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4. 21 부활절 주일예배>
일시 19. 4. 21. 3부예배 (1:45★)
장소 판교채플
찬양 주의 이름 높이며 ┃ 기뻐해 ┃ 내 마음 다해 ┃ 시간을 뚫고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마라나타(Maranatha)
예수께서 살아나셨다
말씀 마가복음 16:1-18
설교 김양재 목사님 Live
<<알파고는 아무리 이겨도 기뻐하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을 보았습니다. 또 10년 간 아이가 없던 집사님이 아이를 주니깐 그때부터 예수가 안 믿어진다고 목자를 내려놨다는 이야기도 줄 창 듣습니다. 10년 넘게 8번 넘게 시험관 수술을 해서 성공을 했는데 그때부터 남편이 교회를 안 나오십니다. 믿음이란, 선물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환경이 좋아야 부활이고 감사가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은 돈과 이김이 아니고 거룩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고 했는데, 다들 거룩의 뜻을 물어봅니다. 거룩은 세상 말로 성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다들 철이 안 들어서 성숙하게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주제가 거룩입니다. 거룩을 알려면 살아나신 예수님을 알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살아나셨는데,
첫째로, 부활의 스타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1)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마태복음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는 말에서는 복수를 써야 하는데 원어에서는 3인칭 단수를 썼습니다.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주인공이라는 뜻이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을 때 다른 마리아는 그냥 따라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부활의 중요한 목격자로 헬라문화를 염두 해두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여자 세 이름을 다 기억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세 여자를 다 기록한 이유는 제자들의 배신과는 달리 끝까지 따르는 사람들이 여자들이었기에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는 단연코 부활의 스타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4가지로 보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보러갔지만 첫 째로,
1)근심하면서 갔습니다.(2-4)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마가복음 15장 46절-47절까지 보면, 부자 사람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하기 위하여 묘시를 내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인봉까지만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모하던 여인들은 그 자리에 남아 예수 둔 곳을 눈여겨보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자신들보다 예수님을 집중하였고 늘 예수님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고는 아침 일찍 찾아갔습니다. 이 여인들은 무덤가에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유를 가져갔습니다.
# 베다니 마리아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의 발에 향유를 발랐던 여인이 누구였죠? 나사로 누이 베다니 마리아였습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늘 예수님 발등 아래에서 말씀을 듣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향유를 들고 온 여자는 누구죠? 일곱 귀신이 들렸던 창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두 여성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베다니 마리아는 요한복음 11장 2절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라고 확실히 나와 있습니다. 향유를 부었던 여자라고. 그런데 다른 마가복음, 마태복음에는 그냥 베다니에 시몬의 집 마리아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저는 나사로 오빠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베다니 마리아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 베다니 마리아는 제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들고 예수님 앞에 나와 향유를 발랐습니다.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의 말에 장례를 치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장사를 미리 치렀습니다. 부활의 말을 믿었기에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표면 그대로 믿은 사람은 베다니 마리아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무덤에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모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한 베다니 마리아는 오지를 않았습니다. 왜 오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베다니 마리아가 행한 일은 이 세상 끝까지 기념하고 전파하라고 주님께서 엄청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 발등 상 밑에서 말씀을 듣는 실력이 최고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사로 오라비를 통해 죽었다 살아난 부활에 대해서 마리아와 마르다를 양육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시공을 초월한 분이시기 때문에 부활의 현장에 꼭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난 나사로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공적인 장소에는 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기에 부활의 현장에 안 오는 모델도 필요합니다. 올림픽 공원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우리 집 옆이라고 하면 가보겠지만 내가 대구에 사는데 바쁜데 굳이 안 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느냐! 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으로 향하면서 누가 이 무덤에 돌을 굴려줄까? 