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의 인생
에스겔 24:15-27
김양재 목사님
오늘 본문에 표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페트는
문자적으로 사람들 눈에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어떤 표시를 의미합니다.
즉, 세상사람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해야
하나님이 여호와임을 알 수 있는 행동을 말 합니다.
큐티-즉, 말씀 묵상의 꽃은 적용이고 그 결론은 영혼 구원이라고 외쳐왔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표징의 인생을 사는 그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땅에 아버지의 품을 떠나 방황하는 자녀의 방황과 태풍을 붙잡아 주십니다.
어떻게 해야 인생의 태풍을 붙잡는 표징의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1.표징의 인생은 말씀이 임해야 합니다.
15절
태풍속에서 무너지지 말고 표징의 인생을 살기 위해
말씀이 날마다 임하고 또 임하는 것이 최고의 자격 입니다.
에스겔 24장은 전체의 전환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23장까지 심판을 예언하다가
24장에 현실에서 심판의 칼날로이 도시에 임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수없이 예고했던 심판의 전쟁이 임한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을 멸망의 표징이 아니라 소망의 표징으로도 세우셨습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을 보여주셨던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을, 유다 백성들에게 자신을 알리십니다.
사건을 통해서 말씀으로 알리십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이 임했나 살펴 봅시다.
16,17절
네 눈에 기뻐하는 것- 아내
한번 쳐서 빼앗는 것- 돌연한 죽음
그리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기뻐하는 아내를 한 번 쳐서 빼앗는다는것은 무엇일까요.
사역을 위해 각자 기뻐하는 것을 빼앗길 날이 온다는 상징의 의미 입니다.
에스겔이 1장에서 사로잡힌지 5년이 지나 서른의 나이에
선지자로 부름받은 것을 생각하면 에스겔의 아내는 더 젊었을 것입니다.
젊기도 했고 그래서 더 기뻐하는 아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의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죽음에도 불구하고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의 표현을 극단적으로 제한해야 했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해야 했습니다.
보통 죽은 자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표징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철저하게 감정을 억제하며 조절하는 자기 부정을 요구하십니다.
이 에스겔 말씀이 바로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영육간의 기뻐하는 것을 빼앗아가시는 것을 시기마다 경험 하였습니다.
시기마다 빼앗지 않으셨다면 이런 사명의 인생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학벌,경력 뿐 아니라 하루 아침에 남편까지 빼앗으셨습니다.
성경도 고아와 과부를 가장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기에
가장 최고의 형벙 같은 일이 온 것입니다.
남편은 자기 방식 대로 저를 끔찍히 아꼈지만 저의 삶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 말씀에 그 힘든 남편이 내 눈에 기뻐하는 남편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까요. 죽는 것이 나을 만큼 힘들었기에 드디어 십자가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성경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쁨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너무 달라서 이런 기쁨을 가지게 한
남편이 너무 고마워서 나의 기뻐하는 남편이 되어 나의 생명을 내어놓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뻐하는 남편을 또 쳐서 빼앗으신 것입니다.
다윗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나와 내 아비집을 치소서 라고 한 것 처럼
표징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선지자 자신을 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희생이 개인적인 고통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처럼 에스겔도 죄에서 구원해내는
사명에 기름부으심이 있기에 희생의 역할을 기쁘게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로 슬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적용
여러분 눈에 가장 기뻐하는 것을 쳐서 빼앗긴 일은 무엇입니까?
이 슬픈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믿어 지십니까?
2.표징의 인생은 말씀이 임하면 받은 명령대로 행해야 합니다.
18절
아침에 받은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적용 입니다.
가장 기뻐하고 도움이 되었던 아내가 죽었는데
명령대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은 그 자신이 하나의 상징이어야 했습니다.
에스겔이 유다 백성에게 표징이 되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죽자마자 사명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비인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 사회적 관념과는 구별된 모습을 보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거룩은 구별된 것이고 구별되기 위해서는 죽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독일의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때는 그 사람에게 와서 죽으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부르심을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소명이고 표징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젊은 아내를 데려가는 슬픔에 슬퍼하지도 말라는 명령을 주셔서
그것을 행하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순종이었습니다.
에스겔은 에스겔이라 하더라도 에스겔의 아내는?
이름도 없이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내는 유다 백성들에게 얼마나 경종을 울리고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름 없난 저의 남편 역시도 죽었어도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을 동기를
허락해주고 주께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간 남편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사역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죽고 나서 누가 이렇게 쓰일 수 있었겠습니까.
지나고 보니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남편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엄살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여자에게 남편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남편은 누워만 있어도 남편이 있어야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남편이 젊은 나이에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아침에 받은 명령이 있기 때문에 행할 수 있는 적용이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은 너무나도 중요한 삶의 지침이었습니다.
내 눈에 기뻐하는 아내보다 아침에 받은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표징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 눈에도, 제 눈에 기뻐하는 남편보다 아침에 받은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표징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적용
이 기가막힌 상황에서 아침에 받은 명령이 있습니까?
