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손 (요한계시록 12:17)
지난해 태어난 아이들이 처음으로 40만명 이하로 떨어져 합계 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1.05명을 기록했고 월별 사망자 수가 출생아를 처음으로 추월했다고 한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대만과 홍콩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1.05명을 기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렇게 저출산 국가가 된 것은
우리나라가 빈국에서 세계 10위권 나라가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6.25전쟁 중에도
한 해 50만명이상 낳았는데 출생아가 이렇게 급격하게 감소한 것은 열악한 환경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저출산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자녀일 경우
셋째 자녀만 등록금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고 첫째,둘째도 다 면제해 주겠다고 신문에
났다고 한다. 그러면 앞으로 아이를 많이 낳아서 우리나라가 저출산에서 벗어나게
될것인가? 그렇다면 왜 저출산 1위 국가가 되는 것일까? 여기엔 영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계시록 6장부터 시작된 인 재앙의 백마탄 처음 재앙이 이기고
이기려는 것 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백의의 민족이라기보단 전투적 민족,
호전적인 민족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기려는 마음이 세계어느나라보다
강하기 때문에 유교전쟁때보다 지금 훨씬 잘 살고 있는데도 남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피를 말리는 전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입시,입사,프로젝트 전쟁등으로 결혼 기피가
많아지면서 유교전쟁 때보다 저 출산 국가가 되었다. 영이 강건해야 육도 강건하다.
땅의 전쟁을 하늘의 전쟁으로 바꾸어서 발상의 전환을 할 때 내 모든 핍박이 양육이
되어서 즐거워하게되고 영육이 강건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남은 자손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인 남은 자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남은 자손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12장에는 하늘에서 내어쫓긴 용이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 내용이 있었다.
여자인 교회는 사단 에게 박해를 받지만 하나님은 3년 반동안 광야에서 보호를
하신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2:17은 사단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한다는 내용이다. 여자에게 남은 자손은 누구인가? 예수님이 초림으로
이 땅에 오실때에도 사단은 교회를 핍박했다. 이후에 계속해서 대를 이어가는
교회를 핍박했다. 문자적으로 남은 자손인 재림과 가까운 시대의 신학교회와
더불어 싸우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은 택함을 받은 자신의 백성들을 양육하여 가신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양육되는 것을 사단은 분노한다. 그 여자의 남은 자손
들이 하나님의 자손이 분명하기 때문에 사단이 싸우려고 한다. 여러분들이 분명하지
않으면 사단이 싸움도 걸지 않는다.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냐,
사단이냐 둘 중의 하나이고 중간지대는 없다.그러므로 성도는 대를 이어 사단과의
싸움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왜 성도가 되어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말자.
계시록 17:14절을 보면 구원받은 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숫자인 14만 4천명이
나왔다. 첫번째 대지와 같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자들이 구원받은 자들이고 성도
인 것이다. 지난주에 들었던 말처럼 어떤 강같은 조류에도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 하라고 명령 하신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조류를 거슬러 가는 것은 불가능 하다. 여러가지 휩쓸려 가기
쉬운 강같은 조류등 원하는 걸 했어도 나중에는 즐겁지 않다. 노도와 같은,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조류는 세대간의 격차도 한몫을 한다. 엊그저께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함께 간 집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렇게 기뻐하지 않는 아이들이 너무나 함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하면 복음으로 아이들을 저 것보다 더 열광하게
할 수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조류라고 하면 또 컴퓨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컴퓨터가 영혼을 가질 수 있는지가 요즘의 화두가 될 만큼 컴퓨터가 만능이라고
생각되는 시대에 살고있다. 한번만 클릭하면 모든 것이 나타나는 컴퓨터가 하나님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조류에 휩쓸려가지 않기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 하다.
컴퓨터의 종교화 시대에 도래했다. 신앙의 자리에 가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인간은 선악과를
먹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종교적인 우상으로 사람들에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과학의 종교화, 경제의 종교화, 물질만능 주의를 하나님 대신에 놓고있다.
이렇게 사단의 하나님처럼 될 수있다는 꼬임에 넘어간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세상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사단을 분리하면 안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마귀의 자식들이다. 그러나 가고 오는 세대에 깨어있는 자들이 있다. 그사람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다. 돈,쾌락이 만능인 세상 가운데 하나님만이 하나님 되신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들이다. 물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지존자 이시다.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그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보내셔서 양육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사단은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삶,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삶, 돈과 세상의 말을 듣지 않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아주 꼴 보기 싫어한다. 그래서 용이 분노한다.
