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6. 2 주일예배>
일시 2019. 6. 2.
찬양 나의 슬픔을 주가 기쁨으로- 주 사랑이 내게 들어와 -세상의 유혹 시험이 - 위대하신 주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말씀 열왕기상 18:30~46
설교 김양재 목사님
이타적으로 살라는 것이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쉬운 정의 아닌가 싶습니다. 갈멜산 대결에서 내기를 했는데 바알이 졌습니다.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기의 대결에서 응답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더이상 길이 없다고 오셨습니까?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이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오늘은 언약의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을 만나셔서 영과 육으로 최고의 응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첫째로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30-31)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행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바알이 응답하지 않는 것을 봤지만, 엘리야는 그때에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내게로 오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엘리야에게로 가까이 왔습니다. 이렇게 때가 되기까지는 온갖 방법을 다 써봐야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 찾아다니고 돈 쫓아다니고 안간 힘을 다써보고 나서야 안 됐을 때 주님께 가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렇게 될때까지 그 백성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음성이 백성에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가까이 온 이들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일장 연설하지도 않았습니다. 침묵하지도 않았습니다.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도록 도왔습니다. 엘리야는 능력의 종이라기 보다는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대장금의 장금이가 의술을 배워서 엄마를 죽이고 자기를 괴롭힌 최상궁에게 복수하고자 한다고 하니깐 의학교수가 너는 의녀가 될 자격이 아직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복수를 하지 않으려면, 자녀와 백성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 무너진 제단을 고쳐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북 왕국 사람들은 예루살렘까지 못 가니깐 산 위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는데 아합과 이세벨은 이러한 제단까지 모두 헐어버렸기 때문에 여호와 신앙이 멸시되고 다 망각되어 있었기에 바알과 여호와 사이를 택하라고 했을 때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31절.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비록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남북으로 분열되긴 했지만 그들 모두는 한 민족, 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돌 열두개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아들을 나타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흩어진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족이 다 흩어졌다면, 이제 한 사람의 예배가 회복되면 하나로 모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속이는 자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로 이름이 계명 되었듯이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올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주신 분이 여호와면 그 여호와께 돌아가자. 입니다. 그 예배를 회복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는 중요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우상에 빠져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망했습니까? 그들에게 정죄합니까? 일장 연설합니까? 침묵합니까? 이때가 그들의 예배가 회복 될때라는 것을 알고 초청하면 어떨까요? 이번에 초청을 좀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두번째는 더 힘든 길을 택하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32-35)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이르되 세번째로 그리하여 세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찼더라)
이미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 신을 불러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과 눈은 다 엘리야에게 향해 있었을 것입니다. 전혀 뜻밖의 일이 엘리야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초미의 관심사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기의 이름도 아니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그 위에 도랑까지 만들었습니다. 참 무의미해보입니다. 성경에는 기적을 위해서 기도했다기 보다 단을 쌓았다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단을 쌓는 묵상과 십자가 적용은 너무 지루해 보이지만 가장 기적을 만날 준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큐티하고 예배드리고 목장가는게 여러분의 기적을 창출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두세아는 15L의 씨앗을 심을 만한 도랑인데요, 번제들을 태울 나무를 준비하는 것도 레위기 규례를 따른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같이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도랑을 만든 후에 한번에 대량으로 물을 붓지 않고 세 차례에 걸쳐서 남북이 하나 됨을 상기시키면서 불이 내려와 태울 제단 위에 오히려 열 두 항아리의 물을 세 번에 걸쳐서 천천히 부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의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불이 임해서 송아지를 태우려면 물 도랑에서 태울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그 일을 엘리야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랑에 물이 찼다는 것은 이로써 제물뿐만 아니라 제단 전체가 완전히 물에 젖게 되었고 하늘에서 벼락이 쳐도 불이 붙을 가능성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백성들의 눈과 마음에 생생하게 각인 시켰고 각인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일부러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을 예수믿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더 어렵게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인 나는 더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해야 합니다. 