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0_일3_김양재목사님_내가오늘약하여서_삼하321-39
[주일예배 설교]
요즘 시국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본문이라고 생각해서 이 본문을 몇 년 전에 했는데 다시 한 번 할려고 합니다. 믿음 하나 지키려고 신대륙으로 건너갔던 청교도. 미국의 대선이 끝났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촛불 집회로 어둡습니다. 도대체 정치란 무엇일까요?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여져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져간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죽고 결정적인 적이 없어지니 전쟁을 하면서도 여자를 계속 취하여. 다윗은 너무 약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1. 다윗이 약하여져서 기회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였습니다.
할 말이 없는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끈질기게 다윗 왕가를 괴롭혔어요. 이제 승리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 신앙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더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에게는 더 큰 사단의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4절. 사울 쪽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9-12절까지 보면. 아브넬이 얼마나 기회주의자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윗을 지금 높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은 자기 삶의 결국으로 죽었습니다.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분별이 안 되니까 신접한 여인도, 선지자 사무엘도 찾아가고. 아첨만 하는 아브넬만 끼고 돌았어요. 그러나 사울이 죽은 후에 아브넬은 그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었어요. 사울 쪽에서 보면 큰 배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 없이 충성을 했을 때 나도 남도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충신이 아니었습니다. 충신이었으면 어떻게. 지식을 행하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있는데 돌이키는 행함이 없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1980년대 최태민씨는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대통령(그 당시는 아니었지만요.) 성경 얘긴 하나도 안 하고. 우리 이사장님은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늘! 일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 들은, 뭔가 왕과 신하로써 서로를 배려하는 지식은 있었지만 백성을 배려하는 지혜는 없었기에. 자기 죄를 못 보는. 진짜 무식한 인생이 무엇인지 사울과 아브넬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브넬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다윗의 약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기회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엄연히 이스라엘의 왕이 이스보셋인데. 공개적으로 이 일을 진행해야 된다고 조언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의 편을 안 드셨겠습니까? 안 드셨다고 해도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친절한 일인가? 남에게 아픔을 주는 일인가? 항상 띵크를 잘 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상대방으로 인해서 할 수 없어서 그랬다고 넘어가는 마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물론 이 일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아브넬이 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정말 아브넬은 나쁜 놈이구나! 여기 저기 붙는구나! 성경을 여기 저기 묵상해보면, 나하고 연관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진실한 것처럼 하면서 제가 4대째 모태신앙이니까.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얼마나 나의 유익을 위해서 행한 일이 많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넬은 이 세상 말로 하면. 세월이 지나고 말씀을 볼 수록 별 인생이 없다는 걸 보게 됩니다. 참을 수 밖에 없으니까. 지금. 다른 사람을 보면 넌 왜 못 참냐? 내가 참았으니까. 너는 왜 못 참냐?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니까. 내 옆의 사람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거에요. 내가 얼마나 기회주의자인가. 내가 얼마나 처신을 잘 했으면 선생님들이 그렇게 잘 봐줘서 돈도 없이 하고. 예고 강사도 돈도 없이 잘 했나. 요즘. 어떤 집 딸은 정말. ㅎㅎㅎ 그럼 여러분들 가운데서 처신을 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저는 믿음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학창시절을 잘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장학금을 받아야 되니까. 아무도 안 도와주니까. 시험 볼 때도 나는 공부 하~나도 안 했다고. 거짓말을 일삼았는지. 내가 벌고 생활비까지 대야 하니까 항상 인생이 절박했습니다. 이런 입시를 늘 치루니까. 들어가서 돈 벌고 생활비까지 주어야 하니까. 저는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으니까. 이젠 제가 암에 걸렸는데 제가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어요. 저만 생각했다면, 정말 이렇게 슬 수가 없는. 그래서. 전 진짜 제 인생이 아닌 거 같아요. 지나고 나서 보면, 부자 친구들을 보면서 제 속에서 비굴함이 없었겠습니까? 나의 쌓아논 간판으로 부자에게 선뜻 시집을 갔습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 왕보다는 다윗을 택해야겠다는 뜻을 전한 것처럼. 나에게 훨씬 유익이 있겠다는 생각.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세팅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믿음으로 행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너무 약해서 한 결정인데. 하나님께서 너무 불쌍히 여기셔서 여기까지. 저는 죽이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구나. 정말 은혜가 아니면 설 수가 없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아브넬이 성공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적용
여러분의 기회주의는 어디까지 입니까? 여러분의 욕심이 기회주의에 넘어간 것을 인정하십니까?