그래서 예수 잘믿는 사람은 옆에 사람들이 점점 분노한다. 정말 꼴보기 싫어한다.
아주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점점 예수를 잘 믿어가면 둘이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
12절과 17절에서 용이 두번 분노하는 모습이 나온다. 12절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을
보고 분노를 한다. 17절이 사단이 강같이 토해내는 여러 조류가 실패로 끝나자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엄청난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된다.
사단이 싫어하는 것이 공동체이다. 남은자손, 이것이 교회이다. 교회에 와서 나와
하나님의 문제인데 왜 찌질하게 가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이것이 사단의 속성이다.
우리는 피로 값주고 사신 이 공동체, 하나님이 교회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말씀을 하신다. 17:14 만주의 주, 만왕의 왕 대신 그리스도가
대신 싸워준다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강같이 토해낸 조류라도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신문에 김동식 군이라는 청년의 인터뷰가 실렸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중학교 중퇴 후 바로 10년동안 아연 주물공장에서 단추와 주물을 찍어내었다.
그는 학교에 가서 공부는 하기 싫어했었지만 공장에서는 10년동안 단 한번도 결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는시간에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김동식군은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 기자가 이 때의
경험이 소설에 반영이 되었을까를 묻자, 청년은 지금 말한 이분들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했다고 말했다. 그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으며 거리낌없이 지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는걸까?' 하는 의문을 책을
써냈다고 한다. 범죄자이던 누구던, 모두에게 가리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는 청년은
과연 착한가, 착하지 않은가를 묻는 소설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들교회에서
말하는 성품인가, 믿음인가가 아닌가? 이러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같다.
우리들 교회의 어록을 녹여서 삶에 적용해서 쓰면 말이다. 이 글이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살펴보니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들은 성경의 원리가 있었다. 세상의 경험들이
선생님이 되어서 가볍게 읽히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들을 써냈다고 한다.
얼마나 맞춤법이 틀렸 겠는가? 그래도 이런 틀린 글이라도 틀린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씩 18개월동안 350편을 쏟아내었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었다. 세상에서도 밑바닥 삶을 경험한 것들이
귀한 경험이 되어 도리어 세상의 조류를 거스를 수 있었다.청년에게 약은 10년동안
공장에 다니면서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퇴근했던 것, 그래서 자기가 돈을 벌었다는
것, 그것을 벌 수 있어서 좋았고 번 만큼 소비할 수 있어서 축복이었다고 한다.
집세, 부모님 생활비를 드리고 나면 나중에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은 20여만원 정도
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축복이었다고 한다. 자신은 인내심이 없어서 학교도 가지
않았지만 자신도 꾸준히 뭔가를 할 수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뿌듯
했다고 한다. 10년동안 이렇게 할 수있다는 것은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같다. 그것이 약이었지만 독은, 날마다 기계와 벽만 보고있으니 인간관계
가 잘 되지않는다는 것, 그러니 이 청년도 예수님을 믿고 공동체가 없어선 안 될 것
이다. 세상의 조류도 밑바닥 삶을 경험해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환난과
핍박이 진정한 세상 조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 특히 교회 공동체가 우리에게
막강한 힘을 준다고 생각한다. 12:12 하늘과 가운데 거하는 자들, 남은 자손이
즐거워하기 때문에 사단은 바로 공동체 때문에 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공격한다. 그런 분노의 감정은 용으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
었다. 17절에 용이 전쟁을 하려고 하는 대상은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했다.
그리고 용이 바다 모래 위에 섰다고 했는데 바다 모래위는 수많은 인류가 생존하는
역사의 현장을 말한다. 재림을 앞둔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더 혹독한 고난이 오게됨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남은 자의 고난이 끝이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섭지 않은가?
그러면 누가 이기는가?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는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이 이긴다고 한다. 이 세상에 기쁨이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은 진실한 자 들인 것
이다.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어떠한 사단과 용도 이길 수 있다.
적용해 봅시다. 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고 진실한 자로 기뻐 하십니까?
