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9 주일예배
'소명' (이사야6:1-8) - 김양재 목사님
<교회오빠>는 자신의 대장암 4기 진단과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아내의 혈액암 4기 진단까지 연이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마주하게 된 이관희 집사와 아내 오은주 집사의 투병기 다룬 영화이다. 2018년 9월 16일 새벽 이관희 집사님이 주님 품으로 갔고, 바로 직전 목사님이 시애틀형제교회에서 이관희 집사에게 마지막 기도를 하는 가운데, 의식이 없는데도 아멘을 분명히 세 번 했다고 한다. 다음날 타코마교회 집회 때 집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교회오빠> 간증을 틀었다. 이관희 집사님은 마지막에도 사명 감당하고 떠났다.
이사야는 39장까지 구약, 40장부터 신약 예표한다. 지금 안 망했는데 150년 후 망할 얘기를 하라는 기가 막힌 사명 가진 부르심의 선지자이다. 그리고 40장부터는 망하지도, 회복하지도 않았는데 회복한다고 말하라고 하신다. 장차 받을 환난 말해야 하는 선지자적 사명이다. 어려울 때 어려운 사명 가진 선지자 이사야가 소명 받는 장면이 6장이다. calling, vocation의 부르심은 소명을 번역한 말이고 직업, 천직의 의미도 있다. 먼저 구원받고 거듭난 우리가 소명 받는 것은 이 세상 죽어가는 영혼들 구원하기 위함이다. 어떻게 소명 받을까? 악한 아하스 왕에게 예언하기 전에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더욱 자신의 죄성 보게 하시고, 소명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소명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소명을 주시는 시대 상황, 방법, 조건, 응답, 목적이 있다.
소명은,
1. 위기의 때가 기회입니다.
(1절) 웃시야 왕이 죽었다. 죽던 해에 이사야가 본즉. 웃시야 왕이 죽어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왜라는 질문을 넣고 큐티하라. 시대상황 생각해보면 도움 된다. 웃시야 왕은 15살에 왕 되어 52년간 유다 통치하여 번영 주도한 유례없는 강력한 왕. 육적으로 부강해지면 영적 교만 생긴다.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사역을 탐하면서 자신이 예배 주관하다가 문둥병 걸려 별궁에 갇혀 죽은 왕이다. 인생에 예외가 없다. 그래도 늘 믿고 싶다. 그래서 슬프다.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섬긴 선지자. 히스기야처럼 자신에게 조언 구하는 왕, 듣지 않는 아하스 왕, 자신을 톱으로 잘라 순교시킨 므낫세 왕과 사역했다. 좋은 왕 밑에서 사역하면 좋겠지만 어느 왕 앞에서든 똑같이 사역해야 한다. 웃시야 때 나라가 부강해도 영적으로 암흑기였다. 5장까지 죄에 대해 줄창 말하고 있다. 열왕기상 왕들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아무도 안 돌아온다. 난국에 이사야가 적극적 소명 받게 된다. 이때가 웃시야가 죽던 해이다. 목사님 남편은 유복했고 성공했지만 문둥병환자처럼 마지막 때에 오직 술에 갇혀서 살았다. 효자, 열부, 자부였는데 낙태수술하며 죄의식에 잡혀 스스로 별궁에 갇혔다. 목사님은 미약하게나마 사명을 받았는데 웃시야 같은 남편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적용) 웃시야 입장에서 적용해보라.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갇혀 있나? 돈과 권세가 있어 홀로 살 수 있다고 예배를 방해하며 무엇을 하는가? 술 먹는가, 이성 만나나, 게임 하나?
