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5. 26 주일예배>
일시 2019. 5. 26. 3부 예배
찬양 사랑스런 주님 음성 ┃ 새 힘 얻으리 ┃ 거리마다 기쁨으로 ┃주님 말씀하시면 ┃ 주 말씀 향하여 ┃ 우리 오늘 눈물
간증 김성우 목사님★
우리들 교회 김성우 목사입니다. 제가 공동체 고백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눈에 띄는 학생이었고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재수없는 말이지만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좀 있었습니다. 그런 학교 생활과는 달리 집에 오면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싸우시는 부모님과 술에 취해 폭력과 폭언으로 가족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아버지때문에 밝은학교 생활과는 달리 집은 늘 어둠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중학교때 아버지께서 감옥에 가셔 실직하셨고 이후에 매일 술을 드시고 폭행과 폭언으로 가족을 괴롭혔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 머리채를 잡고 온 동네를 끌고 다니며 사정없이 구타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 아버지가 내뱉는 욕설을 보며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증오심이 커져갔고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는 결국 가정을 내버려두고 떠나셨습니다. 열등감과 수치심에 갇혀 모든 것을 날개로 가려버리고 꽁꽁 싸맨 채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늦은 시각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면 길바닥 쓰러져 욕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들쳐 업고 집으로 향해야 했고 한번은 아버지 손에 칼을 들려준 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저를 향해 찌른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힘을 주어 칼은 빗겨났고 분노와 혈기로 가득찬 저는 다 쓰러져 가는 집의 문이며 벽을 손에 피가 나도록 내려 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욱 술을 마셨고 반복되는 하루가 끊을 수 없는 굴레 처럼 느껴져 이 지긋지긋한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죽고 싶어 신학교를 갔지만 부르심에 소명이 없었던 저는 신학적 지식을 탐독하며 육체적으로는 음란하며 방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열등감이 너무 많았기에 BB크림을 바르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용서를 몰랐기에 아버지와는 연을 끊고 살았고 음란한 제 삶의 결론은 결국 결혼하기 한 달전 세 명의 여자를 동시에 만나는 것으로 결론이 맺어졌습니다. 이 사실이 만 천하에 드러나 수치를 당하고 사업까지 망해 억대 빚을 졌고 이 시간이 너무 아프고 괴로워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셔서 자살은 막아주셨지만 이 후에 너무 아픈 숯불로 모든 것을 불 태우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은 날들이 지나고 예레미야 1장과 이사야 41장 말씀에 확실한 부르심이 있어 다시 자원한 마음으로 오게 된 곳이 우리들 교회입니다. 서로가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하며 평생 미워했던 아버지에게 조금씩 적용하게 되었고 아버지 생계를 책임져야 겠다는 마음에 하루에 2만원씩 드리는 적용을 10년 동안했습니다. 그러나 드린 돈을 술과 담배로 탕진하는 노숙자처럼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저는 제 할 도리를 다한다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한 달전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아버지 삶에 무관심한 저에게 모든 책임을 구원의 대가로 물으셨습니다. 다리가 골절되어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시는 아버지를 두 팔로 기어서 술을 마시러 나갔고 매번 기저귀 갈고 움직일 때마다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하시기에 병원에서 5번 쫓겨났으며 진료를 위해 움직일 때 깨끗한 새옷을 입혀 드리면 그 옷에 오줌을 싸시는 아버지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교통사고 아버지의 모든 질병들이 드러나게 하셨고 전두엽이 심하게 망가져 폭력성과 도덕 의식이 없는 모든 것이 망가져 훼파된 부분을 하나님께서는 홀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 또한 아버지 과실이 커서 경제적인 부분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지게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이 십자가를 던져버리고 싶어 주여 어느때까지이니까 탄식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때가 기회라고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라는 열등감으로 인해 꼭꼭 숨겨놓았던 저의 죄를 다시보게 하셨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입쌀롬으로 말금지 치리를 받게 함에도 구원에 있어 게으른 변하지 않는 저를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구원은 말이 아닌 손과 발이 가는 적용임을 다시 깨닫게 하셨고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탄식하시는 주의 간절한 마음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위기의 시간에 복수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는 용서의 대상이 되었고 용서의 대상을 넘어 나의 구원을 위한 최고의 공로자임이 인정되었습니다. 정말 담임 목사님 말씀처럼 아버지에게 제가 솔직히 잘생겼는지 잘 모르지만 잘생긴 외모도 물려받았고 덤으로 아버지로 인해 깨어 있어 같이 최고의 가치인 우리들 교회 부목사도 되었기에 영육간에 최고의 아버지임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저는 복수심과 열등감에 갇혀 인생을 허비하다가 지옥에 갔을 것이 이번에 인정이 되었습니다.
