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4. 15 주일 위한나 목장보고서 (19)>
마지막 찬송

일시 : 18. 4. 15. 주일
본문 : 요한계시록 15장 1-8절
설교 : 김양재 목사님
마지막 찬송하면 여러분들은 이거 숨 죽을 때 부르는 찬송 아닙니까?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이 미래에 어느 날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니고 오늘의 현실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시간 순서에 의해 쓴 것이 아니고 마지막 시간을 향해 가는 오늘의 찬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찬송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마지막 재앙이 마지막 찬송입니다.(1)
그것은 마지막 이적이고, 완전한 심판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1절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오늘은 지난주 14장보다 본문이 앞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알곡과 포도송이 추수가 끝났는데 무슨 마지막 재앙이 있다고 봅니까? 그래서 계시록을 연대기적으로 읽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라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전 기간을 말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전 시간에 인‧나팔‧대접 재앙이라는 세 가지 시각으로 보여준 것이 하나님 심판의 계획입니다. 그야말로 심판의 인을 떼고 나팔의 경고를 하고 대접을 쏟아 붇겠다는 것인데, 세 가지 같지만 한 가지고 초점과 관심을 한가지로 두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을 떼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나팔을 불어도 회개를 안 하더니 대접을 받고 보니, 내가 주님을 만났다. 이렇게 간증을 하면 내 인생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또 맞는 얘기에요.
요한이 하늘에 크고 다른 이적을 보았는데, 요한이 세 번 이적을 보았습니다. 첫째가 12장에 해를 입은 여자인 교회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붉은 용의 이적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사단을 의미하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마귀의 조정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아비 마귀에서 난자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세 번째 이적은 마지막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접으로 부어서라도 마귀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진노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진노를 맞보게 함으로 영원한 세상에서 슬피우며 이를 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진노가 마친 것이 구원이 되어야지 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적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 이적은 헬라어로 세메이온이라고 하는데 표시를 뜻하는 세마에서 파생된 단어로 증거나 상징, 징조, 기적 등의 뜻을 의미하고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이해하거나 통찰할 수 있는 표지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이적이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시고 계시는지를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기에 교회인 나를 알고 사단을 알고 재앙을 주시는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는 것이 이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고난을 통해서 마귀의 계략을 알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신분인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고 통찰할 수 있는 것, (우리들 교회에서 해석이 되었다고 하잖아요?) 이것이 이적 중에 이적이라고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는 끝났다는 것이 아니고 충만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진노가 너무 완전해서 카이로스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진노가 완전하면, 한편으로 완전한 심판이 믿는 성도에게는 기쁜 소식이고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표지인 이 싸인을 보고 가는 것을 이적이라고 했습니다. 돈이 벌리고 건강해지고 잘 사는 것이 이적이 아니고 자식이 돌아오는 것이 이적이 아니고 우리가 제대로 구속사적인 성경 묵상이 이적 중에 이적인 것을 믿습니까? 성경에 그렇습니다. 이적은 표지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내렸다고 했는데, 진정한 천사는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말하면, 내 존재가 해를 입은 영광된 신분인 것을 알고 마귀도 알고 고난의 뜰도 알고가면서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이적 중에 이적인데, 그런 얘기를 하는 목자는 천사가 아닙니까? 선생님 천사 아닙니까? 오늘 그런 얘기만 하면, 고난을 통해서 왜 이런 일이 왔나? 왜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지? 당신을 좀 돌아보라고 하면, 이러면 교회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이적의 주인공이 못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내가 마지막 찬송을 하는 것은 구원의 의미를 확실히 알 때 부르는 구원의 노래인 것입니다. 지금 구원의 찬송을 부르지만, 육을 떠나는 날, 부르는 찬송이 어떤 찬송이 될지 진정 마지막 찬송이 남아있습니다. 내가 마지막에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갈지, 부인하면서 갈지 그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적으로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못하고 간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제 남편 찬송하고 갔지만, 어떤 장로님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계시록 8장 13절을 보면, 일곱 나팔재앙 속에서 다섯째,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 세 가지 화에 대한 것이 나왔니다. 화화화의 재앙, 첫 번째 화는 다섯 번째 나팔 재앙으로 황충의 재앙이고 두 번째는 유브라데 2억 명의 군대가 쳐 들오는 얘기인데, 이 재앙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회개를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인과 나팔이라는 기가 막힌 재앙에도 살아남아서 회개하지 않는 이들의 가장 큰 죄악은 끝까지 짐승과 바벨론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선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결정한 것입니다. 굉장한 일입니다. 대접재앙은 마지막 재앙이기 때문에 16장부터 나옵니다. 7곱 대접이 끝나면 진짜 마지막이고 중요해서 오늘 여기 서론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서론인 것입니다.