2. 다윗이 약하여서 심복의 배반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22-23절. 다윗이 평안을 보장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 평안이 일시적인 평안입니다. 하나님 만이 아브넬의 평안을 보장해주는데. 하나님의 가치관이 그 속에 들어가 있어서 평안한 것이지. 누군가 나의 앞날을 보장해줄 것 같지만은.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십니다. 요압과 다윗을 이간질시키는 발언을 합니다. 지금 다윗을 만나 평안~히 갔다는 말은 요압의 마음을 뒤집어놓는 말 아닙니까? 상대방에게 하나도 욕하는 것 같지 않지만. 들으면 뒤집어질 것을 알고, 말하는 여러분들의 속셈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치요? 그쵸? 항상 교양있게 얘기하면서 뒤집어질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아주 그냥 제가 그냥 뒤집어질 말을 하나도 화 안 내고 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짜증을 내는 것이죠.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만. 24-25절. 요압은 아브넬이 화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왕을 막 속이러 왔다고 따집니다. 리더를 하려면 늘 뭔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브넬을 믿어서가 아니라. 다윗은 아브넬이 또 배반할 걸 알아요. 약속을 지켜서 자기 부인 미갈을 데려와달라고 해서 데려왔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브넬을 믿어야 되는 거에요. 15광야를 지나서 같이 왔는데도 구속사가 안 깨달아질 수 있는 거에요. 나쁜 사람도 오늘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브넬과 다윗은 원수였지만 사실 이 때에는 영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에요. 요압은 무서운 사람, 전혀 못 알아듣고, 또 들을 태세도 아니고. 26-27절. 다윗의 친척인 요얍은요. 굉장히 원한이 많고 자기 집착이 심해서. 이렇게 원한이 가득 찬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몇 십 년을 딱 앉아있는 거에요. 요압의 식구들이 한결같이 열심당원으로 너무 한 마음이 되서 온 거에요. 예수를 믿으면서 이렇게 인간론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창립공신이라고 해서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창립공신인 요압이 다윗의 뒷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악역을 믿음 때문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 때문에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정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요압을 버릴 수가 없다는 거에요. 이 한 사람 원한을 잘못 샀다가 나라를 망할 수가 있는 거에요. 아브넬이 개죽음 당한 거에요. 1분 사이에 일이 일어나는 거에요. 세월호도 그때 배를 틀지 않았으면. 그 1분에 모든 게 결정되는 것 같은 일들이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내 옆에 전부 충신들만 있는 것처럼 보여도.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누구를 믿고 가겠습니까? 제가 삼풍백화점 갔다가 오전 집회를. 오랫동안 못 갔어요. 오다가 직진해야 되는데 나는 갈라고 생각했는데 내 손은 우회전을 했어요. 그래서 집으로 왔는데. 유턴해서 도로 가야지? 하는데 고때 자연스러운 생각이. 또 잊어버렸어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삼풍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ㅎㅎㅎ 그날 일이 너무 생생합니다. 사명이 남아있구나 라는 생각. 이것이 바로 믿고 기도하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믿음은 만사형통이구나. 열심히 목회했어도 암에 걸렸습니다. 레위기를 통하여서 제가 회개를 했어요. 계속 너는 노동하지 말고 속죄만 하라고. 세 사람 중의 하나가 암환자라는데. 정말 한 번 체휼해보라는 사명을 주신 것 같아요. 얼마 안 됐는데 제가 암에 대해서 알아진 게 너무나 많아요. 암이 권세가 되어서. 근데 홈피에 보니까. 세계적인 암 박사 김우신 박사가 말하기를. 미국인 환자가 우는 걸 거의 보지 못했대요. 한국인 환자는 복받쳐서. 미국인은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마음과 몸은 자기가 묵묵히. 심지어 죽기 전날 밤까지 일에 집중하는 걸 봤대요. 미국인 암환자들은 암에 걸리면 구역질 하는 경우는 드물대요. 한국인 환자들은 대부분 구역질을 한다는 거에요. 이게 체력 때문, 아닐까요? 