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8 주일 예배>
일시 2018. 4. 28, 3부 (1:45)
장소 판교채플
찬양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 거룩하신 전능의 주 ┃ Everyday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 시간을 뚫고 ┃ 내 삶은 주의 것
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
말씀 열왕기상 17: 8-24
설교 김양재 목사님
지지난주에 내가 섬기는 하나님(왕상17:1-9)이라는 설교를 들었는데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랑하고자 한다면, 결국 모두에게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100% 죄인이기 때문에 100%로 진실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실하다는 것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규정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기에 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의 평가를 받으려면,
첫 째로, 오직하루하루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진실입니다.(8-11, 14-16)
구속사적으로 이것이 이해가 됩니다. 먼저 엘리야에게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과부에게 또 명령하여 계속 말씀으로 이어져 내려가는 그 이하도 이상도 없는 것입니다.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부터 말씀 얘기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절에도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10절에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
한 과부를 보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릇에 물을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절에도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4절에도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으로 계속 얘기를 합니다.
15절부터서는 과부가 엘리야 말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절에도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왜 이렇게 얘기하냐면, 진실은 말씀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내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임한 사람은 그 말이 엘리야의 말이 되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의 말을 여러분들이 함부로 들으시면 안됩니다. 지지난주 말씀 6절까지 보면,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아합에게로 가라해서 갔고, 또 시냇가에 숨으라고 해서 숨었고 시냇물을 마시라고 해서 시냇가에 머물며 시냇물을 마셨는데 얼마 후 숨으라고 한 시냇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험한 직장에 들어가라고 해서 순종하고 갔는데 그곳에서도 밥줄이 끊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그릿시냇가에 왔는데 말라 버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제가 오랫동안 큐티를 해보니 있어야 되는 일이구나! 하나님이 아시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말씀대로 인도받다보면 지나고 보면 항상 그것이 하나님의 셋팅이었습니다. 최고의 길이었습니다.
최고의 길이 뭔가 하면, 사명의 길이고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가뭄도 같이 당해야 되고 기근도 같이 당해야 합니다. 엘리야나 우리나 그렇게 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고해도 가뭄에도 아합이 회개하지 않으니 그러면 뭘 해야합니까? 회개도 엘리야가 해야 되고 절제의 삶도 엘리야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경고를 해도 왕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것은 아합입니다. 이 세상이 짧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인생이 쉬운데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비교가 돼서 못 삽니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회개하지 않으니깐 그럼 뭘 해야 되죠? 내가 회개를 해야 되고 내가 삶으로 십자가를 보여줘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아무리 말해도 아합 왕은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 무슨 프로젝트를 주는가 하면, 너는 차별하지 말고 가장 무시 받는 사르밧 과부의 인정을 받아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합이 안 들었지만 사르밧 과부에 대한 미션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전했으면 삶으로 살아야 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또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그에게 또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늘 큐티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 만병통치 약인 것입니다.
# 제가 처음 북한행을 제안 받았을 때 열왕기상 13장을 읽었는데, 남유다에 이름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에 대해 경고하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남유다나 북이스라엘 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300여명의 목사님과 사역자, 장로님들 중에 이름 없는 저 한 사람이 간다고 무슨 경고를 하겠습니까? 애초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때 가는 것이 적용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큐티 선교회에 가자고 광고를 했지만,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5-6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무서운데 거기 왜 가요? 했습니다. 그때 갔던 사람들은 제가 무슨 상을 줄까요? 그런데 300여명 가운데 적용한 저를 이름도 없는 저였지만, 말씀을 선포하는 역사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정말 말씀대로 되어지는 인생 아닙니까? 적용을 하면, 말씀대로 인도함 받으면 그런 일들이 꼭 일어납니다.
[적용해보세요] 하루하루 말씀에 순종하는 인도를 받고 있나요? 자기 소견 옳은 대로 행동하나요? 이게 굉장히 우수어 보이지만 이것이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적 자녀 낳는 사명이 진실입니다. (9-16)
내 자녀 일류 학교 보내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 영적 자녀 낳는 사명입니다.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바알 숭배가 한 창인 그때,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를 떠나서 이세벨의 고향바알의 본거지 시돈으로 숨어 들어갈 줄 누가 상상을 했겠습니까? 구원의 일은 고정관념, 정통주의, 율법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바알 숭배지의 본거지로 파송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명령은 신묘(神妙), 막측(莫測)합니다.