표지판이기도 하지만은 이적에는 기적이라는 뜻도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크고 이상한 이적이라고 했을까요? 아까도 얘기 했듯이 진노의 완성인데, 이 재앙이 끝나기까지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표지를 따라오면서 믿고 기다렸는데, 어느 날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 운명이 재앙 속에서 송두리째 뒤 밖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실제로 놀라운 이적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명을 하려고 남편이 간 것입니다. 남편의 영접이 마지막 재앙에서 믿고 기다리던 구원이 제 눈앞에서 펼쳐졌잖아요? 남편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크고 이상한 이적이 되어서 남편이 마지막 찬송을 하게 될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30년을 생각해도 크고 이상한 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이적이 되어서 또 다른 사람에게 표지와 싸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이적이 하나님의 표지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그러면 표지를 따라가려면 큐티를 제대로 해야되잖아요? 큐티를 제대로 하세요? 또 제대로 하는 것이 이적 중에 이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대로 하는 큐티는 무엇입니까? 교회인 나와 마귀와 재앙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큐티를 해야합니다. 이게 바로 장성한 자의 분량의 큐티인 것입니다.
두 번째 마지막 찬송은 불바다를 지나야 합니다. (2)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찬양을 하는 것이죠. 유리바다가 어딥니까? 유리바다는 물두멍에서 바다가 되었습니다. 세례 등을 의미하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지나서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찬양을 한다고 그랬습니다. 모세하면, 홍해바다가 생각납니다. 출애굽기14장에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오는데 홍해바다가 갈라졌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힘들어서 기도하니 갈라졌나요? 고통이 너무 심해 하나님 불쌍해서 홍해바다를 갈라지게 하셨나요? 성경을 쭉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언약, 약속, 말씀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이들은 짐승과 그 우상을 이기고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러니깐 불이 섞인 유리바다에서 그냥 유리바다로 걸어갔는데 이처럼 모두 투명해지는 것이 마지막 찬송의 특징입니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는 불이 섞여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유리바다로 옮겨졌다는 것은 투명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죄인이에요. 우리가 죄를 감추고 사는 것이 특징입니다.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우리 인생인데, 부패했던 것들이 유리처럼 투명해졌습니다. 이것은 자기 죄에 민감해졌다는 뜻입니다. 유리바다에 도달한 성도들은 누구보다 자기 흠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자기 죄 때문에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너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너무나 아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고 주님만 부르짖으니깐 그 손을 잡고 건너가게 해주시는 자인 것입니다. 불타는 바다에서 나도 모르게 유리바다를 건너오면서 내가 평온해지고 일관성이 있어지고 그리고 이제 전적인 은혜로 건넜다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너무 부족한 것을 아니깐)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과 도구인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찬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찬양을 하더라도 전쟁을 하더라도 내 방법이 많습니다. 총칼을 들고 우리는 혈과 육으로 전쟁을 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온유하게 검은 거문고를 가지고 찬양을 하면 구원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했잖아요?) 말씀을 붙들면서 여기까지 오셨어요? 참 그런 것 같습니다. 신천지가 우리 교회를 그렇게 공략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뚫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프로그램이 아닌 말씀으로 큐티하고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가장 큰 특징은 자기의 죄를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데려가려고 해도 자기 죄를 보는 것은 흉내를 내선 안되거든요. 그러니깐 신천지들이 다들 흉내를 내겠네요. 죄를 보는 흉내를... 십년이나 섞여 있으면서 공략하는 것이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그냥 여기서 죄보고 계시면 안 될까요? 결국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고 교주를 경배하는 것인데...