설교 이후 아버지는 굉장히 변화되었습니다. 평생 끊지 못했던 술과 담배를 끊었고 갈수록 얼굴이 환해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가면 얼마나 환하게 웃는지 모릅니다. 저도 이 변화가 너무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아버지와 오랜시간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 가면 두세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대화를 합니다. 제가 말이 많은게 아버지를 닮아서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이 많으신 줄 몰랐습니다. 지난 주에는 권찰 앞에서 요단강 넘어 만나리 찬양을 부르셨습니다. 퇴원 후 집으로 모셔야 하고 생각만 해도 감당 못할 수많은 상황들이 앞에 있지만 모든 것이 변화된 것을 고백합니다. 십자가 지기로 결단만해도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내가 지는 것 같지만 이 십자가가 나를 주님께 이끌고 있음이 날마다 하루하루 깨달아지고 있습니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의 인생이었는데 모든 것이 무너져 황폐해진 저의 가정에 구원이라는 시간을 허락해준 하나님 사랑합니다. 시마다 때마다 말씀으로 양육해주시는 목사님 감사합니다.
갈 멜 산 의 대 결
말씀 열왕기상 18:16-29
설교 김양재 목사님
소명 받고 가는 이 땅에서 아무도 네 말을 안 들을 거라고 저번 주 이사야 6장에서 말씀해주셨는데 아합 시대도 마찬가지라서 엘리야가 가장 힘든 전쟁을 선포합니다. 바로 오늘 갈멜산 대결입니다. 결국 이 땅에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입니다. 갈멜산 대결은 바알선지자와 엘리야의 정면 대결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 지금까지 엘리야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오늘은 엘리야와 바알의 갈멜산 대결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대결을 하려면 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16-18)
항상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 원수 마귀와의 전투를 비유하는 것인데,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바알숭배가 국교화 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여호와 신앙이 거의 사라질기 되었기에 전쟁도 치열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시대에 전국에 지명 수배되어 있는 이런 상태라 생명을 내놓고 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이미 목숨을 내어놓고 아합에 간 것처럼. 3년 6개월 동안 가뭄을 같이 겪고 죽은 아들을 살려낸 이 사역을 한 것처럼 우리도 가뭄을 겪으면서 현장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사명을 감당할 때, 더욱 큰 사명을 주시는데 그것이 갈멜산 대결이 되겠고,정말 큰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16-7절.
(16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오바댜가 어찌하여 엘리야가 있는 곳을 말하여서 내가 죽임을 당하게 하시렵니까? 했습니다. 엘리야가 이에 내가 아합에게 보이겠다, 걱정말라는 한 마디를 듣고 아합에게 말하러 간 것은 오바댜의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오바댜의 신앙이라기보다는 그 동안의 헌신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순종하게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바댜가 걱정하는 것처럼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타났을 때, 아합은 대뜸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라며 엘리야를 부릅니다. 아합은 3년 반 동안의 기근을 엘리야 탓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굳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아합의 수준에서는 엘리야 때문에 당한 고난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늘고난이 축복이에요. 이것은 성경 말씀인데, 마치 김양재표 말씀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난이 생기면 제 이름을 떠올리시는데 축복이 오건, 고난이 오건 떠올리시는데 그 마음은 각자 다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미워해도 제 이름을 떠올리는 건 소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합을 통하여 기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함이 없다면, 축복이 와도 하나님의 긍휼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고난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 깨닫고 회개하라고 주신 3년 동안의 가뭄은 그동안 마음을 완고하게 한 그에게는 고통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회개하지않는 마음으로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 오늘 갈멜의 대결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이게 핵전쟁이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갈멜산의 대결입니다. 그래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남편은 아들 고통이 10년이 계속되는데도 회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 문제만 아니면 문제가 없다고. 예목도 받으시고 부목자까지도 하셨는데도 마음이 힘든 상태라 교회와 목장에 대하여 냉담한 상태라고 나눔을 하셨습니다. 이분에게 아들고통 외에는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없어지기만 바라는 고통 외에는 그 외에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엘리야보고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니 이에 반박해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는 내가 아니라 아합과 아합 아버지의 집이며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여기고 바알을 쫓았기 때문이라고 정확히 밝혔습니다. 아합에게 이 기근의 문제는 지도자로서 대를 이어 세상과 돈과 번영을 쫓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다고 정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내 문제는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합 삶의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해주면 여러분은 기분이 참 나쁩니다. 이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불신결혼을 막고자 해도 자녀 둔 엄마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냐고 하고 이혼을 막고자해도 다 형편이 있는 거라고, 왜 다들 나를 괴롭게 하냐고. 이럽니다. 불신결혼이나 이혼 후에 힘들어지면, 당신이 결혼을 축복하지 않아서 이렇게 됐냐며 원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미운 마음이 들면 답이 없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이렇게 미워하는 것을 보니깐, 올바른 복음을 전하면 원수가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적으로 못합니다. 정말 무릅쓰고 제가 이제까지 해왔습니다.