# 바알의 숭배지에산다면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너무나 가난한 것처럼 왕족은 부자인데, 주민은 사르밧 과부처럼 가난한 것을 보여줍니다. 우상숭배하는 집 치고 전체가 잘 살지 않습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갈멜산 전투를 잘하려면 지금 까마귀 공격도 받아야 하고 사르밧 과부와도 같이 있어보는 것이 필수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무서운 것이 독방(獨房)입니다. 임현수 목사님께서 독방이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나와 조금 형편이 나은 과부와 그 아들과 어떻게 살았겠어요? 기근이 3년 6개월이라고 했으니 꽤 오래 한 세월 살았을 것 같습니다. (엘리야는 왜 아내가 없나? 사르밧 과부를 좋아했나?) 나중에 보면 그것이 불쌍한 과부의 보호를 받고 거기서 있었던 것들이 도리어 보호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저도 시집에 무서운 남편에게 묶여 있었던 것이 나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 이것이 최고의 길이었다는 것. 남편이 가고 여러 모임을 하고 남편 간증한 것도 저를 최고로 보호한 길이었습니다. 왜 나는 길이 안열리나? 그런 생각만 늘 했는데 주님이 날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면서 지금의 갈멜산 전투에 임하게 하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신 겁니다.
우리는 영적 자녀를 낳기 위해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육적 자녀의 아픔을 통해서 영적 자녀를 낳게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내 자녀의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명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목장 보고서를 보니 내가 낙태 위헌은 반대하지만, 내 자녀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나는 낙태를 시킬 거다.라는 나눔을 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 교회는 이러시면 아니 되옵나이다. 우리는 양육을 다 받았는데, 이럴 때 이상한 일 당할 때 믿게 하고 세례 받게 하고 이런 일이 진실한 일입니다. 그런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힘든 거 맞습니다. 아니 힘들지 않고 어떻게 훈련이 되겠습니까?
#공동체 고백.
2000년 7월 17, 19년 전. 큐티 선교회 창립 예배 때 혼전임신한 아이 낳기로 간증을 했습니다. 19년 전 큐티 선교회는 이미 말씀 묵상의 핵심 가치가 생명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2000명이 모였는데 큐티해서 성공했다라는 이런 간증을 해야 되는데, 그날 지질하게 혼전임신해서 아이를 낳은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낙태 안하고 세례 받게 하고 신앙생활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아이들이 그때 고3아이들이었습니다. 여자애는 교회에 나왔던 아이고 남자애는 데리고 온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우울증 약과 감기약을 먹었다고 해서 입 있는 사람들은 다 낙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큐티를 하는 우리가 들고 일어나서 낳기로 했습니다. 교회를 안 다니는 신랑 부모가 너무나 반대를 해서 거기는 그 두부부가 세련된 부부인데, 이 (여자아이) 과부 엄마가 집 앞에서 진치고 있다가 (만나려면 이런 수고를 해야합니다.) 내가 다 키우겠다, 낳게만 해달라. 사정을 하며 누가복음 말씀으로 좔좔좔 꾀대면서. 허락을 받고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 부랴부랴 결혼식을 하게 하고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별인생이 없습니다. 내가 적용하면 별인생입니다.
그리고 7월 17일에 이분이 간증을 하신 겁니다. 아이가 건강해야만 낳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그럽니다. 장애우나 성폭력으로 낳은 아이는 낙태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폭력으로 낳은 아이도 있고 장애우도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당신은 죽었어야 될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 법이 있을 수 가 있어요? 우리는 한결 같이 배격(排擊)하면서 왔습니다. 과부집사님은 야간여상 출신이었지만, 그게 너무 귀해서 대표 간증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우리들 교회 새가족 전도사로 명성을 드높이고 계신 거 아시죠? 자녀의 아픔을 통해 영적 자녀 낳는 사명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온 가족이 가장 최선의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좀 아프기도 합니다. 딸이 얼마나 속을 썩혔는지 일진 두목이었답니다. 그래서 엄마가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찾아가서 큐티인 양육했습니다. 고등학교 나온 엄마가 서울대학교 출신 선생님들 모아놓고 큐티 모임을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님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니깐 사명으로 나가면 학벌이고 뭐고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 열매가 있으니. 딸이 속을 썩히고 일진 두목이 되어서 담배도 펴주고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마어마한 사명을 이루어서 우리들 교회 새가족 전도사가 되셨습니다. 딸이 얼마나 수고를 했습니까? 아멘!!!