그런데 이 유리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은 심판의 바다가 되니 불바다에서 다들 열불이 끓어오르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전쟁이 모두 혈과 육의 전쟁이 되어서 너는 틀렸고 나는 맞고 이러는데 이런 분들을 위해
수요예배
를 드리기를 권합니다. 왜냐하면 불바다를 잘 건너라고. 말씀을 수요예배에서 많이 보잖아요? 말씀 약속을 많이 알아야 되니깐.
정신병 환자들과 그리스도인이 참 비슷한 게 많습니다. 뭐가 비슷한가하면? 자기의 죄 때문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민감합니다. 그런데 차이는 환자는 그 죄를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기 때문에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자신이 괴로운 것이 너무 괴로워서 그 괴로운 만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죄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믿지 않고 자기 죄는 이만하니깐, 겸손해지고 해결해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음을 알고 주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가 믿음의 용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인생의 불바다를 지나면서 찬송을 하게 됐잖아요? 그런데 사울은 자신은 자신이 책임지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이 괴로운 만큼 다윗을 평생 탓하고 미워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니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위의 딸임에도 잘난 다윗을 보기 너무 힘들어서 그를 죽이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겉모습은 너무 멋있고 예배 중독자처럼 보였습니다. 다윗은 여자가 즐비하지만, 사울은 여자도 없습니다. 눈만 뜨면 예배를 드립니다. 신접한 여인 사무엘 제단 쌓아가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초대 왕으로 너무나 감사한 환경인데 감사가 안된 것입니다. 40년이나 왕 노릇을 했는데 다윗을 미워하는 것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보면서 똑같은 죄인인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표지를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이적 중에 이적인지, 기가 막힌 이적인 게 내 죄를 보니 하나님께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생 불바다를 건너면서 저 또한 미워할 일도 많고 죽을 일도 많았는데 제가 너무 힘든 인생을 살아오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 의지했더니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오게 하신 것이 이적 중에 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 다 미웠으면 옛날에 정신 줄을 놓지 않았겠습니까?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자기 죄를 자신이 책임지려고 합니까? 내가 늘 넘어지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맡기십니까?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은 편한 사람입니까? 불편한 사람입니까?
세 번째는요, 마지막 찬송은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노래가 아닙니다. (3-4)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출애굽기 15장에서 그 무서운 애굽이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가다가 죽었습니다. 내가 기가 막힌 애굽이 죽는 것을 내 눈으로 본 것입니다. 어떻게 훨씬 잘난 애굽이 죽지? 내가 어떻게 구원됐지? 실제적으로 보니깐 애굽의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전혀 부를 수 없는 노래인데 정말 어떻게 내가 구원되었지? 남편의 마지막 재앙에서 찬송이 시작되었듯이 그래도 마지막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그 마지막이 문자적으로 마지막이 아니고 오늘 이 시간에 마지막으로 향해 가는 찬송을 부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무엇을 찬양했냐면, 전능하신 이여 하신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3-4절을 가지고 찬송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대단한 찬송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간증을 때마다 하잖아요? 출애굽기에서 시작된 간증이 계시록까지 흘러 퍼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출애굽 얘기이기 때문에 날마다 출애굽 얘기를 해야합니다.
저도 날마다 남편 간증을 합니다. 여러분은 저 얘기 또 하네. 이런 사람이 그렇게 있습니다. 세상적으로만 들으면 팩트의 나열로 들으면, 어떻게 두 번을 듣겠습니까? 세상에 없는 예능도 두 번은 보기 싫습니다. 그냥 저도 삼십년 동안 구원의 일이 날마다 크고 놀랍다고 하니깐, 제가 놀라워합니다. 인간적으로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이 구원으로 초청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너무 놀라워서 큐티 선교회 창립을 2007년 7월 17일 날 옥한흠 목사님께서 사랑의 교회에서 하라고 빌려주셔서 거기에서 했는데, 여러분들도 제 큐티모임에 왔던 분들이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넘쳐서 남편, 자식 다 데려오느라고 이천 명이 넘게 왔습니다. 광고하나도 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될까하고. 그날 300명이나 영접을 했습니다. 집사가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흘러넘치니깐, 구원 때문에 너무 놀라니깐, 다른 사람들도 데려와서 놀라고. 이게 진짜니깐 하지 까짜면 어떻게 영접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교회를 보니깐, 구원 얘기를 똑같이 하는데 그게 인간의 얘기면 놀라운 일이 되겠습니까? 몰라요? 제가 날마다 남편읜 구원때문에 놀라니깐, 날마다 놀라게 되는 일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큐티선교회, 우리들교회. 점점 놀라실 일을 많이 주십니다. 여러분들 오직 구원 때문에 놀라시기를 바랍니다.