함석헌의 <<너 자신을 혁명하라>> 中에서 나는 하나님, 제발 미운 마음으로 하지 않게 해주시옵사 기도하고 기도한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라고 했습니다.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사랑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미워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고 미워해도 정당화되는 감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마음에 적인 것입니다. 아합처럼 나를 왜 괴롭히냐고 우상숭배해서 기근이 올꺼다. 왜? 그 말을 전해준 엘리야보고 왜 나를 괴롭히냐고. 적반하장. 얼마나 아합이 주관적인 생각으로 엘리야를 미워하는지 모릅니다.
남편도 잘 나셨습니다. 아들이 속을 썩히니깐, 아들도 밉고, 아내도 밉고, 김양재 목사님도 밉다고 나눔을 했더라구요. 아들이 속을 썩히는데 왜 제가 미워요? 우리가 그러는 것입니다. 말씀이 안 들어가면 다 밉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장차 받을 환란인 복음을 전함으로 기근이 왔을 때 전한 자를 괴롭히는 자입니까? 엘리야처럼 전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입니까? 내 속에 속은 욕심을 인정하기 싫어서 탓하고 있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기근이올 때 아합처럼 남 탓 하냐? 괴롭힘을 주는 사람이냐,당하는 사람이냐?
갈멜산 대결
두 번째는 850대 1의 대결입니다. (19)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바알도 여성을 무시하는지 아세라는 한 번만 언급되고 언급이 안 됩니다. 바알 속에 아세라가 포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알이 남성이라면 아세라는 여성인데 동성애도 남자가 월등 많더니 요즘 여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는 대결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가정에서 분연히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무조건 순종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장로집에 시집갔는데 교회 못 나가게 하면 나도 이혼이다. 남편에게 거듭나서 선포를 했더니 이 남편이 처음으로 세게 나가니 성경책에다가 교회를 나가겠음. 10월 며칠. (싸인)을 했습니다. 5년 동안 맹종만 하다가 거듭나고 보니깐 구원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목적을 분명히 해야겠다고 단호하게 나가니 도리어 주춤해서 교회를 나가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영육간의 전쟁은 계속 되었지만. 가끔 순종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될 때가 있기 때문에 목적을 분명히 할 때가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참다가 화병나고 바람나고 그런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 없습니다. 중요할 때마다 내 전쟁의 목표가 하나님인 것을 선포하고 치고 빠지고 해야 합니다. 선포하고 딱 죽어지고를 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400명을 갈멜산에 모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만 힘들지 아합과 이세벨의 후원을 받는 선지자 850명은 고난을 모르고 물질적 풍요함을 누렸을 것입니다. 온 백성이 고난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코에 걸어놓고 역시 돈이 좋아 명예가 좋아 하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잠시 뒤에 이들이 망합니다. 그러니깐 망하기 전에 여호와만 참 하나님, 우상은 까짜라고 이것을 엘리야에게 증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 소명이 여호와만 진짜라고 세상은 까짜라고 그 얘기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아직 망하지도 않은 세상에서 망한다고 하니 욕 먹을 일입니다. 안 그래요? 부부 간에도 망하지 않았는데 망한 거다. 이 땅은 영원히 망할 것이니. 잠시 뒤의 일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괜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말을 안 듣기 때문에. 그런데 그 싸움은 850대 1의 매우 외로운 싸움입니다. 세상에 우상이 850가지나 되는 것입니다. 우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이 죄인입니다. 모두 아비 마귀에서 난자라는 말이 맞습니다.
믿음의 분량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이 세상은 거짓의 세상이니 살려면 다 거짓으로 상황을 피해갑니다. 거짓을 얼마나 거짓 같지 않게 하는가가 성공의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짓을 거짓 같지 않게. 우리 모든 지식은 다 이것을 향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믿고 나서도 믿음을 위해서 선의의 거짓이라며 여전히 거짓을 합니다. 분별이 참 안됩니다. 선의의 거짓보다는 하나님 앞에 섰는가가 중요한데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만큼 거짓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 성령이라서 택자들의 거짓말은 연약함으로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택자라도 거짓말을 합니다. 늘 잘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건강한 교회라면 말씀이 공동체에 점점 자리를 잡습니다. 진리가 자리 잡는 만큼만 거짓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날마다 안 변하는 것 같아도 날마다 거짓의 사람과 공동체를 보면 딱 알게 되어 있습니다. 알게 되니깐 우리가 괴로운 것입니다.
