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8. 3. 4주일
본문:남은자손(요한계시록12:17)
설교:김양재 목사님

지난 해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40만 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합계 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1.05명을 기록했고 월별 사망자수가 출생아를 첫 추월했다고 합니다. 태어난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대만과 홍콩은 예외가 있지만 거기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1.05명을 기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청년실업, 결혼 기피로 저 출산 현상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에 출생아 40만 명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저 출산 국가가 된 것은 우리나라가 빈국에서 세계10권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이러니칼 하죠? 625전쟁 중에도 50만 명을 낳았는데 출생아가 급격하게 감소한 것이 열악한 환경 때문이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저 출산 재앙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세 자녀이면 셋째 자녀만 등록금 면제가 아니라 그 위에 첫째, 둘째도 등록금을 면제해주겠다고 엊그제 신문에 났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많이 낳아서 우리나라에 남은 자손이 많을까요? 왜 저 출산 1위 국가가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영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장부터 시작한 인재앙에 백마 탄 재앙이 이기고 이기려는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백의의 민족보다는 전투적인 민족이라고 했습니다. 호전적인 민족. 그러다보니 이기려고 하는 것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하기에 6.25 전쟁보다 훨씬 잘살고 있지만 남과 비교하고 이기려고 날마다 피 말리는 전쟁을 곳곳에서 하는지 모릅니다. 잘 살려고 보니깐 입시전쟁, 입사전쟁, 프로젝트 전쟁으로 결혼 기피가 많아지면서 625전쟁 때보다 저 출산 국가가 되었습니다.
영이 강건해야 육도 강건합니다. 땅의 전쟁을 하늘의 전쟁으로 바꿔서 발상의 전환을 할 때, 내 모든 핍박이 양육이 되어서 즐거워하게 되고 영육이 강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남은 자손이 된다는 것이죠? 오늘 설교의 제목인 남은 자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남은 자손이란 누구인가?
첫째로, 남은 자손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입니다.(17)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로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있더라)
12장에서는 하늘에서 쫓긴 용이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여자인 이 교회는 사단의 박해를 받지만 하나님은 3년 반 동안 광야에서 보호를 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자를 넘어서 사단이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이 초림으로 이 땅에 오실 적에도 사단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계속해서 교회가 대를 이어가니깐 핍박했습니다. 문자적으로 남은 자손은 재림과 가까운 신학 교회가 더욱 더 싸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함을 받은 자신의 백성들을 양육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들이 양육되어지는 것을 아주 사단은 분노합니다.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하나님의 자손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사단은 싸우려고 합니다. 여러분 분명하지 않으면 사단이 싸움을 걸지 않습니다.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냐, 사단이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대를 이어 사단과 싸움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왜 성도가 되어서 나만 겪는 고난이라고 불평하지 마셔야 합니다.
계시록 17장 14절을 보면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구원 받은 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수 14만 4천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첫 번째 대지와 같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들이 구원 받은 자들이고 성도인 것입니다. 지난주 들린 것 같이 어떤 강 같은 조류에도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조류를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조류는 참 좋습니다. 마약도 있고, 강같이 떠내려가는 것이 맨 처음에는 즐거워보이다가도 한 참 떠내려가다 보면 즐겁지가 않습니다. 자식 때문에 뭐 때문에 ... 나중에 보면 즐겁지 않습니다.
이 번주 계시록 목장 나눔에 많은 조류들에 떠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조류는 이즘입니다. 다원주의 쾌락주의 각각에 떠내려가는 조류 때문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세대 간의 격차도 한 몫을 합니다.
HOT 공연을 다녀온 집사님께서.. 공연을 보고 함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보고 교회 와서는 함성을 안 지르는데 공연을 보고 그렇게 함성을 지르는데, 어떻게 좋은 복음을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암담하였다고 합니다.
조류라고 하면 컴퓨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컴퓨터가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이런 것이 화두가 될 만큼 컴퓨터가 만능이라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르면 모든 것이 나타나니 맞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책방을 가야하고 이런 수고가 없어졌습니다. 컴퓨터가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조류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능합니다. 컴퓨터의 종교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중략) 컴퓨터가 신앙의 자리에 가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 라는 사탄의 말에 꼬여
인간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의 종교화, 과학의 종교화, 경제의 종교화를 이루며 권력과 과학과 물질만능주의를 하나님 대신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에 꼬여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라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 세상입니다. 세상과 사단을 분리해서는 안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마귀에서 나왔다고 예수 안 믿으면 우리는 모두 마귀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고 오는 시대에 깨어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쾌락이 만능인 세상에서 하나님만이 하나님 되신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지존자 이십니다. I am who I am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그 여자 남은 자손에게 보내주셔서 양육해 주십니다. 남은 자손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단은 그 남은 자손을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삶, 믿고 살고 누리는 삶, 쾌락의 세상 말을 듣지 않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아주 꼴 보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용이 분노를 합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분노합니다. 정말 꼴 보기 싫어합니다. 예수를 점점 잘 믿어간다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습니다.