마음 속에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전하고 흘러 흘러가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없어도 구원의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의 길을 의롭고 참 되시도다 라고 찬양을 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구원 받을 만 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공평치 못한 수많은 일들에 말씀을 보면서 주님이 맞습니다. 옳으십니다. 참되십니다. 했습니다. 남편의 하루 아침에 데려가는 날 이 일은 공평하다고 했잖아요? 기억나시죠? 그러니깐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시다. 또 이렇게 과부가 되어도 주님의 의로운 일이 나타나기 때문에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롭고 참되시다고 하니깐, 수많은 사람들이 설교와 문서와 큐티 사역을 통하여 주를 경배하게 되는 놀라운 일의 연속인 것을 믿습니다. 내가 찬양하면, 여러분들도 똑같이 찬양하시기를 바라요~ 목사님은 정말 똑같은 것을 끝도 없이 잘 갖다 부치시네, 어떤 성경을 봐도 똑같이 잘 갖다 부치시네가 아니라 이것을 하려고 일주일 동안 골싸바리? 합니다.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기의 인생을 해석해서 내놓게 되실 줄을 믿습니다.
용의 세력은 열 뿔, 일곱 머리 열 면류관의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름 만 들어도 이름 값이 느껴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깐, 애굽이 패했습니다. 그리고 음지에 서있고 아예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름 값이 아예없던 자들이 구원 쪽에 서있는 것입니다. 자격과 공로로는 전혀 갈 수 없는 나라에 입성을 한 것입니다. 출신 성분으로는 전혀 명함을 내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역대상 계보를 보니깐, 살인자, 남의 것을 빼앗은 자, 남편의 아들과 동침한 첩 이런 사람들이 계보에 올라갔더라구요. 유명한 라헬의 몸종이자 야곱의 첩이자, 야곱의 맏아들 르흐벤과 동침한 만고의 죄인인 비라가 계보에 올랐는데 막다릴 지파가 딱 한 절 나오는데 그녀의 이름이 그곳에 찬란하게 딱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의 직계조상인 다윗 계보에도 스루하가 올라가고 갈렙의 두아내, 마귀의 딸인 헤스론, 헤스론의 아내 아비아?, 오남의 어미, 야르하라는 흑인, 애굽의 종을 아내로 삼게 했고 이렇게 다 나왔는데...
유명한 사울 딸 미가는 빠졌습니다. 거기도 다윗의 부인 중에 이방여인... 강간 당한 다말도 들어갔습니다. 아들없는 슬로보아 딸들도 나옵니다. 미리암도 나도 베냐민 지파 사하라의 두아내, 후신과 바하라를 내보낸 뒤에 모압 땅에서 자녀를 낫다고 했는데, 내어버린 두 아내도 나왔어요... 에브라함의 지파 에셀과 에델도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 후에 잉태하여 낳은 아들을 브리아라고 재앙이라고 이름을 하였는데 재앙으로 이름을 지었어도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간 줄을 믿습니다. 이름은 자고로 겸손하게 지어야 합니다. 일일이 다 언급을 못하겠지만, 모두 첩, 다른 아내, 버림 받은 아내, 이방여인, 애굽의 종의 종을 아내로 둔 자, 강간당한 아내,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던 자, 재앙이라는 이름... 그런데 대단한 믿음의 사라, 리브가 라헬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도 다말, 얏세바 우리야의 아네 마리아 이름이 찬란하게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이 음란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음란에 올라간 자들이 다 계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도 역대상에도 사라, 리브가도 다 빠졌는데 마태복음에도 본처의 이름이 다 빠졌더라구요. 제가 그전에 본처가 제일이라고 했는데 본처가 빠졌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하나님이 음란보다 제일 싫어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깊이 만나면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신분으로는 하나님 앞으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는 자들인데 우리가 듣기만 해도 눈물의 신앙고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잖아요. 잘 난 사람들은 피리를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데 이런 기가 막힌 환경이 겸손한게 겸손하다고 했는데 이런 사람들이 찬란하게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숨질 때 되도록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우리가 윤복희씨를 보면 정말 얼굴로 눈물로 찬양을 하잖아요. 살아온 인생이 기가 막히셔서. 그래서 인간으로서 마지막 심판 속에서 마지막 찬양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가 막힌 일곱 대접 심판 가운데서 마지막 찬송, 위대한 찬송을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이 나를 품에 앉고 홍해바다를 친히 건너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나를 버리려면 또 하나님이 다시 안고 건너가 버리셔야 되는 것입니다. 