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4. 1 위한나 목장보고서(17)>
영원한 복음
일시 : 18. 4. 1 부활절
말씀 : 요한계시록 14장 6-13절
설교 : 김양재 목사님 Live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영원한 복음은 결론적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인데 Good News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영원한 복음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영원한 복음은 심판의 복음입니다.(6-7)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사단이 난리쳐도 교회는 승리한다와 연결되는 오늘의 본문은 또 다른 장면을 또 보여줍니다. 첫째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영원한 복음의 내용이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은 복음인데, 어떻게 심판의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복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한쪽에는 기쁜 소식이고 한쪽에서는 심판의 소식입니다. 교회는 돈이 많고 권세가 많고 이런 것이 기쁜 소식이 아니고 악이 물러가는 것이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그럼 어떻게 (악이) 물러가겠습니까? 복음이 기쁜 소식이기에 모든 것이 즐겁고 기쁘고 잘되고의 복음으로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발전하지 않고 좋으신 주님, 사랑사랑사랑의 주님, 축복의 주님만을 외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만을 기쁜 소식으로 듣습니다. 그러면 잘 되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고 뭐가 안 되면 감사의 내용이 없어지게 되고 감격도 식어지게 됩니다. 자신의 생활에 플러스(+) 알파(ampalpha) 정도의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보상만 기대하고 믿는 믿음은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 어느 목자님이 이렇게 나누셨습니다. 세상적인 권세를 바라보다 안 되니 보상 받기 위해 여행 사이트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믿음이 없는 희망은 무엇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될지 몰라서 오히려 인간을 절망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천국에 대한 희망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 삶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어떤 사람은 천국이 있든 없든나는 하나님 제대로 믿고 성경대로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맞는 것 같지만 이 경우도 욕망이 의지에 억눌리다보니 신앙생활에 소망이 없고 변화의 가능성도 점점 약화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세상의 염려와 걱정, 욕망으로 가득 찬 우리에게 은혜의 시온산에 어린양을 만나는 것보다는 오늘 본문처럼 강력한 심판을 만나는 것이 현재 구원을 가장 감격적으로 누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언제든지 단호하게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를 책임지는 사랑을 하기위해서 진노하십니다. 죄인인 우리를 선택하시고 대신 당신의 아들을 심판의 대상으로 제물로 삼아 죽이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진노의 의미를 깨달을 때 하나님 사랑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고 그분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내어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이제 위로에서 더나아가 하나님의 진노를 깊이 경험하게 되면 진정 위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원하던 원치 않았던 내 옆에 진노를 경험하며 오게 됩니다. 옆에서 어머니가 저를 안돌봐주니 진노였고 시집살이로 외롭고 슬플 때, 네가 왜 그렇게 하고 사냐? 이혼하고 네가 원하던 공부를 해라, 걸레질을 왜하고 있냐? 등등 숨이 안 쉬어지는 고난 가운데 주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후에도 종류가 다른 진노는 의롭고 성실하고 그 흔한 바람도 안 핀 남편이었습니다. 이 교회도 안 나가는 남편이 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데 네가 그러고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냐?며 이렇게 대놓고 참소하면 저는 속으로 분노하고 참소했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히 있었기에 저는 제가 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인데 나는 한시도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 사랑에 한계를 여실히 보았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지을 수도 없습니다. 날마다 눈을 뜨면 진노 가운데 겉과 속으로 서로서로를 분노하고 참소했습니다. 남편의 참소가 사단의 참소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 많은 눈물과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심판할 시간이 이르렀다고 했는데 심판 옆에 있는 영원한 복음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을 놓치면 안 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영원한 복음이 진노의 심판임이 믿어지십니까? 믿어집니까?
휘문은 그득그득 앉아 있는데 판교는 듬성듬성 앉아있습니다.
두 번째,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 없는 큰 성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8, 10절)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
이제 8절에서 바벨론이 모든 나라에게 먹인 진노의 포도주가 10절에서는 하나님의 분노의 포도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벨론은 가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무서운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네가 무섭다고 섬기던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대적 세력은 과거-현재-미래에 반드시 망할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먹인 이 진노의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심판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의 하수인으로 지금 바벨론이 핍박하고 미혹했지만, 우리는 그 바벨론에게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면 이것은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바벨론을 통해 오는 진노가 하나님께서 허락해서 온 진노인 줄을 알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저는 힘든 남편에게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힘든 것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이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나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요한복음 8장처럼 아비 마귀에게 난 자이기에 아무리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식이라도 마귀일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상대방이 주는 고통을 놓고 이 고통을 주는 이 아무개에게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날마다 마귀에서 구원해달라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과 마귀가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마귀를 상대할 군번이 아니십니다. 그러니깐 마귀는 결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진노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그러면 나의 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제 저는 착하고 믿음이 좋고 예의 바르고 죄라고는 없는 줄 알았는데 결혼이라는 심판을 통해서 제가 교회를 다니며 반주를 10년을 했지만, 사명이라고는 없고 야망에 가득차서 얼마나 돈을 좋아하고 교만하고 생색많고 차별을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무너져 내속의 음녀 바벨론과 같은 나의 악을 보지 못했다면 결혼 생활은 유지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잘났는데 그렇게 무시 받는 결혼생활을 왜 해야 되겠습니까? 자기의 악을 보지 못하는 자는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관점이 바뀌니 나의 악을 보게 해준 남편이 너무 고마워서 이혼은 내 사전에 없고 더 나가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잘 들으세요. 누구 때문이라고 날마다 미워하면서 이 고통에서 구원 받기 원한다고 하는 것은 마귀에게서 구원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복음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면 지난 주 설교에서 주기철 목사님이 기가 막힌 고문가운데서 본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생각하셨을까? 본인의 악을 보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흰 눈보다도~ 우리는 점점 더 희어져 가는 것이 성도의 성숙이기 때문에 고통이 올수록 자신의 악이 보입니다. 저 또한 목회를 하면서 수없는 사건이 오고 갔지만, 항상 결론은 저의 악이 보였습니다.
