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 요약
오늘 하나님께서 하루라는 선물을 주셨다. 저에게는 설교라는 선물도 주신 것 같다.
오늘 설교 말씀으로 은혜 베푸셔서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예언이 되기를 바란다.
고린도전서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교회의 리더들, 배우자, 은사, 성찬을 서로 비교하면서 높고 낮음을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은사보다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하나님의 사랑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야기한다.
12장에서 은사를 이야기하고, 13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14장에서 다시 은사를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사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과하고, 사랑 안에서 사역을 하는 은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은사 중에서 방언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넓게 적용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거룩한 선물인 가정, 생명, 가족을 은사로 다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으신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선물들을 선포하고 교회와 세상에 나타낼 수 있을까.
첫째, 지혜에 장성해야 한다.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린도 교인들은 누가 더 지혜로운가?로 싸우고 있었다. 교회 리더들에 대해서는교회 리더들 중에서 누가 더 지혜로운가?를 가지고 파당을 나누고 다투었다.
은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은사가 더 좋은 것이라고 비교하면서 다투었다. 그 종류가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고린도 교인들은 내가 더 지혜롭다. 내가 너보다 더 높다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한다. 자기가 지금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고 비교하는 것들이 지혜의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지혜롭다고 여기고 있는 이유들이 실장은 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비교와 인정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들이 어린 아이의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받은 은사가 아무리 신비하고 놀라워도 그것을 사용하는 일에는 성숙한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지혜는 무엇이며 고린도 교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면서 작정한 것이 하나 있다. 자기가 여태껏 알던 지혜들을 이제는 지혜로 여기지 않겠다고 내려놓는 것이었다.
바울에게 참된 지혜는 남을 설득하는 논리도 철학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지위도 아니었다. 바울에게 지혜는 오직 예수님이었다! 이것은 우리들교회에서 고백하는 지혜는 십자가라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십자가는 내가 아니고 남을 생각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이타적인 사랑이다. 그 사랑 때문에 감당하는 자기 희생과 자기 부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라고 말했다. 능력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일을 잘하고, 못하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간에 겸손함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십자가를 지셨는가? 권세가 없으셔서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나? 능력이 없어서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을 다 받아내셨나? 사랑 때문이셨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 마치 어린 날의 저처럼. 어릴 때는 귀여울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자라가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걱정해야 한다. 그에 비해 장성한 사람은 주위를 돌아볼 줄 안다. 때와 용도 그리고 방법을 분별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일을 전부하지 않는다. 자유가 있어도 남을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서 절제하고 참는다. 그리고 남을 나보다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세워줄 수 있다.
방언 받은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은사가 아니고 자기 취면일거라고 생각했다. 십자가의 지혜로 장성하지 못하니까 이타적인 마음이 없었다. 남이 받은 은사는 질투하고 내가 받은 은사는 과장하거나 자랑하고 아니면 속으로는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지혜에 장성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사랑으로 주신 선물을 그 뜻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 모습으로 어떻게 좋으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나? 은사의 유무만을 따지면서 교만하거나, 아니면 내가 가진 은사를 비교하는 것은 모양만 다르지 똑같은 죄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의 거룩한 선물을 등급 매기는 교만함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은사는 대가가 아니라 선물이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다고 하나님이 그 수고의 대가로 주시는 것이 아니다. 주시는 이의 자유에 달려있는 선물이다. 그 선물에는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
이를 알고 남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지혜에 장성한 하나님 사람의 모습이다. 그것이 좋으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적용질문]
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을 내 능력인 듯 자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 예수님 안에서 장성한 나를 어떻게 가정과 세상에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다. 내가 받은 은사는 좋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둘째,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하려면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바울은 방언의 은혜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혜에 장성하라고 말한 후에 방언을 사용하는 경계, 즉 용도를 잘 지키라고 말한다.