이사야가 무엇을 보았나.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심을 보았다. 웃시야 왕의 보좌가 너무 높지만, 그보다 북이스라엘 침략해서 망하게 한 앗수르 왕의 보좌는 더 높다. 그런데 그 모든 보좌보다 높은 하나님의 보좌 본 것이다. 이사야는 1장에서 이미 소명 받았다. 근데 머리로만 받았다. 머리로만 알았던 사명 6장에 와서야 보게 하신 것이다. 높이 들린 보좌를 어디서 보았는가. 국가적, 개인적 위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엎드린 성전에서 하나님을 본 것이다. 성전이 중요하다. 아무나 영광과 임재를 체험하는 것 아니다. 말씀과 씨름하고 오래 인내하며 기도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나타난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는 소명에서 가장 중요하다. 5장까지 보면 유다가 얼마나 죄악에 찌들었는지 보여주며 그때까지 이사야를 훈련시키시고 때가 되니 웃시야를 데려가신다. 왜 문둥병 걸린 웃시야를 살려 두시는가. 하나님이 시간낭비하시는 것 같은데, 정말 하나님은 때로 훈련시키신다. 우리에게 역할을 주시고 질서를 주셨다. 인간이 보기에는 위기이나 소명을 받으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아무리 목사님이 구원을 외쳐도 남편은 죽을 때까지 겉으로 근사하게 포장해줄 사람이기에, 웃시야가 교만하고 그 앞에서 비굴하게 살지언정 내가 죽지 남편이 죽는 것은 생각 안했다. 죽어도 내가 죽는 거지, 과부될 생각은 안 했다. 남편이 없으면 말로 표현 못하는 반쪽의 아픔이 있다. 아무리 못난 아버지, 남편이라도 그것이 온 가족이 깨어있는 비결이 된다. 인간이 노예근성이 있어서 과부엄마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무서운 아버지가 한마디 하는 게 권세가 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행복 아닌 거룩이다.
남편이 죽던 해에, 목사님도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다. 그 날 에스겔 선지자의 아내 데려간 본문. 대선지자가 똑같은 고난당한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이 임했다. 에스겔 말씀으로 큐티했는데 그 날의 일과 후에 되어질 일들을 보여주셨다. 날마다 큐티하다 보면 높이 들린 보좌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이다. 웃시야가 죽고 사명 받았듯이, 에스겔 아내가 죽고 에스겔이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이 모든 것이 내 이야기로 들리니 고난 중에 말씀으로 부르심 받는 것이다. 그 전에도 큐티했는데, 남편이 갔을 때 에스겔 말씀은 최고의 높이 들린 주님의 보좌를 보게 된 것이다. 영광이 가득 찬 걸 경험했기에 된 것이다. 갑자기 소명 받고 나간 게 아니고, 늘 큐티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83년, 88년, 92년도 큐티노트. 하루도 안 빠지고 했다. 빽빽하게. 2-3mm 볼펜으로. 지금은 눈이 안보여서 못한다. 학위도 아니고 돈 생기는 것도 아닌데 30년 간 큐티를 날마다 했다.
(적용) 여러분이 무서워하면서도 의지하고 기대는 웃시야는 무엇인가? 제사장을 무시하는 웃시야는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인데, 돈과 권력 가진 그를 여전히 추앙하고 있지는 않은가? 겉으로는 믿음이 좋아도 속으로는 돈이 좋아서 추앙하고 있는 부모 형제는 누구인가?
2. 드러나기보다 가리우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2절) 스랍은 하나님 곁에 머물러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 여섯 날개 중 둘로는 얼굴을 가리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취하지 않는 것. 둘로는 발을 가리었다는 것은, 인간의 구조 중 성기가 있는 은밀한 부분을 가렸다는 것. 얼굴과 발로 나의 수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가리우며 자기주장을 포기해야 한다. 모였다 하면 자기 자랑, 헌신 자랑 하는 게 우리다. 주님의 소명 받으려면 이 모든 것을 가리어야 한다. 말씀을 통해 그런 자랑이 부끄럼인 줄 알고 가리는 것이 큐티인 것이다. 네 날개로 가리어도 두 날개로 날 수 있다.
