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4_일3_정갑신목사님_의도치않은열매에관하여_왕하201-6
[주일예배 설교]
반갑습니다. 바로 설교하면 되는 거죠? 제가 원래 1부와 2부를 다른 내용으로 설교를 하려고 보냈고 그렇게 주보에 나왔어요. 1부를 마치고 2부 본문을 마치고 보니까 별로 은혜가 안 될 것 같아서. 근데 목장모임 때 통일성이 있어야 되니까. 제가 제안을 받고. 1부 때 다시 하는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잇몸에 뭔가 꼈어요. 제가 미국 갔다 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 불편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우리의 마음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종종 질문을 할 수 있는. 불평. 나는 에이를 심은 게 분명한데 왜 비이가 나왔을까. 나는 의도했고 기대했는데. 왜 결과는 전혀 생각치도, 의도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결과가 나왔을까? 보통 성도들이 강사를 같잖게 생각하면 반응이 없더라구요. 근데 대표적인 게 뭐냐면. 자녀. 왜 우리 집에서 이딴 게 나왔지? 저는 엄청나게 했거든요. 둘째 딸에 관한 얘기. 여기 와 있는데. 둘째 딸을 양육하면서. 제 아내가. 여보. 어떻게 저런 애가 나왔지? 내가 심은 에이는 비이라는 요소가 나올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어떻게 저런 애가 나왔지?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에게서 저런 애가 나왔을까? 내가 그렇게 말함으로써. 내 자녀가 그런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심어왔던 모든 것으로부터 무관하다. 사실은 그럴 수도, 그럴 지도 모르죠! 그 결과가 저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70년대 80년대 믿음의 세대. 얼마나 열심히 헌신했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헌신했는데 다음 세대들을 다 잃고 있어요. 더 이상 교회가고 싶어하지 않죠. 3%면 미전도 종족입니다. 우리들교회처럼 주일학교 2천명 되는 교회는 별로 없지만 긴장해야 합니다. 각 대학교 캠퍼스 사역자들은 경악하죠. 정말 심각한 문제거든요? 저를 포함한 우리들이 최선을 다했잖아요? 기도! 복음! 예수! 헌신! 충성! 뭐~ 따라올 나라가 없죠~ 그 이유를 면밀하게 생각해봐야죠. 에이, 안에 비이, 가 나올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음을 생각하고. 동의하세요? 아멘~ 감사합니다. 동의하셔야죠. 진짜에요. 그럴 수 밖에 없다, 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불가피하게 불가항력적으로, 또 우리 자신이 초대한 것이 아닌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인과 결과, 인과관계적인 요소를 피하려고 합니다. 어떤 나의 요소들이 그런 결과들을 냈는지. 성경에서 열왕기서에서 수 없이 많은 왕들이 등장하는데. 믿음의 사람으로 분류될 만한 사람은.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사람이에요. 히스기야는 그런 왕입니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어요. 거의 초죽음 상태에서 들어갔을 때. 앗수르 왕이 보낸 편지를 펼쳐놓고. 한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 밖에 도우실 자가 없는지. 하루 아침에 앗수르 군대 18만명이 몰사하는 사건.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죠. 그렇죠? 지금 계속 같지 않나요? ㅎㅎ 히스기야의 대단한 믿음! 오늘 본문에서는 병 걸렸어요. 오늘 본문 선택한 이것은 김양재 목사님의 투병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여러분, 히스기야는 병에 걸렸어요. 믿음으로 기도했어요. 기도의 응답을 받아서 15년 연장됐어요. 위대한 사건, 이후에 히스기야가 아들을 나았어요. 그 이름이? 므낫세죠. 1부 예배 때는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어요.고맙죠. 강사의 존재감을 불러 일으켜주는. 남 북 이스라엘을 모두 통틀어서 가장 사악한 왕. 55년 남유다를 우상숭배로. 아버지 히스기야의 이름을 더럽혔죠. 이유의 핵심이 므낫세 였습니다. 므낫세가 얼마나 악했는줄 몰라요. 평생을 믿음으로 살았던 히스기야! 그의 아들 므낫세는 나라를 말아먹었어요. 그래서. 불가피하다! 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믿음의 기도를 드린 것 같지만. 므낫세가 그럴만한 방법으로 자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히스기야에게 문제가 딱 생겼어요. 무슨 문제죠? 병 걸렸어요. 그 당시 선지자가 누구죠? 고맙습니다. 대답을 안 하시는 것을 보니까. 이사야죠! 이거에요. 당신 이거 살 수 없는 병입니다. 