불신결혼이 왜 힘든가 하면 처음에는 믿음의 분량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결혼하고 지나고 보면 시작점이 다르니깐 점점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공존하지 못하니깐 힘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을 빙자해서 이단들이 하는 일은 온통 거짓말입니다. 신자를 빼가야 하니깐 끊임없이 속이고 속여서 빼갑니다. 한 교회 10년쯤 잠복하여 거짓을 행하고 있는데 다들 그 거짓말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단이 666이라 비슷해 보이는 거짓말을 연구하는 것이 그들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성령이신 말씀을 봐야하고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는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를 따라갈 정도가 아니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는 기본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도덕과 윤리도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 봐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내야 되고 그래야 이단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갑니다. 할렐루야.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우상은 몇 명입니까? 850명의 우상이 달려드는데 이 대결을 선포할 마음이 있습니까?
세 번째, 갈멜산 대결에는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20-24)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언제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원어는 두 바이트, 두 나뭇가지 사이에서 절뚝거리고 있느냐고 합니다. 절뚝거리다는 뒤에 26절에도 나오는데 바알 선지자들이 단 위에서 춤추는 뛰놀다로 번역되어있습니다. 머뭇거리다는 뛰놀다와 같은 의미로 썼고 원어는 절뚝거리다 니다. 두 나뭇가지 사이에서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가만히 머뭇거리는 것 같아보아도 우리는 머뭇거리던지 뛰놀던지 모두 쩔뚝거린다는 뜻입니다. 다 위태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선지자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데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이 전국적인 기근의 고난을 당하면서 지금 구원자가 앞에 있는데 구원자 엘리야를 따라야 할 때인데 대결할 때입니까? 말씀을 보면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를 모릅니다. 사업이 망하고 아이가 병들어 난리가 났는데 참된 주의 선지자와 대결할 때인가? 이 말입니다. 이 기근의 때에 아합은 850명의 바알 선지자를 맥이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다 죽어가고 있는데. 할 일을 모릅니다. 아무리 임금이라고 할지라도 진리의 성령님이 임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야 될지 모릅니다. 반대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신음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거짓된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라 하는데 최고층인 아합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습니다. 어디나 리더가 중요한데, 백성들은 둘 사이에서 바알편 850명이 모이고 엘리야는 한 명밖에 없으니 머뭇머뭇거릴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진짜 같습니다. 한 사람 모이면 까짜같습니다. 큰 교회는 까짜일 수 있고 진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많이 모이면 진짜 같습니다. 우리들 교회도 많이 모이니깐 오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머뭇머뭇 거리면서 판단이 안되어 머뭇머뭇하며 등록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분별이 끝나지 않아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고 계시는데 계속해서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르라 하니깐 백성들이 한마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 선생님 한 분이 신우회에서 큐티를 전하려고 하시는데 너무 거룩해 보이는 목사님 사모님이 방해를 하신대요. 전하는 선생님은 다른 분들에게 큐티책도 사다 드리고 나눔도 뽑아다 드리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나도 큐티 다 해봤다. 그런데 그게 쓸 데가 없어서 큐티한 것 다 버렸다. 큐티 한다고 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개 선생님은 큐티 한다고 하면서 무엇을 그렇게 울고 다니냐. 이러면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으니 우리는 기쁜 것 밖에 없지 않냐. 우리가 잘 못 믿으니깐 자꾸 우는 거다. 라고 했답니다. 그러니 다른 선생님들이 그 사이에서 헷갈리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는 큐티를 전한다고 하면서 울고 가정에 문제 많고. 다른 편에는 목사님 사모라면서 말도 그럴 듯하게 하고. 어느 쪽인지 정말 머뭇머뭇하는 것입니다. 분별이 되겠습니까?
