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6. 11. 20
본문 : 사무엘하 3:21-39
제목 : #65279;내#65279;가 오늘 약하여서
인도 : 김양재 목사님
오늘 1절에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가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해져가고 있다고 쓰여있다. 그러나 다윗이 강해져도 치명적인 약점은 고쳐지지 않았다. 사울이 쫓아다닐때에는 그의 음란이 활동을 못했으나 사울이 죽고 결정적 적이 없어지니 전쟁중에도 여자를 계속 취하였다. 다윗이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여전한 약점으로 공개되더니 오늘은 약함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은 뭐든지 훌륭하고,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윗이 '내가 오늘 약하여서' 오는 문제점에 대하여...
1. 기회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다윗의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원수가 스스로 분열해서 나라를 가져왔다. 할말이 없는 인생이나 그럼에도 인내했기 때문에 되찾을 수 있었다. 전쟁은 힘든 것이다. 기브온 전투에서 다윗이 승리했음에도 다윗 왕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무엇인가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승리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악한 이웃, 불우한 이웃을 선으로 이기려면 인내가 요구된다. 언약 신앙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더 큰 인내가 요구된다. 성도들에게는 사단의 끈질긴 공격이 쉬지 않고 찾아온다. (야고보서 1장 4절 말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되고자 사울쪽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은 사울이 죽은 후 다윗에게 사자를 보내고 이스라엘 장로들을 규합하여 모두 동의를 구하였다. 9-12절에서 아브넬이 얼마나 기회주의자 인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다윗을 대적해 왔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처럼 다윗을 높이고 있다. 아브넬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왕권을 준 것을 알고 있었다. 사울은 기회주의 간신이며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아첨하는 아브넬을 믿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은 후에 아브넬은 그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었다. 사울쪽에서 보면 가장 큰 배신이다. 사울이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피흘리는 전쟁을 했으나, 믿으면 안 될 사람을 죽을 때까지 믿고 죽었다. 아브넬로 부터 우리는 충성을 다한 것 같아도 사랑없이 행했을 때, 나도 남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넬이 충신이라면 무능하고 힘이 없다고 사울의 아들을 어떻게 무시하겠는가? 지식을 행하는 것이 지혜라고 하였다. 사울과 아브넬은 왕과 신하의 지식은 있으나 돌이킴을 행하는 지혜가 없었다. 이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이 가득해도 자기 죄를 못보는 무식한 인생이 무엇인지 사울과 아브넬을 통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행한 결정이라 다윗에게 도움은 되었지만, 아브넬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다윗의 약함인 기회주의 때문이다. 아브넬의 뜻을 받아들이려면 다윗은 미갈을 몰래 데려오라고 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의 왕인 이스보셋과 설득하여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어야 한다. 다윗은 무서운 사울이 죽었음으로 여자를 얻는 약함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아브넬이 문제가 아니라 잘 믿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아브넬의 이 기회주의에 다윗 또한 기회주의가 되어 넘어서지 못했다. 다윗 자신이 행할 일을 아브넬이 완벽하게 해 주어, 피한방울 묻히지 않고 나라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다윗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적용) 여러분의 기회주의는 어디까지인가? 여러분의 욕심이 기회주의에 넘어간 것을 인정하는가?
2. 심복의 배반을 처리하지 못하였다.
22-23절
요압이 전쟁을 이기고 돌아와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고 평안히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안히 갈 수 없는 아브넬이 평안히 갔다고 강조를 한다. 다윗과의 회담은 성사되었지만 다윗이 평안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하나님만이 아브넬의 평안을 보장해준다.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그가 평안을 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나의 앞날을 보장해 줄 것 같지만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요압의 심복이 '아브넬이 왔는데 평안히 갔다'고 하면서 요압과 다윗을 이간질 시킨다.