두번째, 남은 자에게는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이 땅이 사단의 세계이기 때문에 끝이 없는 고난이 찾아 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의 고난이 그치라고 하셔야지만 끝이 납니다. 그 본을 예수님
께서 미리 보여주셨다. 이 땅에 오셔서 수치와 조롱을 다 당하시고 천번의 고통인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를 감당 하시고 돌아가셨다가 3일만에 부활 하셨다.
사도바울은 이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주님이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고난을 주셨다고 고백하였다. 우리는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을 채우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가 참 많이 있다.
바울 사도는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 하고자 하셨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하였다. 예수님을 위해서 내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갖기를 원했다. 여러분들이 너희를
위하여 목자, 목사가 되어서 공동체가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내 육체에 채우면서
기뻐하는 것이 목자,부목자, 모든 직분자의 태도이다. 부르심 받고 택하심 받은자들이
진실한 자들의 기도제목이 그래야지만 이긴다는 것이고 그냥은 되지 않는다. 육체로
당하는 것이 집에서건, 교회에서건 복음의 일꾼 된 자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 에서도 일마다 때마다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한다. 우리는 믿어도 두려운게 많기에 떨 때가 많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염려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도 너무 많이 있다. 공부, 승진, 병, 돈, 집, 남편의
폭력등이 너무너무 무섭고 떨리고 고난이 싫다. 천국갈 때까지 내가 고난을 짊어지고
갈테니 천국갈 때까지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고난은 나 혼자 짊어지고
갈테니 여러분은 제발 예수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그 것을 위해서 내가 어떤 값을
치루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암에 걸리고 나서 지옥 고통을 겪어보니 이 세상에 또
내려놓을게 많아졌다. 여러분들은 내 고난, 네 고난을 비교하지만 이 땅에서는 잠깐일
뿐이다. 우리 곁에는 힘들고 염려가 되는 목장식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목원의 이야기를 또 그이야기를 한다며 지겨워 한다. 그러니 여러분을 훈련시킬
사람은 오직 자식들 뿐이다. 자식들은 20여년을 지겹게 괴롭히지만 참는다. 그런 마음
으로 목장 식구들을 섬겨보도록 하라. 한 영혼이라도 천하 보다도 귀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게 저의 사명이고 그 것이 기쁨이다. 그러니 여러분들로 인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갈 수있는 마음을 날로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사랑이
너무나 싫지않은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것은 여러분들이 원하는대로 돈 명예 지위
가족 건강이 아니고 오직 부르심 받고 택함 받고 진실한 자, 이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택함받고 사랑받고 쓰임받는 것임을 아셔야
한다. 이 세상에서도 과장에게 사랑받고 택함받고 쓰임받는 것 보다는 사장에게
택함받고 사랑받고 쓰임받는것이 좋지 않은가? 그런데 이 온 우주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사랑받고 택함받고 쓰임받으면 최고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사랑받으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들은 다 주신다. 사랑받고 택함받고 쓰임 받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하니 하나님께서 부수적으로 교회도 주셨지만 절대적으로 내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택함받은 자들은 어떤 환경 에서도 쓰임받기에
좋은 환경, 나쁜 환경이 없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받는
십자가의 치욕적인 형벌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깨달아진 사람은 남은
자손이 되어서 어떠한 실패와 슬픔도 감당 못할 것이 없게 된다.
남은 자손으로서 내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은 쓰임받는 큰 영광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고난의 동참자가 되어야지 영광에도 동참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이지 나의 유익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멸시와 고통과 손해와 음모와 모략에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
적용해 봅시다. 내가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 때문에 받는 고통을 기뻐합니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인내, 절제, 용서, 사과 등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봅시다.
세번째,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로 남은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11절에 증언의 말씀을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단을 이길 수 있었던 것 처럼
여자의 후손들도 말씀과 증거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신다. 그러니 여자의
자손들이 이기려면 이 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우리가 핍박을 당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바로 교회가 성도들에게 바르게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에게 설교는 너무
중요하다. 설교 준비, 설교 사역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결코 없다. 그런데 설교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단도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다 말씀을 하지만 십자가가
빠져 있다. 자신이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제가 사명이 없다면 이 교회가 내꺼라고 하며 얼마나 권세를 부리겠는가?
교회는 매력적인 곳이다. 복음이라는 것은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니 호시탐탐 이단이
노리고 있고, 사명때문에 걸어가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 구속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는게 너무나 중요하다. 지난 주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9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서 태어나서 가장 힘든 일은
복음 전도의 설교라고 하셨다. 그 힘든 일을 내가 인간의 힘으로 한 부분이 있어서
암에 걸렸다. 90프로를 사명으로 했다고 해도 내가 사람이기에 날마다 구원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만 증언하는 말씀으로 사단을 이기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영적 전쟁이다. 오죽하면 성령받지말고 목사하라는것이 욕이겠는가?