근심하며 갔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듣는 사람의 거부반응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큰 돌도 하나님께서 옮겨 주십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 사람이 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갈 때 까지 염려합니다. 그러고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다. 이런 염려들은 구원에 관한 염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상황에 가면 항상 돌이 이미 굴러져 있는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복음은 제 힘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갈 마음만 있으면 장애 요인들을 미리 다 제거해놓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곳에 갈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염려하면서 가는 사람들이 이 여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제자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제자들은 이 부활의 현장에 아무도 안 갔습니다. 그런 돌 같은 장애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으로 많이 바뀌어 졌기에 복음을 전할 때에는 두려움의 돌을 물리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예수님을 증거 하고자 할 때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고 있는 돌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입니까? 심각하지 않음입니까? 차차 마귀 등 중에 무엇입니까? (두려움, 심각하지 않음, 차차 마귀)
그녀들이 누가 돌을 굴려줄까 했는데 4절에 이미 치워져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막달라 마리아가
2) 시체를 찾습니다. (5-6)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았습니다.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사랑한 그녀들은 근심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시체이신 예수님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니 죽은 예수를 찾으려 했던 겁니다. 여전히 염려하며 슬펐고 사랑했던 예수님이니깐, 시신을 보고 위로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 얘기는 어떤 분은 사별을 했을 때 날마다 아름답게 꽃을 들고 날마다 묘지를 찾아갑니다. 갔다 오면 4시간 걸리는 곳을 날마다 간다면 시간은 예수님이고 시간을 함부로 쓰는 것은 예수님을 천히 여기는 것인데 이 아까운 시간을 무덤에서 모두 허비할 수 있겠습니까? 유교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아름답게 언급합니다.
# 목사님의 적용
저 역시 하루 만에 간 남편의 사건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지만, 구원은 그것보다 더 훨씬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날마다 말씀을 보았지만, 순식간적으로 이 여인들처럼 죽은 예수님을 찾았기 때문에 병원에 있는 하루 동안 남편이 구원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죽음 자체에 대한 인간적인 놀람이 더 앞섰습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성령님의 도움으로 천사가 말씀을 보게 하셨고 해석하는 은혜도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청년 천사가 와서 얘, 왜 죽은 예수 찾니? 주님 살아나셨다. 합니다. 저도 그동안 들어두었던 말씀이 없었더라면 제가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날 에스겔 말씀으로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 정녕 살고 죽지 않으리라는 말에 제가 살았습니다.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죽음을 정복하신 분입니다. 죽은 남편은 찾지 말고 그가 구원 받고 부활했으니 무덤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스겔도 제 말씀이고 마가복음도 제 얘기입니다. 6절 마지막에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그가 누었던 곳을 보래요. 제가 남편의 죽음을 겪고나니깐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는 것이 무엇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모든 관절과 골수와 영을 쪼개기까지 하고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제가 남편의 장례를 집에서 치뤘습니다. 아파트 5층. 시신이 3일동안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지에 묶어 와서 관이 3일 동안 있었다가 떠났습니다. 그러면 그 누웠던 곳을 보라고 하면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스스로 헤아린 모든 죄악들에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대로 남편이 회개하고 영접하고 갔기 때문에 제가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슬프지가 않았겠습니까? 슬프지만 예수 믿고 갔기 때문에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30대 여리여리한 몸으로 안방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잤습니다. 아들, 딸도 각자 방에서 잤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보통 남편이 죽으면 이사 가고 슬퍼서 못 살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면서 삽니다. 저는 그런 감정을 분명히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런 구절에도 말씀의 증인이 되라고 제 남편을 안방에서 가라고 하신 겁니다. 어떻게 단독주택도 아닌데 아파트에서 장례를 치룰 수 있었겠습니까? 시신이 있던 자리에서 전이나 후를 30년 동안 살았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서운 분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떠나면 사람이 죽었다고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빈 무덤이 무슨 뜻입니까? 마호매드든 석가든 이 세상 모든 성인들은 무덤이 있습니다. 빈 무덤이야 말로 세상 종교와 참 생명을 가르는 확실한 증표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살아나셨습니다. 실패하고 무능하신 분이 아니라 말씀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는 분입니다. 주님은 누우실 필요가 없음에도 우리를 위해 누우셨습니다. 그 어두운 무덤에 누우셨다는 것을 보라고 하신 것처럼 저도 남편의 구원을 위해 내 의지를 다 꺾고 누워야 될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누워야 될 일이 있고 보라고 하기 위해서 육시부터 구시까지 암흑 속에 누우셔서 휘장이 찢어지는 간증이 필요합니다.