24-25절
이 상황에서 다윗은 아브넬이 피를 묻히지 않고 미갈을 데려왔기에 그를 믿어야 했다. 아브넬과 다윗은 원수였지만 이때에는 영적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다윗은 요압이 자신에게 따질때, 아무얘기도 하지도 못했다.
26-27절
다윗과 친척인 요압은 원한이 많고 작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일을 왕에게 따지고, 아브넬이 자기 동생을 죽인 것처럼 그대로 아브넬을 죽였다. 이것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동생인 아사헬 때문에 그를 죽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브넬이 좀 빨리 갔으면 죽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하더라도, 내 옆에 충신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부르고 기도해야 한다. 내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생이다.
믿으면 만사형통이니까 병도 안 걸렸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암이 권세로 쓰여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이길 원하신다. 암을 잘 모르니 암을 체휼해보라는 사명을 주신 것 같다.
한국 사람과 미국사람의 암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미국인 환자는 암선고에도 울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생각하여, 병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고, 환자 자신은 자기의 마음과 몸을 어떻게 다룰지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사건과 시간을 지켜주시기를 늘 기도해야 한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 없어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모든 식구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기도하도록해야 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가게 하는 것이다.
28-29절
내가 원수를 갚으면 자녀에게 그대로 내려간다. 바람, 술 등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내려간다.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는 저주이지만 예수님의 피로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맞다.
다윗이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후에 이렇게 저주하는 것이 바로 다윗의 약함이다. 요압을 편하게 대할수가 없다. 요압이 무섭고, 아브넬이 죽어 요압까지 없으면 통일왕국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예수를 맨 처음 믿을 때 하나님 나라와 인간의 나라가 분별이 되지 않는다. 교회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인간 나라와 같다. 다윗도 통일왕국을 세울 때에 아브넬과 요압의 힘에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요압을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다. 요압은 사사로운 원한과 권력욕 때문에 아브넬을 죽었다. 나라와 다윗 왕을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말씀에 의거한 저주를 하였다. 다윗과 같이 아둘람 굴에서부터 고난을 겪었지만 요압은 다윗이 이해가 안 된다. 다윗이 자기에게 경배하고 원수 사울의 왕관을 가져온 아말렉 소년을 죽인것, 원수 아브넬을 죽인 요압을 저주하고, 기름부은자 사울이 죽은 것을 슬퍼하는 것,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까지 지은 것이 구속사이다. 구속사를 모르는데 요압은 똑똑함으로 다윗의 의중을 꿰뚫어 보았다.
우리에게 힘든 시험이 오는 것은 여러분을 특별한 소유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나를 반대하는 자 중에 나를 돕는 자가 있고 나를 돕는 자 중에 해를 끼치는 자가 있다.
적용) 가장 가까운 사람이 뒷통수를 치는 배신을 겪어 본 적 있는지? 같이 갈 수도 안 갈 수 도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3. 오늘 내가 너무 약하여서 너무 어렵다고 고백을 한다.
다윗에게 이스라엘은 등을 돌리게 된다. 화해를 청한 아브넬을 죽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위기의 때에 기름부은자를 위해 애가를 부르고 슬퍼하였듯이 다윗은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불렀다. 상여를 따라가고, 성지 헤브론에 장사를 치르고, 요압을 말로 저주하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소리높여 울고, 옷을 찢으라고 하고, 금식하고, 음식을 먹으면 벌 위에 벌을 내리라 하며 본을 보였다. 이는 자기의 왕권이 아닌 하나님 나라 때문이다.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를 아브넬이 와서 견제해 주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셨다. 다윗은 사람들에게 하소연 하지 아니하고 내가 오늘 너무 약하여서 이일이 어렵다고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약점은 계속 드러나서 기회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배반을 막지도 못하고 그래서 너무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약하다고 하는 이것이 바로 다윗의 강함이다.
자기질서의 위인 사울과 아브넬이 자신의 나라를 가져오겠다고 하여 이것이 감사하여 운다. 사울과 아브넬을 위하여 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자세이다.