12장 12절, 17절에서 용이 두 차례 분노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12절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을 보고 이제 분노를 합니다.
13절부터 17절까지 다시 한 번 읽어보면,
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로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있더라
17절에 강같이 토해내는 조류가 실패하자 여자의 남은 자손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엄청난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사단이 싫어하는 것은 공동체입니다. 남은 자손 즉, 공동체입니다. 아니 이건 너와 나의 문제지, 찌질한 것을 사람들 앞에서 나눠? 이것이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이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7장 14절처럼 만왕의 왕, 예수그리스도가 대신 싸워주신다고 합니다. 강 같은 조류에도 휩쓸리지 않을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신문에 어떤 청년의 인터뷰가 나왔습니다.
#김동식군 이야기
아연주물 공장, PC방 알바 하던 청년 베스트셀러 된 이야기
[Why] 주물공장 이야기꾼, 지금껏 없던 글을 쏟아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2/2018030201366.html
PC방을 알바하면서 대한 사람(노래방 도우미, 야동 할아버지)들을 웃으며 거리낌 없이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김동식군의 소설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청년은 과연 착한가? 착하지 않는가를 묻는 소설이었다고 합니다.
성품인가 믿음인가? 우리들 교회 어록이 녹아져 있습니다.
기자가 평하기를 자기와 우리 사회에 무거운 물음표를 던지는 글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무거운 물음표를 던지는 글을 한 번 써보시죠?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은 늘 성경의 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경험들이 선생님이 되어서 가볍게 읽히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들을 써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맞춤법이 틀렸겠습니까?) 맞춤법이 심하게 틀린 글이지만 18월 동안 350편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일간지에 전면으로 그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세상에서 밑바닥 삶을 경험하는 것이 귀한 경험이 되어서 도리어 세상 조류를 거스를 수 있다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청년에게 약은 10년동안 규칙적으로 출근한 것과 퇴근했던 것, 자기가 돈을 벌었다는 것 60->130->180만원 버는데 벌어서 좋았고 소비해서 좋았다고 합니다. 쇼핑할 수 있어 축복이었다고 합니다. 자기 인내심이 없어 학교를 가지 않았는데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한 것은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것이 약이었는데 독은 날마다 기계만 쳐다보고 있으니 인간관계를 못하고 관계가 잘 안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얘도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류는 여기까지만 거스르고 이젠 공동체가 없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류도 이처럼 삶에서 밑바닥 삶을 경험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환란과 핍박이 진정한 조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교회 공동체가 막강한 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2장 12절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는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은 자손이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 남은 자손이 즐거워하기에 사단은 공동체 때문에 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교회 공동체를 공격합니다. 분노의 감정은 용으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17절 용이 전쟁을 하려고 하는 대상은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바다 모래 위에 섰다고 하였는데 바다 모래 위는 수많은 인류가 성장하는 역사의 현장을 말합니다. 재림을 앞둔 하나님의 공동체에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동체에 더 혹독한 고난이 옴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의 고난이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섭죠? 6년전 계시록 설교에 천명이 빠져나갔다고 했습니다. 유일하게... 천명 빠지고 이번 계시록 설교는 10프로 증가하더니 올해는 정체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지겹게 시리 계시록을 끝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깁니까? 여기서 어린양과 더불어 누가 이기냐고 했냐면 17장 14절에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는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고 진실한 자들이 이긴다고 했습니다.
다시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은 진실한 자들이 이긴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기쁨이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고 진실한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어떤 사단과 용도 다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고 진실한 자로 기뻐하십니까?
