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시는 주님
날짜 : 2019년 6월 9일
설교 : 김양재 담임 목사님
본문 : 열왕기상 19 : 1 ~ 8
1. 믿음으로 행한 일에 결과가 참담할 때도 어루 만져 주십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행한 일에 결과가 참담할 때도 어루 만져 주십니다.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 벌
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여러분 엘리야의 행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게 뭐죠. 놀라운 사역이 일어났었죠. 갈멜산 대결에서 여호와가 하나님 되시고 불로 재단을 살으시고 바알 선지자 850명을 하나도 도망가
지 못하게 하고 백성과 함께 죽였습니다. 그게 큰 비를 주시고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서 허리를 동이고 아합의 마차 앞에서 달려갔습니다. 근데 아합을 보니까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요. 이세벨에게 보고하는 내용을 보니까 믿음의 관점에 따라서 이렇게 보고의 내용이 다를 수가 있구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18장에는 엘리야가 바
알 선지자를 죽일 때 칼로 죽였다는 내용은 없었어요. 근데 엘리야의 많은 행한 일 중에 이 편파적으로 칼로 죽였다는 것만 구체적인 행함으로 이세벨에게 일러바치는 아합을 보게
됩니다. 아합은 아합이 유명한게 아니고 이세벨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이에요. 엘리야는 이제 그 3년 6개월 아합을 피해 다니면서 이제야 개혁에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 했을 것이
에요. 그러나 뿌리깊은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이 아니었어요. 이세벨은 바알 종교를 들여 온 장본인으로 엘리야가 보여준 강한 능력 주님 앞에서도 이세
벨이 글쎄 굴복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자기가 아끼는 이 바알 선지자 850명이 떼죽음을 당하니까 눈이 뒤집혔죠. 그래서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엘리야 체포령을 내렸어요. 왜
사신을 보내서 그 처형을 예고 했을까요. 금세 가서 죽이면 되는데 내일 이맘 때 죽이겠다고 두가지를 생각해 볼 것은 그 바알 선지자처럼 너도 공개 처형을 할꺼다 이런 의미가
있을꺼고 또 하나는 850명을 죽인 엘리야를 보면서 무섭지 않았겠어요. 협박을 해가지고 도망가게 할려고 두 가지중에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에 성도가 많다고 해도
세계 10대 교회는 한국에 있다고 해도 또 크리스천 유명한 사람이 많다고 해도 크리스천 대통령이 나왔다 해도 크리스천 재벌에 재력이 막강하다 해도 그들이 믿는 예수를 믿게
하는 것에 잠시는 희망을 가졌었잖아요. 하지만 불신자들에 강팍한 마음을 변화 시킬수는 없습니다. 이세벨이 다양한 우상들을 염두해 두고 너를 죽이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도다 했는데 엘리야는 18장 15절에서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를 두고 맹세했다고 했어요. 여기는 신들의 신 만군의 여호와 이거 대조되죠. 이 850개
의 신이 끝없이 하나님 자리의 앉아 가지고 성도를 교란 시킵니다. 진짜 바알 선지자의 괴수는 이세벨이에요. 이세벨 왜냐하면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모세 시대에 바로가
그렇죠. 온 나라가 10가지 재앙을 만나도 안 변하는 모델이잖아요. 9가지 재앙에도 끄덕하지 않더니 10번째 재앙 자기 아들을 죽이니까 그때서 너는 나가라 해서 이스라엘이 출
애굽을 하게 했죠. 본인은 끝까지 회개도 않하고 믿지도 않았어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일 중에 의로운 일을 가장 많이 행한 사람이 고통도 가장 많이 받는 다는
점이에요. 그러나 엘리야도 그렇지만 죄없는 예수님도 인간 가족중에 어떤 자녀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요.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잖아요. 할렐루야
성경대로에요. 이 고난과는 상관없는 이 하나님 자리에 있는 바알 우상은요. 포스트 모더니즘에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자 포스트 모더니즘은 뭘 말하냐 하면
개성, 자율성 모더니즘에 그 후를 애기하는 거잖아요. 개성,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고 절대이념을 거부하고 탈 이념이라는 정치 이론이 정치이론을 아는데 이 정치이론이 인권으로
집약되고 있다고 지금 보여지는 거에요. 날마다 포스트 모더니즘 했지만 이 단어 설명을 좀 해드렸어요.
