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이적 (계12:1-6)
1.교회의 영광이 보이는 이적입니다.
봉사잘할때 말씀도 잘 알게 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해달별의 능력인것 입니다.
학벌이 나중애는 도움이 안되고 방해가 됩니다. 그러나 왜 앉으나 서나 학벌을 쫒아갑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차단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달별을 입은 성도들의 영광이 보여야 합니다.
남들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해달별의 영광이 안보이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해산의 고통이 이적입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고생 당할 때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도를 할 때 모세를 보내 주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가장 큰 이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최고의 이적은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고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해산을 하면 애써 부르짖게 됩니다. 아이를 낳을 때 저절로 힘이 주어져서 낳게 됩니다.
내가 잘 믿으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부르짖게 만듭니다.
그런데 힘들때 부르짖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고통이 축복인 것입니다. 인간사는게 그런거지가 믿음 좋은것이 아니라 아파서 애써 부르짖는 것 그런 일이 있어야 예수가 우리 집에 오는 것입니다.
모든관계와 봉사가 힘이 듭니다. 애써부르짖을 일이 없으면
하지만 애써 부르짖을 일이 있으면 겸손해지고 봉사가 쉬워지는 것입니다.
3.사단의 삼키려는 것이 보이는 이적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큰이적인데 사단은 다른이적입니다. 성경에서는 용이 좋은 의미로 나타내지 않습니다. 뱀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것이 용이라고 했습니다. 뱀이 사단의 상징이고 마귀의 상징입니다. 세상을 소유하고 있는 용은 머리가 7개입니다. 얼마나 지혜롭고 간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권세가 엄청 막강합니다. 그 당시 로마는 마귀의 앞잡이요 마귀의 종이 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 뒤에 마귀가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을 이렇게 죽일수 있는게 사단의 권세이고 계속 방해를 했습니다. 주의 영광 성도의 영광을 보게 되면 그다음에 사단이 잘 보입니다. 분별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잘보지 못하면 분별이 안됩니다. 그래서 분별이 안되서 예수님이 못올 뻔한 가정들이 많은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도 권세가 대단하고 죽을 떄까지 예수 못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별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별을 잘해야하는 것입니다. 안믿으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갈지 몰라도 조금 있으먼 천국에서 만납니다. 이래서 못믿고 저래서 못믿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그것이 커보여서 세상 권세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권세 많은 붉은 용을 새로운 이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관이 예수 믿는 것을 방해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인을 삼키려는 것보다 아이를 삼키려고 합니다. 예수씨가 나오는 것을 방해하고 전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사람은 사단의 영광을 쫒아갑니다. 한 귀신 나가고 일곱귀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단의 대한 대처법을 잘 알려줍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안 읽습니다.
결혼도 잘하려면 주의 영광 교회의 영광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통과한 직업 그러한 직업을 어렸을 때부터 보여야 합니다.
4.광야가 예비하신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적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세상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사단이 핍박을 하니까 여자가 도망갑니다. 애굽이 학대를 하나까 가나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애굽이 통로이고 붉은 용이 통로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다른 사람들을 믿게 하면 같이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핍박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 내는 것입니다. 처절하게 외로운 그곳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되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들은 말씀이 안 들리고 통하지가 않는 것 입니다. 적용을 하나도 안하는 사람이 무슨 매력이 있겠습니까? 한 영혼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다 낭비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광야로 보내는 것이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