시에스율리스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악 중에 오직 고통만이 살균 소독된 악이다 일단 끝난 고통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그런데 바로 잡지 잘못과 회개하지 않은 죄는 그 본성 상 새로운 잘못과 새로운 죄를 끊임없이 흘려 내보내는 원천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제악이 보이니깐 제 생명을 내놓고 남편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남편의 몸이 무너지는 심판을 통해 상상치도 못하게 회개를 하고 영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자는 몸을 치는 것 밖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완벽주의에 부모님에게는 효자고 저에게는 바람 한번 안 핀 열부에 아이들만 생각하는 자부 남편에게서 몸이 무너지는 진노의 때는 영원한 복음의 때가 되게 하셨습니다.
***적용해보세요. 고통을 주는 아무개에게서 구원해달라고 하십니까? 이 고통을 주신 하나님의 진노에서구원해달라고 기도하십니까? 힘들게 하는 것은 마귀임이 분명합니다.
세 번째, 영원한 복음은 이 세상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9-11)
그것은 쉼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우리가 13장에서666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했는데 결국 쉼을 얻지 못하리라가 결론입니다. 이마에 그 짐승과 우상에게 표를 받으면 이 짐승에게 표를 받으면 세상 가친관이 심어지잖아요? 11절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가치관인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고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가 모두가 현재형으로 이 땅에서 현재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짐승의 가치관을 받으면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면 이렇게 우상에게경배하고 있으면 10절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미래의 말 표현이죠? 무너졌도다부터 마시리니까지 짐승의 가치관에는 과거-현재-미래 모두 심판이 행해졌고 행해지고 행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 문자 그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던 남편은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운 의사였고 우리는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이 세상 가치관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심판이 되어서 밤낮 쉼을 얻지 못함을 보았습니다. 밤마다 술을 마시며 무엇인가를 잊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왜 그런지 안타까웠지만 지나가보면 정죄감은 심한데 자신의 악이 보이지 않으니 늘 안식이 없어서 화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감사한 환경에서 늘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습니다. 10절에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다고 했는데 물과 전혀 섞이지 않는 독한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독한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무시했던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물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다고 합니다. 제가 항암을 겪어 보니 그것은 유황불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남편도 하루 만에 유황불에 들어가는 말기암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독한 심판이었습니다.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자 주승준 교수가 할아버지는 그렇게 순교로 단번에 가셨지만, 평생 살면서 날마다 삶 가운데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순교 같다고 그랬는데 항암도 단번에 끝내야 되겠는데 우리 이관희 집사님 28번하고도 또 다시 재발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지 여러분들 상상을 못하시는데 이관희 집사님을 향한 사랑의 싸인이고 지옥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끝나지 않는 것, 그 끝나지 않는
그래서 마가복음 9장 48절에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유황불 같은 암을 우리 부부에게 암을 겪게 한 것은 심판의 축복입니다. 남편은 하루 만에 저는 여섯 차례했지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옥이 있다는 것, 사명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때 요한복음 5장 29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래서 이제 똑같은 유황불 고통 가운데서 누구는 심판의 부활로 누구는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잖아요? 남편은 육이 무너져 영혼이 구원 되어 생명의 부활로 나왔습니다. 하루 만에 간 사람은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남편 바벨론은 무너졌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여전히 살아있는 내 속에 음녀 바벨론이었습니다. 이것을 회개케 하시기 위하여서 항암이나 항암보다 더 높이 솟은 산이 끊임없이 저에게 와서 진노를 계속해서 경험케 하시는데 이것이 계속되는 심판의 축복입니다.
네 번째, 영원한 복음은 인내의 복음입니다. (12)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제가 하나님에 계명으로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인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쉬우면 인내라는 표현을 했겠습니까? 믿지도 않는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창성한 것을 봐야 하니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믿음과 계명과 순종과 동일시 되는 것을 봅니다. 믿음을 단순히 고통을 면하는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가인의 표를 받은 세상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성도를 여러모양으로 핍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 참으심은 거룩한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나눠주셔야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성품입니다. (13절에도 나오는데 말이죠) 바울도 이러한 뜻에서 인내를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로 분류 했습니다. 내 노력 내려놓고 여호와께서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인내입니다. 내 노력으로 인내하는 것은 저도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입니다. 제 속에 바벨론 세력이 또아리를 트고 있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가난도 아련한 옛 이야기 같고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인류를 위해 살았던 것도 남아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묻어난 것이 아니라 제가 무뎌서 상처를 주는 일도 많습니다. 여전히 피해의식을 표출하는 것은 큰 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주제를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저는 참 인내를 잘합니다. 이것이 늘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조건 참다 보면, 화가 나도 참다보면, 이것이 믿음인가 성품인가? 교회와 제가 오버랩 되면서 잘 참는 나의 이미지를 위한 욕심으로 참아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이 있지 않은가싶습니다. 믿음이라면왜 불안하겠습니까? 나도 남도 속는 것이 나의 인내인 것 같습니다. 설교 준비를 아무리해도 내 노력으로 하려니 완벽주의 있어 한 번도 만족을 못합니다. 늘 부족해 보입니다. 밤을 세고 늘 제대로 못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허둥대고 오느라 사람 없으면 과속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강단에 서면 또 그런 것이 표가 하나도 안 납니다. 그것이 이처럼 앞뒤가 안 맞고 늘 힘든데 힘든 것이 늘 안 보이는 은사를 가졌다고 했잖아요? 이것을 계속 하다 보니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앞뒤가 안 맞고 이것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늘 이 부분을 회개를 해도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내 노력으로 하는 부분이 고쳐지지 않아서 암까지 주셨는데, 이게 왜 그런가? 중고등학교 입시를 치르면서 살아남아야 하니, 늘 잘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직도 제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설교 준비할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것 같고 내일 피아노 시험을 보는 사람 같이 마지막 같이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아니지 않나? 겉으로 보기엔 저의 인내는9단입니다. 제가 결론적으로 보면 잘 참는 사람이 욕심이 많더라구요. 화를 내는 사람이 도리어 괜찮습니다. 목사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에 선수니깐, 오늘잘 참는 사람이 얼마나 욕심쟁이인가. 그래서 우리 남편이 화를 내면 저는 잘 참으니 저만 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니깐. 그런데 속으로 그런 것을 하나도 인정도 안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도불구하고 제가 게으른 것도 아닙니다. 일주일내내 준비를 했습니다. 어제도 3시간 반 밖에 못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또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프린터가 안되서 껐다 켰다 하느라 또 허둥대고 왔습니다. 그래서 정말 나는 구제할 길이 없는 인생이구나. 그래서 정말 내 노력을 내려놓기 원해서 오픈을 하니깐 여러분들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이런 수고를 고치고 싶습니다.