짐승의 이름의 수를 이긴 것은 주님이 안으셔서 이긴 것이지 내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보호하는 것을 믿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우리들 교회도 아프고 힘든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날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눈물을 안 흘릴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주님이신 목자와 주일 학교 선생님들을 먼저 안아 주시고 업어주시면서 가시는 것입니다. 또 목자와 선생님들도 오늘이 마지막처럼 어린양의 마음으로 이끄는 본을 보여주고 가시기 때문에 간증이 나오고 모든 성도들도 아이들도 마지막 찬송을 부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선생님, 목자님들 마지막 찬송을 부르시는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수로 격려를 합시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이처럼 일곱 대접같은 심판에서 위대한 찬송, 마지막 찬송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나눠보세요.
네 번째, 마지막 찬송은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것입니다. (5-8)
약속의 말씀의 성전이 열리는 것이죠.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유리 바닷가에서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증거 장막의 성전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이 재앙의 출처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장막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데, 그 곳에 두 돌판, 십계명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은 언약에 의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언약을 거절하면, 심판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약속의 말씀에 의거해서 집행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편의 죽음을 겪으면서 들은 말씀이 에스겔 18장 이었잖아요? 그가 돌이켜 회개하고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내가 왜 악한 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이 일이 공평하다. 이것은 제게 언약궤,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감동을 주신 날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때마다 하나님의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니깐, 진짜 남편이 죽는 날이 왔는데 내가 이것을 기적이라하고 이게 겉으로 보면 뭐가 그렇게 잘난 척 자랑할 일입니까? 이것을 제가 자랑하면서 제 남편의 운명이 뒤 바뀌고 내 운명이 뒤바뀌었고 너무 놀랍고 크고. 주여 주님의 하신 일이 너무 위대하다고. 여러분들 가운데도 저를 닮아서 흘러 내려와서 그렇게 하신 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아니면 어떻게 여기가 부흥할 수 있었겠습니까? 부흥회 한 번 안했는데, 특세도 한번 안했는데. 우리의 모든 시련과 환난은 증거 장막 성전의 예배가 열리는 것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언약을 위하여 말씀을 위하여 약속을 위하여. 약속이 정말 중요합니다.
서양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약속입니다. 기독교 국가잖아요. 한국은 제일 중요한 것이 외식입니다. 배가 고파도 부른 척, 없어도 있는 척, 큐티를 하면서 이것을 쉐어링하는 것이 너무 힘든 것입니다. 미국사람은 믿음이 없어도 약속을 잘 지킵니다. 문화가 그래서. 믿음 때문에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약속, 계명, 말씀, 언약을 위해서 우리가 드리는 목장예배, 수요예배, 개인 큐티예배 등의 언약궤 말씀 예배는 우리가 정말 우리 땅에서 모든 전쟁, 사단을 이기고 이기게 하는 최고의 비결이고 방법인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냥 와계시는 것 같지만, 와계시는 동안 사단의 무리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마귀의 베개를 말씀의 강력으로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똑같은 날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날들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30년 동안 예배에 설렘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예배 설렘이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예배에 설렘이 있습니까? 15명만 대답하잖아요. 예배에 설렘이 있어요? 예배에 대한 설렘이 있기 때문에 사단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설렘이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400구절 정도 중에서 300구절 가까이가 구약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환상으로 이단이 풀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통계시가 아닙니다. 계시록이 상징적 내용을 직접 설명하듯이, 구약의 성경을 통해서 모든 계시록은 성경으로 다 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다 직통계시 받으려고 하니위험한 것입니다.
