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0609 열왕기상 19:1-8 어루만지시는 주님
서론.
2016년 12월 12일 새벽 6시에, 아내는 내가 죽기전에 당신 얼굴 보러왔어 하는 짧은 말을 남기고, 모든 수면제를 먹고쓰러졌다. 30년간 헌신했던 아내였다. 이렇게 목숨을 내려놓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까? 택자는 이런 사람이라도 어루만져주셔서 살리신다.
- 믿음으로 행한 일의 결과가 참담할때도 어루만져주신다.
1-2절 / 엘리야는 놀라운 사역을 했다. 갈멜산 대결을 통해 백성과함께 850명의 선지자를 죽였다. 엘리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은, 아합앞으로 가게 했다. 아합은 이런 역사를 보고도 이세벨에 보고하는 말이 이렇게 다르다. 믿음 따라 이렇게 같은 일도 다르게 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칼로 죽였는지는 언급이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편파적으로 나누는 것을 보면 우상숭배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세벨은 바알 종교를 들여온 장본인으로, 엘리야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다. 850명이 떼 죽음 당하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혀서, 24시간 안에 엘리야를 잡으라고 체포명령을 했다. 왜 사신을 보내 처형을 예고했을까? 그냥 바로 죽이면 될텐데.
a. 바알 도 공개처형 당했으니 받은대로 갚고 싶어서.
b. 협박하여 도망가게 하려고.
두 가지, 그 이상으로 생각 해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 성도가 많다고 세계 10대 교회가 다 있다고, 또 크리스쳔 대통령이 나왔다고, 재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의 하나님이 잠시는 희망있어보여도 불신자들의 강퍅한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엘리야가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맹세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아합의 말. 끊임없이 850개의 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백성들을 교란시킨다. 진짜 바알 신은 그렇게 보면 이세벨인것이다. 절대 변하지 않는 모델이다. 드디어 장자를 죽이니, 너는 나가라 하면서 자기는 끝까지 믿지도 않았다. 의로운 일을 가장 많이 행한 사람들이 고통도 가장 많이 받는다. 죄 없는 인간이신 예수님도, 그 어떤 사람보다 고통을 끝까지 겪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고난과 상관없는 하나님자리에 있는 바알우상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극치다.
포스트모더니즘 ? = 개성,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고 절대 이념을 거부하고, 탈 이념이라는 정치이론. 그 이론이 인권으로 집약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옥스포드대 석자교수가 신문에서 인터뷰하길, 전투적 무신론자로 불리던 리차드 도킨슨과의 논쟁을 얘기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라고 하다니, 안 계신것도 증명해보라고 받아치니,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으니 불가론자 - 잘 모르겠다. 이렇게 남겠다고 리차드 도킨슨이 믿음의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센 도킨슨도 그랬는데, 이세벨은 오히려 무신론자도 아니고, 잘 모르겠다는 불가지론자도 아니다. 부부가 금슬이 좋은 것이 이렇게 백성을 호도할 수도 있다. 열렬히 믿음을 배격하는 수도 있다. 둘만 행복하고 좋으면 되기에. 우리집만 좋으면 되기에.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결국 모두를 망하게 한다. 율법 교육을 받은 아합이, 율법을 전혀 모르는 이세벨의 코치를 받는다. 그 코치때문에 하나님이 두렵지가 않아지고, 막무가내로 엘리야를 위협했다. 개성이 하나님 자리에 앉으니, 동성애부터 이혼, 불신결혼. 마음대로 하고 반대하면 차별이 된다. 유명 기독출판사 SNS에 한 장의 그림이 게시되었는데, 그림에는 바벨탑의 가장 큰 문제가 뭘까요? 교만? 아니에요 (중략) 바로 인권입니다. 인권이 신격화 되는게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권이 아닙니다. 주 다스리네요. 하는 문구가 쓰인 게시물이다. 그 게시물을 보고는, 기독교 대표 사이트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고 인권을 폄하한다고 악플을 막 달렸다. 누리꾼들의 비판이 계속되자 그 출판사는 하루만에 삭제했다.
언론의 자유가 유독 기독교인들에게만 억압되는 것만 같다. 인권만 건드리면 이렇게 불난다.