목사님은 과부인데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았겠느냐 하며 아이들에게 생색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용히 여섯 날개 다 있어도 과부이기에 얼굴과 발을 가리우고 주제를 알기에 두 날개로 날개짓 했다. 겸손하려고 한 게 아니라, 과부였기에 저절로 환경이 겸손해졌다. 17세기 영성의 대가인 마담 잔느 귀용은 절세미인이라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에 쾌감을 느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허영을 뽐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서 울었다. 귀족 집에 시집갔는데 시어머니, 남편, 하녀들이 괴롭혀서 괴롭힘이 촉진제가 되어서 화장도 안 하고 거울도 안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천연두에 걸려서 얼굴이 얼거졌는데 시어머니가 치료도 받지 못하게 했다. 천연두에 걸려서 얼굴이 얼거져도 감사했다고 한다. 끝없는 고난 속에서 17세기 영성의 대가가 되었다.
(적용)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드러내기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리우기 중에 무엇이 편한가? 가리어도 가리운 것이 또 드러나기 원하지 않는가? '난 인정받기 원하지 않아' 하는 것이 또 인정받기 원하지 않는가?
여러분의 교제 속에 은근슬쩍 하는 자기자랑, 자기 헌신은 몇 프로나 되는가? 만나면 하는 옷 얘기, 외모 얘기는 몇 프로나 되는가? 사람들을 만나면 쾌감을 느끼나 열등감을 느끼나?
3. 삼위일체의 거룩이 있어야 합니다.
(3절) 거룩하다를 세 번 반복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한 것. 숫자 3은 완전수.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소명을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오직 너에게 필요한 것은 거룩이다' 말씀하신다. 날마다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라고 하는 것이 이 얘기다. 왜 죄 얘기를 맨날 하냐고 하는데, 깨끗해야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단하신 성부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Hidden Will of God)의 뜻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성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그 경륜이 마리아 배 속에 점 하나로 너무도 겸손하게 오셨다. 가장 낮은 곳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고자 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효과적인 Effective Power로 도와주신다. 삼위일체의 시작도 끝도 목적도 거룩이다. 거룩한 믿음 가진 사람들을 세상에서는 재미없다고 하지만, 거룩하면 멋있다. 부족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특히 만군의 여호와라는 단어는 전쟁에 능하심을 강조하는 것. 어떤 누구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 거룩하면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신다. 목사님이 걸레질을 통해 낮아질 때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결혼을 지킬 수 있었고, 내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졌다. 죽지도 이혼하지도 않게 하셔서 지금 이렇게 대단한 하나님의 경륜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때 이렇게 될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거룩만 부르짖는다고 거룩이 아니다. 삼위일체의 사역을 알고 내가 낮아져야 한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써야 참 거룩이다. 너무 거룩하고 경건한 언어만 쓰면 옆에 사람이 피곤하다. 용서는 최고의 복수입니다라는 현수막은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쓴 표어다. 우리 인생은 그렇게 거룩하지 않다. 우리는 100% 죄인이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백의의 민족이라고 하나 사실은 전투적이다. 이기고 이겨야 하기 때문에 이혼율, 자살률이 1위이다. 복수는 나의 힘을 모두 외치고 있다. 자기 힘으로 복수하려는 마음을 멈추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십자가 없이 용서하는 것은 얼마 못 간다. 거룩하라고 거룩만 외친다고 거룩해지는 것 아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애통절통하며 십자가를 길로 놓아야 거룩해진다. 원래는 용서는 최고의 사랑입니다.라고 쓰려고 했다. 그런데 복수라는 감정을 겪지 않으면, 십자가에 달려보지 않아서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에서 사랑으로 바로 가지 못한다. 요셉도 용서로 가기까지 얼마나 많이 걸렸는지 모른다. <밀양>에서는 십자가 용서가 아니었다. 사람을 주께 인도하려면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사람들의 입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거룩하지 못한 단어인 복수를 신자들이 불편해한다고 한다. 도리어 이 문구를 불신자들이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수는 나의 힘 하며 살기 때문이다. <밀양>에서 범죄자가 너무 하늘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전도연은 초신자인데 그걸 모르니까 인간의 용서만 생각해서 서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교회오빠>의 제작진 모두 크리스천이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적용) 여러분의 언어는 주로 하늘의 언어인가, 땅의 언어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이 이해되는가? 몇 프로 이해되는가?
4. 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 봐야 합니다.