소위 믿음의 나라 북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이세벨에 치마폭에 숨어서 오히려 갈멜산에서 되어진 일들을 이세벨 보고 조취하라고 이들은 말이죠. 무실론자도 아니고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부부주위인가요. 부부가 금술이 너무 좋은 것이 이렇게 민중을 도탄에 빠트릴 수도 있네요. 같이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호와를 열렬히 대적? 하는 믿음이 있을 수 도
있다는 거에요. 둘 만 좋으면 되기에 둘 만 행복하면 되기에 우리 집만 잘 되면 되기에 이 부부의 포스트 모더니즘 가치관으로 인해 결국은 모두가 망하고 나라까지 다 망하게 되
었죠. 율법 교육을 받은 아합이 율법을 전혀 모르는 이세벨에 코치를 날마다 받습니다. 둘이 너무 좋아하니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는 그녀의 코치대로 막무가내로 하나님
의 선지자 엘리야를 위협 합니다. 자기네들 행복에 걸림돌이 되니까 그니까 개성을 중시하는 것이 하나님 자리에 있게 되면서 인권으로 연결 되기에 이 동성애부터 이혼 불신 결혼
까지 마음대로 하고 반대하면 차별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출판사 sns 계정에 한 장의 그림이 게시 되었는데 그 그림에는 바벨탑에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요. 교만이요. 아니에
요. 중략 바로 인권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될 수가 있어. 모든 인간의 인권이 신격화 되는 것이 바벨탑 사건에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인권이 아니에요.
주 다스리네에요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이 게시물을 본 누리꾼들은 그것이 기독교 싸이트임에도 기독교 대표 싸이트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채 인권의 가치를 펌해
한다고 그냥 악플을 엄청 이제 달린거죠. 비판이 계속되니까 기독교 싸이트임에도 그 출판사는 하루만에 해당 글을 삭제 했어요. 이게 삭제 할 글 이에요. 일반 출판사도 아닌데 언
론의 자유가 유독 기독인들에게만 억압 당하는거 같에요. 그저 인권이라는 말 한마디만 나와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 시대라고 할 수 있죠. 한 초등학교 아이가 반에서 적성 검사를
하는데 성별 표시란에 남, 여 그리고 기타가 있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기타가 뭐에요. 라고 물은 것이 우리나라 이야기 입니다. 이게 외국 애기가 아니에요. 맥그라스 교수는 포스
트 모더니즘 시대에 사람들은 신앙이 진짜 작동하는가를 묻는다며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야기 간증을 해 주므로써 신앙이 말이 아니라 실제
로 작동하는 믿음 체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믿음 체계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면서 성경의 진리를 현대적 상황에
맞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발굴해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인터뷰를 했어요. 이 애기는요. 전도는 교회로 오라고 하는게 아니라 신
앙이 작동하는 믿음 체계를 보여주므로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는 거에요. 한마디로 우리들 교회에 이 죄를 보는 간증을 하는거 이게 스토리잖아요. 그래서 그것은 신앙
의 작동이고 이거를 전도라고 하는 거에요. 우리들 교회 애기를 이제 그렇게 풀어서 신앙의 작동 시스템 알아 들으셨죠. 잘 살고 학력이 높을수록 인권이 왕 노릇하는 것을 봅니다.
이 땅 자체가 우상이기에 도저히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세벨은 이 땅에서 도저히 그 나라를 볼 수가 없는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육이 너무 가득 차 있
어서 이 영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봅니까. 디도서 3장 5절 말씀 처럼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하셨나니. 처럼 오직 성령의 사역만이 강팍한 마음을 부수고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칼과 총과 군대의 힘으로 절대로 누
구를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으로 행한 일에 지금 결과는 참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 제사장인 예수님은 여인의 몸 속에 점 하나로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에서
의 십자가에 낮아짐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그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들어 내셨습니다. 저 또한 구원의 열매가 많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함 때가 참 많았어요. 근데
결국 이렇게 참담함을 느끼는 것을 저도 모르는 저의 숨은 죄 때문인데 결국은 참담함이 올 때마다 하나씩 그런 죄를 깨닫게 하셨다고 봅니다. 적용해 보세요.