그 경계와 목적이 무엇일까.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전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방언은 경계가 하나님과 한 개인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을 이렇게 비유로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다. 부부사이에서만 쓰고 있는 은유와 비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나 비유를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한다면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개인과 은혜로 주신 것- 그래서 하나님과 영으로 대화하는 것을 공적인 자리에서 쓰면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방언에 경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율법이라고 제시한다. 율법은 보통 유대인들이 모세5경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구약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기도 했다. 바울이 인용하는 것은 이사야 28장 말씀이다. 28장의 배경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계속 선지자를 보내고, 율법으로 말씀하셨어도 이스라엘 백성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을 보내겠다고 결심하셨다. 바벨론과 앗수르 같은 이방민족을 침공할 것이라고 결심하시는 내용이 이사야28장에 언급되는 방언의 내용이다. 말씀이 안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고난으로 말씀하시겠다는 뜻이다.
바울이 왜 이사야 28장의 방언의 비유를 인용하고 있을까? 고린도 교인들이 방언을 사용하는 자리와 동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을 공적인 예배의 자리에서 사용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은사가 대단하다라는 것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지체들과 작은 차이만 있어도 그것을 자기 자랑으로 삼으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이사야서 28장 말씀을 인용하면서 방언으로 나타내는 표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율법과 선지자를 믿지 않은 불신앙에 심판으로 보내신 것이 방언이다라고 한다. 하도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이방인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방언이라는 것이다. 심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 방언이다.
즉, 고린도 교인들이 생각하듯이 믿음이 대단해서, 능력이 대단해서 주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영혼, 한 영혼을 믿음 안에 불러주시는 선물인데 이것을 가지고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경계를 넘는 것이라는 것이다.
선물은 전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지 받는 사람이 그 이유를 자랑하며 내세울 수 없다. 내가 10시간 기도했다고 주시는 것 아니다. 내가 뜨겁게 봉사했다고 그 대가로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목적과 의미를 벗어나서 자기 욕심대로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면 자신 뿐 만 아니라 같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체가 흔들릴 수 있다.
23절에 바울은 만일 방언을 받은 고린도 교인들이 모두 방언으로 떠들면 누가 그 말을 알아듣겠는가?말한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초신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혼돈 속에 떠나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방언이라는 신비한 현상은 교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종교에서도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종교의식을 치르다보면 비슷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분별 안되는 초신자들이 이 모습을 보게 되면 교회도 똑같구나. 이방 종교랑 같구나 라고 판단하지 않겠나.
지난 주일, 실상은 부요한 자 말씀을 통해 들은 메시지는 교회 공동체는 세상에 전할 메시지를 차별된 모습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자세와 관계, 그리고 고난을 통과하는 모습이 세상과 차별되어야 한다.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말씀을 통해서 들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해도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예배도 예외가 아니다. 성령을 따르는 질서와 경계에 순종하는 거룩함이 성도가 예배하는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할 줄 믿는다.
[적용질문]
가.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를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가.
나. 경계를 넘으려는 나의 교만은 무엇인가.
셋째,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선물은 공동체를 예배로 이끌어야 한다.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방언을 고린도 교인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소리높여 한 이유는 자랑을 하고 자기가 높임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은사를 자기의 자랑과 욕망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의 목적이 사람의 영광 혹은 자랑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배에서 사용해야되는 은사는 방언이 아니라 예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언은 우리가 알고 싶은 내일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예언의 예는 미리예보다는 은행에 예치한다고 할 때 쓰는 맡기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 예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그 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보낸 사람들을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고 불렀는데 말씀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맡겨주신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이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공동체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모두가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주의하여 잘 듣는 사명에 순종할 때 전하는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이 예언이고, 예배에서의 역할인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얘기한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우리가 말씀을 잘 맡아서 그것을 잘 전달하면 듣는 자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다.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저처럼 신기해할 수도 있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 방언을 믿지 않던 자들에게는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방언이 다른 지체들에게 책망이 되거나, 그 마음의 일을 판단해주지는 못한다.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듣는 사람을 회개하게 한다. 마치 오늘 제가 방언에 대해서 가졌던 죄에 대해서 회개를 나눌 때, 같은 죄를 마음에 짓고 있는 지체들이 아, 이것이 죄구나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는 울림이 되듯이 말이다. 간증하는 지체들의 눈물이 나의 죄를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간증도 예언이다.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나 자신조차도 속이면서 죄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습관들이 말씀 앞에서 그것이 죄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 예언의 역할이다.