철저히 기근이 있음에도 줄기차게 더 비 안오게 기도한 것은 왜 그랬다 생각하세요? 구원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소리만 들을 생각만 하면 엘리야와 같은 적용과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과 내 이웃이 백주에 네 아내를 동침하리라,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다라는 나단의 예언 말씀을 그대로 들은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이런 예언을 들었다고 저주가 아니고 바로 예수님의 직계 조상인 다윗이 그런 얘기를 들은 것입니다. 어떤 저주 같은 얘기도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만 한다면 못들을 얘기가 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자기 죄를 보면 아무리 자기가 공을 세워도 잠잠히 있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자리가 올라갈 수록 자기 자리에서 죄를 인정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왜 비오지 않게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을 징계하기 위해서 사실은 복음이 꽂히기 위해서는 파멸하고 넘어지고 망하게 되길 기도하는 것이 예레미야 10장 말씀처럼 성경적입니다. 그날 그날 약속의 말씀을 증거하면 됩니다. 좋고 나쁘고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이 일도 저 일도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구체적인 기도는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날마다 말씀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이렇게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못하는 이유는 구원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관심이 없기때문에 말씀도 안들리고 성경대로 기도도 못하고 성경대로 상담도 못하고. 구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성경이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남편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았는데 생명이 두개도 아니고 한 개인데, 굉장히 힘든 적용을 했습니다. 구원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보이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았는데 생명을 내놓고 느낀 것은 너무 성령충만하고 오늘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참지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자존심 타령을 하고 있으면 구원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힘든 적용을 길러 놓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 3년 6개월의 기근을 참아내기가 너무나 어려운 남의 얘기입니다.
신의 은사를 받아 대단한 치유 사역을 하던 목사님이 충격받고 치유사역을 중단하였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그분의 집회 중에 앉은 뱅이가 고침을 받았는데 그분이 고친 다리로 춤바람이 나서 오히려 지옥에 가게 된 것 때문에 충격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앉은 뱅이로서 나음을 받았는데 더 힘든 사명의 적용을 하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 가는 것입니다. 병만이 목적이면 흘러 떠내려 가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돈도 안주고. 남편이 갑자기 갔을 때 나 편하게 살려고 힘든 남편 데려갔다는 생각이 말씀을 보니깐 추호도 안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훨씬 더 힘든 길을 택하고 택해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가 회복된 사람은 더 큰 적용을 길러 놔야 합니다. 십자가를 길러 놓는 것이 최고의 응답인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생각건데 현재 고난은 잠깐이기 때문에. 할렐루야. 아무리 힘든 십자가를 길러 놓아도 (인생은) 짧습니다.
[적용해보세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내가 택해야 할 더 힘든 길은 무엇일까요? 내려놓아야할 자존심, 편리함, 안일함, 혈기, 체면, 돈도 없어졌는데 택시 안타고 지하철 타는 것, 자동차 중에 무엇입니까? 아무리 예수 믿어도 자동차를 내려놓지 못하더라구요. 심각하게 다뤄보시길 바래요.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세 번째는 말씀으로 회개케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36-37)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의 기도는 엘리야가 처음 가뭄 재앙을 선포했을 때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시종일관 알리고자 한 3가지는
첫 째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둘 째는 엘리야 나는 그분의 종이고,
세 번째는 엘리야 자신이 주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는 자신을 축복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나님 되게 해달라고 확신에 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태도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37절에 나옵니다. 회개입니다.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여호와이신 약속의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똑같은 어조로 반복하고 있는 엘리야의 기도는 바알 선지자들이 보여준 광란의 기도(피를 흘리며)에 비하면 간단 명료하지만 아뢸 것을 아뢰는 전심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되돌이키심은 방향이나 마음을 돌이키다라는 의미인데 바알 신앙에서 마음의 방향을 유턴해서 살아계신 참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너무나 신앙이 훼파되어 있어서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불과 같은 강권적 역사가 없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해있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에게 있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이라는 참 고백은 불이 내려와야지 아니면 불가능 한 것입니다. 이 얘기는 내가 불이 내리는 기적을 베풀지만 그 기적은 회개를 위함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기적을 주는 이유는 회개하라고 주는 것입니다. 기적 자체에 만족을 하니깐 앉은 뱅이가 나아도 춤바람이 나는 것입니다. 기적이 끝이니깐. 놀라움을 경험하는 기적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회개할 수 있는 기도의 비결인지 모릅니다. 사건이 왔을 때 말씀이 내게 임해서 가장먼저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회개입니다. 큐티를 해도 회개없이 하면 문제 해결만 기대하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입니다. 죄를 보는 것이 너무 중요하지만 마음대로 안됩니다.