적용] 여러분은 이 믿음으로 행한 일에 참담한 결과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인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믿음과 인권은 이원론인가요. 일원론인가요.
솔직하게 목장에서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2. 이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도 하나님 결국 어루만져 주십니다.
두번째는 이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도 하나님 결국 어루만져 주시죠.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엘리야가 이 형편을 보고 도망 했대요. 850명을 물리치게 하신 주님이 아니 이세벨을 물리쳐 주실 텐데 갑자기 이세벨이 온 몸으로 무서워 졌어요. 왜 이렇게 무서웠을까요. 우리는
순간순간 세상 형편이 하나님 보다 더 커 보일 때가 있잖아요. 아버지도 왕이고 시아버지도 왕이고 남편도 아합왕이고 아들도 아시야 왕이고 딸인 아달랴도 유다로 시집가서 다 죽
여버리고 왕이 되었어요. 이 땅에서 왕 제조기에요. 스카이 캐슬 정도가 아니에요. 그냥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세벨은 하나님 필요 없는 사람이에요. 로얄
패밀리중에 로얄 패밀리이죠. 근데 이 사람은 믿음으로가 아니고 바알 심봉자이고 세상 심봉자이지만 지금 대를 이어가면서 세상에서 계속 잘 되가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우리가 여
기에 속으면 안되요. 그래도 잘 살면 되지 않아 이게 아니래는 거에요. 그니까 엘리야 자신으로는 갑자기 그게 세상이 보이니까 이세벨을 도무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 저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 딱 들은 거에요. 그러나 갈멜산 대결에서 처럼 국건히 서서 이세벨에게 기별을 보내가지고 바알에 선지자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놀라운 모습으로 선포를 하면 그냥 심판이 이세벨에게 임해가지고 백성들이 다 놀라 자뿌러져 있을꺼 아니에요. 그리고 그 원하는 힘 있는 개혁이 전국을
휩쓸었을 꺼에요. 사실요. 엘리야가 절망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에게서 찾을께 전혀 없어요. 이세벨이 엘리야를 대적한 것은 어제, 오늘에 일이 아니잖아요. 엘리야가 북 이스라엘에
그 기근이 올꺼 하나남의 말씀을 대연하라는 소명을 받은 그날부터 이세벨은 엘리야에 대적이었어요. 엘리야의 절망은 하나님께서 이세벨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앙을 그냥 잃어버렸기 때문인 거에요. 그니까 뒤에서도 보겠지만 너무 놀라운건 1절부터 엘리야가 도망가는 4절까지 여호와가 한번도 등장하지를 않아
요. 절대신앙을 그냥 딱 잃어 버렸어요. 우리는 큐티를 하면서 날마다 띵크 이 일이 왜 왔나 띵크해야 되잖아요. 생각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순식간에 놓쳤어요. 그러기에 엘리
야는 갑자기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했다는 표현을 했잖아요. 원수에 밥이 됬어요. 원수에 계책에 넘어 갔어요. 절대 신앙이 무너지면은 주위에 형편부터 보이는 거에요. 하
나님에게만 고정되었던 눈길을 떼어서 형편을 살펴 보니까 자기에게 이롭게 돌아가는 형편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그니까 그때 자기가 택하는 거 말씀의 인도를 못 받는 그때 택할
길은 자기를 죽이려는 이세벨에게서 한걸음이라도 더 멀리 가야 되겠다. 그 인간적인 계책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그는 소명 받는 자리인 북 이스라엘을 떠나 버렸어
요. 하나님이 그곳에 있으라고 그랬는데 물어도 안 보고 북 이스라엘을 떠났어요. 힘들어도 그곳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 자리인건데 말씀이 쫙 안들리면 내 마음대로 생각을 합니
다. 가서 선포를 해야되는데 바알이냐 하나님이냐 이거 선포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건데 우리들 교회가 늘 말씀 적용을 간증으로 또 묵상 나눔으로 선포하기 때문에 그것은 바
알과의 대결을 선포하는 거에요. 다들 간증하는게 밥이 생기냐 떡이 생기냐 하지만은 정말 밥이 생기고 떡이 생겼잖아요. 오늘 우리 김순기 집사님 아들이 로체스 아니 저분이 그
렇게 생겼어요. 과외를 시켰어요. 뭘 했어요. 여기와 가지고 이렇게 댕기시니까 남편은 목자고 본인은 부목자라는데 글을 몰라서 목자가 못 되시고 있다고 그러니까 선포하니 신기
하게도 책임져 주셨어요. 간증하기 싫어 도망가고 목장도 찌질한 애기 내가 왜해. 도망가면 결국 엘리야처럼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갈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진리에요. 하나님은
850명의 바알들을 성실하게 물리쳐 주셨어요. 그동안 850개의 바알을 물리쳤다는 간증들이 늘 넘쳐나는 것은 넘쳐나는 것을 여러분들은 매 주일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
분의 소명이고 우리들 교회 소명입니다.