두 번째, 남은 자에게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이 세계는 사단의 세계이기 때문에 끝이 없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수고를 그치라 해야지 끝이 납니다. 그 본을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수치와 조롱을 다 당하시고 천 번의 고통인 십자가를 지시면서 모든 죄를 감당하시고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고난을 주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골로새서 24절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는 몸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을 채우니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고자 하였던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시길 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목자가 되가지고 목원을 위하여 목원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겠다는 것이 목자의 태도이고 부목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모든 직분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미쳤어요? 하기쉽습니다. 그런데 이게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고 진실한 자들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 제목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냥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육체로 당한다는 것이 집에서든 교회에서든 복음의 일꾼된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풍성하든 어떤 사건에서든 때마다 두려워 떠는 사람을 위하여 우리 남은 고난을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어도 두려운 것이 많고 떠는 것이 많습니다. 일어나는 일도 아닌 것 가지고 지금부터 염려하는 사람들이 교회에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목장에서 아이들 공부 때문에, 승진 때문에, 병 때문에 돈때무넹, 남편의 폭력 때문에 너무 무섭고 떨리잖습니까? 고난은 싫습니다. 고난은 목사님이나 받아요! (?) 은혜는 내가 받을 테니깐 주제가였는데 그런데 제가 맨날 얘기를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저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제가 정말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난은 내가 받고 은혜는 여러분들이 받고. 고난은 내가 다 짊어 갈테니 여러분은 구원 받고 제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그것을 위하여 내가 어떤 값을 치러도 좋겠다 이 생각이 듭니다. 암을 겪으니 이 세상에 내려놓아야 할 것이 또 많이 있었습니다. 말은 하고 볼일입니다. 내고난 네고난 비교하지만, 정말 이 땅에서 당하는 것은 잠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염려되고 걱정되고 하는 목장 식구들이 많습니다. 또 그얘기야? 지겨워~ 여러분 훈련 시키는 사람은 오직 새끼들 밖에 없습니다. 새끼들은 20년을 속 썩혀도 참습니다. 그 마음으로 목장식구들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새끼들 땜에 힘든 사람은 목장에서 잘 섬겨지는 것 같습니다. 아닌 사람은 이유가 많습니다. 내 설교 이상하고... 고난이 없으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진짜 한 영혼,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고 기쁨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받는 괴로움을 제가 기뻐하고 갈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이 날로날로 너무 싫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것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지위와 권력, 가족과 건강이 아니고 오직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고 진실한 자, 이 것이 가장 세상에서 기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께 택함받고 사랑받고 쓰임 받는 것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과장에게 택함 받고 쓰임 받는 것보다 사장에게 택함 받고 쓰임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온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택함 받고 쓰임받으면 최고 아닙니까? 그렇게 사랑을 받으면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제가 어떻게 교회를 지을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이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께 택함 받고 쓰임 받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하시니 부수적으로 저에게 이 교회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절대 제것이 아닙니다. 돈돈돈 하니깐 구둣가게가서 구두 하나줘 빵가게 가서 빵하나 줘 빵하나 줘 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택하심 받은 자들입니다. 상속자입니다. 갑자기 치사한 생각이 들죠? 기도를 좀 다르게 합시다. 그러니깐 택하심 받은 자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쓰임 받습니다. 좋은 환경 나쁜환경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받는 가장 치욕적인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이 지는 자들은 남은 자손이 되어 어떤 슬픔과 고통도 감당 못할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아야 할텐데 남은 자손으로서 내 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은 쓰임 받는 큰 영광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에 동참자가 되어야 영광에도 동참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이지 나의 유익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멸시와 고통 , 손해, 음모와 모략에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가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목원 때문에, 받는 괴로움을 그 사람을 위하여 기뻐합니까? 알다가도 모를 소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인내입니까? 절제입니까? 용서입니까? 사과입니까? 나눠보세요.
그렇다면 어떻게 남은 고난을 이길 수가 있을까요?
세 번째, 하나님의 계명과 증거로 남은 고난을 이겨야한다고 합니다.(17)
다시 17절입니다.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11절에도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증언의 말씀으로 인하여 사단으로부터 형제들이 이길 수 있었던 것처럼 여자의 후손들도 말씀과 증거로써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여자의 자손들이 이기려면 이 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우리는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바르게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설교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설교준비 설교사역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설교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단도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빠졌습니다. 자기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 이 사명이 없다면, 누군가 주인이 되어서 이 교회가 내거다하면서 얼마나 권세를 부렸겠니까? 정말 이단은 무서운 것입니다. 교회도 정말 매력적인 곳입니다. 복음이라는게 최고의 가치가 있기에, 호시탐탐 사명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 구속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리그리아 목사님이 99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목사님이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서 태어나서 가장 힘든 일은 복음 전도의 설교라고 하셨습니다. 그 힘든 것을 제가 인간의 힘으로 하다가 암에 걸렸습니다. 사명으로 한 부분이 90프로라고 해도 내가 사람인 고로 날마다 구원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증언하는 말로 사단을 이기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영적전쟁입니다. 오죽하면 성령 받지 말고 목사하라는 것이 욕이겠습니까? 그러니 성령 받지 않고 목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마에 오르면 갈 때도 올때도 없는데 대형교회 목사가 되면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겠습니까? 그래서 문제가 생기잖습니까? 앉으나 서나 고난을 채우서서라도 제가 서있어야 된다는 것이 기도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제가 서있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하는 것 아시죠? 우리들교회는 저만 잘 서 있으면 됩니다. 고난은 저 혼자만 받으면 됩니다. 정말 자신이 있으니 이런 말을 합니다. 내 사모하는 주님, 너무나도 자신이 있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께 택함 받고 사랑 받고 쓰임 받다가 가면 되니깐. 할렐루야! 재밌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것이 재미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고난은 싫어합니다. 매력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계시록 1장 9절서부터 보면,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6: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1절에도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이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사도행전 4장 20절에도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하니
사도 요한도 베드로도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손은 이렇게 계명과 증거로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과 계명이 있어 내가 살아낸 증거가 있어야지 남은 자손으로 이기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20장 15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남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남은 자손으로써 남은 고난을 어떻게 계명으로 싸워 이겼는지 수없는 간증이 우리들 교회에 울려 퍼졌습니다.