이 아이가 속을 썩히다가 고3지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딸이 아픈 아이 키우느라 밖에 눈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속을 하나도 안 썩힙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간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아이를 매달려 낳게 했는데. 우울증이 있던 딸은 엄마의 설득으로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낳고 키우다보니 인생이 힘든 것입니다. 우울증이 또 왔습니다. 2-3년 만에 둘째를 또 가졌습니다. 그러니깐 발작적으로 가서 혼자 가서 지워버렸습니다. 이런 얘기를 감추고 싶지 않습니다. 날마다 적용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을 법으로 막아도 아이가 가는데 우리나라 의사들이 해줬습니다. 우리 전도사님이 의사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그리고 전도하고 오셨습니다.
그런 이 낙태법을 허용까지 하면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낙태 안하는 적용을 하는 것이 진실인 것입니다. 불신결혼 안하는 것이 진실인 겁니다. 사람으로서 못 하니깐. 교회 나오는데 전부 인간적인 생각만 하면 어쩝니까? 저는 얼마나 힘든지 다 압니다. 주님이 왜 모르시겠습니까? 이렇게 한 사람 한사람 보듬고 낳겠다고 불신결혼 막고 줄 창 이혼 막으면서 사람이 많아도 한 사람 한 사람 바보아냐 이랬는데도 우리들 교회는 20년이 지나도 너무나 건강한 교회가 되고. 처음부터 건강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밝고 기쁘고 편안하게 이혼도 낙태도 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 아시죠? 그렇게 하다간 성도들 다 떠난다고 했습니다. 낙태하지 말라, 이혼 하지 말라 그렇게 하다간 교회 올 사람 한 명도 없다고 했는데 여러분들은 왜 앉아 계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람은 진실에 반응을 합니다. 오늘 진실에 반응을 하는 겁니다. 자꾸 딴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목표는 환경의 달라짐입니까? 영적 자녀 낳는 사명입니까?
10-11절에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사르밧에게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와서 나뭇가지를 줍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를 불러서 물 좀 가져와 나를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우선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고 하셔서 갔더니 뗄감을 얻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줍는 과부는 얼마나 가난한지 알죠? 여자가 뗄감을. 그 여인에게 먼저 물을 달라하고 좀 더 무리하게 떡까지 달라고 했습니다. 거기가 이세벨의 출생지이자 바알 숭배의 본거지인 시돈에서 이 시돈의 여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이 여자가 바알과 이세벨에게 고발하면 포상금 타고 자기는 잡혀가는 겁니다. 그러니깐 그녀에 대한 분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을 의심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떨 땐 침묵해야 하고 말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전해야 합니다.
12절에 떡을 가져오라고 하니,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먹고 죽을래도 이거 밖에 없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과부가 엘리야에게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그런 숨겨줄 가능성이 전혀 없고 죽기 직전인 과부가 엘리야를 돕는다면, 구경하던 까마귀가 돕는 것보다 더 기적인 것입니다.그녀가 당신의 하나님이 사심으로 하는 것은 북이스라엘 보다는 도리어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보다는 씨가 좀 보였습니다.
13절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사르밧 과부의 절박한 대답에 엘리야가 두려워 하지말라고 합니다. 얼마나 두렵습니까? 와 닿습니까? 불신결혼, 이혼하지 말라고 하면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라고 합니다. 사르밧 과부가 자기 먹을 것도 없는데 남을 위해 떡을 만들라고 하면 말이 됩니까? 그런데 두려워 말래요. 저도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불신결혼 안 시키는 것도 두려워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낙태 시키는 것도.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도 두려워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두렵습니다.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두려움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내일 일 모르는데 일어날 일 모두 끌어 안고 두려워 할 일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해결하실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두려움의 내용이 차원적으로 바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두려워하는데 두려움의 내용이 바뀌어졌습니다. 주님은 모두를 알고 있는데 누구를 속이시겠습니까? 거룩하지 못한 나를 보고 하늘에서 우시는 주님을 점점 생각해보면 두려운 것입니다. 거룩한 주님 때문에 두려우면 일상의 두려움에서 많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이 사건에서 날마다 두렵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적용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드리고 말씀묵상하고 공동체에서 듣는 것들이 주님을 알게 하는 것들의 비결이 됩니다.