천사가 보라고 한 첫 사람이 여인들이 되었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장례식에서 슬퍼하고 눈물 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갔다면 슬퍼서 난리칠 일이 아닌 겁니다. 내가 무서워 난리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남편이 간 것을 무섭지 않아했다고 무서운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너무 무서와요. 그러나 제일 좋은 것도 여러분.
[자! 적용] 우리 사건에서 죽은 예수를 찾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를 찾습니까?
# 공동체 고백 1.
나는 빨리 걷고 그것도 모자라 뛰기까지 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으며 남들보다 일을 일찍 마무리했다. 늘 칭찬을 받으며 능력 있어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무시했던 사람은 느리게 걷고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지진과 기근의 사건이 찾아왔다. 파킨슨의 진단이었다. (이분은 너무 성공한 지금도 너무 성공하고 계신 의사 선생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병은 나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빨리 걸을 수 없고 뛰는 것은 너무 힘들고 혼자서 셔츠 단추를 채우는 것도 힘들어졌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니 낮에도 하품이 나온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무시했던 게으름의 모습이다. 어제는 아들의 생일 전 날이라서 축하하기 위해서 외식하러 나가려는데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서 식사를 전혀 하지 못했다. 너무 슬프고 괴로웠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았는데 성령님의 나의 입술을 열어주셨다. 2년 전에 대표기도를 했지만은 나에게도 성도들에게도 은혜로운 기도가 아니었다.
지난 주에 나의 파킨슨 병을 나누면서 나에게도 공동체에게도 (두 주 전에 대표기도를 하셨는데 너무 은혜로웠던 것입니다. 고난이 참.. 축복입니다.) 가족에게도 고난이 축복이라는 것을 선포하게 하셨다. 웅장한 걸음이 아닌 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을 수 있음에 내 스스로 셔츠 단추를 채울 수 있음에 나를 위해 기도하는 가족과 공동체가 있음에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적용하기 큐티한 내용을 최소 주 2회 이상 아들과 딸과 나누겠습니다.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해 중보기도 주 2회 이상하겠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참 짧습니다. 이런 무너짐이 있어야 우리가 진짜 예수그리스도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내 사건에서 시체를 찾지 않고 부활의 주님을 찾는 것인 줄 믿습니다. 인생은 참 짧기 때문입니다. 현재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데 여러분은 교만하시면 안됩니다.
막달라 마리아 세 번째는
3) 사명을 주십니다. (7)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마가복음 16장은 오늘 주일 큐티인 내용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날 말씀으로 하는 게 익숙해져 있어 처음 오신 분들은 잘 들어보세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어떤 환경이라도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이 여인들에게 엄청난 명령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수제자 베드로에게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이 천한 여인을 쓰시는 겁니다.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내가 갈릴리로 가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기 때문에 늘 말씀보고 큐티하고 적용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리는 처음으로 주님을 만났던 장소이고 그리고 실패해서 주님을 버리고 도망 간 장소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솔로몬 시대 건축비로 가불 땅을 주었는데 두로왕 히람도 싫다고 도로 준 가불 땅이 드디어 등장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이제 고향 갈릴리에서 만나주십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베드로가 기가 막혀서 물고기 잡으러 갈래~. 다른 제자들도 나도 나도. 하면서 전부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 비천한 여인만 무덤가에 오고 다 흩어져 버리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그 갈릴리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예수님이 이 가불 땅 갈릴리에 가주심으로 가불땅 갈릴리는 주 안에서 강남땅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가기도 싫을 뿐 만 아니라 생각조차 하신 곳이 갈릴리입니다. 14장 70절을 보면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갈릴리 땅이라고 멸시천대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계집종에게. 베드로는 갈릴리가 싫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이면 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어떤 자리에서 은혜 주셨는가를 기억하면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리였다면 다시 그 가난한 식구가 있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아십니다.네가 가기 싫으니? 내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와~.내 삶의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기만 하면 그 자리는 가장 일류의 자리가 될 줄 믿습니다. 모든 것을 가져도 예수님이 없으면 감사가 없는 알파고가 모든 것을 해도 감사가 없는 자리가 되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적용해보세요] 내 삶의 자리는 천합니까? 일류입니까? 사명의 자리가 되면 일류입니다. 그래도 솔직하게 나눠보세요.