시에스루이스는 실제로 마음 속에는 B에 대한 소원으로 가득하면서 허울뿐인 A를 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어야 할 마땅한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놔야 한다는 것이 다 회개해야 될지 모르는 죄인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내놓는 것입니다. 목장을 우숩게 여겨도 목장에 가면 진단을 해줍니다. 내가 지금 회개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목장에 가셔야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꺼리는 이유는 상당부분 우리 죄때문이고 세상 일에 불필요하게 몰두하고 있고 정신 건강이 혼란하기 때문에.
어느 작가는 하나님이 정말 기도를 들으시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희미한 목소리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확신이 있으면 딱 읽어야 하는데 확신이 없으면 읽는 것도 다릅니다. 저는 전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생명을 내놓았는데 어떻게 교양을 따질 수 있습니까. 아플 때가 죄의 문제를 다루기 가장 쉬울 때입니다. 그래서 이 때가 회개와 구원의 때이기 때문에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위로하라고 체면상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을 이루기 위해 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알과 여호와 사이에서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백성들을 즉각 멸망시키지 않고 자신의 강권적인 개입을 통해서 불을 보내주고 물을 보내줌으로 그 연약한 믿음을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위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가 고치길 바라는 것이지 심판자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을 오해 합니다.
[적용해보세요]긴박한 영적 싸움에서 내 기도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해결입니까? 해석입니까? 회개입니까? 그런데 아무리 해석해도 회개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우리는 해석을 해서 회개하고 해결이 되야합니다.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네번 째는 불로 하나님 되심을 보이십니다.(38-40)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이제 여호와의 불은 누가 보아도 천지를 주관하시는 분 여호와이심을 믿었습니다. 불이 도랑의 물을 햝았다는 것은 물에도 불이 붙어서 물 위에 불이 마치 혀처럼 보였기에 핥았다. 일반적인 불은 돌과 흙까지 태우지 못합니다.
39절에 드디어.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이게 목적이 되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목격한 백성들의 놀라움과 두려움이 컸는데 그때 나온 고백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엿습니다. 언약의 여호와, 스스로 계신 자는 전능 자인 엘로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을 두 개 다 넣었냐면,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만 알다가 사건이 와서 하나님 자체를 알게 되면 여호와 신앙언약 신앙이라고 합니다. 수준이 높은 말씀 신앙.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육의 답도 원하지만 진짜 원하는 것은 여호와와 하나님이 같이 되는. 오늘은 특별히 영과 육에 기도의 응답이 있기를 원하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니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던 백성들의 입에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가 나왔습니다.
자기 주장을 증명하려면 상대방이 틀렸다고 하면 올라가는 것이아닌데 상대방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것보다는 나의 옳음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옳음을 명백하게 증명하는데 그것은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바알의 허구가 드러났지만 제물에 물을 붓고 태워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40절에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죄를 깨달았으면 가감하게 제거해야합니다. 바알 선지자를 잡으라, 850명을 죽이라니 기손 시내가 붉게 물들어 참혹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은 잔인하시다고 얘기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죄 중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가 가장 무섭기 때문에 가난, 질병, 홍수 이런 것보다 무서운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을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라 자손을 괜히 삼킨 것이 아닙니다. 레위 지파로서 모세의 측근인데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알았으면 아껴보지 말고 죽이라는 것입니다. 죽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죽이지 못하고 항상 여러분들에게 더 큰 형벌이 옵니다. 엘리야는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오면서 낮은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깐 이러한 영적싸움에서 850명 선지자들을 죽이는 권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지난 번 엘리야의 하나님이냐 바알의 하나님이냐 택하라는 말에 백성들이 한마디도 못한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이 불로 응답하는지를 결정하지 않을 때는 다 옳도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불로 응답하시는 여호와를 경험하고 여호와를 유일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대답 안하다가 대답을 했는데 사람들에게 정말 명백하게 증거하려면 이렇게 agree, accept 되게. 정말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인간들에게 불을 내리셔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런 응답은 정말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적용해보세요] 나의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명백하게 증명한 여호와 하나님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회개입니까? 오픈입니까? 철저한 낮아짐입니까? 말씀의 준비입니까? 여러분 어디에 속합니까?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다섯 번째 드디어 큰 비로 응답하십니다. (41-46)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이제 바알의 거짓됨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백성들도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고백하였으며 바알선지자들도 몰살시켰기 때문에 아합이 지적한 대로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 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위하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아합에게 가서 비가 내릴테니 먹고 마시자고 합니다. 아합때문이 아닙니다. 아합이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 천명이 19장 18절에 나옵니다.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저는 북한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반드시 있으리라 믿습니다.