[적용은] 여러분은 사건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이 두렵습니까?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아들 때문에 무섭고 남편 때문에 무섭고. 그것이 무섭습니까? 하나님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14절.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신앙으로 음식을 대접할거냐 안할거냐 대답을 촉구합니다. 그 결단은 사르밧 과부가 시돈에 살았으니깐 지금까지 바알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으로 엘리야에게 떡을 대접한다면 그것은 바알의 백성 됨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5-16절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말씀대로 행했더니 기근이 해결되었습니다. 먹고 죽겠다는 마지막 식량을 자기를 위해서 떡을 만들어 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수 있는 이 제안에 사르밧 과부는 여호와께서 그 집안에 식량이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엘리야의 말을 믿고 순종을 합니다. 그 과부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듣고 식구들이 여기저기 모였습니다. 다 먹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온 인류가 구원을 얻은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으로 그 친척들까지 모진 기근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원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니 순종해서 모두 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것이 마음대로 안 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귓구멍이 막혔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됩니다. 안 들리니 순종을 못합니다. 바알 숭배는 하나님 자리에 인간이 있기에 이것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100%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것을 위해 바알을 숭배하는 자신교를 믿는 것입니다. 자신교를 믿는 바알숭배의 본거지에서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자(使者)에게 바치는 즉,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같은 믿음의 여인을 적진(敵陣) 한 가운데서 만난 것입니다. 제가 믿음의 여정을 걸어오면서 본 것은 과부 한 사람이 주님께 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닌 이 과부가 하나님께 전부를 드렸습니다. 엘리야가 바로 이 한 사람을 찾아 낸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진실의 주인공이니깐, 우리도 눈을 뜨고 크게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실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여러분이 진실한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는 사람을 보면 딱! 압니다. 또 누구하고 놀고 싶은가보면 딱! 압니다. 여러분이 진실한가. 사기꾼인가. 세상을 좋아하면 사기꾼입니다. 가짜이니깐.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리라처럼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바뀌면 통의 가루와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범사에 강건해진 것을 수없이 봅니다. 큐티 열심히 하고 적용하니깐, 주님의 성령이 임해서 다들 환해지니깐 사회구원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으면 이러겠습니까? 성령이 임하니깐 활짝활짝 피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지금도 졸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책임을 못 집니다.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얼굴이 환하니깐, 목장에서도 다들 기분 좋아하고 승진이 잘 되고.
엘리야처럼 수준을 높게 보셔서 그렇지 않으실지라도 감사하며 점점 우리들 교회가 진실함의 역사를 쓰고 있다 생각합니다. 다들 들어오시면 전염이 되어 진실해집니다. 지금 내 형편을 탓하면서 나는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말씀을 거절하면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엘리야의 말을 듣는 것이 진실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하지 않으면서 어딜 가서 축복을 받으려 합니까? 이것이 좀처럼 분별이 안 되는데, 성령을 택자를 인쳐 가시기에 분별하게 하시는 것이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십자가 지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여호와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을 받은 사건과 히엘이 불순종하여 여리고를 건축하여 저주를 받는 사건을 보면서 아무리 여리고성을 건축했어도 죽습니다. 잠시 뒤에 일을 내다봐야 하는데 돈이 많아서 어마어마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를 건축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비극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 순종에 달려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말씀에 대한 순종을 진실이라고 생각합니까? 옳고 그름에서 옳은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 번째는, 죄가 생각나는 것이 진실함입니다. (17-28)
17-24절까지는 17년 전, 목사 되기 전 북한에 갔을 때 고려 호텔에서의 큐티 본문입니다.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지금까지 육적인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아들이 갑자기 숨이 끊어졌습니다. 말씀 인도 따라 사는데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꾸 생긴다면, 그 인생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생입니다. 300명의 크리스천들이 직항로를 이용해서 예배를 드린 것도 엘리야가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린 것과 같은 기적입니다. 분단 이래 직항로로 크리스천 300명이 간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적용하며 갔는데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연속이었습니다. 가보니깐 참으로 내 민족 북한의 병이 위중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북한이 숨이 끊어질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300명을 감시하기 위해서 1000명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일이 엘리야와 과부에게 꼭 필요한 사건이기에 엘리야와 과부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보기 원합니다.