예수님은 마리아를 양육하십니다.
4) 양육 (8-9)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마태복음을 보면, 천사가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3일 만에 살아난다 하지 않았느냐? 는 말에 그 말씀을 기억해 내고 사도들에게 나가 크게 소리쳤다고 했습니다. 무서웠다가 양육의 결과로 기쁨이 결과로 왔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 표현을 안 쓰고 무서워만 한다고 불신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이해가 됩니다. 마가복음 13장에 해달별이 떨어지면 인자가 구름타고 영광 가운데 오신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1년도 아니고 하루 만에 죽고 그 하루만에 구원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죽은 것도 놀랍고 구원이 된 것도 놀랐습니다. 마가가왜이 여인들의 기쁜 감정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하루 만에 이틀 만에 그 구원의 사건이 놀라운 일이기 때문에 미처 돌아올 시간이 없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다 맞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베다니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지만 양육이 안되었고 조건반사적으로 무서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현장에서 온 인류를 양육시키려면 막달라 마리아가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현장에서 베다니 마리아가 할렐루야 하면 밥맛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이런 자리에 안 나타나야 될 것 같습니다.
9절입니다.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저는 제가 예수님이라면, 부활의 주님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보이고 싶은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잘 외쳐줄 사람은 십자가를 경험해야 합니다. 똑똑한 사람과 마음 씨 좋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비천한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데 로마 병정의 노리개 창기로 일곱 귀신이 들렸던 마리아가 주님 때문에 살아났는데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에게 비친 삶의 영향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런 영향을 받은 사람이 사실 마리아 밖에 없겠습니까? 그런데 없더라구요. 아리마대 부자사람도 떠났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막달라 마리아가 새벽에 혼자 있는 겁니다. 다른 여인들은 따라온 것이고. 이 여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에 제자들과 남자들도 안 가는 무덤에 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갔습니다. 주님이 자신에게 모습을 보였지만 가기는 막달라 마리아가 갔습니다. 그러니깐 이렇게 막달라아의 사모함과 주님이 와주신 것이 같이 역사한 것입니다. 그 많고 많은 제자들 다 어디들 갔고 일곱 귀신 든 창기 이 여자만 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저 역시 잘 압니다. 개척 때부터 대 놓고 우리들 교회가 귀신 들린 사람, 눌린 사람, 아픈 사람이 와서 예수님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고 줄 창 부르짖고 왔는데 15년 동안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서 돈 귀신, 음란 귀신, 신경질 귀신, 여자 귀신, 남자 귀신, 공부 귀신 딱 7 귀신만 물러가길 바랍니다. 더도 말고. 그녀는 무서웠지만 천사가 말씀을 기억하라고 양육해주시고. 말씀을 기억하고 나서 그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났습니다. 그러니깐 저는 남편이 세상 떠날 때 무서웠지만 에스겔 말씀이 생각나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큰 기쁨이 왔습니다. 대통령만 와도 기쁜데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신 겁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가 너를 아노라.하신 겁니다. 살아난 사람은 정말 교양 있게 못합니다. 목숨 걸고 막달라 마리아처럼 지키고 앉아 있는 겁니다.
제가 지금도 교양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일 때 교양을 내려놓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북한에서의 그 일이 교양이 있는 일이었습니까? 무덤을 향해 앉은 이도 막달라 마리아, 부활을 처음으로 본 이도 막달라 마리아인 것입니다. 여자들의 증언은 법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에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이 모두 여자들에 의해 목격이 되었습니다. 구라파 전도의 효시도 루디아 아닙니까? 내 사건에서 살아났다면 위안 받는 정도가 아니라 증거를 해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누가 여러분의 살아난 간증을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 같은 자입니까? 돈 많고 권세 많은 자에게 간증을 하고 싶습니까?