죽을 겁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요. 집안을 정리하고.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얘기해줬어요. 그러면 김양재 목사님 같은 경우는 어떻게 얘기하시죠? 아멘! 목욕탕 세미나 때. 제가 왔어요. 여러분이 예측할 수 있는 반응을 하셨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무서운 결과가 내 앞에 왔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만 알 수 있다면 저는 죽어도 괜찮습니다, 하고 말하는 어떤 상태! 를 기다리죠. 고맙습니다. 대답 안 해주셔서. 우린 절대로 기다리지 않아요. 해석을 잘 합시다, 이런 뉘앙스로 말하지만. 지난 주에 잇몸치료를 좀 세게 받았어요. 긁어내고. 여기를. 수십 바늘 꿰맸어요. 마취가 풀리니까. 고통이 내 몸에 붙어 있잖아요. 피할 수가 없죠. 제가 냉철하게 생겼잖아요. 눈물이 저절로 막 쏟아지는 거에요. 제가 칼 들었을 거 같아요. 고통이란 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거죠. 우리가 고통 중에 있지 않을 때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해요.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거죠? 김양재 목사님이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셔서 제가 뭉클!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어요? 삐졌습니다. 여러분 삐진 걸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
1,2,3절
히스기아갸 벽 보고 등 돌렸어요. 이거 무슨 행위죠? 삐짐! 히스기야는 문제가 있으면 여호와의 성전을 찾았던 사람입니다. 성전을 가지 않고 벽을 보고 눈물을 흘려요. 통곡을 합니다. 저를 보세요. 통곡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이죠. 알고 계세요. 그러나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다 알죠? 내가 심히 죽게 되어서 힘들다! 알고 계세요. 그러니까 뭐요? 내 마음이 하나님의 뜻까지 가서! 내 마음이, 내 온 육체가 가야 되는데! 우리가 그 부분을 잘 생각해야 돼요. 그 상황이 막상 됐을 때. 아버지와의 분리! 아버지와의 이별! 헤아릴 수 없는 그 고통! 우린 헤아릴 수 없어요. 그게 엄청나게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때 왜 통곡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기 위한 통곡이었죠. 내 마음의 염려와 근심이 아버지께로 가야 하는데. 또 하나의 통곡은 뭐죠? 내가 원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떼를 쓰는 거죠. 하나님! 내 마음을 쫌 알아주시고 내게로 와 주세요! 히스기야의 통곡은 내 통곡이에요. 그 축이 하나님에게 가 있지 않고 내게 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히스기야의 기도가 잘 보여주죠. 기억해주세요. 무슨 말이죠? 하나님, 저는 이런 식의 댓가를 받을 만큼 살지 않았잖아요? 이 정도의 댓가를 받을 정도로 살아온 게 아니잖습니까? 내가 얼마나 희생적으로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저는 이것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다 잊어버리셨습니까? 다 기억하시잖아요? 자, 여러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사실은 대단히 무서운 기도에요. 제가 제 자신을 보면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거에요.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의 믿음이 종교화되어 간다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정말로 깊이 머무를 수 있다면 이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종교화 되는 과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면. 헌신의 정도, 수고의 정도. 내가 무엇을 했든지. 신으로부터 보상의 댓가의 정도를 결정하는 거에요. 내가 열심으로 살아간 만큼, 신은 그 정도에 걸맞는 보상으로 내게 대답하셔야 되는 거에요. 그게 종교에요! 얼마 전에 큐티인의 본문이 레위기였는데.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만할게요. 어디에나 어떤 문화를 가나 제사로 꽉 차 있습니다. 제가 8월달에 미국에서 관여하는 이사회에. 멕시코시티에 있어요. 피라미드가 이집트 만큼 많았어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무덤이지만,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제단이더라구요. 전국의 우승자가 격투기를 통해. 최종 우승자는 살아있는 채로 배를 갈라요. 심장을 꺼내 제단에 바쳐요. 심장을 꺼내서 바쳐지는 순간, 신이 되는 거에요. 