적용] 하나님 보다 내 형편이 더 커보여서 도망간 부엘세바 구석탱이는 어디입니까.
3.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어루만져 주십니다.
세번째는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어루만져 주시는 거에요.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3절, 4절입니다.
3]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그리고 사환을 이제 부엘세바에 머물게 한 반면에 엘리야 자신은 하룻길을 홀로 광야로 들어갔어요. 엘리야는 낙담할 때로 낙담 했어요. 그리고 이제 드디어 스스로 죽기를 원하였
어요. 마침내 죽기로 한 것은 자기는 이제 소명을 버리기로 했다는 거에요. 소명 의식이 없으면 이렇게 사건이 오면 절망 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또 나를 필요
로 하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딱 들어요. 아무리 은사와 재주가 많아도 소명이 없으면 쉽게 절망 합니다. 절대 신앙이 없기 때문이에요. 로뎀 나무는 1, 2미터 크기로 자라는데요. 거
기는 유일한 하나의 이런 말이 수식 되어 있어요. 그래서 광야의 유일하게 한 그루만 있는 로뎀 나무 아래 힘 없이 앉아 있는 엘리야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지만은 그러나
이 나무는 잔가지가 많아서 바람과 햇볕을 잘 막아주는 나무라는 것이에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 광야에서 도움의 로뎀 나무가 될 수도 있어요. 근데 지금 이제 절대신앙이 없으니
까 그냥 다 죽기를 구하는 거에요. 여기서 이제 죽는 거에요. 엘리야는 지금 그러는 거에요. 피할래야 피할 길도 없고 내가 믿음의 조상 보다 내놓을께 하나도 없어요. 어찌하여 이
길을 가게 하십니까. 내가 특권이고 감사한거 머리로 다 알겠는데 나는 갑자기 심장이 머질꺼 같이 답답해요. 지금 이러는 거에요. 근데 제가 늘 성경을 자세히 보니까 왜 이렇게
극심하게 낙담을 했을까. 충성스러운 사람도 믿을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생각은 자기 자유인데 그러니 얼마나 외뤄웠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합의 이스라엘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근데 지금 유다로 왔잖아요. 남유다 맨 남단 끝까지 왔어요. 여기를 피하겠다고 온 거에요. 자 여기로 온들 피할 수 있겠습니까. 왜 아합은 왕궁의 잘 있는데 그 바알 선
지자를 다 죽인 자기를 홀루 두시나 내가 왜 쫓겨다녀야 하나 끝이 없는 이 고난길 오직 자신 혼자만이 스스로 광야로 들어갔음을 강조하잖아요. 그 다 힘들고 아픈 사람 나는 혼
자야 이 세상에 나 혼자야 이거 말하는 사람들이 다 죽기를 구하고 있어요. 근데 이게 이유가 있는 거에요. 당시 유다 왕은 성군에 속한 개혁에 여호수와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기가 막힌 것은 유다의 여호수아 왕이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결혼 동맹을 맺었다는 거죠. 이 지극한 엘리야의 외로움을 아시겠습니까. 이 천지에 홀로인 엘리야였을꺼 같에요. 자기
홀로 고군분토 하는데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아합왕과 자기를 죽이겠다는 이세벨이 결혼을 맺은 거에요. 딸을 글로 시집을 보낸 거에요. 너무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거에요. 최고로 악한 원수가 내가 가장 친구가 지금 너무 친하게 지내고 있는 거에요.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겠으며 그러니까 한명도 없는 거에요. 죽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
시죠. 결국 유다땅도 피난처가 되지 못한 거에요. 그니까 죽고자 하는 이유를 지금 원수는 너무 합리화 시켜 주면서 우리를 정조준 합니다. 야 이정도면 죽어야 되겠구나. 한명도 없