지나고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같은 분들이 저를 항상 홍보해줍니다. 큐티하라고. 그 모습 그대로 개척을 했더니 힘든 사람하고 힘든 사람이 말씀이 잘 들리니깐, 생각지 못한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나 이때나 말씀 잘 들리는 사람이 최고로 좋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무엇 때문에 목회를 하겠습니까? 우리들 교회가 부자가 헌금 한 사람이 없습니다. 까마귀 군단이 십시일반해서 개척했습니다. 특별 헌금 한 적도 없습니다. 지나고 보니깐 제가 막달라 마리아를 내 말을 전해줄 최고의 스피커로.
예수님이 살아나셨는데
두 번째로, 믿지 아니하는 제자들이 있습니다.(10-14)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마가는 너무 창피하니깐, 제자들이라 하지 않고 예수와 함께 하던 자들이라 썼습니다. 11절에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도 못했는데 예수님을 보고 온 마리아의 말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죽었다 살아났다 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안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가 창녀입니다. 더욱이나 귀신 들렸기 때문에 더 믿지 못합니다. 제 남편의 구원을 에스겔 18장 말씀으로 전했습니다. 제 옆에 저와 같은 환경의 여인(집사님)들은 다 기뻐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많은 목사님들은 에스겔 말씀을 듣지도 심각하게 듣지도 않았습니다. 평신도인 제가 에스겔을 읊어대는데 정말 집중해서 듣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언니, 우리 엄마, 시누, 올케 다 데려 올테니깐 말씀 전해달라고 우리 집에서 검은 옷 입고 계속 간증을 했습니다. 목사님께 에스겔 간증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3년 지나니깐 가까운 데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제 간증을 인정하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볼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내 얘기 일 수 있지? 엘리야 말씀을 봐도 마가복음 말씀을 봐도 내 얘기고. 에스겔, 요한계시록, 창세기. 어떻게 저만 그러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얘기입니다.
이슬람문화에서 여자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언이 무엇인가하면, 내 장례식에 여자가 오지 않게 해달라가 유언입니다. 법적으로 여자의 말은 효력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카드에 싸인하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보고 이해했던 사람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귀신들리고 창녀였던 여성입니다. 남자들은 예수님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는데도 믿지 못했습니다.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면 아니라는 겁니다. 이상한 얘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2-13절에서 또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주셨습니다.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2절에 동산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자세히 풀어주셔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했습니다.
13절에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부활의 주님을 믿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겁니다.
14절에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믿지 아니함이러라가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하도 말을 안 들으니 음식 먹을 때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은 부활의 몸이라 안 잡수셔도 되는데 음식 먹는 사람들로 낮아지신 겁니다. 그들의 수준으로 낮아지셔서 설명한 것입니다. 내가 음식을 먹는데도 내가 살아난 것을 못 믿겠느냐!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라면 하기 싫은 일이라도 누군가의 수준으로 내려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겁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에는 그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성 여러분들은 남성분들의 수준으로 다 내려가시길 바랍니다. 기꺼이 내려가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들 교회도 그렇고 큐티엠도 그렇고 1000명이 있었을 시절부터 봐도 천 명은 믿음이 있는데 항상 믿음 없는 남자들이 일을 다 하는 겁니다. 남자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남자들이 일을 잘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복음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척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완악은 확실한 것을 거절하는 바위 같은 마음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완악하대요. 이 단어는 주님이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강력한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애정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는데 제자들의 모습은 완악하고 믿음이 없는 겁니다. 정말 사랑하시니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야, 이놈들아, 이 인간들아. 어찌 이리도 마음이 완악하느냐. 너희들이 어찌 이리도 믿음이 없느냐. 교양 있게 얘기한 것이지 이 것을 넘어서 가깝고 사랑하여 이 새X들아. 내 제자들로서 3년을 살아왔는데 어찌 이리도 완악할 수 있느냐한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눈치를 많이 봅니다. 여자로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어머 그랬어요~ 목사님.합니다. 양육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살아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던 것들을 보면서 너무도 이해가 되시죠? 우와~ 내가 안 믿는 것은 당연하다. 제자들도 못 믿었다. 죽은 예수님만 찾으면 낭비입니다. 안 믿어져도 주님께서 양육해주실 때는 기꺼이 와서 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애정도 있고 직분과 본분을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제자 될 마음도 다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무리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안타깝게 여기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꾸짖어주신 겁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되는데
[좀 적용 좀 해주세요] 여러분이 믿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안 믿으세요?