예수 믿으면서 우리는 왜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이며 계시록 말씀에도 네 눈에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고 했습니다. 흘릴 눈물이 있어야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씻겨주시지 않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토씨하나 안 빠지고 봤기 때문에 해석이 되는데 사모님처럼 훼방하는 분이 있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흥분할 것이 아니라. 목사님 사모인데 어떻게 저러나 하는 생각부터가 미성숙한 생각입니다. 먼저 내가 말씀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면 그런 갈등이 있어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해결해 갈 수 있습니다. 그게 아직 안되니 그 선생님도 사모님을 통해 훈련받아야 할 것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처럼 복음이 쉽게 전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나 아무도 영접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850대 1의 대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힘들 때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서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이 바로 진리의 성령님이니깐, 말씀 큐티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훼방을 놔도 큐티는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시작은 아주 미세했지만 다른 곳에 가게 됩니다. 미사일이 다른 곳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2절에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엘리야도 힘듭니다. 엘리야가 홀로 남았으나라고 말하는 것은 19장 18절을 보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이 아직 남아있으니깐,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아니고 현재 싸우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 더 나아가서 갈멜 산에 모인 북이스라엘 백성마저도 엘리야의 편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과 바알 중에 택하라고 하니깐 한 마다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 편이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배반감을 느꼈겠습니까. 백성들은 무엇이 진리인줄 알면서도 자기 삶이 걸린 고백이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전하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자식이나 남편, 유익이 걸린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대답을 하나도 안하는. 이렇게 말씀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3-24절,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이 얘기는 뭔가 하면,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 두 송아지 가운데 좋은 것을 네가 선택해라고 하였는데 이후에 공평치 않은 제물이었다고 결과가 나와 뒤집을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좋은 송아지를 고르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불로 응답하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백성들이 다 옳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옳다고는 했지만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바알로 마음이 다 기울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엘리야하고 겨루자는 것이었습니다. 반대쪽에서 그 얘기를 듣는 것이 옳도다가 아니고 지금 바알 편에 이미 선 것입니다. 말은 그 말이 옳도다라고 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두 송아지가 좋고 나쁘고는 백성들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 전하는 두 사람을 놓고, 김양재 목사가 옳으냐, 아무개 목사가 옳으냐고 물으면 우리들 교회 성도라면 쉽게 (김양재 목사님) 외칠 것입니다. 당연히 은혜 받는 것은 김양재 목사가 옳아. 그런데 개인을 붙잡고 김양재냐 자식이냐, 말씀이냐 자식이냐를 물으면...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불신결혼, 이혼 등 개인의 문제로 도전하면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라고 했더니 한마디도 안하고 있다가 불로 응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했더니 다 옳도다고 응답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얘기 아닙니까. 여러분께도 묻겠습니다. 말씀이에요, 자식이에요?
저에게도 이것을 적용해보면, 저도 머뭇거리기를 잘합니다. 신중한 것도 있지만, 제 욕심인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살아남아야 되니깐, 늘 공부를 잘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목회까지 이어져 맨날 설교도 잘해야 되고. 이런 부분들이 저에게는 물론 가지쳐야 될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히 머뭇거리기를 잘합니다. 물건 살 때, 무언가를 정할 때도 머뭇거리기를 잘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저의 한 부분을 쓰시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적용해보세요]자녀의 입시를 놔두고 어느 학원 어느 선생님께 공부를 시키면 붙는다는 말과 먼저 말씀으로 양육시키며 큐티시키고 기도하라는 말 사이에서 여러분은 머뭇거리나요? 아닌가요? 당연히 말씀보고 큐티 하는 게 먼저에요! 여러분은 머뭇거리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주일날 어느 입시학원 가면 딱 들어 간대하면 머뭇거리지 않나요? 말씀이냐, 자식이냐에서 여러분은 머뭇거립니까? 말씀입니까? 자식입니까? 나와 아이들의 목장 참석과 양육의 부르심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갈멜산 대결
네 번째는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바알과의 대결입니다. (25-29)
이기는 싸움입니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엘리야의 이 제안은 그들이 보기에는 절대적으로좋은 송아지를 골라서 이길 것 같지만 바알 선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린 한 것이었습니다. 바알은 참신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믿음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안을 했고 너희가 먼저 택하라고 자신 있게 제안을 하니깐 수적으로도 월등하여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뛰놀다는 머뭇거리다와 같은. 절뚝거리다라는 단어라고 하였는데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바알이 응답이 없자 이 선지자들이 뛰놀았습니다. 광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선지자들이 지도자니깐 따라가는 것입니다. 백성들도 바알선지자가 하는 대로 광란 춤을 춰가면서 같이 절뚝거리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위대한 동지자 이름을 부르면서 신혼여행도 김성일 업적이 서린 금수산으로 망경대로 갑니다. 우상을 인격적으로 사랑해서 간구하는 것이 아니고 불을 달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눈물로 애원해도 세상을 향해 간구하는 것은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위대하신 수령이 영원히 함께 있다해도 그렇게 위대하신 동지자 이름을 부르는데 정말 열렬히 박수치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못 먹고 못 살 수 있습니까? 평양에 가장 중심이라고 보여지는 고려호텔에서 본 야경은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식사할 때도 넉넉히 시키고 남기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식사도 남길 정도로 주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바알을 부르면 잘 살게 해줘야 하는데...