내 속의 기름부은자를 위하여 끝까지 대접하라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는 것이다. 끝까지 사울을 기뻐하고 용서하는 것이 기름부은자를 내 손으로 죽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심복이 이를 그르쳐 애통해 한다. 그래서 애가를 같이 불러야 한다고 다윗이 가르쳐 준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부하가 잘못했어도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교만한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계속 사울과 아브넬 같이 높은 자리에만 있다보니 그것을 모른다. 리더나 목장에서도 목자가 모든 것을 책임을 져야 한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와서 다윗에게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다윗은 내게 벌을 내리시는 게 마땅하다고 하니 백성들은 무슨 일을 해도 다윗 왕을 기뻐하게 되었다.
백성들을 어떻게 기뻐하게 할 수 있을까?
39절
마지막 절에 다윗은 내가 약하여서 너무 어렵다고 고백을 한다. 스루야는 훗날 자신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내가 된 나하스의 딸로 이복누이이고, 그녀의 아들들은 다윗의 조카가 되었다. 형들에게 설움을 받던 다윗은 계모의 아들들과 나이가 비슷하여 친하게 지냈다. 힘든 처지끼리 모여서 어려서부터 서로를 도운 것 같지만, 스루야의 아들들은 훗날 다윗을 괴롭히고 남들도 괴롭혔다.
요압을 하나님이 처리해주시길 바랐지만 그는 다윗보다 더 오래 살았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려고 하니 항상 오늘이 어렵다.
어렵다고 고백하는 것이 다윗의 강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공정함을 알기 때문에 기뻐하였다.
요압은 다윗이 자신의 집에 백탁병자 나병환자가 들끓을 것이라 저주 했지만 저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압처럼 똑똑한 사람들은 성경의 저주가 들리지 않는다. 요압은 구속사를 모르면서도 다윗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무서운 사람이다. 인간관계가 힘들지 않으면 내가 요압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윗은 기름부은자를 일관성 있게 사랑하였다. 자기 자신을 던져서 아브넬을 애도하였다. 기름부은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끝까지 시험하시는구나 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인 구속사가 이 중심에 있다.
질서의 우선순위가 기름 부은 자이다. 기름 부은자를 끝까지 일관성 있게 사랑하는 것이 힘들어 내가 오늘 약하다고, 은혜로 밖에 고백할 수 없다. 은혜로 밖에 우리는 설 수 없다. 예수 믿는 우리는 너무 약하여서 어렵다고 고백하는 것이 최고의 강함이다.
기도제목
담#65279;임목사님 남#65279;은#65279; 치료 과정 동안 체력 지켜주시고 건강 회복하실 수 있도록
#65279;
보영
1. 언니가 다시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
2. 언니, 형부, 아빠 교회로 인도 할 수 있도록
3. 해야 할 일 미루지 않고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4. 시간과 물질 지혜롭게 잘 쓸 수 있도록
5. 내 죄 볼 수 있도록
경화
1.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2. 다윗처럼 내가 너무 약하여서 어렵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3. 돈 관리 하면서 재정적인 문제 하나님께 맡기고 갈 수 있도록
4. 나에게 맡겨진 전도한 영혼 위해서 기도하고 연락하면서 잘 감당하도록
은별
1. 건강 잘 챙기면서 생활하도록
2. 조카(디아)가 아픈데 회복할 수 있도록
3. 동생 내일 취업 면접 잘 볼 수 있도록
성은
1. 지금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도하도록
2. 아빠가 몸이 안 좋으신데 병원가시고 치료받으실 수 있도록
3. 동생 취업 준비에 힘들지 않도록
민정
1. 내가 너무 약하여서 어렵다고 고백하는 삶이 되도록
2. 시험 남은 기간 시간 관리하여 마무리 잘 하도록
3. 엄마 건강 회복하시도록
4. 아빠 교회에 나오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