예수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에
세 번째,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15-18)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4절에 믿지도 않는 제자들에게 15절에 엄청 명령을 주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래요. 믿음이 있어서 전파하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하나도 없는데 제자들 보고 막달라 마리아도 아니고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합니다. 참된 예배 구조 속에 있으니 여러분이 양육을 받고 띵크 양육을 하고 받고 목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가는 것이 저절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되어서 우리들 성도들이 목장만 하는 것 같은데 온 세계에 영상이 가고 목장 나눔이 가고 간증이 가고 책이 가고 해서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되니 저절로 믿음이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죠? 나는 맨날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우리들 교회는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복음을 전파하는 것부터 하는 것이 주님의 양육 방법이더라구요.
양육 받고 목장에 들어가고 하는 것들이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의 비결이 될 줄 믿습니다. 내가 믿음 좀 들어가고 갈게. 이런 거 말고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셔야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따라. 그러니 믿어지지 않아도 다 각자 위치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게 되고 구원 받는 사람들도 더하게 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지막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정죄를 받게 되리라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어서 이쪽은 구원과 천국인데 이쪽은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갈라진다고. 아무리 양육을 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있답니다.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아멘 할렐루야! 제가 복음 설교 많이 했지만은 오늘 완전한 기복의 기도를 해드려야겠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에게는 이 복을 다 받으시길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 우리는 아비 마귀에서 난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 복음 전파할 때 막는 아비 마귀 세력들을 능히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음을 약속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새 방언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주님을 말씀대로 믿고 누리고 사니 천국의 언어를 저절로 쓰게 되는 것입니다. 새 방언이 따로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내 탓입니다. 이것이 새 방언입니다. 특히미안합니다.는 기적입니다.
어떤 아버지는 딸이 재수없다고 해서 별거를 했대요. 서로 잘 못했다는 소리를 안했다고 합니다. 미안하다.가 얼마나 무서운 방언인줄 아세요? 무서운 방언입니다. 새 방언입니다. 병이 낫기 위해 새 방언을 고하면 오늘 손을 얹은 즉 낫는다고 했잖아요?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독을 혼자 받아내면 추하게 될 텐데 그런데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데요, 성령의 영생의 부활의 주님이 딱 들어가니 성령의 얼굴이 되어서 다들 얼굴이 빛이 난다는 겁니다. 광채가 난다는 겁니다. 성령의 표정이라 예쁜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한결 같이 우리들 교회가 광채가 납니다. 인정하십니까?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고 내 죄를 먼저 보다 보면, 그 입에는 천국의 언어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집안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천국의 언어를 쓰나요?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지옥의 언어를 내뱉고 있지는 않습니까? 못 살아~ 다 부셔버려, 불 지를 거야 다 귀신들이 하는 얘깁니다. 가만 안둬. 주님이 함께 역사하심으로 내 삶에 표적이 나타난 것은 무엇입니까? 새 방언입니까? 독을 버렸습니까? 미움을 버리셨습니까? 나누어 보시길 바랍니다.