[적용해보세요] 아침부터 낮까지 어떤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이 여러분의 주제가입니다. 기복적인 언어를 주문처럼 입에 담으며 돈돈돈하면 돈이 응답한다고 하면서 돈을 부르짖고. 합격합격합격하면 합격이 온다면서 고대하고 눈물 흘리며 소리 지르며 뛰놀면서 결국 절뚝거리는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27절.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신인즉은 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엘리야가 이 바알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왜 응답을 안하고 계시나 묵상하고 계신가? 잠깐 나가셨나? 용변보러. 지금 길거리를 행하고 계시는가. 늦잠 주무시나 하면서 굉장히 조롱을 했습니다. 이 성경을 구원받지 않은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도 엘리야가 무식해보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푸쉬를 하고 전도를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사단은 조롱의 대상이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두를 사단으로 보면서 부모, 형제, 배우자를 조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니 남편보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절대로 믿지 않으면 결혼도 안시키고. 죄를 조롱하라는 것이지 죄인을 조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모르니깐 사랑한다고 그 말 다 들어주고 하다가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큐티를 하니깐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게 됩니다. 말일에 우뚝 선 십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적용을 길러 놓았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계속 사건이 와도 살아남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 할 때도 지금은 못 살아도 가능성을 보면 나중에 굉장히 칭찬 받습니다. 지금 다 되어있는 사람과 하면 망할 일 밖에 없는 프로테이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보고 하라는 것입니다. 형편없는 여러 조건 가운데서도 우리청년들이 믿음을 보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워낙 없고 병 걸렸고 망했음에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애초 기대 없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혼을 아무도 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잠시 뒤의 것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28절입니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구약 성경에 상하게 하더라.는 11번 사용되었는데, 자해 행위가 바알 예배의 정규 의식으로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4장 1절에는 너희는 자기 몸을 배지 말며. 그니깐 피가 흐르기 까지 자기 열심히 무섭게 굶어 가며 기도 응답을 외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29절에,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이게 우상 섬기는 자의 특징입니다. 돈과 명예, 권세의 우상을 섬기면 큰 소리로 부르고 빌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피 흘리고 절망하고 낙망합니다. 자식이 우상이기 때문에 자식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해보려고 자식과도 피 터지게 싸웁니다. 어떤 아이가 자해를 해서 온 몸에 피자국이 있다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살렸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피입니다. 자살기도를 했던 아이가 중학교 아이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가서 흔적들을 보이며 나도 그랬다고 하니 제압이 한 번에 딱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다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 아까 말했던 가족의 아내집사님은 아들이 그렇게 돈 사고를 쳐도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구하면 아들을 용서해야 된다며 엄마가 끝까지 믿어주면 아들은 돌아온다는 믿음으로 꽉차있어서 10년 동안 어떤 말도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목장, 초원, 평원 어떤 말도.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당신들의 아들이면 범죄에 노출되도록 하겠냐, 용돈을 넉넉히 주면 사체는 안 쓸거라면서 아들이 중독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믿지 않고 아들이 다신 안 그럴거야.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 믿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공동체에 나를 속였다는 것입니다. 오직 아들의 회복에만 주님께 울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권면을 애써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는데 이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돈이 있는 부모들은 예외 없이 다 자식이 중독에 걸려 도박을 하고 경마를 하고 다 갚아 주더라구요. 없어질 때까지 갚아주고 다 같이 망하더라구요. 응답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이 시대의 우상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새벽기도에 철야기도에 잠도 안자고 금식까지 하면서 땀 방울이 핏 방울이 되도록 자식의 입시와 성공을 위해서 빌고 울고 부르짖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들 돈 갚아주느라고 그렇게 그렇게 갚아주면 안되는데, 갚아주지 말라고 그렇게 처방을 하는데도 돈 갚아주느라 남편이 돈을 잘 버는데도 알바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려달라 구원해달라 기도하면서 맨날 기도하면서 내 돈 내놓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살려달라 구원해달라 내 돈 달라.
복은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단일 뿐이지 절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바알 선지자처럼 복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에 피 흘리기까지 몸을 상하게 하면서 자신을 망치고 자식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는 것입니다. 당연히 참신이 아니니깐 내가 돈신, 자녀신을 섬기고 울부짖었는데 어떻게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아닌 것에 우상에게 절하는데. 자녀 우상, 돈 우상, 이 세상에 모든 보이는 우상을 섬기는 것인데.