저도 한국인이니까, 미리 구역질하지 않을까요? 미리 방패막이를. 아~ 그렇대요. 제가 목회자세미나하고 아프리카 선교사 대회 때문에. 아플 수가 없는 거에요. 기관지 수술을 2박3일 하고도. 그 다음 날 도저히 못할 것 같은 목회자 세미나 강의를 스무 시간 하고. 막 하나님이 엔돌핀을 증강시키지 않을까요? 모를거야, 여러분. 뭐든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뭐든지 하나님의 시간인 거에요. 날마다 내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믿고 나가야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시고. 기도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셔야, 주께 인도하셔야 됩니다. 가장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그래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딱 나온 것입니다! 28-29절. 이건 굉장히 공평한 결정이었습니다. 아브넬도 하나님이 처리해주실 것을 믿어야 되는데. 자기가 원수 갚았기 때문에 그 저주가 자녀에게 간다는 것은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내가 원수 갚으면. 나의 모든 사역, 바람, 술로 끊어지지 아니하고 내려간다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맞습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사연이, 3~4대의 저주가 끊어지기를 바랍니다. 미리 요압이 물어봤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아브넬을 저주하는 것이 바로 다윗의 악함입니다. 아니, 약함입니다. 아브넬까지 죽은 마당에 요압까지 없으면 통일왕국이 되지 못하는 거에요. 요압이 야망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사사로운 원한으로 아브넬을 죽인 것이고. 동생 아사헬을 죽인 솜씨가 굉장히 날렵한대다가, 아하, 통일왕국의 군사는 아브넬이 될 것이다! 사사로운 권력욕과 아사헬에 대한 원수 때문에 아브넬을 죽인 것입니다. 경제 문학계 스포츠계를 초토화시키는.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사건입니다. 이 세상에서 힘든 것이 자녀를 객관적으로 못 보는 거에요. 그리고!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굉장한 믿음이에요. 그 자녀 하나를 객관적으로 못 봐서 이렇게 학교를 다 뒤집어놓고. 힘들 때, 최씨를 못 끊어서. 최씨의 일로 결론을 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혼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시는 거에요. 갖은 죄의 온상이 되는 것이에요. 권세가 있고 자리가 있을 때, 우리가 이렇게 달라져요. 몇 십 년을! 모를 수가 있어요. 40년을 모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구속사가 안 깨달아지는 요압이! 다윗의 심복으로 있으니 다윗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요압이라는 제갈공명이 다 무찔러 줬어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일에 요압이 항상 자기의 야망으로 누구의 원수? 다윗의 원수를 다 처단했어요. 점점 더 무서워져서. 배신을 막지도 못하고 배신을 무찌르지도 못합니다. 아브넬을 죽인 것은 요압 뿐만 아니라 요압의 식구, 같이 공모해서. 옆에 있는 심복인데 이해가 안 돼요. 기름부은 자, 사울을. 그렇게 자기를 죽이려고 했는데. 아브넬을 위해 애가까지 짓는 게 바로 구속사입니다. 그 똑똑함으로 다윗의 의중을 꿰뚫어 보는 요압은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아, 드라마 작가도 일류를 하고 그러더라구요. 옆에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사람과 다윗이 끝까지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관계가 힘든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내가 아브넬이구나, 바로 내가 요압이구나. 우리에게 힘든 시험이 오는 것은 여러분들을 특별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부부 간에 구속사가 안 깨달아져도 돈이 있고. 바람이 있고. 그래도 하나가 되잖아요. 바람 폈을 때 하나가 되어야 진짜 구속사가 되야. 근데 바람도 안 피고. 돈도 잘 벌고. 하나가 안 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바람도 피고, 사업도 망해보고. 머리로 할래니까 골치가 아퍼. 근데 머리로 하는 사람이 요압이라는 거에요. 무서운 사람 아닙니까? 나를 반대하는 자 중에 나를 돕는 자가 있고, 나를 돕는 자 중에 나를 해치는 자가 있어요.
적용
가장 가까운 사람 중에 나를 해치는 사람이 있는지?
3. 오늘 내가 약하여서 너무 어렵다고 고백을 합니다.