한마디로 우리의 죄를 보는 간증이 신앙의 작동이고 전도다. 잘 살고 학력이 높을수록 인권이 왕노릇한다. 이 땅자체가 우상이라서, 도저히 그 너머로 볼 수 없다. 바로 이세벨이 이 땅에서 도저히 그 나라를 볼 수 없는 모델이다. 육이 가득 쌓여 볼 수가 없다.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고린도전서에 의해서, 오직 성령의 사역만이 강퍅한 마음을 부수고 새롭게 할 수 있다. 총 칼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엘리야 사역은 결과가 참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의 자궁의 점 하나로, 또 십자가의 낮아지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셨다.
적용) 여러분은 믿음으로 행한 일에 참담한 결과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인권에 대해 어떤 생각 입니까? 믿음과 인권은 일원론인가요?
- 이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보일 때에도 어루만져 주십니다.
3절, 엘리야가 이 형펀을 보고 도망했다. 850명을 물리치게 하신 하나님이, 이세벨도 물러치실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무서워졌을까? 우리는 순간 순간 세상이 하나님보다 더 커보인다. 왜? 이세벨이 아버지도 왕이고, 시아버지도 왕, 아들도 왕. 딸도 유다로 시집가서 왕. 이 땅에서 이 세벨은 왕 메이커다. 모든 것을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잘 사는 게 믿음으로가 아니라 바알 신봉자, 세상 신봉자지만 대를 이어 잘 되는것 같은 사람 그 자체다. 엘리야로서는 도저히 이세벨을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갈멜산대결처럼 굳건히 서서 이세벨에게 기별을 보내어 바알의 선지자들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버리지 않았다는 선포를 했다면, 이세벨에게 임해서 백성들에게 대단한 인상을 주고 개혁이 전국을 휩쓸었을 것이다. 엘리야는 뒷심에서 힘을 잃었다. 사실 절망한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찾을 것이 전혀 없었다. 이세벨의 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3년간 기근이 있겠다 한 그 때부터도(소명받은 그때부터도) 이세벨은 대적이었다. 엘리야의 절망은 하나님이 힘 써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을 잃어버려서다. 뒤에서도 보겠지만, 1~4절까지 여호와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 여호와릘 잊었다. 왜 이런 문제가 왔는지 묵상했어야 할 엘리야. 그런데 안했다.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가. 이러니, 갑자기 자기의 생명을 구하려고 도망했고, 원수의 밥이되고 계획에 넘어갔다. 절대 신앙이 넘어지자, 하는 일이 주위 형편부터 살피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고정되었던 시선을 떼어서 사방을 둘러보니 자기에게 이롭게 돌아가는 게 없다고 느껴졌고, 그때 할 일은 한 발자국이라도 이세벨로부터 도망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명받은 북 이스라엘로부터 떠났다. 지금 도망가라고 한 적이 없다, 자기맘대로 했다. 바알에게 , 이세벨에게 선포를 했으면 도와주실텐데 선포하지 않아 도와주시지 않았다.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니까. 우리들교회가 늘 간증으로 목장으로 선포하기에 바알과의 선포가 되고, 밥이 생기고 떡이 생겼다. 선포하니까 김순기 집사님처럼 도와주셨다. 도망가면 결국 엘리야처럼 내 생명때문에 걸음아 나 살려라 된다. 결혼, 직장, 모두 도망갈 일만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850명의 신을 성실하게 물리쳐주셨다. 우리들교회에 간증이 넘쳐나는 것은 매 주일 목도하는 것은 - 우리들 교회 소명이라서, 늘 선포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지키신다. 굉장한 일이다. 이번주 부목자 모임의 나눔이다. 부부가 장로 권사님인데, 그 교회에서 안 좋은 일을 너무 많이 봐 70이 되면 종교 자유인이 되겠다 하셨다. 얼마나 그 교회가 이상한 줄 알았다고, 70에 은퇴식을 한 분. 직분이 그렇게 좋아서 그렇게 했나보다. 다닐 교회를 찾아야 될거같아서 기웃거리다가, 우리들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말로는 못하고 직접 와봐~ 했던 다니던 친구분. 직분자들도 음란 도박 퇴폐 별의 별 얘기를 다 하니까 너무 신기하더라. 여기선 흉거리가 아니더라. 공동체 식구들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커버해주니, 장로님이 마냥 신기했다. 이 장로님이 보기에, 헌금을 그렇게 거리낌없이 공개해서 놀랐다.