# 어떤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 설교를 3번이상 안 듣는데 이번 주 황초원 설교를 3번 들었다고 리플을 달았습니다. 속지 않는 주님이시기에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황송영 초원님은 삶으로 말하니, 또 말씀을 줄줄 꿰고 가난해도 스펙이 없어도 발달장애 아들을 26년 이상 수치를 당하면서 그것도 청소년부를13년을기쁨으로섬기니깐 영원한 복음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으신 것입니다. 이번 주 삶으로 얘기를 하니깐 너무너무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제가 낙심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교회는 성도가 저보다 훌륭해져서 제가 그만 둘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인내는 내 노력입니까? 하나님을 기다리는 인내입니까?
# 남편이 회개를 하고 영원한 복음에 이르렀는데 그가 천국에 간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저는 졸지에 30대 과부가 되었는데 가인의 표를 받은 세상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진노의 심판과 같은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또 하나님의 도장을 받은 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인내한 것이 아닌 것은 말씀으로 적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도록 저를 업어 가시고 동행주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인내를 못하는데 말씀으로 인내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새로 오신 분이나 요즘오신 분들은 듣지 못했기에 저의 큐티 간증을 합니다. 저는 말씀으로 저에게 온 심판을 해석했습니다. 남편의 시신 앞에서 저는 큐티 말씀을 폈습니다.
에스겔 18장 28-32절 까지가 그날의 큐티 본문 이었습니다.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우리 남편인 간 날 정말 천국 갔다고 정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올수 있냐고, 하나님은 정말 공평하시지 못 하시다고 하니깐 악인이 한 가지 선을 행하고 산 것도 공평하고 예수를 배반하고 부인하고 죽는 것도 공평하다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정확히 말씀해주셨습니다. 31절 그가 맘과 영혼을 새롭게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하느냐. 저에게 이 말씀이 나팔처럼 들렸습니다. 네가 남편이 죽었다고 슬퍼한다면, 네가 남편의 구원을 하나도 기뻐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너 목숨 걸고 구원 위해서기도한다며. 이렇게 데려가신 날 제가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니깐, 그야말로 과부의 때를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하니깐 그날 말씀으로 하나님은 질문과 답을 말씀에서 다 해주셨습니다. 내가 왜 악인에게 죽는 것을 왜 기뻐하랴? 그가 사는 것을 내가 왜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제 질문, 답을 다해주셨습니다. 자립신앙과 말씀 묵상이 얼마나 영원한 복음을 가지는데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에스겔 20장 1-3절 중에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게 되니깐, 이제 에스겔 선지자에게 물으려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내게 묻기를 용납하지 않으리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 너희들이 망해서 왔냐? 놀라서 왔냐? 모든 예배시간마다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진작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복음이 임해야 되겠는데 갑자기 망했는데 이 이야기가 무엇인가 보면 그때부터 성경 읽으면 깨달아지겠습니까? 미리미리 읽어둔 말씀이 아니면 바람을 피었다고, 부도가 났다고 누가 죽었다고 그때 성경을 보면 깨달아집니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릅니다. 우리들교회 성도들이 끊임없이 간증하는 것은 날마다 읽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묵상, 큐티는 대단한 위력입니다. 저 또한 날마다 읽는 성경이 있었기에 어떻게 남편에게 구원이 심판으로 임했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남편의 주홍 같은 죄에도 택한 자였기 때문에 구원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묵상하던 저는 큐티 말씀을 폈습니다. 우리의 남편의 죄악상을 밝혀주셨습니다.
19장 3절을 보면,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요시야의 세 아들이 왕자의 교육을 받고 사람을 삼켰다고 했습니다. 문자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은 남편이 낙태의 죄를 언급하셨습니다. 20장 전체는 약속의 장이지만, 눈으로 우상을 섬기고 마음으로 우상을 섬겼고 안식일을 더럽혔고 조상의 율례를 좇았고 자녀우상을 섬겼고 등의 죄악상이 다 나왔습니다. 높은 산 푸른 나무로 인도하시니 경록케하는 재물을 올렸대요. 우리 남편하고 참 같은데, 너희가 드리는 산당 예배가 무엇이냐? 기복예배가 아니냐? 이러시는 것인데, 죄책감과 기복으로 남편은 새 돈만 있으면 모아서 헌금하라고 주었습니다.