18절에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그녀가 비록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로 인정함으로 물질적 축복은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능의 하나님만 알고 있고 언약의 하나님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준을 높게 하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엘리야보고 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왔기 때문에 아들이 죽게 생겼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머무는 곳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어서 재앙이 내렸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하나님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재앙이 내린 것을 보니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많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수준 높게 보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죄를 생각나게 한다는 말은 이 여인이 인과응보적인 죄책감에 사로잡혀 한 얘기입니다. 가루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할 땐 죄 얘기가 전혀 없더니 아들이 죽으니깐 내 죄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가면 말씀이 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녀에게 말씀 양육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가장 슬픔 속에서 생각하기도 싫지만 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박영희 집사가 아들이 죽었는데 죄를 얘기했습니다. 그 죄가 내 아들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 믿으면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물질의 축복을 보여주시지만 그 다음에는 수준 높은 사람에게는 자기 죄를 보여주십니다. 자기 죄를 보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더 어렵고 위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르밧 과부를 오고 가는 세대에 유명하게 위대하게 해주시려고. 대부분 아들이 안 유명해져도 좋다, 아들은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유명하게 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보게 하기 위해선 그만한 고통이 와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은 한계 상황의 고통이 오지 않으면, 자기 죄를 못 보니깐.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한계 상황이 오면 아주 남의 죄만 보니깐 지옥을 사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한계 상황의 고난은 자녀의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 힘든 사건을 통해 우리의 죄를, 숨은 부끄러움의 죄를 봐야 할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사건에서 내 죄가 생각납니까? 남의 죄가 생각납니까?
19절에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아합 앞에서 호령했던 대선지자 엘리야가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쩔쩔 맵니다. 아이를 안고 자기 침상에 누였습니다. 위중한 아픔을 내 일로 내 아픔으로 여기고 북한의 아픔을 내 일로 여기고 감싸 안는 것이 엘리야와 내 역할입니다. 북한에 가니 실제로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말이 통하지 않는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지만 북한에 가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했습니다. 불신 결혼하여 영과 육이 다른 사람이 만나면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비극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앞에 세례 간증하신 분도 불교 믿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딱 결혼식하고 나니 예배도 못 드리게 하고 그것을 말이라고 하냐고 신랑에게서 모태신앙인 내가 아 ~ 이런거구나.를 ,기가 막혔는데. 그리스도와 사단이 공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것을 북한 땅에서 느꼈습니다. 고통당하지 못한 사람은 그런 북한의 상황에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무조건 북한을 수용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한 것에 대해는 단호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일이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은 내 품에 취해서 죽은 시체를 안 듯이 안아야 합니다. 고정관념, 옳고 그림 다 내려놓고 끌어 아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들 교회는 북한을 돕습니다. 과부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시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죽었습니다. 믿지도 않는데 믿음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그것은 시체입니다. 북한의 상황에서 누가 잘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비생산적인 죽음의 이야기는 다 내려놔야 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는 빨리 인정하고 내려 놔야 합니다. 그러나 과부가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엘리야가 취해서 안았습니다. 내가 선하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끌어안고 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북한도 자신의 죽음과 같은 현실을 죽어도 내려놓지 못합니다. 새장에서 키우는 새들은 문을 열어놓아도 날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거기에서 한국에서도 기복주의로 신앙생활 하다가 자기 교회가 이상(이단)해도 나오질 못합니다. 외교도 필요 없고 상식도 법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북한에 손 대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20절.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엘리야도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께 따지는 겁니다. 북한에 간 우리들도 우리를 속였네, 관광도 못 가네. 우리들 간에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주관하신 사무총장님이 우리 아버지는 공산군에 의해서 고문당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내가 북한 일을 하겠다고 왔는데 내가 하나님 뜻이 아니면 이 일을 하겠는가. 그렇게 300명을 모아서 왔는데 감금에 예배까지 막힌 상황이 되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인도함 받는 사람은 재앙을 내리려고 이 사건을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100% 옳으시기에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온 곳이라면, 이 사건이 죽음의 사건이 되면 안 되니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이르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사람인 내가 우거하는 집에 재앙을 내리시면 안 된다고 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고 기도를 하세요.
21절.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면 기도 뿐 만아니라 구체적인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자기 처소에서 자기 침상에 누일뿐 아니라 차가운 시체, 보기도 힘든 시체를 나의 온기로 덮어주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세 번이나 그 차가운 시체에 몸을 펴서 엎드렸다고 합니다. 남을 살리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 무서운 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30대인데 큐티하면서 모두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실 때 와달라고 했는데 그 다움부터 전공이 영안실과 중환자실이었습니다. 다들 거길 무서워서 못간다고 했습니다. 우리 남편 옆에도 있어봤는데 그건 제 힘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항상 사람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영안실은 안 무서와, 공동묘지도 안 무서와. 공동묘지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안 무서워합니다. 사람한테는 있는 대로 종노릇도 합니다. 엘리야가 시체를 펴고 엎드렸습니다. 구원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북한 가기 전에 교육을 받을 때, 북한 사람들에게 돈을 함부로 주지 마라, 자존심 상한다. 대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라. 그랬는데 그 후에 묘향산을 가게 되었는데 너무너무 주고 싶은 사람 어려운 사람, 주지 말라고 해서 안주고 왔는데 지금까지도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손 잡아주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줬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구체적인 수고를 하면서 무조건 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옳으시기에 내가 해서 일을 악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구체적인 수고를 해야 될 줄 믿습니다.