는 거에요. 생각을 해보니까 기가 막힌 거에요. 거기에 또 불신 결혼이 있는 거에요. 열왕기상은 불신 결혼으로 아주 도배를 합니다. 특히 남유다의 여호수와 같이 이세벨과 혼인을
한 것은 경제적, 정치적 이 외의 이세벨이 얼마나 모두에게 호감을 보여 주는 사람인지를 보여줘요. 이세벨은 결코 악하게 보이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 호감으로 이스라엘은 물론
남쪽 유다에게까지 자기 딸과 불신결혼을 하도록 여호수와밧을 홀렸잖아요. 유다까지 예수님이 오시는 유다 땅까지 초토화되어서 그 나라가 없어질 뻔 했어요. 그 아들들을 죽여 버
렸거든요. 딸이 시집가가지구 가장 위기가 이 때에요. 예수님 구속사 계보에서 근데 거기에도 그니까 얼마나 이세벨이 매력이 있었으면 이렇게 됬겠습니까. 형편이 너무 커 보이는
거에요. 항상 세상 형편이 팩트잖아요.
적용] 여러분은 혼자입니까. 홀로서기 입니까. 둘 중에 뭐 같에요.
4. 불구하고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네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자 5절부터 8절까지 읽어볼께요.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면서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4절까지 이상한 모습이 나오다가 주님은 내 모습 이대로 주님이 용납하신다고 하시네요. 그러면서 어루만지시면서 일어나서 먹으라가 한절마다 4절에 걸쳐서 나와요. 대단한 주님
의 돌보심입니다. 주님이 엘리야에게 너무 미안해 하신걸 느낄 수 있어요. 어루만지시고 미안하다 일어나서 먹으라 또 어루만지시고 미안하다 다시 일어나서 먹으라 일어나서 먹으
라 이거를요 4절까지인데 고대로 4절을 지금 반복해서 어루만지시는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그러니까 그 엘리야의 역할을 그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런데 기가막힌데 그걸 다 보고 계셨잖아요. 엘리야가 한 일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한 일을 나타나야겠는데 모델이 너무 힘들잖아요. 여러분 오늘 죽고 싶어서 오셨어요. 여러분들
이 택자라면 여러분들이 믿음이 연약해도 또 지금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거를 주님께서 아시고 그냥 너무나 주님이 안타까워 하시는 그 마음을 보면서 여러분들도 보면서 느껴지
지 않으십니까. 어루만지시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다시 누웠는데도 또 어루만지시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이게 너무너무나 위로가 되는 거에요. 그냥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 이전에 도
피중에는 엘리야의 일용할 양식을 까마귀를 통해서 또 과부를 통해서 공급하셨는데 이제 초자연적인 존재인 천사를 보내셔서 공급 하십니다. 여호와의 천사 말대로 먹고 마셨는데
도 다시 누워서 얼마나 영육간의 지쳐 있는지 다시 누웠어요. 순종 할려해도 힘이 없는 거에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계속적인 돌아보심에 엘리야가 다시 돌아 누우니까 하나님께
서 또 다시 천사를 보내셨어요. 영적으로 힘들어도 육이 힘들고 육이 지쳐도 영이 힘듭니다. 먹고 마시고 다시 누울수 밖에 없지만 이렇게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계
속해서 정말 힘들어 누워 지쳐 있는 사람을 계속 다시 일어나서 어루만지면서 먹고 마시면서 다시 어루만지면서 먹고 마시라고 해서 여러분들이 전도를 하셔야 될꺼에요. 바로 영
적인 것이 얼마나 육적인 거를 보여 줍니다. 근데 아까도 애기 했지만 1절부터 4절까지 안 보인 것이 무엇이라 그랬죠. 여호와의 말씀이 등장하지 않았어요. 18장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로 시작 되는데 19장은 그 말이 없잖아요.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까지 강조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가라사 말씀과 같이 하여 17장 2절, 5절, 8절, 10절, 14