저주에 저주를 했어요. 자기의 왕권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이제 그래서 자신의 객관적인 상태를 보고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오늘 내가 너무 약하여서. 요압같은 인본주의적 세력이 다윗을 계속 방해를 합니다. 배반을 막지도 처리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이게 다윗의 강함인데. 아브넬과 요압은.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눈 앞에 있는데. 자기의 질서의 위인 사울. 사울이 감사하고. 이것이 다 너무나 감사해서 웁니다. 이것이 되면 하나님 만난 사람입니다. 내 속에 기름부은 자를 위해 끝까지 대적하라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고. 기름부은 자를 내 손으로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가를 같이 부르게 합니다. 이럴 때는 바로 이렇게 노래를 불러야 한단다. 여러분 힘들 때 교회 와서 찬양하고 말씀보고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된다고 제가 가르쳐드리고 싶습니다. 부하가 잘못했어도 책임은 다윗이 져야 돼. 제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아도 날마다 교회를 위해 눌린다고 했어요. 저도 여러분들의 힘든 기도제목, 아픈 기도제목 때문에 얼마나 회개하는지 모르고. 정말 제가 책임져야 되지 않나 싶어요. 누가 잘못해도 결국은 제 책임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 그걸 못합니다. 야단칠 사람은 야단치고 내가 할 것을 행해야 하는데. 교만한 사람은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계속 높은 자리에 있다보니까. 나 아브넬 안 죽인 거 하나님이 아셔! 이러시면 안 되는 거에요. 리더나 목자나. 목장에서 모든 걸 책임지는 것처럼! 드디어 온 백성이 기뻐한다고. 우린 항상 목장에서 가족에서 그 힘든 사람을 설득해내야 합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거는 중심 잡은 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백성들은. 39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1절에는 다윗이 점점 강하여졌다고 했는데 마지막 절에는 내가 너무 약하여. 이런 문제가 다윗에게 있었던 걸 보면서. 이복누이이고 그녀의 아들들은 다윗의 조카가 되는데. 그때 설움받는 아들들끼리 친해졌는데. 스루야의 아들들은 자기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힙니다. 나중이 되어서 보니까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인간이 다윗보다 더 오래 사는 거에요. 하나님이 처리해주시기를 바랬지만은. 믿는 사람은 항상 오늘이 어렵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항상 거룩하게 살려고 하니까 항상 오늘이 어렵습니다. 정말 내가 어렵다고 고백을 합니다. 저는 그 어렵다고 고백하는 게 다윗의 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압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보십시요. 모든 저주를 했는데. 요압은 하나님 나라가 안 보이고 세상 나라가 보이니까. 아하. 정치적인 욕을 보이는 거야. 성경의 저주가 가장 무서운 것인데. 성경으로 무슨 저주를 해도 들리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들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구속사를 모르는데도 다윗을 꽉 쥐고 있습니다. 다윗의 의중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 아닙니까? 인간관계로 하나도 힘든 사람이 없다면 정말 여러분들은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간이 가야 나타나는 거에요. 교회는 할 일 없는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에요. 우리는 날마다 새가족이 오니까 한 주만 돼도 헌가족이 돼서 관심이 없을 수가 있어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을 던져서 아브넬을 애도했습니다. 거기 구원의 역사, 구속사가 중심에 있습니다. 구원 때문에 사랑하고 결혼하고 직장하고. 그 기름부은 자가 도대체 뭐냐? 질서의 우선순위가 기름부은 자 입니다. 우리 집 안에서 질서의 우선순위가 기름부은 자 입니다. 결혼은 시켜놓고. 니가 알아서 하라! 그렇게 책임전가를 하시면 안 돼. 기름부은 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게 힘들어서 내가 오늘 약하여. 가족이니 살아야 된다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셔야 됩니다. 우리가 끝까지 살 수 있는가? 이것이 기름부은 자를 일관성있게 끝까지. 하나님 나라는 얼마나 사단의 방해가 심한지. 다윗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는 정말 오늘 약하여지는 것이 정말 최고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말씀이 있다면. 내가 원칙을 지키고 가는 것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아니면.
[기도 제목]
박수동 목자님
직장에서 질서에 잘 순종하고 감사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에 잘 인내하도록
표승범 부목자
질서의 우선순위 기름부은 자인 어머니를 끝까지 사랑하도록
이종춘
사건에 직면할 수 있도록
황태훈
하루하루 큐티 열심히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