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섬기는 하나님
(열왕기상 17:1-7)
여로보암의 끝판왕 시대에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악한 아합을 대적하기 위해 가장 큰 선지자 엘리야를 준비시키셨다.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 되기 바란다.
예전이고 지금이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으로 진정한 고백을 하는 사람은
목사건 평신도건 하나님이 쓰신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아합이 섬기는
바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했다. 벌써 북이스라엘이 7대째가 되니
하나님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다. 오늘부터 8장에 걸쳐서 엘리야의 하나님을
볼것인데 실로 모세가 하나님을 율법을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이라면 엘리야는
구약 시대에 모든 선지자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아합시대가 악했다고 볼수있다. 이런 대 선지자가 나와도 이스라엘은 사실
회개하지 않았다. 이 아합의 악한시대에 쓰시는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떻게 힘을 주시고 인도해가시는지 보자.
첫째,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담대하게 해주신다.
(1절) 엘리야는 길르앗에 기거하던 디셉 출신의 사람이다. 이정도 되는 대 선지자
라면 가면이 나와있어야 되는데 아버지 이름은 없고 대신 출신 지역이
나와있다. 길르앗은 어떤 지형이었는가? 요셉 지파의 에브라임 후손 여로보암이
반역을 일으켜서 북이스라엘에서 정권을 잡은 것을 생각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북이스라엘에서는 황금 수저에 속할 것이다. 엘리야는 역대상 7:14절을 보면
에브라임 형인 므나세의 첩의 자손인 길르앗의 후손에 속하기 때문에 읽기만
해도 열등감과 차별속에 살았을 것이다. 사사기에 보면 정통이라고 할수있는
에브라임 사람들에 의해 제일 상처를 많이 받았을 수 있다. 사사기 12:4절을 보면
사사기의 입다는 천히 여김받는 길르앗 사람이면서 기생의 아들로 가족에게
버림까지 받은 더블 트라우마가 있었다. 엘리야의 경우는 길르앗에 살면서도
아예 가문조차 소개되지 않았다. 설명조차 할 군번이 되지않는 군번이던지
부모가 없는 고아이던지 생각이 된다. 그는 또 불같은 성정이라고 한다.
상처로 인해 분노조절이 안되었나보다 싶다. 내놓을 것도 없고 성질까지
좋지 않은 엘리야를 바알과 대적할 자로 아합에게 보내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의 일은 성품이 좋은 사람만을 쓰시는게 아니다.
엘리야가 금송아지 숭배의 북이스라엘에서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는
신앙고백적인 이름을 가진 것은 그가 이렇게 환경이 겸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니 바알 숭배가 국시로 되어있는 그 시대에 북이스라엘에서 남은 자가
되었다. 이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분이라 호칭했는데 문자적으로
내가 그앞에 서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기도의 자세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고 재판할 때 진실과 정의로 여호와나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앞에
선다는 것이고, 또 이 구절처럼 헌신과 충성과 복종의 표시를 나타낼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말은 엘리야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재판장처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선언하는 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께만 복종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만을 경외한다라는 비장한
결단의 의미가 있다. 그러면 담대해진다. 이렇게 형편없는 출신이라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면 담대해진다. 이러한 담대함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기 때문이 이런 담대함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 주 낙태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헌재소에서 내려졌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인데, 12주까지면 6개월에 가까운 태아임에도 여성의 인권이 태아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자리에 인권이
가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끝판왕이다. 온갖 수치를
무릅쓰고서라도 아기를 낳아야 한다. 생명은 하나님에 속했다고 중학생, 고등학생
을 설득해서 낳게하고 믿게 하고 가정을 이루게 하고 매 주일 유아 세례가 행해
지고 있는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하나님의 선물인데, 장애아나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고르듯이 선택적으로 아이를 죽인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시험관 아기도 선택한다는 생명윤리 때문에 지금까지
안타까운 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 나아가서 살아있는 아이를 22주까지
낙태할 수 있게 한다니 오므리의 악한 권세를 점점 합법화시키는 아합
시대가 맞다. 60년간 내려온 법을 폐지하고 낙태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바알 숭배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부모님께 돈을 꾸어서
갚는 남편이 싫으면 이혼하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아니고 거룩이다, 성숙이다라는 현수막까지 붙여
놓고 이혼 낙태 막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나 허탈하다.