헌금이 많아서 공개하는 게 아니라 많을 수록 공개 못한다. 이 돈은 구원때문이고, 모든 것의 끝에는 돈문제가 있다. 집에서 드리는 첫 주일부터 성도수와 헌금을 공개했다. 출 애굽 할때 마다 계수하는 이유와 같다. 구속사적 계수다. 구원의 총수를 날마다 주보에 계수하고 헌금 액수를 이렇게 투명하게 공개해서 재정이 알려지니 조금도 횡령이 안된다. 첫 주부터 큐티로 했으니까 공개한 이유다. 그러므로, 목회를 안해봤으니 내맘대로라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교단에 들어갔더니, 하지말라 그러면 하지 못할 수 있는데, 교단에 안 들어갔나보다. 그러고 보니깐 아무도 하는 데가 없어, 이상하다. 수치를 바알이냐 여호와냐 늘 따지고 가니까. 간증을 하니까. 각 엠티마다 간증이고, 하나님이 불꽃처럼 책임지시니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 후에 회개를 주시는, 교만이 아니라 회개를 주시는 놀라운 일이 있다. 엘리야는 잘나가다가 이세벨의 협박에 쪼그라 들었다.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말씀 없이 쪼그라든다. 엘리야도 예외는 없다. 가장 남쪽에 치우친 곳. 직선거리만으로도 250km 가 떨어진 곳 까지가서 웅크리는 것을 보니, 성정이 같고 연약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 연약함을 감출 수는 없는 인간. 자기 사역을 과대평가하면 말 한마디도 못해서 자존심때문에 떠난다. 고려호텔에서의 큐티나눔은, 대단한 일임에도, 방에서 나눔할 때, 기도할때 자기를 빼서 무시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또 다른 자매가 그러길, 집사님과 상담하기 싫다며 싸우려고 했다. 그들은 설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실컷 열광받기는 커녕 막상 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어려운 일을 주신다. 그러면서 니가 한 일이 아니라며 내리치신다.
계속 하나님은 목사님이 걱정이 되어 열매가 있을때마다 겸손케 하신다.
적용) 하나님보다 내 형편이 더 커보여서 도망간 브엘세바 구석탱이는 어딥니까?
-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어루만져 주십니다.
3~4절, 브엘세바에 머물게 하고 엘리야는 하룻길을 더 가서 광야길로 갔다. 스스로 죽기를 원했다. 마침내 죽기로 한것은 소명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소명의식이 없으면 절망뿐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일도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소명이 없으면 절대 신앙이 없고 그래서 죽기를 바란다. 너무 중요한 소명. 로뎀 나무는 1~2미터 크기로 자라는데, 유일한, 하나의 라는 수식이 되어 한 그루만 있는 로뎀나무에서 힘없이 초라한 엘리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나무는 잔 가지가 많아서 바람과 햇볕을 잘 막아준다. 생각에 따라 도움의 로뎀나무 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어쩌다 여기에서.. 이렇게 발상의 전환이 안되는 엘리야. 피할래야 피할 길 없어서 너무 혼자같이 느껴졌다. 감사하지만 머리로는 알겠지만, 심장이 멎은 것 처럼 답답하다고 엘리야의 낙심. 왜 이렇게 낙심할까? 이유가 있다. 자기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6~7번 왔다갔다 했던 충성된 자도 믿을 대상이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아합을 피해 어디로 갔을까? 유다로 온들 피할 수 있겠나? 아합은 왕궁에 잘 있는데, 왜 이렇게 쫓겨다녀야 하나. 끝이 없는 고난길에 있음을 강조하는 엘리야. 큐티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열왕기를 쭉 읽는 것은 정말 능력이다. 태어나서 교회에서 요한계시록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들 교회는 2번 했다. 삶으로 하니 계시록을 보다 쉽게 했다. 성경 실력, 스토리로 아는 것은 능력중의 능력이다. 당시 유다 왕은 성군에 속한 개혁적인 여호사밧 왕이었다. 유다에서는, 유명한 왕이다. 그런데, 이 왕이 이스라엘 아합왕과 결혼 동맹을 맺는다. 엘리야의 지독한 외로움은 이렇다. 천지에 엘리야 혼자 고군분투하는데 850명을 먹이는 악한 아합왕과 그 이세벨이 여호사밧과 잘지내고 결혼 동맹하니깐, 얼마나 소외당한 느낌일까. 예수님의 직계인 여호사밧이 이세벨과 사돈을 맺는다. 결국, 내가 피난 내려간 유다땅도 피난처는 못된다. 죽고자 하는 이유를 합리화 시켜주는 세팅이다. 이렇게 죽어도 돼. 그럴만하다. 이렇게 자꾸 속이는 사탄. 여기서 어떻게 대통령이 자살 할 수가 있을까? 진보 보수를 떠나서 죽어도 돼 하면 안된다. 엘리야는 참 죽고 싶었을 것.