(4절) 목장에서 나누는 오픈과 적용이 스랍들이 찬양과 같고, 문지방이 요동하고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 것이다. 우리들교회는 문턱이 낮지만 상처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요동하며 부부간의 싸움이 요란할 때도 있다. 우리는 만나면 와글와글하다. 우리는 밤새 안녕이기 때문에 3일 전도 옛날이다. 다 죽었나 살았나 궁금하다. 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야 한다.
이관희 집사의 목장 나눔. '전 요즘 어떤 생각이 드냐면 한 주 목장에 와서 공동체에서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많이 느끼게 돼요. 아직 목장예배가 많이 남아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나에게 목장예배가 몇 번밖에 없다고 하면 오늘 목장예배가 너무 소중한 거에요. 기가 막힌 것은 일대일이 3개월 검진받기 일주일 전에 끝나더라고요. 이번 주에는 과제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3개월 동안 건강한 상태에서 온전히 일대일 마무리 짓는 것이 삶의 큰 미션이 되었어요.' 이 분이 항암을 12번 하고 28번 하면서 일대일THINK양육 받았다. 이 집사는 양육 받으면서 목자도 하고 싶고, 사명도 여기서 찾고 싶다고 했다. 욥처럼 하나님이 훈련시킬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믿음이 있으신 분이었다.
(적용) 여러분은 목장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양육도 받고 싶지 않은가? 목자도 하고 싶지 않은가?
5. 자기가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절) 1절부터 4절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과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성령이 온 땅에 충만한 그때 첫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다. 그 이유는 입술이 부정하기 때문.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의 고백은 죄 고백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보면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놔야 한다. 이사야는 현실의 자신을 바라보던 관점이 산산조각 나듯 부서지는 경험했을 것이다.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그런 백성들 중에 있었다고 고백했다. 왜 유독 입술이 부정하다고 할까? 선지자는 말씀으로 사역해야 하는데, 입은 말씀 사역에 가장 필요한 도구일 뿐 아니라 가장 죄를 쉽게 지을 수 있는 기관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기 위해 부름 받은 인생을 증거해야 하는데 말로 하다 보니, 말을 잘하다보면 이단에 넘어가는 것이다. 진실하지 않은 말은 화로다가 된다. 항상 나의 죄성을 보고 가지 않으면, 웃시야처럼 하나님 자리에서 자기 입술이 부정한 것을 모르는 것이다. 딱히 욕을 해서 부정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 세상적이라 그를 위해 믿음으로 애통하고 있는데, 그걸 욕하는 걸로 듣고 '그 사람이 어때서, 너만 믿음 좋냐?'하는 것도 입술이 부정한 것이다. 핀트 안 맞는 칭찬, 꾸중 모두 부정한 입술이다. 그냥 칭찬하면 안 된다. 반드시 팩트를 가지고 칭찬해야 한다. 목장에서 하고 싶은 말 다해야지 앙금이 없어진다.
(적용)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다라고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6. 핀 숯으로 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합니다.
(6절) 이사야가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고, 입술이 부정하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고백 들으시고 제단에서 숯 집어서 깨끗하게 지져주셨다. 내가 먼저 고백해야 죄 사함 받는다. 핀 숯으로 갖다 대니까 얼마나 아프겠는가. 이 정도 되야지 말조심이 된다. 소명은 자나 깨나 말조심, 꺼진 말도 다시 보자. 그 정도로 말조심해야 한다. 죄 용서받은 경험 받지 않고는 말조심하기 어렵다. 내가 한 얘기 고백할 때 굉장히 아프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럽다. 그러나 그 과정 거치면 새 살이 돋는다. 말씀의 불로 처방하고 지지고 수술 받는 게 너무 아프다. 핀 숯 대니까 드디어 이사야에게 생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죄 선언을 들어야 한다. 정죄의 마음이 아니라 회개의 마음은 인간 최고의 감정이다. 미움, 슬픔, 아름다움도 아닌 회개가 최고의 감정이다.
(적용) 말조심하라고 입술에 댄, 핀 숯이 있는가? 목장에서 처방받으면 감사하는가, 기분이 나쁜가?
