는 물고기 같았다. 물어보는 것마다 모르니까 그분들의 총평은 '새댁은 정말 대학 나왔어?'했다. 10년쯤 지나고 보니까 내가 정말 대학을 나왔나 싶었다. 맨날 바보 멍충이라고 하니까 나도 거기서 생각이 멈췄다. 나와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 없었다. 멸치똥 따면서 멸치랑 대화했다. '난 우이동에서 왔는데 넌 어디서 왔니?' 제일 중요한 남편이 말이 안 통했다. 교양이 9단이어서 생존으로 몸에 배었다. 시아버님은 매일 출근하시면서 아주머니들과 일렬로 세워놓고 '너희 오마니 때문에 우리 집안이 일어났다. 오늘도 오마니가 하얀 걸 까맣다 해도 예 하라우' 이러고 출근하셨다. 친정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친정의 경조사에 못 가서 힘들다고 하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지, 네래 밥만 먹여줘도 고마운 줄 알라우, 네래 서울대학교 나와서 교만해서 그렇다우' 전화를 탁 끊었다. 이렇게 힘들 때 엄마도 돌아가시고 교회 지체도 없고 전화 걸 단 한 사람의 지체가 없었다. 평생 교회를 다니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반주를 했어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내가 교회를 무시했었다. 교회 지체들은 공부를 못해 무시했다. 눈만 뜨면 이혼 생각 했다. 지금 보면 엄마 기도 덕분에 이혼 못했다. 교양 있게 연기처럼 사라지자 생각했다. 자살이었다. 연기같이 사라지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성경을 평생 읽었는데 어쩜 그렇게 말이 안 들렸다.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는데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지 못했다. 죽지도 못하고 살아 있었다.
(적용) 여러분의 결혼의 때는 어떤가? 다시 돌아가도 지금 배우자랑 하고 싶은가? 여러분은 이렇게 얘기해도 불신결혼, 이혼 하고 싶은가?
4. 회개의 때
우리 집에 일하는 사람 둘씩이나 있는데 왜 나는 피아노를 못치고 걸레질을 해야 하는 거지? 싶었다. 인간의 가치관 쉽게 안 바뀐다. 걸레질에 대한 순종이 쉬운 것 같은데 안 되었다. 네가 어찌하여 걸레질만 하고 있느냐. 인생이 슬픈 것이다. 바보 같아서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굴 속에 들어가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여전히 집에서 못 나가고 있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뭘 기도해야 하는지 몰랐다. 소경을 보아주신 예수님처럼 주님이 날 보아주셨다. 엘리야에게 너무 미안해하셨던 것처럼. 호되게 다루시다가 가끔 아주 미안해하신다. 나가지 말라니까 나가지 않고, 걸레질 하라니까 걸레질했다.
친정엄마 생각이 처음 났다. 엄마한테 도움 받은 게 하나도 없고 생각 안했었다. 추억이 아무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피아노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난 양재엄마를 본 적이 없다' 증인이시다. 완전히 고아 같았다. 교회 변소청소나 하면서 내 입학식 졸업식에는 안 오셨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엄마였다. 새벽기도 다녀오다가 교통사고 당해서 돌아가셨다. 뺑소니 사고였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추억할 것도 없어서 잊어버렸다. 엄마 하면 생각나는 게 없었는데 힘들어지니까 생각났다. 그 똑똑한 엄마가 목사님 설교를 다 기록해놓은 노트가 있었다. 주일설교, 수요설교, 금요철야설교, 부흥회.. 대학노트로 수 십 권이 있었는데 망해서 좁은 집으로 이사 갔을 때 아무 가책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딸들이 착해보였는데 아무 가책 없이 버렸다. 목사가 되고 나서 가장 중요한 유산을 꼽으라고 하면 엄마의 설교노트인데, 50-60년대 목사님들의 그 중요한 설교들을 다 기록해놨는데.. 얼굴이 착해보여도 믿음 없는 사람들은 중요한 걸 분별 못하고 버린다. 창세기 8:21 보면 사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했다. 학교 갈 때 똥내 나는 몸빼바지 입은 엄마를 마주치면 딱 모른 척 했다. 그 초라한 외모의 엄마를 차별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 우린 예수 믿으면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고 말한다. 근데 교회에서도 얼마나 차별하는지 모른다. 예수님도 엄청 차별받았다. 교회에서도 차별했지만 나도 엄마를 차별했다. 그러니 시댁에서 내가 차별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들었다.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셨는데 유대인들에게 차별 당했다. 믿음 없으면 사생아, 목수의 아들이라고밖에 안 본다. 우리는 외모로 너무 차별한다. 엄마의 죽음 통해서도 착한 딸들이 열심이 특심인데 아무도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다. 근데 시집살이 차별 당하고 땅 끝까지 내려가면서 드디어 엄마의 모습 직면했다. 예수 믿으면 엄마처럼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세상적으로 화려한 사람들을 학교에서 보고, 교회 가면 공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 보니까 학교 가도 왕따이고 교회에서는 왕따시켰다. 엄마는 혼자 이타적으로 살면서 바빴다. 바닥으로 내려가니까 내가 믿음이 없다는 거, 시댁에서 무시 받는 것은 내 삶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선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복음 16장 불의한 청지기 비유.