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때가 이르러
요한계시록 14:13-20
영원한 복음을 만나기위해서 진노를 깊이 만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복음의 주인공이 되는것이 무엇일까요. 현실은 영생과 영벌과 관계가 있어 현실이 지옥이면 지옥을 살다가 지옥을 가는것이고, 현실이 천국이면 천국을 살다가 천국을 갈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차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알곡과 가라지를 추려내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추수를 당할지 심판의 추수를 당할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본문은 추수할때가 이르렀다고 합니다. 요한이 밧모에서 본 환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끝의 이루어질 알곡과 가라지의 추수장면이였습니다.
1.구원의 추수가 있습니다. 즉 알곡의 추수입니다.
마지막 추수를 하는 사람의 아들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인자는 예수님의 인성, 흰구름에 앉아있음은 신성을,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있는것은 왕같은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예리한 낫을 가지고 심판하려면 그전에 가시면류관의 섬김과 희생을 보여주어 금면류관의 리더쉽을 갖게하십니다. 진노를 깊이 만나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정확한 분별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모양으로 표현되기에 추수하는 도구인 낫으로 표현됩니다. 땅에 곡식이 다 익었다는것은 알곡 외에 것들은 다 시들고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은 이 땅에 죄가 온 땅에 가득하게 될때 일어납니다. 이때 예수님보고 낫을 휘둘러 거둘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예리한 말씀의 낫으로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내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것은 다 알려주셨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채 남겨둬야 합니다. 때가 되면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을 받은 어린양이 알기 때문에 붙들고 따라다니면 구원받게 해주십니다. 어린양과 친하게 지내고 따라가며 천국생활에 적응하고 결국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게 하십니다.
Q.내가 힘든 이때에 알고 싶은 그 날과 그 시는 무엇입니까?
구원의 추수가 시작되었습니다. 구름위에 인자가 강력하게 말씀을 던질때 받아드리면 알곡이고 구원입니다. 진노를 깊이 만난 성도는 이미 알곡이 되었기때문에 낫을 아무리 휘둘러도 거두어 집니다. 말씀을 던지면 구원받을자와 멸망받을 자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보면 좋은씨를 받았지만 원수가 뿌리고간 가라지때문에 인생이 힘들지만 주님이 가만두어라 라는 말씀에 순종했더니 가라지때문에 깨어있어 알곡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영적 내공이 생겨 떨어지지않고 구원의 추수에 뽑히게 됩니다. 내가 잠을 잤기때문에 분별이 안된것이지 상대방을 미워하면 안됩니다. 내옆에 가라지때문에 힘들고 죽고싶다면 아직 영원한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것입니다. 내속에 가라지가 있는것을 인정하고 가만두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어느날 예리한 낫으로 가라지를 베러 오십니다. 아무리 휘둘러도 가라지만 베어집니다. 어떤 사건이 와도 내 욕심이 가지쳐지는 것이지 내 본질은 점점 더 성화되는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추수때의 구원받은 자의 모습, 천국에 입성한 자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가라지를 제대로 뽑지 못하면 알곡까지 뽑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Q.가만 두어야 할 가라지는 무엇입니까?
2.심판의 추수입니다. 즉 가라지의 추수입니다.
성도들은 주님께서 직접 심판하시지만, 불신자 악인은 천사가 집행합니다. 심판권은 예수께있지만 성부하나님 명령으로 두 천사도 예리한 낫을 가지고 제단으로부터 나온 성도들의 기도로 행해집니다. 성도들의 기도로 심판이 앞당겨지기도 하고 연기되기도 합니다. 주님이 들으시는 기도를 하고, 주님이 인정하는 눈물을 흘리는 기도를 해야 내속의 원수를 심판해주십니다. 악에 바쳐서 울고 미워서 울고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심판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오늘 포도송이는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너무 탐스럽게 익어 옆에 시들은 것은 안보입니다. 누구도 저 가라지의 악이 찼다고 생각을 못합니다. 낫을 휘두르니 포도송이도 살아남지 못하고 포도주 틀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건이 오면 진노의 포도주틀에서 휘청거리는 것입니다. 이땅에서 죽음을 경험하면 지옥가기 싫을텐데 잘먹고 잘살다보면 지옥을 우숩게 봅니다. 지옥문 앞에서 후회하고 고통스러운것은 내가 가라지이고 불에 사라지는것이 힘든것입니다. 이땅에서 감정과 육체의 고통을 당하는것은 복인 것입니다. 나중에 당할 고통을 지금 당해봄으로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당해보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가장 비참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에서 하나는 구원이고 하나는 심판입니다. 진노의 포도주틀에 던져지니 그대로 끝나는 것입니다. 미리 천국적응 훈련을 하는것이 심판의 추수입니다. 심판도 구원도 이땅에서 결정됩니다. 우리의 기도로 심판이 행해지기에 예리한낫 말씀을 가지고 열매도 맺어지고 심판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적용하여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것은 예수님을 믿는가? 영접하는가?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세상의 쾌락을 못 누릴까봐 두려워합니다. 내속에 가치관들이 심판받아야 합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를 귀하게 여기면 알곡이고 멸시하고 귀찮아하면 포도송이입니다. 포도송이하면 떠오르는 사람 아프리카 선교자 슈바이쳐입니다.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내 노력을 다 되고 존경받기에 예수님을 평생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죄가 안보였기 때문입니다. 슈바이쳐를 보면서 내가 예수 믿는것은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못 알아주고 죽을지라도 구원받는것은 노벨평화상과 비교도 안되는 것입니다.
Q.슈바이쳐는 끝까지 예수가 하나님이 신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 행위가 너무 대단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에게 마지막 날은 알곡입니까? 포도송이 입니까?
구원을 날입니까? 심판의 날입니까?
3.분별이 필요합니다.
심판에서 준비된 예리한 낫이 없으면 휘두르기가 어렵습니다. 참 선지자라면 거둘 때를 알고 곡식이 다 익었음을 알고 말씀의 낫을 던져야 합니다. 익기전에 결코 휘두르지 않는 주님처럼 알아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추수도 분별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분별하는것만큼 영적인 일은 없습니다. 목회도 사업도 결혼도 사람을 분별해야 실수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신 분은 금면류관을 쓰시고 예리한 낫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를 잘 지면 분별이 저절로 생깁니다. 불과 물에 담겨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예리한 낫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인내도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할때가 이르러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기 위해서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것입니다. 내 주제를 분별하면 남을 분별하는 것이 쉬어집니다. 내가 잘 되면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려면 담금질과 매질에 대가가 되어야 합니다.
4.주안에서 죽는 복을 허락하십니다.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고 안식하게 됩니다. 주님따라 순교하는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주안에서 순교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주밖에서 죽는 자들은 화가 있는것입니다. 날마다 죽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 죄가 없으니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