# 예목 받는 목사님의 간증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
말씀의 씨, 심판이 시작되면서 시작, 구경꾼에서 주인공으로, 남편의 믿음, 마을지기 부부, 계속해서 남은 고난을 보여주니 마을지기 영적 지경이 넓어짐.
-> 말씀을 가지고 자기의 삶과 연결해서 하는 것을 해보세요.
저는 과부목사로서 남은 때를 고난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길 수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남은 자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우리들 교회만으로 영광이고 큐티 선교회 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말씀 묵상과 가정중수를 위하여 제 육체에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앉으나서나 기도는 우리교회고 말씀 묵상이고 가정 중수입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누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꿈에도 소원은 교회로 인하여 눌리는 마음 그 마음인 것입니다. 현재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올 영광은 비교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정말 잠깐인 것 같습니다. 남편 갔을 때부터 계속 이 얘기를 하고 왔습니다. 옛날에도 저에게 고난을 주시라고 제 생명 거둬 가시더라도 남편을 구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고난의 클라이막스 였습니다. 고난 달라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고 쓰임 받고. 최고인 것 아시죠? 정말 저는 반복해서, 내 사모하는 주님께 사랑받고 택함 받고 쓰임 받고 가니 나는 부족하나 영접하실 이는 주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날이 갈수록 주님에 대한 사랑이 찐해져 가니깐 우리들교회는 된 교회 같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남은 자들은 우리들 교회 청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남은 자손이 되어 부르심 받고 택함 받고 쓰임 받는 사명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지는 해이고 청년들은 뜨는 해입니다. 우리들 교회의 주인입니다. 14년 목회를 하고 보니 청년들이 할머니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왜 오겠습니까? 요새 교회에 청년들이 다 없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차별을 싫어하고 또 재정도 투명해야 되고 무조건 복 받는 이야기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돈 있고 스펙 있다고 직분 주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무조건 위로만 한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다 깨트리고 우리들 교회를 와준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입니다. 여기에는 교권도 교단도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이런 우리들 교회가 명맥을 유지하려면 양질의 구속사적 말씀 공부와 말씀묵상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말씀 제대로 차례로 읽혔더니 청년들이 몰려왔습니다. 전체 성도 수의 반이 다음 세대라는 것은 너무 소망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천국 가서 우리 주인공들이 교회를 하나님을 밝히면 하는 소원으로 지금 하루하루 사는 것입니다. 내 빽은 다음 세대 청년들입니다. 청년들이 찾는 교회가 진짜 남은 자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정말 남은 자손이 되길 바라고 청년이 기둥이 되어 우리들 교회와 한국 교회를 밝혀주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남은 자손은 구원 받은 자,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택자입니다. 그래서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사람입니다. 고난을 받으면 영광도 받습니다. 남은 고난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로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위하여 주님께서 죽어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고 나를 남은 자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항해자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에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주시옵소서
기도제목
이 땅의 전쟁을 하늘의 전쟁으로 알고 즐거워하면 남은 자손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돈과 물질, 자녀, 스펙, 쾌락이 아니고 내 하나님께 택함 받고 쓰임 받기 때문이라고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하여 우리가 남은 자손이 되게 해달라고. 내가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주님에게 사랑받고 선택받고 쓰임받고 진실한 것임을 압니다. 남은 자로써 남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용과 바로 서야하는데 이미 이긴 싸움임을 알고도 움찔움찔 놀라는, 그래서 제가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우연이 없다고 하였는데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수많은 사건 속에서 계명으로 수없이 저를 용서해주시고 저의 죄를 사하여 주셨는데, 주님께서 저를 용서해주신 것 같이 저를 용서하며 참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세상적으로 무시 받는 과부의 입장으로 주님만을 부를 수 밖에 없었음을 주께서 아십니다. 이 모든 설교를 한다고 하실지라도 제가 하는 기도는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남은 자손이 되어 주님의 계명으로 예수의 증거를 가져서 말씀으로 담대하게 이길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그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랑받는 진실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 교회 주인공이 청년들인데 남은 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들 교회가 소망이 있는 것은 제가 바로 서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 저를 세워주시옵소서. 주님 말과 행위가 다르지 않도록 천국 갈 때까지 저를 세워주시옵소서. 우리들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세워주셔야겠습니다. 영육 간에 저를 세워주시옵소서. 남은 자손이 되어 다른 남은 자손을 주께로 인도하는 자손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각 자의 환경에서 남은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함나이다. 아멘.
