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3_일3_정정환목사님_기쁘게받으심이되도록_레2217-33
[주일예배 설교]
저는 우리들교회를 오기 전까지만 해도 레위기는 늘 읽다가 건너뛰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올 10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럴수가!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주일설교를 하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레위기가 내 위기로 보였습니다. 한 시사주간지에. 거기에 이런 헤드라인이 떡 하니. 최순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몇천 만원 단위로 헌금을 하고 교회를 리모델링을. 주로 이런 글이 써져 있었다고 합니다. 삼성동. 승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정을 농단하면서 드렸던 그 많은 헌금과 예배를 과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까? 오늘도 주일을 맞이해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매주 목장예배 수요예배 봉사도 하면서 시간과 물질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이 있고 기쁘게 받으시지 않는 예물이 있습니다.
1. 구별된 마음으로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18-19절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이 되도록.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왜? 한 가정의 재산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족으로 여겨졌습니다. 제물이 죽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죽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제물이 자기 몸값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백성들은 하나님께 흠이 있는 제물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20-22절
하나님은 흠이 있는 제물을 드리지 말라, 하시면서 그 예물들을 열거해주십니다. 그 이유가 말라기 1장 13절에 나옵니다. 흠이 있는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번거롭고 귀찮은 일로 여겼습니다. 그 일이나 사람에 대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심도 정서도 애정도 없는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총독에게 준다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합니다. 구별된 마음이 없는 예배는 바로 그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멸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장부터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이 되도록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제사를 하는 사람, 예배자를. 그래서 로마서 12장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몸은 전인, 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예배자 그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부서지고 깨어진 마음, 감사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 헌신하는 마음,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 성물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구별됨이 없는 예배 봉사 봉헌과 사역은 기뻐하심이 없는. 그리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 저는 것 병든 것 흠 있는 것을 제사로 드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나에게 있어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 자신 입니다.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은 것입니다. 좋은 것보다는 뭔가 흠이 있는 것들만 자꾸 꺼내 놓습니다. 나눔을 할 때도 진실함이 없는. 예배를 일로 여기고. 저의 연약함이나 치부를 드러내는게 그냥 싫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나눔은 늘 형식적이었습니다. 오늘은 딱 여기까지. 그런데 어느 날 목장모임을 하는데. 저의 나눔이 끝나고. 목자님들이 2%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저의 아내에게 자꾸 물으시는 겁니다. 아들 줄 과자를 저 사람이 다 먹고 있다. 그렇게 듣고 있는데 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저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빨리 문자를 쳐서 이 상황을 종료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만 거기까지 더 이상 하지마. 이미 한 번 터져버린 제 아내의 방언 속도는 제 문자메세지 속도 보다 빨랐습니다. 꼭 그렇게 다 얘기해야 되냐. 여기 당신에겐 목장이지만 나에게는 직장이야! ㅎㅎㅎ 이제 좀 미안하다 하겠지. 왠걸. 아내 한 마디가 비수로 꽂혔습니다. 당신은 고난에 대해서만 얘기하려 하지, 죄에 대해서는 얘기하려 하지 않아. 실상은 제가 형식적인 나눔만 했다는 것을 제대로 확인한 것입니다. 예물로 드리려면 이렇게 제단에서 잘 죽어져야 하는데. 나 자신이 우상이다보니까. 나의 죄와 내 수치까지 다 꺼내놓으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눈먼 것 상한 것 베인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수요예배 때 저에 대한 처방은. 혼자 있지 말고 사람들과 쫌 어울려라. 우리들교회가 아니라 우리들 주식회사. 사역자들에게 농담으로라도 정과장이라고 불렸습니다. 더 이상 예배가 일이 아니라 안식이고 쉼이 되었습니다. 가장 귀하게 여겼던 나 자신을 제물로 드리지 않고. 내 인생이 거룩이 아니라 행복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별된 마음으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나 자신이 번제물이 되어. 큐티를 하더라도 하루의 첫 시간을 따로 떼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십일조를 하더라도 가장 먼저 선별하여 온전한 봉헌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 구별된 것을 내어 드릴 때 내 삶은 그만큼 구별되어 거룩하게 됩니다. 구별된 시간 봉사와 예배 구별된 가치관이.
적용
내가 드리기에 가장 아까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먹고 번거롭고 귀찮게 여기면서 형식적으로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시간과 물질, 손과 발이 가는 수고는 무엇입니까?