그리고 32절에는 목석을 숭배하리라, 가기 전에 나는 불교의 목탁소리가 마음에 든단 말이야 하면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32절 마지막에 너희가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행위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잘나서 천국 갔다고 할까봐 남편의 죄를 세세하게 집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만 부르짖으며 전도를 했더니 내 이름 여호와 이름 때문에 너희들을 벌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야 말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 아닙니까? 오직 예수를 믿으면서 구원받게 하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에스겔 24장 15절 27절 까지 하나님은 에스겔 눈에 기뻐하는 아내를 빼앗아 가십니다. 그러면서 에스겔에게 울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럽니까? 더 큰 슬픔이 올라오면 내 가족을 놓고 울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죽은 날 나라가 망했습니다. 어떻게 울겠습니까?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이 망하고 자기 아내가 죽는 고통이 있어야 했습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 말씀은 자기 아내 생명과 바꾼 것입니다. 포로 된 자들에게 에스겔에게서 나온 말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 에스겔에게 너무나 엄청난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27절에
(27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예루살렘이 망했다는 소식이 확인되면서 에스겔이 입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말씀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사로잡힌 자에게 입이 열리게 된 것처럼 망하고 각자의 사로잡힌 것이 있는 자에게 저의 말씀이 뚫고 들어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천국가고 그때부터 제 입이 열렸습니다. 지금부터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발바닥도 못 따라갈 에스겔 선지자가 저의 표징이 되어주셔서 다른 사람에게 표징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제 입이 열렸습니다. 에스겔을 묵상하던 저는 그때 30대였잖아요. 그때 평신도가 어려운 에스겔 말씀을 묵상했었는데 1장부터 48장 까지 그 모두 제 인생과 연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말씀이 제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30년간 에스겔 얘기를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 얘기를 들어보세요. 그래서 제가 인내해서 살아났고 영원한 복음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건에서 심판이 복음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1장부터 에스겔이 서른 살에 여호와긴이 사로잡힌 지 5년 만에 특별히 에스겔에게 말씀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부시야의 아들 나 제사장 에스겔에게라고 하였는데, 저도 시집살이 5년 만에 말씀이 임했습니다. 2장에서는 가시와 찔레와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3장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벙어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똑같지 않습니까? 무리가 너를 줄로 동여 매노니, 저 또한 동여 매여 있었습니다. 4장에 너무 힘들어서 나는 내 영혼을 더럽힌 적이 없어요. 어떻게 인분 불에 떡을 구워 먹을 수 가 있어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하나님! 제가 얼마나 착하고 믿음 좋고 랄랄라 했습니다. 하나님 미안하셨는지, 그러냐, 새똥으로 감해 줄게. 그래서 인분 불을 새똥으로 감해주셨어요. 이 모든 것이 간증거리입니다. 48장까지 가지 않아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개인의 거룩을 위하여 에스겔을 훈련시키시더니 8장에서는 부패한 예루살렘의 성전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교회의 기도제목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악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를 위해 기도할 자격도 없습니다. 헌신할 자격도 없습니다. 나를 위한 기도도 할 줄 모릅니다. 에스겔을 보니 개인의 거룩을 위해서 8장부터 성전의 거룩을 위해 보였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성전이 우상으로 가득 찼습니다. 성전을 보면서 머리를 잡아끌고 에스겔을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훈련이 되니 머리 톨 한 올만 잡아도 말씀을 듣고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악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땅바닥에 지남철(자석)을 붙여 놨기 때문에 아무리 머리를 잡아 끌려해도 머리털 다 뽑아도 올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이 너무 좋아서입니다. 훈련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딱딱 들리죠? 그런 사람이 헌신하고 자원하고 봉사할 때 이것이 바로 영원한 복음의 성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말씀으로 왔는데 에스겔도 아내를 하루 아침에 데려가시더니 저도 18장에 그가 천국 갔다고 얘기하시고 24장에는 우리 남편 데려가시고 며칠 후에 에스겔의 아내를 하루 아침에 데려가시고 표징의 인생을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남편 한 사람이 구원이 되었는데 25장부터는 전 세계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잖아요? 전세계로 복음을 전하라 다녔습니다. 33장으로는 파수꾼으로 보내셔서 전하지 않은 것을 피 값을 찾겠다고 하시니깐 저는 30대 혼자가 되었으니깐, 저는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서 교양으로 잘 살아야하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에게 피 값을 찾겠다고 협박을 하시니 다시 또 파수꾼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4장에는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하셨는데, 집사시절 칼세미나 목회자세미나를 다녔습니다. 17장에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고 그 이스라엘 유다가 성경 전체의 원수인데 둘다 망하니깐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망해야지 부부간에 하나가 되고 형제간에 하나가 되고 자녀 간에도 하나가 될 줄을 믿습니다. 돈이 있으면 절대로 하나가 못되더라구요. 제가 그래서 망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 부부와 부모, 형제들이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43장에서는 동편에 하나님의 영광이 오는 날 휘문고등학교 동문을 쓰는 리들 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모두 모든 죄를 보게 하는 교회라고 해주셨습니다. 47장에서는 동문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발목과 허리를 적시고 아다바 바다까지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고기가 살고 심히 많으리리, 강가에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고난이 약재료가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줍니다. 14절에는 너희는 공평하게 나눠 기업을 삼으라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 교회만 부흥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목욕탕 큐티 목회 세미나를 통해서 우리들 교회의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전 마지막 48장에 여호와 삼마라, 여호와 거기 계시다라고 명명한 것처럼 오직 에스겔 성전만 천국 성전인데 우리들 교회 도 여호와 삼마라가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말씀으로 인내를 이루게 하신 영원한 복음의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죽음의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13)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사람들은 힘든 일이 갑자기 생기면 상대방을 사랑해서 애통하기 보다는 죽음 자체를 슬퍼합니다. 죽음이 주는 사명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가 왜 복음이 있나요? 내가 죽음을 향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근원적 불안을 형성합니다. 불안 때문에 끝까지 좌절하고 의심하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못합니다. 타인의 삶을 적절히 인정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죽음을자연스런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죽음을 죄에 대한 끔찍한 심판이라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심판자가 아니며 은혜로운 심판자이십니다. 죽음마저도 그의 권세 아래 있는 자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 끝자락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심판자로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우리 자리에서 우리 대신 고통과 심판을 받게 하셨고 부활을 통해 인간의 한계인 죽음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매일매일 우리를 불안하게 좌절하게 만드는 죽음에서 오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무력화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죽음으로 한계 지어진 것을 유한한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긍정하며 죽음 넘어 계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날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하루하루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는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징계는 자식을 만들기 위해 용광로에 집어넣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연단을 잘 받아서 졸업을 시켜주시는 것이니, 수고 했으니 이제는 쉬라고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안에 죽는 것이고 가장 보편적인 복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졸업을 못해서 수고하는 인생이 불쌍한 인생이고 쉬는 인생이 복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이 아니라 이 땅에서 수고를 그치고 쉬는 안식의 양과 질이 점점 커지고 성숙되어지기 위해 이 세상 가치관이 무너지라고 진노를 깊이 경험케 하시는 것입니다.