42절에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올라간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아합도 올라각 엘리야도 올라갑니다. 그런데 아합은 먹고 마시러 올라가고 엘리야는 기도하러 올라갑니다.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아합의 삶의 방향 내지 신앙 방향이 엘리야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불을 내리고 기도하고 비가 와도 모든 기적을 보이고 있어도 아합은 기근을 해석하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러니깐 비가 와도 축복이 와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해석이 안되는 축복은 저주입니다. 내가 자녀때문에 아픔이 오고 질병때문에 회사때문에 아픔이 오면 빨리 기근을 해석해야 되겠는데 해석이 되어버리지 못한 채 나아버리고 직장은 취직이 되고 돈은 벌리고 이러면 축복도 해석이 안됩니다. 내가 아픔이 왔을 때 빨리 주님을 만나야지 고통에 의미가 있는데 예수만나는 것으로 의미를 못 찾으면 그 다음에 오는 축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아합처럼 먹고 마시는 것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다가 지옥 가는 것입니다. 정말 고난은 정말 해석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43-44절에.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암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엘리야의 명령에 끝까지 가서 순종하는 스타는 사환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환의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대하실 것 같습니다. 사환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와 이런 환경에 연연해 하지 않기 때문에 6번이나 실패했는데도 계속 갑니다. 화창한데 비오는 가 가보라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내린 명령에 말도 안되지만 끝까지 순종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에게 가장 우선 요구하는 것이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여 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이런 사환이 있기 때문에 아합이 잡아 죽이려 해도 하나님 나라 일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죽이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서 스타는 사환인 것입니다.
45절에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이러나서 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바다쪽에서부터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난 때로부터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후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는데 순식간에 하늘이 캄캄해지고 큰 비가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엘리야 선지자의 믿음의 기도가 성취되는 순간인데요, 여기 조금 후에라는 표현은 북이스라엘이 범죄하여 3년 6개월 만에 기근이 있었는데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에 인내를 잘한 사람은 응답으로 보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응답이 왔습니다. 아합에게는 3년 6개월의 고통에는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늘 말씀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기도로 생명을 내놓았기때문에 남편이 구원 받을 때 식구들이 다 있었는데 저만 응답이라고 30년을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기적을 봤기 때문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기억을 못합니다. 남편이 무슨 말을 했는 지 기억을 못합니다. 그러니깐 이 순식간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단을 쌓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오는 응답을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46절입니다.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기적을 봤으니 자신에게 임한 능력으로 이세벨의 고향 이스르엘로 달려갔습니다. 여호와의 불로 큰 비로 응답하였어도 매일 응답하는 능력이 없으면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합과의 계속된 대결을 위해서 지금 허리를 동이고 엘리야가 영적으로 무장했습니다. 앉은뱅이 그분은 춤바람으로 갔습니다. 큰 비가 왔어도 불이 내려도 형통해도 고난 와도 나는 오늘 그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에게 별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 허리를 동였다는게 중요합니다. 엘리야가 늘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앞지르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우선 하늘에 구름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큰 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손 만한 구름에도 폭우가 내릴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능력을 조금씩 드러내는 것이며 그 절정은 아합의 마차를 앞지르는 엘리야의 달음질에서 나타납니다.