모두가 정상이고 건강하고 공부잘하고 돈많고 바람도 안피고 그러면
행복할 것 같은가? 그 비교할 사람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지옥이다.
안그런가? 마가복음 13장처럼 이 세상은 아무리 화려하고 성공해도,
심지어 화려한 성전이라도 보이는 곳은 다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미리 무너져서 예수그리스도의 징조를 볼 수 있는 것이 축복인데
이땅의 완전함이 다인줄 알고 영적 시력이 마이너스라서 이렇게 징조를
보지 못하니 품질이 나쁘다고 다 골라내서 죽이고 이혼시킨다면 복음이
들어갈 기회가 원천봉쇄 되는 것이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헌제의 7대2로
위헌이라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어떤 때 보다도
위기라고 생각이 된다. 저 또한 죄인이고 온전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우리들교회는 이혼,낙태를 죽자고
막았더니 2천명 청년부가 이혼하지도 낙태하지 않고 부흥하고 있다. 이것이
인구 절벽시대의 애국애족 아니겠는가? 아이낳는데 돈 얼마 준다고 아이를
많이 낳는가? 우리들교회는 정말 아이를 많이 낳는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하는데 가치관이 다르면 이혼조건이 되고 이혼하라는 시대에 살고있다.
이것이 나를 위하는 것 같아도 집이고 교회고 나라고 다 망하는 결정인 것
이다. 아이들이 그러면 중,고등학교 때 임신하면 다 낙태하라는 것 아닌가?
너무 기가 막힌 일이다. 판결은 학벌로 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힘든환경에 처해봐야 복음이 들어가는데 다 무너지기 전에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다 했으니 이 복음이 없는 사람이 영생의 복음이 들어가는 길을
다 막는 시대에 살고있다. 십자가가 축복이고 고난이 축복인데 그 길을 다
막아서 번데기를 가위로 자르는 것이다. 나비가 되지 못하게 한다.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구속사의 가치관을 가지고 판결하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소수인권이 사랑만은 아니다. 사람은 100프로 죄인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고싶은대로 하면 방종의 시대로 돌입해서 겉잡을 수 없는 악의
시대로 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권의 판결을 하고 인권이 왕노릇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는데 수년동안
북이스라엘에 비도 이슬도 한방울도 없는 가뭄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망할 예언을 한다. 그 말대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것은 극심한 고통을 의미한다. 길르앗은 야곱과
삼촌 라반사이에 맺은 증거의 돌무더기라는 뜻이다.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
라는 말씀의 증거를 가지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우리모두가 증거의 돌들인데
엘리야처럼 광야에사는 무시받고 평범한 사람도 내가 섬기는 하나님 여호와
라는 신앙고백이 있으면 이렇게 왕앞에 나가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나같은 사람도 광야에 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섬기는데 어째서
왕이 바알을 섬길수가 있는가? 왕이 그렇기 때문에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
하리라 우로를 끊는다고 호령을 하라고 지금 너를 보내겠다, 엘리야를 보내겠다
하신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는 풍요의 신 바알의 급소를 찔러야 한다.
이것이 가뭄이다. 굉장한 기도이고 적용이다. 큐티를 열심히 하다보니 저도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병원의 우로가 끊어지길, 즉 망했으면 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아픈 것 보다 병원이 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고난중에 제일 쉬운 고난은 돈 고난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이렇게
다 누울자리를 보고 기도를 했다. 내가 피아니스트고 남편이 의사니까
병원 망해야 밥굶고 살겠는가? 그래서 남편도 안되는 것이 있게 해달라
기도했다. 남편은 매우 성경적인 사람이지만 이런사람이 무섭다. 그런데 남편
망하게 해달라고 하니 담대해진다. 남편의 구원에 그만큼 목이 말랐기에
그런기도를 했다. 내게 있는 풍요와 물질의 바알이 끊어지는 것이 나와 내
가정이 사는 길임을 믿고 우로가 끊어지리라는 말씀에 아멘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알의 문화가 끊어지려면 세상 가치관이 물러가야 하고 세상
가치관이 물러가려면 세상의 육이 무너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합이나
이스라엘로서는 우로가 끊어지는 것, 수년동안 비도 이슬도 한방울 없으리라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복중의 복이다. 지금 이시간도 망하는 곳에서 그리스도를
봐야 한다는 말이 기분만 나쁠것이다. 성경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단은 적용을 하지않는다. 적용을 안하면 귀만
커지고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함 처럼 된다.