#(12/04/08, 6년 전 목사님 설교)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남은 자손이 되게 하신 이야기

어떤 환경에서도 나의 남은 고난가운데 육체에 증거와 계명으로 이겨야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사망의 부활을 받아 다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대충 살다 죽으면 다시 악인으로 부활해서 영원한 불멸의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생명의 부활을 받고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행위를 따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저 우리에게 천국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로 어떻게 남은 고난을 이겨서 제가 남은 자가 되었는지, 제 삶을 나누고자 합니다.
4대째 믿었기 때문에 수준 높은 고난들이 계속 왔다고 생각합니다. 축복은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신 것이고, 예수의 증거를 가지게 하신 것입니다. 수없이 싸웠지만, 계명과 증거로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지난 설교 시간에 얘기했던 대단한 김혜영, 서서평 선교사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들 교회를 통해서 살아나는 역사를 볼 때 어떻게 우리들 교회를 하게 되었는가? 말씀의 증거를 해보고자 합니다.
사단은 어려서부터 저를 참소를 했습니다.
외롭고 슬프고
나 혼자 인 것 같고
아무도 안 돌봐주는 것 같고
결혼해서는, 네가 왜 그러고 사냐?
네가 이혼하면 얼마든지 남자가 깔렸다.
너하고 싶은 것 다하라.
걸레질이 웬 말이니?
여태껏 하는 공부가 아깝지도 않니?
너 그러다가 시간 갈수록 손이 둔해진다.
이런 꼬임과 참소로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경험도 했고, 가장 큰 고난은 시어머니 고난이 아니라 남편고난이었습니다. 남편은 의롭고 성실하고 그 흔한 바람도 안 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그 우리들 교회 안 왔으면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여주며 사는 것이 다 인줄 알고 이 살았던 부부도 목장가고 주님 말씀 듣고 자신들의 죄된 모습을 털어 놓으면서 가는 모습들을 수없이 보게 됩니다. 우리도 남들에게는 육적으로 부유한 부부로 보였겠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가난한 부부였습니다. 마음도 몸도 아팠습니다. 끊임없이 남편은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선 용처럼 분노했습니다. 남편은 겉으로 분노하고 참소하면 저는 속으로 분노하고 참소했습니다. 이것이 남편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꼬고 분노하는 것을 아는 데에는 많은 기도와 많은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나를 저를 사랑했다고 봅니다. 인간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 되지 못하는 인간 사랑의 한계를 여실히 보았습니다. 저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한 시도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다는 것을 제 생애를 통해서 확신을 합니다. 남편만 조금 편하면, 우리는 지위도 돈도 있어서 행복할 텐데, 그렇게 쉬워 보이는 그게 정말 안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편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나꼼수 김용민씨가 그렇게 하나님을 조롱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공중파에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용민씨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분이 목사님의 아들이고 죄가 클수록 은혜가 크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남편을 통해 하신 일이 너무나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김용민씨가) 반드시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오래전 남편이 찢었던 톰슨 성경책과 찢었던 큐티책을 보았습니다. 그 뚜꺼운 톰슨 성경책을 어떻게 찢을 수 있었는지, 그렇게 분노하고 참소하고 화를 내는 것을 내가 즐거워하게 되기까지 하나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남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세상 강 같은 조류에 휩쓸려 갔거나 무슨 사단이 났을 텐데, 그것이 핍박의 때가 양육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감사하지 않을 수 가 있겠습니까? 제 인생의 축복은 남편을 허락하신 것, 이것을 절실히 절실히 마음속으로 깨달음이 왔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니 인간의 사랑이 저 밑에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사랑하고 비교할 수 없으나 제가 표시를 해야하니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남편을 이 사랑을 알게 된다면 기쁘게 즐겁게 살 텐데 이 생각을 하니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이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기로 하고 내 생명을 가져가시더라도 내 남편의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너무 성령충만 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구원되기 위해서는 몸 밖에 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해도 돈 밖에 벌수 밖에는 없는 사람이니깐 그까짓 것 병원 안 되는 것으로 깨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남편의 몸을 치셨습니다. 