2. 탐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33-35절
22절에서 예물로 드리지 말아야 할 6가지를 언급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무엇입니까? 수컷의 고환을 거세.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외국인에게 받아서 예물로 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방인의 손에서 길러진 이런 문제있는 제물이 그대로 하나님의 예물로 올려졌습니다. 이방인에게 이렇게 돈을 주고 사온 예물은. 더 큰 문제는 그 속에 이방인들의 부패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바친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예배를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1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의 그 탐욕스런 마음으로 드려지는 그 기복적인 예배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 이런 마음에는 물질주의 성공주의 번영복음이 깔려 있습니다. 목적과 동기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결과와 댓가에만 집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고지식하게. 무엇을 하든지 자기의 이익과 이해타산만을 먼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늘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싫고 좋은 것이 많고. 저는 청년 시절. 십일조 정도는 눈 감아주시겠지.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 아니라 돈을 섬겼던 것입니다. 아내가. 당신이 정말 신학대학 나온 거 맞냐? 믿음이 이 지경이냐? 저는 이상한 논리로 아내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저의 지식은 내 욕망을 합리화 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겁니다. 제가 드렸던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나의 탐심과 야망을 채우기 위한 예배였던 겁니다. 내가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를 잘 나가고 섬기다보면. 하나님이 이 정도 떡고물이라도 주시지 않을까? 숨겨놓았던 내 욕심이 채워지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뭔가를 얻기를 기대합니다. 한 집사님의 나눔입니다. 열등감이 많아. 뭐든지 잘해서. 내 인정중독의 열심으로 2억 작정헌금을 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긴 하지만 그 속에는 내 안의 결핍과 애정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응답자의 10명 중 6명이. 많은 크리스챤이 복을 오로지 물질의 차원으로만. 마치 뇌물을 바치듯이 드리는 그런 기복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뇌물과 선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준다면 그것은 뇌물입니다. 하지만 댓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준다면 그것은 선물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복적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만이 복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기대대로 뭔가가 되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이 터져나오는 것이죠. 사울. 그는 마음으로 이미 물질의 노예가 되버렸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 하나님 만이 자신의 방패이고 지극히 큰 상급이었기 때문입니다. 흠이 있는 예물을 드리지 말라는 이유가 너희를 위하여, 라고 합니다. 이 당시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의 제사에 있어서 신은 인간을 속박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마치 뭔가 해꼬지를 당할까봐 두려워서. 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시이고 또한 교제의 수단입니다. 그 기쁨은 누구에게 옵니까? 바로 나에게 돌아옵니다. 감사로 예물을 드리고. 이런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내가 이해타산이 없이 부지런히 목장을 섬기다가. 날마다 큐티를 하며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결과적으로는 내가. 내 탐심을 가지치기 하고. 기복이 아니라 팔복을 추구하는 그 자체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되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적용
내 이해타산이나 욕심으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생색과 인색함으로 드리고 있습니까?
3. 때와 경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26-29절
여호와께 기쁘게 드려진. 어미와 새끼를. 왜 갑자기 이 명령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백성들이 제물을 바치는 데에만 마음을 다 빼앗겨서. 멸종되기 때문입니다. 어미와 새끼를 함께 잡지말라는 이 명령은 제물도 중요하지만 그 제물을 잡는 과정을 너희가 신중하게 분별하라는 뜻입니다. 때와 경계를 그어주신 겁니다. 여러분, 거룩은 때와 경계를 지킨다는 겁니다. 내 주제를 알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겁니다. 믿음의 반대는 자기의 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것처럼. 나 자신을 절제하면서. 이것이 바로 나와 공동체를 보호하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때를 분별하지 못하면 늘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내가 호의로 하는 것도 상대방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적의가 됩니다. 그때부터는 관계질서에 금이 가고 공동체가 깨어집니다. 목장에서도 나는 좋은 뜻으로 한 마디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은 두고두고 상처로.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체휼하는 신중함이 없기 때문이죠. 내 기분이나 나의 편의에 따라 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편의에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내가 옳다고 착각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닫습니다. 내가 이런 봉사를 하겠다는데. 왜 그런 이해되지 않는? 하지만 아무리 내가 좋은 뜻으로 할지라도 주위에서 자꾸만 태클을 건다면. 생각해보라는 신호입니다. 사울 왕은 예배 중독자였습니다. 제사는 제사장만 집전해야 한다는 원칙도 어겼습니다. 경계를 넘어가고 영적인 질서를 무시했습니다. 이런 사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부르심이 자원함보다 앞서면 월권을 하게 됩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스스로 자화자찬 합니다. 주님께서 날 위해 하신 일로 채워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수요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육성으로 안부를 전해오셨습니다. 목사님은 환자로 경계를 잘 지킬테니. 여러분은 삶의 경계를 잘 지키라고. 나에게 허락하신 그 역할과 때를 잘 살아내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강한 공동체야 말로. 말씀의 기준에 따라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 관계와 원칙에 대해서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적용
내가 옳다 여기면서 원칙을 무시하고 관계를 깨고 있진 않습니까? 신중하게 분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은 없습니까?