22절에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북한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을 해주신다는 겁니다. 평양에 가서 우리 기도 모임을 했습니다. 관광 못하는 거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남아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양 한복판 고려호텔에서 6시간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만 해도 우리 예배가 다 살아났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 여행, 잡혀 갈 수도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봉수교회, 칠골교회를 가보니깐 예배드릴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평양 고려호텔에서 기도, 찬양을 순교하는 마음으로 눈물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잡혀가는 게 한 순간이구나, 너무 절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엘리야가 23절에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북한이 너무 힘든 곳이니 북한만 다녀오면 살아날 것 같아서 모두가 안 간다는데 믿음도 없는 의사 남편을 자기는 안가고 억지로 보낸 부인이 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남편이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말씀이 안 들렸는데 우리가 억류되었으니 같이 큐티 나눔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분이 회개를 하셨습니다. 자기 영이 죽은 아이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 6시간 기도하고 긴장에 쌓여있으니 자기도 내가 여기서 잡힐 수도 있겠다. 싶어서 주여를 불렀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가 살아난 남편을 아내에게 공항에서 돌려주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지금 목자이십니다.
24절에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엘리야는 드디어 사르밧 과부에게 인정을 받아냈습니다. 그냥 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제야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믿음은 왜가 없기 때문에 그 시간 그 장소에 우리를 억류시키신 하나님도 너무 옳으시기 때문에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 있든지 주님은 이제야가 아니라 항상, 무조건 옳으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북한 현수막에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남경 물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 성경같죠? 그래가지고 말 그대로 당에서 지시만 내리면 우리는 반동이 되어 우리는 어떻게 처리되었을지 모릅니다. 한 번 갔다오니 이러고 저러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북한의 상황은 어떻게 헤쳐 나올 수 없는 지경입니다. 엘리야가 가도 듣지 않을 상황입니다. 집집마다 이런 아합이 있고 북한이 있습니다. 법이 없습니다. 예의도 교양도 없습니다. 자기가 법인 사람이 너무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적용해보세요] 여러분 예의가 있어요? 자기가 법입니까? 여러분의 아합과 북한은 누구입니까? 매사에 큐티 말씀으로 내 인생이 우리들 교회가 걸어가서 너무 감사합니다. 매일 큐티한 것 때문에 북한의 심장부 고려 호텔에서 선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제 말씀이 아니라 오늘 말씀이 나에게 능력이 되는 줄 알고 아침마다 묵상하기 바랍니다.
지지난주에 보여드렸던 17년 전, 제가 목사 되기 전 평양 영상은 북한에 대해서 초점을 가지고 보여드렸는데 오늘은 거기에 조금 더 보태서 오늘은 큐티에 맞춰 보여드리겠습니다. 큐티를 생각하며. 큐티한 그대로 전했습니다.
※영상
2002년 6월, 6.15 공동선언 2주년을 기념하여 남북한의 교회가 연합 예배를 드리기로 하여 남한의 교계인사 300명 가량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북한 방문 첫날부터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든 일정이 지연되고, 북한 방문단 일행은 숙소인 고려 호텔에 발길이 묶인 채 북한 교회와 연합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사실상 억류되다시피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300여명의 북한 방문단은 북측의 감시 속에 호텔 식당에서 전에도 후에도 없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평양고려호텔]
큐티본문 : 열왕기상 17장 17~24절
열왕기상 17장 18절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곳에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충만한 목사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지금 이 여인의 투정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이 왔기 때문에 나까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사무총장님이 수십 번을 이곳에 다녀왔었고,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데, 이번에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와서 이런 일이 왔습니다. 아십니까? 감당할 만한 고난을 주신다고 만약에 믿지 않는 사람이 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얼마나 내분이 일어나겠습니까? 이것만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각자가 엘리야가 되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특별히 내 죄를 생각나게 하려고 내게 오셨냐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계속 기도할 때 정말 하나님이 제 죄를 생각나게 하셨어요. 숨은 부끄러움의 일들...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었다고 했는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었다고 했는데, 여로보암은 우상을 섬기는 자이지만, 르호보암은 예수님의 계보에 속한 사람입니다. 둘 다 연약하고, 남유다는 예수님의 계보에 속할지라도 너무 연약해서 여로보암을 품을 만한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 글너 분쟁 상태가 300여년이나 계속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기 와서 관광을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평양 관광은 이 고려 호텔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멘) 그래서 이 곳에 남아 있는다고 할지라도,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지는 오늘이 되길 원합니다.