6-8절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일곱 대접은 마지막 재앙입니다. 6-8절까지는 대접 재앙의 서론입니다. 우리가 앞서 보면, 일곱 인, 일곱 나팔은 진노의 일곱인, 일곱 나팔이라고 안 썼는데, 일곱 대접에서는 진노의 일곱 대접이라고 쓰이고 있습니다. 16장 1절을 보면, 뭔가가 참고 기다리다가 확 부어지는 것이 진노의 대접인 것입니다. 일곱 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역사를 맡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심판이 기정 사실이라면, 이 땅에 나에게 주신 기간 동안 빛난 세마포 입은 대제사장 역할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만 구원 받고 옆에서 애굽은 잘 먹고 잘 살았기 때문에 심판 당하는 것은 마땅해, 나를 괴롭혔으니깐, 너는 쌤통이다. 나는 끝났어, 나는 저 사람 심판 받았으니 끝이야, 이러면 되겠습니까? 나는 구원이고 너는 심판이야, 그래야 되겠습니까? 나는 예배만 거룩하게 드리고 다른 사람들이 심판 받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그니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형벌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 자체가 벌입니다. 이 진노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제사장 역할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안 믿는 것 같았지만, 제가 대제사장 역할을 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고 마지막 찬송을 부르며 갔잖아요? 그 시간 놓쳤으면, 영원한 심판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가만 내버려두고 돌아가시면 예수 열심히 믿겠다고, 우리 엄마 아부지는 안돼. 우리 엄마 아버지는 지옥에 가도록 고이 모시겠어 하고 똑같습니다. 지금 지옥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애통 절통하니깐, 집사시절에도 대회 때마다 광고 한 번 안 하는데 집사님들이 너무너무 전도해서 데려와서 다 영접하고 가니깐, 매 회 때마다 300명씩 영접을 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이만큼 간절하면, 정말 못할 일이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날마다 미워하고 욕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가 왜 불쌍합니까? 울타리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저는 이 후에도 공평치 못하게 불쌍한 과부가 되었잖아요. 그러나 저는 영적으로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에 남편이 간 후에 수많은 영적 과부를 주께 인도하는 제사장이 된 줄 믿습니다. 믿는 나는 이미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식구들이 누리지 못하는 천국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보여주는 천국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을 해보셔야 합니다. 말씀의 성전이 열려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면서 사명 감당하는 것이 마지막 찬송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멘이 되십니까?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고, 제가 말하는 것에 반응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이 흘러서 전염되게 하시는 것이 굉장히 우리는 빨아들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목장에서 옆 사람 때문에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공동체고백, 일곱 대접 심판가운데서 마지막 찬송을 하고 있는 10기 부모학교 엄마의 간증입니다. 예쁜 언니와 늘 비교를 당하며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상쇄하고자 욕심과 열심히 충천하게 자란 자매입니다. 굉장히 수치스러운 얘기를 오픈해주셨는데,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열심과 성실로 사랑을 쏟는 전 남편과 25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결혼후 비난과 잔소리, 고함이 난무하고 밖에서는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전(前)남편의 실체가 드러나며 지옥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도 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전남편은 사업으로 돈을 벌면서 더 괴물이 되어 갔고, 남편과의 불화와 열등감 보상은 자녀에게로 향했습니다. 명품으로 도배하며, 남편이 나를 인형 삼았듯, 자녀를 나의 인형으로 삼아 자기애의 결정체인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며 자녀들을 죽이며 살았습니다. 전 남편은 사기횡령, 주가 조작으로 검찰 조사, 자택 조사, 출국 금지를 당했고 이런 이유를 위장 이혼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이유라도 위장 이혼을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힘드니깐, 서류상 이혼이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으니깐, 합리화시키면서 불륜도 행했습니다. 그 이유 3년 동안 딸들과 살면서 행복하였다라의 제 2막을 꿈꾸면서 현(現) 남편을 만나 다시 사랑을 노래하고 행복을 꿈꾸며 재혼했습니다. 재혼의 삶은 이전의 고난과는 아비규환의 내일이었습니다. 엄마의 재혼으로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낀 사춘기 큰 딸은 반항으로 까칠해졌고, 그렇게 예뻐하며 편애했던 둘 째 딸은 갑자기 생긴 의붓동생으로 힘들어하면서 엄마 싫다며 소리쳤습니다. 남편의 아이는 돌이 지나 엄마의 암투병과 사망으로 두 돌 전에 양육자가 계속 바뀌며 애착의 대상이 없었고 불쌍하게 왜곡된 양육으로 키워진 아이로 이상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부모의 재혼으로 함께 산 아이들은 문제있는 행동으로 각자의 아픔을 빛나게 표출했습니다. 