불신결혼은 계속 되는 열왕기의 가장 큰 주제다. 이세벨이 계속해서 나온다. 솔로몬의 바로의 딸, 또 이세벨.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이세벨가와 혼인한 것은, 이세벨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모른다.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넘어가나, 여호사밧까지 넘어갈정도로 순전하게 보이는 사람이다. 순수하게 보이기에 넘어간다. 남쪽 유다에게까지 자기 딸과 결혼하게 해서 예수님이 오신 유다 땅까지도 초토화시키는, 예수님의 역사에 위기를 가져온 딸이 이세벨의 딸이다. 불신결혼은 정말 악이다. 보기에도 엘리야는 까마귀의 도움과 사르밧 과부의 도움으로 사는 사람인데, 아합이냐 엘리야냐 묻는다면 누구랑 놀겠냐. 아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우리. 그래서 불신결혼 하는 것.
우리는 너무 성격 괴팍한 믿는 의사 vs 순전해 보이는 안 믿는 의사. 둘 중에 우리는 후자를 택한다. 모든 것을 갖췄기 때문에 전도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도 우리들 교회 교인들은 늘 책을 주고 목사님얘기를 한단다. 인상이 깊다. 인상이 깊지만 오지는 않는 그 의사.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도해야한다. 신결혼하면 뭐하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극동방송 PD님이 예배드리고 물으셨다. 이세벨처럼 잘먹고 잘사려는 신결혼이 아니다. 우리에게 소원이된다. 행복이아니라 거룩이다. 싸우면서 사는 것을 정상이라고 여기며 살아야 한다. 이런 설교도 요즘 교회는 욕먹을까 하기 어려운 설교다.
우리들교회에 청년들이 이 설교를 듣고 오는 것을보면 소망이 있는 것같다. 청년부에서 이혼을 안하는 역사는, 기적이다. 불신결혼을 안하니까 이혼을 안한다. 매주 유아세례가 있다. 요즘 같은 시절에. 나라에도 애국자다. 엘리야는 이 얘기가 갑자기 안들려 광야로 혼자 갔다. 홀로서기가 안되니 죽고 싶다.
적용) 여러분은 혼자 입니까? 홀로서기 입니까?
- 그럼에도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5절~8절. 엘리야의 삼천포로 빠지는 모습에도, 내 모습 그대로 용납하시는 하나님. 4절까지 엘리야가 이상하다고 하시더니, 4절에 걸쳐서 일어나서 먹으라고 한 절마다 4번이나 나오는 대단한 하나님의 돌보심. 너무 미안해하면서 보살피심을 느낄 수 있다. 계속 미안하다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 도피중에도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서 도우시고 공급하시는데 이제는 천사를 보내셔서 먹고 마시게 하신다. 얼마나 영육간에 지쳤는지 모른다. 돌아누워도 다시 돌아와서 계속 돌보시는 하나님. 영적으로 힘들어도 육이 힘들고 육이 지쳐도 영이 힘들다. 먹고 마셔도 다시 누울 수 밖에 없어도 택자는 하나님께서 계속 돌보신다. 음식에 의지하여 40주야를 했지만, 영적인게 육적이다. 1절부터 4절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엘리야의 갈멜산의 강조까지 말씀과 같이하여 였는데, 계속 말씀인도로 가다가 갑자기 19장부터 남쪽끝까지 도망간 엘리야.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때는 협박도 질병도 아닐때다. 갑자기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할 때다. 순간적이지만 완전히 180도 다른 길이다.
말씀의 나침반을 한시도 보지 못하면, 흑암에서 넘어질 수 밖에 없다. 말씀의 인도를 가질때와 아닐 때는 큰 차이다. 이 사소해보이는 차이떄문에 큰 일이 일어난다. 대부분 상태가 안좋은 사람에게 큐티했냐고 물어보면 안했다고 그런다. 감동도 없는 말씀 인도는 뭐하려고 받느냐 이렇게 반응한다. 날마다 큐티하면 힘들때 빛을 발한다. 큐티가 그렇게 감동이 있다. 날마다 하는 것을 바알과 하나님 중에 택함이다. 결정적일때 도우시는 하나님.