(19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모든 죽음의 일을 내려놓길 원합니다. 아무런 해결책이 안 보이는 가운데서 엘리야가 그 아들을 달라고 한 것처럼 이것이 내 문제로 다가오길 원합니다. 모든 일을 내 아픔으로 여기길 원합니다.
그래서 20절에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엘리야도 기가 막힐 것 같습니다. 왜 내가 우거하는 집 가운데 재앙을 내릴 수 있겠어요? 내가 우거하는 집, 내가 우거하는 이 곳. 여기 재앙을 내리시면 안 된다고 오늘 우리가 부르짖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가운데 재앙이 일어날 수 있으니 기도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21절에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죽은 아이를 살리려고, 우리가 이렇게 몸을 세 번이나 엎드리고, 구체적인 수고가 따라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에게 생명의 영이 돌아오길, 죽은 뒤에 생명의 영이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22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이 시험의 위기에서 살아나는 역사로 관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예배가 살아나고 영적 예배가 회복될 줄 믿습니다.
23절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아멘!
큐티 이렇게 하시길. 시켰는데 했습니다. 시키시면 이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못해못해 하지말고. 중요한 것은 관광이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남아 있는 것을 감사하다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 교회를 이렇게 축복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명을 내놓았잖아요? 북한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 우리 죄만 보고. 그게 굉장히 지혜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안 잡혀간 게 아닌가. 제가 그 후로도 세 번 더 들어갔습니다. 저보고 목사님 또 들어가셔야 되는데 왜 그러세요? 걱정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말씀 맺을게요. 오직 하루하루 말씀 순종만이 진실입니다. 영적 자녀 낳는 사명이 진실입니다. 죄가 생각나야 진실입니다. 자기 죄를 못 보는 사람은 진실하고 거리가 멉니다. 얘기가 안 통하는 겁니다. 왜 불신결혼 하면 안 되는지 아시겠죠? 결혼하기 전까지가 마지막 마지노선입니다. 결혼하고 나면 안 돌아옵니다. 너무너무 평생에 마음씨 좋은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돌아오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것만이 진실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말씀 후 찬양.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기도 들어주소서
하나님 주의길로 인도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주의 길로 인도하소서
기도제목
여러분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지 말고 정말 말씀에 순종하는 인도를 받고 그런 진실하게 삶을 살게 해달라고. 영적 자녀 낳는 사명으로 가는 내 진실 됨이 나에게 임하게 해달라고. 옳고 그름에서 옳음이 진실이 아니고 진실에 대한 순종이 진실한데 날마다 사건에서 내 죄가 생각나지 않고 남의 죄가 생각나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정말 죄가 생각나게 해달라고. 죄가 생각나지 않으면 진실의 진(眞)자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불신결혼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옆에 아합과 북한을 위해 기도하시고 어떤 환경에도 100% 하나님은 옳으시고 믿음에는 왜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의 평가를 받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다같이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일생을 아합과 같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진실한 줄 아노라의 평가를 받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평가받지 못해서 슬펐습니다. 그런데 이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인정을 받은 것처럼 큐티를 하며 우리들 교회를 시작하며 환란 당하고 원통한 사람이 우리들 교회를 와서 인정해주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참으로 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의 평가는 모든 부분에서 받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제가 말씀에 순종하는 부분이 있고 아직도 어떤 부분에서 죄가 안보이는 부분이 있기때문입니다. 주님 그래서 이 힘든 부분은 내 죄가 생각나기 보다는 남의 죄가 생각나니깐 인생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주님 품고가야할 아합과 북한이 내게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 같은 사람에게서 끝까지 인정을 받으면서 갈 때에 내가 사명을 하여서 갈 때, 그 진실이 내게 있을 때 내 자녀도 하나님이 키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100% 옳으심을 인정하고 가는 저희들이될수 있도록 진실로 아버지 하나님, 진실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4. 28 목장예배>
송지훈 목장과 함께 한 목장 보고서(20)
일시 2018. 4. 28. 4-6시
장소 두레브 Cafe
참석 송지훈 목자(85), 한수진 목자(89), 박영빈 부목자(88), 허영글(85), 정도일(90), 이지민(90), 우지현(90), 이길영(91), 원도연(91), 전진혁(92), 조수빈(93), 조예진(93), 이은영(90).