저는 그날 그날 말씀으로 말을 합니다. 말씀 대로 얘기하면 그 일이 몇 십년 지나서 그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너무 많이 듣습니다.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날씨가 화창한데 비가 올 줄 알고 손바닥 구름에서 폭우를 알고 그것이 나도 모르는 진리의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토씨하나 안 빠트리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들여다 보고 앉아 있는데 그것 때문에 여러분을 저에게 붙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북한에 가서 말씀을 전한 것도 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평소에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였기 때문에. 묵상이 뭐에요? 반복해서 읽고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직 능력입니다. 여러분도 꾸준한 말씀 묵상을 통해 850대1의 싸움에서도 넉넉히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은 이런 기도응답의 엘리야가 싫은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죽이려 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과 아합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도의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죽이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때 교훈 받아야 할 것은 내가 진짜라면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겠구나. 진짜가 아니라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없구나 이렇게 적용을 하셔야 됩니다. 한 번도 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리는 못들어 본 사람이 너무 많더라구요. 전도라는 것을 안해 봤기 때문에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이런 생각과 삶이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당대에서만 변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자식이 없었지만 그의 삶은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저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고 내 대에서 아무도 안 변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지금 책이 계속 남고 우리들의 삶이 계속 전해져서 수많은 사람이 앞으로 변화될줄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같이 공동체에 속해서 이런 행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삶도 훗날의 모두를 변화 시키는데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850대1의 대결에서 큰 비의 소리를 듣습니까? 들으셔야 합니다.
# 850대1의 반 동성애 대결을 하고 있는 염안섭 원장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정말 반동성애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이 분은 어제 큐어축제 반대 집회에서 발언자로 나섰습니다. 이분은 연세 의대 세브란스 출신이고 감신대에서 신학을 하신 목사님입니다. 젊은 목사님입니다. 영국에서 석박사를 거쳐서 하바드 연구과정을 수료하시고 에이즈 환자만 7만 명이상 경험이 있는 전문가이십니다. 최고의 학력을 갖으시고 더 힘든 일을 죽으면 죽으리라의 적용으로 이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동성애자들을 혐오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를 사랑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갈멜산의 대결에서 말씀으로 이미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큰 비를 내리실 줄을 믿습니다. 이 원장님은 동성애는 절대 유전이나 선천적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DNA 검사를 해봐도 하나도 안나왔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DNA는 나왔다고 합니다. 기성세대 잘못으로 안한 문화적 영향이 크다고 하시면서 동성애 사이트를 보면 4-50대는 전혀 없는데 대부분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래요. 어느날 에이즈 환자 한 명이 찾아와서 받아주니깐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에이즈로 목숨 걸고 나섰는데 서울대에서 강사로 초청을 했는데 서울대학교 성소수자들 동아리가 서울대 기독교 협의회 서울대 자연과학대 서울대 본부 총장 앞으로 염한석 초청을 취소하라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적극적으로 항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예고를 한 것입니다. 이분이 서울대 총학생회에 드린 답변서를 읽어드립니다.
첫 째, 저는 우리나라 최초로 에이즈 환자에게 입원 치료를 제공하는 요양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입니다.
두 번째, 제가 에이즈 환자를 무상으로 돌보는 것을 알고 질병관리본부에서 찾아서 위탁사업이 시작되어 60명에 가까운 에이즈 환자를 돌보던 중 내원한 에이즈 환자들이 동성애로 인한 감염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2016년의 얘기입니다,)
세 번째, 에이즈 요양 병원은 말기 환자들이 내원해 임종을 맞게 되는데 한 번도 에이즈 환자를 찾아와 위로 한 적 없는 에이즈 단체와 동성애 단체는 악의적인 플레이로 저와 병원의 명예를 훼손하여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호소한 바 있고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정보도 결정이 있었습니다.
네 번째, 에이즈 동성애 단체 민원으로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 요양병원 지정을 취소하고 환자를 이송하여 에이즈 요양 환자들은 어려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저는 대한요양병원협회에서 2015년 12월부터 발효된 보건복지부령 375호에 대해 에이즈 요양 환자들을 일반병원에서 입원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시설이 잘 갖추어진 23개의 국공립 병원에 에이즈 전용 병실을 만들어 안전하게 요양을 할 수 있도록 TF팀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여섯 번째,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동성애라고 밝히셨는데 저나 저의 병원 의료진처럼 동성애를 통해 감염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일곱 번째, 흡연자를 위한 최선의 배려는 담배를 피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으로 폐암에 걸리면 사회가 돌봐주어야 하나 흡연을 보편적인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생명권은 흡연을 통한 행복추구권보다 더 큰 인권이기 때문입니다.