남편의 아이는 제게 특별하게 사랑을 받은 작은 딸이 자기 물건을 훔쳤다, 때렸다고 했고 그 말만 듣고 내가 그렇게 예뻐하던 아이를 혼내고 때렸는데, 넉달이 지나 남편의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실제로 늑대 으르렁 소리를 내던 아이가 사람들만 있으면, 불쌍한 아이가 되는 양극적이고 분열적인 행동으로 나를 나쁜 계모로 만들어버리는 아이가 점점 더 싫어졌습니다. 큰 아이의 반항은 현 남편과의 몸싸움으로 이어졌고 자기는 친아빠와 살겠다는 아이에게 그래 니 아빠와 살아보라고 했는데 한 순간 날벼락 같은 이별이 닥쳤고 저는 대외적으로 남자에게 미쳐 자식들을 내쫓은 미친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전 남편은 처절한 복수와 응징을 하겠더라고 선전포고를 하고는 밤에는 차를 부수고 교회와 지인들에게는 저를 죽이기 위한 말살정책을 성실히 이루어 갔기에,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교회에서 소문을 내서 저는 법적으로 전남편에게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전남편은 계속 저에게 경제적, 사회적, 심적 응징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과 저의 악함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버림과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은 자녀를 잃은 상실감이었습니다. 날마다 방바닥을 구르며 새끼 잃은 어미의 포효를 했고 내 딸들이 적응할 수 없었던 그 이유와 아픔의 대상인 남편 딸에게 온갖 원망과 저주가 향했습니다. 그런데 말씀과 공동체에서 기적 같이 (이런 분들도 우리 교회에 오면 회복이 되더라구요.) 오셔서 회복이 되셨습니다. 딸들도 다 뺏기고 잠시 힘들어서 형님에게 잠시 맡겼던 남편의 아이를 데리고 오는 십자가 적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로 인해 받은 상처와 책임감만 있는 마이너스 통장만 있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라는 미움이 자꾸 올라왔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 와서 숨을 쉬고 있는데 내 아이는 내 손으로 밥도 못 챙기고 빨래도 못 해주는 모든 것이 아픔과 분노가 되었지만 그 과정 가운데 말씀과 공동체가 있었기에 어디에도 할 수 없는 나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나눌 수 있었고 한계상황에서 병원에 가서 우울증 약과 상담을 받으며 내가 할 수 없는 계모의 역할을 인정하며 조금씩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내 딸들이었는데 이 사춘기 방황으로 가출로, 전남편의 허락으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마주보는 방에 사랑의 온도차는 너무나도 큽니다. 내 아이는 밉다가도 예쁜데, 남편의 아이는 밉다가도 또 밉습니다. 기도하기로 작정했지만, 남편의 아이를 두고 깨어있을 땐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며칠 전, 아이 방 앞에서 쪼그려 앉아 하나님 저는 이아이가 믿습니다. 저는 사랑이 없습니다. 주여 저와 저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자기애에 충실하여 나의 자녀에게 안정된 애착을 주지 못했고 맡겨주신 자녀도 따뜻하게 돌보지 못하는 자기중심적 인간입니다. 전 남편을 괴물로 만든 것도 결국 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옛날에는 몰랐는데 우리들 교회 와서 이것도 다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0기 부모교육을 통해서 육적인 자녀와 맡겨주신 자녀와의 회복을 나의 열심과 노력으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며 가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이 일곱 대접의 심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들 재혼해서 하는 말이 그래도 친아빠 친엄마가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애들 문제가 생기면 답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의 자식 키우기가 제일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눈물이 앞을 가리고 이 재앙 앞에서 찬송을 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1) 마지막 찬송은 마지막 재앙에서 불러지는 노래입니다. 한계상황 고난에서 불러집니다. 완전한 심판에서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적은 하나님의 표지인 말씀 따라 가는 삶이라고 해요. 2)불바다를 건너면서 부를 노래입니다.3) 이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이 기가 막힌 고난 가운데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가야합니다. 4)약속의, 말씀의 성전이 열리는 이런 찬송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숨질 때 하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찬양하는 찬송을 부르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말씀 후 찬양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 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내가 건너야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기도 제목
우리의 재앙이 마지막이 되어서 내가 정말 이 한계상황적인 상황에서 마지막 찬송을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각종 예배를 드리고 말씀 보는 것이 하나님의 표지를 따라가는 가장 큰 이적인 것을 믿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예배 드리는 것이 작은 일이 아니고 애굽과 로마를 무너지게 하는 것처럼 내 속에 가장 큰 애굽 세력을 무너지게 하는 비결을 하나님이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예배 생활에 설렘을 가지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내가 불바다를 건너는 것을 해석 잘 하게 해주시기를 기도 합시다.