여기 굉장히 위험한 원리가 있죠. 아담과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먹었죠? 신이 되려고.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난 용서하려는 조건들을 계속 꺼내죠.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보다 더 하나님 다워지려는 거죠. 세상의 모든 제사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하면! 신에게 여기서 그 사람들이 싸워서 이겨낸 결과를 신에게서 받아 내야 하는 거에요! 온 세상에 가득한 제사의 원리에요! 레위기의 제사는 다릅니다.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제사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걸 받았어요. 영원토록 지켜주신다는 약속을 받았어요.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제사에요. 그게 복음이죠. 하나님의 아들을 받았어요. 뭘 더 바라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을 받은 자의 영광과 기쁨과 만족 때문에. 그게 복음의 삶이죠. 희한한 것은.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종교화돼요. 내가 스스로 뭔가 하면서 자기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은 열망이 너무나 많아요. 가장 무서운 우상인데. 이것까지도 싸우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선합니다. 저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이게 주님의 뜻이라면 받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려만 주십시요. 이렇게 기도해야 되잖아요? 종교의 가장 무기력함이 어디있어요? 여기서의 나의 행위가 신을 조종할 수 있는 거에요. 절에 가까울 수록 더 영향력이 많습니다. 우리의 행위의 정도가 신의 보상을 조절한다면. 나의 보상이 신을 조절한다면. 얼마나 신이 무력한가!? 왜 우리 다음세대가. 이렇게 무기력한가? 우리가 왜 다음 세대를 잃고 있는가?! 왜 우리가 이걸 가르치고 있는 거에요. 너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실꺼야. 우리들교회. 우리 아이들에게 떨어지는 것은 저주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지금 이 땅의. 죄송해요. 대다수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속의 문화죠. 우리 속에 그런 문화가 있는데. 아이들로 하여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도록. 우리도 모르게 가르쳐요. 제가 잔인하게 말하면. 하나님 사용법을 잘 배우는 자가 되도록 가르치는 거에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능해요. 어릴 때는 부모님이 다 해주거든요. 청소년기 들어가면 하나님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돈, 친구, 공부죠. 쓰기가 너무나 쉬워요. 성적 좀 오르면 일주일 일년 내내 열심히. 돈과 친구와 공부로 훨씬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거에요.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필요성이 사라지는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교회의 존재의미가 너무나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제가 아쉬운 은사가 있는데. 1번 은사가 아부의 은사에요. ㅎㅎㅎ 그 전에는 권위에 대한 순종의 마음이 있는 세대였는데. 그 시대가 사라진 이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은 내가 사용하기 힘든 대상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에요. 하나님은 사용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용 받아야 되는 존재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과 존귀하심과 고귀하심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죠. 어쨌든 히스기야의 기도 속에 그런 연약함의 아픔이 담겨 있다는 것이죠. 또 하나 있어요!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고쳐주시겠다.
5,6절
여기 보세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낫는 거죠? 왜?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이에요. 말씀 하셨으면 그냥 그건 현실인 거에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어떻게 하죠? 나으니라. 선포까지 하셨는데. 그 증거를 보여달라고 해요.
