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야 할 말씀
예레미야 13:12~19
정지훈 목사님
예레미야서는 1장2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라는 말씀으로 시작 합니다.
유다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마음이
예레미야의 큰 주제 이지만 말씀이 임했던 예레미야와 말씀이 임하지 않았던 유다백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시대를 살아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합니다.
말씀이 임하지 않으면 당연히 봐야할 것도 보지 못합니다.
말씀이 임한 시점부터 사로잡혀가기까지 예레미야는 유다백성에게 눈물로 회개를 촉구하였지만
유다백성은 듣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예레미야서와 애가를 포함해 57장까지나 쓰게 하신것은 그만큼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하고 들려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1.멸망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12절
가죽부대- 유다백성, 포도주- 진노
온 유다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찰 것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인데
가죽부대에 포도주가 가득찰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유다백성은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돌이키지도 못했습니다.
말씀이 잘 들리느냐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 지는가, 그 말씀을 통해서 나의 죄가 보이고 회개가 되느냐라는 뜻입니다.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자신들에게 주는 말씀으로 깨닫지 못한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멸망의 말씀을 자신의 말씀으로 듣고 있습니까?
우리는 멸망의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데 그것은 나는 멸망을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교만 때문입니다.
13~14절
유다백성이라고 해도 될 것을 이 땅의 모든 주민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바로 그 땅에서 축복을 누리고 있는 모든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것을 마치 내 것인양 교만하게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진노의 대상입니다.
왕,제사장,선지자,예루살렘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이 진노의 대상이고 진노의 대상이 아닌자가 없습니다.
나는 그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했던 유다사람 모두가 진노의 대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를 향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고
더 나아가서 자신들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유다백성들을 멸망하겠다고 하시면서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아끼지도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적용-멸망의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잘 들리십니까?
그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 가죽부대에 포도주가 가득차게 되는
멸망을 경험하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듣고 있지 않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2.공동체의 애통함이 들려야 합니다.
15절
진노의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다시 한번 유다백성에게 명령하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고 성전을 사모했던 유다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은 예배를 드린다면서도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귀 귀울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 말씀으로 묻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잘 듣지 않기 때문에 물을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뜻대로 살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스스로 잘 살아야 하기에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땅에서 자기가 빛이 되려고 자기 열심을 내며 살아갑니다.
16절
유다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복에 복이 더해지는
인생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없이 꿈꾸는 것이었고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빛을 구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들에게 돌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짙은 흑암과 깊은 어둠으로 바꿀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둠이 찾아오는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나에게 돌렸기 때문에 내 삶의 결론으로 찾아오는것 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섭리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일으키시전에 끊임없이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장차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암울한 시대가 임하는데 그 때가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얼마나 하나님과 상관이 있는지를 매일 말씀을 보며 돌아봐야 합니다.
입으로는 주님없으면 살 수 없다고 찬양하면서도 실상은 주님없이도 너무 잘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만 오면 은혜가 되고 눈물이 나는데
교회밖에서는 눈물도 마르고 은혜도 말라버리지 않습니까?
이처럼 교만하게 살면서 교만한 줄 모르고 어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유다백성들에게 오늘 끊임없이 울면서 말씀을 전해주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17절
동족들이 교만함 때문에 망할 수 밖에 없었기에 예레미야가 울며 통곡합니다.
그 교만 때문에 끝내 회개를 거부함으로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될
자기 민족에 대한 극한의 슬픔을 생각하면서 예레미야는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양때인 유다백성이 당하게 될 그 암울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통곡했습니다.
멸망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듣지 않는 교만 때문에 우리는 심판 당할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이세벨의 음행을 따르며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그 행위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변하지 않고 완악한유다백성을 향해 울어주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울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 눈물의 애통이 들려야 합니다.
공동체의 눈물을 통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울어주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은 지금 짓고 있는
나의 죄가 그렇게 애통해야 할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꺽이지 않는 나의 교만과 회개하지 않는 나의 완악함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공동체의 눈물이 보여서 처절한 죄 고백과 회개를 한 사람만이 자신과 똑같은
죄를 짓고 돌이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울어줄 수가 있는것입니다.
적용-나의 사로잡힘을 두고 애통해하는 공동체가 있습니까?
나의 죄 때문에 애통해하는 그 공동체의 눈물이 들리십니까?
또 다른 누군가의 죄를 보면서 애통의 눈물을 흘려주고 계십니까?
3.스스로 낮추어 앉아서 들어야 합니다.
18절
왕과 왕후에게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왕과 왕후는 낮출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고 받을 것만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면류관은 영광의 면류관 앞에 깨어지고 내던져질 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지면 어떠한 권세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19절
네겝이 봉쇄되었다는 것은 유다 전역이 빠져나갈 구멍도 없이 초토화 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끌려가고 거기서 제외될 사람이 없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왕노릇하고 싶어 합니다.
믿는 우리들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관계에서 왕이 되고 싶은 욕심이 항상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거룩이 인생의 목적인 것을 알면서도 뭔가 되어진 것을 구하고 있는
이세벨의 음행이 있습니다. 그 음행뒤에 숨겨진 성공과 기복의 가치관 때문에
무너진 탑을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렇게 군림하고 있는
왕과 왕후들에게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리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하신 말씀 앞에 낮추어 앉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하기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만한 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면 결국 우리는
왕에서 포로의 신분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꺾어버리십니다.
침상이 병상이 되어 포로로 하나도 남김없이 끌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낮추어 앉아서 멸망의 말씀이 들리는데로 또 공동체의 애통이 들리는데로
멸망의 면류관이 임하기 전에 나의 면류관을 내어 던지며 회개 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 바랍니다.
적용-세상에서 왕노릇하는 것이 좋아서 스스로 낮추어 앉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원히 누릴것 같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이 임하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이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말씀이 임하기 위해서는 나의 악함과 교만을 지적하시는
멸망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그렇게 주신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울어주는 공동체의 애통이 들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 말씀과 눈물이 들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왕노릇하고 있는 것에서
스스로 낮추고 앉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유다백성처럼 여전히 나는 말씀을 알고 있다고, 내 죄를 알지만
그정도는 아니라고 여기는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은 가죽부대에 포도주가 가득채워지는
진노의 사건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세상적으로 되어지고 싶은것이 있는 이세벨의 음행을 사모하면서
회개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해서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바벨론의 심판이 와야만
깨닫게 되는 우리의 우매함이 있는데
우리에게 말씀이 들려서 돌아오라고 하는 음성을 듣고 은혜가 회복되는
우리의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장지건
1.들어야 할 말씀 듣고 깨닫고 회개할 수 있기를
2.교만한 내 모습을 인정하고 스스로 낮아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3.목장에 나오지 못하는 목장식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먼저 연락할 수 있기를
정현수
1.말씀이 들리어 교만함에서 돌이켜 회개할 수 있기를
2.어떠한 결정을 하든, 내 생각 철저히 내려놓고 큐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기를
3.최선을 다해 면접 준비할 수 있기를
4.계속 금연
이동근
1.회사 업무분장 잘 이루어지고 부서 분위기 좋아지기를
2.좋은 사람과 신결혼 할 수 있기를
3.말씀 듣고 회개할 수 있기를
4.몸과 마음 건강 되찾기를
송수형
1.회사에서 주어진 일 마무리 잘 지을 수 있기를
2.손가락 부상 빨리 회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