절, 16절, 18장 1절, 2절 이렇게 말씀에 인도를 받다가 갑자기 말씀 인도 없이 기도 않하고 스스로 생명을 위하여 도망가고 도주 장소까지 자기가 결정하고 그리고 남쪽 끝까지 도
망을 갔는데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거는 건강도 질병도 부도도 아니고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고 인도받지 못할 때 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인생은 누구도 죄인이고 앞날
을 알 수 없기에 말씀에 나침반을 한시도 보지 못하면 골로새서 1장 13절처럼 흑암의 세계에서 사랑의 나라로 가려려면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거에요. 말씀에 인도를 가질 때와 아
닐때는 큰 차이가 나는데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를 간구하기 때문에 큰 일이 일어나는 거에요. 대부분 상태가 않좋은 사람에게 큐티했냐 물어보면 않했다 그래요. 근데 오늘만 딱
않했는데 걸렸다고 이렇게 애기를 우리가 감동도 없는 말씀의 인도함을 인도함을 늘 받는 것은 힘들 때 빛을 바래요. 우리가 날마다 이를 닦으면 감동이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
닦으면 감동이 있어요. 근데 병 걸려요. 감동이 없어도 날마다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큰 사건에서 우리를 살려 주시는 거 근데 엘리야는 너무도 대단한 주의 일을 하고 나서
그냥 감히 말씀을 참 놨어요. 협박을 받으니까 자기가 말씀을 볼 능력도 없으니까 여호와의 천사가 주님을 대신해서 인도 하잖아요. 이렇게 너무 힘들때는 말씀을 볼 능력도 없어
요. 그만큼 지금 지쳐 있어요. 근데 이거를 주님이 너무 미안해 하는 거를 보니까 이렇게 참 열매가 많을 때마다 참담함을 많이 겪었는데 주님이 참 나에게도 미안해 하시는가 보
다. 이 생각이 막 들면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이 눈물을 흘렸어요. 그동안 엘리야는 까마귀 공기를 받고 과부의 공기를 받고 나는 먹는 거는 졸업했다. 선지자 정도라면 나 정도
되야 되지 않아 하면서 의로움이 많이 생겼을꺼 같에요. 자기처럼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합을 봐도 국내 대신 오뱌다를 봐도 느그 궁중에 사는 사람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지도자
냐 이러면서 정죄했을 거에요. 그러니 공기를 밥 먹듯 했을 엘리야에게 아이러니하게 음식물을 잘 먹고 마시라고 어루만져 주셨어요. 육신도 자고나면 회복이 되는데 영적으로도 쉼
이 있어야 힘이 되잖아요. 영육간에 어떤 것도 치우치면 않된다는 거에요. 니가 갈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너 사명이 않 끝났다. 이 애기를 하는 거에요.
적용] 지금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어루만져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의 식생활은 영적입니까. 육적입니까. 술과 고기와 탄산음료와 냉커피를 밥 먹듯이 먹습니까.
& 기도제목 &
강민
- 아웃리치 기간동안 잘 양육되는 시간이 될 수 있길.
이학준
- 안정적인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
장주영
- 말씀으로 내 죄를 잘 보고 여자가 있는 음란의 죄와 유혹의 자리를 멀리 할 수 있도록.
권혁룡
-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
이동옥
- 지치지 말고 항상 낮은 자세로 감사하며 살기.
안정성
- 집 공사간 안전사고에 노출되지 않도록.
김선용
- 영적전쟁에서 승리와 패에서도 바로 설수있는 믿음달라고.
이상호
- 직장적응 잘 할 수 있도록
- 연애와 결혼은 사치라는 생각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갈 수 있도록.
정충규
- 고민거리 잘 돌아보고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이재엽
- 미해결 감정들을 처리하고 온전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