우리 완벽주의 남편이 갑자기 하루 만에 간 동맥이 파혈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그것이 간암말기라서 가망이 없을뿐더러 화급을 다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남편은 얼마나 완벽한 사람인지, 우리 집안에는 간으로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간염 보균자가 너무 많아 피를 만지기 때문에 늘 전염될 우려가 있다며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간 기능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간암말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몸집도 듬직하고 남들이 보기엔 정말 마음 좋은 의사선생님으로 생겼는데 속으로 들어가 보면 부부간은 정말 모르는 것입니다. 나 꼼수처럼 밖에 가서 소리 지르는데 안에 들어가면 안 그랬을 거 같습니까? 밖에서는 이래도 안에 들어가면 분노를 냅니다. 중환자실에서 그 사람의 병명을 듣고 나니 중환자실에 뛰어 들어가서 당신이 예수님 믿지 않고 천국가지 않으면 나는 애들 데리고 살 소망이 없다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남편의 한 마디 회개의 말이 결혼 생활 전체 한 말보다 파워풀해서 지금까지도 그 한마디로 사역을 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중환자실에 처음으로 그 모르던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남편의 손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기적을 일으켜달라고 기도를 하셨는데, 오늘 밤 이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처음 보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이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의 한 쪽은 수혈이고 한쪽은 산소 호흡기였습니다. 마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헐떡헐떡 쳐다보면서 처음 목사님께,
'예수의 이름으로요.'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목사님, 제가 믿음이 없어서 교회를 안 나간 것이 아니고 제가 죄를 지어서 교회를 못나갔습니다. 목사님은 제 직업을 아십니까?'
남편은 80년도에 낙태수술로 돈을 벌던 것이 생각났던 것 같습니다.
'살려주셔도 감사하고 그러지 않아도 감사한 인생입니다.'
라고 하니 목사님께서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중에 행위로 천국 가는 사람이 없다고 계란이 썩어도 알고는 못 먹는다고 만개 중에 하나가 썩어도 알고는 그것으로 만든 빵을 못 먹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천국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으시길 원하십니까?'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내가) 세상의 죄인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죽어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내 인생에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 앞에서 구원, 영접기도를 하셨습니다.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평생토록 같이 살았어도 많은 말은 다 필요가 없고 마지막 그 말이 지금까지, 수십 년 나를 지탱해주고 한결같이 나를 살려 준 그 말이 된 것입니다. 남편은 그때가 주님의 때였겠지만, 저는 정말 상상도 않게 회개를 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주님을 영접하고 자기의 죄를 보고 회개를 한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그 이후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남편이) 구원 받고 천국 간 날, 제가 30대 후반의 과부가 된 것입니다. 참소를 받을 일이 생겼습니다. 참소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어찌 내가 열심히 살았는데 어찌 과부가 될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려면 양육이 되어가야 하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그 인도함 받았던 큐티말씀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에스겔 18장 23-32절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 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26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 하리라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나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29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길 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 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러한 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아멘
그날 이것이 남편 간 날에 큐티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모범생으로 살아왔는데 왜 이런 힘든 고난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질문 대답을 다 하셨습니다. 남편은 천국을 갔다고 하셨고 악인처럼 보였지만 예수를 믿는 의로 영혼을 보전하셨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의인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을 저주했던 사람입니다. 어떤 장로님은 너무 아파서 예수님을 저주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의를 행하지 않아도 죽는 것은 공평하다고 하십니다. 너희 왜 공평치 않냐고 하십니다. 악인이 돌이켜서 떠났는데 왜 기뻐하지 않은가? 그가 마음을 돌이켜 오히려 살았는데 제가 죽고자 하니깐 구원의 남편을 위해 기도했기에 남편이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돌이켜서 살았는데 죽고자한다면 그동안 네가 기도한 것은 까짜가 아니냐. 죽는 자로 하여금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리, 너는 스스로 돌이켜 살지니라.