여덟 번째, 한국의 지성이라는 서울대학교의 동정은 전국민의 관심을 받습니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고 타인의 표현의 자유조차 억압하고자 한다면 서울대학교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추락하게 됩니다.
아홉 번째, 서울대 총학생회가 토론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응하겠으니 무리한 언론 플레이는 지양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하는 것은 죄가 안되는데요, 동성애는 죄라고 하면 이것은 차별이라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미투는 죄가 되는데 그외 동성애들 성관계하는 것. 이것은 왜 죄가 안되는지. 훨씬 무서운 병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에이즈의 가장 중요한 감염 경로가 동성애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동성애하면 에이즈 걸릴 확률이 높으니깐 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해주니 오히려 감사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주변에서 그 좋은 공부를 해서 왜 힘든 길을 걸어가냐고 반대도 많지만 본인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사명감으로 오늘까지 왔다고 얘기하십니다. 저는 850대 1의 대결에서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큰 비소리가 원장님을 통해서 모두의 기도로 들리길 원합니다. 차별 금지법이 절대 통과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동성애 독재 시대가 됩니다.
말씀 맺습니다.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면 더 힘든 적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회개케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연약하니깐 불로 하나님 되심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큰 비로 응답을 하십니다. 이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말씀 후 찬양 부흥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기도제목
오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오신 한 분이 있다면 언약과 전능의 영육의 응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힘든 분들의 회복을 위해서. 또 그런 분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면 당연히 힘든 분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에배가 회복되어서 더 힘든 길을 택해야 하는데 내가 내려놓을 자존심과 안일함, 혈기, 체면 오늘 구체적으로 자동차, 긴박한 전쟁에서 내기도의 핵심이 해석을 넘어 회개해서 해결되게 해달라고. 명백하게 주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철저한 낮아짐이 있게 해달라고. 오픈 있게 해달라고. 850대1 대결에서 하나님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때문에 큰 비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안 하게 해달라는 것보다 에이즈에 감염이 되지 않도록 동성애자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도록.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기도하기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돈도 잃고 다 잃어서 예배가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맞아들일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배가 회복되어 더 힘든 적용을 길러 놓아야 하는데 주님 매너리즘과 안일함과 체면에 빠져서 주님의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음을 보게 됩니다. 말씀으로 회개케 되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말씀을 좋아하면서도 철저한 낮아짐이 없기 때문에 인생이 너무나 슬프로 연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불로 하나님 되심을 보이시고 큰 비의 소리를 있게 하시는 정말 하나님은 어디까지 사랑의 하나님인지를 생각하며 이 하나님, 이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셔드릴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스스로 계신자 여호와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내 하나님으로 모실 때 영과 육의 응답이 다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강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형상을 해치는 이 동성애자들에게 특별히 에이즈 감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주님 거룩한 성을 함부로 써서 에이즈 감염이 되지 않도록 주여 붙잡아 주시옵소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연약하니깐 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응답하시는 하나님, 850대 1의 대결을 뚫고 이 나라를 지켜주시옵시고 교회를 지켜주시옵시고 말씀을 지켜주시옵소서. 거룩한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한수진 목장 25th 이야기


이번 목장 예배는 정정환 목사님의 탐방으로 나눔이 이루어졌습니다.
다과를 나누며 목사님과 목장 식구들과 즐거운 목장예배였습니다.

(7층 나눔실 정정환 목사님, 예진, 지현, 지민, 은영)
주신 말씀을 가지고 우리 속에 있는 것을 잘 나누며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야기 했습니다.
나눔으로 교만해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 구원에 관심 없는 모습,
말씀은 듣지만 철저한 낮아짐, 구체적인 적용이 없었던 모습들을 꺼내놓고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편하게 나눔을 가져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주도 목자언니와 우리 목장 식구들 모두 모여 계속해서 우리 속에 것들을 잘 나누며 진단 받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