# 공동체 고백 2.
지난 4월 5일 편도가 부어서 혼자 병원에 간다고 전화 통화를 했던 큰 아들이 세 시간 후에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CT 촬영을 위해 약을 투영한 후 의식 불명이 되었고 1시간 후 심정지로 사망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41살 건강해 보였던 아들이었기에 너무나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부검을 의뢰하면서 오일장을 치르게 되었는데요, 이 오일장은 하나님의 세팅이라서 평소에 한 마디로 나눌 수 없었던 가족 간에 많은 나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 어미, 아비, 동생 들 많은 가족들이 있었지만 모양만 그럴듯할 뿐 큰 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건강상태가 어땠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보기 좋은 가족처럼 보였지만 삶을 나누지 못했고 내 생각의 잣대로 판단하고 비난했던 것들. 마치 문제없는 가족같이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예의인양 포장했던 것. 괜찮은 환경에 숨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고 진정한 관심은 눈꼽만치 없었다는 것. 무정했던 것들을 각자 낱낱이 회개하며 눈물로 방성대곡으로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었고 결국 남은 가족들이 화해하며 하나 되는 장례가 되었습니다. 사명으로 왔다가 사명이 끝나면 데리고 가신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아들의 죽음은 무슨 사명일까? 눈물로 내내 울며 묵상하였는데 악하고 질긴 가족이기에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눈물로 회개하고 화해할 수 없었을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위해 제가 사랑했던 큰 아들을 산 제물로 단번에 받으시고 아들은 두 손자를 씨로 남기고 단명의 복을 받으며 사명을 다하고 갔으며 천국에서도 우리 남은 식구들을 양육시키며 우리 때문에 수고하고 눈물도 고통도 없는 본향에 안식하게 된 줄 믿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같이 애통해주신 공동체도 큰 위로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다음날 큐티 말씀인 4/6 마가복음 12장 30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들이 죽었는데 정말 야속한 말씀이 아닌가 싶은데 이제는 네 자식 말고 다른 자식도 똑같이 이타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들으니 우리 가족에게 주신 엄중한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살았을 때 간간히 온 전화들이 엄마 나 정말 힘들어 매일 절규했으나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투정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채색 옷을 입히고 남 다른 것을 먹이고 입히고 돈 들여서 남다른 교육을 시켜서 좋은 상품을 만들고자 저도 돼지 엄마 비슷한 흉내를 낸 적이 있음이 기억되었습니다. 세례는 받았으나 죽음을 준비치 못한 아들을 데려가시면 나보고 어떻게 하냐고. 하나님께 따지며 통곡했는데 장례 내내 하늘 가는 밝은 길 찬양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제가 궁금한 것에 대해 찬송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 영광 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 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실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아들을 구원해주셨다고 확신이 들면서 기쁘게 잘 보내주었습니다. 장례 다음 날은 마가복음 13장 수요예배말씀으로 아들의 사건이 다 정리되고 해석되었습니다. 그날 큰 아들이 단번에 산 제물로 드려진 사건이 이제 이 가족의 구원을 위해 무너진 죽음의 사건에서 그리스도의 징조를 봐야 하기에 있어야 할 사건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않은 며느리를 남기고 간 자녀들이 세상 성공을 위해 이기고 이기는 전쟁을 이제는 하나님의 이기는 전쟁으로 바꿔야 함을 큰 아들의 사명으로 우리 가정의 영적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은 죽음으로 큰 사명을 다하고 구원의 확신으로 응답을 받았지만, 저는 여전히 많이 슬픕니다. 숨 쉬는 것이 고난이지만 말씀 붙들고 잘 견디려 합니다.