적용) 1 돈과 학벌과 권력과 사랑의 우로가 비도 이슬도 한방울 없이 끊어졌습니까?
2 아합같은 식구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여러분의 환경에서 담대하게 비도 이슬도
없는 우로가 끊어지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두번째,(내가 섬기는 하나님은)고독과 절제의 영성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가뭄 재앙을 선포한 후에 아합이 당연히 엘리야를 해하려고 찾았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안전하게 피할 수있는 장소를 지금 알려주시려고 하신다.
그릿은 분리와 단절을 뜻하는데, 어떤 두 지역을 분리하는 경계선 역할을 했거나
다른 지역과는 단절된 오지였을 것이다. 당연히 다른사람들이 발걸음도 없었을
것이고 숨기에는 좋았지만 살기에는 불편했다. 가뭄이 지속되자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일시적인 장소이다. 우리 인생도 영원히 가난한 사람도, 영원한 부자인 사람도 없다.
영원할 것 같아서 열등감과 교만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동쪽으로 가서 그릿시냇가에 숨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거했던 장소로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양식을 삼았던 장소이다. 그러니 그릿시냇가 아무리 힘들어도 약속의 장소라는 것이다.
숨고는 자신을 스스로 숨기다는 뜻인데, 말씀을 듣고 스스로 숨었다는 것이다. 적용
이었다.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의 가뭄 예언이 그동안 바알 숭배를 국시로 내세운 것에
대한 반역으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처형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숨기도 했지만
앞으로 이세벨과 아합을 넘어서는 바알 선지자 850명을 물리쳐야 하기에 그걸 승리
하려면 지금 영성을 훈련시키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다.
저도 13년과 문밖 출입을 못했던 것이 저에게도 사단과 대적하는 큰 비밀 병기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구원의 반역을 위해 힘들지만 분리를 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일시적으로 주신 땅이기에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알아주지 않아도 생색내지 말고 스스로 감추고 숨으라는 것이다.
때가 될 때까진 이렇게 숨어있어야 하니 이혼하고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10:29절 에서는 아무리 복음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다 버릴 수 있다해도
남편이나 아내를 버리라는 말은 없다. 부부는 한몸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도
버린후에 엄마만 돌려주고 아버지는 돌려주신다는 말이 없다. 돌려줄 때는
어머니만 돌려준다. 아버지는 버렸는대도 돌려주시지 않는다.
좋은 엄마는 많지만 좋은 아버지로 유명한자는 별로 없다.
그러니 아버지에게는 기대하지 말자. 이것도 구속사로 말씀드리는 것이다.
성경은 한글자 한글자가 이렇게 중요하고 믿음은 여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여자 전도하기가 남자 전도하는것에 1000배 힘들다(결혼하고 나서)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전하는 엘리야도 죽을 맛이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돌만 있는 광야 길르앗보다 더 살기 힘들어
보이는 그릿시내가로 숨으라 하신다. 망할 예언을 한다는 것은 삶으로
살아내야됨을 보여야 된다. 이렇게 힘든 시대는 삶이 메세지가 되어야 한다.
말씀이 없어 가람이 아니오 듣지못한 기갈이기에 듣기위해서는 삶이 육화되는
말씀을 들려주어야 한다. 목사님이 내 고난을 얼마나 알겠는가 하는 편지를
받는다. 나도 목사님 같은 상황이면 얼마든지 사역하겠다 한다. 맞다. 제가
모르는 고난이 많다. 더욱 가뭄같은 현장으로 숨어들어야 되는데 제가 엘리야
가 아니니 어쩌겠는가. 저에게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
(4절) 가뭄이 들어도 그릿시냇가로 가기만 하면 마실물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제가 고난이 없지만 적용해서 가기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마실 물을 주셨다.
아무리 말씀이 들리지 않는 분들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분들이
살아남과 달라짐 때문에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명맥을 유지하며 가고있다.
엘리야처럼 무시받는 길르앗 출신으로 더 험한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해도
내가 섬기는 하나님 때문에 적용을 칼같이 하는 분들이 우리들 교회에서도 MVP
라고할 수있다. 엘리야 때문에, 우리가 바로 그 힘든 분들의 적용 때문에 복을 받는다.