질문과 대답을 다해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면 한 달 만에 돌아오는 사람도 있는데 제가 남편의 시신 앞에서 남편의 장례를 지내는데 남편의 시신 위에 성경이 있고 큐티 본문이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저를 격동시키고 있는데 예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하니 이 말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어떤 날보다 예리하여 혼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셔서 만물에 드러나기까지 하신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이 저를 알아 주셔서 남편을 위해 생명을 내려놓으니 남편 간 날까지 저도 알아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도함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활자로 튀어나와서 저를 춤을 추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할렐루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과부가 한 둘입니까?
30대 과부였는데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래저래 살려주신 것입니다.
겔 19:14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될 것이라
그날 보니 과부되는 이 날 과부 본문이 나옵니다. 유다 왕들이 다 악해서 전쟁에 져서 다 바벨론 포로로 가게 되니 전쟁마다 져서 과부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제가 과부가 되었잖아요?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다 너는 과부가 되어서 우니 (권세 잡은 자의 홀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을 이미 신랑 삼고 있는데 예수님과 비교될 만한 남편이 없다고 얘기 하십니다. 맞는 것이 어떤 사람은 사람처럼 사람을 하나님 자리에 가져다 두니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합니다. 남편을 사람처럼 보니 무시하는 사람이지만 지게꾼으로도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언제나 사람만 생각하니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놓았기 때문에 너는 이미 예수님이 남편이지 않느냐고 예수와 비교되는 남편이 어디있겠니? 이것이 애가인데 후에도 애가가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제가 그때 생각하기를 30대 후반에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 건강한 가지가 없다고 예수님 만한 남편이 없다. 이것이 애가라고 하니깐 저는 이미 하나님이 예수님의 부인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구나. 그때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때 생각하기엔 좀 그런 것이 있지만, 13년 결혼생활을 50년 한 것 같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남들은 하루에 한시간 남편을 보는데 정말 하루 종일 병원하면서 보니깐 두 번 다시 결혼은 안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이 있으니 하도 지겨워서....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셔서 셋팅을 해주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남편을 너무 좋아하시지 마시길.
그래서 에스겔 20장 1~3절에
제 칠년 오월 십일에 이스라엘 자올 두어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읽은 바에 의하면 에스겔 8장에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이 가득하다고 장로들과 가서 다 보여주었는데 장로들은 하나도 회개를 안했습니다. (북한이 내려온다고 해도 아무도 회개치 않는 것처럼) 여기도 똑같이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생겼습니다. 장로들이 와서 에스겔 선지자들에게 망하게 생겼다고 어쩌겠습니까? 하니 이것을 물으려고 왔느냐?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이렇게 차갑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고 성경을 보면 성경이 깨달아집니까? 봐도 하나도 모릅니다. 평소에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진짜 문제가 왔을 때 하나도 깨달아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평소에 하나도 회개치 아니하고 진실되이 믿지 않고 있다가 망하니깐 기도해주세요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네 인생을 왜 니 남편이 갔는지. 앞으로의 사명은 무엇인지. 20장 전체를 통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 남편의 죄악상을 밝히지 않았으면, 저는 남편을 칭찬만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간 사람이니깐. 그래서 우리남편 의로웠고 바람도 안폈고 겉으로 드러난 죄가 없었으니깐. 돈도 잘 벌고 남편을 추앙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남편의 죄악상을 낱낱이 발견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남편의 죄악상을 보고자 합니다.
19장 1-3절을 보면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문자적인 본문이 나왔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이스라엘 왕들이, 요시와의 왕들이 다 좋은 교육을 받아서 식물 움키기를 배웠는데 사람을 삼켰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회개 제목과 똑같은 죄가 나온 것입니다. 제가 큐티를 하면서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삼켰다고 합니다.
20장 8절 너희를 아름다운 약속의 땅에 이르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 가는데 왜 너희들이 멸망을 하였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손이라 아름다운 땅에 이르고자 하였는데 눈으로 우상을 섬기고 마음으로 우상을 섬기고
13절을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안식일 안 지킨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 남편 안식일을 안 지켰잖아요. 그러니깐 멸망 받아 마땅한 데 안 믿는 사람 중에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저희 집안이 믿는 집안이었잖아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니 내 이름을 위해서 그 조상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달리 행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더럽혔다고 하시는데 장로의 아들인 남편은 정말 안식일을 안 지켰습니다.
18절에도내가 광에서 그들이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열조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열조의 율례를 지켰다고 합니다. 제 남편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 열조 조상이 다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아버님 산소에서 꼭 절을 했습니다. 장로님이 좋아하시겠냐고 물으니 아버지를 존경해서, 또 절 안하는 우리를 야단쳤습니다. 열조의 율례를 좇아서, 이 분이 효자였습니다. 저에게는 열부입니다. 바람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들을 사립학교에만 보낸 자부였습니다.