7,8절
이거 진짜인거 증거를 주세요. 이거에요. 이게 진짜 무서운 겁니다. 왜 무서운 거냐면. 하나님이 나을 거라고 하셨죠? 객관적 증거. 뭐다? 나을 거란 것을 보증해주는. 이해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더 믿을만 하다고 요청하는 중이에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내가 충분히 이해할 만 해서 믿는 거면 믿음의 대상이 아닐지도 몰라요. 설명을 다 듣고. 아하! 그거였구나~ 이제 알았어. 이해됐어! 믿을게! 라고 말할 때의 믿음은 뭐가 믿음이에요? 믿음이란 건 뭐냐면 선악과에요. 선악과는 뭐죠? 불합리한 거에요. 불필요하고 이해할 수 없고 모순 어린 게 선악과에요.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지킬 수 있으려면 딱 하나 밖에 없어요. 뭐죠? 이건 너무나 부당하다. 모순이다. 그러나! 먹지 말라는 하나님이 더 크셔!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불필요한 명령을 하시는 분이 아냐! 비록 내게 이해되지 않고 설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게 믿음이에요. 설득되서, 그 말씀이 이해되서 믿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서 믿는 겁니다. 그게 믿음이에요! 히스기야는 증거 보여달라고 하는 거에요. 증거. 슬픈 거에요. 이미 하나님에게서부터 자기에게로 옮겨 온 거에요. 그게 무서운 거에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신 거는 독특하게 응답하셨어요.
5절
자, 보세요!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셨어요. 다시 말하면, 히스기야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 문제 해결에 대하여 응답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 개인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그의 백성의 필요가 훨씬 많은 거에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존재의 공공성을 요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투병. 부당한 게 아니죠. 왜? 이분은 훨씬 더 공공적 존재이기 때문이죠. 공공성이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어요.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나만 부르시는 게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백성을 책임져야 될 공공성의 문제로 파악하지 않고. 단지 자기 개인의 질병 문제에만 대답하기 때문에 답답한 것입니다.
6절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이 앗수르를 위해서 응답하시는 게 아니에요. 내 종 다윗을 위하여. 내 종 다윗의 약속 때문에 응답하는 것이고, 이 성을 보호하리라! 히스기야 개인의 기도 때문에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해져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질문을 했어야만 해요. 하나님, 왜 15년이죠? 5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물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안 물어요. 그리고 우리도 안 물어요. 우리도 안 묻는 거에요. 우리에겐 오직 나를 위한 응답만 중요한 거에요. 우리의 사고가 그렇다니깐요? 하나님께서 15년이나 연장해주신 것에 대해 묻지 않아요. 왜 15년이죠? 히스기야가 후계자를 준비하지 않았어요. 후계자를 준비할 최소한의 시간이 15년인 거야. 묻기가 두려운 거야. 기아 자동차의 제일 좋은 게 뭐죠? 케이나인. 근데 바로 그 주간에 존재의 공공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거야. 내가 40대 후반에 케이나인을 탈 때 자녀의 시선이, 주변의 반응이 어떨까? 케이세븐을 탔대요. 우리 아빠는 역시 공공성을 갖고 있는 아빠구나. 얼마나 고마워요? 정말 예쁘죠. 여러분. 누구든지. 히스기야처럼 자기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고 집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한 나라의 왕은 그러면 안 되죠! 책임성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왕입니다. 공공적 존재로 부름받았어요. 하나님의 어떤 응답이 왔을 때. 이 응답에 내포된 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어요. 정말 비참한 결과가 왔습니다. 남유다의 왕이 병에서 나았다는 결과가 오자. 참 감축합니다. 히스기야가 굉장히 과시적으로. 당신들 상당히 머리를 잘 굴려서.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자기를 과시하려고 왕궁과 성전의 모든 보물들을 보여주죠. 자, 그건 어떤 태도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죠. 난 이걸 상당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어떤 객관적 현실을 상당히 앞세운 표현이기 때문에. 