우리가 맹목적인 순종도 기복적인 순종도 아니라 구속사적인 구원을 위한 순종을
하기위해 끊임없이 말씀이 들리는 구조속에 있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분들도 있지만 마음속에 소원을 가지면 공동체에 속하게 될줄 믿는다.
그런 소원은 이루어 주신다.
(5절)원어로 보면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가서 행하고 머물렀다-
원문에 가서가 두번 나오는데 엘리야는 말씀 인도따라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을
가라면 갔다. 자신의 사역을 요단 동편에서 마감했던 모세를 연상시킨다. 엘리야의
메시지가 모세가 가르치고 선포한 신명기 언약과도 관련되어있다.
이 대단한 사역이 오직 말씀 인도따라 했다고 하는 것이다. 성도의 최고의 삶은 말씀
인도 따라 사는 삶이다. 앞으로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과 큰 영적 싸움을 치워야 하기
때문에 고독과 절제의 훈련을 시키신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고 만나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모든 것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서 인도 받은 것들이다.
엘리야는 그동안 말씀대로 살아가는 구조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그릿시냇가로 가라고 했을때 즉시 순종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경험하면서 왔기에 명령하시면 뜻이 있을 것이라는걸 알았기에 가능했다.
여러분이 지금 큐티하며 목장에서 묻고가는 것이 물어봤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결정적인 날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증거의 돌무더기 길르앗에 있으시기 바란다.
적용) 고독과 절제의 영성의 의미를 배워야 할 그릿 시냇가의 분리와
단절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 감정에 충실해서 분리하려는 것은 더욱 심한 가뭄만
가져올 뿐이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목사님의 집사시절 북한 선교 간증)
세번째,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의외의 사람이 돕게 하신다.
(6절) 성경에서 까마귀는 부정한새로 언급되어 나온다.
이는 이후 나오는 사르밧 과부의 기사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이스라엘이 온통 우상숭배로 하나님께 죄악을 범하는 이 시점에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로운 사자를 공개한 것은
거룩하고 의로운 동물들이나 믿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까마귀와 같이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한 자로 취급받았던 이방 여인, 과부와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라는 것이다. 그런분들이 오셔서 말씀이 들리는 것을 너무 많이
접하면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안들리느냐고 할 필요가 없다.
마가복음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진리를 말하니 다 죽이고자 한다. 정말 이런분들은
말씀이 들린다. 여기 와서 앉아있는 것 만으로 감사하다. 말씀을 꿰면서 나에게
욕을 하니 괜찮다. 그래도 좋다. 아합에 속한 교양있는 사람은 전혀 들리지를 않는다.
저는 욕을해도 이자리에 와서 앉아있는 분들을 사랑한다. 그런분들은 감사가 있다.
여기 와 있는 사람은 무조건 복받은 사람이다.
엘리야는 까마귀가 가져온 음식을 시냇가에 숨어있었는데 시내가 마르자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한다.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하신다. 엘리야가 우리와 다른것은 어디로가서 또 혼자 어떻게 지내나 하는
갈등없이 명령하시는대로 바로 바로 행했다. 까마귀도 사르밧 과부도 모두 내 인생에
도움이 될것 같지 않은 부류들이다. 우상숭배가 극심하고 잘먹고 잘사는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나를 싫어하고 대적할 것이
뻔하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은 보잘 것 없어보이고 힘든 환경가운데 살아가는
과부와 같은 한사람이다. 항상 의외의 사람이 나를 돕는다.
예수이름으로 모인 목장에서 나눈것 만으로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우리들교회 청년들 출신은 교만하고 선민의식이 있지만
붙어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적용
1 내 고정관념에 치우쳐 영육의 차별을 하고있지는 않은가?
2 나를 도운 의외의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경험이 있는가? 없는가?
북한에서 나를 도운 사람도 의외의 사람이었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호텔에서 큐티모임하는 사람끼리 나누면서 이틀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QTM식구들 중에서는 아내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가서 예수 만나고 오라고
소개를 통해 오신분들도 있었다. 거듭된 회의끝에 투표를 거쳐 아리랑 축전에
갈 사람만 가고 나머지는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3일째 되던 주일 아침이
되어서 봉수교회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한 날인데
북한이 다시 제동을 걸어와 나머지 사람도 아리랑축전에 참석할 것을
요구하고 예배드리지말고 묘향산 관광을 하라고 했다.