4.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31-33절
마지막에는 애굽 땅에서 인도하셨다는 언급을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자녀가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출애굽의 구속 받은 계명을 기억하고. 이 거룩이란 말은 온전함, 구별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 죄에 대해서 구체적인 회개를 하고. 나의 번제단에서 죽어지는 적용을 해야 됩니다. 하지만 내가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성호를 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딸이. 몇 달 뒤에는 제 아들도. 아들은 자기 욕심 때문에 그 행동을 했다는 것을 금방 인정했습니다.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서 있었습니다. 딸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던 한 마디가 아들의 입에서는 나왔습니다. 아빠. 잘못했어요. 제 품에 안기면서 펑펑 울어댔습니다. 이 잘못에 대한 두려움과 정죄감이 녹아들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뭐라 얘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매 주일 애통하는 예배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흠이 비록 많다고 할지라도 나의 죄를 회개하면서 눈물로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속죄 제물 때문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어주셔서. 이제 내가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매주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나, 라는 예물을 드리며 대속의 사랑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내 부정함을 깨닫고 죄에서부터 정결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삶과 예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내 삶 보다는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정결하게 하시는 예배가 없다면 나는 거룩의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온통 진동하는 악취만 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호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흠 없는 예물을 드리라는 이 계명에 순종할 때. 내 주위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시고.
적용
나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속되게 하는? 나는 삶이 우선입니까 예배가 우선입니까?
공동체 고백입니다.
이혼을 수시로 말하며. 정작 아이들의 상처는. 빚을 내서 건축을 했는데 왜 이런 사건이 왔는지? 그러다 친구가.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라는 책을. 살아줘서 고맙다. 하지만 정체기가 오게 되었습니다. 2013년 2월에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너무 좋아하고. 온 가족이 한 언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장애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제 이 모든 삶의 여정이 하나님의 정확한 삶의 세팅임이 인정이 됩니다. 내 영적인 장애를 고치심을 깨닫게 됩니다. 온 가족이 우리들교회 다니게 된 기적을 감사드리고. 사람 낚는 어부로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집사님은 내 안의 죄와 탐심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이제는 온 가족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 길을 오가면서 시간과 물질, 마음과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식구들이 한 언어를 나누게 되는.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구별된 마음으로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탐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때와 경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주신 말씀과 계명에 대해서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감사하고 나 자신을 내어드림으로써.
[기도 제목]
표승범
0. 담임 목사님께 적절한 치료법이 적용되어 후유증이 남지 않고 완쾌되셔서 강단에서 뵙도록
1. 구별된 마음으로 가장 귀한 것, 내 진실, 연약, 치부, 죄, 수치의 나눔을 목장예배에 드리도록
2. 내 탐심, 이해타산, 욕심, 생색, 인색함으로 드린 큐티를 회개하고 목자님께 큐티나눔하도록
3. 때와 경계를 잘 지켜 큐티나눔은 목장에서만 하고 주어진 역할과 관계와 질서에 순종하도록
4. 주신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며 예배가 중심이 되어 부정함을 깨닫고 죄에서 정결케 되도록
5. 일대일양육 8과 망설임 없이 바로 진행하고 잘 들어주며 피드백은 그날 저녁 작성하도록
6. 유튜브 주일학교 워십댄스 한 번 이상 따라하며 초등부에서 배우는 율동찬양 잘 따라하도록
7. 거북목 증상이 있고 목 디스크와 손가락 저림 증상도 있는데 의식적으로 바른 자세를 취하도록