대단한 사역 이후 협박에 기진했던 엘리야. 기진맥진하여 뻗으니 천사를 보내셔서 주님은 돌보신다.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의 친구들은 직접 들을 수 없으니, 천사가 되어 어루만지고 먹고 마시라할때 이제 다 온다. 그 일을 우리가 하자. 어루만지고 먹고 마시자. 그들은 말씀을 볼 능력이 없다. 호렙산 까지 10일이면 갈 것을 40주야를 걸쳐서 의지하여 천천히 갔다. 선지자라면 나정도는 되어야지 하면서 의로웠을지 모른다. 까마귀의 도움을 받은 자도 없으니. 아합과 오바댜를 봐도, 너희가 지도자냐 하면서 의로움이 생겼을지 모른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그러므로 굶기를 밥먹듯한 엘리야에게 음식물을 잘 먹고 잘 쉬라고 하라니 의아하지만, 회복이 정말 사명이다. 너의 갈길을 다 가지 못할 것이다. 사명이 안끝났다. 니 실력으로는 호렙산으로의 여정을 갈 힘이 없다. 하면서, 사명에 불타서 굶기를 밥먹듯하면서 내 생명을 취하소서의 아픔으로 암이라면, 쉬면서 제때 밥을 먹으니 호렙으로 이제 가는 것 같은 목사님. 사명이 남았는지 도리어 예전보다 건강한 것도 같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우둔한 기도를 들으시지 않고 오히려 살아 남도록 보호하셨다. 죽기를 간구했던 엘리야는 죽지도 못하고 오히려 승천했다.
적용) 지금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어루만져야 할 지체는 누굽니까? 오늘 엘리야가 호렙산 까지 40일간 성령이 아니라 음식물을 의지해서 갔습니다. 여러분의 식생활은 영적입니까 육적입니까? 술과 고기와 탄산과 냉커피를 밥먹듯 먹습니까?
음식물에 의지하여 호렙산에 가려면,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다이어트를 하려고 굶기를 밥먹듯 하는 요즘.
공동체 고백/ 서두에 자살소동을 일으킨 아내 집사님은 119출동하여 이송했다.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이 목사님은 대학 졸업후 전임 간사가 되어 캠퍼스에서 전도하고 양육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사건때문에 해석이 안되었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이런 소동이 일어나는가 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황폐했다. 마치 최후의 심판처럼 느껴졌던 이 목사님. 전도자로 30년 살면서 이미지 메이킹이라도 되야 할 것 같은데,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나지 않는 아내를 보면서 도대체 왜 나는 심판을 당해야 하는가. 목사님을 보면 우리의 대부되시는 목사님! 훌륭한 목사님! 이런 소리 듣는 데, 정작 아내는 수면제 털어 먹으니. 이사야 24장에서, 캠퍼스 선교사로 부름받았어도 인터넷 바둑 중독에 빠져, 캠퍼스 사역은 적당히 하고, 아내와의 소통은 등지고 병 든것도 모르는 불통 남편이라고 고백했다. 사로잡고 있었던 인터넷 바둑 중독을 13년만에 끊어지고 아내와 소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 부부목장의 목자로 아내를 권찰로 지금은 부르셔서 남은 부분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 께서는 이 목사님의 헌신을 생각하여 그래도 어루만지시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시는 것 같다. 한 달만에 다시 소명을 찾고 우리들 교회 목자로 임명되셨다. 다시는 인터넷/ 오프라인에서도 바둑 두지 않겠다는 적용. 말씀 사명이 최선으로 감당하겠습니다.
[나눔]
0609
구준호
길태수
- 음란물 끊어지도록.
-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관심 가질 수 있도록.
- 체력 분배 잘 할 수 있도록.
조동민
- 시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도록
- 기도를 매일 할 수 있도록.
안식
- 이번주도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을 구하면서 갈 수 있도록
- 내 힘으로 병 생활 하지 않기.
- 여름 사역들 왜 부르셨는지 알 수 있도록.
김효진
- 지출 관리 잘 될 수 있도록.
- 피곤해서 관계에 소홀한데, 체력관리 잘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