# 그럼 남편이 주안에서 죽는 자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저의 기도 응답으로 심판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셨습니다. 생명의 부활을 영원한 복음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남편의 독한 암을 통해서 육의 마지막 심판이 바로 앞에 있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80년대 가족 계획 정책에 따라 낙태 수술을 했던 남편은 장로님의 아들이었지만, 45년 만에 죽기 5시간 전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간기능 지정 병원이었던 우리 병원에서 늘 간염 검사를 했지만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간암말기로 육의 심판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의 완전 주일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생사화복은 오직 주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밤새 남편 옆에서 회개하지 않고 천국 가지 않으면 애들을 데리고 살 소망이 없다고 울부짖으니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성령님이 함께한 회개를 맛본 저는 입으로 회개하는 것 같아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남편은 목사님이 오시니 살려주세요, 기적을 베풀어주세요.가 아니라 목사님께서 오늘 천국 문 앞에 서셨습니다. 어떻게 들어가시겠습니까? 물었더니 산소호흡기 수혈로 마치 십자가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은 처음 본 목사님께 예수 이름으로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제 직업을 아십니까? 제가 믿음이 없어서 교회에 안 나간 것이 아니고 죄를 지어서 교회를 못 간 것입니다.라고 기적적으로 낙태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를 맞았다고 살려줘도 감사하고 그렇지 않아도 할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들 가운데 행위로 천국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 천국 백성이 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목사님을 따라서 이제 영접을 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저의 주인이었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제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연약한 인생입니다. 천국 가는 날까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생명의 부활로 남편은 영원한 복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세 시간 후에 천국으로 입성을 했습니다.
저도 이러한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30년 넘게 많은 사람을 살리며 왔습니다. 남편은 복이 많아서 완벽하게 회개하고 주 안에서 죽었습니다. 이것보다 복이 있을까요? 아픈데 하루 몇 시간만 투병을 하고 주님 영접하고 보고 싶은 사람 다 보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남편은 영원한 영광의 복음 소유자답게 마지막에 쓰러지면서 갈 때까지 오직 제 걱정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장례식까지 제가 할 것을 걱정하면서 걱정 말라고 사무장이랑 간호사가 힘을 합쳐 하면 된다고 있는 대로 사랑의 모습을 보이며 영원한 복음의 나라에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밖에 모르는 남편인데, 완전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생전에 이혼하려고 했고 자살기도도 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빈약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환경에서도 이혼도 자살도 하면 안 됩니다. 영원한 복음으로 입성하면 이렇게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복음으로 간 그에게 하나도 부러운 것이 없고 두려운 것이 없고 소풍가는 것처럼 그렇게 천국 가는 모습, 영원한 복음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적용을 해보시면, 내 옆에 진노로 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늘 주 안에서 죽는 것이 상이고 복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아멘하시면, 이 세상에서도 쉼이 있습니다. 저는 수고를 그치고 쉬라고 하시면 아멘 하겠습니다. 우리 남편은 그렇게 고백하고 갔습니다. 30년 동안 살아남아 무슨 호강을 했겠습니까? 정말 주안에 죽는 자가 정말 복이 있는 자 같습니다. 누구 상이 크다고 말할 것이 못됩니다. 제가 죄가 많고 욕심이 많으니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욕심이 많은 우리 남편 빨리 데려가셨어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욕심이 없더라구요. 화 안내는 사람이 더 징한 인간, 회개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저를 보면 울화통이 터졌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살아남아 이 죄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가 얼마나 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죽음에 떨지 마시고 쉬라 하시니 아멘 정말 영원한 복음으로 들어가는 축복이다라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육은 죽어도 영은 죽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안 들으면 영원한 불과 유황으로 가는 것입니다. 진노를 깊이 만남으로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영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나의 사건은 나의 결론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깊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온산인가, 불과 유황의 지옥인가를 여러분들이 택해야 합니다. 영원한 복음은 오늘 심판의 복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판의 내용은 보이는 성이 무너진다는 것이래요. 세상 가치관도 세세토록 고난의 연기가 올라와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인내로 지켜가야 하는 말씀 묵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원한 복음으로 초대하길 원합니다. 예수 나를 오라하네 찬양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예수 나를 오라하네
예수 나를 오라하네 예수 나를 오라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를 따라 가려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가려하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가려네
주의 인도하신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보시고 크신 영광 보여주며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 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기도제목
