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1 주일설교]
거룩한 선물
본문 : 고린도전서 14장 20절 ~ 25절
설교 : 원택진 목사님
사람들은 선물을 좋아합니다.
원택진 목사님 어릴적 어렵던 시절에 성탄절 선물을 동생과 받은 기억이 있는데 평소 부모님께 늘 졸랐던 장난감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지만 동생의 선물이 더 크고 좋은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 내 것을 양보하는 척 하면서 동생의 것을 가로채려 하였고, 후에 동생이 자기의 장난감을 다시 요구하자 싸웠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님을 통한 환란이 찾아오면서 선물을 빼앗기게 되고 내복바람으로 문 밖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1. 지혜에 장성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누가 더 지혜로운가에 대한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그들은 은사를 경험한 사람들 간에 자신이 받은 은사가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더 높다고 하면서 다투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지혜롭다고 여기고 있는 것들은 실상이 아니며, 인정 받으려고 하는 어린 아이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지혜는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면서 작정한 것이며, 여지껏 자신이 알던 것이 지혜가 아니며 하나님의 지혜가 지혜이며 세상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참된 지혜는 남을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며 남을 군림하는 것도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고 남을 생각하는 것, 나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사랑 때문에 감당하는 것입니다. 능력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시간에 겸손함으로 분별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으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권세가 없으셔서 빌라도의 재판에 서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것에 과시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감에 따라 이것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고민을 해보아야 합니다. 잘하는 것도 머물러 있으면 문제입니다. 장성한 사람은 분별을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하지 않으며 공동체를 위해 남을 위해 절제를 합니다.
우리는 남이 받은 은사를 질투하면서 하찮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의 은사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죄악을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사는 대가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을 내 능력으로 자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서 장성한 나를 어떻게 가정과 생활에서 나타낼 수 있습니까?
좋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2. 경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21절 ~ 23절)
방언을 사용하는 경계, 용도를 잘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한 개인의 관계에 방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통하는 언어가 있다면 공적인 자리에서는 통하지 않는 언어일 수 있습니다. 방언도 이와 같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경계가 있는 율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구약 전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28장의 배경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하시지만 듣지 못하여 이방민족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자들에게는 고난으로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방언 사용에 대한 당시 자리와 동기를 보면 이것이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자랑하고 싶고 과시하고 싶었고 그 모습을 바울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율법과 선지자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 주신 것이 방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심판이기도 한 것입니다. 믿음이 대단해서 주신 것이 아니고 능력이 있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명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방언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받는 사람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공동체가 흔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방언을 본 초신자들을 생각해 보면 자기적인 방언과 자기자랑의 방언을 보면서 이방종교와 다르지 않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모습과는 차별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해 보여도 실제로는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도 그냥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거룩함이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경계를 넘으려는 나의 교만은 무엇입니까?
3. 공동체를 예배로 이끌어야 합니다.
(24절 ~ 25절)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 자랑을 하려고 방언을 소리 높여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사의 목적이 자랑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은사는 예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언은 미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말씀이며 이것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말씀을 먼저 주의하여 듣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역할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다 드러낼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듣는 자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어야 합니다. 방언하는 사람은 방언을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고 듣는 사람은 회개를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문제로 이것이 죄이구나 하면서 회개하는 울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증도 예언입니다.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중요성의 차이입니다. 모두 적절한 시간과 용도,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비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예언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전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고 예배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시간도, 사명도, 가족과의 관계도, 심지어 고난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랑을 하면 교만이고 뇌물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 선물인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면 고난에 빠지는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사와 고난)로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은사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적용질문
나의 선물을 예배의 자리로 이끌고 있습니까?
고난에서 사명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참석자
이재웅, 정율, 정의현, 김재훈, 김성필, 황태훈, 김돈식
85 김돈식 형제가 새로 등반 하였습니다.
여자친구전도로 우리들교회 처음 왔다고합니다.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받은 은사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각 가족 관계의 고난, 취업의 고난, 건강 고난에 대해 나누고
밋있는 피자와 함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기도제목
의현이 이번주 면접에대해 하나님의 뜻으로 좋은 결과 있길 바라고, 하루하루 힘들텐데 건강 잘 지킬 수 있길
재훈이 동생을 떠나보내고 힘든 시기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사명으로 잘 이겨낼 수 있길
돈식이 여자친구의 전도로 처음 교회란 곳에 오고 공동체 참석했지만 잘 적응하고 하나님 안에서 건강잃지않고, 잘 이겨낼 수 있 길
재웅이형 목자로써 바쁜 시간속에서도 수고가많으신데, 조만간 좋은소식 들을 수 있길
태훈이 공동체 안에서 잘 적응하고. 건강 되찾아 원하는 취업과 교제 할 수 있길
성필이 헬기 조종사로써 사고없이 잘 생활하고, 신교제 신결혼 할 수 있길
현수 독일에 갔다고 들었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길
재홍이 일로인해 당분간 휘문성전에서 예배드린다고 했는데 바쁜시간 속에서도 항상 주님안에서 말씀으로 살아가길
율이 가족관계와 마음의 병, 그리고 낮아지고, 나와 하루 하루 싸워가는 이 시기이지만 '나도 죽었었다' 는 예 수님 밀씀처럼 힘든 과정에서 욕심 버리고내 자신을 죽이고, 힘을 빼고 말씀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길
이재웅 기도제목
1. 전도축제 때 이혼위기에 있는 친한형의 형수가 오기로 했 는데 와서 말씀으로 위로 받고 해석돼서 이혼하지 않도 록
2. 조카가 수두를 앓고 있는데 건강하게 회복하도록
3. 생활예배가 많이 무너졌는데 다시 빨리 제자리 찾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