스트레스를 받고 점점 도마위에 올라가면 오갈 대가 없게되는데, 대형교회 목사가
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겠는가? 그러니까 자꾸만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니 앉으나 서나 고난을 채우셔서 라도 제가 서 있어야지만 기도제목이 된다.
날마다 제가 서 있게 해달라고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실 것이다. 우리들 교회는
저 혼자 잘 서 있으면 된다.여러분들은 괜찮다. 고난은 저 혼자 받으면 된다.
정말 자신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 사모하는 주님께 사랑받고 선택받고
쓰임받다가 천국가면 된다. 계시록 1:9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한 밧모라는 섬에 있었다고 한다. 9절에도 말씀과 가진 증거로 인하여, 11절에도
자기 증거하는 말로 인하여, 사도행전 4:20절에도 사도요한도, 베드로와 요한도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남은 자손은 남은 고난을 계명과 증거로
전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말씀과 계명이 있고 내가 살아낸 증거가 있어야지 남은
자손으로 이기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계시록 20:15절에도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된다. 그런데 여자의 남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한 자들
이기 때문에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다.
(예목 받으시는 평신도 집사님 간증-독후감)
제가 살아와 보니 부르심 받고 택함 받고 사랑받는 자, 진실한 자로 사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다. 이러지 않았으면 어떻게 사역을 했겠는가? 저 또한 30대 때 남편의 죽음을
통해 과부가 되었다. 과부 전에도 고난이었고, 과부가 된 것도 고난이었고, 과부 목사
인 지금도 육체의 남은 때를 고난으로 채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이길 수 있는
말씀을 주셔서 여러분들이 저의 사건과 말씀을 다 기억한다. 그렇게 남은 자의 영광을
보여주신다.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를 위해서 제 육체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하는 것
같다. 앉으나 서나 소원은 우리 교회, 가정중수, 말씀묵상이다. 그 것때문에 제가 누가
되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오직 교회를 위해서 눌리는 마음이다. 현재의 고난
은 잠깐이고 장차 올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정말 잠깐인 것 같다.
저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제 생명을 거두어 가시고 남편을 구원해 달라고 했던 것이
고난의 클라이막스였다. 그러니 이제 저한테 고난을 달라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다.
정말 저는 다시 내 사모하는 주님께 사랑받고 택함받고 쓰임 받고 가기 때문에 나는
부족하나 영접하실 이는 주님이신 것을 믿는다. 날이 갈 수록 주님에 대한 사랑이 제가
진해져가니 우리들 교회는 되는 교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들교회에 남은 자는 다음
세대와 청년들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남은 자손이 되어서 부르심 받고 사랑 받고
택함 받고 쓰임 받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원한다. 우리들은 지는 해이고 청년들은
떠오르는 해이다. 우리들 교회의 주인이다. 청년들이 할머니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왜 오겠는가? 청년들은 차별을 싫어한다. 재정도 투명해야 하고 무조건 복받는
이야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돈 있고 스펙 있다고 직분 주는 것 아주 싫어한다.
무조건 위로만 한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고정관념을 다 깨고 우리들
교회에 와 준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이다. 여기에는 교권도 교단도
힘을 쓰지 못 했다. 이런 우리들 교회가 명맥을 유지하려면 제대로 된 양질의 건강한
구속사적인 말씀공부와 묵상이 절대로 필요하다. 오직 말씀하나 차례대로 읽혔더니
청년들이 몰려왔다. 아무 프로그램도 없는 우리들 교회에 말이다. 우리들 교회의 반수
에 가까운 성도수가 다음 세대와 청년들이다. 이것은 전체 성도수의 반이 다음 세대
라는 것은 너무 소망있는 교회가 아닌가? 우리들은 늙어가지만 주인공들이 서서
나중에 천국가서 한국교회를 밝히고 우리들 교회를 밝히는 소원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청년들이 찾는 교회가 진짜 남은 자의 교회라고 생각한다.
이제 청년들이 모두 모두 남은 자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청년들이 기둥이 되어서
우리들 교회와 한국교회를 밝혀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