[적용해보세요] 내 시간과 물질, 정열을 다 바쳐서라도 반드시 얻기를 원하는 복은 무엇인가요? 물질의 복이에요? 자녀의 복이에요? 그 복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내 인생 최대의 목적입니까? 수단입니까? 내 이렇게 열심히 예배 나오는 것이 하나님자체가 상급이에요? 수단이에요? 하나님께 빌어서 자녀 잘 되고 돈 벌고, 이게 여러분들의 목적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수단이 되겠죠?
# 오늘 등장한 이 부부는 오신지 10년이나 됐습니다. 좋은 대학에 제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집사님 부부입니다. 이 부부는 남북전쟁까지 갈 게 뭐가 있어요. 내 집에서 일어난 전쟁이 제일 무서운 갈멜산 대결 아니겠습니까? 10년을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대학때 운동권에 있었다고 합니다. 한 의로움으로 날마다 비판을 했는데 아들이 정반대의 길을 가니깐 아이러니입니다. 아들이 돈 사고를 쳐서 학교만 졸업시키자고, 그럴 때마다 갚아주자고 해서 남편이 결국 갚아줄 수밖에 없었고. 아들한테 매번 돈 주면서 예배 나오라고 했는데 목장에서 그게 비인격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집사님이 전혀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들이 축구 동호회에게 대관료를 받고 그 돈으로 도박을 해서 모두 잃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그런 사건이 오면 너무 놀라는 것입니다. 드디어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를 욕하고 들어갔다 나갔다하다가 올해 초부터 부부목장, 주일예배를 나오고 있습니다.
목장보고서를 보니깐 너무 허무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 라임 댄스를 해보려고 알아보고 있는데 아내가 목장에 나가면 댄스배우는 것을 허락해준다고 해서 빅딜을 하고목장에 나왔다.고 나눔을 했더라구요. 아내가 남편이 목사님을 싫어하는 큰 이유는 제가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그래요. 2월 15일 부부목장 보고서는 아내가 제가 기본적으로 잘난 것, 돈, 멋진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남편도 난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예쁜 가정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안 됐어요. 2월 22일 목장보고서는 담임 목사님의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저는 그냥 제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3월 12일 목장 보고서는 아들에게 큰 욕심없이 키웠는데 지금 크게 바닥을 치게 만들어서 속상하다.고 이렇게 힘들어도 날마다 목장에 나와서 말씀을 나눈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이 저의 신앙이 기복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너무 저를 무시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도 다들 무당이 전해지는 말은 좋아해도 무당을 싫어하는 거 다 아시죠? 아내가 무당 같아서 싫은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없어도 얼마나 한 사람이 중심을 잘 잡아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편은 목사님 말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씀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천국간다 인데 우리 아내는 돈을 너무 많이 써요. 아내가 요새 회개를 하니 맞다.고 이런 얘기들을 계속 하면서 아내가 아들이 이렇게 속을 썩이니깐 내가 얼마나 공동체에서 함부로 말을 했나. 내가 얼마나 말실수를 했나. 내가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몰랐는데 이제 아들의 사건이 오면서 교회를 통해서 너무 많이 가지치기를 하고. 내 세상 욕심 가치관을 다루시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돈을 안 갚아주겠다.고 이것이이 분에게 인생 최대의 고난입니다. 갚아주고 싶어 죽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안 갚아줘서 빨간 줄 가도 되겠냐?고 했더니 너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원망할 것 같진 않다고. 그래서 지금 아들을 살리는 것 같지 않다고 처음 적용을 했습니다. 육이 무너짐으로 영이 세워지는 은혜를 믿지 못함을 회개하고 우리 아들을 죽이지 말고 살려주도록 기도해달라고. 그렇게 적용을 했는데 지난 주 기도제목이 경찰이 아들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보험사기를 쳤다는 것입니다. 돈 안주는 적용을 하기가 너무 힘든 아내 집사인데 이 집이 정말 갈멜산 전투를 하고 있는데. 부모와 아들이 지금 다 뛰놀며 절뚝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머뭇거리고 뛰놀면서. 남편도 10년 동안 구원에 관심 없고 아내는 자기 열심히 뛰노니깐 이것이 있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음이 없는 남편이지만 10년이 됐으니깐 오늘 설교함으로 이 가정이 회복되라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듣고 상처 받으면 아니 되옵니다. 아내 회개가 시작되기 시작하였는데 유지되기 바라고. 그동안 아들에게 준 돈 주님께 드렸으면 아들도 남편도 다 구원되었을 거 같은데 그 돈 갚아주느라 알바 뛰면서 자기는 입지도 못하고.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우리들 교회는 이렇게 힘든 청소년과 교사들을 위해서 8월 큐티 페스티발을 공개하는데 힘든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들 교회 친구들이 같이 조를 짜서 섬기게 하려고 합니다. 교회 청소년들이 큐티를 하는데 우리 목세도 공동체를 보고 너무 은혜를 받았잖아요? 청소년들도 이 공동체를 보고 은혜를 받는데 우리들 힘든 자녀들이 조를 짜면 그동안 믿음이 없었는데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내가 왕년에 이랬거든 하면서 리더쉽이 생길 것 같습니다. 