믿는자로 주일예배는 생명을 걸고 사수하기로 하고 금식을 하고
그동안 도청당할까봐 못했던 기도와 찬양을 했다.
그곳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 언론사 기자들도 많았다.
300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종업원과 북한의 감시속에서 예배를
6시간동안 드렸다. 그게 북한에서 첫 예배였다. 6시간 동안 종업원과
천여명이 볼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면서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전하니
6시간이라해도 몇명 말씀을 전할 수 없었는데, 그 중에 여자집사인 내가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겠는가? 억류될 수도 있었다. 긴장감이 팽팽했다.
잘못하면 잡혀갈것인데 누가 나가서 거기서 설교를 하고 싶겠는가?
그때 난생 처음 예배에 온 큐티모임 집사님의 남편이 김양재 집사때문에
여기 왔으니 김양재 집사 말씀을 듣고 싶은데 말씀을 왜 전하지 못하게
하시냐고 하시며 크게 싸우게 됐다. 그곳에 기라성 같은 목사님들이 많았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교회 체재를 아무것도 모르니 가능한 행동이었다.
교회라고는 처음으로 평양에가서 예배를 드려보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날 큐니 본문이 바로 열왕기상 17:17~24까지의 말씀이다.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엘리야가 살려주는 본문이다.
말씀대로 아합왕에게 가서 전하라는 것처럼 되었다.
그 어려운 자리에서 여자 목사도 아닌 집사가 어려운 자리에서 하겠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교만해보이겠는가? 그런데 설교 하라고 하니 네. 하고 말씀을
전했다. 저를 소개한 분도 의외의 사람이었지만 저 또한 그 때의 분위기상
너무나 의외의 사람이었다. 그분의 이름도 생각이 안난다. 지금도 믿는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정말 의외의 사람이었다.
(집사시절 기적적으로 남은 영상 17년만에 공개)
죽을수도 있고 잡혀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저 때 어떻게 설교가
가능 했겠는가? 그때는 열왕기상처럼 북한에 가뭄이 들어 우로가 끊어졌던
상황 이었다. 북한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전하는 말과 다른게 없지 않은가? 그때 그렇게 식당에서 예배를
개척했을때 CTS에서 와서 듣고 밀레니엄 특강을 내보내 주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의 방송 설교가 나가게 되었다.
우리가 평범하고 남들이 무시하는 것 같아도 평신도고 목사고 상관없이
하나님은 다 쓰시는 것이다. 항상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오게된다.
내가 하나님앞에 담대하게 서 있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경배하겠다고
하면 담대하게 하신다. 고독과 절제의 영성을 배우게 하신다. 의외의
사람이 나를 돕게 하신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기에 때론 고독으로
때론 고통으로 우리를 훈련하신다. 구원을 위한 우리 기도에 응답해주실
하나님을 믿는다. 준비되어있으니 할 수 있었다.
설교고 상담이고 구제고 봉사고 큐티하는 것이 모든것의
답인줄을 믿는다. 말씀대로 왕 앞에 가서 전했다. 그러나 엘리야가 전해도
이스라엘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서 아직도 북한을 견제하게 하시니
남한이 회개해야 할 줄을 믿는다.
목장 나눔
장소 : 오토웨이 아이스빌리지
참석자 : 고은희(목자님), 김주영, 손윤희, 김진나
기도제목
고은희 목자님
1 예배와 말씀이 내안에서 회복되도록
2 목장식구들 가족구원 중보
3 현재 나의 상황 하나님께 잘 매여 순종하고 가기
손윤희
1 말씀이 들리길
2 순종 하며 갈수 있도록
3 육과 영이 하나가 되기를
4 삶이 흐트러지지 않고 깨어있어 주님만 보고 가길
김주영
1 매일 주님 신뢰하며 주님께 묻고 갈 수 있도록
2 건강회복
3 자신감과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길
허재희
1 가족구원/엄마목장정착/믿음의
친구만나시길/예배때말씀들리시길/건강지켜주시길
2 몸건강
3 큐티,예배말씀사수/구속사와말씀이깨달아지길
김진나
1 예배가 먼저되는 삶 잘 유지할 수 있도록
2 하나님 뜻에 맞는 합당한 일자리 허락해주시고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3 금전적인 나쁜습관을 회개하며 주님안에서 다시 세워질 수 있게
4 목장을 이끄시는 목자님과 목장식구들의 영육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