즉,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함께 예배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오늘 주신 말씀으로 예언과 방언의 차이를 묵상하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은사의 차이가 용도와 경계의 차이이지, 중요성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은사는 사용해야할 적절한 장소와 시간이 있다. 방언은 방언대로, 예언은 예언대로. 각각의 용도와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것을 비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에 맞지 않다.
예배에서 예언할 때,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예언의 말씀을 듣고 믿지 않던 자들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고 전파한다. 예언의 은사가 목적하는 바가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인 것을 보여준다. 방언이든 예언이든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숨은 일들이 드러내어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하는 일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4장은 고린도 교회가 갈등을 겪고 있던 방언의 은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넓혀서 생각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른 선물로도 적용해볼 수 있다.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시간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사명과 가족들과의 관계, 심지어 고난도 거룩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들교회가 부르짖는 것이 무엇인가? 고난은 축복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선물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것이 무엇일까? 저와 공동체 모두의 구원이다. 그런데 선물로 주신 은사로 나를 자랑하고 높이면 그것은 교만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선물이 아닌 뇌물로 받는 것이다.
고난도 구속사로 보면 주의 율례를 배우고,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는 선물이다. 그런데 이 선물로 하나님의 사랑을 듣지 못하고 억울한 형벌이라고 여기면 고난의 신비와 목적을 잃고 교만에 빠지는 올무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은사도 주시고, 고난도 주신다. 이 선물들이 만나는 모든 이들의 숨은 마음으로 드러내는 도구가 되길 원한다. 또 하나님을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하는 그 예배의 자리로 이끄는 사명을 감당하는 약재료 되기를 축언한다.
[적용질문]
가. 나의 은사와 고난은 내가 속한 공동체를 예배의 자리로 이끌고 있는가.
나. 고난에서 사명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연은 무엇인가.
2. 기도 제목
장원영
1. 허락하신 은사를 잘 사용하는 장성한 자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 매장에서 겪은 제게 맡기신 말씀들 잘 증거 할수 있는 지혜주시고 듣는 모든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는 은혜주시길 기도해주세요
3. 가정, 매장, 공동체에서 경계를 잘 지킬 수 있는 분별의 지혜를 주시길 기도해주세요
4. 매장 공사가 순적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세요
5. 신교제, 신결혼
류지민
1. 신용카드 쓰지 않고 정한 용돈 안에서만 경제활동을 하여 경제적 경계를 지키는 적용 잘 할 수 있길.
2. 직장에서 관계에서 경계를 지키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로 마음이 어려운데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구름이 걷히길
3. 육적인 건강이 속히 온전히 회복되길.
4. 출퇴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5. 신교제, 신결혼
민선애
1. 큐티 묵상하면서 내게 주시는 말씀 깨달을 수 있도록
2. 수술 전 빈혈약 먹고있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힘든데 회복될 수 있도록
3. 6월 19일 수술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4. 가족 사이에서 주님이 주신 은사 잘 사용할 수 있도록
5. 신교제, 신결혼
이화진
1. 매 순간 하나님의 평안함으로 매일을 보내도로
2. 말씀으로 증거하는 삶 되도록
3. 아직도 깨어지고 수치를 당해야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잘 감당할 수 있도록~~
4. 월급 낭비하지 않기
5. 신교제, 신결혼
왕수정
1. 극동에서 영육간의 건강과 평안
2. 배우자기도
3. 극동리더들:지사장님 부장님들 직속선배님들의 환경과 마음이 주안에서 평안하고 기쁘시기를 기도
4. 매너리즘에 빠지지않고 자율적으로 더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방송일하기
유서연
1. 경계를 잘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2. 동생고난에서 온가족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견딜 수 있도록. 하루 속히 동생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3.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