나눔 오늘 저희 목장은 송지훈 목장과 조인을 했습니다. 쪼인 신청 한 지 세 달 만에 이제야? 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와 젠가 게임을 하며 나눔을 하였습니다. 소개 할 때, 저희 목장은 짧게 소개를 했는데 형제님 목장에서 짧지만 고난을 함께 나눠주셔서 귀한 적용으로 이 자리에 계시는구나가 깨달아져 오늘 함께 해주신 게 참 감사했습니다.
A. 작년 교회에 처음 왔다. 기간제 체육교사로 일하였는데 그만두고 지금은 본격적으로 임용고시(11월)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먼저 진로에 축복주시고 그 다음 교사라는 사명의 자리에서 인도하심 있길 기도합니다) 요즘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이 고민이다. (결혼하면 된다^^ 목자언니가고민해결 해주심)
B. 2015년 직장 고난으로 교회에 왔다. 교회 다니면서 이직하지 말라고 그렇게 들었는데 돈을 쫓아 이직을 하였다. 은행☞컨설팅 회사(야근이 많다ㅠㅠ) 현재 된 통 고난 중에.....
(지금 고난 중에 있는 것같다고 하시니 결정을 자기 소견대로하신 것 같아 낙심이 될 거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 계신 자리에서 하루하루 말씀 보고 순종하시다 보면 물질의 복도 채워주시고 돈보다 더 좋은 것 주실 줄 믿습니다. 좋은 고난으로 바꿔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C. 작년 여자친구의 전도로 11월 교회에 왔다. 교회에 잘 나오려고 하고 있다. 기초 양육 받고 세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저도 우리들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붙어가는 과정이 혼자 믿음생활을하기에 너무 힘들었고 힘듭니다. 앞으로도힘들 것 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여자친구, 첫 목자 지훈오빠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하나님 믿음의 지체들을 붙여주실 것이어요. 앞으로 양육훈련 잘 받으시길. 그러다보면 불신딱지가 떼어지고 저절로 섬기는 자리에도 나아가시게 될 줄 믿습니다. 전도해주신 여자친구분과 꼭 신결혼 하시길 기도합니다)
지금 투자 사업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요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아 무게 드는 운동으로 몸소 고통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생명수가 흐르는 말씀의 시냇가에도 몸을 담가 말씀의 은혜도 몸소 경험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D. 어머니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왔다. 어머니와 목장에 5번만 나와 보겠다고 약속하고 계약직으로 들어왔는데 지금은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게임을 좋아해 게임 기획회사에서 일하다가 개인 사업을 추진했는데 망한 사건이 왔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전부터 운영하신 약초 사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후에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서 개인 약초 사업을 할 것이다. (순종부터 적용이 참으로 귀한 것 같습니다)
# 젠가 * QnA
(게임도 하고 나눔도 하고)
- 최근 설렌 일은? 소개팅할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친오빠가 최근 결혼했는데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고.
- 싫어하는 음식은? 보신탕
- 이성과 통화하면서 설렜던 적은? 여자친구로 부터 너는 나를 언제부터 (여자로) 생각했어?
- 확 깨는 이성의 행동은? 생리현상, 아주머니 같은 웃음.
- 이성이 안했으면 하는 행동은? 거짓말
- 노래 한 소절 불러주세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다같이)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소원들어주기 약초 선물(직접 전달, 인증샷 찍어오기로)
- 당신의 매력포인트는 ? (몸소 포즈를 취해가며) 엉덩이.
- 전 남친이 섹시했던 부분? 팔 근육.
- 가장 자신있는 신체 부위? 화장이 잘 되는 예쁜 눈
- 상대방이 싸웠을 때 안 했으면 하는 말? 오빠 내가 화난 이유를 몰라?하면서 이유가 무엇인지 자꾸 물고 늘어질 때(자매 대변인 :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 첫 키스는 언제 어디서? 20살 서울 남부터미널. 괜찮았다.
- 결혼 판타지? 빨리 500억 벌어서 결혼하고 아내와 세계일주 하는 것.
- 이성에게 감동받은 적은? 이성에게 상처 받은 적이 있는데 우리들교회 신승윤 목사님, 형제로부터 남자 입장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직접적으로 상처 준 사람에게 듣지 못했던 말인데 그 일과 전혀 상관 없는 분에게 들으니 감동이었다.
# 마지막 기도
마지막으로 송지훈 목자님께서 오늘 주신 이제야 진실한 줄 아노라 말씀으로 마무리 기도해주시고 목장 모임을 마쳤습니다.
목자님 뿐만 아니라 송지훈&한수진 목장식구들 모두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