여러분 지금 진노의 심판 가운데 있습니까? 진노 옆에 있는 영원한 복음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아직도 우리의 세상 가치관과 보이는 큰 성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회개하길 바랍니다. 내 문제는 내 삶의 결론이라고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내 옆에 진노를 깊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노 옆에 영원한 복음이 되게 해달라고 주님 부르며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세상은 말하기도 싫은 진노의 심판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진노의 심판으로 영원한 복음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사건 가운데 나를 구원해 달라고 하는 것은 마귀에게서 구원해달라고 한 것임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운데서 나의 악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살아있어서 제 속에 남아있는 바벨론의 세력들이 참으로 내 속에 내 노력으로 한 인내로 착각하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만은 사람들을 위하여서 날마다 나도 속고 남도 속는 믿음인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러나 제가 부족하고 오늘 제가 너무나도 연약한 것을 고백하게 하는 인생을 날마다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가장 이 세상에서 제 자신이 가장 어려운 것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날마다 서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 생명 제 대신 남편이 가서 그로인해 제가 덤으로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러나 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서서 전합니다. 에스겔에게 아내를 복음으로 바꾸셨듯이 30년 동안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게 한 이 마음을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함나이다. 아멘
정블리 목사님
과 함께 한 나눔 보고서
#사랑만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일시 : 18. 4. 1. 부활절
장소 : 6층나눔실
참석 : 정정환 목사님, 위한나, 최민정, 윤현경,이은영
나눔 : 오늘은 정정환 목사님께서 저희 목장을 탐방해주셨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갑작스럽게 이번 주일에 탐방 오신다고 하셔서 긴장되었습니다. 마치 교무실에 끌려가는 학생들 모냥...그런데 모든 일에는우연이 없다고 목사님의 탐방으로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렸습니다. 반면, 목사님께서는 탐방 가운데 가장힘든 시간이 되지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목사님,감사합니다^^ 나눔은 제가 열심히 기록한 것을 토대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이럴 거면 녹음을 해둘걸.. 정말 적느라....저의한계를 여실히경험했습니다. 생략된 부분이 있어서 우리 목장 식구들에게 이 보고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열심노력 내려 놓고, 목장 식구들에게 그 당시상황이 함께오버랩되어잘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1. 처음은 어색한 자기소개
은영 : 교회에 처음 다니게 된 것은 2010년, 우리들 교회에 온 것은 2015년 11월 15일 전도축제입니다.두 교회 모두 처음 저를 전도해준 언니의 인도로 다니게 되었습니다.현재 대학원 다니고 있고 대학원내에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습니다.
현경 : 우리들 교회는 현재 어머니, 동생과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요즘 교회 오기가 힘듭니다. 직장 근무 상 주일 성수하기 힘들 때도 많습니다.
민정 : 우리들 교회에는 2009년에 왔습니다. (제가 그만... 얘기에 집중하느라 기록을 못 했네요)
한나 : 2007년 고모의 권유로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너무 오래 되어 이제는 장년부에 가고 싶다 라고 들립니다^^
(처음에 너무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는데,목소리가 차분하고 정리정돈 된 느낌, 마치 라디오를 듣고 있는 듯 한 한나 언니의 목소리로 한 바탕 웃고 나니 분위기가 전환되었습니다.)
목사님 :모두들 저보다 우리들 교회에 온지 오래된것같습니다. 저는직장생활을10년 했었고 교회에 온지 이제8년 되었습니다.장년부와 청년부로 왔다갔다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청년부 사역횟수는 3년 차인데 여러분들을 잘 모릅니다. (··) 건축사역과 행정 책임자로 판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역은 우리들 교회가 처음입니다. 온누리 교회에서 청년으로 있다가 결혼을 하고 공채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는 큰 이적을 누리고 있습니다. 매주 탐방을 다니는데 이렇게라도 우리 청년들을 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2. 말씀쏙쏙요약!
말씀 요약은 늘 제 몫인데 어쩜 오늘 제가 제대로 요약 못한 것을아시고 목사님께서 요약을 해주셨습니다.^^ 귀에 쏙쏙 박히는 듯 했습니다. 요약은 이렇게 라는 정석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 요약은 생략.. 저희만 누리는 걸로)
3. 쉼이 없었던나눔 현장
1)목사님의귀한나눔
정정환 목사님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성금요일 기도회를 마치고 아내에게 연락이 왔는데 외사촌 형 부인분이 돌아가셨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외사촌 형의 집안은 의사집안으로 믿지 않는 가정입니다. 정말 세상 666의 가치관으로 빈틈이 없어 보이는 집안이었습니다. 외사촌 형도 세상적으로 잘나가고 정말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집안이었습니다. 바람 사건도 없었고 힘든 사건이 없었던 화기애애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갓집을 보면 주눅이 들었습니다. 예수 믿으라는 말을 전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형수님의 장례로 대구에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친지들의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형님의 아내 분은 지식과 경험, 스펙으로도 쓸 수 없는 골수암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소망이 없겠구나했습니다. 그동안 복음을 전하지 못하다가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나이 드신 삼촌과 어르신들 앞에서 별 인생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들 앞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으셔야합니다'고 했는데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면서,저는 친척들이바벨론 성이 무너지고 위험한 상황인데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낙담이 되기도 하였지만,저 또한 그동안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2) 민정이의 귀한나눔
민정 : 싱가폴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배우고 오니 목장에 오지 않고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리바리 공부할 것을 챙겨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말씀진노의 사건이 심판으로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가족 구원을 위해서 기도도 하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으며, 저 혼자 잘 살려는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인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진노의 사건 이후 뇌경색이 오셨습니다.외적인 건강을 그렇게 챙기셨던 분인데 스트레스도 없어 보이신 거 같은데뇌경색이 왔다고 합니다. 아버지로 인해힘드신어머니께 목사님 책을 권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오지 않는 가족으로 인하여 힘듦이 있습니다.