핀 숯이니까 얼마나 아프겠는가. 말씀으로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면 인간은 지옥불에서 올라온 자존적 교만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조금만 다치면 '악!' 하는 것이다. 우리들교회 목자는 믿음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먼저 와서 된 것이다.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서 얘기해야 한다. 목자는 이해타산 없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하는 얘기라고 들으며 이해하라. 들은 말대로 같이 모여서 나눌 때 하나님의 소명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나를 무시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7. 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8절) 이사야가 죄 고백하고 사죄받은 다음에야 소명을 주신다. 순서가 바뀌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마치 혼잣말로 탄식하듯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자마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한다. 이사야의 반응이 달라졌다. 다른 선지자들이 부르심받고 처음에는 주저하고 거절한 것에 비해, 그는 회개의 은총을 경험함으로 선지자 사역에 긍정적 언어를 사용했다.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때, 하나님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해야지, 주의 목소리 듣기도 전에 난 아닙니다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목소리가 안 들려서 못해요 이딴 소리 하지 마라. 주의 목소리 듣고 나서 부르심에 자원함이 사명자가 되는 길이다.
(적용) 소명받기 위해서 웃시야가 죽어야 하고, 높이 들린 주님의 보좌를 봐야 하고, 입술에 핀 숯을 대야하며, 사죄의 은총 경험하고 회개하고, 주의 목소리가 들려야 소명 받는 것이다. 나는 어떤 순서에 있는가?
우리 모두 제대로 성경대로 인내하며 주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부르심이 먼저인가, 자원함이 먼저인가?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인가?
이관희 집사의 또 다른 나눔.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고쳐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짠하고 회복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때 했지만, 예레미야 묵상하면서 한 순간에 무엇이 되기보다는 바벨론 포로생활이 길고도 멀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고쳐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말씀 안에서 영육이 회복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 오면서 자꾸 내 죄를 보라고 하시는데,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회개는 할 수 있었지만, 이번 3개월 동안 통증을 동반한 피를 쏟을 때 내 죄 때문에 찢어지도록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깊은 잠을 자다가 가슴이 터질 것처럼 힘들었는데 지난날의 회환이기도 하지만 참회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이 힘든 시간이 필요했기에 허락하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 너무 힘들었지만 뜻 깊은 시간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재산이나 다른 것으로 치실 수도 있었는데 어찌할 수 없는 생명으로 치시니 하나님 앞에 급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서 하나님이 저의 교만을 다루시는 것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맨 끝에 소식으로 '이관희 집사님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고 지금까지의 항암이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 간절히 기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까지 항암을 12번, 28번 하면서도 일대일을 다 받고 목장에 오는 게 이 세상의 기쁨으로 그것 때문에 투병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모르핀을 안 맞은 것은 맑은 정신으로 성경을 보기 위함이고, 설교를 듣기 위함이라고..
<교회오빠> 꼭 보길 바란다. 삶의 모든 문제에서 해석이 될 것이다. 암 걸린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삶의 고난에 있는 사람..
우리 모두 각자의 환경에서 소명을 찾는 것, 여전하게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소명이다. 이관희 집사는 오늘 하루가 주어진다면 거룩을 이루기 위해 좀 더 온전히 살고 싶다고 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났지만 어마어마하게 소명의 삶이 펼쳐져있는 것을 보게 된다. 소명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내 모든 환경이 소명의 장소, 부르심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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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공통 : 신교제와 신결혼
정지현
1. 직장에서 건강하게 의사표현 잘하고, 착한 상사나 부하가 아니라 자기 역할을 잘하는 상사와 부하가 되기를
2. 가정에서 딸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기를
3. 어지럼증 낫고, 운동과 식습관 관리
박소영
1. 직장 고난 가운데 소명을 받고 나아가도록
2. 작가교육원 수업 잘 듣고 좋은 아이디어 생각나기를
3. 가정에서 딸, 언니의 역할을 잘 하도록
4. 목, 어깨 근육통 한의원 치료 받고 낫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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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희 집사님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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