너 이럴 수가 있느냐! 너 크게 잘못했다! 너가 보여준 모든 보물들 바벨론에 빼앗길 것이고 너 아들들 바벨론에 내시로 잡혀갈 것이다! 근데 히스기야가 놀랍게도 이렇게 얘기했어요. 하나님 선하십니다. 얼마나 가증해요. 그리고 토를 붙였어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별 문제가 없다면은. 요딴식으로 싸가지 없게 이야기했어요. 우리도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무서운 거에요. 히스기야가 비이, 를 심은 거에요. 15년 생명을 연장받은 3년 째 아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어요. 왜!!! 15년에 대한 질문이 없었어요. 마음의 중심축이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둘째 딸이 여기에 와 계십니다. 슬픈 얘기는 아니에요. 해피엔딩 입니다. 이거는 부모의 입장일 뿐이에요. 그 아이는. 그 아이로써는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았을 거에요. 제가 안산동산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인데. 제 아내가 입에 달고 산 말이. 여보. 나 죽고 싶어. 목사님. 집에 무슨 일이 있으세요? 왜요? 아유. 목사님 딸이 그렇게 목사님 욕을 하고 다닌다고. 딸이 공부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자유로왔고. 예배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자유로웠고. 아빠의 기우. 하나님. 우리 딸이 임신하고 돌아와서도. 그런 생활을 안 했어요. 아빠의 기우죠. 저렇게 살다가 이렇게 되지 않을까. 공부는 완전히 바닥이었어요. 42등 중에 39등. 내 뒤에 운동부야. 그게 매력이었어요. 아, 고등학교에 갈 곳이 없다. 지가 어떻게 알아서 고등학교를 잘 갔어요. 저기 화성에 남양만에 두레. 김진홍 목사님. 지금은 매우 좋아진 학교. 근데 이 친구가 중3인가 고1땐가. 이 친구와 말다툼을 심하게 했는데. 아빠. 이래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아빠인줄 몰랐어? 그 말 듣고 제 방에 와서 울었다니깐요? 너무너무 힘든 거에요. 난 목회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성도님 다 속으로 말하고 있더라구요. 니 딸이나 잘 키워. ㅎㅎㅎ 설교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어요. 내가 목회를 그만두고. 따른 거 뭐 할 게 없을까. 따른 거. 이 아이가 기숙사에 와 있어요. 하나님. 우리 하림이 어떡합니까. 하나님. 특별한 응답이 왔어요. 내가 너에게 사랑하라고 준 딸을 너가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니. 그때 회개가 시작됐어요. 여러분. 우리가 보통. 우리 아이가 집 나가면. 야! 나가버렷! 애가 나가면 죽음의 시간이잖아요. 아주 찰나지만 존재 자체가 고마운! 이런 찰나가 일상이 되게 살 순 없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에요. 우리가 이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지. 우리의 행위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죽는 수 밖에 없는 거를 제가 알게 됐어요. 주여. 저를 죽여주셨어요. 딸한테 사과해야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분이 막 나는 거에요. 하나님. 잘못은 저년이 다 했는데. 집에 가서 사과를 하는데요. 딸은 들은 척도 안해. 멍 때리는 거에요. 너무 화가 났어요. 그 이후로 제가 신비한 경험을 했어요. 딸이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어요. 사랑하려고 애썼어요. 그 이후로는 공부니 뭐니 일체 안 했어요. 고3때. 딸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아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빠에요. 농어촌 특례가 된대. 선견지명이 있는 딸이야. 영어과에 1명 뽑는데 원서를 냈는데 떨어졌어요. 아니야. 자기 대기번호 중에 1번이래. 2명 지원했는데 1번이야. 그게 우리 딸의 매력이란 것을. 대학교 1학년 때 올 에프. 제가 이유를 물었더니. 아후. 대학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서 수업을 안 들었대. 국가장학금을 받고. 남편이 우리 교회 부목사에요. 저희 딸이 우리 교회 사모님이 됐어요.
여러분. 제가 말씀을 정리할게요. 히스기야가 왜 이런 오류를 경험했냐면. 사람이 큰 은혜를 경험하고 큰 역사를 경험하게 되면. 마치 자신이. 늘 진리에, 내가 말하는 진리에 사람들이 반응해주기 시작하면. 마치 내 존재 자체가 진리인 것처럼 착각해요. 진리의 특성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진리는 빛이기 때문에 진리에 다가갈수록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발견해요. 절대로 교만할 수 없어요. 매우 겸손한 담대함이에요. 매우 겸손한 확신이에요. 우리의 자리를 잘 지키고. 주님께 늘 질문하며. 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늘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