내가 교회이기에, 마귀의 세력을 고난을 통해서 물리쳐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지인 이적을 믿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래서 내가 천국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기도하기
마지막 재앙이 마지막찬송이 된다고 하십니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지나면서 유리바다로 가야하는데 이 불이 너무 뜨거워서 유리바다로 진도가 못 나가고 있습니다. 내 환경 가운데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야 되는데 내 생색의 노래를 부르고 나를 높이는 노래를 부르느라 우리가 지옥을 불지옥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도 놓치지 않으시기에 우리의 이 세상 가치관을 가지고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버림받은 두 아내, 첩, 불륜의 기생의 이름까지 계보에 올라갑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치관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아서 무시하고 차별하며 불지옥을 살고 있는 이런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어 주시옵소서.
이제 하나님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성도인 내가 얼마나 귀하고 사단의 세력이 이 세상 가운데서 나에게 고난을 주는 것은 끊임없이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징표로 나와 같이 동행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사인인 것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적 중에 이적은 내가 예배드리고 말씀드리는 것임을 알고 이제부터 예배에 우리의 목숨을 걸며 사단의 세상을 이기고 모든 자녀를 주께로 인도할 수 있는 믿음의 조상이 되며 자손이 될 수 있도록. 정말 마지막 찬송을 부르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힘든 분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모든 분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나갈 수 있도록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불 같은 안수로 모든 병에서 놓임을 받고 하나님으로 해결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나갈 수 있도록 고쳐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기어 주시어 치유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림나이다.
아멘.
위한나 목장 보고서(19)
#기쁨의 찬송#생일 잔치#
일시 : 18. 4. 15. 주일 4-6시
장소 : 미세먼지 나쁨, 말씀의 장막 6층 소년부실에서
참석 : 위한나, 윤현경, 이은영
나눔 : 마지막 찬송 말씀을 가지고 각자의 삶에 적용해보았습니다.
현경이의 귀한 나눔
그동안 현경이에게는 직장과 가족고난으로 하나님에 대해서무섭고 두려워 함이있었습니다.오늘 예배를 통해 느꼈던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현경 : 하나님 앞에서 욕심이 없고 의롭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눈물이 나왔습니다..욕심이 많고 안되는 모습 보여드려도 하나님은 다 이해하고 계신다는 것을깨달았습니다. 제옆에 계시는 것을 느꼈고 다시 마음을 열게 된 것 같습니다.
(목자: 하나님의 사랑을깨달아가는 것 같다.)
예배, 목장 등좋은 자리에 나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도 저를 굳건하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배와 상담을 통해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보고 내 죄를 하나님께 맡길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목자 :예배가 회복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감사하다. 현경이에게 이제하나님께서 무서우신 분에서 따뜻한 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감사하다. 기쁘다.)
****** 곧 다가올 한나
언니생일 맞이, 생일 잔치 했습니다. ******

#우리목자님#감사함#사랑함#존경함#예쁨#사랑스러움#귀여움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메마른 땅에 샘물나게 하시기를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당신을 통해 주사랑 알기 원해#축복함
위한나 목장 일동
금주 기도제목
위한나 직장을위한 기도, 십일조 신앙고백 회복될 수 있도록.
윤현경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내 할일 잘할 수 있도록.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내 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이은영 발표 두려움 기도로 담대하게 준비 할 수 있도록, 게으름의 목 잡기 위해 운동 할 수 있도록.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