목사님 : 저도 앞서 이야기한 사건을 겪고 나서 그동안 제가예수님 믿고나라도 잘 살려는 이기적인 모습이 있었다는 것에 반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하고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역사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어떠하든지 전해야 합니다. 구원으로 인도하지 않는 것과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피상적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역자이지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엔 언제나내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욕심을 위해 자기 열심을 합니다. 목사님께서도 이야기 하셨듯이 설교준비는 구원의 애통함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고치고 또 고치셨다고 하셨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인정받고 취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필요한 것이지만 신앙은 이타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신앙, 자기중심적 신앙, 구원에 무관심한 신앙은 적용이 없는 것입니다. 적용 없이 무관심하면 결국은 악으로 갑니다. 내 자신만 사랑했던 것에서 회개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적용이 생길 것입니다. 애통한 마음이 없어서 장례식에서 계속 타이밍만 봤습니다. 메시지는 전하지 않고 딴 얘기만 하다가 타이밍이 맞아서 전하게 되었습니다.
내 신앙생활과 내 중심적 고백과 같이 이기적인 신앙을 하면 자기 틀에서 벗어 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누리고 싶고 취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을텐데 이것을 누리고 취해도 더 끊임없이 누리고 취하고 싶어 합니다.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이 없게 됩니다. 관계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구원에 귀 기울일 때 일하는 것이 동기부여 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신앙을 도구하게 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려 하고 판단하려 합니다. 그쪽으로 완전 '어그리' 합니다. 저는 10년 직장생활하면서 자기 개발에 빠져있었습니다. 핵심은 세상성공이었습니다. 목적이 되면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창의적이게 되는 방법은 이타적인 것에 있습니다.
오늘 민정자매가 교회에 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하나님께서 눈을 돌리길 원하셨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올 것입니다. 저도 한 때, 아웃리치를 가지 않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복을 주십니다. 청년 때부터 깨달아야 하나님께 충성(인내)할 수 있습니다. 황송영 초원지기님과 같은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교회 오시는 것은 민정에게 달려있습니다.
3) 현경이의 귀한 나눔
현경 :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받았는데 저는 욕심이 없다고 처방해주었습니다. 현재 저희 집은 현재 이사문제가 있어 금전적 문제로 부모님께 제가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데 생색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취직 잘 해서 잘 벌어 어머니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 성공만을 생각하게 되고 제 노력은 그냥 열심인 것 같고 허무하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도 혼나는 기분이 들고 항상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듣기 싫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목장 언니들을 보러 나오고 있습니다.
목사님 : 직장생활 힘든 것이 있습니까? 상담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경 : 재밌는 게 없고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 부딪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바벨론 가치관이라서 힘이 듭니다. 저희는 담임 목사님 수준까지 못 미치니 부딪히며 가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지난 목자 모임에 갔을 때, 즐거워하고 있는가를 질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성숙되어 간다는 것은 인생의 굴곡 간격을 점점 좁혀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착각과 오해들이 수정되어져 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이죄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러나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존중하고 인정 하시고 연약함을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이도저도 안될 때 예배에 올인 합니다. 우리는 인본주의가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집중을 해봅니다.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은 내 생각을 품어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예배로 많이 회복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내하시고 설득해가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벌주시는 분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연연해선 안됩니다. 하나님과 연결해야 합니다. 저는 하루는 새벽큐티를 잘 하고 갔는데 회사에서 갈등이 생겨 바벨론 상사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충성과 정직입니다. 시간과 돈에 있어서 정직해야합니다. 자신의 능력보다 태도인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로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하는가
돈과 시간에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면 분별하게 됩니다. 시간과 돈에도 정직해시고 만나는 사람에게 충성을 해야 합니다. 복음에 방해되는 말과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의 태도로 살아간다면 해야 할 일들이 생깁니다. 들은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갈등에서 화해의 적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을 차지하고 싶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적용하고 그것이 쌓이면 하나님께서 주신 조각들이 퍼즐로 맞춰져 사명으로 가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이탈하고 싶고 불순종하고 싶은, 즉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들이 해결됩니다. 일에 작은 보람을 성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을 책임지는 것도 욕심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만 감사보다는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말씀과 적용을 통해 감사가 나오는데 그렇게 하려면 나에게 주신 것을 옳소이다라고 인정해야 감사가 나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사람/사건/환경을 주셨는가를 생각하고 원망하면 감사가 없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 사건, 환경에서 어떤 적용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잘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나를 설득해가시고 나를 위해 오래 참으신 분임이 깨달아집니다. 또 하나님께서 늘 위로보다는 예배로 현경자매의 자립신앙을 키워 가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에 대해서 감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인정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땅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위로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넘어진 사건을 고백하고 적용하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멀리서 산을 바라보면 대충 나무의 크기 생김새를 짐작만 합니다. 그러나 산에 오르면 나무의 크기와 숨결, 냄새를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공동체 소에서 섬김과 나눔, 봉사를 하다보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이 보여 집니다. 교통 신호를 알아야 운전을 할 수 있듯이 신앙에서도 말씀을 알고 깨달아지면 보여 지고 누리는 것이 있습니다. 육적 삶에 갇혀 있으면 누리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경험의 한계 속에서 말씀이 깨달아지면 다른 사람을 상담할 수 있고 신앙이 넓혀지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공동체를 통해서 이타적인 신앙으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4) 한나언니의 귀한 나눔
한나 : 현재 잘 살고 있지 못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말씀과 기도 학교 일들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육도 교통사고 이후 나아짐이 없어 힘듭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환경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너무 무섭습니다.
목사님 : 사람에 대한 미움이 있습니까?
한나 : 밉지는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합니다. 교회에 오면 심장이 쿵쿵 내려앉고 숨이 막히는 증세가 있습니다.
목사님 :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이 있습니까? 말씀이 읽고 지나가면서 해석과 깨달음 감사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한나 : 하나님은 따뜻하신 분입니다. 큐티를 하면..저는 정말 정죄감이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늘 용서하신다고 합니다. .