받은 명령대로 행하고 있습니까?
3.표징의 인생은 남의 간증에 공감해야 합니다.
19절
이 땅에 포로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에스겔의 삶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의 고난과 간증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가장 교만한 모습이고 현 교회의 실상입니다.
저 역시도 남편의 죽음 간증을 하며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러면 제 남편은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제가 어떤 확신을 가지면서 왔을까요. 두고보라 앞으로 잘되는 일만 있다
나를 따르라 다들 모여라 이러면서 왔나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상관없는 간증을 하였지만, 거기에 공감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면서 남의 아픔과 간증에 공감을 하며
남의 아픔에 상관이 있게 되었습니다.
적용
다른 사람의 간증이 나와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20절
에스겔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답할 수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에스겔은 항상 말씀으로 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하루하루 아침에 받은 말씀이 최고의 대답입니다.
말씀이 임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짦은 인생에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21절
에스겔의 아내를 하루아침에 데려갔다면
너희의 버려진 자녀는 칼에 엎드려지게 하겠다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들에게 신앙 생활과 말씀 교육은 하나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는 관련이 없는 입시생 기도모임, 붙는 것만 목적이 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전 자체가 우상이 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카이스트에 붙어도 자살을 하는 자녀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영적인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습니다.
영적인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자녀의 아픔에 끊임 없는 공감을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공감해주는 것은 십자가의 길 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자녀가 힘들지 않으면 이 말조차 공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든 자녀가 축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힘든 자녀가축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에스겔 16장에서 에스겔 보고도
피투성이라도 살라고 공감해주시면서 양육해가셨습니다.
저는 이런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제가 꼭 피투성이라도 살아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축복받지 못한 딸로 태어나서 엄마의 기쁨이 되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공감해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말씀이 잘 깨달아지니까 하나님께서 공감해주신 것입니다.
말씀이 잘 깨달아지도록 여러분이 인도를 잘 하셔야 합니다.
적용
영육간의 자녀에게 얼마나 공감하며 들어주며 기다리고 있습니까?
4.표징의 인생은 사명의 인생입니다.
22,23,24절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실것이다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에스겔이라는 이름을 이용하신 것은
이 부분이 유일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에스겔에게 너무 힘든 역할을 주셔서 미안해하셨는지
담대함을 주시려고 에스겔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백성에게 표징이 되기 위하여 에스겔은 큰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손에 자신을 맡긴 에스겔의 삶은 그 후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표징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슬픔을 느끼며
탄식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넘어 편애 하신다고까지 생각하며 위로 받고
표징의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25,26절
성전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칼에 엎드려 질때
예루살램에서 도피한자가 에스겔에게 예수살램의 멸망 소식을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실제로 저의 설교를 힘들어하고 떠난 사람들 중에는
목사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라며 자신의 사로잡힌 일을
저에게 알려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천국이 열리는 일이나 얼마나 고난이 축복이겠습니다.
사명을 위하여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에스겔은 문자 그대로 예루살램 성전이 함락이 됬으니,
내 말 좀 들어라며 열심히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각종 힘든 사건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났는가를 보이는 것이
선지자적 사명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7절
에스겔은 서른 살에 소명 받고 함락 될 때까지 7년여동안
행동과 말을 얼마나 아끼고 지냈는지 모릅니다.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이 입을 열어 주실 때까지
구별된 말과 행동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침묵의 훈련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사명의 인생을 위해서는 침묵의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적용
가장 힘들면서 서로의 눈에 기뻐하는 남편과 아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표징의 인생은 말씀이 임해야 하는 인생입니다.
말씀이 임하면 받은 명령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남의 간증과 아픔에 공감을 해야 합니다.
바로 이 표징의 인생은 사명의 인생인 줄 믿습니다.
나의 고난을 약재료로 삼아서 상처가 별이 되는 간증을 말씀으로 계속 녹여내는 것이
표징의 인생을 사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주의 어깨어 기대어서
표징의 인생을 살기를 축원 합니다.
기도제목
장지건
1.삶 속에서 깨어있어서 말씀이 임할 수 있도록
2.안되는 것과 내 사연의 늪에 빠지지 말고 기도하며 회복할 수 있도록
3.목장 식구들을 위해 중보할 수 있도록
4.대표 기도 담대히 할 수 있도록
정현수
1.매일주시는 말씀 묵상을 통해깨닫고 회개하며, 나아가 구체적인 적용에까지 이르기를
2.주변 지체들에게 관심 갖고 그들의 말에 경청하며 공감하고 중보할 수 있기를
3.침묵 해야 할 때와 말 해야 할 때,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분별 할 수 있기를
4.다가오는 기말 시험 준비 소흘히 하지 않을 수 있기를
송수형
1.회사 좋은 환경에서 일 하게 해 주신 것 감사할 수 있도록
2.계속해서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일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