26절에는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하려 하였음이니라
남편이 자식에 대해서 우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무조건 사립학교에 보냈습니다. 자식 우상, 부모 효도, 다만 주어 온 것은 아내 뿐이었습니다.
28 ampndash29절에도내가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였더니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거기서 또 분향하고 전제를 부어 드린지라 이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하였노라
결국에는 하나님 백성이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병원 개업을 하니 너무나도 잘된 것입니다. 이제 높은 산과 무성한 나무를 보고 격노케하는 제물을 올려 드리는 것이 자기는 돈을 버니 새 집회 나오면 헌금을 바치는 것입니다. 성탄절, 부활절에... 이게 격노케하는 제물이지 뭐였겠습니까?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여호와 성전이 아니라 기복적인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32절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열국 족속 같이 되어서 목석을 숭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남편을 아껴보아서 결국에는 구원이 되었다 이것입니다. 자격과 공로로 구원이 된 것이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다 이것입니다.
24장 15-27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입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되는지 너는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엎드러지게 할찌라
에스겔이 가장 눈에 기뻐하는 아내를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울지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미워하는 아내가 아니고. 이것을 아침에 받고 저녁에 아내가 죽었습니다. 받은 대로 백성에게 고하니 백성들이 너의 아내 데려가는 것과 우리와 뭔 상관이냐 그런데 여호와 말씀이 에스겔 아내를 데려갔을 때 너희 버려진 자녀들은 칼에 엎드려지게 하셨다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여호와 전이다라며 자녀를 버려두고 산당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대를 가도 자살을 하고 카이스트를 가도 자살을 하고 버려둔 자를 칼에 엎드리게 하시기 때문에 예배가 실종이 되어서 예루살렘 성전이 이처럼 우상이 가득차서
24-27절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대로 너희가 다 행할찌라 이 일이 이루면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인자야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의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의 간절히 생각하는 자녀를 제하는 날 곧 그 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아와서 네 귀에 그 일을 들리지 아니하겠느냐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렇게 포로로 갔던 사람이 다 살아서 자녀를 제하고 힘들어 도피한 자들이 와서 에스겔에게 와서 얘기를 들리면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제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제게 힘든 사람이 귓속말로 힘들다고 하면, 제가 남편이 가고 이날부터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즉, 하나님이 하나님인 줄 알게 하는 인생이 되게 한 줄 믿습니다.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얼마나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인줄 깨달아집니까? 제가 이렇게 큐티하고 살았습니다. 장례식에서 어떻게 한 번에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자립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의 증거로 가르치는, 도피한 자에게 잠잠하지 아니하고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까지 나아간 줄 믿습니다.
이제 이겨서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때마다 말씀과 증거가 없으면 사단의 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제가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남의 말을 잘 듣는데 말씀이 없었으면 연민에 젖어서 맘 버리고 돈 버리는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증거에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것은 내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좋거나 나쁘거나 상실감에 몸부림치고 이 땅에 수치를 당하는 것이 이렇게 과부가 되면 반쪽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갖추었어도 내가 50점을 갖추고 남편이 10점짜리어도 부부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가장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혼을 하면 우리는 주홍글씨를 달고 다닙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10점짜리 남편 내옆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신랑 되신 주님이 나의 신랑으로 좌정하시니 남은 자가되어서 표징이 되는 인생을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나는 생명을 내놓고 남편의 구원 바랐기에 늘 덤으로 사는 인생인 것을 압니다. 내가 남편을 위해 생명을 내놓았는데 아직도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고 계십니다. 하루하루 덤으로 삽니다. 어찌 제가 이 사명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앞으로 인도하고자 두렵고 떨림으로 마지막까지 남은 자손으로 그 길을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이 길을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의 남은 자가 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고 날마다 싸우고자 하는 사단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로 하여금 물리적인 사단의 박해를 허락하시지만 반드시 영적으로 양육하시고 훈련하십니다. 영생이 보장되는 남은 자손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택함 받고 사랑 받는 위한나 목장 #13
일시 : 18. 3. 4 주일
장소 : 6층 소년부실
참석 : 최민정, 윤현경,이은영
나눔 : 내가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목원 때문에, 받는 괴로움을 그 사람을 위하여 기뻐합니까?
구체적으로 인내입니까? 절제입니까? 용서입니까? 사과입니까? 나눠보았습니다.
금주 기도제목
믿지 않는 가족과 친구 때문에 즐겁지 않음이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택함 받고 사랑받는 즐거움으로 저희를 즐겁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