목사님 : 대인기피의 문제. 저는 사역을 하고 있지만, 원래 성향이 혼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목사가 되어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자매들을 피하기 위해 자매가 길에 있으면 그 길을 돌아서 갈 정도로 자매의 눈도 잘 못 마주쳤습니다. 한나 자매는 사람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직장과 공동체에서 힘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신뢰하고 의지했던, 지지했던 사람으로부터 오는 실망과 갈등, 상처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럴수록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와 어그러짐의 회복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관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먼저,관계 속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깨달음과 교훈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자유해져야 합니다. 토요일에는 결혼 예식이 있었는데 예식 후 산책을 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사랑할 시간도 부족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분노뿐이었는데 이로 인해 하나님 사랑 깨닫게 되니 내가 사랑이 없는 모습이 감당이 안됐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즉, 처음 끝까지 하나님 사랑 이야기입니다. 빈 잔을 채우기 위해서는 바닷가에 잔을 집어 놓고 빼야 금방 채울 수 있는데, 그런데 저는 그동안 졸졸 흐르는 물에 물을 받았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욕조 속에서 몸을 담그니 시선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1)예배를 통해 말씀을 읽고 하나님으로 그 시선을 옮기게 하셔서 2)그 사건과 상황을 묵상하고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모두 하나님 관심은 나라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나를 거룩하고 성숙하게 하시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을 살리게 하시는 일임을 아셔야 합니다. 사건과 사람에서 시선을 옮겨 사랑하면서 살기도 시간이 짧은데 내가 왜 증오와 미움으로 살았을까? 내가 나누고 섬기고 사랑해야 할 시간인데 시간을 낭비했구나를 생각했습니다. 형수의 죽음으로 제가 살고 있는 것이 기적이고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 기적 같다고 느낍니다. 제가 이 자리 앉아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내 공로가 아닌 십자가의 고통과 사랑이 깨달아져야 달라집니다. 구속사 관점이 깨달아져야 달라집니다.
하나님 진노 사건 옆에 영원한 복음이 있습니다. 영원한 복음으로 인하여 내가 숨 쉬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은 깨닫는 만큼 아는 만큼 보여 집니다. 깨닫고 알기 위해서 우리는 너무 귀한 시간에 하나님 계명과 예수님의 증거를 바라보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힘을 많이 빼시고 고정관념을 깨트리십니다. 우리의 육의 가치관이 허물어지는 사건은 축복입니다.
저는 치리사건을 통해 제가 정말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었던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깨지고 부딪혀야 바벨론은 무너집니다. 내 자아가 깨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성소 휘장이 찢겨진 것처럼 내 완전한 자아가 찢겨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예배로, 말씀으로 저를 설득 시켜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무력이 아닌 오래 참으심으로 설득 시켜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말씀에 귀 기울여 주시고 경험을 통해 지경을 넓혀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기도합니다.나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할 때에 나를 거룩하기 위해 그 사람들을 때와 맞게 쓰셨구나를 생각하시고 그 사건과 사람들을 역할로만 인정하십시오. 그 사건과 사람, 환경에서 시선을 옮겨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5) 은영이의 귀한 나눔
은영:저는 정말 원망하고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그아무개에게 가서 저를 구원해달라고 하였던 어리석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설교 말씀 어린양의 진노(요한계시록 6:7 ~ 17)를듣고 오히려 아무개가저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건을 통해 제 바벨론이 깨어진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저의 죄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인해오늘 영원한 복음(요한계시록14장6-13절) 에서다시 참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변하지 않는환경 속에서 아직도 많은 힘듦이 있지만, 시선을 하나님께 옮기게 될 수있어서 그 사건이 이제는 축복으로 여깁니다. 말씀이 들리게 해주신 것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 : 하나님께서나에게 주는 메세지가무엇인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상대방은 안 변합니다. 중요한 것은 은영자매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이기 때문에 은영자매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면서 어떻게 그 직장에서 사명을 감당하는지 하나님께서는 그것에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그렇기때문에 말씀이들리게 하신 것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넘지 못한것을 말씀을 통해서 넘어선것 같습니다. 그 포인트가 중요합니다.그동안 분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에서 절제 하지못한것으로 인해 그 사람과 사건이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 넣었는데 그것이 허물어지니 내 존재 자체가 허물어진 것입니다. 은영자매는우상이 무너지니 회개를 하였습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심판의 사건이 바로축복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사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말씀이 깨달아져 내 자신이 허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은영자매에게 정말 축복인 것입니다.
지금 많이 편해지고 좋아졌다고 하니 하나님께서은영자매에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눈도 못 마주치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그사람은 지옥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상대방이깨달아지면 오히려 은영자매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욕심때문에 인간적인 노력으로 참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것입니다. 알고 보면 불쌍한 것입니다. 은영자매는 그러나 넘어섰기 때문에 평강한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사람을 분별하지 못했구나인데 결혼도 똑같은것입니다. 결혼까지 갔다고 하면 내 가치관이 이 사람과 정말 다를게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와 살면서 이 사람과 똑같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내가 이 같은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좋아했구나가 깨달아졌다면 가장 큰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가르치고 교훈하시는 것이 있습니다.왜 그 사람을 만났을까?는 정말 필요없는 생각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깨달아지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합니다. 이럴 거면 왜 만나게 하셨을까? 이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과거 집착적인 것입니다.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을 취하고 그것을 통해 죄를 깨달았다면, 건강하게 교제를 하기위한 하나님의 자산입니다. 그것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는것입니다. 결혼 했을때는 똑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고 애굽의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돌이키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였다면, 그것은복입니다. 우리가 극단적으로 미쳤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깨닫고 말씀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모든 것을 협력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쓰레기 같은 시간도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쓰실 것입니다.
금주 기도제목 나눌 겨를이 없었네요
하나님,우리 목장 식구들이삶 가운데 쉼이 없고 즐겁지 못함이 있습니다. 사건/사람/환경에서 너무 힘들고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사건 가운데하나님께 시선을 옮겨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복음 알게 해주세요. 또하나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 깨닫고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붙여주신나의 가족, 공동체, 지체들을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