잘 하는 것으로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역할을. 힘든 아이들이 왔는데 목장에 들어가면 살아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것이 갈멜산 전투에서 이렇게 승리하는 비결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갈멜산의 전투는 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850대의 1의 대결입니다.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바알과의 대결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상급이 되면 승리할 줄 믿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말씀 후 찬양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환란 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환란 중에 우리의 힘과 도움이시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 알찌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사랑합니다 내 아버지 찬양합니다 내 온 맘 다하여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제목
나를 위해 많이 기도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자가 되지 않게 기도합시다. 내가 괴로운 것은 우상을 따르는 내 죄악 때문임인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자녀를 말씀으로 키우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 머뭇거리지 않게 해달라고. 목장 참석과 양육의 부르심에 머뭇거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내 인생 최대 복이 목적이 되고 수단이 되지 않도록. 오늘 설교 내에 등장한 이 집안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모든 식구들이 구원이 되도록. 참으로 갈멜산 대결에서 구원이 되도록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기
하나님 아버지, 저 역시 850대1의 대결에서 실수 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과 감정의 낭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늘 하나님 편으로 결정하는 것이참 시간이 걸립니다. 탁탁 결정했으면 좋은데 제 욕심 부분이 있으면 가지를 쳐주시고 그런 시간의 낭비를 줄여주시길 기도합니다. 갈멜산의 대결을 하기 위해서 당연히 850대 1인데 괴롭히는 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그 소리를 참 듣기가 싫습니다. 당연히 850가지의 우상을 물리쳐야 하는데 괴롭히는 자라는 소리를 제가 천국 가는 날까지 들어야 할 터인데 잘 들을 수 잇도록 주님 제가 그런 소리를 잘 들어내도록 힘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이 850명이 모인 곳이 맘몬 신인데 이 모든 것들을 예수그리스도의 렌즈로 예수그리스도의 시선으로 보고 넘어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러도 도와줄 수 없는 바알과의 대결에서 기죽지 말고 이 갈멜 대결에서 집집마다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집집마다 자녀의 전쟁이 있고 부부간의 전쟁이 있고 나가서는 사업의 전쟁이 있나이다. 주님 하나님만 붙들고 바알을 따르지 아니하여 오늘 주님을 따르라는 말에 머뭇거리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을 따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주여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목장도 참석하며 양육도 참석하며. 오늘 설교에 등장한 집사님의 가정에 아이와 모든 식구들의 구원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갈멜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5. 26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보고서(24)
일시 2019. 5. 26. 4-6시
참석 한수진, 우지현, 이지민, 조수빈, 이은영
나눔 한 주 근황과 말씀을 가지고 나눔을 했습니다.
하나님 믿는 것이 수단인가 목적인가,
하나님이 주셨으면 하는 복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았습니다.
- 건강, 로또당첨(돈), 결혼, 똑똑한 머리, 행복(돈, 인정)
- 고난이 축복이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행복할 순 없나.
우리가 건강의 복, 물질의 복, 행복한 삶의 복을 바라는 것이 있어 현재 진로의 문제, 가족에게 온 질병의 사건에서 원망과 미운 마음이 들고 고통을 느끼고 힘들기만 한 것 같습니다. 목장과 공동체를 의지하고 양육 잘 받고, 큐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만이 상급되어 이 고난을 축복으로 잘 해석하고 통과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금주 기도제목
지현 1. 하나님께 삐진 마음이 있었는데(취업) 투정 그만하고 주어진 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토요일 필기시험 잘 보고 올 수 있도록.
2. 이번 주 토요일 시험이라 같이 동행 못하는데 어머니 검사 잘 받으시고 오실 수 있도록
지민 1. 이번 주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
2. 동생한테 말 예쁘게 할 수 있도록
3. 진로에 대해 한 번 더 잘 생각하는 한 주 보낼 수 있도록
은영 1. 오는 주 금요일 아버지 검사 동행 잘 할 수 있도록
2. 하루를 잘 살 수 있도록
3. VIP 가족, 친구 전도축제에 초청할 수 있도록
수빈 1. 일자리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도록
수진 1. 스페인 여행(5/30~6/6)가서 그리스도인처럼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예진이가 자전거 사고로 많이 다쳐 오지 못했는데 상처 소독 잘 하고 나아서 다음주에는 볼 수 있도록.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