어찌 아니 그렇겠습니까? 과연 믿는 자답게 해석을 잘하시면서 우리에게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주에 며느리와 손자가 교회와 등록했습니다. 감사합니다.너무 놀라 떨릴 일인데 저는 하루 만인데 집사님은 세 시간 만에 남편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였는데 이것은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할 일입니다. 이 분은 여성 CEO입니다. 그런데 직원들 예배도 아침에 꼬박꼬박드렸는데 이런 일이 오면 해석이 안 되는데 의연한 모습에 과연 말씀이 왕 노릇한 것을 보게 되어 감사합니다.예수께서 살아나셨습니다. 빈 무덤에서 슬퍼하지 않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고 사명을 찾으시니 그렇게 예배를 사모하시고 구원을 위해 안타깝게 기도하셔도 가족구원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가족 구원을 전파하시는 마을지기로 무슨 독을 받으셔도 해를 당하시지 않는 축복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는데 부활의 스타 막달라 마리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근심하면서 죽은 예수를 찾았지만, 양육을 받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또 주님께서 양육을 해주십니다. 부활의 살아난 간증을 비천한 사람이 듣기 때문에 우리 옆에 갖은 식구들은 너무 믿기 어렵습니다. 오늘 승현 형제의 갑자기 간 일에 우리들이 온 찬양대가 되어서 가는 길을 환송을 하겠습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우리 모두 승현 형제를 생각하며 불러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하늘 가는 밝은 길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 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 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 하여도 영접 하실 터 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기도제목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 때문에 누가 이 돌을 굴려주리오.하면서 복음의 거부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식구들에게 애정만 있지 그들에게서 죽은 예수만 찾기에 가족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슬프기만 하는 나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내가 생각도 하기 싫은 갈릴리는 어디인가. 우리가 천한 인생을 살아야 하겠는가. 일류 인생을 살아야 되겠는가. 이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어지지 않는 우리 식구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셔야 되는데 예수께서 꾸짖으시는 믿음 없음과 완악함이 내게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사랑하고 꾸짖지도 못합니다. 연민만 잔뜩 많고 이제 여기 승현 형제가 세례를 받았고 교회에 목장 한 번 가고 안 왔다는데 우리 집사님은 기도를 하는데 식구들 전도하기가 그렇게 힘듭니다. 시간이 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데려가면 어떡해 하냐고 통곡하셨는데 그래도 세례를 받고 한 번이라도 왔다는 것 때문에 정말 부족하여도 영접하시고 그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제 내 연민에 벗어나 식구들을 생각하면 슬픈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전해야 돼서 내가 그 자리로 내려가게 해달라고. 예수께서 살아나셨는데 살아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게 해달라고. 우리 주님 크게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3년을 양육했어도 아무도 믿지 않은 제자들, 그 모습이 있지만 말씀을 보고 이렇게 오다보니 정말 제가 막달라 마리아 같은 모습, 베다니 마리아 그 말씀으로 죽음의 놀라운 사건에서 구원의 놀라운 사건으로 바뀌었음을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사람은 제 살아난 간증을 듣고 심각해하지 않고 비웃었습니다. 주님 막달라 마리아 인생이 그럴진데 당연하게 여기고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는 참으로 근심하며 죽은 예수를 찾고 날마다 갈릴리를 가기 싫어하는 내 식구들이 안 믿고 여러 가지 사건이 안 되서 슬프기만 하지 내 연민에 가득차서 남편과 아내 가정의 화평이 깨질까 꾸짖지도 못하고 날마다 슬퍼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주여 나를 먼저 꾸짖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시고. 그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꾸짖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옵소서. 내가 완악하기 때문에 제자들의 완악함이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시고 끝까지 애쓰신 예수님처럼 내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도록 그들을 찾아가고 애쓰고 그들의 삶까지 내려가 애정을 보일 수 있도록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4. 21 목장 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19)
일시 19. 4. 21 부활절
장소 4층 연수홀
참석 한수진, 우지현, 조예진, 이은영
나눔 울다가 웃다가 나눔을못 받아 적었다.. 마지막에 목자언니께서 무기력, 두려움, 회복이 안 되는 상황에 있지만감사가 회복되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해주시고 연약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또 삼성역까지 카풀해주셨다. 언니의 권면, 기도, 섬김 매주 정말 감사해요.
금주 기도제목
지현 취업 고민 어떤 회사든지 하나님나를 부르신 목적에 맞게 갈 수 있도록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예진 진로 여러 길 중에 확신 가질 수 있도록
친언니 건강한 출산을 위해
대구에 계신 어머님 주님께서 지켜주시길
대학원 한 번에 붙을 수 있게 성실히 준비하도록
은영 상담 잘 받을수 있도록가족에게서 받은 상처 잘 회복될 수 있도록
수진 한 주 동안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건강검진(화요일) 잘 받고 올 수 있도록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