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근데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지라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다. 자신을 높이고 스스로를 옳다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 내가 딱 바리새인이었다. 모범생이니까. 사명 때문에 피아노치고 공부하고 결혼한 게 아니라, 야망 때문에 피아노치고 공부하고 결혼했다. 돈 좋아서 모든 것을 했다. 맨날 나는 착하고 공부 잘하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게 내 우상이었다. 얼마나 인정받는 게 우상이었으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착하게 했겠는가. 시댁에서 하나도 안 통한 게 축복이었다. 남편이 기사 데리고 선보러 나오니까 혹했다. 내가 정말 세상적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들렸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거듭나고 나서 보니까 엄마처럼 살아야겠다 싶었다. 엄마가 왜 울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다시 태어나도 엄마처럼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사건이 올 때마다 내가 가증해 보이는 게 있다. 인생 전체를 걸고 가정중수와 말씀 묵상 때문에 이 얘기를 하는 것이다. 가정 지키기 위해 한 노력은 서울대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보다 천만배의 노력했다. 결혼해서 죽고 싶었지만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쓰셨다. 불신결혼 시키지 않으려면 자녀들에게 큐티 가르쳐야 한다. 삶을 진솔하게 나눠야 자녀들을 사단에게 뺏기지 않는다. '불신결혼 하지 마라, 믿음이 최고다, 서울대학교 가봤다 소용없더라, 부잣집 가봤자 소용없다' 이 얘기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서울대 보내시고 시집보내신 것이다. 도저히 내 힘으로 갈 수 없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간 것이다. 회개를 하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주셨다. 참담한 일이 반복되니까 회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일어나 먹으라고 하시는 그걸 많이 경험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교회와 사회에 영향 미치니까 얼마나 눌리는 자리인줄 모른다. 두려운 일이 많다. 성경 잘 깨달으라고 사건이 계속 온다. 나는 모르지만 아버지 품으로 오게 하라고 끊임없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신다. 말씀이 임하여 말씀으로 회개케 하는 역사 일어나려면 그저 오늘 하루하루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다. 청년의 때에 불신결혼, 이혼 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은 나 잘되라고 하는 것 아니다. 나는 두렵고 너무 연약한데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 내 성품도 아니고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길도 아니다. 시어머니 무서워서 걸레질이나 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쓰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쓰신다.
가장 큰 준비는 회개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홀로서기 잘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적용) 여러분은 말씀이 들리는 회개의 때를 살고 있나?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 것에 동의하는가? 어느 때를 살고 있나? 무시당하는가, 무시하는가? 어찌하여 거기 있는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회개케 해달라고.. 회개하면 7천 배의 응답이 온다. 나 혼자 남았다고 그만하고 회개하길 바란다.
Outro) 확신이 없으면 고난을 빨리 끝내기만 바란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 가지고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다. 특권이 있다. 사단이 늘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에 금세 데려간다. 공동체에 붙어가야 한다.
< 기도제목 >
공통 : 신교제와 신결혼
김유리
1. 말씀 묵상하면서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의 말할수 있도록
2. 아웃리치 모임 잘 갈 수 있도록
윤소영
1. 직면할 용기를 주시기를
박소영
1. 하나님에 대한 절대신앙을 잃지 않도록
2. 회복의 시간 누리고, 소명 받아서 새로운 일자리로 가도록
3. 가족구원
4. 아웃리치 모임 잘 가고 은혜 누리도록
류가영
1. 영육 간의 강건함 주셔서 아웃리치 모임 잘 가도록
2. 아버지를 무시하는 마음 제해지기를
3. 가족의 건강
정지현
1. 안전운전하고 사고 나지 않도록
2. 경제적인 부분에서 신앙고백하고 절제하기를
3. '어찌하여 네가 여기 있느냐'의 시간 보내고 있는데 말씀 잘 보고 내 모습 잘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